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일 금밤
김동민2023-12-01조회 312추천 53
2023년 12월 1일 금밤
찬송: 29장, 138장
본문: 갈라디아서 4장 19절 ~ 20절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육의 자녀는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자녀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의 표본이라고 합니다. 늦게 부름을 받았지만 사도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에게 직접 부름받은 사람,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고 교회를 세운 세 가지 역할을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도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표본이고 충성도 바울은 많이 충성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충성하고 순교했지만 바울은 충성의 표본이고 목자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의 표본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저기 14절에 보면 귀하게 여기기 어려운 약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육체의 너희를 시험하는 거 시험에 들만한 육신의 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갈라디아 교인들이 알고도 업신여기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겠습니다만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키가 작았다지요.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 역사 중 위대한 사람 중 하나인데 저보다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강감찬 장군이 키가 작고 못생겼다나요.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얕보고 깔보게 되지요. 그런데 바울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똑똑한 인물인데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들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눈에 띄는 그런 게 있다는 뜻이지요. 바울을 보는 사람이 시험에 들만한 요소가 있는데 업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15절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목자입니다. 어머니입니다. 신앙의 어머니, 혈육으로는 피 한 방울 섞여있지 않은데 전도했고 길러서 기른 교회입니다. 외모로 볼 때 시험에 들 요소가 있는 바울을 하나남의 천사처럼 그리스도처럼 대접을 하고 자기 눈이라도 빼서 바울에게 줄 만큼 그런 관계가 되어있었습니다. 교인과 목회자의 관계는 이리 되어야 정상입니다. 목사에 따라 교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이게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이러는 게 표본입니다. 이리 되는 게 맞는 겁니다. 신앙의 어머니와 자녀 관계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깨닫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뜻이지요. 마음 자세 만큼은 목사님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서부교회는 5000명 즈음 안됐습니다. 50만명의 5000명이면 백분지 일이 되는 거지요. 물론 주일학교까지하면 안그렇지면 순복음교회에도 조용기 목사님 위해 목숨바칠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은 서부교회에는 그랬고 그게 표본입니다. 어머니따라서 자녀가 되는 것처럼 아버지는 영향을 못미치니까, 신앙의 어머니따라서 자녀가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목회자 따라서 교인들은 만들어지는 게 되는 거라서 거울이다라고 합니다. 이것도 절대는 아닙니다.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쌀자루인데 교인이 많으면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겁니다. 전체 분위기로, 그 중에서 신앙있는 사람들은 목자되신 목사님 위해서 내가 대신 죽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정상적입니다. 표본입니다. 19절보니까 나의 자녀들아 믿음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아서 육의 자녀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낳아 기른 믿음의 자녀입니다. 우리나라는 둘이고 통치는 하나지요.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있습니다.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만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나라의 통치가 다르면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갑니다.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만 지키는 것입니다. 자녀는 종류라 그럴까요 두 종류라 하기는 애매하고 하나는 육의 자녀가 있고 믿음의 자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의 자녀는 없습니다. 아들이 많아도 사사들도 그렇고 왕들 중에서 아들이 많으면 옛날부터 신앙도 세상도 자녀는 성경에서 전도서입니까 잠언입니까. 전투의 화살이라고 했죠. 그만큼 힘입니다. 옛날부터 자녀가 많으면 큰소리 치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이 몇입니까. 하나밖에 없지요. 이삭이 믿음의 계통으로 된 것이고, 육의 자녀가 아무리 많아도 믿음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못하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실패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육의 자녀가 없어도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 놓으면 귀한 사람 됩니다. 육의 자녀, 믿음의 자녀가 있으면 좋은데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게 좋습니다. 혈육관계라는 것은 세상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자녀가 참 많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자녀가 목표다를 기억합시다. 육의 자녀를 많이 낳아서 그 자녀를 믿음으로 잘 길러야 영원토록 보게되고 이 땅에서도 굉장한 힘이 되어집니다. 육의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길러놓으면 아주 큰 힘이 되어집니다.
부부라는 것은 전혀 남남인데 맺어지면 하나가 됩니다. 많은 부모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그 사람을 통해서 보내신 것은 특별히 네게 맡기니까 기르겠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자녀를 주셨으니까 육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서 사람으로 양육시켜 길러가는 게 부모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이걸 잘못하면은 책음을 잘못한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속이라는 것은 속이니까 마음이겠습니다. 생각도 속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깨달음도 있고 가치관도 있고 지식도 있고 욕심도 있고 인생관도 있고. 그 속에 일차적으로 몸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악습을 들어서 비정상이 됩니다. 마음은 몸을 따라 움직여야합니다. 마음이 혼자 움직이면 비정상이고 옛사람, 탈선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말은 모습,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인성이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전부 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지식이 갈라디아서 교인들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 너희들의 지식이 되기까지. 주격 지식이 되기까지. 지식으로 모든 것이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고 대속의 사랑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대로 살고 감격되어서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 다음 다섯 번째 구별하고 따지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런 거룩한 사람이 되기 까지. 그리고 피동되고 순종하는 의의 사람이 되기까지. 진실한 사람들이 되기까지. 종인데 자유하고 자유자니까 주권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피동되는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이게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이런 요소가 있지요. 제사장 선지자 왕.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조화시키기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서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서 연결이 되어서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말씀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읽어도 어두운 심경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겁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과 믿음의 자녀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왕이 되기까지 이게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다시 너희를 위하여 다시는 첫 번째란 말입니까. 두 번째라는 말이지요. 너희를 위하여 믿음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 부모가 자녀를 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 위하는게 어떤 것이 진정 위하는게 될까. 그래서 구원을 생각하면 어떨 때는 독해져야합니다. 아이가 악습에 붙들려있습니다. 악성과 악습은 주동자가 귀신입니다. 악성과 악습에 붙들린 것은 귀신이 들린겁니다. 지금 이 아이의 인식이 가치관이 틀렸구나. 귀신에게 붙들렸구나. 이걸 해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거기 약해지면 안되는거죠. 전투력이 나오게 되고 싸움이 되게 되는 겁니다.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위하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좋으니까 가짜 사랑이 많습니다. 전부 사랑 사랑. 저는 이 말씀 들을 때 엄청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 제가 설교를 했는데 마침 받은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이었고 그때 했던 찬송과와 성경을 기억합니다. 40년 전의 일인데 그때 했던 과정과 찬송가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대속의 사랑이라는 것이지 다른 것은 가짜인데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구원을 위하는 게 신앙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바울은 남자입니다. 해산을 못합니다. 믿음의 자녀를 했으니까 해산을 그렇게 했습니다. 여인들은 해산하는 수고를 할건데 요즘은 시설도 좋고 병원도 좋고 다 좋아서 옛날처럼 그러는 위험성이 없다고 하죠. 옛날에 해산하는 것은 목숨을 바꾸는 것입니다.
안 믿는 세상에도 아이 안 낳아도 아이를 낳는 가정은 보편적으로 행복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생겨지는 것인데 몸은 힘든데 마음은 기쁜 것이고 고생안하고 되는 수가 있습니까. 뭐든지 세상에서 하나 할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고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부자는 진수성찬을 차려도 입맛이없고 돈 때문에 잠을 못잡니다. 저절로 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이 낳는 해산, 믿음의 자녀 낳는 해산, 부모와 자녀관계 육의 자녀와 육의 부모는 하늘의 관계입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합니다. 육의 자녀가 많아도 하늘의 자녀를 만들지 못하면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자립하기 전까지는 엄마의 피와 땀과 수고를 아이들입니다. 자녀들입니다. 양떼는 목자없으면 살지도 못하고 자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못했는데 그게 원리입니다. 생각하면서 자녀들아 너희속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니 이게 우리가 가질 육의 자녀와 믿음의 자녀에 대한 자세입니다. 나는 얼마나 수고했는가. 83년도인가 설명하시면서 그런 말씀 하셨습니다. 나 백목사는 죽으면 눈물이 없을 것이다. 전부 구역장님들이 어머니들이고 그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그분은 참 목자여서 돌아가셨을 때 눈물 바다가 되었죠. 그때도 정말로 신앙을 지키고 그런 사람들이 안 웁니다. 저는 마음이 약해서 엄청 울었습니다. 온 교인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기 때문에 그런거지요.
해산하는 수고 우리는 얼마나 했는지 돌아봅시다. 저한테 하는 설교입니다. 탄식이 되어서 말씀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믿음의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하는데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
찬송: 29장, 138장
본문: 갈라디아서 4장 19절 ~ 20절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육의 자녀는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자녀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의 표본이라고 합니다. 늦게 부름을 받았지만 사도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에게 직접 부름받은 사람,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고 교회를 세운 세 가지 역할을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도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표본이고 충성도 바울은 많이 충성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충성하고 순교했지만 바울은 충성의 표본이고 목자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의 표본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저기 14절에 보면 귀하게 여기기 어려운 약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육체의 너희를 시험하는 거 시험에 들만한 육신의 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갈라디아 교인들이 알고도 업신여기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겠습니다만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키가 작았다지요.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 역사 중 위대한 사람 중 하나인데 저보다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강감찬 장군이 키가 작고 못생겼다나요.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얕보고 깔보게 되지요. 그런데 바울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똑똑한 인물인데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들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눈에 띄는 그런 게 있다는 뜻이지요. 바울을 보는 사람이 시험에 들만한 요소가 있는데 업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15절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목자입니다. 어머니입니다. 신앙의 어머니, 혈육으로는 피 한 방울 섞여있지 않은데 전도했고 길러서 기른 교회입니다. 외모로 볼 때 시험에 들 요소가 있는 바울을 하나남의 천사처럼 그리스도처럼 대접을 하고 자기 눈이라도 빼서 바울에게 줄 만큼 그런 관계가 되어있었습니다. 교인과 목회자의 관계는 이리 되어야 정상입니다. 목사에 따라 교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이게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이러는 게 표본입니다. 이리 되는 게 맞는 겁니다. 신앙의 어머니와 자녀 관계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깨닫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뜻이지요. 마음 자세 만큼은 목사님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서부교회는 5000명 즈음 안됐습니다. 50만명의 5000명이면 백분지 일이 되는 거지요. 물론 주일학교까지하면 안그렇지면 순복음교회에도 조용기 목사님 위해 목숨바칠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은 서부교회에는 그랬고 그게 표본입니다. 어머니따라서 자녀가 되는 것처럼 아버지는 영향을 못미치니까, 신앙의 어머니따라서 자녀가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목회자 따라서 교인들은 만들어지는 게 되는 거라서 거울이다라고 합니다. 이것도 절대는 아닙니다.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쌀자루인데 교인이 많으면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겁니다. 전체 분위기로, 그 중에서 신앙있는 사람들은 목자되신 목사님 위해서 내가 대신 죽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정상적입니다. 표본입니다. 19절보니까 나의 자녀들아 믿음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아서 육의 자녀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낳아 기른 믿음의 자녀입니다. 우리나라는 둘이고 통치는 하나지요.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있습니다.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만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나라의 통치가 다르면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갑니다.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만 지키는 것입니다. 자녀는 종류라 그럴까요 두 종류라 하기는 애매하고 하나는 육의 자녀가 있고 믿음의 자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의 자녀는 없습니다. 아들이 많아도 사사들도 그렇고 왕들 중에서 아들이 많으면 옛날부터 신앙도 세상도 자녀는 성경에서 전도서입니까 잠언입니까. 전투의 화살이라고 했죠. 그만큼 힘입니다. 옛날부터 자녀가 많으면 큰소리 치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이 몇입니까. 하나밖에 없지요. 이삭이 믿음의 계통으로 된 것이고, 육의 자녀가 아무리 많아도 믿음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못하게 되는 겁니다. 믿음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실패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육의 자녀가 없어도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 놓으면 귀한 사람 됩니다. 육의 자녀, 믿음의 자녀가 있으면 좋은데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게 좋습니다. 혈육관계라는 것은 세상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자녀가 참 많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자녀가 목표다를 기억합시다. 육의 자녀를 많이 낳아서 그 자녀를 믿음으로 잘 길러야 영원토록 보게되고 이 땅에서도 굉장한 힘이 되어집니다. 육의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길러놓으면 아주 큰 힘이 되어집니다.
부부라는 것은 전혀 남남인데 맺어지면 하나가 됩니다. 많은 부모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그 사람을 통해서 보내신 것은 특별히 네게 맡기니까 기르겠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자녀를 주셨으니까 육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서 사람으로 양육시켜 길러가는 게 부모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이걸 잘못하면은 책음을 잘못한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속이라는 것은 속이니까 마음이겠습니다. 생각도 속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깨달음도 있고 가치관도 있고 지식도 있고 욕심도 있고 인생관도 있고. 그 속에 일차적으로 몸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악습을 들어서 비정상이 됩니다. 마음은 몸을 따라 움직여야합니다. 마음이 혼자 움직이면 비정상이고 옛사람, 탈선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말은 모습,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인성이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전부 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지식이 갈라디아서 교인들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 너희들의 지식이 되기까지. 주격 지식이 되기까지. 지식으로 모든 것이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고 대속의 사랑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대로 살고 감격되어서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 다음 다섯 번째 구별하고 따지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런 거룩한 사람이 되기 까지. 그리고 피동되고 순종하는 의의 사람이 되기까지. 진실한 사람들이 되기까지. 종인데 자유하고 자유자니까 주권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피동되는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이게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이런 요소가 있지요. 제사장 선지자 왕.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조화시키기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서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서 연결이 되어서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말씀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읽어도 어두운 심경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겁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과 믿음의 자녀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왕이 되기까지 이게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다시 너희를 위하여 다시는 첫 번째란 말입니까. 두 번째라는 말이지요. 너희를 위하여 믿음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 부모가 자녀를 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 위하는게 어떤 것이 진정 위하는게 될까. 그래서 구원을 생각하면 어떨 때는 독해져야합니다. 아이가 악습에 붙들려있습니다. 악성과 악습은 주동자가 귀신입니다. 악성과 악습에 붙들린 것은 귀신이 들린겁니다. 지금 이 아이의 인식이 가치관이 틀렸구나. 귀신에게 붙들렸구나. 이걸 해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거기 약해지면 안되는거죠. 전투력이 나오게 되고 싸움이 되게 되는 겁니다. 구원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위하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좋으니까 가짜 사랑이 많습니다. 전부 사랑 사랑. 저는 이 말씀 들을 때 엄청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 제가 설교를 했는데 마침 받은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이었고 그때 했던 찬송과와 성경을 기억합니다. 40년 전의 일인데 그때 했던 과정과 찬송가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대속의 사랑이라는 것이지 다른 것은 가짜인데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구원을 위하는 게 신앙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바울은 남자입니다. 해산을 못합니다. 믿음의 자녀를 했으니까 해산을 그렇게 했습니다. 여인들은 해산하는 수고를 할건데 요즘은 시설도 좋고 병원도 좋고 다 좋아서 옛날처럼 그러는 위험성이 없다고 하죠. 옛날에 해산하는 것은 목숨을 바꾸는 것입니다.
안 믿는 세상에도 아이 안 낳아도 아이를 낳는 가정은 보편적으로 행복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생겨지는 것인데 몸은 힘든데 마음은 기쁜 것이고 고생안하고 되는 수가 있습니까. 뭐든지 세상에서 하나 할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고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부자는 진수성찬을 차려도 입맛이없고 돈 때문에 잠을 못잡니다. 저절로 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이 낳는 해산, 믿음의 자녀 낳는 해산, 부모와 자녀관계 육의 자녀와 육의 부모는 하늘의 관계입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합니다. 육의 자녀가 많아도 하늘의 자녀를 만들지 못하면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자립하기 전까지는 엄마의 피와 땀과 수고를 아이들입니다. 자녀들입니다. 양떼는 목자없으면 살지도 못하고 자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못했는데 그게 원리입니다. 생각하면서 자녀들아 너희속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니 이게 우리가 가질 육의 자녀와 믿음의 자녀에 대한 자세입니다. 나는 얼마나 수고했는가. 83년도인가 설명하시면서 그런 말씀 하셨습니다. 나 백목사는 죽으면 눈물이 없을 것이다. 전부 구역장님들이 어머니들이고 그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그분은 참 목자여서 돌아가셨을 때 눈물 바다가 되었죠. 그때도 정말로 신앙을 지키고 그런 사람들이 안 웁니다. 저는 마음이 약해서 엄청 울었습니다. 온 교인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기 때문에 그런거지요.
해산하는 수고 우리는 얼마나 했는지 돌아봅시다. 저한테 하는 설교입니다. 탄식이 되어서 말씀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믿음의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하는데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