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수밤
2026년 7월 22일 수밤
찬송: 109장
본문: 마태복음 6장 9절 -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주기도문이 공과 제목입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구해야할 것이 많기 때문에 범위가 넓고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 면으로 여러 가지 뜻으로 생각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진행하면서 지난 주일에는 다섯 가지를 생각해봤지요. 하면 되는 것이고, 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것은 해야한다는 겁니다. 하면 되는데 안하면 안 쌓이기 때문에 해야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는 기도에 응답하는 분량이 있습니다. 응답하시는 그 분량이 있어서 분량이 차야만 그 응답이 되는데 그러려면 기도가 쌓여야하는 겁니다. 얼마나 될지는 모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한 달 분량의 기도 일년 분량의 기도가 있으면 그러면 어지간한 어려움은 이겨낼거다. 십년씩 기도하면 모든 환란을 이길거다. 그런데 그 넘어 환란은 못 이길거다. 분량을 채워야 응답이 온다 그겁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때와 기한은 자기 권한에 맞게 두셨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신데 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오시는 그날 오실 건데도 안 알려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가라하시면 가는 것이고, 그래서 기도의 응답할 때도 하나님만 아시니까 기도할 때고, 얼마나 채워야할지 모르니까 최선을 다해서 쉬지 않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진합태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안 하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안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고, 기도 하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고, 기도 안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고, 기도 하는 사람은 충성의 사람이고, 안 하는 사람은 불충이다. 신인교제라는 게 느낌이 있어서 우리는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교제라는 말은 사귀면서 친구되고 영향받고 피동되고 끌려가는 걸 교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격과 인격의 교제는 무엇이 있어야한다고 했습니까. 교감이 있어야합니다. 교감없는 교제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다 쓰는 말이고 지정리에서 나오는 게 희로애락이 되는 겁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나오는 게 사람일지, 지식과 감정 뜻 이런 게 있으니까 그런 게 나온다, 그래서 이런 게 있는 사람은 접촉하면 느낌은 있게 되어있습니다. 인격의 사람이 인격의 원형이신 신격의 하나님을 접촉하면 교감이 있는 겁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상대로 하시는데,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그분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 분은 귀가 있는 분입니다. 입이 있는 분이고 눈이 있는 분이고 안면이 있는 분입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인격의 원형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기에는 나 혼자 기도하고 혼자 앉아 기도하지만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면서 기도 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고 그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면 교감이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보이기에는 혼자인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마음의 작용을 하는 겁니다. 나 혼자 기도하는데 내 느낌이 아니고 있습니다. 기도를 해 보신 분들은 다 압니다. 안해보신 분들은 모릅니다. 먹어본 사람은 알고 안 먹어본 사람은 못알아듣습니다. 기도를 하신 분들은 아까 말했던 것들이 아멘이 될 것이고, 그게 교감입니다. 혼자하는데 혼자가 아닌겁니다. 사람과 사람의 교제라는 것은 같이 맛보고 마주보고 문자로 대화하면 있고 멀리 떨어진 상대는 생각하면서 교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눈에 안 보일 뿐이지 항상 계시고 하기 때문에 내가 진실하게 그렇게 기도하면 그분의 그 객관 역사가 성령의 감화감동이 내 마음에 온다고 하는 겁니다. 사람으로 인한 내 주관의 착각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기도가 될 때 신인 교제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점점 알아가고 그래서 그리 되기 까지는 그분 앞에 내가 찾아갈 때 단속을 해야겠지요. 단속을 하고 선물을 들고 가고 기도할 때 선물을 두 글자로 뭐라고 했던가요. 기억하십니까. 의행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회개하고 주의 뜻을 살펴드리는 그런 생활에 힘을 쓰면서 그러면 대답을 하신다는 겁니다. 주관이나 착각 오판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겁니다. 그 분을 점점 닮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신인 교제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는 여과 작용, 정수 작용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부족해서 잘못된 기도를 해도 들으시고 정수해서 여과해서 좋은 것만 주신다 그 말입니다. 네 번째 기도는 이심전심이다. 기도해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라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내가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면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기쁘게 하시고 들어주실 수 있을까, 이런 모습으로 기도하면 내 이런 생활 상태로 기도하면, 그 분이 들으실까, 그 분의 뜻은 생각없고 내 주관대로 살면서 그러면 들으실까. 그래서 인격과 인격의 교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다 우리 신앙 생활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고 우리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종교들은 전부 목석을 섬기는 것이고 주관적인 종교고 착각임으로 혼자서 그러지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에 어떠함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기도는 응답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지 자기가 기도의 때를 정하고 자기가 정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앞에 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들의 신앙 생활을 가르치면서, 마태복음에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않도록 주의하라,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건데, 본문에는 구제하고 기도를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내면을 살펴야하는 거겠지요. 우리가 심방 전도 이것도 구제입니다. 구원운동할 때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을 해라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할만한 일을 하고 귀하게 하게 되면 이목을 필연적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다 누구든지 사람은 다 의식을 합니다. 내 모든 마음까지는 몰라도 내 언행을 내 활동을 내 움직임을 다른 사람에게 보고 듣고 생각을 하는 거지요. 모든 사람들은 이목을 의식하게 되어있습니다. 서로. 그런 중에서 남에게 드러나는 그런 것일수록 사람들의 의목을 생각하게 되어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육체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술을 먹는 것은 믿는 사람이 술을 먹는 거는 죄입니다. 먹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안 믿던 사람이 술을 먹는데, 술과 담배를 해서 못 나갑니다. 술 드셔도 괜찮고 담배 피워도 괜찮으니까 나오라고 합니다. 담배피고 술 먹어도 된다는 말이 아닌 겁니다. 안 믿는 사람이 안 나오는데 일단 나오십시오, 그러면서 조금씩 줄여가시고 나중에는 끊으십시오. 그래야 맞는 겁니다. 그거처럼 외식으로 구제하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 구제를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좋은 겁니다. 우리 교회 보고는 저하고 박경미 선생님하고 하던가 서 너 사람만 보고합니다. 20명 중에서 서로 다하다가 안 보이니까 보고합니다. 안 보면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목을 보면서 하는 게 좋은 겁니다. 기도든 구제든 성경이든 보고든, 알아서 하니까 안해도, 백 목사님 앞에 가서 혼이 아닙니다. 그걸 고등교만이라고 합니다. 너는 안해도 되는데 너 안하면 다른 사람도 안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1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그게 외식으로 하면 안된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게 옳은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외식으로 기도하지 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 하지 마라. 또 하나는 중언부언하지 말아라. 두 가지를 말씀하시고. 외식 기도 하지 마라, 중언부언하지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치시면서 가르쳐주십니다. 이렇게 기도해라. 그래서 주님이 가르친 기도인데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의 모든 말씀은 대속의 생애는 완전입니다. 흠과 점이 없는 겁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완전한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표준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기도는 이 기도로 해야합니다. 믿는 사람의 기도는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기도입니다. 이게 들어가야 기도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목적도, 주기도문의 동기라야하고 주기도문이라서 그런 것이고 그게 기도지, 주기도문이 빠진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의 의미를 말씀드릴 때 하나님 목적 성취의 감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부가 주기도문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을 펼쳐놓으면 여기 성경이 다 있고 우주가 이 속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주기도문 속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어떻게,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라, 그래서 모든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들어가야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하라는 뜻인가, 그게 아니고 주기도문의 내용, 하나님의 목적 성취의 감령, 기도의 동기, 기도의 내용, 전부 다가 들어가야 그게 진짜 기도입니다. 집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강사 목사님 영육강건을 주옵소서, 교통 안전을 주옵소서, 날씨를 복을 주옵소서, 너무 폭우도 오지 않게 하시고, 작년인가에도 비 안 와서 걱정했다가 기도하니까 비가 와서 다행이었는데, 거창도 그렇고 부산도 비가 거의 안왔거든요. 예보 보니까 집회 주간까지 예보가 없습니다. 이 정도 되어버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집회 기간까지 이렇게 더워버리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기도 제목, 자연 만물 협조하는 기도도 있고 아기가 병원에 입원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전부 다가 주기도문 속에서 나와야하고 들어가야합니다. 이 전부 다가 주기도문과 끊어진 기도, 무관한 기도가 되면 하나님께 들어실 수 있는 기도가 아닌 겁니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한 자타의 구원을 위한 기도라야 기도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그겁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기도에 대해서 주의할 거 말씀하시고, 기도 내용을 정확하게 담아주셨는데, 주님이 담아주신 기도 내용을 보니까 전부 다 그 말입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주기도문을 분류해보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자존자 완전자 전지전능자 창조주 대주제 그런 분일지라도 나와 관계가 없으면 나에게 의미가 없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옛날에 왕은 조선 500년 왕은 그래서 나라 전부가 왕 거고, 왕은 백성의 어버이고 그런 나쁜 시대가 있었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많은 재벌이 잘난 사람이 아무리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는데 그분이 상관이 없으면 우리가 부를 필요도 없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뭐냐, 하나님 목적 성취입니다. 네 번째 그 성취를 두고 우리가 기도할 것은 어떤 것이냐, 이 전부가 다 하나님으로 인하고 말미암고 돌아간다는 결론을 말씀한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체의 흐름을 가지고 기도가 무엇이며 무엇을 조심을 해야하며, 의미가 무엇이며 어느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그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어떤 내용으로 되어있는지 큰 감령을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이제 맨 앞에만 공부한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높다는 말은 큰 것도 귀한 것도 높은 것이고 최고, 더 이상이 없는 최고. 그걸 하늘이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는 분이고 그런 뜻이고 그런 세계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높은 최고 최귀. 가치적으로 평가적으로 활동 역사적으로 그 이상이 없는 하늘에서는 내려다보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여. 은혜를 베푸시고 영원토록 영존하시며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 속에 우리라는 이 관계 때문입니다. 주님 대속과 내 대속이 되기 때문에 우리 대속은 나 혼자만의 대속이 아니고 함께 받은 대속으로, 가진 이상 나는 나 혼자 만이 아닌 겁니다. 대속을 입은 사람은 함께 받은 대속임으로 전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될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됩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네 가지지요. 나를 낳아주신 나의 근본이시고 나를 길러주시는 양육자이시고, 내가 닮아갈 원형이시고, 모든 걸 상속 시켜주실 아버지시다. 지난 주 말씀이었고 이번 주 공과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기도문을 계속할 건데 집회가 있어서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기는 할건데, 모든 기도의 동기, 목적, 모든 기도의 방향, 모든 기도의 내용 전부는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들어가야 그런 기도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라, 외식 기도 조심하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겁니다. 그게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과의 나와의 관계를 알고 기도하고, 오늘 밤에는 설교는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씀이 안 들어가게 되는 거 같은데.
주기도문의 의미를 모든 기도의 동기가 목적이 주기도문에서 나와야하고 들어가야 기도다. 그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