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주일 오후
2026년 9월 6일 주일 오후
찬송: 92장
본문: 마태복음 25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비유는 비유기 때문에 실상과 차이가 있는 건 정도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림자와 실체는 많이 차이가 있는 것처럼 원형과 원형은 다른 것처럼 비유와 실상은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기 때문에 더 실질적이고 비유는 아무리 잘 비유로 설명해도 실상보다는 흐리고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유가 그렇고 실상은 더하다는 겁니다. 열 처녀 비유가 있는데, 실상은 이보다도 실질적이라서 더 치밀하고 더 처절하고 잘못되면 그러고 영광스럽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비유보다 더 참혹한 것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참혹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영화는 실제 있던 것을 모형으로 만드는 건데, 겪어보는 사람들 말을 보면 참혹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그런 재생해서 화면 담아도 화면이기 때문에 실제 전쟁보다 더 못하는 겁니다. 영화 그림만 봐도 그런데, 전투 현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화면에 못 담는 거지요.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많은 차이가 있는 게 실질적인 참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설명만 하는 겁니다. 실상에 느낌까지 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유를 읽을 때는 훨씬 더하다 청지기 비유 그런 거 씨뿌리는 비유 열처녀 비유 많은 비유가 있는데 다 그렇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 충성이 뭐냐,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이 말씀 읽을 때마다 1987년, 8월 15일날 백 목사님의 막내 사위되는 서영준 목사님께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그 날이 토요일이었고 월요일에 지르면서 이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서영준 목사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울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부산에 내려왔고 우동장사하고, 사법고시 합격의 실력을 가진 분인데 우동장사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그분을 접한 사람을 하는 말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길을 걸어가면 그런데 키가 저보다 조금 더 큽니다. 참 언행 심사에 들은 것에 흠이 없다싶은 분이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고 합니다. 충성입니다. 그분보다 먼저 간 목사님 중에서 홍순철 목사님이라고 30대 중반에 이분도 너무 충성하셔가지고 과로로 돌아가셨는데 충성입니다. 충북입니까 남천교회 목회하실 때 그 분 돌아가셨을 때 하얀 새가 지붕에 왔다갔다고 들었는데 확실한지 모르겠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학년 별로 하는 그것을 전도한 학생을 자기 반으로 삼은 게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교단처럼 처음에는 전도해와도 1학년 선생님 2학년 선생님 그랬는데 이분은 전도해서 다른 학년은 돌리시오 하니까 안 돌립니다. 그러니까 보고 드리니까 그 말이 맞네 그때부터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자기 반으로 되는 그렇게 되었답니다. 보통 분 아니지요. 그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은 분입니다.
서영준 목사님 같은 분 홍순철 목사님 같은 분 백 목사님 사도바울 같은 분 그런 분들에게만 표현되는 것이냐, 성경은 특정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없지 않으나 신약이 오면 거의 대개는 믿는 사람 전부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보편적인 언어로 기록해주셨고 그것입니다. 어렵게 만든 사람들이 학자들입니다. 앞선 분들의 지사충성 그렇게 했는데 간판만 봐도 서울대 법대, 연세대, 한양대 모두 정정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대개 불학무식한 우리 정도, 그런 분들은 충성이 해당되지 않는가, 말하자면 본문에 가르치는 충성이란 무엇이 충성이냐, 자기 정도에서 다하는 게 충성이다. 이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충성이다, 충성하지 못하고 핑계대는 것은 자기 중심이고 그런 겁니다.
우리처럼 한 달에 200만원 300만원 벌고 20~30만원이야 다 하지요. 그래서 쉬운 겁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게 좋고 좋은 게 좋고 잘난 게 좋고 신앙 생활에는 아니라는 건데, 이렇게 성경에 진리로 해놔도 이 사실을 안 믿는다고 하죠. 그것을 안 믿는 사람으로 가르켜서 한 달란트 받은 자라고 합니다. 그대로 순종을 했는데 한 달란트 받았으니까 가장 잘났습니까 가장 못났습니까. 세 종 중에 가장 잘났습니까 못났습니까. 가장 못난 사람이 가장 믿음이 없습니다. 이것도 참 묘하지요. 성경에 보면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그래서 가난한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아주 무식한 분들 중에서도 강팍한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들 중에서 못난 사람 중에서 안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잘난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고 못난 사람들은 잘 안 믿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는 힘껏 노력해서 남겼는데 한 달란트 남은 사람은 땅을 파고 숨겨놨습니다. 주인이 와서 계산하니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떳떳하게 아니지만은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까 많은 것을 맡기리니. 혹시라도 작다, 많다 대비가 많나요? 작다의 반대는 크다가 되어야하지요.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꼭 같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말하기를,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해치지 않는 곳에서 하는 줄 알았으므로, 감추는 줄 알았나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곳에서 조르고 네가 알았으냐, 잘못 알았다 그 말입니다. 네 생각이지, 너의 판단이지, 너의 주관이지, 너의 범위지,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있고 구별을 해야합니다. 객관에만 끌려다니느 사람도 문제가 많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눈을 두 개 주셨고, 입은 몇 개 주셨지요, 입은 몇 개입니까 눈은 두 개 그런가요. 많이 듣고 많은 걸 듣는데 말은 조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주권 섭리를 제 생각대로 봤다는 겁니다. 제 지식의 범위대로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세 살짜리가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그리하면 안되는데 하면 뭐라고 한다고요. 나도 알아요. 나도 알아요, 몇 살 짜리가 아는 겁니까. 세 살 짜리도 알아요. 다섯 살은 더 크고 중학생인데 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영어도 하는데, 컴퓨터도 할 줄 아는데, 중학교 1학년은 나이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어린 시절을 기록해놨습니다. 예수는 자라가면서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도 자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알아야합니다. 자기 나이를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어른들하고 대화하면 나는 중학교 몇 학년인데 고등학교 몇 학년인데 저 분은 선생님인데 밥을 더 많이드셨고 이걸 계산해야합니다.
저 분은 나이가 드셨지만 초등학교도 안 나왔으니까 그러면 교만하게 되는 겁니다. 아는 걸 겸손이라고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제 주관대로 제 지식대로 범위대로 판단했습니다. 사람이 되어가지고 내가 사람인데 만물의 영장인데 내가 누구인데, 뭐든지 자기 주관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범위대로, 막 그냥 끌어다가 그래서 자기 생각에 이것도 갖다 붙이고 저것도 갖다붙이고. 멋대로 갖다 붙여버립니다. 이단으로 가거나, 경계선에 서 있다 싶은 염려가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딱 그겁니다. 누구 생각이지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지요. 네 생각이지, 네가 아는 지식의 범위지, 눈 어두운 소경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졌습니다. 시각 장애인 몇 사람, 코끼리 다리 만지고 귀 만지고 뭐 만지고 해서 코끼리 다리 만져본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기둥처럼 생겼습니다. 배는, 운동장처럼 생겼습니다. 귀는 팔랑팔랑하게 생겼습니다. 그게 인간 지식입니다. 그걸 꽁꼬리 철학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주관에 갇히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들은 다 아는데 전체를 아는 사람을 보면 심각한 정신병 그 속에 갖혀있는 게 되는 겁니다. 하루 살이는 뭘 모른다고요, 내일을 모릅니다. 내일 만나자, 그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이고, 어떤 인생이냐 주관에 갇힌 사람입니다. 내 생각, 내 범위, 내 판단, 내 주장, 내 의견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주인을 핑계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충성이 뭐냐, 충성을 나눠놨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에게 칭찬하는 것은 잘 하였도다, 잘했다는 말은 옳게했다, 바르게했다, 정확하게 했다, 틀리지 않았다, 답이 맞았다는 뜻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렇게 해놨습니다. 충성이 뭐냐, 잘했다, 착하다, 충성되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 남기고 다했으니까 주인이 다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러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했구나, 바로 했구나, 발랐으니까 생각이 발랐고 판단이 발랐고 그랬다. 잘했다 착하다. 너를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졌구나.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게 아니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 중심이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걸 정리를 해보면 충성이 무엇이 충성입니까, 기록은 되어있지 않아도 달란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달란트가 주인에게 받은 거니까, 자기 받은 분량, 두 번째, 하나님의 중심으로 세 번째, 하나님을 다 하여, 네 번째, 자기 할 일을 하는 거 네 가지로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 아니고 그렇게 해서 받은 분량을 다해서 감당할 사명을 다 하는 게 충성입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 받았고 뜻을 따라서 다해서 다섯 달란트 받았으니까, 주인의 뜻을 따라 두 달란트 다해서 두 달란트 남겼으니까 충성을 다했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얼마나, 한 달란트, 그 한 달란트 가지고 그걸 다해서 더 남기면 꼭 같은 충성이 되는데 그걸 안했다 그 말입니다. 엉뚱한데 써먹었습니다. 땅 속에 파묻었으니까, 땅이라는 것은 들어가면 썩어버립니다.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세상 속에 묻어놔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 주신 재능은 완전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최적의 최선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삼손의 나귀 턱뼈로 하면 각각 받은 게 나귀의 턱뼈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현실이 무엇이냐, 현실 속에서는 자기가 만든 겁니다. 과거를 지나서 현재가 되었으니까, 현재 이전까지 자기 모든 생활이 현재 자기 모습을 만들었으니까 그렇게 인도하신 겁니다. 우리의 충성이라는 것은 미래 충성이 아니고 현실 충성이니까,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는 죄수가 있습니다. 평생을 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가 있습니다. 누구 옆에 있습니까. 두 사람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좌우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못이 박혔으니까 곧 죽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서 한 강도는 뭐라고 했지요. 예수여, 당신이 나라 임하오실 때 나를 기억하옵소서. 그 강도의 현실은 뭐지요. 그게 현실입니다. 할 수 있는게 뭐지요, 예수여 당신의 나라 임하오실 때 나를 기억해주옵소서, 그게 충성입니다. 뭐라고 했지요. 내가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낙원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핑계대지를 못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충성했습니다. 거기서 충성해서 현실충성입니다. 나사로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로, 상에서 떨어지는 걸로 충성했습니다. 낙원에 아브라함의 풍경에 안겼습니다. 포로 잡혀간 종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종으로써 충성해서 하나님을 움직였고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요셉도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과거에 이런 말 해도 될련지, 종이 나오는 것 중에 하나가 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거 기독교 계통 영화인데 출세하던 사람이 누명을 써서 온갖 종노릇하다가 회개하고 예수믿는 그런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때 종은 사람이 아닙니다. 노젓는 노예들, 그 큰 배를 젓는데 묶여서 갖혀서 손에 꼼짝도 못하는 거지요. 팔려서 값 얼마. 나아만의 여종도 그렇게 팔려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되지 못한다는 거지요. 비록 죄인이 되었을지라도 거기서 충성해도 됩니다. 나아만은 연세 많으신 노인들도 충성하면 됩니다. 그게 받은 달란트입니다.
영생의 기준이 그겁니다, 내 마음과 힘과 덕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라, 그게 그런겁니다. 자기로써 주어진 현실에 감당하는 거, 학생으로써 다 앉는 겁니다. 다시 또하면 학생이 충성하면 뭐지요, 공부하면 되는 겁니까, 1등만하면 되나요, 그러면 충성 다 하게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동기가 들어가야하고, 그게 착한 겁니다. 공부하는 동기가 하나님이 들어가면 나이가 이렇고 현실이 어리니까 할 일이 공부니까 하지만 왜하지, 왜 열심히 하는 것을 뭐하지 그걸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구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맞추는 겁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는 방법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 신앙이라는 것은 알고 믿는 것도 있고 모르는데 아는 것으로 그렇게 최면을 걸어서 알아지는 것도 있는 겁니다. 없는 거 같은데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신앙생활 방편이 되는 겁니다. 자기를 속이는 게 아니고. 세상에는 안 통합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실존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내가 왜 공부하지 열심히하지, 학교 졸업하면 뭐하지, 자기 하는 모든 가정생활이든 뭐든 전부 그렇게 인도하시는 나를 세상에 두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그분을 생각하고 그러되 다하는게 충성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현실에서 각자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세 번째, 받은 분량 다해서, 자기 사명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받은 분량 다해서, 충성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럴 때 잘했다. 바로 살았다. 걸어갔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일에 충성했는데 이 세상 일이 작은 일입니다. 많은 것은 하늘의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누가 어떻게 많은 것을 충성해도 작은 겁니다. 영원에 비해서 하늘에 비해서 지극히 작은 겁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마는 것으로 맡기리니.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드라크마를 찾으면 하늘나라에서 기쁨이 되느니라. 작은 일에 충성하면 지극히 크고영원한 영광의 찬미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부에게 다 해당이 되고 하면은 영광의 구원이 되는 것이고 안하면 심판이 따라갑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