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일 금밤
2026년 10월 2일 금밤
찬송: 195장
본문: 사무엘하 18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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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떠나버리면 하나님을 향하는 중심하는 거기서 벗어나버리면 신앙생활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경외하고 기쁘시게 하고, 순종하는 생활이 사람을 통해서 되어진다는 것도 해야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사람과 관계에서 이어지는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사물, 사물이란, 일과 물질을 말합니다. 물건들, 사건들과 해당된 물질들을 가르켜서 사물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을 잘못 접촉을 하고 취급을 하면 실패가 됩니다. 사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잘못되면 실패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데 돈 관리를 잘해야합니다. 함부로 버려서도 안되고 따라가서도 안되고 참 잘 관리해야합니다. 일도 여러 가지 일들도 잘 상대해야합니다. 그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거 같은데요, 사람이 믿는 사람이 객관에서 가장 밑에 있는 게 물질입니다.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과에 있어서 생겨지는 것이고 모든 사물을 상대할 때 사람을 생각해야합니다. 사람을 떼어놓고 사물을 먼저 앞세우면 순서가 틀리고 아래 위가 달라졋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 잃고 돈 얻으면 손해가 되는 겁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중요해도, 말씀을 손해보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사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높였고 롯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앞섰고 축복보다 사물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만큼으로 정해놓으신 넣어주신 그런 위치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겁니다. 돌은 돌만큼 모래를 모래 만큼 흙은 흙만큼 참새는 참새만큼 생물은 생물만큼 무생물은 무생물만큼 존재로써의 의미는 거기서 부여된 가치, 위치, 이런 게 다 정해져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해놓으신 그 위치와 가치를 타락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개는 개만큼의 위치와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처럼 상대하면 어지럽히는 죄가 됩니다. 개를 사랑하는 거 아끼는 거 좋습니다. 그런데 그 개를 사람처럼 그렇게 상대하면 곤란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서 그 존재들에게 부여해놓으신 위치와 가치가 있고 그만큼 상대하는 것이고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게 되는 겁니다. 제일 밑에는 물질 사람 진리 하나님 그래서 새벽에 여호와의 계약을 공부하면서 계약은 말씀입니다. 무인격의 인치입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말씀은 탈선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 겁니다. 바로 살아나가면 되는 겁니다. 오늘 밤 말씀은 염두해두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에 있어서 내가 섬기는 사람, 내가 믿는 하나님을 섬기는 그 생활에 사람은 나를 기준해서, 윗사람이 있고 선생님, 존경하는 분, 나와 같은 사람, 나보다 아래 사람, 이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습니다. 나보다 위에 있는 분, 또 나와 같은 수평의 사람들 아래 사람들이 있는데 믿는 사람이 자기가 관계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를 모시는 스승, 존경하는 분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고, 모든 게 점령이 다 되고 그럴 때 다윗이 잠잠해져가는 과정에 집에 큰 풍파가 일어나지요. 형제간에 생깁니다. 압살롬이 쫓겨났다가 돌아오 압살롬이 이를 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마음을 도적질해서 억울함을 소송하러 온 사람이 있으면 손을 붙들고 어떻게 오셨나, 참 딱합니다. 그런데 왕이 당신의 사정들 사람은 안 세웠습니다 하고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위에서 세력을 키워가지고, 반역을 일으키지요, 백성들이 다 갔고, 압살롬을 따라간 중에서 치명적으로 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 인물이 누구지요, 그 인물이 아히도벨이라는 전략가입니다.
뿔은 나무 숲에서 뿔이 딱 걸려버렸습니다. 내가 자랑하던 뿔 때문에 죽는구나, 다리를 나를 살렸는데 뿔 때문에 죽는구나. 자기의 최대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고, 장점이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압살롬이 그래서, 워낙 잘난 인물이니까 해마다 머리가 잘랐다, 그 머리가 딱 걸려서 죽어버렸습니다. 나귀를 타고 싸우는데 압살롬이 달렸습니다. 요압이 나무에 달렸습니다 하니까 당장에 처죽이지 뭐하러 보고하냐, 다윗왕께서 압살롬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난 못 죽입니다. 그러니까 요압이 뛰어가서 요압의 심장을 창으로 찌르고 직속 부하들이 열 명이 둘러쌓여 죽였습니다. 전해야하는데 아이마스라는 사람이 요압에게 간청을 합니다. 사도 19절입니다. 아이마스가 원수 갚은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하니까 너는 오늘날 소식 전하지 말고 다른 날 소식을 정해라, 상을 못 받을 거라, 아이마스가 전한다니까 막습니다. 요압이 아이마스를 좋게 본다는 거죠. 본 것을 전하라고 보냅니다. 그러니까 아이마스가 간청합니다. 나로 가서 정하게 하옵소서, 이 소식을 가지고는 상을 못 받는다 왜 굳이 갈려냐, 갈려면 가라, 지름길로 달려가서 먼저 도착합니다. 지름길로 돌아가지고 도착합니다. 28절, 소식 전합니다. 아이마스가 외쳐 왕께 평안하옵소서 하고 절합니다. 찬양하로소이다. 대적하는 자를 붙였나이다하니까 이겼냐가 아니까 압살롬이 잘 있냐 먼저 물었습니다. 왕의 마음이 어디 가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마스가 대답하기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압살롬이 죽은 거 압니까 모릅니까, 그러니까 나를 보낼 때 크게 소동하는 것을 봤는데 알지못하였나이다 하고 말을 안했습니다. 아는데 모른다고 했으니까 안했지요. 그러고 나서 도착하고 나서 먼저 사람이 와서 소식을 전합니다. 역시 왕이 또 묻습니다. 압살롬 잘있냐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32절에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 더 사실대로 말한겁니까. 구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올바른 사람인가요. 누가 옳은 사람입니까. 아이마스가 옳습니까 구스가 옳습니까. 그러면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의 마음은 어땠습니까. 아이마스는 속인 건 아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크게 소동했다는 말을 듣고 아마 어느정도 짐작하지 않았을까. 충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아이마스의 말을 들으니까 압살롬이 잘 있느냐, 저를 보낼 때 크게 소동하는 걸 봤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릅니다. 완곡하게, 왕이 엄청나게 충격받을 소실을 완화시켜서 전해놓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한 그 소식을 빨리 가서 전하면 기쁘고 좋고 상급도 있고 하는데 요압이 두 번이나 말리지요. 이걸로는 전하지 못한다. 다른 날 정해라 하는데 기어코 아이마스가 두 번이나 간청해서 갑니다. 구스 사람은 뭣도 모르고 가는 것이고, 생각이고 계산이 있었다는 거지요. 아이마스는 사독의 아들입니다. 사독이라는 사람은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입니다. 자손인데 이때는 압살롬의 반역 때는 누구라고 그랬지요, 이때는 사독도 전부 압살롬 편에 서지 않고 다윗 편에 섭니다. 죽을 때 되어서 노년에 솔로몬을 후계로 세우기로 했는데, 누가 반역을 하지요. 아도니아가 반역을 해서 왕이 됩니다. 솔로몬 제껴놓고, 그때 아도니아 옆에 선 사람이 요압하고 아비압입니다. 아도니아가 요압을 데려가고 왕이 된다 그랬는데 선지자 나단이 말하기를 저는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세월 속에 압살롬 때는 사독도 아비아들도 다윗 사람이었는데 다윗이 늙은 세월 속에서 멀어졌습니다. 멀어졌고 그래서 아도니아가 반역하니까 그 곁에 섰고, 사독은 마지막까지 다윗 편에 서서 끝까지 이어갑니다.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아도니아가 욕심 부리다가 죽게 되고 그 날에 요압도 같이 죽고 아비아달도 제사장직을 파면하는데 누구 자손이냐, 사무엘 시대 때 하나님께서 제사장 이름이 엘리 제사장인데, 너의 자손 중에서 구걸한 자손이 나올 거다. 그 계통입니다. 엘리의 집안에 이루어진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독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게 언제까지 나오느냐 에스겔 성전까지 나옵니다. 사독의 자손에게 제사장 직분을 맡길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독의 아들이 아이마스입니다.
아이마스가 생각인데 왜 굳이 이런 승전한 것은 기쁜 소식이나, 압살롬이 죽은 괴로운 소식을 왜 굳이 전하려고 했을까, 아마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압살롬 죽었을 때 그 다윗의 마음의 심정을 헤어려서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받도록 하는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이마스는 다윗을 합니다. 압살롬도 압니다. 아는 상황이고 다윗이 모든 군사들 다 듣는데에서 부탁을 했는데 요압이 죽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심장이 어떠할까, 지름길로 죽자고 달렸을 겁니다. 먼저 도착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나를 보낼 때 크게 소동하는 것을 봤는데,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 소식을 듣고 짐작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 사람이 사실을 말했을 때 충격을 받았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부인데 그 사람 중에서 자기가 존경하는 분, 모시는 분, 부모님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고, 과거 백 목사님 같은 분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그런 분에 대하여 아이마스처럼 그렇게 배려하는 살펴드리는, 그런 우리는 어루만져드릴 수 있는 이런 자세가 참 조심합니다. 참 왕을 존경했고 아꼈고 배려가 크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성격 해석이 참고로 18장 18절에 보면 압살롬이 죽었는데 이런 말씀이 있죠, 비석을 세웠는데,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압살롬 아들이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14장 가볼까요, 27에 보니까 압살롬이 누구 낳았습니까.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왜 다르지요. 아들이 없다는 것은 아들 같은 아들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 비석을 세워줄 만큼 그런 아들은 없었다고 봐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