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수밤
2026년 5월 27일 수밤
찬송: 103장
본문: 잠언 27장 7절 -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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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실력과 사람의 수양과 신앙과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자기 본능을 얼마만큼 제어하고 조절하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본능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본문에 보니까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한다. 주린 자는 쓴 것도 달게 먹는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짐승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음식을 찾지 않습니다. 저 어릴 때는 우산이 없어서 비맞고 다녔고, 우산 노래 아십니까. 찢어진 비닐 우산 쓰고 다녔습니다. 안 찾아가고 저렇게 묵혀져있습니다. 우산이 너무 많아서, 돈이 너무 많아가지고. 먹을 것도 많고 우산도 많고 돈도 많고 배울 곳곳이 많아서 옛날에는 배우고 싶어도 학교 말고는 배울 곳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학교 안 가도 학교는 공짜고 그런데 학교는 거저 배우는데 학원이 잘 가르친다고 해서 학교에서 다 잠을 자고 학원에서 다 배우고, 정확하게 말하면 학원에서 가르치는 강사보다, 학교 정식 교사들이 훨씬 실력이 있습니다. 학원 강사는 아주 뛰어난 사람 아니면 학교 교사가 실력이 안 되어서 학원 강사로 들어간게 대부분입니다. 교육 제도가 잘못되어서 엉망이 되었지요.
인터넷 강의가 요즘 꽉 차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은 공부 못합니다. 지금은 그러니까 지식에 배가 불러서 학벌이 너무 많아서, 요즘 대학교 가치로 별로 안 쳐주지요. 하이닉스 삼성전자 대부분이 고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대학 학벌을 속이고 고졸로 들어갈까 그럽니다. 배가 부른 겁니다. 학벌에 가난해서 어쩔 줄 모를 때는 학벌에 목을 메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으니 별 가치가 없습니다. 또 먹을 게 너무 많으니 찾지도 않습니다. 배부른 자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뭐지요, 배고픈 자입니다. 배고픈 자는 어떤 사람인가, 먹을 것을 안 찾는 사람. 먹을 걸 줘도 싫어하는 사람,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걸 줘도 싫어하는 사람. 그게 가장 맛있는 꿀을 줘도 싫습니다. 이 사람이 배부른 사람입니다. 먹을 걸 안 찾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서 터질 지경입니다. 실증이 날 정도 배부른 자는 꿀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말하면 배부른 자가 뭐냐, 이런 자연 계시만 가르쳐주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의 인성 교육이 되고 교양 교훈이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와는 상관 없이 되는 겁니다. 어떤 말씀이던지 외부가 있고 일종의 비유같은 이건데, 점언같은 것은 이 세상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원리, 살아가다가 인생의 통계, 경험, 잠언으로 기록을 해 주신겁니다. 외부적으로 들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불교 믿는 사람도 동감을 합니다. 무신론자들도 다 압니다. 아주 상식이고 본능이니까. 짐승도 그러니까. 이걸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배부른 사람은 꿀도 싫어한다. 이걸 가지고 뭘 가르치느냐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바른 옳은 행동해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드는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본능 가지고 가르치는 게 뭐냐, 음식 꿀은 음식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먹어야 자라는 것이고 배가 부르면 중단이 된다. 신앙적으로 우리들을 고쳐나가는 이 면으로 배부른 것은 무엇이냐, 참사람으로 고쳐나가는 게 배부른 것은, 자라갈 양식이 뭐냐, 참된 양식 참된 음료. 주님의 몸, 주님의 살이 참된 양식, 주님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게 뭐냐,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 구주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 대속의 생애가 양식이고 음룝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게 말씀이라는 거죠.
우리 몸에 정수기가 있습니다. 뭐지요. 콩팥이 정수기죠. 신장이 정수기입니다. 고장이 나면 피가 탁해져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몸이 알아서 그 몸에 필요한 영양소 전부 찌꺼기로 내보내는 건데 말씀 속에는 배설물이 없는데, 참사람이 먹고 자랄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먹어야 참사람이 자라게 되는데 말씀을 먹고 싶은 생각이 안나면 마음이 안 생기면 그 사람이 배부른 사람입니다. 음식에 대해서 생각이 안나는 사람, 말씀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은, 읽고 싶은, 말씀을 알고 싶은 깨닫고 싶은 이런 생각이 없고 마음이 없고 노력이 없는 사람이 배부른 사람입니다. 모두 그런 적이 있으신가요. 성경을 못 읽어서 성경을 읽고 싶고, 예배 시간 말씀이 듣고 싶어서 기다려지고, 이런 마음이 생기십니까. 안 생기지요. 우리 모두 배부른 사람들입니다. 결과를 봐가지고 아는거지요. 그러면 우리는 배고픈 사람들 아닙니다. 배가 부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어질까. 어떤 사람이 말씀에 대해서 갈급할까. 말씀이 듣고 싶고 알고 싶고 읽고 싶어서 들여다보게 될까. 어떤 사람이 그렇겠습니까.
오른쪽 귀와 왼쪽 귀가 구멍이 뚫려서, 왼쪽 귀로 들으면 들어가버리고 귀 넘어 들어가는, 듣기만 하고 실행이 없으면 행하고자 하는 소원이 없고 욕망이 없으면 실행이 없는 것이고 말씀에 대해서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배부른 사람은 말씀에 부족함이 행함이 없는 사람 그런데 이런 걸 답을 가지고 검산해보면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면, 예배 시간에 간절함이 안 생기면, 저도 여기에 대해서 큰소리 못합니다. 그 사람은 배부른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배부른 사람이다. 어지간한 분들이 와서 설교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왜, 배가 부르니까. 처음 와서 그 말씀을 백 목사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충격을 받습니다. 10년 20년 말씀을 들어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자기를 고쳐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때 주시는 그 말씀 붙들고 고쳐가는 사람, 애를 쓰는 사람은 늘 말씀의 갈급을 느낍니다. 목사는 설교하는 사람은 한 주일 동안, 다음주 주일학교 오후 예배 누굽니까. 저분은 워낙 바빠서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서부교회 오후예배 그때 반사회 때 이름이 부르더라고요. 이치영 선생님 설교하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 주간에는 제 기억에 제 평생에 그 주간만큼 깨어서 말씀만 붙들고 산 적이 없을 겁니다. 밤낮 말씀만 생각했으니까.
여기 계신 분들도 오후 예배 처음 맡으신 분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는 거지요. 그래서 설교하는 게 복입니다. 나중에는 예사가 됩니다. 어려운데 자꾸 하다보면은 연습이 되고 익숙해지거든요, 일반적으로 제가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설교하는 분들이 원고로 하지 않고 하나님 동행이라는 정도 차이는 있는데 어느 정도 가까우냐에 따라서 설교는 천지차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준비를 평소에 안하시는 분입니다. 제목을 올라가면서까지 본문도 안 정합니다. 올라와서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전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은혜롭게 나오는 겁니다. 성령의 사람이지요. 설교하는 사람이 말씀에 늘 갈급을 느껴서 하느냐, 설교를 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요. 그렇게라도 해야 조심을 하고 은혜를 주십니다. 끝나고 나면 돌아가버리는 거겠지요. 배부른 자는 꿀도 싫어합니다. 말씀은 꿀인데,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달고 오묘한 그 말씀. 그 꿀같은 말씀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는거겠지요.
그래서 우리 공회 오래된 교인들 듣는 귀는 있고 지식은 있으니까 판단하고 어지간한 설교가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러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 참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들 가면 비판하고 앉았습니다. 어지간한 목사보다 더 선배니까. 그 경험과 좋은 지식 가지고 후손들 본이 되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고 앉았으면 참 크게 되는 거지요. 자기 변화가 되어야하는데. 7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주린자 어떤 사람이 배고픈 사람이냐, 먹을 거 찾는 사람,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프니까. 뭐든지 먹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은 바른 구원의 길에 배가 고파서 불교도 찾아보고 오만 걸 다 찾아봤다고 하지요. 갈급하니까. 그리고나서 그때부터는 성경에 대해서 갈급해서 몇 년 동안 성경만 보고 앉은 겁니다. 오래 앉아있으면 곯아서 터져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 까지를 읽고 또 읽고, 배가 고파서. 먹는 겁니다. 먹고 먹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니까. 설교하는데 교회 가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걸로 하시는데 그렇게 은혜가 되더라고. 깊이가 있습니까 당연한건데
자기를 고치는 그런 말씀, 고치지 않는 사람들, 자기를 고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말씀이 들려도 자기에게 상관이 없고 와닿질 않습니다. 변화가 안되니까. 그런데 자기를 고쳐서 자꾸 변화되어 나가는 분들은 고쳐나갔는데 뭘 고쳐야하지. 누가 설교를 해도, 주일학생들이 말해도 고칠 게 있는가 찾는 겁니다. 이게 주린 사람, 어떤 말을 해도, 욕을 하든지 큰소리 하든지 자기 고칠 것만 나오면 그게 달게 나오는 겁니다. 쓴것도 꿀처럼 달게, 대적이 없고 원수가 없습니다. 자기 고칠것만 찾는 겁니다. 아니면, 아니면 되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들 억울하다. 누명 억울하다 이런 말이 해당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믿고 그러면 그런겁니다. 예배 시간 말씀 듣는 것도 시들시들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배부른 사람입니다. 8절입니다. 본향을 떠나. 모험 정신이 약한 분들은 안 좋아하고 안 떠나지요. 본향이라는 곳은 원리가 그런 겁니다. 익숙한 곳입니다. 나를 아는 곳이다 그 말이지요. 보금자리가 되는 거겠지요. 새롭기는 새로운데 익숙하지 않으니까 환경도 나를 모르고 그런 것이지요. 내가 나를 아는 사람까지 지적해주는 것은 고쳐지는 겁니다. 그래서 본향을 떠난다는 사람은 장소적으로 공간적인 본향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자기 있는 그 곳에서 사명적으로 책임적으로 의무적으로 역할적으로 그런거지요.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만드셨다. 부부가 되고 자녀가 되었고 일을 맡았다. 사장 과장 부장이 되었다. 그 위치입니다. 목사가 되었다 집사님 반사 장로님이 되시고 그게 그 자리입니다. 자기가 본향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성도입니다. 구속받은 성도가 믿는 사람의 기본 위치입니다. 그 위치 자리라는 곳은 책임이 있고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지방선거한다고 난리인데 부산의 시장에 당선되면 권세 부리는 것이 아니고 해야할 일이 있는 겁니다. 주어진 역할, 책임과 의무. 잘하면 뽑힐 것이고 믿는 사람으로는 믿는 사람이고, 개인 개인 가정가정 학생의 위치는 학생입니다. 학생이라는 위치 안에는 공부라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게 학생의 위치입니다. 학생이 공부 안하면 본향을 떠난 겁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면 본향을 떠난 겁니다. 믿는 사람이 주일을 어기면 그날은 본향을 떠난 겁니다. 이런 게 본향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이 있었는데 에덴 동산에서 자기 본분 위치 책임을 떠나 버렸습니다. 하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건데, 먹으면 떠난거지요. 호박 수박은 어지간히 썩어도 표가 안 납니다. 껍데기가 두꺼울수록 속이 썼으면 그것도 상해버립니다. 자기 주어진 본향 위치 사명과 의무 이걸 해 버리면 그게 그런겁니다. 원래 마귀 악령은 신분이 뭡니까. 천사장이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아주 존귀한 그런 자리인데 그 자리를 그 천사가 떠나버렸습니다. 유다서에 보니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천사를 영원한 심판으로 흑암에 가두셨다. 그랬습니다. 본향을 떠난다는 말은 위치를 떠나서 책임적으로 의무적으로 역할적으로 사명적으로 떠난다. 그 말은 그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안한다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주일 안 지키면 그러면 떠난 겁니다. 예배시간을 빠지면 그런 겁니다.
남편과 아내가 위치를 떠나면 큰일납니다. 남편의 역할이 뭡니까, 성경적으로, 실무적으로는 아내를 책임지고 돈 벌어오고. 아내는 남편 내주하고 기본적인 위치입니다. 지금 세상이 엉망된 것은 이런 게 다 떠나서 그렇습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부부가 있습니까. 전부 다 본향을 떠나서, 위치를 떠나서, 어떻게 떠났다고 했습니까. 책임적으로 의무적으로 다시 말하면 자기 할 일을 안하니까. 일반화 되었는데, 다수라는 것이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어느 회사에서 광주 무슨 그걸 두고 실수를 했나보지요. 온 나라가 매장을 시켜버립니다. 그런 걸 바람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고 10원짜리 사람이 됩니다. 저게 맞나, 저렇게 하는 게 맞나, 살펴봐야하는데 전부 다 따라가고 그걸 가르켜서 한 사람이 막 때려잡으니까 다 때려잡는 걸 개떼라고 합니다. 그런 게 다 바람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그런 엉망이 된 것이, 너도 나도 자기 위치를 떠나버리니까. 자기 자리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는 사람을 가르치는 겁니다. 애초에 하나님도 없고 이 세상 사람은 없으니까 믿는 사람이 믿는 자리를 떠난다면, 주어진 현실 생활의 그걸 떠나버리면 보금자리를 떠나는 게 됩니다. 거기서 참사람 가는 게 다 있는데.
떠도는 새떼, 그리고 특히 참새같은 건 새머리고 새대가리입니다. 잠시도 안 있고 움직이는 걸, 그런 것처럼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믿는 사람이 살아가도록 책임 의무 역할 사명이 있는데 유행 따라 바람 따라 다 따라 다닙니다. 이 세상에 푸는 바람 정치 스포츠 선거 휘둘려 다니면 떠돌아다니는 새떼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세 가지 사람의 본능을 기억하고 돌아보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