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12-03조회 274추천 35
2023년 12월 3일 주일 오후
찬송: 29장, 158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찬송가는 제 2의 성경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100퍼센트는 다 아닌데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깨닫고 고백한 시들을 찬송가로 모은 게 찬송입니다. 현재 우리 찬송가가 201곡인가 그렇고 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늘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다 통일이 됩니다. 세상에 찬송가 중에도 인간적인 찬송가들은 아닌 게 많이 있는데 바로 된 찬송가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고 하늘을 소망하고 대속을 감사하고 구원을 힘쓰는 그런 걸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는 그냥하지말고 가사 하나하나를 따지지는 게 중요합니다. 가사의 뜻이 중요합니다. 신앙고백이고 그런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할 때는 그런 걸 다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대속 주입니다. 대속으로 우리의 주인 되신 분을 대속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라는 뜻이지요. 있는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걸 다 기울여서입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다 투자해서, 사람되신 하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주님이 당하신 질고는 대신 진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으며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이 얻어먹고 말씀을 들을 때 주님께 찬송하고 호산나를 외치다가 바뀌니까 전부 주님을 못 박아 죽이라고 한 사람들이 그 분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라는 곳은 참 제가 세상을 비판하니까 염세주의같은데 아닙니다. 그래도 알기는 바로 알아야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주인된 사람들이 타락했다는 뜻이고 이 세상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정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 생명없는 살아있는 거 같은데 죽은 거 같은 그런 걸로 가득찬게 세상인데 그게 전부니까 정상인줄 압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보니까 하나님이 버렸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요. 이건 예수님을 못박아죽인 그놈들이 그럽니다. 오늘날에는 타락한 믿는 사람, 우리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으로써 매를 맞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그랬습니까. 그들 때문에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비판하고 그게 바로 주님에게 하는 소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주님이 걸어가신 걸음이고 이게 누구의 걸음이라고 했습니까. 곧 우리의 걸음입니다. 신앙의 표본인데 원형입니다. 그러면 누가 찔리면 찔리는 것이 누구의 허물의 상함과 관계가 있습니까. 누가 징계를 받고 누가 채찍을 맞습니까. 어떤 반사 선생님이 전도하고 심방하고 모은 돈을 투자하고 불신 부모에게 욕을 먹고 뺨도 맞고 지금은 함부로 못 때리는데 과거에는 심방 갔다가 뺨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상하는 것이고 채찍을 맞는 것입니다. 구역장 집사님이 식구를 위해서 맞고 상할 때 식구들이 평화를 누리는 겁니다. 주님이 나신 걸음은 우리가 나신 걸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길로 갔습니다. 제길로 갑니다. 자식들도 제길로 갈라고 그러고 철이 없으니까 귀신에 붙들려 있으니까, 그 책임을 누구에게 맡기신거냐 각기 제 길로 갔는데 여호와께서 누구에게 담당시켰다고요 그게 누구지요 그가 본문의 주님인데 우리들입니다. 이걸 피하면 책임을 의무를 집니다. 본문의 의미를 기억하고 주님은 앞서가신 주님은 내가 딸아갈 걸음이고 내가 당할 고난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주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주님이 그 때문에 찔리고 상하고 그랬듯이 내 주변에 의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것을 행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나의 십자가다. 그게 말씀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대속의 권한 무슨 뜻이라고요,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대신 받는다는 뜻입니다. 대형 대행 대화친 우리 형벌을 대신 받아 대형 대신 행해 대행 화친을 대신해서 대화친 이게 대속의 생애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생애도 그리 사는 겁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짐승은 사람보다 못합니다. 본능적으로 사는 게 짐승입니다. 그게 짐승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식물도 그렇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낯서니까 대를 이어가는 게 생물의 충실한 본능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바쳤습니다. 하나의 식물이고 곤충이기 때문에 자기 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고 충실한 겁니다. 짐승만도 못한 것이고 벌레만도 못한 것입니다. 논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도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마음은 짐승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으로 가득찬 세상, 말이 과합니까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세상 보실 때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를 다녀봐라 진리를 찾는 자를 한 명만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가 없어서 다 망해버렸습니다.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어선 안됩니다. 적어도 우리는 백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같은 의인이 되진 못해도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합니다. 그렇게 애를 써야겠다 노력을 해야겠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종족 생물은 자기를 중심으로 삽니다. 자기 새끼도 자기 새끼니까 챙기지 남의 새끼는 챙기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자기만 보고 사는 게 사람입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다 망하는 겁니다. 나 아는 타를 위해 사는 게 생명의 피조물들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돌아가봅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천국 건설입니다. 천국을 건설하는데 어떻게 건설이 되어지느냐, 모든 우리나라 지자체 돈이 많으니까 공을 지어놓고 오만걸 다 만들어놓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안 오니까 돈만 버리는 게 많습니다.
학교를 지어놨는데 일 년에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많지요. 매년마다 폐교됩니다. 학교가 있는데 아이가 없으면 도태되는 겁니다. 그러면 저절로 모입니다. 고등학교도 1류 고등학교는 서로 갈려고 합니다. 왜 서울대는 서울대입니까. 서울대가 땅이 좋습니까 장소가 좋습니까 위치가 좋습니까.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천국이 천국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곳 이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것을 건설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 구원이다 그 뜻입니다. 목적의 내용 구원의 내용이 뭐냐 영광의 찬미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자입니다. 영원히 주시고 우리는 영원히 받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래 사람에게 주는 것이 성격이고 내역이고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받아먹고 주지 않으면 먹기만하고 배설안하면 죽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해야하고. 뿌리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을 먹고 가지로 뻗지 않으면 죽습니다. 가지는 잔가지에 줘야하고 나무옆에 줘야합니다. 그러니까 맺어집니다. 모든 생명은 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목에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씹으니까 맛없는 음식도 씹으면 달콤한 맛이 납니다. 그 다음에 목으로 넘기는데 걸리면 사람이 살겠습니까. 위장에는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 분산 시켜서 퍼져야 정상이 되는 겁니다. 그게 천국의 성격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무한히 주고 아랫사람에게 또 주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영광의 찬미 그게 구원의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천국 건설 다시 말하면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는 게 목적인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는데에는 희생이 들어야합니다. 그게 사랑에서 발현된 역사입니다. 이 희생을 가장 앞서가신 곳에 있으니까 우리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 위해서 앞서 위해 희생한 주님의 권한을 몇 가지롤 말했습니까. 세 가지, 첫째 도성인신, 둘째 대속의 생애 셋째 인성의 부활입니다.
말씀은 두 종류로 했습니다. 말과 말씀. 내가 하는 말이 있고 아버님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같습니까 다릅니다. 같은 종류입니다. 둘 다 말인데 내가 한 말은 말이고 아버님 말씀은 존대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데 사람에게 익었다고 할 때 그 말씀은 말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그게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진리는 말이고 말씀이고 이치고 그래서 무인격이라고 합니다. 사람보다 위에 있으나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도성인신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장의 말입니다. 한 없이 낮아지신 겁니다. 하늘같은 하나님이, 로마의 기독교를 박해하고 불태웠던 못된 황제 이름이 뭐지요. 네로라는 못된 황제가 수없는 사람을 죽여놓고 눈에서 피가 난다고 했습니다. 내려와야 같은 사람입니다. 한 없이 낮아지신 겁니다. 성령의 역사로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셔야합니다. 얼마나 낮아지신 겁니까. 스스로 내려가보면 압니다. 무릎 꿇기 쉽습니까. 비슷한 사람끼리도 뺨 한 대 치면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분해서 씩씩 거립니다. 자기보다 조금 낮은 사람이 깔보면 못사는 사람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게 성탄은 엎드려서 죄송해서 다 죽어야합니다. 그게 도성인신인데 소가 돼고 되지가 되고 바퀴가 돼고 견디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도성인신입니다. 이걸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월급 받아먹으려고 팔려고 그러지요. 200, 300, 400받을려고 온갖 뒷바라지 다 합니다. 자존심 안 상합니까. 돈 때문에 그러는데 썩을 것이고 한 사람의 생명 구원하기 위해서 낮아지는 건 귀하는 겁니다. 그게 주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도성인신입니다. 우리도 이 희생을 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업을하고 할 때 왜 이짓하고 있나 내 가족 먹여살려야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그런데 그걸로 극장다니고 여행하고 그게 다 좋은 줄 알고 어리석지를 말아야합니다. 현재 젊은 청년들 처녀보면 5년 전 사진과 지금 사진 보면 차이가 납니다. 지금 내 모습과 5년전 사진 비교하면 늙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얼굴이 쇠로 만들었으면 안 그러겠지. 잠깐 지나가는 겁니다. 거기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 형상 닮아가는 것이지 귀한 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71까지만 주시면 나도 67에 갈지 모르겠다 3년 남았습니다.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67이 되면 예수님 생애에 저는 33년 4개월입니까. 그게 뭐가 대수인가. 하루를 사는 게 천 년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시간을 일년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빈틈없이 그렇게 짜여진다는 겁니다. 얼마나 세밀하고 치밀하게 따지고 사는지.
주님의 어깨의 하나님의 목적이 달렸습니다. 무서운 짐을 지고 가는데 삐끗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조심조심 걸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택자 전부의 대속이 다 지워져 있습니다. 우주보다 더 큰 것을 할 때 분초마다 사셔야합니다. 그 세월을 사면서 그게 가볍습니까. 쉽습니까. 보이는 주님의 대속의 고난은 못 얻었습니다. 수 많은 죄인들이 십자가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속의 생애라는 것은 힘들고 고난스러웠을지 빗방울이 되기까지 나보다 더 잘될 사람 있으면 맡겨 주옵소서. 욥도 그렇게 살았다고 하지요.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젊은 사람 나이 많은 사람하고 이야기하다가 논리가 딸리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너 몇 살이냐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30대 청년들, 자랑스럽게 우리 30대 청년들 20대 결혼해서 넷 다섯 낳았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은 그렇다고 안심하고 중단하면 안되겠지요. 당신은 낳아봤습니까 이 시대에. 집안적으로 그만하면 효자지요.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떤 면에서 짐승보다 못하다. 미련한 사람으로 가득차있다. 그게 매를 맞아야하고 지나서 당해봐야하는 게 인간입니다. 환란을 주시고 맞아야 정신차리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선 사람들이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우리도 주님처럼 낮아야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의 생애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기회가 많을 때입니다. 하루가 지나갈수록 점점 줄어듭니다. 순간 순간 생애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이게 거룩입니다. 이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렇게 희생이 되어야 천국 건설이 되어지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피조물 전부 다 사명을 가졌습니다. 식물이 많고 식물이 살아가는 것이 땅의 사명이고 영광입니다. 식물은 동물에게 뜯어 먹히는게 영광입니다. 모든 존재 피조물이 반드시 도태되고 죽어집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건 전부다 상호보완 상호협조. 이게 공생공조입니다. 하늘의 태양도 지구상에 비춰줌으로 삽니다. 빛을 주고 볕을 주고 그거 안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따져보면 상호협조 상호보완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저만 생각하는 곳이 지옥이고 세상에 바로 경제가 발전하는데 살기 좋은데 지옥이 펼쳐집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고 복되게 되는 겁니다. 왜 존경하는 스승을 찾고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명을 담당하는 게 십자가입니다. 수고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기억하면서 천국 기억하시고 천국의 희생을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29장, 158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찬송가는 제 2의 성경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100퍼센트는 다 아닌데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깨닫고 고백한 시들을 찬송가로 모은 게 찬송입니다. 현재 우리 찬송가가 201곡인가 그렇고 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늘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다 통일이 됩니다. 세상에 찬송가 중에도 인간적인 찬송가들은 아닌 게 많이 있는데 바로 된 찬송가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고 하늘을 소망하고 대속을 감사하고 구원을 힘쓰는 그런 걸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는 그냥하지말고 가사 하나하나를 따지지는 게 중요합니다. 가사의 뜻이 중요합니다. 신앙고백이고 그런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할 때는 그런 걸 다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대속 주입니다. 대속으로 우리의 주인 되신 분을 대속 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라는 뜻이지요. 있는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걸 다 기울여서입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다 투자해서, 사람되신 하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주님이 당하신 질고는 대신 진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으며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이 얻어먹고 말씀을 들을 때 주님께 찬송하고 호산나를 외치다가 바뀌니까 전부 주님을 못 박아 죽이라고 한 사람들이 그 분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라는 곳은 참 제가 세상을 비판하니까 염세주의같은데 아닙니다. 그래도 알기는 바로 알아야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주인된 사람들이 타락했다는 뜻이고 이 세상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정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 생명없는 살아있는 거 같은데 죽은 거 같은 그런 걸로 가득찬게 세상인데 그게 전부니까 정상인줄 압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보니까 하나님이 버렸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요. 이건 예수님을 못박아죽인 그놈들이 그럽니다. 오늘날에는 타락한 믿는 사람, 우리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으로써 매를 맞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그랬습니까. 그들 때문에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비판하고 그게 바로 주님에게 하는 소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주님이 걸어가신 걸음이고 이게 누구의 걸음이라고 했습니까. 곧 우리의 걸음입니다. 신앙의 표본인데 원형입니다. 그러면 누가 찔리면 찔리는 것이 누구의 허물의 상함과 관계가 있습니까. 누가 징계를 받고 누가 채찍을 맞습니까. 어떤 반사 선생님이 전도하고 심방하고 모은 돈을 투자하고 불신 부모에게 욕을 먹고 뺨도 맞고 지금은 함부로 못 때리는데 과거에는 심방 갔다가 뺨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상하는 것이고 채찍을 맞는 것입니다. 구역장 집사님이 식구를 위해서 맞고 상할 때 식구들이 평화를 누리는 겁니다. 주님이 나신 걸음은 우리가 나신 걸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길로 갔습니다. 제길로 갑니다. 자식들도 제길로 갈라고 그러고 철이 없으니까 귀신에 붙들려 있으니까, 그 책임을 누구에게 맡기신거냐 각기 제 길로 갔는데 여호와께서 누구에게 담당시켰다고요 그게 누구지요 그가 본문의 주님인데 우리들입니다. 이걸 피하면 책임을 의무를 집니다. 본문의 의미를 기억하고 주님은 앞서가신 주님은 내가 딸아갈 걸음이고 내가 당할 고난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주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주님이 그 때문에 찔리고 상하고 그랬듯이 내 주변에 의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것을 행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나의 십자가다. 그게 말씀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대속의 권한 무슨 뜻이라고요,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대신 받는다는 뜻입니다. 대형 대행 대화친 우리 형벌을 대신 받아 대형 대신 행해 대행 화친을 대신해서 대화친 이게 대속의 생애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생애도 그리 사는 겁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짐승은 사람보다 못합니다. 본능적으로 사는 게 짐승입니다. 그게 짐승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식물도 그렇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낯서니까 대를 이어가는 게 생물의 충실한 본능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바쳤습니다. 하나의 식물이고 곤충이기 때문에 자기 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고 충실한 겁니다. 짐승만도 못한 것이고 벌레만도 못한 것입니다. 논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도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마음은 짐승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으로 가득찬 세상, 말이 과합니까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세상 보실 때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를 다녀봐라 진리를 찾는 자를 한 명만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가 없어서 다 망해버렸습니다.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어선 안됩니다. 적어도 우리는 백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같은 의인이 되진 못해도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합니다. 그렇게 애를 써야겠다 노력을 해야겠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종족 생물은 자기를 중심으로 삽니다. 자기 새끼도 자기 새끼니까 챙기지 남의 새끼는 챙기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자기만 보고 사는 게 사람입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다 망하는 겁니다. 나 아는 타를 위해 사는 게 생명의 피조물들의 사명입니다. 앞으로 돌아가봅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천국 건설입니다. 천국을 건설하는데 어떻게 건설이 되어지느냐, 모든 우리나라 지자체 돈이 많으니까 공을 지어놓고 오만걸 다 만들어놓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안 오니까 돈만 버리는 게 많습니다.
학교를 지어놨는데 일 년에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많지요. 매년마다 폐교됩니다. 학교가 있는데 아이가 없으면 도태되는 겁니다. 그러면 저절로 모입니다. 고등학교도 1류 고등학교는 서로 갈려고 합니다. 왜 서울대는 서울대입니까. 서울대가 땅이 좋습니까 장소가 좋습니까 위치가 좋습니까.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천국이 천국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곳 이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것을 건설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 구원이다 그 뜻입니다. 목적의 내용 구원의 내용이 뭐냐 영광의 찬미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자입니다. 영원히 주시고 우리는 영원히 받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래 사람에게 주는 것이 성격이고 내역이고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받아먹고 주지 않으면 먹기만하고 배설안하면 죽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해야하고. 뿌리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을 먹고 가지로 뻗지 않으면 죽습니다. 가지는 잔가지에 줘야하고 나무옆에 줘야합니다. 그러니까 맺어집니다. 모든 생명은 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목에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씹으니까 맛없는 음식도 씹으면 달콤한 맛이 납니다. 그 다음에 목으로 넘기는데 걸리면 사람이 살겠습니까. 위장에는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 분산 시켜서 퍼져야 정상이 되는 겁니다. 그게 천국의 성격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무한히 주고 아랫사람에게 또 주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영광의 찬미 그게 구원의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천국 건설 다시 말하면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는 게 목적인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는데에는 희생이 들어야합니다. 그게 사랑에서 발현된 역사입니다. 이 희생을 가장 앞서가신 곳에 있으니까 우리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 위해서 앞서 위해 희생한 주님의 권한을 몇 가지롤 말했습니까. 세 가지, 첫째 도성인신, 둘째 대속의 생애 셋째 인성의 부활입니다.
말씀은 두 종류로 했습니다. 말과 말씀. 내가 하는 말이 있고 아버님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같습니까 다릅니다. 같은 종류입니다. 둘 다 말인데 내가 한 말은 말이고 아버님 말씀은 존대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데 사람에게 익었다고 할 때 그 말씀은 말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그게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진리는 말이고 말씀이고 이치고 그래서 무인격이라고 합니다. 사람보다 위에 있으나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도성인신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장의 말입니다. 한 없이 낮아지신 겁니다. 하늘같은 하나님이, 로마의 기독교를 박해하고 불태웠던 못된 황제 이름이 뭐지요. 네로라는 못된 황제가 수없는 사람을 죽여놓고 눈에서 피가 난다고 했습니다. 내려와야 같은 사람입니다. 한 없이 낮아지신 겁니다. 성령의 역사로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셔야합니다. 얼마나 낮아지신 겁니까. 스스로 내려가보면 압니다. 무릎 꿇기 쉽습니까. 비슷한 사람끼리도 뺨 한 대 치면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분해서 씩씩 거립니다. 자기보다 조금 낮은 사람이 깔보면 못사는 사람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게 성탄은 엎드려서 죄송해서 다 죽어야합니다. 그게 도성인신인데 소가 돼고 되지가 되고 바퀴가 돼고 견디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도성인신입니다. 이걸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월급 받아먹으려고 팔려고 그러지요. 200, 300, 400받을려고 온갖 뒷바라지 다 합니다. 자존심 안 상합니까. 돈 때문에 그러는데 썩을 것이고 한 사람의 생명 구원하기 위해서 낮아지는 건 귀하는 겁니다. 그게 주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도성인신입니다. 우리도 이 희생을 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업을하고 할 때 왜 이짓하고 있나 내 가족 먹여살려야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그런데 그걸로 극장다니고 여행하고 그게 다 좋은 줄 알고 어리석지를 말아야합니다. 현재 젊은 청년들 처녀보면 5년 전 사진과 지금 사진 보면 차이가 납니다. 지금 내 모습과 5년전 사진 비교하면 늙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얼굴이 쇠로 만들었으면 안 그러겠지. 잠깐 지나가는 겁니다. 거기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 형상 닮아가는 것이지 귀한 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71까지만 주시면 나도 67에 갈지 모르겠다 3년 남았습니다.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67이 되면 예수님 생애에 저는 33년 4개월입니까. 그게 뭐가 대수인가. 하루를 사는 게 천 년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시간을 일년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빈틈없이 그렇게 짜여진다는 겁니다. 얼마나 세밀하고 치밀하게 따지고 사는지.
주님의 어깨의 하나님의 목적이 달렸습니다. 무서운 짐을 지고 가는데 삐끗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조심조심 걸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택자 전부의 대속이 다 지워져 있습니다. 우주보다 더 큰 것을 할 때 분초마다 사셔야합니다. 그 세월을 사면서 그게 가볍습니까. 쉽습니까. 보이는 주님의 대속의 고난은 못 얻었습니다. 수 많은 죄인들이 십자가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속의 생애라는 것은 힘들고 고난스러웠을지 빗방울이 되기까지 나보다 더 잘될 사람 있으면 맡겨 주옵소서. 욥도 그렇게 살았다고 하지요.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젊은 사람 나이 많은 사람하고 이야기하다가 논리가 딸리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너 몇 살이냐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30대 청년들, 자랑스럽게 우리 30대 청년들 20대 결혼해서 넷 다섯 낳았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은 그렇다고 안심하고 중단하면 안되겠지요. 당신은 낳아봤습니까 이 시대에. 집안적으로 그만하면 효자지요.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떤 면에서 짐승보다 못하다. 미련한 사람으로 가득차있다. 그게 매를 맞아야하고 지나서 당해봐야하는 게 인간입니다. 환란을 주시고 맞아야 정신차리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선 사람들이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 우리도 주님처럼 낮아야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의 생애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기회가 많을 때입니다. 하루가 지나갈수록 점점 줄어듭니다. 순간 순간 생애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이게 거룩입니다. 이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렇게 희생이 되어야 천국 건설이 되어지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피조물 전부 다 사명을 가졌습니다. 식물이 많고 식물이 살아가는 것이 땅의 사명이고 영광입니다. 식물은 동물에게 뜯어 먹히는게 영광입니다. 모든 존재 피조물이 반드시 도태되고 죽어집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건 전부다 상호보완 상호협조. 이게 공생공조입니다. 하늘의 태양도 지구상에 비춰줌으로 삽니다. 빛을 주고 볕을 주고 그거 안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따져보면 상호협조 상호보완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저만 생각하는 곳이 지옥이고 세상에 바로 경제가 발전하는데 살기 좋은데 지옥이 펼쳐집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고 복되게 되는 겁니다. 왜 존경하는 스승을 찾고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명을 담당하는 게 십자가입니다. 수고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기억하면서 천국 기억하시고 천국의 희생을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