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일 주일 오전
2026년 5월 3일 주일 오전
찬송: 19장, 43장
본문: 사도행전 17장 10절 -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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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지혜가 특별해서 지혜의 대명사입니다. 권세로 부요로 지혜로 그러다보니 평강의 사람이었고 솔로몬 시대에 나라 전체가 평안한 그런 나라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올라갈 곳 다 올라가봤고 취해볼 거 다 취해봤고 누려볼 거 다 누려봤습니다. 그게 솔로몬이고 자기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천하 모든 사람들이 다 올라가보고자 하는 천하 모든 사람들이 다 누려보고자 하는 그런 것들을 누려보고 먹어보고 가져보고 올라간 다음에 것은 내가 다 해봤는데 결론은 헛되고 헛되더라. 아무것도 아니더라. 아이들 말로 전부 뻥이더라. 그 솔로몬의 내린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본 사람들은 육천년 세월에 권세 가졌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다 어디갔지요. 재물 모았던 사람들 수없이 많습니다. 다 어디갔습니가. 머리 좋고 잘난 사람들 참 많았습니다. 지금 다 어디갔지요. 공동묘지 속에 들어갔고 썩어서 흙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솔로몬 살아생전에 그렇게 깨달았고 성경으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전도서 성경 중에서 11장을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너는 너의 식물을 물 위에 던져라.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것 이 세상은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이 있는데 제외시켜놓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알려주신, 너는 내 백성이다 아들이다. 내가 알려주지 않은 그런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너는 내 백성이고 아들이고 내가 너에게 알렸다. 중생된 사람이라고 그러고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시 책임을 물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걸 식물이라고 그렇게 비유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네 양식 심신과 세월과 소유라고 했습니다. 그걸 물 위에 던져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말씀이라는 것이 참 많이 나오고 찬송가도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나오는데 말씀은 참 묘합니다. 말씀이 심오하다 깊이가 있다 이런 뜻 보다도 하나님의 뜻이고 생각이고 섭리고 하고자 하시는 모든 것을 담아놓은 것이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모든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가르치면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너의 것을 구원에 투자해라. 자기 성화 사람의 수입입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자기 말씀의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 존경스럽지요. 자녀에게 아버지 어머니 닮아라, 아버지 어머니 이상 닮지 마라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으나 깊이 냉정하게 나만 닮아라 그런 분이 얼마나 되십니까. 하나님을 닮은 사람, 너 자신을 말씀으로 준행하고 연습하고 연습해서 사람 자체를 바꿔라. 이러면 성경 전부 다 풀어야합니다. 그리고 너가 그런 사람 된 것처럼 너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라. 사람의 구원은 교회를 완성 시키는 것이고 교회라는 것은 무엇으로 가르쳐 놓았습니까. 사람의 몸과 같다. 몸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수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생명들의 결합체가 몸입니다. 유기적인 결합체가 몸입니다. 생명들의 유기적인 결합체입니다. 너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라. 사랑입니다. 이게 없으면 신앙 생활을 못합니다. 거기에 시간도 소유도 다 투자해라. 여러 날 며칠 후 하루 밤 나그네, 다른 곳에 보면 너의 제물을 동정하는 자가 되고 나눠주기를 좋아해라. 마음을 높이지 말고 소망을 두지 말아라.
제물은 물질도 제물이고 부동산은 부동산인데 사람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버리니까 내 땅이 안되는 겁니다. 마지막 사후 세계에 좋은 터가 된다 불의의 제물로 친구로 사귀어라. 타락한 세상이므로 다 그렇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줘라. 그 사람을 새사람 참사람으로 만드는데 힘을 써라. 구름이 차면 떨어진다. 달이차면 넘어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었다고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구름의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진다. 늙어가네, 곧 넘어가겠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나무가 땅에 쓰러지면 어떤 나무든 죽는다. 풍세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투자하지 않는다. 구름을 아는 자는 거기 저장하지 않는다. 잉태된 아기의 태아의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듯이 사람은 모르게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할 일이 뭐냐, 지혜롭게 살아라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롭습니까.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여기서도 제가 우리 동천개척 후에 28년째 29년째입니까. 그동안에 많은 말씀을 드렸고 제 책임도 크지만은 말씀으로 많이 했는데 마지막에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본인 책임입니다.
헛된 것에 허비하지 말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서 투자하는 사람이 되어져라.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오늘은 집회 준비 말씀으로 생각해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부터 3절까지를 살펴봤습니다. 신구약 성경 모두 몇 권인가요. 66권, 계시록 빼면 65권. 서론과 본론을 다 담아서 정리하는 걸 결론이라고 합니다. 마무리 짓는 걸 결론이라고 합니다. 거기는 서론 모든 게 다 들어있습니다. 제목입니다. 제목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인이고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어가는 게 성경 전부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이란 이 세상에 펼쳐지는 말씀이다.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예언의 말씀 첫 번째 그리고 듣는 자들,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듣는 것은 듣는 자들인데 풀어보면 성경을 풀어 해석하는 것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바로 깨달아서 바로 가르치는 그 설교를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물건 좋다고 그러지요. 요즘 인터넷이 내 게 최곱니다. 그러지요. 그러면 나중에 뭐가 나옵니까. 모습이 나옵니다. 인간의 모순은 그런 것입니다만은.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보는 자 복이 있다. 설교는 자기 자신이 전하는 그대로 살아서 변화가 되어가지고 설교하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역사해서 그 말씀 설교자 들으면서 변화가 되는 이게 진짜 설교입니다. 말을 더듬더듬해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하는 것이고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내일부터 집회가 시작이 됩니다. 3박 4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오일밤 예배에 그걸 말했습니다. 구약시대 때 성경도 세상도 중심은 유대인들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심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있고 예루살렘이 있고 성전이 있습니다. 제단이 있고 제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 어느나라 보다도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이 있습니다.
집회 장소는 공기가 참 좋습니다. 전국에서도 그만큼 있는 게 있지만은 넓고 깨끗하고 좋지만은 자연 풍경도 경치도 물도 말곡 깨끗합니다. 그러면 다른 곳보다도 나을 겁니다. 거기 가는 그 사람들은 다는 아닌데 거기 모이는 분들은 대개 괜찮은 분들입니다. 집회 왔다고 그러면 바깥 세상 사람들보다는 괜찮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디든 따라가도록 하지만은 집회 장소에 복이다. 가서 텐트에도 있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면 복이다. 예배를 드리면 복입니다. 마지막 둘 남았네요. 말씀을 잘 들으면 복입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복 그걸로 준행을 하면 복입니다. 너 참 말 잘했다 헛말 아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거 같습니다. 내일 집회 말씀을 두고 본문을 생각해봅니다. 베뢰아 사람들, 1차 2차 3차 4차는 로마행이라서 잘 안치는데 1차 2차 3차는 전도여정이고 4차는 로마로 가는 거고. 가는 중에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라는 곳에 갑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그 성에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 종이 하나 있습니다. 점을 잘 치는 귀신이 들어가니까 뭘 잘 알겠습니까. 귀신이 들어가니까 알기를 얼마나 잘 압니까. 귀신같이 아는 거지요. 그래서 귀신이 들어가서 점을 치는데 너무 잘 맞추는 겁니다. 주인이 여럿인데 그 여종의 주인들이 그거 때문에 수입을 많이 보고 있는데 바울이 전도를 하니까 귀신이 바울을 알까요 모를까요. 이 여자 종이 바울을 따라가서 하는 말이 위대한 종이다. 그럽니다. 그걸 보고 며칠을 고민합니다.
그 여자의 정체가 귀신 들린 점치는 여종인데 그게 보고 우리 편입니다 하고 도와주니까 바울이 고민을 하고 기도하다가 내가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그러니까 나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점치는 재주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종의 주인들이 귀신들려서 사람들 다 알아맞히고 돈을 벌었는데 그러니까 바울을 실컷 두드려패고 감옥에 보냈습니다. 감옥에서 찬송을 하니까 감옥 터가 덜덜 움직이고 다 열려버리고 죄수들 수갑이 다 풀려집니다. 그러니까 졸다가 보니까 감옥 문이 열렸고 그러니까 다 도망갔나 싶어서 죽으려고 하니까 우리 여기 다 있다 그러지 말아라. 그러면서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날 밤에 빌립보 교회가 섰습니다. 전도를 계속 다니는데 여정이 데살로니가 지방에 갔는데 복음을 전하는데 전도하는데 이방인들이 듣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깡패들 이런 사람들 동원해서 어지럽게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더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베뢰아라는 곳에 갔습니다. 17장 7절. 베뢰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베뢰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도행전 17장 10절 베뢰아로 보내니 유대인의 회당 상대적으로 데살로니가 어떻다고요. 신사적입니다. 신사적이니까 좋습니다.
말씀을 받는데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합니다. 따지고 살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지방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건 환경의 영향을 받고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건 성경적으로 맞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섬지방에 사는 사람, 일본 사람들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일본은 섬입니다. 섬은 전부 바다기 때문에 안에 갖힌겁니다. 그래서 안에서 싸우면 자멸해버립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단합이 굉장히 잘 되는 겁니다. 안에서 싸우면 자멸해버리니까. 중국 사람들은 대륙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이 세상 전부 다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압니다. 중국이 세계다. 중국인들 특징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반도, 그러니까 좁은 땅이니까 경상도 호남 충청도 서울 다 다르지요. 충청도 어디 서울 깍쟁이 전라도 뭐뭐. 이 베뢰아 사람들은 합리적입니다. 지나치지 않고 따져야합니다. 넘어가지 말고 보면 들으면 접하면 생각해보고 따져보고 비교해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을 찾아갑니다.
종교라는 것은 무엇을 찾는다고 했던가요. 궁극을 찾는 건데 궁극이란 끝입니다. 신앙은 이 베뢰아 사람들의 성향입니다. 신샂거입니다. 바울이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처음 듣는 복음입니다. 지금이야 사활의 대속 공로 다 익었습니다. 그런데 기본 구원 건설 구원을 말하니까 온 교계가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이 교훈이 어디서 났느뇨,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제사장 서기관들이 말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겁니다. 말라 비틀어진 율법만 외식덩어리 율법만 노래 부르고 있었는데 율법의 알맹이를 가르치니까 이거 전부 다 이단이다. 바울으 전하니까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보자, 알아보자, 살피는 겁니다. 학교 수업을 하는데 30명도 안되지요. 요즘 초등학교 한 반에 23-24명. 다 비슷하겠지요. 저희는 한 반에 80명이었습니다. 5000명이 한 학교에 있었습니다. 한 스무 명이 앉아 수업하는데 90퍼센트가 잔답니다. 수학을 가르치는데 10퍼센트가 수업 듣는답니다. 수업시간에 앉아서 공부하면 그렇게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겁니다. 그런 학생이 뭔가 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말씀 들을 때 설교자의 말로 하면 그렇습니다. 많은 총공회의 사람들이 백목사님만 목사다. 그거 큰 불행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듣는 사람들이 간절한 말씀으로 들으면 한 사람이 간절하게 말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 예배 시간에도 내일부터 있을 집회에도 어떻게 드려야한다고요. 간절한 말씀으로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세 번째, 배운 말씀으로 이것이 그러한가. 들은 말씀은 새김질 하는 겁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공부합니다. 정말 집회 기관에 예루살렘이 될까, 과연 그런가 느껴서 설교하는데 본인들이 듣고 그래야합니다. 신사적이었습니다. 합리적이었습니다.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12절에 보니까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뭐든지 자기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말씀 듣는 자세는 신사적이라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치적이야합니다. 신사적인 도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간절한 마음을 들을 때 그렇습니다. 억지로 앉아있는 것보다 한 말씀 들어보면은 과연 그럴까. 말씀을 가르칠건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라 항상 깨어서 하기를 자기를 하나님 앞에 계산하는 것처럼 하느니라.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떨면서 쉬지 않고 설교했습니다. 설교자가 특별하게 타락한 사람이 아니면 알면 좋겠다. 설교를 합니다. 내일부터 우리가 하는 말씀을 그렇게 나옵니다. 몇 달 전부터 교재 준비하고 그렇게 하실건데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목사님은 설교하시고, 나는 시간 보내고. 이 세상에 무엇을 그렇게 가지고 붙들고 노력할 게 있다고. 이런 것은 흘러버리는 게 아닙니다. 참석해서 모두 하면 되지요. 신사적인 사람이 되어서 합리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상고하는 그런 우리 주닙 자세가 되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