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8일 금밤
2026년 5월 8일 금밤
찬송: 10장
본문: 사도행전 1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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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방해하는 역사가 참 많은 중에서 마귀가 복음운동 방해하는 역사로 나타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때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유대인들처럼 어지럽게 하는 경우도 있고 귀신처럼 교묘하게 한 편인 척 하면서 통째로 삼키는 이런 방법도 있고 마귀는 별별 수단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이게 그대로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미혹시킨 그 마귀나 이때 귀신 들린 여종 안에 있던 그 마귀나, 마귀는 똑같이 한 놈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신 분이신데 마귀 한 놈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탈을 쓰고, 가면을 바꿔쓰고 속에는 복음을 방해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복음을 전하든지 하면 별별 모습으로 마귀 무리에게 방해하는 역사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때는 이런 귀신들린 여종의 역사는 아차하면서 넘어가버리는 겁니다.
신천지가 교회를 삼키는 방법 중 하나가 교인들을 안으로 끌여들여서 길들이고 교회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 되버리는데. 이 여종을 비서처럼 말하던 같은 편으로 그렇게 하고 떠났더면 귀신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그런 게 되는 겁니다. 백 목사님 가실 때 82년도 그런 게 많았는데 바울이 아시아 교회를 떠나면서 흉악한 이리가 너희 속에 들어와서 양떼를 삼키려고 양떼를 자기 사람 만들 것이라는 주의를 줬고 82년도 백 목사님께서 편찮으셔서 사경을 헤매다가 사후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가시고 나서 그대로 되어서 총공회가 흉악한 이리에게 다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되풀이가 되고 있는 겁니다. 신앙 생활하는데에도 별별 모습 가지고 그걸 기억을 해야겠습니다.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훼방을 합니다. 유대인들이 훼방은 어디서부터 난 것인가. 유대인들은 예수님들의 본국이지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일을 시작하면 주님 재림이 가까웠다는 징조라고 했습니다. 2000년 동안 이런 믿음을 가지지 않고 유대교를 믿고 있는데 그들이 회개하고 그런 생활이 시작되면 주님 재림이 임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러더러 유대인 중에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상극처럼 그렇게 원수처럼 생각을 합니다. 히틀러나 유럽 쪽 사람들이 유대인들 그렇게 죽이고 미워한 것은, 독일 사람들 믿는 사람들 많지요. 루터가 어느나라 사람이지요. 독일 사람이지요. 칼빈은 스위스 사람입니까. 독일 사람이니까 많은데 독일이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아주 그렇게 전멸시킨 것은 유대인들이 원수인 겁니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원수입니다. 예수님을 못박아 죽이고 나서 바울이 전하는데 따라다니면서 핍박을 하고 그 이유가 뭐냐, 말하자면 기득권이라는 함정에 빠진 겁니다.
정통이라는 함정에 빠진 겁니다. 정통이 바침된 정통이라는, 새롭게 나오는 그런 걸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다. 수천년 동안에 아브라함의 계통이었고 그렇게 이어져왔는데 거기에 반대되는 율법을 부정하지 않았는데 그들 편에서 볼 때 부정하는, 안식일을 지킵니까 제사를 제대로 지킵니까 부정하는 것이 되니까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해서 죽였는데, 뭐든지 그렇습니다. 옳은 길에 섰을 지라도, 주류에 섰을 지라도, 정통이 정통적인 것은 옳고 바르기 때문에 오래토록 넘어지지 않고 유지되면서 이어져오게 되는 겁니다. 신라 시대에 신라가 김씨 왕조로 1000년이 이어졌지요. 삼국 통일하고, 그런데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옛날이기 때문에 덜했지만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500년 동안 전주 이씨 왕조가 있는데 많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중간에 반란 일으켜도 반란 일으킨 그 사람이 제가 왕이 되지 못하고 이씨 조선 이성계 후손 중에서 왕을 세워놓고 실권을 잡을지라도 왕은 세워놓는 겁니다.
그런 것이 정통인데 다른 데에서 들어가면 전체가 다 바뀌어져버리는 게, 그래서 정통이라는 것은 정통적으로 이어져오는 것은 옳기 때문에, 바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인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세상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천주교가 천 년 이어온 것은, 천주교는 틀렸는데 처음부터 틀린 게 아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세계로 커지면서 기독교인데 그게 세월 속에 옳고 바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박해 핍박 받고 황제가 신앙 자유를 주고 나서부터 완전히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데 옳은 복음이고 바른 복음이라서 수백년 내려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되는 겁니다. 타락이 된 천주교가 되는 것이고. 도태가 되는 것이고 지금도 천주교는 이어지는데 틀린 것은 알고 있는 것이고, 옳은 개혁교가 이어져서 이어져오고 있는 겁니다. 그 안에서 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역사는 반복이 되는 겁니다. 지금 생전에 그렇게 되어있었고 지금도 꼭 같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겁니다. 정통인데 그 안에서 노래만 부르고 있는 거지요. 같은 말 자꾸하기 그렇지만 백 목사님 설교를 재독을 합니다. 그 재독을 하면서 백 목사님의 설교 88년도 설교를 재독하면서 그들의 모든 행태는 백 목사님 노선을 다 깨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개인들의 신앙 생활 교회 목회 방향이 백 목사님 노선을 탈선하면서 재독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 목사님들이 100명 넘고 교인들이 몇 천 명 되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였고 유대교였고 여기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런데 세월 속에 유대교가 옳았지만 변질되어 썩어버려서 완전히 바꿔버렸고 주님이 옳아서 그렇게 됐고 세월 속에 또 변질 되어 천주교 되어버렸고, 그 개혁교가 옳기 때문에 이어져왔습니다. 이게 또 변질이 되고 썩는 겁니다.
백 목사님 가시고 나니까 짧아진 거지요. 안에서 또 같은 모습이 되풀이 대고 있는 겁니다. 율법을 들고 있으면서 주인을 못박아 죽이고 성경을 주장하면서 다 튕겨버리고, 칼빈주의를 외치면서 진짜 이단은 정제해버리고, 율법의 주인이 못박아 죽였고 천주교는 성경 읽고 있으면서 성경 읽는 사람을 다 없애버리고, 칼빈 주의는 개혁교는 칼빈 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진짜 칼빈주의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은 백 목사님 목사를 재독하면서 백 목사님 노선을 펼치고 있는 사람을 쳐 내는 겁니다. 이게 보이면 그때그때처럼 되는 것이고 안 보이면 찬송가 94장을 노래 부르고, 94장 일부러 한 번 했습니다. 하도 안한다고 말이 있어서. 왜 94장을 찬송 안하냐, 사활의 대속을 안하냐. 그러면서 94장은 찬송이 순교 찬송입니다. 순교자의 찬송, 마지막 3절이 주님께로 가리라인데 우리가 그 정도 됩니까. 장례식 내도록 그거 했습니다. 다른 건 뭐했지요. 장례식 때, 180대 주가 맡긴 모든 역사 그거 했습니다. 그때는 장례니 그렇다 치더라도, 94장을 노래하면서 백 목사님 설교를 틀어놓고 하는 짓은 다 깨부수고 있는 겁니다.
서부 교회에 30년 넘게 성찬식이 없습니다. 정통 신학교를 졸업한 박사가 거기 목사입니다. 시무투표도 안합니다. 정상 아니지요, 그 밑에 교인이 1000명 될려는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이 계시던 사람들 생전 다 있을 것이고 교역자 목사들 수십명인데 다 배우고 있는데 뭐가 뭔지를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밥통 목사인지 동기 목적이 다 환하게 보이는 거지요. 별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 공회도 지나고 나면 또 모르는 겁니다. 되풀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중심의 주체가 하나님의 주체가 되고 진리가 중심이 되고 자타의 구원 중심이 되어야 되는 거지, 그래서 유대인들은 정통이라는 함정 속에 빠져서 진짜 정통인 사도 바울의 생명을 반대하고 훼방하고 말았습니다. 곳곳 마다 많이 영접했는데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더라. 지역에 따라 그렇게 지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걸로 살면 그런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지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을 초월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나는 것은 가나안으로 왔는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그런 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 환경, 직장 환경, 가정 환경이라면 혈육입니다. 혈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신앙 생활은 어렵습니다. 집안적으로 보면 형제 간의 우애가 참 좋은 집안이 있습니다. 그런 집안들은 한 사람이 잘 믿으면 다른 사람 전부를 다 합니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그렇게 전도하다가,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옳고 그름이 생겼을 때 그렇게 우애 좋은 사람들이 옳고 그른 문제가 되었을 때 뭐 따라갑니까. 혈육을 따라가버립니다. 100의 99는 다 그렇습니다. 혈육 정실 떠나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다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혈육정실 지방정실 동족정실, 환경에 영향 받을 수 밖에 없다. 가정 영향, 친구 영향, 그런 영향 받을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기록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런 걸 초월해야합니다. 장점을 가지고, 단점은 끊어버려야합니다. 그리고나서 아닌 건 아니라고 끊을 수 있어야하는데 전도 목적으로 계속하다가 나중에는 끌려가버립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신사적인 것은 백 목사님은 신사적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잘못 쓰면 이 세상에서는 뭇는 말인가요. 인본적, 인본주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좋게 해석한 겁니다. 그 신사적인 장점을 이치적으로 그런 사람으로 했습니다.
우리는 다 각자 자신의 환경을 알고 초월해서 그런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합리적이었습니다. 이번 집회 말씀으로 간절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준비한 만큼 간절했을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 준비 말씀으로 했지만 집회는 마쳤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은 이제 없어도 되는 거지요. 그런거지요. 집회 준비 말씀으로 집회 때 말씀을 받았는데 집회가 끝나니까 그런 거 없어도 되는 거지요. 집회 때나 평소에도 누가 섰든지 간절한 말씀으로 봤고 그게 옳은 겁니다. 지금부터는 평소 말씀 들을 때 말씀을 갖고 간절한 말씀으로 그러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이것이 무엇이지요. 이것이 무엇이지요. 본문에 기록된 신사적입니다. 합리적 이치적 논리적으로 우리는 그런 사람 되어야겠고 간절한 말씀을 듣고 이런 것이 그런가 하여 상고했는데 이것이 무엇이지요. 받은 말씀이지요. 각자 그 말씀, 잠언 27장 말씀, 이게 그러한가. 이게 집회 제목이 뭡니까. 고치는 복이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배운 말씀 가지고 들을 때 이것이 그러한가. 강사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렇습니까하고 받아먹으면 되는데 젖을 먹을 때는 그냥 젖만 먹으면 됩니다. 가르치면 배우면 되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때에는 들으면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생각을 해야합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저축하는 것도 이것이 그러한가. 학교에서 선생이 가르치면, 무조건 머리 속에 집어넣을 것이 아니고 이것이 그러한가.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된 겁니다. 하니까 아 그렇습니까. 신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모든 건 저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학교 선생님, 대학 교수님이 가르치면 이것이 어떠하다고요. 이것이 그러한가. 교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는데 내가 생각해 봐야하는 겁니다. 가르친 걸 받아먹으면 세 살 짜리가 되는 거지요.
자라갈수록 학교에서 배운 지식 살펴봐야합니다. 여기도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상고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밤 말씀 그래서 복음 운동을 방해하는 점치는 종 있어야합니다. 신앙 생활 해 나가다 보면 별별 모습의 운동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게 막혀버리면 막히고 마는 겁니다. 저것의 동기가 뭐냐, 어떤 사람이 생겼을 때 뭐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하느냐, 말을 들으면 안 계시니까 말하고 되는데 말씀을 잘 듣던데 어느날 교회 간판이 뭐라뭐라 그럽니다. 그러더니 교회를 안 나옵니다. 그분이 참 안타까운게 이런 말 들었는데 뭡니까 하고 물어봐야지요. 전도한 분이 있는데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자기 교회 데려가려고, 그 간판보도 그런거지요. 그래서 뭘 들었는지 모르지만 안타깝게 나온거지요. 간판 이런 말을 들었는데 뭡니까 하고 물어봐야죠. 그렇게 말 한 마디 휘둘리면 평생 그렇게 되는 겁니다. 참 안타까운 거지요. 뭔가 안 보이는 것이 보이면 왜 그렇게 되는거지, 따져봐야지요. 뭐든지 우리는 저 말하는 동기가 뭐냐, 이 사람이 나한테 왜 말하지, 나한테 와서 교회인데 남의 교회 간판을 왜 말하지. 보면은 보이는데,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와서 그러면 목적 동기가 뭐지. 불순한 거지요.
그런데 끌려가면 못하는 거지요. 말을 들으면 저게 뭐지, 왜 저렇지 뭐 때문이지 무엇을 위해서 동기 목적 원인 살펴봐야합니다. 이걸 따져볼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휘둘려서 그런 뼈대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 하다가 별별 미혹이 다 있습니다. 기득권의 함정, 정통이란 우리 교회도 28년째인데 안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고인물이 되는 거지요. 백 목사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덜덜 볶았습니다. 생각해보시겠습니다.
집회 말씀 생각해보시고 신앙 생활 돌아가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