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2-주전(마13:53-58)
믿음을 깨뜨리는 자기 주관2013-06-02조회 507추천 44
본문: 마13:53-58
제목: 믿음을 깨뜨리는 자기 주관
요점:
1. 본문 내용
1)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신 곳은? ( 고향 ) 교회
2)예수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 놀라 )가로되
3)그들이 놀란 것은? ( 말씀 )에 놀랐고, 말씀의 ( 지혜 )와 ( 능력 )에 놀라
4)놀랐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며 보인 반응은? ( 배척 )한지라
5)놀랐던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은? 자기들의 ( 주관 ) 때문
2. 예수님의 말씀
1)예수님은? ( 하나님 )이 사람 되신 분
2)따라서 예수님 말씀은? ( 하나님 )의 말씀
3)고향 사람들이 놀란 것은 ( 말씀 )에 놀랐고, 말씀의 ( 지혜 )와 ( 능력 )에 놀란 것
4)그들이 놀란 것은? ( 하나님 ) 의 은혜, ( 하나님 )의 역사
5)놀랐던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한 것은? 자기들 ( 주관 )으로 돌아갔기 때문
3. 믿음을 깨뜨리는 원수, 자기 주관
1)오늘 우리에게 전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 신구약 성경 ) 말씀, 복음
2)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일군들은?
①( 성부 ) ②( 성자 ) ③( 성령 )
④( 진리 ) ⑤( 성도들 ) ⑥( 중생된 영 ) ⑦( 만물 )
3)말씀이 들려지고 이해되고 느껴지는 것은? ( 하나님 )의 역사, 하나님의 ( 은혜 )
4)믿음을 빼앗아 가는 원수는? ( 자기 주관 )
5)자기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말씀을 ( 보수 )하는 것
4. 사람의 자기 주관
1)주관이란? ( 자기 )라는 뜻, 하나님 말씀과 배치되는 ( 자기 )
2)즉 ( 자기 ) 생각, ( 자기 ) 견해, ( 자기 ) 주장 등을 말하는 것
3)사람의 주관은 ( 세상 )에서 형성되는 것, 보고 듣고 배우고 접촉하고 경험 체험에서
4)따라서 ( 주관 )과 ( 세상 )은 하나, 자기 주관 부인은 곧 세상 부인
5)신앙의 가장 큰 원수는 ( 주관 ), 하나님과 배치되는 (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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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주전
본문: 마태복음 13:53-58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 17장 5절 이하의 말씀에서, 믿음이 자라는 방편,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따라가야 그게 믿음이다 다시 말하면 행함이 따라가야 비로소 참된 믿음이다 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자는 크게 세가지로 지난 주일에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본문은 달라도 지난 주 말씀과 바로 연결되어지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같이 잘 들어보도록 합시다.
여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마태복음 13장 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는데 어디에서 가르쳤는고 하니, 성경 한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13장 1절에 우리 학생들 같이 보시면,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셨는데 어디서 가르쳤습니까? 학생들이 한번 대답해 보실까요? 어디서 가르치셨습니까? 좀 크게 말씀해보실까요 학생들? 학생들 좀 크게 말씀해보실까요? 어디서 가르치셨습니까? 옳지. 바닷가.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세 번째는 겨자씨 한 알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네 번째는 누룩 비유를 말씀하셨고 그리고 다섯 번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여섯 번째는 값진 진주 비유를 말씀하셨고, 일곱 번째는 그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한 장에서 일곱가지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우리에게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53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일곱가지 비유로 하나님의 구원도리를 많이 가르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사, 바닷가, 가르치던 바닷가를 떠나서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본문에, 학생들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질문을 제가 드리면 좀 크게 대답을 합니다 학생들은. 어디로 돌아가셨나요?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예수님이 고향에 가셔서 고향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이라는 말은, 교회라 그 뜻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섬기는, 예배 드리는 오늘 교회가 그때 회당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셨는데, 고향에 가셨는데, 예수님이 고향에 가신 것은, 사람들이 타지에서 타향에서 생활하고 오래 지내다보면 고향 생각이 나는게 있습니다. 그런 걸 가르켜 향수라 그리 말하지요. 예수님이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에 가고 싶어서, 향수가 나서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셨는가.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 걸음 걸음 하나 하나, 생각 하나 하나는 전부 빠짐없이 전부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하신 예수님의 모든 생앱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언행심사는, 말 한마디도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로 하신 것이 없고, 전부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하신 것이 예수님의 생앱니다.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신 것은, 고향 생각이 나서 가신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고향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향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향에 가니까 예수님을 어릴 적부터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수님 말씀을 교회에 모여서 듣습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보니까,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 말씀이 너무 은혜롭고 말씀의 능력이 커서 말씀을 듣는 고향 교회 많은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보니까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말씀에 지혜와 그 말씀의 능력에 그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그때에 많은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말씀을 가르치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가르친 그 말씀도, 논리가 정연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다 맞고, 또 아주 겉으로 보기에는 은혜로운 그런 말씀들인데, 듣는 사람들이 들어볼 때,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 속에 들어있지를 않아서, 듣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감각이 없는, 마치 그냥 강의 하듯이 그래 하는데,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 말씀 속에 하늘의 구원 도리가 지혜가 가득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 듣는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지는 아주 능력 있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고향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놀라고, 말씀에 지혜와 능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어디에 놀랐다고요? 말씀에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씀과 근본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차원이 완전히 다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작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 범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작은 만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없고, 빈틈없고, 부족함이 없고,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하늘의 말씀입니다. 영생을 두고 영원토록 영생을 두고 영생에 가는 거기 있어서 조금도 빠짐이 없고 빈틈이 없고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하고 전지전능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할 때,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에 놀랐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것은 그들이 놀랐는데, 그 놀라게 된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역사고, 하나님의 은혭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들려진 것도 은혜고, 듣고 놀란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놀랐는데, 그 뒤에 보니까. 처음에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놀랐고, 그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다가 그리고 난 다음에, 여기 본문에 보니까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절.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어떻게 했다고요? 어떻게 했습니까? 배척을 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고향 사람들이 듣고 나서 좀 지나고 나서 보니까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한 이 사람이 누구냐?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는 우리와 함께 있는 그 사람 그들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의 인간면을 본 겁니다. 예수님의 인간면을 보는데, 그들이 아는, 자기들이 보고, 함께 지내고 듣고 알던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배척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향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니까, 고향 사람들이 듣고 예수님 말씀에 놀랐고 그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깜짝 놀랐다가, 놀랐던 그것을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을 붙들고 계속 나가면 그게 점점 쌓여져서 많아지고 커지고 강해지게 되는데, 들었던 말씀 그 말씀 속에 있는 지혜와 능력은 버리고, 예수님의, 자기들이 아는 인간적인 면을 보고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누구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맞습니까 틀립니까? 고향 사람들이 아는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입니다. 틀립니까 맞습니까? 맞습니다. 또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 형제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이들이 예수님의 육의 형제들입니다. 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 알고 나서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놀랄 때는 어디서 놀랐습니까? 놀랄 때는 말씀을 듣고 놀랐고, 그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이 있으니까 거기 감동 받아서 놀랐으니까 이거는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말씀을 들었고, 듣고 보니까 지혜와 능력이 깨달아졌고, 깨달아지니까 깜짝 놀랐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놀란 말씀과 지혜와 능력은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보고 판단한, 자기들이 아는 대로 예수님을 보고, 판단하고,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 자기들 알고 있는 그 예수님을 보고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들이 아는 대로는 목수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형제지만은, 실제 예수님은 누구냐?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입니다.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이 고향 사람들은 그거는 몰랐고, 그거는 보지 않았고, 믿지 않았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 자기들 주관과,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자기들 주관. 기존 지식. 선입적인 관념. 어려운 말들인데, 어렵다고 기억치 아니하면 평생 자라지 않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들어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연구해서 자기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 주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예수님. 사람의 몸을 입고, 목수 요셉의 아들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그 예수님을 보고, 그 예수님의 근본이신 하나님에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사람 되신, 자기들 구주 메시야로 오신 그 면은 그들이 보지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고,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기존 지식과 선입적인 관념과 자기들 주관, 그것 때문에 놀랐던 말씀도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도 다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배척을 하게 된 겁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속에는 지혜와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 말씀에 놀랐다가 그 놀란 말씀을 던져 버리고 배척은 왜 했느냐? 그것은 자기들 주관 때문에.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다시 한 번 또 복습해봅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말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말의 권위는 그 말 하는 그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말의 권위가 좌우가 되어집니다. 말단 9급 공무원의 말하고, 그 기관의 기관장의 말하고는 비중이 틀립니다. 한 도시에 시장의 말하고 대통령의 말은 말의 비중이 완전히 틀립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냥 다니는 회사 신입 사원의 말하고 그 대기업을 일군 회장의 말은 그 비중이 완전히 틀립니다.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말의 권위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예수님은 고향 사람이 알기에, 유대인들이 알기에, 예수님은 사람인 목수 직업을 가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근본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입니다. 사람 되신 그 예수님은, 사람은 사람인데 그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예수님의 인성도, 그의 모든 예수님의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그 분이 생각하는 것, 그 분이 판단하는 것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과 동거동행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예수님의 말 한마디도 없고, 하나님과 끊어진 예수님의 눈동자 움직임도 없고, 숨소리 한 번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순전히 하나님과 동거동행이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막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전지전능의 말씀입니다. 완전의 말씀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모든 것을 다 계산된, 흠과 점이 없는, 부족함이 없는, 치우침이 없는, 완전한 말씀. 바로 영생이 되어지는 말씀. 이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말들이 많습니다. 말은, 말을 하면 말이고, 말을 글로 쓰면 책이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있고, 수많은 서적들이 도서관마다, 학교마다, 서점마다 꽉 들어차서, 대형 서점에 가면, 눈이 어지러울 만큼 수많은, 수만권, 수십만권의 책들이 전국 곳곳에, 세계 곳곳에 꽉 들어차있습니다. 그 책을 사람이 평생이 아니라 몇평생을 읽어도 다 못 읽고 다 알지 못합니다.
그 모든 책은 전부 사람의 말들입니다. 하루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자기딴에 잘난 사람들, 유식한 사람들, 많이 아는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학원에서, 또 어느 기관에서, 곳곳에서 잘난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지요. 하루에도 말은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좀 고급에 속한, 인간의 근본과 인간의 행복과 불행과 인간의 내세를 안다는 그런 종교가들, 철학자들 그들의 말들이 있는데, 어떤 류의, 어떤 사람의 말이든지 사람의 말은 그 말 자체가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말이고, 그 말은 전부 다 허점 투성이고, 빈투성이고 그 말은 전부다 자기도 바로 알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무책임의 말이요, 추측과 추론의 말로 가득찬 것이 온 세상에 가득찬 인간의 말입니다.
세상에 점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보다 좀 더 올라가서 앞날을 예언하는 예언가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예언을 해서 앞으로 우리 나라에 1년 있다가 큰 흉년이 닥칠 겁니다. 그 흉년의 정도는 심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제법 될 겁니다. 말을 했는데, 1년 지나고 그 말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한번 됐습니다. 또 그 사람이 앞으로 한 달 뒤면은 홍수가 나서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했는데, 홍수가 났습니다. 큰 피해 입었습니다. 또 한달 쯤 더 지나서 우리나라에 한 달 뒤에 큰 지진이 나서 도시가 제법 많이 파괴 될 겁니다 예언했는데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몇 번 예언하고 몇 번 맞았습니까? 세 번 예언하고 세 번을 맞았습니다. 그러고나면 그 사람의 말의 권위는 어느 정도 될까요? 그 사람의 말의 권위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무시 못 할 겁니다. 세계에서 톱 뉴스로 나와서 어느 나라에 어느 사람이 이런 이런 이런 예언을 했는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고, 세 번만 맞추고 나면 그 사람은 세계에 유명한 인물이 되고, 역사적인 예언가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말의 권위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단 세 번을 정확하게 맞춘 사람이 육천년 역사에 있는가? 하나님의 종들의 예언을 빼놓고 이 세상에 그런 권위 있는 말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 번 정확하게 맞춘 것도 없을 것이고, 한번 맞춘 것도 추측 추론으로 말했는데, 소 뒷발로 쥐 잡는다는 것처럼 어쩌다 맞아 떨어진 것이지 그게 그 말대로 다 맞지를 않습니다. 근접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다 놀라는 것이 인간의 말의 권위의 수준이고, 그 정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그 누구의 말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말, 책임질 수 있는 말, 정확한 참된 진리와 진실의 말은 이 세상에는 없는 세상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꼭 같은 성경 말씀이라도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수님이 전했으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의 몸을 입은 인성도 하나님과 완전 동거동행이니까 하나니까 그 전한 말씀도 막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말씀은 완전의 말씀이고, 전지전능의 말씀이고, 영원불변의 말씀이라.
그 고향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권위를 다 알았느냐? 다 깨달았느냐? 느꼈느냐? 어림도 없습니다. 그 예수님 말씀의 권위의, 능력의, 지혜의, 억억만분의 일도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한 부분만 들었고, 알았고, 느꼈는데 그들이 깜짝 놀랐고, 그 부분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능과 인간의 노력으로는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하나님이 잠깐 그들에게 필요해서 빛을 주셔서, 그들이 들으니까 들려졌고, 깨달아졌고, 느껴져서 깜짝 놀랐으니까 그들의 놀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참으로 잘 놀랐습니다. 말씀에 놀랐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역사로 그들이 놀랐습니다.
그 놀란 것을 그들은 버리지 말고 놀랐으니까 이것을 간직을 하고 붙들고 보수하고 연구하고 이걸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 놀란 그 놀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말씀과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그 놀람을, 인간의 요소, 인간의 역사가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그 빛으로 놀란 그 놀람을 한꺼번에 몽땅 도적해가고 까먹는 도적놈 원수가 그들 속에 들어있었으니 그 원수가 무엇이냐. 그 도적놈, 그 원수가 바로 이 사람이 누구냐? 이 말씀을 전하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았느냐? 그 누이들이 지금 우리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던 기존 지식과 선입적인 관념과 자기들의 주관으로 돌아가버리고 나니까 놀랐던 말씀도, 놀랐던 지혜와 능력도 다 까먹어버리고, 그 생명의 말씀, 영생의 완전의 무한의 전지전능의 그 말씀 전하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기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배척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따라해보실까요. “믿음을 깨뜨리는 원수.” “믿음을 도적하는 원수.” 그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보십시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읽고 보고 있는 신구약 성경 66권 이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예수님이 전하시는 오늘의 예수님이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말씀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알기 어렵고 느끼고 깨닫기 어렵지만은 이 하나님의 말씀, 구원 도리 말씀, 영생의 말씀, 생명의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시는 활동하고 계시는 일꾼들이 몇 인가 하면은,
첫째는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듣고 깨닫게 하시려고, 깨닫고 실감하고 간직하게 하시려고,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고 노력을 하고 계시고, 또 두 번째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고 계시고 성자 예수님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신 성령 하나님이 감화 감동의 역사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실감케 하시기 위해서, 감화 감동으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알기 어렵지만은 진리가 역사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게 하려고 역사하고 계시고, 또 우리보다 먼저 깨닫고 먼저 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진 하늘에 있는 이 성도들, 이 땅에 있는 우리보다 앞선 신앙의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고. 그래서 반사 선생님들이 자기 주일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많이 노력을 하는 이것도 그 중의 한 역사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가, 성령이, 그다음에 진리가 그리고 다섯 번째 성도들이 그리고 여섯 번째는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 하신다 그랬으니까 우리 속에 있는 우리 주격된, 중생된 영이, 성령과 함께 우리 심신에게 이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성경을 읽게 하려고, 써보게 하려고, 생각해보게 하려고, 깨닫게 해보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고 중생된 영이.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는 만물이 탄식하고 고대하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겁니다. 몇 가집니까?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때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서 일곱 일꾼들이 오늘도, 이 자리에도 역사하고 계시는데 이게 들려지지 않으면 이 일곱 역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심히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읽어지고 예배시간에 말씀이 귀에 들려오고, 들리는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는 그 말씀이 자기에게 실감이 되고 느껴져서 작은 놀람이라도 놀라는 그런 역사가 있다면, 말씀이 읽어지고 귀에 들려지고 알아지는 이런 역사가 있다면 그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일곱 일꾼들의 역삽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말씀하시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복이 있고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주의 말씀은 영생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곱 일꾼의 역사로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들려지는, 깨달아지는, 느껴지는 이 하나님의 영생의 완전의 전지전능의 무한의 능력의 이 말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이 말씀을 보수하고 지켜나가야 되겠는데, 요 말씀을 한꺼번에 빼앗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막아버리고 깨닫는 것을 막아버리고 실감하는 것을 막아버리고 실행케 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말씀을 듣지 못하게 깨닫지 못하게, 또 믿지 못하게 실행치 못하게 막아버리는, 내 귀를 막고, 내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고, 실행하는 것을 막아버리게 만드는 도적놈이 있으니 그 도적놈이 누구냐? 그 도적놈이 바로 자기라는 겁니다. 자기 주관이라는 겁니다. 자기 주관.
자기가 들어서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이 누구냐.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이 아는 예수님. 그들 자기 인간들만으로 아는 예수님.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신앙양심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하늘의 음성, 하늘의 역사, 하늘의 그 은혜 그것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이거는 끊어버리고 막아버리고 자기들만 아는, 인간 자기만 알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걸 가지고 예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은 사람의 말이다, 목수의 아들의 말이다 하고 주관으로 돌아가버리니까 하늘의 역사로 깜짝 놀랐던 그 놀람이 한순간에 다 없어지고 구주메시야를 배척해버리고 마지막에는 구주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는 이런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게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들 속에 있는 그들의 주관. 한번 더 해보십시다. “자기 주관” “기존 지식” “선입적인 관념”. 그 놈이 들어서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자기 주관이 무엇일까? 주관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자기라는 뜻입니다. 주관이라는 말은 자기라는 뜻입니다. 자기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고 배치되는 그 자기를 가리켜서 자기 주관이라 그리 말합니다. 주관이라 말은 자기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그 자기, 그 자기가 주관인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자기 생각 혹은 자기 견해 혹은 자기 주장. 이런 자기. 그것이 자긴데, 그 자기가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게, 깨닫지 못하게, 실행치 못하게 막아버리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럼 그 자기 주관이라는 것은 자기라는 말인데, 그 자기라는 말은, 자기라는 사람은, 사람은 다 각각 다르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평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욕심이 다르고, 취미가 다릅니다.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이 다르고, 산골에서 사는 사람의 생각이 다릅니다 시야가 다르고. 가난한 집에서 산 사람의 시야가 다르고, 부잣집에서 산 사람의 시야가 다릅니다. 좁은 곳에서 사는 사람과 넓은 곳에 사는 사람이 다릅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그 환경, 어릴 적부터 살면서 듣고, 보고, 접하고, 배우고, 경험하고, 체험한 그런 것들이 자기를 만드는 겁니다.
많이 들으면 들어간 것이 많고, 운동을 많이 하면 몸은 튼튼한데, 운동한다고 듣지 못했으면 머릿속에 들기는 어렵습니다. 많이 듣고 배워서 머릿속에 든 것은 많은데, 몸을 운동하지 않았으면 몸은 약할 수 있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주로 그 사람의 성품이고, 마음의 요소가 주를 이루고, 그 마음의 요소 따라서 살아온 자기 몸에 익어진 습성이 자기라는 것인데, 그 자기라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 환경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라는 주관이 만들어지고 형성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이라는 말은 자기라는 말이고, 그 자기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만들어지고 형성되어진 그 자긴데,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만드는 것은 환경이고, 주변이고 형편이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고 그러므로 자기와 세상은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자기와 세상은 뗄 수 없는 하납니다.
그래서 요 자기를, 자기를,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주관 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막바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적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이, 고향 사람들이 자기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동시에 구주 메시야도 배척을 했던 것처럼, 오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 읽을 때, 이 말씀을 연구하고 생각할 때, 이 세상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듣고, 보고, 경험하고 체험해서 만들어진 인간만으로, 인간 세상만으로 만들어진, 자기 주관, 자기 견해, 자기 주장, 자기 아는 그 지식의 정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결국 그거는 자기 주관이기 때문에 하늘의 이 말씀은 자기에게 들려지지를 아니합니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를 아니합니다.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부인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지게 되는 겁니다. 작은 말씀 하나라도, 하늘의 말씀, 생명의 말씀, 영생의 완전의 무한의 이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이 말씀은 들려지지 아니하고 귀에는 들어와도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를 아니합니다.
하나만 말해도,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 지었다 이거는 인간의 육천년 역사에, 인간의 과학에, 이치에 상식에 어디가도 아무리 살펴봐도 따져봐도 이거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결단코. 인간으로써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고, 인간의 이치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다 지었다는 이 말씀은, 인간 자기를 부인하고, 기존 지식을 부인하고, 이 세상을 부인할 때에 비로소 들려지고 믿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갔다는 이 말씀은, 이 사실은, 역사에 인간 역사에 안되는 일이고, 과학적으로 안되는 일이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상식에 안 맞는 말입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으니까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믿어지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말씀을 막아버리고, 말씀을 깨달아지는 것을 막아버리고, 믿음을 빼앗아가는 도적이 누구냐? 그게 바로 자기 주관입니다. 성경대로의 자기가 아니고 세상으로 만들어진 자깁니다. 그 자기가 바로 우리 믿음을, 우리를 성장시키는 이걸 막아버리는 가장 큰 도적이며 원수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믿음을 깨뜨리는, 믿음을 빼앗아가는, 원수 자기 주관.” 오늘 말씀의 제목인데, 원수라 그러면 너무 강할 것 같아서 요걸 뺐지만은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겁니다. 믿는 사람의 믿음을 깨뜨리고, 믿음을 빼앗아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도적이 누구냐. 원수가 누구냐. 그게 바로 자기 주관. 자기라는 겁니다.
이 자기가 무엇인지 오후예배시간에 좀 더 세밀하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믿음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되지 아니합니다. 부인해야 될 자기. 나는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보고 자기를 부인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믿음을 깨뜨리는 자기 주관
요점:
1. 본문 내용
1)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신 곳은? ( 고향 ) 교회
2)예수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 놀라 )가로되
3)그들이 놀란 것은? ( 말씀 )에 놀랐고, 말씀의 ( 지혜 )와 ( 능력 )에 놀라
4)놀랐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며 보인 반응은? ( 배척 )한지라
5)놀랐던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은? 자기들의 ( 주관 ) 때문
2. 예수님의 말씀
1)예수님은? ( 하나님 )이 사람 되신 분
2)따라서 예수님 말씀은? ( 하나님 )의 말씀
3)고향 사람들이 놀란 것은 ( 말씀 )에 놀랐고, 말씀의 ( 지혜 )와 ( 능력 )에 놀란 것
4)그들이 놀란 것은? ( 하나님 ) 의 은혜, ( 하나님 )의 역사
5)놀랐던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한 것은? 자기들 ( 주관 )으로 돌아갔기 때문
3. 믿음을 깨뜨리는 원수, 자기 주관
1)오늘 우리에게 전하시는 예수님 말씀은? ( 신구약 성경 ) 말씀, 복음
2)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일군들은?
①( 성부 ) ②( 성자 ) ③( 성령 )
④( 진리 ) ⑤( 성도들 ) ⑥( 중생된 영 ) ⑦( 만물 )
3)말씀이 들려지고 이해되고 느껴지는 것은? ( 하나님 )의 역사, 하나님의 ( 은혜 )
4)믿음을 빼앗아 가는 원수는? ( 자기 주관 )
5)자기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말씀을 ( 보수 )하는 것
4. 사람의 자기 주관
1)주관이란? ( 자기 )라는 뜻, 하나님 말씀과 배치되는 ( 자기 )
2)즉 ( 자기 ) 생각, ( 자기 ) 견해, ( 자기 ) 주장 등을 말하는 것
3)사람의 주관은 ( 세상 )에서 형성되는 것, 보고 듣고 배우고 접촉하고 경험 체험에서
4)따라서 ( 주관 )과 ( 세상 )은 하나, 자기 주관 부인은 곧 세상 부인
5)신앙의 가장 큰 원수는 ( 주관 ), 하나님과 배치되는 (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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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2 주전
본문: 마태복음 13:53-58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 17장 5절 이하의 말씀에서, 믿음이 자라는 방편,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따라가야 그게 믿음이다 다시 말하면 행함이 따라가야 비로소 참된 믿음이다 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자는 크게 세가지로 지난 주일에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본문은 달라도 지난 주 말씀과 바로 연결되어지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말씀을 같이 잘 들어보도록 합시다.
여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마태복음 13장 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는데 어디에서 가르쳤는고 하니, 성경 한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13장 1절에 우리 학생들 같이 보시면,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셨는데 어디서 가르쳤습니까? 학생들이 한번 대답해 보실까요? 어디서 가르치셨습니까? 좀 크게 말씀해보실까요 학생들? 학생들 좀 크게 말씀해보실까요? 어디서 가르치셨습니까? 옳지. 바닷가.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비유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세 번째는 겨자씨 한 알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네 번째는 누룩 비유를 말씀하셨고 그리고 다섯 번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말씀하셨고, 또 여섯 번째는 값진 진주 비유를 말씀하셨고, 일곱 번째는 그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한 장에서 일곱가지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우리에게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53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일곱가지 비유로 하나님의 구원도리를 많이 가르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사, 바닷가, 가르치던 바닷가를 떠나서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본문에, 학생들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질문을 제가 드리면 좀 크게 대답을 합니다 학생들은. 어디로 돌아가셨나요?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예수님이 고향에 가셔서 고향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이라는 말은, 교회라 그 뜻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섬기는, 예배 드리는 오늘 교회가 그때 회당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셨는데, 고향에 가셨는데, 예수님이 고향에 가신 것은, 사람들이 타지에서 타향에서 생활하고 오래 지내다보면 고향 생각이 나는게 있습니다. 그런 걸 가르켜 향수라 그리 말하지요. 예수님이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에 가고 싶어서, 향수가 나서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셨는가.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 걸음 걸음 하나 하나, 생각 하나 하나는 전부 빠짐없이 전부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하신 예수님의 모든 생앱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언행심사는, 말 한마디도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로 하신 것이 없고, 전부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을 따라서 동하고 정하신 것이 예수님의 생앱니다.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신 것은, 고향 생각이 나서 가신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고향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향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향에 가니까 예수님을 어릴 적부터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수님 말씀을 교회에 모여서 듣습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보니까,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 말씀이 너무 은혜롭고 말씀의 능력이 커서 말씀을 듣는 고향 교회 많은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보니까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말씀에 지혜와 그 말씀의 능력에 그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그때에 많은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말씀을 가르치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가르친 그 말씀도, 논리가 정연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다 맞고, 또 아주 겉으로 보기에는 은혜로운 그런 말씀들인데, 듣는 사람들이 들어볼 때,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 속에 들어있지를 않아서, 듣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감각이 없는, 마치 그냥 강의 하듯이 그래 하는데,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 말씀 속에 하늘의 구원 도리가 지혜가 가득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 듣는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지는 아주 능력 있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고향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놀라고, 말씀에 지혜와 능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어디에 놀랐다고요? 말씀에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씀과 근본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차원이 완전히 다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작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 범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작은 만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없고, 빈틈없고, 부족함이 없고,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하늘의 말씀입니다. 영생을 두고 영원토록 영생을 두고 영생에 가는 거기 있어서 조금도 빠짐이 없고 빈틈이 없고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하고 전지전능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할 때,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에 놀랐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것은 그들이 놀랐는데, 그 놀라게 된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역사고, 하나님의 은혭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들려진 것도 은혜고, 듣고 놀란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놀랐는데, 그 뒤에 보니까. 처음에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놀랐고, 그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다가 그리고 난 다음에, 여기 본문에 보니까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55절.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어떻게 했다고요? 어떻게 했습니까? 배척을 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놀라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고향 사람들이 듣고 나서 좀 지나고 나서 보니까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한 이 사람이 누구냐?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는 우리와 함께 있는 그 사람 그들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의 인간면을 본 겁니다. 예수님의 인간면을 보는데, 그들이 아는, 자기들이 보고, 함께 지내고 듣고 알던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배척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향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니까, 고향 사람들이 듣고 예수님 말씀에 놀랐고 그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깜짝 놀랐다가, 놀랐던 그것을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을 붙들고 계속 나가면 그게 점점 쌓여져서 많아지고 커지고 강해지게 되는데, 들었던 말씀 그 말씀 속에 있는 지혜와 능력은 버리고, 예수님의, 자기들이 아는 인간적인 면을 보고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누구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맞습니까 틀립니까? 고향 사람들이 아는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입니다. 틀립니까 맞습니까? 맞습니다. 또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 형제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이들이 예수님의 육의 형제들입니다. 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 알고 나서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놀랄 때는 어디서 놀랐습니까? 놀랄 때는 말씀을 듣고 놀랐고, 그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이 있으니까 거기 감동 받아서 놀랐으니까 이거는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말씀을 들었고, 듣고 보니까 지혜와 능력이 깨달아졌고, 깨달아지니까 깜짝 놀랐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놀란 말씀과 지혜와 능력은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보고 판단한, 자기들이 아는 대로 예수님을 보고, 판단하고,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예수님, 자기들 알고 있는 그 예수님을 보고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들이 아는 대로는 목수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형제지만은, 실제 예수님은 누구냐?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입니다.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이 고향 사람들은 그거는 몰랐고, 그거는 보지 않았고, 믿지 않았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 자기들 주관과,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자기들 주관. 기존 지식. 선입적인 관념. 어려운 말들인데, 어렵다고 기억치 아니하면 평생 자라지 않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들어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연구해서 자기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 주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예수님. 사람의 몸을 입고, 목수 요셉의 아들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그 예수님을 보고, 그 예수님의 근본이신 하나님에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사람 되신, 자기들 구주 메시야로 오신 그 면은 그들이 보지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고,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기존 지식과 선입적인 관념과 자기들 주관, 그것 때문에 놀랐던 말씀도 말씀 속에 지혜와 능력도 다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배척을 하게 된 겁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속에는 지혜와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 말씀에 놀랐다가 그 놀란 말씀을 던져 버리고 배척은 왜 했느냐? 그것은 자기들 주관 때문에.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다시 한 번 또 복습해봅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말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말의 권위는 그 말 하는 그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말의 권위가 좌우가 되어집니다. 말단 9급 공무원의 말하고, 그 기관의 기관장의 말하고는 비중이 틀립니다. 한 도시에 시장의 말하고 대통령의 말은 말의 비중이 완전히 틀립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냥 다니는 회사 신입 사원의 말하고 그 대기업을 일군 회장의 말은 그 비중이 완전히 틀립니다.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말의 권위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예수님은 고향 사람이 알기에, 유대인들이 알기에, 예수님은 사람인 목수 직업을 가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근본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입니다. 사람 되신 그 예수님은, 사람은 사람인데 그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예수님의 인성도, 그의 모든 예수님의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그 분이 생각하는 것, 그 분이 판단하는 것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과 동거동행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예수님의 말 한마디도 없고, 하나님과 끊어진 예수님의 눈동자 움직임도 없고, 숨소리 한 번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순전히 하나님과 동거동행이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막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전지전능의 말씀입니다. 완전의 말씀입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모든 것을 다 계산된, 흠과 점이 없는, 부족함이 없는, 치우침이 없는, 완전한 말씀. 바로 영생이 되어지는 말씀. 이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말들이 많습니다. 말은, 말을 하면 말이고, 말을 글로 쓰면 책이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있고, 수많은 서적들이 도서관마다, 학교마다, 서점마다 꽉 들어차서, 대형 서점에 가면, 눈이 어지러울 만큼 수많은, 수만권, 수십만권의 책들이 전국 곳곳에, 세계 곳곳에 꽉 들어차있습니다. 그 책을 사람이 평생이 아니라 몇평생을 읽어도 다 못 읽고 다 알지 못합니다.
그 모든 책은 전부 사람의 말들입니다. 하루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자기딴에 잘난 사람들, 유식한 사람들, 많이 아는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학원에서, 또 어느 기관에서, 곳곳에서 잘난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지요. 하루에도 말은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좀 고급에 속한, 인간의 근본과 인간의 행복과 불행과 인간의 내세를 안다는 그런 종교가들, 철학자들 그들의 말들이 있는데, 어떤 류의, 어떤 사람의 말이든지 사람의 말은 그 말 자체가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말이고, 그 말은 전부 다 허점 투성이고, 빈투성이고 그 말은 전부다 자기도 바로 알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무책임의 말이요, 추측과 추론의 말로 가득찬 것이 온 세상에 가득찬 인간의 말입니다.
세상에 점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보다 좀 더 올라가서 앞날을 예언하는 예언가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예언을 해서 앞으로 우리 나라에 1년 있다가 큰 흉년이 닥칠 겁니다. 그 흉년의 정도는 심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제법 될 겁니다. 말을 했는데, 1년 지나고 그 말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한번 됐습니다. 또 그 사람이 앞으로 한 달 뒤면은 홍수가 나서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했는데, 홍수가 났습니다. 큰 피해 입었습니다. 또 한달 쯤 더 지나서 우리나라에 한 달 뒤에 큰 지진이 나서 도시가 제법 많이 파괴 될 겁니다 예언했는데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몇 번 예언하고 몇 번 맞았습니까? 세 번 예언하고 세 번을 맞았습니다. 그러고나면 그 사람의 말의 권위는 어느 정도 될까요? 그 사람의 말의 권위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무시 못 할 겁니다. 세계에서 톱 뉴스로 나와서 어느 나라에 어느 사람이 이런 이런 이런 예언을 했는데 정확하게 들어맞았다고, 세 번만 맞추고 나면 그 사람은 세계에 유명한 인물이 되고, 역사적인 예언가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말의 권위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단 세 번을 정확하게 맞춘 사람이 육천년 역사에 있는가? 하나님의 종들의 예언을 빼놓고 이 세상에 그런 권위 있는 말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 번 정확하게 맞춘 것도 없을 것이고, 한번 맞춘 것도 추측 추론으로 말했는데, 소 뒷발로 쥐 잡는다는 것처럼 어쩌다 맞아 떨어진 것이지 그게 그 말대로 다 맞지를 않습니다. 근접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다 놀라는 것이 인간의 말의 권위의 수준이고, 그 정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그 누구의 말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말, 책임질 수 있는 말, 정확한 참된 진리와 진실의 말은 이 세상에는 없는 세상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꼭 같은 성경 말씀이라도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수님이 전했으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의 몸을 입은 인성도 하나님과 완전 동거동행이니까 하나니까 그 전한 말씀도 막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말씀은 완전의 말씀이고, 전지전능의 말씀이고, 영원불변의 말씀이라.
그 고향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권위를 다 알았느냐? 다 깨달았느냐? 느꼈느냐? 어림도 없습니다. 그 예수님 말씀의 권위의, 능력의, 지혜의, 억억만분의 일도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한 부분만 들었고, 알았고, 느꼈는데 그들이 깜짝 놀랐고, 그 부분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능과 인간의 노력으로는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하나님이 잠깐 그들에게 필요해서 빛을 주셔서, 그들이 들으니까 들려졌고, 깨달아졌고, 느껴져서 깜짝 놀랐으니까 그들의 놀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참으로 잘 놀랐습니다. 말씀에 놀랐고,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역사로 그들이 놀랐습니다.
그 놀란 것을 그들은 버리지 말고 놀랐으니까 이것을 간직을 하고 붙들고 보수하고 연구하고 이걸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 놀란 그 놀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말씀과 말씀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던 그 놀람을, 인간의 요소, 인간의 역사가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그 빛으로 놀란 그 놀람을 한꺼번에 몽땅 도적해가고 까먹는 도적놈 원수가 그들 속에 들어있었으니 그 원수가 무엇이냐. 그 도적놈, 그 원수가 바로 이 사람이 누구냐? 이 말씀을 전하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았느냐? 그 누이들이 지금 우리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들이, 자기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던 기존 지식과 선입적인 관념과 자기들의 주관으로 돌아가버리고 나니까 놀랐던 말씀도, 놀랐던 지혜와 능력도 다 까먹어버리고, 그 생명의 말씀, 영생의 완전의 무한의 전지전능의 그 말씀 전하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기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배척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따라해보실까요. “믿음을 깨뜨리는 원수.” “믿음을 도적하는 원수.” 그게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보십시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읽고 보고 있는 신구약 성경 66권 이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예수님이 전하시는 오늘의 예수님이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말씀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알기 어렵고 느끼고 깨닫기 어렵지만은 이 하나님의 말씀, 구원 도리 말씀, 영생의 말씀, 생명의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서, 일을 하고 계시는 활동하고 계시는 일꾼들이 몇 인가 하면은,
첫째는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듣고 깨닫게 하시려고, 깨닫고 실감하고 간직하게 하시려고,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고 노력을 하고 계시고, 또 두 번째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고 계시고 성자 예수님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신 성령 하나님이 감화 감동의 역사로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실감케 하시기 위해서, 감화 감동으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알기 어렵지만은 진리가 역사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게 하려고 역사하고 계시고, 또 우리보다 먼저 깨닫고 먼저 이 말씀의 사람이 되어진 하늘에 있는 이 성도들, 이 땅에 있는 우리보다 앞선 신앙의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고. 그래서 반사 선생님들이 자기 주일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많이 노력을 하는 이것도 그 중의 한 역사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가, 성령이, 그다음에 진리가 그리고 다섯 번째 성도들이 그리고 여섯 번째는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 하신다 그랬으니까 우리 속에 있는 우리 주격된, 중생된 영이, 성령과 함께 우리 심신에게 이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들려주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성경을 읽게 하려고, 써보게 하려고, 생각해보게 하려고, 깨닫게 해보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고 중생된 영이.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는 만물이 탄식하고 고대하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겁니다. 몇 가집니까?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때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서 일곱 일꾼들이 오늘도, 이 자리에도 역사하고 계시는데 이게 들려지지 않으면 이 일곱 역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심히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읽어지고 예배시간에 말씀이 귀에 들려오고, 들리는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는 그 말씀이 자기에게 실감이 되고 느껴져서 작은 놀람이라도 놀라는 그런 역사가 있다면, 말씀이 읽어지고 귀에 들려지고 알아지는 이런 역사가 있다면 그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일곱 일꾼들의 역삽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말씀하시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복이 있고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주의 말씀은 영생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곱 일꾼의 역사로 우리에게 한번이라도 들려지는, 깨달아지는, 느껴지는 이 하나님의 영생의 완전의 전지전능의 무한의 능력의 이 말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이 말씀을 보수하고 지켜나가야 되겠는데, 요 말씀을 한꺼번에 빼앗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막아버리고 깨닫는 것을 막아버리고 실감하는 것을 막아버리고 실행케 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말씀을 듣지 못하게 깨닫지 못하게, 또 믿지 못하게 실행치 못하게 막아버리는, 내 귀를 막고, 내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고, 실행하는 것을 막아버리게 만드는 도적놈이 있으니 그 도적놈이 누구냐? 그 도적놈이 바로 자기라는 겁니다. 자기 주관이라는 겁니다. 자기 주관.
자기가 들어서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이 누구냐.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이 아는 예수님. 그들 자기 인간들만으로 아는 예수님.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신앙양심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하늘의 음성, 하늘의 역사, 하늘의 그 은혜 그것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이거는 끊어버리고 막아버리고 자기들만 아는, 인간 자기만 알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걸 가지고 예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은 사람의 말이다, 목수의 아들의 말이다 하고 주관으로 돌아가버리니까 하늘의 역사로 깜짝 놀랐던 그 놀람이 한순간에 다 없어지고 구주메시야를 배척해버리고 마지막에는 구주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는 이런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게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들 속에 있는 그들의 주관. 한번 더 해보십시다. “자기 주관” “기존 지식” “선입적인 관념”. 그 놈이 들어서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자기 주관이 무엇일까? 주관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자기라는 뜻입니다. 주관이라는 말은 자기라는 뜻입니다. 자기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고 배치되는 그 자기를 가리켜서 자기 주관이라 그리 말합니다. 주관이라 말은 자기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그 자기, 그 자기가 주관인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자기 생각 혹은 자기 견해 혹은 자기 주장. 이런 자기. 그것이 자긴데, 그 자기가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게, 깨닫지 못하게, 실행치 못하게 막아버리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럼 그 자기 주관이라는 것은 자기라는 말인데, 그 자기라는 말은, 자기라는 사람은, 사람은 다 각각 다르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평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욕심이 다르고, 취미가 다릅니다.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이 다르고, 산골에서 사는 사람의 생각이 다릅니다 시야가 다르고. 가난한 집에서 산 사람의 시야가 다르고, 부잣집에서 산 사람의 시야가 다릅니다. 좁은 곳에서 사는 사람과 넓은 곳에 사는 사람이 다릅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그 환경, 어릴 적부터 살면서 듣고, 보고, 접하고, 배우고, 경험하고, 체험한 그런 것들이 자기를 만드는 겁니다.
많이 들으면 들어간 것이 많고, 운동을 많이 하면 몸은 튼튼한데, 운동한다고 듣지 못했으면 머릿속에 들기는 어렵습니다. 많이 듣고 배워서 머릿속에 든 것은 많은데, 몸을 운동하지 않았으면 몸은 약할 수 있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주로 그 사람의 성품이고, 마음의 요소가 주를 이루고, 그 마음의 요소 따라서 살아온 자기 몸에 익어진 습성이 자기라는 것인데, 그 자기라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 환경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라는 주관이 만들어지고 형성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이라는 말은 자기라는 말이고, 그 자기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만들어지고 형성되어진 그 자긴데,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만드는 것은 환경이고, 주변이고 형편이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고 그러므로 자기와 세상은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자기와 세상은 뗄 수 없는 하납니다.
그래서 요 자기를, 자기를,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주관 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자기라는 것은 막바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적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이, 고향 사람들이 자기 주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동시에 구주 메시야도 배척을 했던 것처럼, 오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 읽을 때, 이 말씀을 연구하고 생각할 때, 이 세상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듣고, 보고, 경험하고 체험해서 만들어진 인간만으로, 인간 세상만으로 만들어진, 자기 주관, 자기 견해, 자기 주장, 자기 아는 그 지식의 정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결국 그거는 자기 주관이기 때문에 하늘의 이 말씀은 자기에게 들려지지를 아니합니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를 아니합니다.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부인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지게 되는 겁니다. 작은 말씀 하나라도, 하늘의 말씀, 생명의 말씀, 영생의 완전의 무한의 이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이 말씀은 들려지지 아니하고 귀에는 들어와도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느껴지지를 아니합니다.
하나만 말해도,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 지었다 이거는 인간의 육천년 역사에, 인간의 과학에, 이치에 상식에 어디가도 아무리 살펴봐도 따져봐도 이거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결단코. 인간으로써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고, 인간의 이치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다 지었다는 이 말씀은, 인간 자기를 부인하고, 기존 지식을 부인하고, 이 세상을 부인할 때에 비로소 들려지고 믿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갔다는 이 말씀은, 이 사실은, 역사에 인간 역사에 안되는 일이고, 과학적으로 안되는 일이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상식에 안 맞는 말입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으니까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믿어지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말씀을 막아버리고, 말씀을 깨달아지는 것을 막아버리고, 믿음을 빼앗아가는 도적이 누구냐? 그게 바로 자기 주관입니다. 성경대로의 자기가 아니고 세상으로 만들어진 자깁니다. 그 자기가 바로 우리 믿음을, 우리를 성장시키는 이걸 막아버리는 가장 큰 도적이며 원수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믿음을 깨뜨리는, 믿음을 빼앗아가는, 원수 자기 주관.” 오늘 말씀의 제목인데, 원수라 그러면 너무 강할 것 같아서 요걸 뺐지만은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겁니다. 믿는 사람의 믿음을 깨뜨리고, 믿음을 빼앗아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도적이 누구냐. 원수가 누구냐. 그게 바로 자기 주관. 자기라는 겁니다.
이 자기가 무엇인지 오후예배시간에 좀 더 세밀하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믿음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되지 아니합니다. 부인해야 될 자기. 나는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보고 자기를 부인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