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양과 염소 비유의 6가지
이치영2015-06-17조회 272추천 41
참고로,
질문하신 내용은 양과 염소 비유로서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행한 것이
막 바로 주님에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내가...'하신 말씀은 사람 상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는
육적인 면도 해당 안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육적인 면보다는 신령한 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육신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이 말씀은 아주 제한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게 됩니다.
육신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하면 부유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그런 사회, 그런 나라, 그런 시대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 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신령한 면을 말씀하신 것이며
여섯 가지는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구원으로 말하면 기본구원보다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1.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주렸다는 말은 양식을 먹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양식은 육의 양식이 아닌 신령한 양식을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의 양식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위의 말씀으로 말하면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주린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들려 주고 말씀의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수고가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는 행동이 됩니다.
마24:45에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자기 맡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덕'을 끼쳐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어린 사람이 보다 장성한 사람의 신앙행위, 신앙생활을 보고 힘을 얻는 것을 양식이라 합니다.
모든 언행을 조심하고 생활을 조심하며 열심 있는 신앙생활로 본을 보여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신앙의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 양식 주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요6:55에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예수님의 대속의 생애가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죄 없는 생활, 의로운 생활, 하나님 모신 생활,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생활
자신이 먼저 이렇게 살고,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살도록 힘쓰는 생활이 양식 주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2.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 주는 것
목마르다는 말은 갈급하다는 말입니다.
갈급하다는 말은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을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이 나서 물이나 음료수를 찾듯이 갈급한 사람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갈급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갈급은 중생된 새사람의 갈급이고 하나님을 향한 갈급이고 천국 소망에 대한 갈급이기 때문입니다.
이 갈급을 해갈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뿐입니다.
따라서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준다는 말씀은
믿는 사람으로서 갈급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를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우리가 많이 듣는 '영감'을 말하고, 영감은 곧 성령의 감화감동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천국 소망이 뚜렷하게 되어지며
인생의 목표, 신앙의 걸음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넘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영감의 은혜는 자기에게 없으면 주지 못합니다.
자기가 영감에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감화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죄 없는 자로, 의를 행하며, 하나님 모시고, 하늘의 소망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고,
양심을 통해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를 산제물로 바쳐 살 때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전하여 갈급을 면해 줄 수 있습니다.
3.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
나그네는 집을 떠나서 길을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세상 사람들의 말은 방향과 목적을 모르고 그냥 하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본향은 영원한 천국이고
세상에서 믿는 사람의 집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가견적으로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생활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보이는 면으로는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떠나서 방황하는 사람을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것이고,
그 속에 깊은 면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되 하나님을 아버지인 줄 모르고 천국이 자기 집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참 아버지 되심을, 천국이 본향인 동시에 자기 집인 것을 가르치고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순종하는 생활,
천국을 참된 자기의 영원한 영주처인 줄 알고 세상을 살되 천국으로 사는 생활을 하도록,
자신이 먼저 그렇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을 가리켜 나그네를 영접하는 생활이라 합니다.
4. 벗은 자에게 옷 입히는 것
옷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흰옷이라고도 하고 예복이라고도 합니다.
옷을 입지 않으면 벗은 몸이 그대로 드러나듯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원죄 본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속의 흰옷, 대속의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본구원은 말할 것 없고 건설구원에서도 그러합니다.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건설구원적인 면을 말합니다. 기본구원은 사람이 입을 수도, 입힐 수도 없습니다.
대형의 사죄를 받아 죄 없는 자로, 죄 짓지 않는 자로,
대행의 칭의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운 자로
대화친의 영생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로
부활의 소망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대속의 흰옷을 입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르쳐 깨닫게 하고
대속의 흰옷을 입었으나 세상 살면서 벗어 버리고 사는 사람에게 다시 입고 살도록,
자기가 먼저 대속의 흰옷을 입은 사람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대속의 흰옷을 입고 살도록 만드는 생활이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5. 병든 자를 돌아보는 것
육신의 병도 병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병입니다.
인간병이란 주로 마음의 병과 몸의 행위의, 습성의 병을 말합니다.
사실, 육체의 고깃덩어리가 병든 것은
활동과 생활은 불편해도 신앙에는 유익이 많지 손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병든, 마음의 인격이, 정신이, 지식이, 사고방식이 병든 것과
그 언행과 생활의 여러 습성이 삐뚤어져 병든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병이란
그 몸의 언행과 생활,
마음의 여러 요소의 작용들이 고장이 났다는 말이니,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언행심사, 모든 생활, 습성, 물질과 사건과 인간관계 등이 다 병이니
참사람의 언행심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참사람의 물질, 사건, 인간 관계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자신이 먼저 말씀대로 참사람 새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 보여주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하여 인간병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 병든 사람을 돌아보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6.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
옥이라는 것은 감옥을 말하고,
감옥에 갇힌 것은 자유가 없는 갇힌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옥은 다 무형의 감옥, 죄의 감옥을 말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가 있으면 자유가 없어집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몸이 자유롭게 활동해도 옥에 갇힌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죄가 없는 사람은 몸은 옥에 갇혀도 양심은 자유하는 사람이 됩니다.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은
죄의 감옥에 갇힌 자를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죄의 종류와 숫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죄는 죄의 어미가 되는 욕심입니다.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의 욕심은 어떤 것이든지 있으면 감옥이 됩니다.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육체의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인데
특별히 욕심에 붙들려, 또는 여러 종류의 죄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하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그러면서도 옥에 갇힌 줄도 모르고 죄에게 붙들려 일생을 종노릇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자신은 대속으로, 진리로, 영감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자유하는 사람이 되어 자유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모습을 옥에 갇혀 종노릇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죄의 종, 욕심의 종, 죄와 욕심의 감옥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옥에 갇힌 사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목사님 마태25장에 보면 말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섯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1.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2.목마른 자에게 마실것을 주는 것은
>3.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4.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5.병든 자를 방문하는 것은
>6.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귀한 교훈 감사드립니다.
>
질문하신 내용은 양과 염소 비유로서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행한 것이
막 바로 주님에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내가...'하신 말씀은 사람 상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는
육적인 면도 해당 안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육적인 면보다는 신령한 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육신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이 말씀은 아주 제한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게 됩니다.
육신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하면 부유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그런 사회, 그런 나라, 그런 시대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 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신령한 면을 말씀하신 것이며
여섯 가지는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구원으로 말하면 기본구원보다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1.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주렸다는 말은 양식을 먹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양식은 육의 양식이 아닌 신령한 양식을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의 양식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위의 말씀으로 말하면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주린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들려 주고 말씀의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수고가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는 행동이 됩니다.
마24:45에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자기 맡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덕'을 끼쳐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어린 사람이 보다 장성한 사람의 신앙행위, 신앙생활을 보고 힘을 얻는 것을 양식이라 합니다.
모든 언행을 조심하고 생활을 조심하며 열심 있는 신앙생활로 본을 보여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신앙의 힘을 얻도록 하는 것이 양식 주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요6:55에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예수님의 대속의 생애가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죄 없는 생활, 의로운 생활, 하나님 모신 생활,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생활
자신이 먼저 이렇게 살고,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살도록 힘쓰는 생활이 양식 주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2.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 주는 것
목마르다는 말은 갈급하다는 말입니다.
갈급하다는 말은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을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이 나서 물이나 음료수를 찾듯이 갈급한 사람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갈급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갈급은 중생된 새사람의 갈급이고 하나님을 향한 갈급이고 천국 소망에 대한 갈급이기 때문입니다.
이 갈급을 해갈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뿐입니다.
따라서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준다는 말씀은
믿는 사람으로서 갈급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를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우리가 많이 듣는 '영감'을 말하고, 영감은 곧 성령의 감화감동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천국 소망이 뚜렷하게 되어지며
인생의 목표, 신앙의 걸음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넘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영감의 은혜는 자기에게 없으면 주지 못합니다.
자기가 영감에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감화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죄 없는 자로, 의를 행하며, 하나님 모시고, 하늘의 소망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고,
양심을 통해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를 산제물로 바쳐 살 때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전하여 갈급을 면해 줄 수 있습니다.
3.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
나그네는 집을 떠나서 길을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세상 사람들의 말은 방향과 목적을 모르고 그냥 하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본향은 영원한 천국이고
세상에서 믿는 사람의 집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가견적으로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생활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보이는 면으로는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떠나서 방황하는 사람을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것이고,
그 속에 깊은 면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되 하나님을 아버지인 줄 모르고 천국이 자기 집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참 아버지 되심을, 천국이 본향인 동시에 자기 집인 것을 가르치고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순종하는 생활,
천국을 참된 자기의 영원한 영주처인 줄 알고 세상을 살되 천국으로 사는 생활을 하도록,
자신이 먼저 그렇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을 가리켜 나그네를 영접하는 생활이라 합니다.
4. 벗은 자에게 옷 입히는 것
옷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흰옷이라고도 하고 예복이라고도 합니다.
옷을 입지 않으면 벗은 몸이 그대로 드러나듯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원죄 본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속의 흰옷, 대속의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본구원은 말할 것 없고 건설구원에서도 그러합니다.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살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건설구원적인 면을 말합니다. 기본구원은 사람이 입을 수도, 입힐 수도 없습니다.
대형의 사죄를 받아 죄 없는 자로, 죄 짓지 않는 자로,
대행의 칭의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로운 자로
대화친의 영생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로
부활의 소망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대속의 흰옷을 입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르쳐 깨닫게 하고
대속의 흰옷을 입었으나 세상 살면서 벗어 버리고 사는 사람에게 다시 입고 살도록,
자기가 먼저 대속의 흰옷을 입은 사람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대속의 흰옷을 입고 살도록 만드는 생활이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5. 병든 자를 돌아보는 것
육신의 병도 병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병입니다.
인간병이란 주로 마음의 병과 몸의 행위의, 습성의 병을 말합니다.
사실, 육체의 고깃덩어리가 병든 것은
활동과 생활은 불편해도 신앙에는 유익이 많지 손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병든, 마음의 인격이, 정신이, 지식이, 사고방식이 병든 것과
그 언행과 생활의 여러 습성이 삐뚤어져 병든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병이란
그 몸의 언행과 생활,
마음의 여러 요소의 작용들이 고장이 났다는 말이니,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언행심사, 모든 생활, 습성, 물질과 사건과 인간관계 등이 다 병이니
참사람의 언행심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참사람의 물질, 사건, 인간 관계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자신이 먼저 말씀대로 참사람 새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 보여주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하여 인간병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 병든 사람을 돌아보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6.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
옥이라는 것은 감옥을 말하고,
감옥에 갇힌 것은 자유가 없는 갇힌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옥은 다 무형의 감옥, 죄의 감옥을 말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가 있으면 자유가 없어집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몸이 자유롭게 활동해도 옥에 갇힌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죄가 없는 사람은 몸은 옥에 갇혀도 양심은 자유하는 사람이 됩니다.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은
죄의 감옥에 갇힌 자를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죄의 종류와 숫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죄는 죄의 어미가 되는 욕심입니다.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의 욕심은 어떤 것이든지 있으면 감옥이 됩니다.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육체의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인데
특별히 욕심에 붙들려, 또는 여러 종류의 죄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하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그러면서도 옥에 갇힌 줄도 모르고 죄에게 붙들려 일생을 종노릇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자신은 대속으로, 진리로, 영감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자유하는 사람이 되어 자유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 모습을 옥에 갇혀 종노릇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죄의 종, 욕심의 종, 죄와 욕심의 감옥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옥에 갇힌 사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목사님 마태25장에 보면 말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섯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1.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2.목마른 자에게 마실것을 주는 것은
>3.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4.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5.병든 자를 방문하는 것은
>6.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귀한 교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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