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주일 오전
2026년 5월 17일 주일 오전
찬송: 128장, 148장
본문: 잠언 27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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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가 한 몸이 되는 것이고 사람의 몸이 그렇고 이 사람의 몸으로 몸의 그 원형이 바로 교회고 그 교회의 원형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 천국이 바로 하나님의 몸입니다. 많은 지체가 있는데 각각의 위치에서 각각의 기능 역할을 가지고 역할하면서 그게 전부 다른 지체들하고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어서 작용하는 게 사람의 몸입니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눈이 아무리 중요해도 눈을 뽑아서 떼버리면 그 눈은 징그러운 하나의 생체 덩어리가 되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몸에 구백냥인 것은 몸에 붙었기에 그런 겁니다. 자동차 부속은 2만개라고 합니다. 그 2만개 되는 부속이 모양이 형체가 위치가 기능이 다릅니다. 자동차, 형체 큰 덩어리가 있고 핸들이 있고 타이어 있고 많은 부속품들이 있는데 전부 다가 모양도 다르고 기능도 위치도 다른데 그게 하나로 조립이 되어서 움직일 때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굴러가게 되는 겁니다. 그게 아무리 좋아도 자동차의 중심은 엔진입니다. 엔진만 떼 놓으면 그거 고철입니다. 연결이 되어 조립이 될 때 엔진이 중요한 겁니다. 심장만 따로 떼놓으면 안됩니다. 다른 지체들하고 결합됐을 때 그렇게 됩니다.
말하자면 너를 고쳤느냐, 너는 고쳤는데 고친 네가 주변의 객관 다른 사람들하고 조화가 되고 맞아야 고친 게 바로 되는 것이지 너 혼자 아무리 고쳐봐야 맞지 않으면 고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으로 보지말고 자기가 보는 걸 두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내가 내 눈으로 보는 걸 주관, 남이 보는 것은 객관입니다. 천하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나를 고쳐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고칠 때 그 고친 것이 보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살펴서 맞도록 고쳐라. 인본주의가 되어라는 말이 아닙니다. 객관과 맞아야 비로소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고쳤는데 옆에 봤을 때 안 고쳤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남편이 너무 집요하다 예민하다 좀 웬만하면 넘어가주시오 그러는데 고쳐보겠다. 좀 힘들면 짜증을 잘 내더라
차마 자랑은 못해도 교만한 것이 아니고 위치적으로 나는 교회의 기둥이겠구나. 나는 교회는 다니는데 기둥까지는 아니겠구나. 나는 손님이겠구나. 그런 별별 모습들이 다 있습니다만 가정교회든지 공회든지 기둥이 되어야합니다. 악의 모든 세력을 깨트리는 그런 것도 되어야하고 산돌도 되어야하고 그게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인데 이게 끊어져버리면 왜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끊어지지요. 죄를 지으면 끊어집니다. 왜 죄를 짓습니까. 모든 죄의 원인은 자기 중심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무지무능한 건데 지식적을 기능적으로 능력적으로 지혜적으로 무능한다. 뇌 하나 잘못 건드리면 죽고 심장 조금 잘못되면 죽는데, 하나님과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이 되어서 끊어지고 말씀도 듣지 않고 자기 주관 고집 감정 습성대로 해 나가는 그런 사람, 한 번하고 두 번 하고 하루 하고 이틀하고 그런 인식과 그런 습성이 찌들어서 빼내기 어려운 걸 가르켜서 돌이라고 했습니다. 돌은 무겁습니다. 모래도 심히 무겁습니다. 더 무거운 게 있으니 미련한 자의 분노다. 미련을 네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미련이란, 모르면서 어떻게 할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그렇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안되는 줄 알면서 망할 줄 알면서 투자하면은 손해볼 줄 알면서 허영이 들고 허욕이 들어서 먹고 또 먹으면 배탈날 줄 알면서, 몸에 넣으면 안되는데 후두가 다 상하고 폐가 상할 줄 알면서 담배를 꾸역꾸역 피워되고 간이 안 좋은데도 술을 마시면 미련한 겁니다. 여인들은 입이 무기다. 그래서 남편의 무기는 주먹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말면 되는데 주먹 나올 줄 알면서 조아대면은 미련이 되는 겁니다. 남자가 주먹 쓰는 남자는 없을 거 같은데 남자가 아내에게 주먹쓰면 그건 나쁜 겁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 그러는 겁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정적으로는 미련은 하나님을 모르면 내세를 모릅니다. 부활을 모르고 그런 게 됩니다. 이런 게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이 바탕으로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미련하지 않은데 하나님과 끊어져서 미련한 사람이 되면 대책이 없는 겁니다.
자기 중심 깔려있고 모르지요 생각을 안하지요 준비 안하지요, 아무 말도 안 듣지요. 말이 통합니까 이치가 통합니까 상식이 통합니까. 그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억울하다 안 맞다 분을 바라면 대책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미련한 자를 넣고 찧을지라도. 그게 미련한 자의 분노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더한 게 있으니 같은 것인데 분은 잔인하고 가장 크고 무서운 게 투기라는 것입니다. 객관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사람의 분과 노는 자기에 대해서 나옵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의견과 자기 판단과 안 맞으면 억울하다 싶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 감정이 하나 둘 쌓이다가 폭발하는 게 노가 되는데
하나님은 완전자이시므로 늘 선이고 의고 사랑이고 구원인데 사람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잘 안 그러겠지만 분을 바라면서 의분이라고 핑계대면 더 큰 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분을 내도 죄를 짓지말고 가지면 안되는 겁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참수같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무서운 게 투기라는 거죠. 단계가 있습니다. 투기보다 좀 못한 게 질투고 그것보다 더 못한 게 시기인데, 시기 다음 질투 다음 투기인데 나를 기준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생겨지는 겁니다. 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생겨지는 겁니다. 나와 먼 사람, 전쟁도 싸우면 집안 형제끼리 싸우고 사람 사는 관계에서 가장 많이 싸우는 게 부부 싸움입니다. 자주 합니까. 가장 가깝기 때문에. 그것보다 덜한 게 형제 간, 그것보다 덜한 게 이웃, 직장 간에. 나를 기준으로 가까울수록 분쟁이 생겨지는데
원래 사람이란 하나님 한 분에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셨고 갈비뼈를 빼서 하와를 만드셨고 둘을 만드셨습니다. 둘인데 원래는 하나였습니다. 가인도 나오고 아벨도 나오고 셋도 나왔습니다. 김정민 선생님 자녀가 다섯입니다. 원래는 한 분이었습니다. 한 분이 결혼하고 결혼하면 둘이 아닌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부부는 한 몸이지요. 그러니까 다섯이 나온 겁니다. 위로 올라가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다 나왔습니다. 불신자들까지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들도 할 수 없는 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전부 다 한 형제인데 이 세상에서 죄를 짓게 만들고 죄를 통해서 근본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란 이런 모습이다, 이런 세상이다 하는 것은 그래서 사람도 세상도 보면 바로 보이고 다른 눈으로 보이면 어떤 인간의 종교 사상을 보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보여 주시면서 성령을 주시면서 이제는 알았으니까 경험했으니까 하나님과 끊어져 살지 말고 중심하고 목적하고 방법을 가지고 고쳐 나가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왜 배가 아픕니까 더 좋아야지 형제가 잘되면 좋아야지요. 그게 전부 질투입니다. 자기를 기준해서 자기와 안 맞기 보다 분인데 자기보다 낫거나 더 좋거나 하면 그러면 시기가 나옵니다. 집사님이 사이가 안 좋은데 한 사람만 챙기면 내가 사팔뜨기가 되겠다. 이 집사 봐야하고 이 집사 봐야하고 그래서 사람이 그게 시기 질투라는 거지요. 그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투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대책이 없는 겁니다. 시기가 쌓여서 질투가 되고 질투가 쌓여서 투기가 되면 하나님의 한몸된 교회를 쪼개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몸을 쪼개는 죄가 되기 때문에 용서치 않는다.
하나님은 주님은 우리 남편인데 아내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러면 신랑되신 남편 주님께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투기하십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보다 더 가증을 챙겨야합니다. 어린 신앙 해당되지 않습니다만은 가정도 주를 위해 살아야하는데 가정을 앞세우면 안됩니다. 부부는 가까워야하는데 주님을 인해서 주님을 모신 부부가 되어야하지 그냥 가까우면 멀어지게 됩니다. 사업 때문에 믿음이 식어지면 점점 심해지면 가볍게 경고하시다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복습을 했는데 오늘 말씀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음이라. 얼굴보고 책망하는 겁니다. 대놓고 그러는 겁니다. 그게 면책입니다. 제가 여기서 아무 집사님 졸지 마십시오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했으니까 숨은 사랑보다 면책이 더 좋은 사랑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사랑입니다. 옳은 면책은 사랑이라야합니다. 동기와 목적이 사랑이라야합니다. 그러지 않은 면책은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은 구원입니다. 사랑을 고치는 게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앞에 대놓고 잘못을 지적하는 걸 면책이라고 그러는데 그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아서 효력이 있고 효과가 좋은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만큼 드물다는 거지요. 그래서 말하면 거의 다 싫어할 뿐 아니라 원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면책을 잘 못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면책을 하려면 많은, 면책이란 직접 말하는건데, 숨은 사랑은 드러나지 않는 사랑입니다. 기도하고 생각하고 살피고 그게 숨은 사랑인데 그것보다 면책이 더 나은데 받는 그 상대방이 어렵기 때문에 실패가 오히려 많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면책을 하려면 인간 관계가 아주 잘 되어야하지요. 부모가 자녀를 면책하는 것은 그렇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면책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책도 사람이 없는 그 사람은 부작용이 되게 되는 겁니다. 면책은 동기와 목적이 잘못을 하는 사람인데도 효과는 좋은데 부작용이 많으니까. 그러면 할 수 있으려면 관계가 바로 되어야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가 참 중요한 것이고 평소에 많은 기도와 안타까움이 되는 것이고 숨은 사랑은 결과는 좋은데 시간은 오래 걸리는 걸 말합니다. 친구의 통책, 통책이라는 말은 아프게 책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프게 지적하는 것이 상대방을 잘못을 보고 지적해서 하는 건데 치료할려고 그러면 아픕니다. 약을 먹던지 주사를 맞든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는 아니까 치료하는 것처럼. 친구라는 말은 가까이 있는 겁니다. 이게 친구 관계입니다. 그래서 알기 때문에 고치려고 그렇게 하는 아픈줄 알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통책인데 내가 헤아려서, 잘못된 것을 두면은 실패가 되고 구원이 실패가 되고 안타깝게 여겨서 상대가 고치는 아픔만큼 아픔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바른 통책이 되는 겁니다.
목회자가 교인을 면책 통책을 해본 적이 없지는 않지만 저도 못할만한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관계가 정립되어야하고 많은 부정이 생기기 때문에 안하느니 못하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는 겁니다. 면책은 숨은 사람보다 낫습니다. 사랑이 동기 목적이 되어야하고 다른 사람이 통책을 받을 때는 달게 받을 수 있는 게 있는데 그렇게 되면 성자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지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목적은 구원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하는 게 목적이고 그 모든 것은 우리를 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고 우리를 고치는 것이고 자기를 고치고 형제를 하나씩 살펴서 고쳐나가는 것이 참사랑이다. 이 말입니다. 5절 6절은 사랑을 말하는 겁니다. 알기가 참 어려운 것이지요 간단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