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일 주일 오후
2026년 5월 3일 주일 오후
찬송: 44장
본문: 사도행전 17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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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하며, 바울이 심히 괴로워 돌이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바울이 전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중심은 사활의 대속입니다. 죽으심과 부활이 왜 그런지 이때 바울이 전하는 그 사활의 복음은 지금도 그렇지만 더 그렇겠죠.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는 겁니다. 성경을 근거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래서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죽었다가 부활했는데 그 이름이 예수다 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빌립보 성에서 점치는 여종이 있는데 귀신이 들려서 모든 걸 알기를 어떻게 압니까. 귀신처럼 아는 것이 그냥 말이 아닙니다. 양면이 있겠지요. 귀신처럼 하는 것은 마귀니까 틀린 건데 일반적으로 귀신인데 잘 안다,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귀신 들린 여종이 귀신이 들었으니까 사람이 모르는 걸 보고 아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누군지 알고 아는 겁니다. 그래서 여종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 너희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한다고 합니다. 귀신들린 종들의 말이 어떤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구원의 길을 전한다. 맞습니다. 귀신 들린 여종이 틀린 말이 아니라 정확한 말을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 그리고 이 말씀의 복음은 구원의 길이다. 그러니까 받아라 이거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이더라도 긴가민가한데 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면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하니까 바울이 어떻게 했다고요. 바울이 심히 괴로워합니다. 왜 괴로워합니까. 이걸 찾아봐야합니다. 귀신들린 여종이라 그 말인데 바울이 구원의 복음을 전합니다. 구원의 길을 전합니다. 정확하게 보고 선전을 해줍니다. 이 사람들은 이런 이런 사람들이라고 실체를 정확하게 합니다. 바울을 훼방하는 말이 아니고 도와주는 말입니다.
적이 아니고 한 편이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심히 괴로워 합니다. 그래서 그 여종에게 귀신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됩니다. 바울도 잘 모를거고,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걸 보고 알지 못했던 걸 보고 없어져버린 거지요. 이익이 끊어져버렸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괴로워합니까. 귀신 들린 여종이 그래서 빌립보성을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누구 말을 늦게 됩니까. 일반 보편적으로 누구 말을 잘 듣겠습니까. 이 여종의 말을 듣게 됩니다. 아 저 여종이 그랬다. 그런데 여종의 정체는 주인이 귀신입니다. 왜 바울편을 듭니까. 못 이기니까. 그런데 떠나고 나면 다 잡아서 다른 길로 끌어갑니다. 그래서 다 헛일이 되는 겁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귀신을 쫓아내서 막아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을 하는데 이게 전체로 말하면 가정도 있고 공회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3년을 복음을 전하면서 쉬지 않고 전하고 아시아를 떠나면서 장로들하고 주의를 줍니다. 예루살렘에 가야한다. 묶여서 많은 고초가 있다고 하지만 안 가고 안된다. 이 아시아 있는 교회에 누가 들어온다고 수없이 배웠습니까. 내가 떠나고 나면 이 교회에 누가 들어온다고요.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너희를 다 삼킬거다. 그 바울의 진실과 충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런 것은 보지 않고 존경 순종 그런 것은 껍데기만 보는 겁니다. 그걸 차지하고 싶은 겁니다. 금메달은 따고 싶고 피눈물 나는 노력은 하지 않고. 공부는 게을리하고 1등은 하고 싶고, 일은 적게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고. 그런 행태를 가르켜서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도둑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불한당이라고 합니다. 불한당은 도둑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공부는 안하면서 좋은 성적을 바라면 그 심보가 무슨 심보라고요. 도둑놈 심보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도둑놈 심보입니다. 백 목사님 가시고 난 다음에 그 백 목사님 자리에 앉고 싶어서 엉망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가고 나면 귀신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불한당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서 바꿔버리면 귀신은 다시 미혹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옳은 글로 인도하는 건 엄청 많은 노력을 들여서 그러면 귀신들은 툭 던져놔서 그렇게 해버립니다. 미혹 받는 사람들은 안됩니다. 미혹하는 사람들도 나쁜 사람들이지만 같다고 하는 겁니다. 도둑 맞는 사람도 같다. 바울이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통째로 삼킬 것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을 할 때 주체가 누구냐, 마지막 결론은 가는 겁니다. 줄기 식물, 줄기 식물은 보면 땅에 뿌리 박고 호박 수박 보셨나요 심은 거, 호박을 심어놓으면 호박이 뻗어서 저기까지 갑니다. 예배당까지 갑니다. 그런데 저 우리 입구에 있는 줄기를 들고 오면 뿌리가 여기 있습니다. 호박 수박은 그렇게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그 주체가 사람은 결국 거리고 가게 됩니다.
귀신 들린 여종은 귀신이 주인입니다. 아무리 바울을 돕고 찬송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에 바울의 것은 다 집어 넣는 게 여종의 정체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는데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빌립이 이적 행하니까 놀랐는데 그래서 같이 따라다니면서 배웠는데 빌립은 그때 성령은 없다. 세례는 주는데 베드로가 와서 말씀을 전하니까 성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돈을 드리면서 뇌물을 주면서 선생님이 안수하니까 성령을 받고 변화되는데 저에게도 그 능력을 주셔서 권세를 주옵소서 하고 돈을 주니까 빌립은 그런 걸 꿰뚫어보질 못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호되게 질척을 합니다. 눈이 밝아야하고 사람을 볼 때는 주체가 말과 행동과 생활과 모든 관계와 일처리가 언행심사 사리판단 비판평가 처리 이런 것이 무엇이 되어서 하느냐, 이 여종은 귀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백날 신앙 생활 하다가 돈 따라간다.
그래서 나의 모든 언행심사 사리판단 비판평가를 사물처리 관계를 심신이 하는 작용인데 주체 능동이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이 아니고 천국이 아니면 백날 마지막에는 헛일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시면 심각하게 돌아보셔야합니다. 내 속에 능동 주인이 누구냐,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하는데 마지막에 끝에 가서, 어떤 사람은 혈육에 권세에 돈에 아내에게 끌려가더라. 많은 목사님들이 끌려가더라. 위대한 고신의 목사님들이 그런 걸 보시고 위대한 목사님들의 사모님이 차에서 내리니까 백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셨다고요, 여왕님들 오셨습니까. 그렇겠습니까. 사모님들이 주격입니다. 결국 그게 이세벨이 되면 귀신이 되는 거지요. 나의 모든 것을 끌고가는 그런 겁니다. 오만 게 다 있습니다. 그 다음 하나, 17장 5절에 데살로니가에 가서 바울이 경건한 헬라인. 헬라인은 유대인입니까 이방인입니까. 이방인입니다.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것들도 있고 예수님을 믿는데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를, 아시는 분 저자는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12절에 보니까 믿는 사람이 많고 그러나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무리를 움직여 합니다. 18장인가 가보면 5절, 어떻게 하지요. 앞에 두 군데에서 바울이 헬라인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기하고 훼방했는데 저희가 어떻게 했다고요, 대적하여 훼방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옷을 떨어버립니다. 나는 깨끗하다. 예수님은 어느 나라 사람, 어느 민족이지요. 헬라인입니까 로마인입니까 유대인입니까. 바리새파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우리편이다.
이 세상에 노래가 뜨면 그 속에 있는 지방이 뜨고 영화가 뜨면 장소가 그렇답니다. 소설책이 인기가 있으면 거기 안에 뜨고 그래서 서로 그 인물이 무엇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하는 그것도 전라도하고 여수 쪽하고 비슷하게 있을 겁니다. 충무에 가면 이순신 장군에 뭐가 있습니다. 서로 우리 지방 사람이라. 아산에 가면 또 뭐가 있습니다. 서로 자기 소속이라고 자랑하고 팔아먹는데 예수님들은 유대인들이 쫓아내버렸습니다. 2000년이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별종은 별종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 예수님이 유대인입니다. 본 족속, 정통입니다. 왜 그들이 구주 메시아를 못박아 죽이고 예수 복음을 쫓아내버리냐 지금도 예수님 믿는 사람을 유대인들은 엄청 싫어합니다. 기독교, 천주교는 유대교입니까 기독교 계통입니까. 천주교는 기독교 계통이지요. 유대교는 개혁교고 뭐고 전부 바탕에 깔려있으니까 경제나 정치 관계 때문에 같이 있지만 싫어하는 게 많지요. 그런데 신앙적으로 볼 때 유대인입니다. 구주 메시아를 모신 정통이고 본 족속들입니다.
정통,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누구 아들입니까. 이스마엘은 누가 합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본 가지입니다. 이스마엘은 곁가지입니다. 옆에 붙은 거, 옛날로 말하면 정통으로 말하자면 그걸 뭐라고 합니까. 친자식하고 서자관계입니다. 옛날에 서자는 사람도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건 좀 다르지만은 예수님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본류가 정통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였지요. 왜 그렇습니까. 제가 자주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도 역사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못복아 죽이고 그 흐름이 오늘까지 그대로 현재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그게 정통이라는 정통으로 내려온 그 거기 함정에 빠진 겁니다. 우리가 본류다 중심이다.
이단이라고 쫓겨나온 파가 칼빈이고 루터입니다. 그게 옳은 거니까 500년 동안 칼빈이 정통이 되었고 칼빈 정통이 500년 내려오면서 이번에는 칼빈주의 이게 또 정통이 되어서 그랬고 칼빈의 사상과 주장에 안 맞으면 이단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단 정죄하고 쫓아낸 그 인물이 백영희고 거기서 세워진 것이 총공회입니다. 지금은 비슷한 시대라서 인정을 안하나 세월이 지나면 같은 걸로 인정이 됩니다. 백 목사님 가시고 나서 찬송가 94장을 노래하고 사활의 대속 이름 붙들고 그러면서 발전해나가려는 걸 또 쫓아냅니다. 현상 세계 펼처지는 역사입니다. 출발해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주관일지 착각일지 오판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전통입니다. 그런데 메여버리면 똑같은 전철을 밟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전부고, 바른 성경이 전부고, 바른 신앙이 전부지, 세력을 따라가거나 그러면 탈선되고 마는 겁니다. 중요한 말씀이니까 기억을 하십시다.
본문에 복습 하십시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뭐가 빠집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움직인 심신의 활동은 하나님 앞에 심사 받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생활은 신앙 생활이어야합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몇 가지로 말할 때 주일 성수 성경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복음 전하는 거 그런데 그 중심에는 뭐가 들었느냐, 신앙 생활이란 다른 말로 바꾸면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게 죄다. 하품을 합니다. 하품은 의식적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합니다. 죄입니까 의입니까 둘 다 하닙니까. 가려워서 긁었습니다. 그건 죄입니까 의입니까 아닙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는 것은 없습니다. 그 앞에 뭐하다가 하품을 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성경보다 피곤해서, 그거 의입니다. 심방가다가 가려워서 긁었습니다 의입니다. 잠잘 때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꿈꿀 때 꿈 중에서 죄가 지었습니다. 잠잘 때 꾸는 꿈을 죄입니다. 꿈은 주사야몽. 낮에 있었던 일이 나타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생활이 잠의 잠을 자면 예배드리는 꿈을 꿉니다. 성경 읽는 꿈을 꿉니다. 말씀읽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잠자는 것도 죄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 것은 1초도 빠짐없이 심판을 다 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다. 믿음이라는 것에는 무엇이 전제되어야합니까. 말씀이 전제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에 맞지 않은 것은 죄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주일도 성경도 기도도 전도도 연보도 자주 말씀을 드렸던가요. 어떤 사람이 집회가서 감성적이라서 감성스럽게하고 은혜를 감성적으로 받아서 마지막에 연보합시다. 연보하시고 작정하시고 20만원짜리 보증금 20만원 하는 사람이 3천만원 했습니다. 그리고 못 갚아서 짊어지고 허덕이다가 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연보가 잘못된 겁니다. 회개하시고, 짐을 덜어드렸죠. 그건 해도 죄입니다. 허영으로 했으니까. 설교도 기도도 성경도 심방 전도도 연보도 전부 다 뭘로 하느냐, 말씀으로 해야합니다. 말씀따라서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충성이 중요하나 그 충성이 말씀대로 되지 않은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교인들의 자세는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들을 때는 설교자가 일반적으로 설교할 때는 탈선된 목사가 아니면 자기는 외식자고 말씀을 잘 못할지라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모세의 자리에 세워놨다. 그러므로 그들의 무엇은 듣고 행하라고요, 말은 듣고 옳은 말은 한다. 단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라. 설교 시간에는 행동 별로 안하지요. 말씀에 틀린 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자세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른 목사님이라면 함께 전하는데 말씀을 들을 때 신사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베뢰아 사람처럼 그렇게 집회 참석해서 말씀을 받고 이런 자세로 말씀을 받는 그런 게 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