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4일 주일 오후
2026년 5월 24일 주일 오후
찬송: 117장
본문: 잠언 2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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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사람은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의 본능은 수성화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짐승이라고 하면 욕처럼 듣지만, 인면수심, 무슨 뜻이지요. 사람 인 얼굴 면 짐승 수 마음 심. 얼굴은 사람인데 마음은 소다. 사람의 탈을 썼는데, 짐승이네 사람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이런 속담 이런 격언은 사자성어는 누가 만들었다고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사람인데 짐승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들에게서 생긴 말입니다. 성경에 나온 말이지요. 사람이 비록 존귀한데 처하나 성경 이전에, 아브라함 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성경이 없었는데 너무 하나님을 잘 믿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서는 성경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없다고 하면 되겠지요. 성경 읽기 전 자연 계시를 하기 전 하는 겁니다. 불신자들이 속담을 만들어냈는데 통계고 체험이고 상식입니다. 사람의 본능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인데 끊어진 사람의 본능은 생명이 없습니다. 짐승처럼 되어버리기 떄문에 관리를 해야합니다.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 돼지가 됩니다. 말하고 싶은대로 다 해버리면 참새가 됩니다. 일은 안하고 누우면 소가 됩니다. 꾀를 부리면 여우나 토끼가 됩니다. 욕심도 본능입니다. 그래서 절제 조절 관리가 되는 겁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가고 싶은데 다 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자고 싶은 잠 다 자고 놀고 싶으면 다 놀고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살아라고 어른들이 가르칩니다. 욕하는 말로 더럽게 늙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잘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인데 의롭게 살아야 얻습니다. 나의 백발을 이십대 청춘과 바꿔주지 않겠다는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20세 청춘과 바꿔주지 못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으로 그렇게 할만한 공자 석가모니 없을 겁니다. 철학자라도 80일에서 20대 청춘에서 백발을 바꿔주지 않겠다. 참 성령의 사람 많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상식이죠.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성경은 상식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 좀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씀, 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배가 고프면 뭐든지 다 먹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 말에, 가장 맛있는 반찬이 뭔가요. 시장이 반찬이다. 배고픈 게 반찬이다. 반찬 투정, 두 끼만 굶어봐도 그렇습니다. 바퀴벌레도 잡아 먹는댔지요. 거짓말 같습니까. 저 어릴 때 메뚜기 잡아서 볶아 먹었습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개구리도 잡아서 먹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단백질인데, 번데기 먹어봤습니까. 못 먹죠,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데 번데기가. 그게 애벌레같은 이런 건데, 구더기 같은 거, 그거 볶아 먹으면, 요즘도 아마 저 닭집에 가면 한번씩 주더만요. 고급이지요 그런 건, 앞으로 양식이 없으면 구더기 같은 유충 같은 게 단백질원으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못 먹는 게 없습니다. 천하의 맛있는 게 없는 겁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꿀은 음식 중에서 생명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인데 음식 중에서도 꿀은 자연 상태로 맛있고 영양있고 부정이 별로 없는, 최상의 음식이 보배 같은 것이 꿀이라고 합니다.
이런 꿀도 배가 부르면 싫다는거지요. 배부른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의 목적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겁니다. 구원이란 자기를 고쳐서 온전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상처가 났으면 고치거나 몸에 고장이 생기면 자동차나 그런 게 고장나면 수리하면 되듯이, 몸이 좀 덜 아프고 잘 움직이는 몸이 됩니다 치료를 하면. 그런데 아무리 잘해봐야 노쇠하고 멎어버립니다. 앞으로 주님 재림하시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의 몸은 어디로요, 흙으로. 영과 혼은 낙원으로, 이 땅에 흙 속에 있던 몸이 다 녹아서 없어집니까. 없어지는데 그 몸들이 전부 다 모여서 주님 재림하시면 원래 입었던 몸으로 부활하되 신령한 몸으로, 그렇게 부활을 합니다. 그 부활한 몸은 신령하기 떄문에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아프지도 않습니다. 늙지도 않습니다. 죽지도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참 공상소설같은 말인데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학생들은 들려지나요, 이걸 믿는 게 믿음입니다. 그때 몸으로 부활하기 떄문에 지금은 아프고 불편하니까 고쳐쓰기는 하지만은 도구니까, 도구는 왜 필요합니까. 도구는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연장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는 몸입니까 도구입니까. 마이크는 도구입니다. 이거 없으면 설교하는데 불편하겠지요. 무엇이 도구입니까. 사람 몸은 사람의 도구입니다. 사람의 도구라니 자아의 도구입니다. 자아라니 인격의 도구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영입니다. 영의 주체된 주격된 심신의 기능,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 이걸 자체를 인격이라고 하면 곤란할 수 있으나 자기라는 사람, 사람이라는 사람은 몸도 사람이나 엄밀하게 따지면 자기 자신, 자아, 인격이라는 속성 닮은 그게 자기 자신입니다. 그 자기 자신을 만드는데 필요한겁니다. 자기라는 자아를 인격을 자기 자체를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몸이 중요한 것이고 이 몸이 건강한데 팔등신 미남이고 미인인데 요즘 키가 크면 좋다면서요. 키큰 사람은 허리디스크에 잘 걸린답니다. 길이가 길면 뭐가 위험하지요. 쉽게 부서집니다.
평소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을 해서 말씀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를 재는 저울이다. 말씀이 잣대다 말씀으로 나를 고쳐 나가야한다. 이걸 깨닫고 아는대로 힘써 실행하기를 노력하면 늘 갈급합니다. 말씀이 가르치는 노력을 보니까 끝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은 저런 분인데 나를 보니까.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쳐도. 고쳐갈수록 고칠 게 많아지고,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요. 하나님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물질계는 알아갈수록 점점 커집니다 우주는. 우주는 100년 전에 알던 우주와 현재 우주는 더 커졌습니다. 100년 후에는 더 커질겁니다. 인간이 아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입니다. 아무리 배워도 모르겠고 고쳐도 고칠 게 많아지니까 갈급합니다. 고쳐도 고칠 게 또 나오니까 그렇게 됩니다. 고깃덩어리를 집안을 빨래를 그래서 뒤에 나오는데 물은 부드러운데, 자꾸 하면은 눌러버립니다. 바위가 달아버립니다. 그래서 기름이라야 합니다. 사람의 몸을 그렇게 자꾸 하는 것은 결벽증일 수 있습니다. 인격은 하나님 앞에 성결은 자기 자신은 씻고 또 씻고 암만 해도 부족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찬송가 117장 4절, 꿈에도 소원이. 꿈을 꾸니까 그렇지요. 꿈에도 소원이 나오는 겁니다. 잠을 자도 깨끗하기를 천국에 소망을, 배고픈 사람인데, 배부른 사람은 이만하면 됐지입니다. 66권 이름 다 알았으니까, 장수 다 알았으니까 이만하면 됐지.
주일을 한 번도 안 빠지고 지켰으니까 됐지. 오후 예배 밤 예배 새벽 예배 다 드렸는데 이만하면 됐지. 그러면 통째로 빠져버립니다. 그게 오만한겁니다. 사람이 약해서 그럴 수 있지만 배부른 것이란 그런 겁니다. 성경 읽는데 배가 부른 사람, 기도하는데 배가 부른 사람, 연보해서 배가 부른 사람, 한 달에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하는데, 자기를 고치는데에 대해서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사람 그게 배부른 사람입니다. 그런 배부른 사람은 말씀은 신령한 양식이고 내 입에는 꿀같이 달다. 그래도 열심히 받아먹습니다. 필기도 하고 쏙쏙 듣고 하는데 배가 부른 사람은 한 자리 앉아도 오순절 성령강림 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해서 말씀을 외쳐댔습니다.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섰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술을 먹었나 대낯부터 왜 저래. 그런 사람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심령에 배가 고픈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는데, 천국에 가난한 사람, 구원에 가난한 사람, 진리에 배고픈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주린 사람입니다.
말씀이 자기를 고쳐야할 건데, 쓴 것이라도 다니라. 저 쓴 것을, 쓸개같은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참을까 싶은데 고치고자 하는 사람은 달게 들립니다. 그게 복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옳은 말이 꿀처럼 하면 복있는 사람입니다. 옳은 말을 듣기 싫은 사람은 위신을 깎아내리고 그게 나오면 자기인데 그런 사람은 꿀도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음식도 중요한데, 듣는 사람들은 배고파서 찬밥 더운밥 식은밥 가리겠다. 강단에서 설교하면 정말 고치고자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령한 양식이 공급이 중단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원리가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면 나중에는 못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면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기 어려운 걸 해보면은 나중에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고쳐야겠다는 사람마다 고칠 게 많잖습니까. 없는 사람이 배부른 사람이고 말씀듣고 배부른 사람은 게워내고 안 먹기 때문에 왜 이런 귀한 음식을 너에게 주느냐. 내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앉혀놓고 이 말씀 하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못 느꼈습니다. 그러시면서 장년반한테서는 희망이 없다. 주일학생 중간반 청년반에게 있다. 주린 자는 쓴 것이라도 답니다. 어떤 말씀이든, 나 고치는데 유익한 말씀이면 달게 들려지는 사람이 주린 사람들입니다.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본향은 태어난 곳 정든 곳입니다. 우리 본향은 믿음의 본향 더 나은 본향, 돌아갈 본향 그게 천국인데 그보다도 태어난 곳이니까 아담 하와의 본향은 어딥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 그게 본향입니다. 아담 하와의 본향은 에덴 동산인데 책임과 의무적으로 그런 본향입니다. 자기 위치라는 것은 자리라는 겁니다. 선생님 자리, 선배 자리, 부모 자리, 남편 자리, 아내 자리, 학생 자리, 그 자리가 한문 글자로 뭐지요. 자리를 한문 글자로 말하면 자리 위자입니다. 위치, 그 자리를 위치입니다. 그 자리라는 말은 장소적이라는 거고 아담 하와는 장소적이면서 위치 사명적으로 하시는 본향입니다. 동방 에덴의 동산에 그 에덴 동산은 물질계 우주의 청와대 백악관입니다. 왕궁이었습니다. 그게 아담과 하와의 본향의 위치입니다. 거기 있어야 자기를 돌아보고 자라기도 하고 이루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건데 그 본향을 떠나버리면 하나님이 주신 위치를 떠나버린 겁니다. 남자는 남자의 본향입니다. 남자가 남자를 참 더러운 이야기인데, 남자가 남자 위치를 떠나면, 남자다워야한다는거지요. 성경이 아니면 아닌 겁니다. 성경에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입니다. 그건 본향 떠난 사람이 됩니다.
남자는 좀 무겁고 퉁명스럽기도하고 책임감도 있고 남자지요. 여자는 여자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그 자리 위치 본향입니다. 아담을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두셨는데 밖에 나갔습니까. 어떻게 떠났습니까. 에덴 동산에 아담이 떠났습니까 쫓겨났지. 책임 사명 의무 역할에서 떠났습니다. 통치자로 있었는데 통치를 못해버렸습니다. 하와를 놓쳐버렸습니다. 하와는 아담 눈 밖에 나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와는 아담 옆에 붙어있어야하는데, 부득이하게 떨어져있어도 마음은 떨어지면 안되고 긴장을 해야하는 겁니다. 음식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지요. 배가 많이 고프면 몸도 마음도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마음도 점점 멀어지는 겁니다. 일정이 그럴 수 있어도. 그게 정상입니다. 하와가 아담에게서 멀어져서, 딱 기다리고 있다가 하는 거지요. 하와를 살살, 좋게 말하면 달랬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꼬았습니다. 남자들 여자는 상상 달래면 된다. 직접 말하면 된다 꼬으면 된다. 맞습니까. 안 그런 거 같지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입니다. 여자를 만드는 책임은 남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와에 대한 책임을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그게 위치라는 게 있습니다. 위치를 벗어나면은 안되는 겁니다. 그게 있어야 환경이 되는데 물리적으로도 내가 있는 위치라는 것은 환경에 내가 둘러쌓였기 때문에 형제가 나를 알고 아버지가 나를 알고 다 압니다. 우리집에 천장이 바라보고 바닥이 나를 바라봅니다. 옛날 말에, 말할 때 말조심해라, 낯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단다. 벽에도 귀가 있단다. 만물이 다 듣고 보고 있는 겁니다. 내가 있는 본향에는 내가 있는 본향이니까 위치 사명 책임 다 의무적으로 있는데 나를 가장 잘 아는 환경이 본향입니다. 나의 고칠점을 잘 아는 환경, 내 주변 사람이고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 본향을 떠나면 자기를 알아서 고쳐줄 사람이나 환경이 없어져버립니다. 이번 집회 말씀이 이게 중심입니다.
자기를 바로 안다는 것은 위치를 안다. 내 위치는 어디냐. 자기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다른 차원이고 산에 있습니까 들판에 있습니까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까 공중에 붕 떠있습니다. 거기서 살아가면서 나를 아는 사람을 고쳐줄 그것이기 때문에 본향을 떠나 유래하는 사람, 여기서 거기서 기웃거리는 사람, 옷도 이 옷을 입을까 관심이 없는데 음식은 이게 맛있나 저게 맛있나 음식도 별의 별 걸 다 만들어내고 손님이 오면 식사하면 대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님 오시면 맞는 대접을 해야하는데, 어디가야할까. 공연히 맛집 찾아다니는 거 유래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복음 자리는 새에게 가장 좋은 자리가 본향자리입니다. 안심하고 새끼낳고 그럴 수 있는 겁니다.
말씀은 진리고 양날의 검입니다. 그래서 통책을 하는데, 말씀을 가지고 지적하면 다칩니다. 진리 안에, 기름, 성령의 감화가 들어가면 부드럽게 만듭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찔러도 상처받지 않고 자기를 고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사람이 고쳐져서 기도를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와 같이 친구의 충성된 권고, 주님의 친구, 우리의 친구라고 하셨으니까 주님의 친구가 됩니다. 보면 알게됩니다. 나 위해 다 바친 것처럼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다 바치는 사람이 됩니다. 아름답다. 참 보기 좋다 그 말이지요. 사람의 본능 신앙의 속성 세 가지 생각해봤습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합니다. 주린자는 쓴 것도 답니다. 복음자리 떠도는 새와 같습니다. 기름이야하고 향은 진리를 통해서 역사합니다. 기도가 들어갸아합니다. 감동 시켜서 아름답게 고치게 됩니다. 친구의 충성된 권고 사랑이 진심이 들어간 권고가 아름답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이 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