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5일 금밤
김동민2024-01-05조회 424추천 66
2024년 1월 5일 금밤
찬송: 57장, 47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3절 ~ 57절
전도서 7장을 한 번씩 복습을 하는데 피곤해서인지 암송 소리가 좀 작아지는 거 같은데 입으로 안 외우면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할 때 같이해서 주기도문처럼 십계명처럼 담아두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식을 두고 있습니다. 주님 몸과 피는 떡과 잔은 하나의 표시입니다. 진짜 떡과 피가 아닙니다. 표시하는 상징물이고 피를 표시하는 상징물입니다. 상징이란 안에 담아놓은 것을 표시를 상징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이 먹을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으면 이건 물질이기 때문에 쉽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면 되고 그러는데 안 그렇습니다. 주님이 몸과 사람으로 계신 주님이, 떡이다. 나를 먹으라고 하니까 이해를 도무지 못했습니다. 못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도 못했을 겁니다. 도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했으니까 알게 됩니다. 주님의 몸이 무엇이며 피가 무엇이다.
사람의 몸과 피는, 주님의 몸과 피는 꼭 같은 사람입니다.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몸과 피라는 것은 뭐하는 것이냐. 몸 안에 피가 있어야 정상적인 몸이 되는 거지요. 피가 있고 피가 돌아야 하는 거니까. 피와 몸은 하나입니다.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을 하고 눈으로 보고 활동을 하는 겁니다. 공부하고 일을하고 가정생활하고 활동하는 게 몸이고 피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활동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생애를 하는 주체가 몸이고 피고,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 무엇이 남는다고 했던가요. 자동차가 달려가면 무엇이 남습니까. 매연이 나고 연기가 나고 흔적이 남습니다.
사람이 하루 살면 하루 산 흔적이 남습니다. 일 년 살면 일 년 산 흔적이 남습니다. 이걸 이름의 발자취라고 합니다. 그 흔적 발자취 이력을 또 뭐라고 합니까. 그것을 생애인데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이름이라고 합니다. 생애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이름이 되고 생애가 추하면 추한 이름이 되는 것이고 사람이 한 평생 살고 나면 오래토록 사람에게 남는 겁니다. 물질을 손해볼찌라도 명애가 중요합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그 이름을 남기는데 그 이름을 남긴다는게 그 사람의 생애를 남기는 겁니다. 앞으로 잘 살아서 귀한 일꾼이 되면 은혜로운 분, 동생 잘 보살피고 믿음 좋고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됐다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게 이름입니다. 가인의 이름은 영원토록 인류 대대로 선악과 따먹고 자손 전부를 죽인 못난 조상, 하와, 마귀한테 속아서 선악과 따먹은 인류의 어머니. 다윗이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처 주기 전에 다윗은 이름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런데 목동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해졌습니다. 사울의 이름은 좋았는데 왕이 시기를 할 때부터 추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부터는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길 수 있습니다. 그게 피의 능력입니다. 어떻게 추하게 사라질찌라도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면 됩니다. 이게 능력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라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신 생애 발자취 흔적 이름을 가르켜 말하는 겁니다. 한 말로 말하면 대속의 생애다. 그게 공로고 이력이고 흔적이다.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 대속의 생애를 말하는 겁니다.
첫째, 어떻게 먹습니까. 지식으로 먹고 두 번째는 지식으로 가르켜서 하는 것을 생각으로 하고 연구해보고 따져들어갑니다. 주님의 대속의 생애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무엇이 있어야 생각이 가능합니까. 무엇이 바탕되고 전제가 되어야 그러는 건가요.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생각이 깊고 넓고 다양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둘로 먹는 것도 먹는 건데 세 번째. 진짜로 먹는 게 뭐지요.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동참하는 겁니다. 주님이 하신 그 걸음을 두고 걸어가는 겁니다. 내 몸과 피도 주님처럼 그렇게 찢고 흘리는 겁니다. 어떻게 주님이 사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루어지며 구원이 되느냐
우리의 죄를 주님이 짊어져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합니다. 한편으로 우리 죄를 지시고 죄짐을 다 지고 사셔야합니다. 죄 없는 생애로, 한 순간도 죄 없는 생애로,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늘만 바라보고 그렇게 사신 것입니다. 이걸 알고 우리도 각자 자기 현실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던지 직장에서던지 학교에서던지 혼자있든지 여럿있든지 고요한 곳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차를 타고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경우라도 눈으로 귀로 입으로 어떤 경우라도 죄는 짓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자기 현실을 살아가면 죄를 살아가는 것이 주님 몸과 피로 살아가는 겁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 신앙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 하는 분이 계십니다. 공자를 기준해서, 죄를 따지면 공자가 의인이고 부처의 기준에서 따지면 부처가 의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해도 성경 말씀에 어긋나면 그게 바로 죄가 됩니다. 그게 죄가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죄가 된다는 거기 때문에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걸 이기려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죄를 알아야합니다. 죄를 알려면 뭘 알아야합니까.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성경만 읽으라고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성경을 모르면 죄를 모릅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잘하고 자녀에게 잘하고 부부 사이 좋고 직장 생활 잘하고 착실하게 잘합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다 잘합니다. 그런데 한번씩 주일을 빼먹습니다. 사람 모르는 데에서 원망도 합니다. 대놓고 우상섬기진 않아도 세상 욕망이 큽니다. 그러면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도 죄인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짓는 게 실제로 주님 몸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무엇이 죄 안 짓는 겁니까. 몸이, 피가 이것이 죄 안 짓는 겁니다. 한 시간을 살았으면 먹고 산 생활이 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게 하지 않았으면.
어떤 이를 만났을 때 내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면 주님의 몸과 피를 먹은 게 됩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 알고 두 번째는 아는 것을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입에 넣은 것을 씹고 떠 씹어서 음식을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면 피와 살이 됩니까. 안되지요. 씹었습니다. 안되지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삼켜야합니다. 알고 생각하고, 아는 게 입에 넣는 거라면 생각하는 것은 씹는 것입니다. 삼키면 피와 살이 되는 겁니다. 실행이 되는 겁니다. 저절로 되는 건데 참 알고 참 생각하면 실행은 저절로 되는 건데 먹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만드시려고 주님이 앞서서 그렇게 살아가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5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건설구원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그게 건설 구원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먹고 마시면 영생의 출발이 됩니다. 영생이란 생명의 활동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만큼 죄를 안 짓고 산 만큼 대속을 입은자로 산 만큼 영생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부활을 시키는데 사람은 부활했는데 주님의 몸과 피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만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 가지 중에서 천 가지는 주님의 몸과 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 천 가지는 부활 시키고 나머지는 부활 안 시킵니다. 그 부활 안 시키는 게 무엇이라고요. 부활 안 시키는 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무슨 부활이라고 그랬습니까. 기능 부활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본 구원적인 부활은 사람의 형체 부활입니다. 몸과 마음의 부활입니다. 저는 공부도 못했지만 제 머리로 서울대는 못갔을 겁니다. 서울대 가는 사람은 눈이 몇 개입니까. 서울대 가는 사람은 눈이 몇 개 입니까. 두 개입니까. 귀는 코는요 입은요 발가락은요. 뭐가 다릅니까. 저는 왜 서울대를 못 갑니까. 그 사람과 나는 실력이 다르니까. 기능이 다르니까. 사람은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눈이 하나 더 있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물 잘나고 못난게 아닙니다. 그게 기능 부활입니다. 뭘로 결정됩니까. 기능 부활은 뭘로 결정된다고 합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겁니다. 그 부활은 껍데기 부활은 형체 부활. 육체는 다 같은 육체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다 다르지 않냐. 사람은 부활하는데 부활의 기능은 천차만별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부활된다고요, 주님의 몸을 먹었느냐 마셨느냐 그겁니다. 주님 대속을 살았냐. 거기서 기능이 결정되는 거지요. 수능 시험 성적은 수능 시험 치는 사람에게 결정 됩니까 3년 동안에 결정됩니까. 수능 시험 성적은 수능 시험 치는 날에 결정됩니까. 3년 동안의 결정에 납니까. 3년 기간에 하고 마지막날은 부활할 뿐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하고 새로 올게요. 말이 됩니까. 3년 동안 공부 안하고 뭐했냐.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느냐 직장 다니느냐 경제생활 다니느냐 죄를 짓지 말아라. 주님 대속을 입은 자로 살아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고, 고깃덩어리 뇌사상태같은 음식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에 살리리니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로다. 주일날 먹을 떡은 아주 작습니다. 무교병이라서 맛도 없습니다. 그거는 먹어봐야 양식이 안되겠죠. 상징일 뿐입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배는 불러도 인격의 양식은 되지 못합니다. 인격의 양식이라는 것은 그래서 고깃덩어리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어느집에 가니까 맛있더라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말단의 사람들입니다. 이왕 먹을 거 맛있는 걸 먹으면 괜찮지만 아무리 먹어도 고깃덩어리 살찝니다. 좀 수준 높은 사람은 몸 안 상할 만큼 먹으면 되지요. 먹는데 관심 가지는 이유는 백 목사님께서 살아생전에 가장 좋은 아내가 어떤 아내라고 했던가요. 하루 세 끼 밥 잘 챙겨주는 아내가 최고라고 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밥해 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눈치를 봐야합니다. 밥을 제대로 얻어먹으려면 눈치를 봐야한다. 먹는 데 관심을 안 가지지만 몸이 먹어야 마음이 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의 양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찾습니다. 위인전 같은 건 사람 수양에 좋은 것이 됩니다. 책을 읽으니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게 그 사람 이력이고 양식이 되는 거지요.
주님의 몸과 피는 우리가 알고 먹으면 참 사람의 양식이 되는 것이고 참된 양식 참된 음료입니다. 참 사람의 양식이라는 뜻인데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인격의 양식인데 하늘의 양식이라 그 뜻입니다. 하늘의 양식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습니다. 왜 신령합니까. 하늘에서 내려주셨기 때문에. 물질 만나고 물질 반석에서 물 마시고 다 죽었는데. 참된 음식입니다. 이 땅의 양식입니다. 그걸 먹으면 이 참 사람이 튼튼해집니다. 먹으면 그리 됩니다. 안 먹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 생각하고 살아야합니다. 안 살면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네 살을 먹고 네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 주님 안에 거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주님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고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내가 됩니다. 나는 나인데 내가 나인데 주님 몸과 피를 마시는 사람은 겉은 나인데 속에는 내가 되는 것이죠. 고차원의 세계라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로 인하여 원동되어 사시는 것처럼 주님으로 인해 산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은 나로 사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먹습니까 먹기 위해 삽니까.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은 짐승 수준입니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살아서 뭐할려고 누구를 위하려고 가족들 먹여살리려고 좋은 겁니다. 가정의 가장이 주님 아니면 자기 전부를 바칠 곳이 가정입니다. 남편이 바칠 곳은 아내입니다. 두 번째가 남편의 주님 사랑을 위해서 자식 사랑을 합니다. 아내 남편 사랑 한 다음에 자식 사랑 합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내가 되어 사는 게 말합니다.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영생 가졌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참된 양식 음료를 마신다, 주님을 알게 된다. 내가 된다. 주로 인해 산다. 주님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참 귀한 겁니다. 내가 주님 안에 계신다. 그러면 내가 주님의 형상이 되는 겁니다. 몸과 피를 마시면 이런 사람이 된다. 이보다 더 귀한 거다. 다섯가지 기억하고 어떻게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
찬송: 57장, 47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3절 ~ 57절
전도서 7장을 한 번씩 복습을 하는데 피곤해서인지 암송 소리가 좀 작아지는 거 같은데 입으로 안 외우면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할 때 같이해서 주기도문처럼 십계명처럼 담아두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식을 두고 있습니다. 주님 몸과 피는 떡과 잔은 하나의 표시입니다. 진짜 떡과 피가 아닙니다. 표시하는 상징물이고 피를 표시하는 상징물입니다. 상징이란 안에 담아놓은 것을 표시를 상징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이 먹을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으면 이건 물질이기 때문에 쉽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면 되고 그러는데 안 그렇습니다. 주님이 몸과 사람으로 계신 주님이, 떡이다. 나를 먹으라고 하니까 이해를 도무지 못했습니다. 못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도 못했을 겁니다. 도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했으니까 알게 됩니다. 주님의 몸이 무엇이며 피가 무엇이다.
사람의 몸과 피는, 주님의 몸과 피는 꼭 같은 사람입니다.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몸과 피라는 것은 뭐하는 것이냐. 몸 안에 피가 있어야 정상적인 몸이 되는 거지요. 피가 있고 피가 돌아야 하는 거니까. 피와 몸은 하나입니다.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을 하고 눈으로 보고 활동을 하는 겁니다. 공부하고 일을하고 가정생활하고 활동하는 게 몸이고 피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활동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생애를 하는 주체가 몸이고 피고,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 무엇이 남는다고 했던가요. 자동차가 달려가면 무엇이 남습니까. 매연이 나고 연기가 나고 흔적이 남습니다.
사람이 하루 살면 하루 산 흔적이 남습니다. 일 년 살면 일 년 산 흔적이 남습니다. 이걸 이름의 발자취라고 합니다. 그 흔적 발자취 이력을 또 뭐라고 합니까. 그것을 생애인데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이름이라고 합니다. 생애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이름이 되고 생애가 추하면 추한 이름이 되는 것이고 사람이 한 평생 살고 나면 오래토록 사람에게 남는 겁니다. 물질을 손해볼찌라도 명애가 중요합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그 이름을 남기는데 그 이름을 남긴다는게 그 사람의 생애를 남기는 겁니다. 앞으로 잘 살아서 귀한 일꾼이 되면 은혜로운 분, 동생 잘 보살피고 믿음 좋고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됐다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게 이름입니다. 가인의 이름은 영원토록 인류 대대로 선악과 따먹고 자손 전부를 죽인 못난 조상, 하와, 마귀한테 속아서 선악과 따먹은 인류의 어머니. 다윗이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처 주기 전에 다윗은 이름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런데 목동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해졌습니다. 사울의 이름은 좋았는데 왕이 시기를 할 때부터 추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부터는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길 수 있습니다. 그게 피의 능력입니다. 어떻게 추하게 사라질찌라도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면 됩니다. 이게 능력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라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신 생애 발자취 흔적 이름을 가르켜 말하는 겁니다. 한 말로 말하면 대속의 생애다. 그게 공로고 이력이고 흔적이다.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 대속의 생애를 말하는 겁니다.
첫째, 어떻게 먹습니까. 지식으로 먹고 두 번째는 지식으로 가르켜서 하는 것을 생각으로 하고 연구해보고 따져들어갑니다. 주님의 대속의 생애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무엇이 있어야 생각이 가능합니까. 무엇이 바탕되고 전제가 되어야 그러는 건가요.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생각이 깊고 넓고 다양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둘로 먹는 것도 먹는 건데 세 번째. 진짜로 먹는 게 뭐지요.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동참하는 겁니다. 주님이 하신 그 걸음을 두고 걸어가는 겁니다. 내 몸과 피도 주님처럼 그렇게 찢고 흘리는 겁니다. 어떻게 주님이 사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루어지며 구원이 되느냐
우리의 죄를 주님이 짊어져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합니다. 한편으로 우리 죄를 지시고 죄짐을 다 지고 사셔야합니다. 죄 없는 생애로, 한 순간도 죄 없는 생애로,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늘만 바라보고 그렇게 사신 것입니다. 이걸 알고 우리도 각자 자기 현실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던지 직장에서던지 학교에서던지 혼자있든지 여럿있든지 고요한 곳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차를 타고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경우라도 눈으로 귀로 입으로 어떤 경우라도 죄는 짓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자기 현실을 살아가면 죄를 살아가는 것이 주님 몸과 피로 살아가는 겁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 신앙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 하는 분이 계십니다. 공자를 기준해서, 죄를 따지면 공자가 의인이고 부처의 기준에서 따지면 부처가 의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해도 성경 말씀에 어긋나면 그게 바로 죄가 됩니다. 그게 죄가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죄가 된다는 거기 때문에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걸 이기려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죄를 알아야합니다. 죄를 알려면 뭘 알아야합니까.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성경만 읽으라고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성경을 모르면 죄를 모릅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잘하고 자녀에게 잘하고 부부 사이 좋고 직장 생활 잘하고 착실하게 잘합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다 잘합니다. 그런데 한번씩 주일을 빼먹습니다. 사람 모르는 데에서 원망도 합니다. 대놓고 우상섬기진 않아도 세상 욕망이 큽니다. 그러면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도 죄인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짓는 게 실제로 주님 몸과 피를 먹는 생활입니다. 무엇이 죄 안 짓는 겁니까. 몸이, 피가 이것이 죄 안 짓는 겁니다. 한 시간을 살았으면 먹고 산 생활이 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게 하지 않았으면.
어떤 이를 만났을 때 내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면 주님의 몸과 피를 먹은 게 됩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 알고 두 번째는 아는 것을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입에 넣은 것을 씹고 떠 씹어서 음식을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면 피와 살이 됩니까. 안되지요. 씹었습니다. 안되지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삼켜야합니다. 알고 생각하고, 아는 게 입에 넣는 거라면 생각하는 것은 씹는 것입니다. 삼키면 피와 살이 되는 겁니다. 실행이 되는 겁니다. 저절로 되는 건데 참 알고 참 생각하면 실행은 저절로 되는 건데 먹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만드시려고 주님이 앞서서 그렇게 살아가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5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건설구원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그게 건설 구원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먹고 마시면 영생의 출발이 됩니다. 영생이란 생명의 활동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만큼 죄를 안 짓고 산 만큼 대속을 입은자로 산 만큼 영생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부활을 시키는데 사람은 부활했는데 주님의 몸과 피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만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 가지 중에서 천 가지는 주님의 몸과 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 천 가지는 부활 시키고 나머지는 부활 안 시킵니다. 그 부활 안 시키는 게 무엇이라고요. 부활 안 시키는 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무슨 부활이라고 그랬습니까. 기능 부활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기본 구원적인 부활은 사람의 형체 부활입니다. 몸과 마음의 부활입니다. 저는 공부도 못했지만 제 머리로 서울대는 못갔을 겁니다. 서울대 가는 사람은 눈이 몇 개입니까. 서울대 가는 사람은 눈이 몇 개 입니까. 두 개입니까. 귀는 코는요 입은요 발가락은요. 뭐가 다릅니까. 저는 왜 서울대를 못 갑니까. 그 사람과 나는 실력이 다르니까. 기능이 다르니까. 사람은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눈이 하나 더 있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물 잘나고 못난게 아닙니다. 그게 기능 부활입니다. 뭘로 결정됩니까. 기능 부활은 뭘로 결정된다고 합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겁니다. 그 부활은 껍데기 부활은 형체 부활. 육체는 다 같은 육체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다 다르지 않냐. 사람은 부활하는데 부활의 기능은 천차만별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부활된다고요, 주님의 몸을 먹었느냐 마셨느냐 그겁니다. 주님 대속을 살았냐. 거기서 기능이 결정되는 거지요. 수능 시험 성적은 수능 시험 치는 사람에게 결정 됩니까 3년 동안에 결정됩니까. 수능 시험 성적은 수능 시험 치는 날에 결정됩니까. 3년 동안의 결정에 납니까. 3년 기간에 하고 마지막날은 부활할 뿐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하고 새로 올게요. 말이 됩니까. 3년 동안 공부 안하고 뭐했냐.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느냐 직장 다니느냐 경제생활 다니느냐 죄를 짓지 말아라. 주님 대속을 입은 자로 살아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고, 고깃덩어리 뇌사상태같은 음식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에 살리리니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로다. 주일날 먹을 떡은 아주 작습니다. 무교병이라서 맛도 없습니다. 그거는 먹어봐야 양식이 안되겠죠. 상징일 뿐입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배는 불러도 인격의 양식은 되지 못합니다. 인격의 양식이라는 것은 그래서 고깃덩어리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어느집에 가니까 맛있더라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말단의 사람들입니다. 이왕 먹을 거 맛있는 걸 먹으면 괜찮지만 아무리 먹어도 고깃덩어리 살찝니다. 좀 수준 높은 사람은 몸 안 상할 만큼 먹으면 되지요. 먹는데 관심 가지는 이유는 백 목사님께서 살아생전에 가장 좋은 아내가 어떤 아내라고 했던가요. 하루 세 끼 밥 잘 챙겨주는 아내가 최고라고 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밥해 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눈치를 봐야합니다. 밥을 제대로 얻어먹으려면 눈치를 봐야한다. 먹는 데 관심을 안 가지지만 몸이 먹어야 마음이 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의 양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찾습니다. 위인전 같은 건 사람 수양에 좋은 것이 됩니다. 책을 읽으니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게 그 사람 이력이고 양식이 되는 거지요.
주님의 몸과 피는 우리가 알고 먹으면 참 사람의 양식이 되는 것이고 참된 양식 참된 음료입니다. 참 사람의 양식이라는 뜻인데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인격의 양식인데 하늘의 양식이라 그 뜻입니다. 하늘의 양식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습니다. 왜 신령합니까. 하늘에서 내려주셨기 때문에. 물질 만나고 물질 반석에서 물 마시고 다 죽었는데. 참된 음식입니다. 이 땅의 양식입니다. 그걸 먹으면 이 참 사람이 튼튼해집니다. 먹으면 그리 됩니다. 안 먹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 생각하고 살아야합니다. 안 살면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네 살을 먹고 네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 주님 안에 거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주님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고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내가 됩니다. 나는 나인데 내가 나인데 주님 몸과 피를 마시는 사람은 겉은 나인데 속에는 내가 되는 것이죠. 고차원의 세계라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로 인하여 원동되어 사시는 것처럼 주님으로 인해 산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은 나로 사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먹습니까 먹기 위해 삽니까.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은 짐승 수준입니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살아서 뭐할려고 누구를 위하려고 가족들 먹여살리려고 좋은 겁니다. 가정의 가장이 주님 아니면 자기 전부를 바칠 곳이 가정입니다. 남편이 바칠 곳은 아내입니다. 두 번째가 남편의 주님 사랑을 위해서 자식 사랑을 합니다. 아내 남편 사랑 한 다음에 자식 사랑 합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내가 되어 사는 게 말합니다.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영생 가졌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참된 양식 음료를 마신다, 주님을 알게 된다. 내가 된다. 주로 인해 산다. 주님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참 귀한 겁니다. 내가 주님 안에 계신다. 그러면 내가 주님의 형상이 되는 겁니다. 몸과 피를 마시면 이런 사람이 된다. 이보다 더 귀한 거다. 다섯가지 기억하고 어떻게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