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부인하고 초월할 것(오병이어에서)
이치영2015-03-07조회 253추천 37
질문하신 말씀은 81.10.02.금밤 말씀으로 짐작됩니다.
해당 설교는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래의 설명을 전체 줄거리로 생각하시면서 설교록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 설명인 ‘세 가지 부인(否認)’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만 하셨고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두 번째의 ‘세 가지 초월’에 대해서는 앞의 세 가지를 부인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위의 두 가지가 있고 난 다음 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세 가지를 부인하라
세 가지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을 간단하게 하셨습니다.
세 가지는 부인할 것은 첫째 자기 주관, 둘째 경험, 셋째 통계입니다.
신앙 걸음은 이 세 가지를 부인하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는 걸음입니다.
이 세 가지 부인은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평생을 통하여 싸워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관이라는 것은 자기가 아는 자기대로의 지식을 말합니다.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고 체험한 가운데서 자기 속에 자기 본능처럼 자리 잡고 있는
자기대로의 지식을 주관이라 합니다. 객관이라는 말과 반대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객관을 많이 받아들이면 주관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면이 있고
그 반대가 되면 주관은 아주 좁아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관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모든 주관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식을 제외한 천하 인간의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한 주관이 다 포함되는데,
이 인간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험이란 자기가 직접 해 본 것을 말합니다.
직접 겪어 본 데서 얻은 지식을 경험이라 합니다.
체험은 자기 몸으로 몸소 겪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경험이나 체험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실제 겪은 일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강한 지식이 되고 확신이 되는 것이 경험이며 체험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지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경험을 부인하라는 말은 이것을 말하는데,
천하 인간의 그 어떤 경험과 체험으로 인한 지식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계란 많은 시간이나 분량 등을 통하여 짐작하거나 계산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오랜 세월이나 많은 종류나 양들을 통하여 살펴보고 파악하거나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수많은 통계들이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통계 역시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위의 세 가지, 주관이나 경험이나 통계를 부인하라는 말은 무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세 가지 초월은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부인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2. 세 가지를 초월하라
두 번째는 세 가지를 초월하라 했습니다.
초월이란 넘어선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양을 초월하라 했습니다.
남자의 수만 5천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적어도 1만 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곳은 빈 들판이었고, 저녁때가 가까운 저물어 가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에게는 이들에게 먹일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주관적으로, 경험적으로, 통계적으로 아무리 살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저물 때(시간), 빈 들판에서(장소, 공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오병이어로(양, 분량) 먹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로 아무리 계산하고 연구하고 생각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흩어 각자 알아서 해결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를 드렸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장소와 양을 초월하지 못한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를 거부하시고
오병이어에 축사하셔서 다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에 차도록 남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니 능치 못할 것이 없는데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과 양을 초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모든 주관과 경험 체험과 역사의 모든 통계를 부인해야 하는 것이며,
이 세 가지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을 때 모든 시간과 공간과 분량을 다 초월한 초인간적인,
초과학적인, 초역사적인 걸음을 걸어갈 수 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할 일
위의 두 가지가 되고 나면 그 다음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기 가진 것을 자기 위해 자기가 쓰지 말고 주님께 바칠 것
둘째, 바친 것을 주님께 다 맡겨 주님이 알아서 쓰시도록 할 것
셋째, 주님의 뜻대로 쓸 것입니다.
거기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세 가지를 한 사람은 오병이어를 바친 어린아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먹으려고 준비했던 오병이어를 제가 먹지 않고 주님께 바쳤고, 주님께 다 맡겼고, 주님 뜻대로 쓰시게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그 오병이어에 축사하시고 큰 역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제가 저를 위해서 준비한 것을 저 위해서 제가 쓰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 바쳐, 주님이 알아서 쓰시도록 다 맡겨, 주님이 쓰셨을 때 주님은 맘껏 일하실 수 있었고,
1만명이 넘는 사람의 허기를 면했고, 자기도 배불리 먹고 남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었고,
구원의 도리의 표적을 나타내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신앙생활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록 질문입니다.
>오병이어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기의 주관이나 경험, 체험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고 말씀 하셨고,
>주님의 구원은 시간이나 공간, 종류와 양을 초월한 구원임을 믿고,
> 어떤 형편에서도 그 3가지를 상관하지 말고,
>주님의 구원과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대로 된다는 말씀을 설교록을 통해 보았는데
>이해가 잘 안됩니다.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해당 설교는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아래의 설명을 전체 줄거리로 생각하시면서 설교록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째 설명인 ‘세 가지 부인(否認)’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만 하셨고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두 번째의 ‘세 가지 초월’에 대해서는 앞의 세 가지를 부인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위의 두 가지가 있고 난 다음 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세 가지를 부인하라
세 가지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을 간단하게 하셨습니다.
세 가지는 부인할 것은 첫째 자기 주관, 둘째 경험, 셋째 통계입니다.
신앙 걸음은 이 세 가지를 부인하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는 걸음입니다.
이 세 가지 부인은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평생을 통하여 싸워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관이라는 것은 자기가 아는 자기대로의 지식을 말합니다.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고 체험한 가운데서 자기 속에 자기 본능처럼 자리 잡고 있는
자기대로의 지식을 주관이라 합니다. 객관이라는 말과 반대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객관을 많이 받아들이면 주관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면이 있고
그 반대가 되면 주관은 아주 좁아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관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모든 주관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식을 제외한 천하 인간의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한 주관이 다 포함되는데,
이 인간 주관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험이란 자기가 직접 해 본 것을 말합니다.
직접 겪어 본 데서 얻은 지식을 경험이라 합니다.
체험은 자기 몸으로 몸소 겪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경험이나 체험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실제 겪은 일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강한 지식이 되고 확신이 되는 것이 경험이며 체험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지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경험을 부인하라는 말은 이것을 말하는데,
천하 인간의 그 어떤 경험과 체험으로 인한 지식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계란 많은 시간이나 분량 등을 통하여 짐작하거나 계산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오랜 세월이나 많은 종류나 양들을 통하여 살펴보고 파악하거나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수많은 통계들이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통계 역시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위의 세 가지, 주관이나 경험이나 통계를 부인하라는 말은 무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세 가지 초월은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부인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2. 세 가지를 초월하라
두 번째는 세 가지를 초월하라 했습니다.
초월이란 넘어선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양을 초월하라 했습니다.
남자의 수만 5천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적어도 1만 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곳은 빈 들판이었고, 저녁때가 가까운 저물어 가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에게는 이들에게 먹일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주관적으로, 경험적으로, 통계적으로 아무리 살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저물 때(시간), 빈 들판에서(장소, 공간),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오병이어로(양, 분량) 먹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로 아무리 계산하고 연구하고 생각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흩어 각자 알아서 해결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를 드렸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장소와 양을 초월하지 못한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를 거부하시고
오병이어에 축사하셔서 다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에 차도록 남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니 능치 못할 것이 없는데
그들의 주관과 경험과 통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과 양을 초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모든 주관과 경험 체험과 역사의 모든 통계를 부인해야 하는 것이며,
이 세 가지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을 때 모든 시간과 공간과 분량을 다 초월한 초인간적인,
초과학적인, 초역사적인 걸음을 걸어갈 수 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할 일
위의 두 가지가 되고 나면 그 다음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기 가진 것을 자기 위해 자기가 쓰지 말고 주님께 바칠 것
둘째, 바친 것을 주님께 다 맡겨 주님이 알아서 쓰시도록 할 것
셋째, 주님의 뜻대로 쓸 것입니다.
거기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세 가지를 한 사람은 오병이어를 바친 어린아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먹으려고 준비했던 오병이어를 제가 먹지 않고 주님께 바쳤고, 주님께 다 맡겼고, 주님 뜻대로 쓰시게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그 오병이어에 축사하시고 큰 역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제가 저를 위해서 준비한 것을 저 위해서 제가 쓰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 바쳐, 주님이 알아서 쓰시도록 다 맡겨, 주님이 쓰셨을 때 주님은 맘껏 일하실 수 있었고,
1만명이 넘는 사람의 허기를 면했고, 자기도 배불리 먹고 남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었고,
구원의 도리의 표적을 나타내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신앙생활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록 질문입니다.
>오병이어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기의 주관이나 경험, 체험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고 말씀 하셨고,
>주님의 구원은 시간이나 공간, 종류와 양을 초월한 구원임을 믿고,
> 어떤 형편에서도 그 3가지를 상관하지 말고,
>주님의 구원과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믿는 대로 된다는 말씀을 설교록을 통해 보았는데
>이해가 잘 안됩니다.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