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4일 주일 오전
2026년 5월 24일 주일 오전
찬송: 81장, 83장
본문: 잠언 2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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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아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 바탕은 지식입니다. 지식 없는 지혜는 없습니다. 지식을 먼저 가져야하고, 지식은 이미 나와있는데 것이기 때문에 읽으면 알고 들으면 알고 배우면 아는 겁니다.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면서 지식은 습득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모든 지식은 객관에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내 주관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나오게 되고 지식이 많아도, 사람에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 사람의 성향에 따라 살아가는 방향에 따라 지혜는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지혜인데 세상으로 사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하여 무궁세계 천국을 향하여 살아가는 게 그 이치입니다. 집회를 통해서 서로 고치는 복을 배웠고 간단하게 전체 흐름을 살펴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 장소, 세월이 환경입니다. 고쳐가는 기회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인식이 달라야 합니다. 근본이 다르고 가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불신자 불택자들이 받지 못한 걸 우리가 받았고 모르는 걸 우리가 압니다. 그들에게 없는 천국 소망이 없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달라야합니다. 목적도 믿는 사람은 달라야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믿는 사람들을 가르켜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 성도란 다르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는 목적이 다르고 방편이 다른 겁니다. 불신자는 세상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소망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은 방편일 뿐입니다. 그래서 고쳐갈 기회가 되는 겁니다. 인생의 최고 가치는 온전한 사람 만드는 게 최고 가치입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두고 가야합니다. 가져가지 못합니다. 오늘의 명예가 내일의 수치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 마련한 지식도 마지막에 다 벗고 두고 가야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 세상에서 만든 자기 자신은 부활 후에 영원토록 영존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자기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영원히 무궁 세계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수치스러운 자기로 만들었으면 영원히 살아가야합니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무능한 자기가 되었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고쳐서 온전하게 만들었으면 영원토록 하나님 형상으로 빛나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기를 고쳐서 온전하게 만들어가는 게 최고의 가치다 라는 걸 배웠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독불 장군은 천국에서 아무짝에도 못 씁니다. 비유로 말씀 많이 드렸습니다.
사람이란 몸처럼 되어있습니다. 교회도 한 몸입니다. 천국도 그렇습니다. 고쳐가는 것을 동시에 객관과 맞아야하니까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어야하니까 객관의 눈으로 타인과 외인의 눈으로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하여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고치다가 보면 무엇이 가장 크게 걸리느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농사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데, 가장 큰 골치덩어리가 돌입니다. 돌이 바로 자기 중심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고치면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다른 사람과 맞춰나가다 보면 가장 크게 걸리는 게 돌, 그게 자기 중심이고 뽑아버려야하지 중심되어 살아있으면 어떻게 점점 다라면 자기 좋게 하는 그 중심을 뽑지 못하고 하면 쌓이고 쌓여서 미련한 자가 됩니다. 그 미련한 자가 되면은 상식이 안 통합니다. 대화가 되고 말이 안 통합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보면 미련하다고 하면 됩니다. 상식적인 게 아닙니다. 자기 말만 합니다. 미련한 겁니다. 사람이 주관이 강하면 객관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니까 누가 그러던지 해버립니다. 남의 말을 들으면서 대화라는 것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가 있는 건데, 일할 때는 상대가 있어서 좋은데 미련에는 대책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게 없으면 시기 나오고 투기 나오고 그렇게 됩니다. 고치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 주변에 사람은 전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내 몸의 부분임을 기억하고 평소에 생각하면서 일반 교계에서는 중보 기도라는 표현을 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만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고치고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고 뽑고 노력을 하면서 주변에서 고치려고 면책을 하고 통치하려고 하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렇고 본능이 나옵니다.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생겨지는 인간의 본능, 이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7절입니다. 7절 8절 9절은 인간의 본능을 말합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요소 성품입니다. 배가 부르면 꿀이라도 싫어한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배부르면 꿀도 싫어야합니다.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 부족한 사람은 먹고 싶고 가지고 싶고 채우고 싶고 그런 겁니다. 머리가 비고 속이 비고 통장이 비어있고 비어있으면 배고픈 겁니다. 지식으로 배고픈 것 능력으로 배고픈 것 경제로 배고픈 것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배부른 사람은 속이 꽉 차서 안들어가는 겁니다. 먹고 또 먹고 또 먹으면 나중에 보기도 싫습니다. 배부른 사람은 많아서 해결이 다 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배고픈 사람이 없지요. 음식으로 전부 배부른 사람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파리바게트를 강아지가 물고다닌답니다. 강아지가 비싼 빵 맛있는 빵을 강아지가 물고 다니는 시대가 지금 시대다. 배가 불러서 먹을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겁니다. 넘치는 시대입니다. 매일 새벽에 일용직 하는 사람들은 일자리 찾아서 합니다. 12만원 받고 노가다 합니다. 일자리 없으면 돌아가야합니다. 가족은 먹여살려야하고 일하러 갔는데 사람이 다 찼습니다. 배고픈 사람입니다. 그런데 배부른 사람은 회사가 수십조원을 남겼으니까 성과금을 나눠달라, 안 주면 파벌하겠다. 그런 사람은 배부른 사람입니다. 그 회사 못 들어가서 난리인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다 쫓아내버려라 내가 들어갈게. 일자리 없어서 난리인데 배가 불러서 배가 부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루 십만원 일당도 없어서 직장에 굶주려서 죽겠는데 연봉 1억을 받으면서 성과급을 달라고 그러니까, 배부른 자는 뭐든지 그렇습니다. 이 세상도 그렇고 신앙도 배가 부르면, 배고픈 자는 속이 비어있는 사람 허전합니다. 먹고 싶습니다. 가지고 싶습니다. 부부 사랑에 굶주리면 보고 싶습니다. 먹고 싶고 가지고 싶고 채워넣고 싶고 주님을 향해서 사모가 되고 주님 향한 사모가 굶주리고 사랑이 굶주리고 성결에 굶주리고 천국 소망에 굶주리는 건 참 좋은 겁니다.
그런데 이치를 말하기 위해서 이 세상 지식에 굶주리고 돈에 굶주리고 이런 저런 정보에 굶주리고 즐거움에 굶주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는 유한한 세상으로 지었습니다. 유한하다는 것은 한정이 있다는 겁니다. 이 세상 자체도 유한하고 살아가는 세상도 유한하고 유한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욕심을 넣어놓으셨습니다. 욕심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겁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채워야하는 욕심입니다. 채워 넣어야하는 마음을 욕심이라, 만족이란 채우면 되는 마음이 만족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한한 세상으로 만드셨고 사람 마음 속에 욕심이라는 걸 넣어놨는데 욕심을 채우기 시작하면 용량이 더 커집니다. 기이합니다. 뭐든지 채우면 다 차서 넘어가야하고 닫아야하는데 욕심은 넣으면 넣을수록 그릇이 커지고 많아지고 깊어집니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욕심이라서 요한계시록에서 무저갱이라, 돈 욕심도 음식 욕심도 사람 욕심도 향락 욕심도 인간의 타락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은 채우는 것이 아니고, 절제를 해야하고 조절을 해야하고 관리를 해야하는 게 인간의 욕심입니다.
채워서 만족시킬 것이 아니고 절제하고 조절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욕심을 보자기를 풀어놓습니다. 풀어놓으라고 합니다. 먹고 싶으면 실력껏 먹어라, 먹기 위해서 실력을 길러라 가지기 위해서 실력을 길러라, 너 하고 싶은대로 하기 위해서 실력을 길러라. 그런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 모두 동기 목적은 전부 악입니다. 공부하든지, 기술을 배우든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들은 전부 다 악입니다. 실력이 있을수록, 뛰어날수록 잘났을수록 그렇습니다. 공자 석가라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살았을까요. 깊이 들어가면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자기 위해서 삽니까 남을 위해서 삽니까. 이기주의입니까 이타주의입니까. 기독교는 이기주의입니다. 이타적 이기주의다. 사랑해라, 봉사해라, 희생해라, 베풀어라, 그게 기독교인데 이기주의란 그게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이기주의입니까 이타주의입니까. 이기주의입니다. 완전자니까.
연결된 완전을 닮아가는 고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아서 흠과 점이 없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이기생활입니다. 이기주의 아닌가요. 하나님은 본성 속성이 사랑입니다. 자체가 사랑이고 사랑이란 베푸는 겁니다. 상대방을 좋게하는 겁니다. 완전하신 주님이 전부 다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자기 존재를 위해서 쏟아부는 게 하나님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닮은 이기주의가 되면 본능의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게 기독교고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했는데, 그리스도 예수는 예배 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동등됨을 종의 형체를 가진 겁니다.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땅에 있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고 그게 영광을 꿇었습니다. 그게 우리 구원의 그릇입니다.
왜 배가 부르지요. 이정도하면 되지, 이만큼 했으면 되었지, 고쳤으면 되었지, 깨끗했으면 되었지, 참, 사도 바울은 내가 자책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백목사님은 나의 80대 백발을 20대 청춘과 바꾸지 않겠다. 가장 부러운 말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다시 살아도 내가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하겠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내 백발을 20대 청춘과 바꾸지 않겠다. 진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만하면 되었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잘 살고 그랬는데 살아갈 우리들이 이만큼 온전했으면 되었지 이게 배부른 겁니다. 더 이상 안들어갑니다. 그래서 지식에 배부른 사람은 가르칠 줄 알지 배울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배가 부르니까 꿀도 싫어한다. 배부른 사람은 꿀이 뭐냐, 꿀이란 이번에 배우니까 꿀은 맛있는거지요. 배워보니까 꿀은 음식이란 생존에 가장 중요한 필수 물질이 음식입니다. 생명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필수 음식이 물질인데 음식 중에서 자연 상태로 가장 맛있고 유익하고 보배로운 음식이 꿀입니다. 자연 상태로, 그러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만든 자연 상태에서 꿀보다 더 맛있고 유익하고 좋은 것이 있을까. 가장 좋은 꿀이 뭐라고 합니까. 송이꿀, 송이꿀이란, 벌집이 있는 그 상태, 그걸 송이꿀이라고 한답니다. 저는 송이꿀이 뭐지 하고 찾아봤는데 송이꿀이란 자연 상태 벌집이 있는 그 상태로 뜬 꿀을 송이꿀이라고 합니다.
그 꿀은 맛도 있고 건강에 좋고 참 좋은데 단 거 중에서 몸에 유익한 것 꿀, 설탕은 해롭습니다. 꿀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그런데 그 꿀도 배가 부르면 싫어합니다. 꿀이라도 싫어한다. 꿀을 왜 말했을까. 우리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배부른 걸 왜 말씀했을까. 배가 다 부릅니다. 그래서 일부러 금식을 해서 배가 고파보는 필요가 있는 겁니다. 배부른 인간의 인체 그 상태를 가지고 신앙에 배부른 걸 말하는 겁니다. 무엇이 배부른 사람이냐, 자기를 고쳐가는데 이만큼 고쳤으니까 됐다고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배부름이다. 말씀을 들어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배부른 사람입니다. 신앙에 배부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꿀도 싫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어떤 사람에게 꿀입니다. 자기 부족을 느끼고 깨닫고 고치기 위한 사람입니다. 고쳐야하는데 무엇을 고쳐야하는데 말씀은 잣대입니다. 말씀은 거울입니다. 내게 무엇이 묻었는지 거울을 보니까 알게 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자기 잘못을 알겠습니다. 자기의 모든 면의 부족함을 불충함을 연약함을 아는 사람, 그래서 고치고 싶다. 좀 더 깨끗해지고 싶다. 충성해지고 싶다. 이런 갈급, 배고픔이 있는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잘못을 지적하고 알려주면 쓴 것이라도 답니다. 친구의 통책도 면책도 달게 받습니다. 그런데 고치기를 원치 않고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성경 말씀 은혜 말씀 들어도. 어떤 과거의 서부교회의 사람들은 백 목사님의 설교는 최고다 그랬답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니까 좁니다. 자기 변화가 없으니까 자라가지 않으니까 늘 그게 그거고, 젖먹이가 자라서, 일곱 살이 되면 젖먹이때 먹는 음식은 새로 해야합니다. 지식에도 배우는 것도 새롭게 배워야합니다. 자꾸 자라갑니다.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고 지식도 자라가는데 늘 그 말씀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배가 부르니까 게워냅니다. 듣기가 싫습니다.
배부른 자는 꿀도 싫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해도 졸고 있습니다. 누가 졸았죠. 이름이 뭐지요. 청년이, 그런데 하루 종일 하고 있는데, 새벽까지 했는데 그러면 이건 하는 분도 초인이고 듣는 사람도 졸리겠죠. 하도 설교하니까 피곤해서 졸았지요. 성경이 안 읽어지고 그러면 배부른 자가 아닌가, 무엇에 배부른 자인가. 자기를 고쳐 나가는데, 성결에 배부른자, 주님 사랑에 배가 부른자. 하늘의 하나님 말씀도 싫다는 겁니다. 꿀도 싫어한다. 그런데 주린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채워야하는 사람 배가 고픕니다. 고칠 수만 있다면 나를 고쳐갈 수만 있다면 회개할 수만 있다면, 지식에는 알겠는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드는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저절로. 고쳐야겠는데 오래된 수십년된 돌같은 악습을 뽑아야하는데 뽑혀집니까. 되풀이가 되는데, 후외하고 눈물흘리고 새로 결심하고 죄짓고, 후회하고 눈물 흘리고 죄짓고 이걸 수십년 했는데. 못 고칠지라도, 아멘이 되고 달게 받습니다.
배가 고프면 모래도 먹습니다. 바퀴벌레도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대 사람들은 배가 좀 굶주려 봐야합니다. 넘치는 시대를 주셨다가 지나치면 배를 곪릴지 모릅니다. 바퀴벌레가 징스럽다고요, 없어서 못 먹는데, 지렁이는 좋은 단백질입니다, 쥐를 다 잡아먹습니다. 모래를 집어먹어서 2차대전 끝나고 무인도에 표류 됐는데 위장 속에 모래를 먹고 죽었더랍니다. 주린 사람은 고쳐라 그런 겁니다. 면책을 달게 받습니다. 쉽지는 않으나 나의 잘못을 잘못을 지적할 때 이게 듣기 싫으면 배부른 사람입니다. 그게 기쁘고 즐거우면 주린 사람입니다. 꿀처럼 그렇게 맛있습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배가 불러서, 성화에 배가 불렀습니까. 주님 사랑에 배가 불렀습니까 충성에 배가 불렀습니다. 성별에 배가 불렀습니까. 언행심사에 인간관계에 온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알아야하는 겁니다. 배부른 자는 꿀도 싫어하고 배고픈 자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본향을 떠나서 유리한 사람은, 자연 계시로 자기가 태어난 곳이 본향입니다. 부산 사람들은 못느끼지요. 이것도 불행입니다. 시골에서 자라다가 도시 오면 고향이 그립습니다. 제가 태어난 주소가 지금 봉산 교회가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참 복이지요. 제가 태어난 집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본향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본향은 어디냐, 하늘나라가 본향입니다.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 하늘에 있는 것이다. 믿는 사람의 본향은 모르는 것이다. 본향은 자기 위치 하나님이 세우신 위치입니다. 그 위치란, 장소적 위치도 있고 장소는 자기 사명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주린 사람은 자기 백성 어떤 사람 무슨 말해도 그렇습니다. 본향을 떠나는 사람 위치를 떠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 잘못을 찾는 사람이 됩니다. 오후에 꼐속하십시다. 사람이란 배가 부르면 이 세상의 자연 이치를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좀 생각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