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0일 수밤
2026년 5월 20일 수밤
찬송: 79장
본문: 잠언 27장 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로 집회말씀 첫 번째가 생명이었습니다. 서로 고쳐주는 인인관계를 말씀했습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하면 낫습니다. 아픈 몸을 치료하면 개운하고 좋습니다. 배가 아플 때 복통이 왔는데 약먹어서 치료하면 좋습니다. 두통이 오면 괴롭습니다. 약을 먹어서 나으면 되는데 안 났습니다. 그러다가 나으면 참 좋습니다. 이가 아플 때 치료하면 참 좋습니다. 아픈 것은 괴로운 겁니다. 고치는 것은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고깃덩어리는 몸에 병이 생기면 아픈 줄 알고 불편한 줄 아는 데 신앙은 우리가 못 느낍니다. 육으로 사는 사람은 육을 느끼고 영으로 사는 사람은 영도 알고 육도 알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육을 가지되 육을 그러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니까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고치는 것은 인간병을 고치는 것이지요. 신앙적으로 손해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몸이 아프면, 가난하면 겸손해집니다. 몸이 아프면 겸손해집니다. 지식이 많아도 교만해집니다. 건강해도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대개 젊으면 다는 아닌데 젊음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젊어도 몸이 약하면 가난하고 무식하면 수월합니다.
젊은 사람이 많이 배우고 그러면 교만하기 쉽고 고치기가 쉽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을 원형으로 삼아서 사활의 대속 공로로 힘입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고치는 세상입니다. 하나씩 고쳐가라, 고치라고 세상을 주셨고 세월을 주셨고 환경을 주셨고 온전케하라고 사활의 대속을 그렇게 주셨습니다. 그걸 못 고치면 하늘나라에서 수치스러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자라가는데에 자라가면서 잘못 자라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자라가면서 온전을 향해서 바로 자라가야함으로 고쳐가야합니다. 자라가며 온전해져가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도 일반적으로 할 때는 사는데까지 살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데 살기는 오늘 살고 내일로 살아나가는데 오늘은 알게 하셨는데 내일은 사람에게 모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 내일에는 사람에게 알려주지를 않으셔서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은 당연히 온다고 알 수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메여있습니다. 사람이 참 미련합니다.
주먹 반 정도 되는 돌멩이 넘어지면 뒤집힐 수가 있습니다. 모른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모르게하셨겠지만 오늘을 기준삼아서 큰 소리치지 말고 계속해서 고쳐나가라 생명은 그런 것이다. 생명관입니다. 그런데 그 고치는 것이 하늘나라도 세상도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이 다 있고 만물이 다 있는데 하나님께 맞으면 다 맞습니다만은 만물에게 다 맞는 기계의 부속처럼 이게 다 각각이 자기 생긴 모습과 역할이 다른데 조립해 놓은 것이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의 많은 지체가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이 돌아가는 것도 그런 것이다.
성경에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무조건 복입니다. 무조건 복입니다 현재 모습이 순종해서 현재 손해봤으면 잘못 알아서 잘못 순종한 걸 찾아볼 것이고, 무조건 일단 복입니다.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눈으로 성경의 기록 자체가 비과학적, 비이치적, 비역사적, 비통계적이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못믿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믿는 사람은 불신자들에게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믿어집니다. 믿어지니까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하고 찬송을 하고 그렇게 하는 거지요. 뭐 때문에, 말씀대로 다 살지는 못해도 믿으니까 하는 겁니다. 돌은 무겁다, 무거운 줄 알면 됩니다. 모래도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게 알면됩니다. 우리를 가르치는 비유고 계시라고 했습니다. 돌은 우리를 가르치고 모래도 우리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감정과 생각과 모든 게 연결되어버리면 교회의 터가 되고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반대세력을 깰 수 있는 우리가 되는 것이 우리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세로도. 그래서 참 믿는 사람은 세상이 돈으로 미혹하다가 명예로 미혹하다가 권세로 미혹하다가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다가 감옥에 가뒀다가 마지막에 어떻게 합니까. 목을 쳐버리고 그게 순교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 어떤 사상들도 뇌를 씻어바꿔버리는데 예수 믿는 것은 안된다. 세뇌, 공산주의 사상으로 주입하면 안되버리는데 다 바꿔버리는데 기독교 예수님 믿는 사람의 뇌는 그렇습니다. 가짜배기 믿는 사람은 바꿔버리고 진짜 믿는 사람은 가버리는 겁니다. 그 사람이 교회의 터가 되고 기둥이 됩니다. 우리도 부족하지만은 말씀이 나를 다 점령을 해서, 말씀에 다 붙들려서 내 생각을 내 욕심을 내 생각을 내 언행을 내가 교회의 기둥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둥 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부 다 붙들려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져가는 겁니다. 그 위의 새 이름을 세운다고 합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버리면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자기가 기준이 선악을 규정짓는 기준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써 완전자고 전지전능자니까 완전자 전지전능자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그러면 되는데 완전하지 못하고 전지전능하지 못한 것이 자기 중심이 되어버리면 대립이 되어버리고 적이 됩니다. 역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끊어져 자기중심이 된 사람은 불가침입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집니다. 악이란 자기가 하나님되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되는 거고 수학여행 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교사가 챙겨야하는데 왜 다 챙기냐, 오만 민원이 다 나온답니다. 그게 뭐냐, 전부 하나 둘 낳아놓고 자기가 왕입니다. 나를 건드려내 내 예쁜 딸이 이렇게 나와, 내 귀중한 아들이 이렇게 만들어, 2등을 하게 만들어. 세계적으로도 유별나지만은 이런 게 세계화 되어있고 말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그렇구나,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 되겠구나 그게 지옥의 모습입니다. 그게 가볍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돌이 무겁다. 그런 건 작은 거 같으나 쌓여서 자기 중심이 되고 왕이 되면 자기 속에 깊이, 삐뚤어진 성품이 그 사람이 마음 속에 잡고 습성이 몸 속에 자리 잡아서 믿는 사람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 많이 있잖습니까. 그런 것을 알면서도 못 끊어서 자기 중심이라는 것은 뭐가 됩니까. 자기 중심이 하나님이라 그렇지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뭐가 되지요. 하나님 만이 하나님인데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으니까 우상이지요.
모르면 안해야합니다. 모르는 것은 하는 게 아닙니다. 모르는데 모르는 길을 가고 모르는 말을 하고 모르는 행동을 하면 미련한 행동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 생활은 모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는 다른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건 미련이 아닙니다. 어디로요, 가나안으로, 그런데 그 길에 가면 가난하게 될지 굶었는지 그걸 모르는데 가라고 하시면 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이건 아닌 겁니다. 모르는 말 모르는 행동 그런 것은 미련입니다.
이성이 앞에가고 감성이 따라가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바꾸어져서 한국 사람들처럼 이성은 뒤로가고 감성이 앞서버리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분이란 감정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살행합니다. 감정을 다스리자, 다스리고 조절해야하고 이성을 따라가야합니다. 이성없는 감정은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창수같다 다른 말로 홍수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왜 사람이 시기질투하느냐,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좋으면 더 잘하면 더 나으면 배가 아픈겁니다. 알면 고친다, 지식이 있으면 고친다.
한국 사람이 가장 시기 많이 하는 나라가 일본, 바로 옆에 있는 이웃 형제 사촌끼리 한 몸인데 이걸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시기를 하는 겁니다. 인식을 바꾸는 게 참 중요한 겁니다. 한 가족이면 부부는 대개 부부는 하도 이상해서 아내가 뭘 잘하는데 시기할 남편이 있을까요. 아내가 예쁘면 남편이 좋겠습니다. 자식이 잘하면 좋은 줄 압니다. 그런데 부모 자녀까지는 배가 아픈게 없지요. 부부사이에 제 삼이 안 들어가면 시가 질투가 있습니까. 다른 게 안 들어가면 괜찮습니다. 부모 자녀 간에도 그렇습니다. 형제부터는 시기가 나옵니다. 사촌이면 더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한 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분쟁이 생긴다, 정상이 아닙니다. 바른 교회라면 교회라는 곳은 생명이 있는 곳이고 생명 있는 곳에는 생명이란 살아나가야하기 때문에 반대되는 게 없으나 정상적이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서로 다 부족하니까 의논하고 그럴 수는 있으나 시기하면 정상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면책은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오르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면책입니다. 목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교인들의 잘못한 것 지적함으로 교인은 잘못했고 올라가고 면책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합니다. 조심스러운 것이고, 1:1로써도 사랑이라야 합니다. 상대방을 고쳐서 동기되지 않은 효과가 없고 분쟁이 되기 쉽습니다. 그 다음은 사람은 내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어려울 거 같아서 연구를 많이해야하는데, 앞에 생명관은 지나갔지요. 사랑관 이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많은 사람을 만드셨고 만드셔왔는데 모든 역사의 대상은 각자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는 누구를 향하느냐, 하나님의 목적의 방향은 누구를 향하지요. 각자 자신을 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에 중심은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나를 혼자 두지 않고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두신 겁니다. 부부를 두셨고 가족을 주셨고 이웃을 주셨고 함께 살고 있는 객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들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지 않다는 겁니다. 개미 한 마리가 기어다니는 것도, 부모 자녀라면 형제라면 교인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사람이라면 내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런 면이 있는 겁니다. 내가 있는 내 주변의 사람이면 서로 서로가 고쳐주는 그런 책임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 말씀하실 때 어떻게 사랑하라고요,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나는 너는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니라,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입니다. 면책과 관계되어있고 그런 말씀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 내 눈에 들어오면 마음아피 여기되 필요하면 말을 해야하는 겁니다. 할 말은 참 조심스럽게, 해야할 말을 안하면 내가 보이는데 그 사람은 안 보입니다. 기회를 보고 기도하고 연구해서 말을 하는 겁니다. 면책입니다, 말을 말하면 기분 나쁘겠지 멀어지겠지 그럴 수 있는 게 사람이 되어버리면 사람 마음 안 상하려고 안 멀어지려고 좋게하려고 면책을 안하면 뭐라고 합니까.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듯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면책할 때, 그 사람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닙니다. 사랑을 담아야합니다. 그 사람을 묻는 게 아닙니다, 달게 받으면 됩니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해야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것은 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면책이 되지 않으면 그게 거젓이 되고 원수의 입맞춤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을 하면서 실제 그대로 살도록 노력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