2024년 2월 14일 수밤
김동민2024-02-14조회 297추천 40
2024년 2월 14일 수밤
찬송: 120장, 121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공과공부를 할 건데 공과가 수정이 필요해서 공과 공부를 오일밤 예배 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주님 따라가는 길에 대해서 조심해야할 것을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따라갈 길의 기억할 세 가지 하면 되겠는데 51절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느나라 사람들입니까. 어느나라 사람들인가요. 유대인. 유대인이라고 그러죠. 유대인들은 누구의 자손들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 중에서 믿음의 계통이 야곱이고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의 아들이 열두 아들이고 열두 지파고 이들이 내려와서 유대인이 되고 히브리 민족이라 그럽니다. 선택받은 민족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는 게 심해서 이방인은 벌레처럼 그렇게 취급을 했습니다. 로마 식민지 되어있으면서도, 그래서 다음 사람은 알기 때문에 반감이 심했겠지요. 중세 때도 유대인들은 장점이 많은데 고약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한 안 좋은 말이 많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은 유대인 편이 되는 게 좋습니다. 우리들의 뿌리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흉보고 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럽 쪽의 카톨릭이 된 기독교 기독교에서 가장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죠. 유대인이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으니까. 아주 상극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 믿고 그런데 성경의 기록된 사람들은 유대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취급하지 않으니 반감이 심한겁니다. 그래서 제자들 먼저 보내시니까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려고 하니까 막습니다. 이걸 보면서 야고보 요한이 부탁을 하고 능력을 아니까 우리 선생님 가는 길을 막아. 선생님,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멸해버리라고 할까요 합니다. 그러지 않고 꾸짖고 돌아가셨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건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하는데 어떻게 올 수 있느냐. 방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더러운 귀신을 제자들에게 데려왔는데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어서. 오지 못한 이유가 뭐냐. 성경을 보고 우리를 돌아봐야합니다. 저도 돌아보고 각자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하나님입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러면 제 하나님은 안되는 겁니까. 왜 하나님은 한 분이고 꼭 같이 사랑하시고 다 같이 대속하셨고 진리는 하나인데 백 목사님처럼 능력이 안 나타나는겁니까. 왜 엘리야가 기도하니 하늘에서 비가 안 오고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리고 열매가 맺습니다. 엘리야는 성화가 된 사람이고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야고보 요한도 뒤에 가서는 나타나나 이때는 부족해서 딴 길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모두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모두 사랑역사입니다. 사랑이란 구원이고 참사람 새사람으로 하는데 교육시키는 것 양육하는 건 언제가 가장 좋을까. 나무를 기를 때 주인이 원하는 수형, 나무의 형태를 만들 때 언제 나무 모양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것인가. 자연적으로 두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것은 백의 구십구는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자연 속에서 나무가 곧은 건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그건 자연적인 나무인데 오래도 됐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300억인가 나무 한 그루에 300억, 사람이 나무를 만듭니다. 가지 비트는 언제 그렇게 만드느냐 장성하지 않고 어릴 때 1년 2년 정도 될 때 그렇습니다. 짐승 훈련시키는 것도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는 게 수월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사람을 고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걸 다 해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게 함부로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가지고 보통을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 오전에서 휴대폰을 켜놓고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모르겠고 예배 전에 들어오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놔둡니다. 뭐라고 하면 교회 안 나올까 싶어서.
설마 우리 주일학생 중에서 예배 시간에 그러는 사람 없지요. 요즘 아이들 휴대폰 속에는 온 세상이 다 들어있고 그건 굉장히 편리한 반면에 엄청나게 무서운 겁니다.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아예 안 사주는 게 좋고. 맛을 안 들이는 게 좋습니다. 어린 아이들 휴대폰 가지고 하면 중독이 되어서 대책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이 하나님 앞에 철렁해서 큰일났구나 하면 감당이 안 됩니다. 휴대폰 중독이 중독 중에 위험한 중독입니다.
길 가면서 휴대폰 보면서 영화보는 사람 정상으로 안 봅니다.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사고 나는 것이고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사고라는 것은 한 순간에 터지는 겁니다. 그 사고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길에서 나는 교통사고는 중상 아니면 죽는 사람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다른 걸 본다. 이건 막아야합니다 그것이 사랑인겁니다. 이걸 어떻게 아이가 시험에 들지 않고 될까. 기도 많이하고 평소 기도를 한 말은 권위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말도 나오고 그런데 평소 기도도 안하고 감정에 따라서 뱉어버리면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휴대폰은 조심해야하고 부모님이 속기 쉬운 것, 애완견의 견주들 묘주들이 하는 말이, 개 주인, 고양이 주인들이 착각하는 말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 견은 안 물어요. 이 세상에 안 무는 개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개는 물기 때문에 개입니다. 짖기 때문에 개고.
견주들이 속듯이 아이에게 속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 내 자식을 내가 안다. 모릅니다. 뭐가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는 행동, 말, 단어, 이거 보면 그 아이 속 나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지요. 콩자루에 콩을 쌀자루에 쌀을 집어넣어놨습니다. 그러면 터집니다. 아이들이 쓰는 단어가 그 수준이 넘어가는 말이 나오면 엄청나게 나쁜 말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좋고 나쁜 말이 많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 드러나는 걸 보고 알 수 밖에 없습니다. 면밀하게 살펴봐야합니다. 많은 연고를 해야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예쁘다 귀엽다 그러는 게 아니라 사랑은 어려운 겁니다. 옛날에 노래에서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그건 썩을 사랑입니다. 그것도 눈물 바다가 됩니다. 혈육 사랑도 그렇습니다. 구원의 사랑도 많은 그게 들어가야합니다. 희생이 들어가야하고 그러지 않으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능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자식을 사랑한 부모의 사랑이 뜨거운만큼 지능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구원의 사랑이 뜨거운 만큼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모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뜨거움이 강도를 강하고 애타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나 자신이 먼저 되어야 기도가 됩니다. 너의 기도는 껍데기다 효력이 없습니다. 다윗이 범죄하고 목숨을 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칠일 동안을 먹지 않고 잠도 안 자고 그 기도가 진짜 기도. 그렇게 하는만큼 전부는 은혜라야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 사랑이 들어갈 때 내 자식이든지 양떼든지 변화가 되는 겁니다.
본문에서 57절 부터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의 생각할 세 가지.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성경 관리하는 사람을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혹이 어찌하오되, 아는 사람이고 나름대로고 어디로 가시든지 좇음이라. 따라가겠습니다. 오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하니까 좋으신 겁니다. 나 따라오면 좋은 거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마귀는 마귀 좋아하면 다 좋아하는 거겠지요. 옳은 걸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겁니다. 우리 소망은 이 사람처럼 주님을 따라가는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주님을 배워서 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믿는 사람의 모든 소망은 다 여기 기울어지는 겁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게 소망이고 전부입니다. 세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자청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네가 깨닫고 나를 따라가면 좋겠다. 자청해서 주님을 따라간다. 나를 따라오면 어떻게 가르칩니까.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내 길 내 걸음이 어떤 것이냐 하면 평생 살아도, 모든 사람, 타락한 인간과 같은 여우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저 먹을 거 하는 게 여우고 한 앗사리온에 참새구이 요즘 파는가요.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팔았습니다. 참새구이하고 좀 크게 되면 치킨이 되겠지요. 참새구이는 요즘은 1~2000원할까요. 값어치없는 존재도 저를 위해 산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생각한다. 자기를 위한다. 나는 내 집이 없고 나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송곳 꽂을 땅도 없다. 주님 가신 걸음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하나도 없는데 당신이 당신 위한 게 없는데 주의 길입니다. 가장 천해졌습니다. 그런데 존귀해졌습니다. 우리가 가신 걸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희생이고 아버지 뜻만 위하는데 그게 전부 다 차지하는 게 되는 겁니다. 먼저 깨닫고 따라가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앞의 사람은 자청했습니다. 자청하니까 나 따라오는 건 좋은건데 이런 길이다. 두 번째는 주님이 따라오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네 주님따라가는 거 좋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합니다.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하게 하라. 신앙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니까 조건을 불러놓고 내가 오라는데 조건 달지 말아라. 그냥 따라오면 되는 거다. 너는 산자다. 하늘에 속한 자다. 아버지 장례는 치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건을 앞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죽은 자가 하는 거다. 그건 불택자, 미중생자, 안 믿는 사람. 하나님 연결이 끊어진 자. 이 사람입니다. 죽은자가 하는 거다. 너는 산자다. 너의 할 일은 하늘나라 전파하는 거다. 그게 너의 일이다. 필요할 때는 장례도 치르고 하는데 주님 따라가는 것보다 먼저, 무엇이 원인이냐 무엇이 원동이냐. 주님 따라가서 주와 같이 되는 보조적인 게 됩니다. 공부가 주업입니까 반사가 주업입니까. 사업이 주업입니까 반사그 주업입니까. 신앙생활이 중심입니다. 아이들 학교도 손해되면 학교 안 보내는 겁니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유치원 아이들 입에서 그렇지 않은 말이 나옵니다. 타락한 세상을 선의로 가르칩니다. 그 선의가 우리 아이들을 타락시킵니다. 어린이집을 갔다오면 면밀하게 살펴서 안 나쁜 말은 머리 속에 박혔습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가장 좋은 곳으로 집을 구하고 가정도 이루고 다 그리 하는 겁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아무한테나 이런 말 못하는 거지요. 원리는 이렇습니다. 판단은 알아서 하십쇼. 그런 겁니다. 첫 번째 사랑은 자청해서 따라왔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직접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주를 좇겠습니다만은 조건을 붙입니다. 그게 가족 작별입니다. 거기에 대한 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중단하지 마라, 무조건 달려가는거다. 바울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설명해놨습니다. 출발하면 마지막 끝까지 있는 힘 다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는 게 달음질입니다. 이게 천국 가는 길이고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는 새끼가 있는데도 괴롭지만 가고 슬프지만 가고 그 끝에 괴로움만 있느냐, 고속도로 타다가 휴게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십니다. 힘들구나. 그런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이 뜨거울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이 되어집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버지께 다 맡겼다.
따라오라고 했는데 조건을 겁니다. 조건걸지 말아라.
자처하면서 스스로 조건을 겁니다.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우리 길입니다. 소망을 소망으로 전해놓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찬송: 120장, 121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공과공부를 할 건데 공과가 수정이 필요해서 공과 공부를 오일밤 예배 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주님 따라가는 길에 대해서 조심해야할 것을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따라갈 길의 기억할 세 가지 하면 되겠는데 51절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느나라 사람들입니까. 어느나라 사람들인가요. 유대인. 유대인이라고 그러죠. 유대인들은 누구의 자손들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 중에서 믿음의 계통이 야곱이고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의 아들이 열두 아들이고 열두 지파고 이들이 내려와서 유대인이 되고 히브리 민족이라 그럽니다. 선택받은 민족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는 게 심해서 이방인은 벌레처럼 그렇게 취급을 했습니다. 로마 식민지 되어있으면서도, 그래서 다음 사람은 알기 때문에 반감이 심했겠지요. 중세 때도 유대인들은 장점이 많은데 고약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한 안 좋은 말이 많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은 유대인 편이 되는 게 좋습니다. 우리들의 뿌리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흉보고 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럽 쪽의 카톨릭이 된 기독교 기독교에서 가장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죠. 유대인이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으니까. 아주 상극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 믿고 그런데 성경의 기록된 사람들은 유대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취급하지 않으니 반감이 심한겁니다. 그래서 제자들 먼저 보내시니까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려고 하니까 막습니다. 이걸 보면서 야고보 요한이 부탁을 하고 능력을 아니까 우리 선생님 가는 길을 막아. 선생님,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멸해버리라고 할까요 합니다. 그러지 않고 꾸짖고 돌아가셨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건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하는데 어떻게 올 수 있느냐. 방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더러운 귀신을 제자들에게 데려왔는데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기도가 없어서. 오지 못한 이유가 뭐냐. 성경을 보고 우리를 돌아봐야합니다. 저도 돌아보고 각자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하나님입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러면 제 하나님은 안되는 겁니까. 왜 하나님은 한 분이고 꼭 같이 사랑하시고 다 같이 대속하셨고 진리는 하나인데 백 목사님처럼 능력이 안 나타나는겁니까. 왜 엘리야가 기도하니 하늘에서 비가 안 오고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리고 열매가 맺습니다. 엘리야는 성화가 된 사람이고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야고보 요한도 뒤에 가서는 나타나나 이때는 부족해서 딴 길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모두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모두 사랑역사입니다. 사랑이란 구원이고 참사람 새사람으로 하는데 교육시키는 것 양육하는 건 언제가 가장 좋을까. 나무를 기를 때 주인이 원하는 수형, 나무의 형태를 만들 때 언제 나무 모양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것인가. 자연적으로 두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것은 백의 구십구는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자연 속에서 나무가 곧은 건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그건 자연적인 나무인데 오래도 됐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300억인가 나무 한 그루에 300억, 사람이 나무를 만듭니다. 가지 비트는 언제 그렇게 만드느냐 장성하지 않고 어릴 때 1년 2년 정도 될 때 그렇습니다. 짐승 훈련시키는 것도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는 게 수월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사람을 고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걸 다 해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게 함부로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가지고 보통을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 오전에서 휴대폰을 켜놓고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모르겠고 예배 전에 들어오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놔둡니다. 뭐라고 하면 교회 안 나올까 싶어서.
설마 우리 주일학생 중에서 예배 시간에 그러는 사람 없지요. 요즘 아이들 휴대폰 속에는 온 세상이 다 들어있고 그건 굉장히 편리한 반면에 엄청나게 무서운 겁니다.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아예 안 사주는 게 좋고. 맛을 안 들이는 게 좋습니다. 어린 아이들 휴대폰 가지고 하면 중독이 되어서 대책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이 하나님 앞에 철렁해서 큰일났구나 하면 감당이 안 됩니다. 휴대폰 중독이 중독 중에 위험한 중독입니다.
길 가면서 휴대폰 보면서 영화보는 사람 정상으로 안 봅니다.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사고 나는 것이고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사고라는 것은 한 순간에 터지는 겁니다. 그 사고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길에서 나는 교통사고는 중상 아니면 죽는 사람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다른 걸 본다. 이건 막아야합니다 그것이 사랑인겁니다. 이걸 어떻게 아이가 시험에 들지 않고 될까. 기도 많이하고 평소 기도를 한 말은 권위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말도 나오고 그런데 평소 기도도 안하고 감정에 따라서 뱉어버리면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휴대폰은 조심해야하고 부모님이 속기 쉬운 것, 애완견의 견주들 묘주들이 하는 말이, 개 주인, 고양이 주인들이 착각하는 말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 견은 안 물어요. 이 세상에 안 무는 개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개는 물기 때문에 개입니다. 짖기 때문에 개고.
견주들이 속듯이 아이에게 속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 내 자식을 내가 안다. 모릅니다. 뭐가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는 행동, 말, 단어, 이거 보면 그 아이 속 나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지요. 콩자루에 콩을 쌀자루에 쌀을 집어넣어놨습니다. 그러면 터집니다. 아이들이 쓰는 단어가 그 수준이 넘어가는 말이 나오면 엄청나게 나쁜 말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좋고 나쁜 말이 많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 드러나는 걸 보고 알 수 밖에 없습니다. 면밀하게 살펴봐야합니다. 많은 연고를 해야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예쁘다 귀엽다 그러는 게 아니라 사랑은 어려운 겁니다. 옛날에 노래에서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그건 썩을 사랑입니다. 그것도 눈물 바다가 됩니다. 혈육 사랑도 그렇습니다. 구원의 사랑도 많은 그게 들어가야합니다. 희생이 들어가야하고 그러지 않으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능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자식을 사랑한 부모의 사랑이 뜨거운만큼 지능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구원의 사랑이 뜨거운 만큼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모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뜨거움이 강도를 강하고 애타는 기도가 되는 겁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나 자신이 먼저 되어야 기도가 됩니다. 너의 기도는 껍데기다 효력이 없습니다. 다윗이 범죄하고 목숨을 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칠일 동안을 먹지 않고 잠도 안 자고 그 기도가 진짜 기도. 그렇게 하는만큼 전부는 은혜라야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 사랑이 들어갈 때 내 자식이든지 양떼든지 변화가 되는 겁니다.
본문에서 57절 부터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의 생각할 세 가지.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성경 관리하는 사람을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혹이 어찌하오되, 아는 사람이고 나름대로고 어디로 가시든지 좇음이라. 따라가겠습니다. 오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하니까 좋으신 겁니다. 나 따라오면 좋은 거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마귀는 마귀 좋아하면 다 좋아하는 거겠지요. 옳은 걸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겁니다. 우리 소망은 이 사람처럼 주님을 따라가는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주님을 배워서 주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믿는 사람의 모든 소망은 다 여기 기울어지는 겁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게 소망이고 전부입니다. 세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자청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네가 깨닫고 나를 따라가면 좋겠다. 자청해서 주님을 따라간다. 나를 따라오면 어떻게 가르칩니까.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내 길 내 걸음이 어떤 것이냐 하면 평생 살아도, 모든 사람, 타락한 인간과 같은 여우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저 먹을 거 하는 게 여우고 한 앗사리온에 참새구이 요즘 파는가요.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팔았습니다. 참새구이하고 좀 크게 되면 치킨이 되겠지요. 참새구이는 요즘은 1~2000원할까요. 값어치없는 존재도 저를 위해 산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생각한다. 자기를 위한다. 나는 내 집이 없고 나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 송곳 꽂을 땅도 없다. 주님 가신 걸음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 가신 길은 하나도 없는데 당신이 당신 위한 게 없는데 주의 길입니다. 가장 천해졌습니다. 그런데 존귀해졌습니다. 우리가 가신 걸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희생이고 아버지 뜻만 위하는데 그게 전부 다 차지하는 게 되는 겁니다. 먼저 깨닫고 따라가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앞의 사람은 자청했습니다. 자청하니까 나 따라오는 건 좋은건데 이런 길이다. 두 번째는 주님이 따라오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네 주님따라가는 거 좋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합니다.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하게 하라. 신앙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니까 조건을 불러놓고 내가 오라는데 조건 달지 말아라. 그냥 따라오면 되는 거다. 너는 산자다. 하늘에 속한 자다. 아버지 장례는 치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건을 앞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죽은 자가 하는 거다. 그건 불택자, 미중생자, 안 믿는 사람. 하나님 연결이 끊어진 자. 이 사람입니다. 죽은자가 하는 거다. 너는 산자다. 너의 할 일은 하늘나라 전파하는 거다. 그게 너의 일이다. 필요할 때는 장례도 치르고 하는데 주님 따라가는 것보다 먼저, 무엇이 원인이냐 무엇이 원동이냐. 주님 따라가서 주와 같이 되는 보조적인 게 됩니다. 공부가 주업입니까 반사가 주업입니까. 사업이 주업입니까 반사그 주업입니까. 신앙생활이 중심입니다. 아이들 학교도 손해되면 학교 안 보내는 겁니다. 중학교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유치원 아이들 입에서 그렇지 않은 말이 나옵니다. 타락한 세상을 선의로 가르칩니다. 그 선의가 우리 아이들을 타락시킵니다. 어린이집을 갔다오면 면밀하게 살펴서 안 나쁜 말은 머리 속에 박혔습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가장 좋은 곳으로 집을 구하고 가정도 이루고 다 그리 하는 겁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아무한테나 이런 말 못하는 거지요. 원리는 이렇습니다. 판단은 알아서 하십쇼. 그런 겁니다. 첫 번째 사랑은 자청해서 따라왔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직접 부탁하셨습니다. 내가 주를 좇겠습니다만은 조건을 붙입니다. 그게 가족 작별입니다. 거기에 대한 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중단하지 마라, 무조건 달려가는거다. 바울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설명해놨습니다. 출발하면 마지막 끝까지 있는 힘 다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는 게 달음질입니다. 이게 천국 가는 길이고 주님 따라가는 길입니다.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는 새끼가 있는데도 괴롭지만 가고 슬프지만 가고 그 끝에 괴로움만 있느냐, 고속도로 타다가 휴게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십니다. 힘들구나. 그런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이 뜨거울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이 되어집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버지께 다 맡겼다.
따라오라고 했는데 조건을 겁니다. 조건걸지 말아라.
자처하면서 스스로 조건을 겁니다.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우리 길입니다. 소망을 소망으로 전해놓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