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주일오후
김동민2021-03-07조회 334추천 31
2021년 3월 7일 주일 오후
본문 : 마태복음 4장 17절
예수님의 생애는 대속의 생애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생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도 국어사전 안 찾아봤지만, 어린 양을 찾아보면 예수님으로 뜨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양은 제사의 제물이고, 모든 제사가 성경에서 파생되고 이렇게 저렇게 바뀐건가 그렇게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공사가 없는 공생활 뿐이고, 사생활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봤을 때에는 3년 4개월만이 공생활이고 나머지는 준비 기간인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정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입니다.
회개는 있는 것보다 있다기보다 하는 것보다 아예 회개할 것이 없는 것이 좋습니다.
죄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죄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천국, 구원의 조건이라 그런데, 에덴동산에서는 회개가 필요없고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때문에 짐을 졌을 뿐이지.
에녹과 엘리아는 죽음을 보지 않았으니까 원죄가 없느냐, 그렇게 보면 큰일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죄가 있는 사람은 아담 하와 타락 이후로는 없습니다. 다만, 죽음이라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바로 데려갔을 뿐이지,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에녹과 엘리아도,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0년 동안 동행했으니 본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완전하니까 너도 완전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완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안 짓는다고 그러면 본인들이 죄를 안 짓는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생각하는겁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을 볼 때, 전지전능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이 되려면, 동행이라는 말은 쌍방이라는 말입니다. 쌍방향의 통행, 막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그것이 죄가 없는 사람의 모습이고, 그런 사람은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은 죄를 멸하는 능력이고 하늘에 소망하는 능력이 전지전능입니다.
죄를 멸하는 기능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하면 성경에 보니까,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려면 남에게 대접을 하라, 이것이 율법이고 선지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안 지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합니다. 그런데 모두 살펴보시지요. 저도 깨끗하게 할 때도 있고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삼손이 사자를 잡았는데, 거기에서 꿀이 나와서 먹고 그것을 수수께끼로 냈는데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밀들을 성도들은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동생 잘 살피고 집안일 잘하고 착하게 그러면 마음이 어떤가요?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간식도 사주고 싶고, 용돈도 올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동생하고 싸우고 그러면 혼내고 싶고 그것이 사랑의 작용입니다.
내가 어느정도로 살 때 어느정도로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을 살펴주십니다.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면 안다. 열매를 보니까 사과나무인지, 바나나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는 싫은데 우리 가족 때문에 예배당 가서 앉아는 볼게,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죄를 지은 값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죄를 안 지으면 가장 좋은데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회개를 하려면 많이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다윗, 사도 바울같은 분들도 죄를 지어서 죄가 아니고 드러나는 죄 그런 죄가 아니고, 그런 분들이 죄인 중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 기준을 주님에게서 있습니다. 주님과 자신을 비교를 해보니까 죄인인겁니다.
시험에서 80점을 맞으면 보통인데, 100점 맞는 사람에서 80점은 내가 한참 떨어졌네, 그런데 30점인 사람과 비교해보면 내가 낫다 이렇게 됩니다.
회개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죄의 값은 전부 몸의 질병, 마음의 질병. 어찌보면 죄송할 수 있으나 목회자에게 보고 근심걱정이 되어서 간병이 들면 백 목사님 판단은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반사 중에 한 사람이 안 보여서 물어봐서 입원했다 그러면 죄 지었구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물 흘리고 이를 갈고 금식 백날 천날 해 봐야 고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안 고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착각합니다. 잘못을 깨달으면 그게 회개인줄 압니다.
그런데 어리니까 기다려주십니다. 그런데 그게 장성한 신앙이 되어서도 그러면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동안에 많이 봐왔으니까, 고쳐야 쳐다보십니다. 그런데 며칠가는가 보자, 또 한달 가면 두 달가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능력이 보입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주님을 아는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왜 그렇게 주일학생을 좋아하시는지 느낍니다. 순수한 찬송입니다. 모르지만 천사들의 찬송입니다. 그 안에는 자기중심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일학생 찬송, 저 어린 아이들이 저 모습으로 계속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영감의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함으로 점점 더 깨끗해집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4장 17절
예수님의 생애는 대속의 생애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생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도 국어사전 안 찾아봤지만, 어린 양을 찾아보면 예수님으로 뜨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양은 제사의 제물이고, 모든 제사가 성경에서 파생되고 이렇게 저렇게 바뀐건가 그렇게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공사가 없는 공생활 뿐이고, 사생활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봤을 때에는 3년 4개월만이 공생활이고 나머지는 준비 기간인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정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입니다.
회개는 있는 것보다 있다기보다 하는 것보다 아예 회개할 것이 없는 것이 좋습니다.
죄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죄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천국, 구원의 조건이라 그런데, 에덴동산에서는 회개가 필요없고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때문에 짐을 졌을 뿐이지.
에녹과 엘리아는 죽음을 보지 않았으니까 원죄가 없느냐, 그렇게 보면 큰일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죄가 있는 사람은 아담 하와 타락 이후로는 없습니다. 다만, 죽음이라는 형태를 보이지 않고 바로 데려갔을 뿐이지,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에녹과 엘리아도,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0년 동안 동행했으니 본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완전하니까 너도 완전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완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안 짓는다고 그러면 본인들이 죄를 안 짓는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생각하는겁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을 볼 때, 전지전능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이 되려면, 동행이라는 말은 쌍방이라는 말입니다. 쌍방향의 통행, 막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그것이 죄가 없는 사람의 모습이고, 그런 사람은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은 죄를 멸하는 능력이고 하늘에 소망하는 능력이 전지전능입니다.
죄를 멸하는 기능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하면 성경에 보니까,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려면 남에게 대접을 하라, 이것이 율법이고 선지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안 지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합니다. 그런데 모두 살펴보시지요. 저도 깨끗하게 할 때도 있고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삼손이 사자를 잡았는데, 거기에서 꿀이 나와서 먹고 그것을 수수께끼로 냈는데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밀들을 성도들은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동생 잘 살피고 집안일 잘하고 착하게 그러면 마음이 어떤가요?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간식도 사주고 싶고, 용돈도 올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동생하고 싸우고 그러면 혼내고 싶고 그것이 사랑의 작용입니다.
내가 어느정도로 살 때 어느정도로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을 살펴주십니다.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면 안다. 열매를 보니까 사과나무인지, 바나나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는 싫은데 우리 가족 때문에 예배당 가서 앉아는 볼게,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죄를 지은 값은 반드시 따라옵니다.
죄를 안 지으면 가장 좋은데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회개를 하려면 많이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다윗, 사도 바울같은 분들도 죄를 지어서 죄가 아니고 드러나는 죄 그런 죄가 아니고, 그런 분들이 죄인 중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 기준을 주님에게서 있습니다. 주님과 자신을 비교를 해보니까 죄인인겁니다.
시험에서 80점을 맞으면 보통인데, 100점 맞는 사람에서 80점은 내가 한참 떨어졌네, 그런데 30점인 사람과 비교해보면 내가 낫다 이렇게 됩니다.
회개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죄의 값은 전부 몸의 질병, 마음의 질병. 어찌보면 죄송할 수 있으나 목회자에게 보고 근심걱정이 되어서 간병이 들면 백 목사님 판단은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반사 중에 한 사람이 안 보여서 물어봐서 입원했다 그러면 죄 지었구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물 흘리고 이를 갈고 금식 백날 천날 해 봐야 고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안 고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착각합니다. 잘못을 깨달으면 그게 회개인줄 압니다.
그런데 어리니까 기다려주십니다. 그런데 그게 장성한 신앙이 되어서도 그러면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동안에 많이 봐왔으니까, 고쳐야 쳐다보십니다. 그런데 며칠가는가 보자, 또 한달 가면 두 달가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능력이 보입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주님을 아는 겁니다.
백 목사님께서 왜 그렇게 주일학생을 좋아하시는지 느낍니다. 순수한 찬송입니다. 모르지만 천사들의 찬송입니다. 그 안에는 자기중심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일학생 찬송, 저 어린 아이들이 저 모습으로 계속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영감의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함으로 점점 더 깨끗해집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