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금밤
2026년 9월 4일 금밤
찬송: 158장
본문: 사사기 15장 15절 -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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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이스라엘 사사로 이스라엘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많은 환란을 받았습니다. 삼손만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많은 환란을 겪었고 이삭도 어릴 때 자기 목숨을 번제로 바치는 참 힘든 고난 겪었고 야곱은 130년 자기 스스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고, 요셉은 종으로 팔려서 그렇게 되었고, 누구할 거 없이 모세는 40년을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옳은 길 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하면 환란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고, 이 세상에서도 고진감래라고 합니다. 고난 없는 성공은 세상에서도 없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먹는 밥은 맛이 없습니다. 몸을 쓰든 심신을 바쳐서 노력해서 얻는 수입이 수입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 고난 없이 얻는 것은 좋지 않게 다 나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옳고 바른 신앙의 걸음은 환란만이 하는 걸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두려워하고 피하면 신앙 걸음은 걸어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면 그 원수가 되는 겁니다. 바로 살려고할 때 이런 고난은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고난은 없습니다. 시험을 치는데, 대충대충 치면은 됩니다. 성적을 좋게 내볼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야하고 고난은 따라오는 겁니다. 직장이 있어도 설렁설렁 다니고 하면 고만고만 합니다. 그런데 자기 일처럼 하면 힘이 듭니다. 오늘 교독도 그렇게 똑똑하게 읽고 그러면 아주 잘 했는데 평소에도 연습을 해야하지 그런 겁니다. 세상도 그렇고 신앙 생활도 그렇습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옳고 바른 신앙 걸음을 걸어가는 그 걸음을 고난 속에 위로와 부호가 있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에담바위틈에 거했습니다. 환란이 있었고 자기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환란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위 틈에 갔습니다. 신앙 걸음은 환란 속에 보호가 함께하는 걸음이다, 그냥 버려두지 않는다, 맡겨놓고 던져두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살피면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을 알뜰하게 살핍니다. 그 때문에 고생을 하면 챙겨주는 게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문제는 내가 가는 길이 생활이 옳고 바른 생활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개인의 생활과 부부생활과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과 사업과 인간관계와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을 전부 해서 자기 사는 모든 생활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되기만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게 되고 보호가 함꼐하는 것이 됩니다. 세 번째 신앙 걸음은 나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교회로 사는 겁니다. 나는 개인 교회고 가정교회고 사회교회고 믿는 사람은 교회입니다. 우리라는 뜻입니다. 단체라는 뜻입니다. 나는 나 혼자인데 걸어가는 걸음인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나 혼자 걸어가야하는데 혼자일 수 없는 것이 생활입니다. 묘하게 고난은 내 혼자 받아야합니다.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체된 한 몸된 다른 분들이 함께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니까 전신이 아프고, 손가락이 아프니까 전신이 아프고 이가 아프니까 전신이 아픈 거처럼 온 몸이 아픈 것처럼, 내가 옳은 길을 걸어가는데 나 때문에 하나된 교회라는 이름이 속한 사람들이 함께 한 몸으로 고난 받는 이게 신앙 걸음입니다. 이건 피할 수 없습니다. 나로 인해서 나와 관련된 한 몸된 여러 사람들이 고난 받을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해서 고난 받을 수 있는게 교회라는 겁니다. 이걸 기억을 해야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지고 혼자 걸어가는데, 우리 공회 표어 네 가지가 뭐지요. 나는 독립으로, 독립으로 가는데 나 혼자가 아닌 겁니다. 왜 그렇냐, 독립으로 가는데, 그 곳이 내가 뭐라고 했지요. 교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기독교 교인이라는 걸어갈 때 마귀는 나 잡으려고 치는 겁니다. 이건 피할 수가 없습니다. 블레셋이 삼손을 잡으려고 치는 겁니다. 나 때문에 나와 연관된 것이 고통받는 겁니다. 이런 것은 목사를 잡으려고 교인들을 치는 겁니다. 그럴 때 함께 자기로 인해서가 아니고 고난 받는 사람들, 삼손 때문에 유다지파로 하니까 다른 사람 누구 신앙 떄문에 내가 고난 받으니까 그 사람 원망하고 그 사람에게 화살 돌리고 박해를 차마 하지 않아도 핀잔주고 하는 그게 유다지파였고 이스라엘 백성이었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모든 것은 언제든지 변한다, 세상은 변하고 환경은 변하고 입장은 변하고 처지는 변하고 사람은 다 변하는 겁니다. 오늘에 주는 사람이 내일은 얻어먹어야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에 얻어먹는 사람이 세상이고 인생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와서 다 죽였는데 한 목사님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 것도 있고, 어떤 부자가 베풀어주니까 좌익 세력들이 돈 많은 사람들 다 죽이는데 그 곳의 좌익공산군이 와서 부자 다 죽였는데 이 부자는 들어갈려고 하니까 누가 막았다고 합니까. 평소 그 사람에게 은혜 받은 사람들이 막았다고 합니다. 착취를 당해서 몽둥이 들고 부자들 다 때려죽이는데 그 부자집에 가니까 이건 안된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이 보호했다 역사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좋을 때 잘 나갈 때 남보다 더 좋을 때 오늘이 전부인 줄 알고 큰 소리치면 권력가들이든 어떤 사람이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현재 행복한 가정이면 이게 계속 될건지, 그 꿈이 안 깰 수가 있습니까. 그 행복이 어떻게 변해서 불행이 될 지도 모릅니다. 현재 불행이 변해서 쥐구멍에도, 그 다음 뭘까요, 볕들 날이 있습니다. 쥐구멍은 쥐는 캄캄하네 숨거든요, 햇볕이 안 들어오는데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게 쥐구멍에 하는 겁니다. 어느날 해버리면 안되는 거지요. 세월이 다 그렇게 변하는 겁니다. 세월은 변합니다. 그러면 뭐가 변한다고 환경이 변합니다. 입장이 변합니다. 처지가 변합니다. 현재 모습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바뀝니다. 그 다음, 여호와의 권능이 함께 있습니다. 옳고 바른 신앙에는 함께하는 것입니다. 옳고 바른 신앙에는 함께하는 걸음이다.
기독교는 이방 종교와 다릅니다. 이종교는, 그냥 종교고 이 세상 교양 수양 정도입니다. 그들에게는 살아있는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관찰하시면서 그럽니다. 복을 받던지, 징계를 받던지. 옳은 길 바른 길을 걸어서 복을 받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복 받는 길도 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매를 맞아서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 가지고 우리를 돌아보고 삼손은 그랬는데, 믿음의 사람들이 다 그랬는데 나는 어떠냐, 내 신앙 생활에 함께하는 역사가 있느냐,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아무 응답도 없는가, 살펴보기는 살펴봅니까. 기도 응답 받아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을 해주시더라, 그 찬송가 누가 지었지요, 제가 지었습니까, 백 목사님이 지었습니까. 그렇게 작사가가 그렇게 되어봤으니까 그렇게 쓴 겁니다. 그래서 평생 다 바치고 바치고 걸어가는 겁니다. 공을 굴리면 공은 둥글지요. 처음에는 힘껏 굴리면 빨리 가다가 평지면은 굴러가버립니다. 이걸 간다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믿어놓은 거, 믿는 생활 그대로 계속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발전이 없을 수 있습니다.
모세 지핑이로 물을 탁 치니까 갈라졌습니다. 다른 거 없고, 이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현재입니다. 자꾸 같은 사람 물으면 그럴 거 같고, 정혜윤 선생님, 현재 몇 학년, 고1입니까. 현재 정혜윤 선생님의 현재는 고1입니다. 학교가는, 앞에 있는 우리 차경 선생님 옆에 누굽니까. 연재는 여섯 살, 그게 현실입니다. 나이를 말하는 겁니다. 한 달에 200만원 버는 사람 현실은 그게 현실입니다. 저처럼 키가 작으면 나이들고 키 작으면 그게 현실입니다. 다니엘은 총리가 현실입니다. 그게 지금인데 지금이란 현재 자기 형편 입장 처지 그게 현실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이 잡으러 왔습니다. 싸우는데, 현실 앞에 뭐가 있다고요, 나귀의 턱뼈가 있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갈 때 여호와의 권능이 함께하시면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가난하든지 부유하던지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잘났든 못났든. 그의 걸어가는 걸음에 여호와의 권능이 함께할 수 있느냐, 그래서 사람 좋은대로 세상 좋은대로 자기 모든 언행심사 사리판단을 그렇게 할 것이 아니고 이걸 계산을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뭐냐, 모든 면이 있어서, 경제면 경제의 손익계산, 사람 관계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할까 좋아할까 이게 아니고 뭐가 문제라고요, 복을 주시겠느냐 화를 내리시겠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걸 계산하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를 모든 것을 계산하고 처리합니다. 그럴 때 맞으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홍해바다도 요단강도 어떤 적군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귀 턱뼈입니다. 그냥 가면 되는 겁니다. 이걸 기억하십시다. 삼손이 손을 내밀어 취하고 이것으로 1천명 모든 적을 다 물리쳐버렸습니다. 자기 형편, 그래서 이런 성경있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핑계대지 못합니다. 내가 있는데, 네가 문제지, 우리가 문제입니다. 내 형편이 문제가 아니고 나 자신의 생활과 걸어가는 걸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옳으냐 그르냐, 그것만 판단하고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아무것도 문제,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기고 이런 전투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뭐가 있지요. 없습니다. 이겨도 지고 져도 이기는 겁니다.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지요. 내가 스스로 내 놓으면 지는 겁니다. 내가 항복 안하면, 내 스스로 내가 넘어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넘어트리지 못합니다.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거, 나아만의 여종은 많이 배워서 배경이 좋아서, 핑계대지 못합니다. 다윗의 목동 시절에는요, 전설이 아니고 사실의 기록인데 문제는 우리가 내가 이렇게 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받을 때 너 했느냐, 하면 되는데 왜 안했냐, 핑계는 다 대는데 마지막 가보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핑계대지 못합니다. 이게 삼손의 나귀 턱뼈입니다. 우리 현실,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하고 나니까 1천명을 죽이니까 내 속의 원수, 여우 300마리 다 죽인 것처럼, 나를 해치려는 이를 다 쳐버렸습니다. 기도해야합니다. 적이 강할수록, 간절하게 메달려야합니다. 같은 기도라도 어느정도에 따라 그렇습니다. 간절한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 살리려면 원수를 멸하고 나면 내 속에 있는 신령한 역사 면들이 빠져나가는 게 됩니다. 부흥회 설교를 하고 나면은 오전에 설교해서 끼치고 나면 영능이 빠져나가서 오후 예배가 끝나면 죽을 쓴다.
현실이란 현재 자기 형편 모든 게 포함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만사 전능이 됩니다. 두 번째, 큰 영상 이루려고 간절히 부르짖는 게 필요하다 두 가지 기억하십시다. 기도하고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