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믿음의 능력, 아벨의 믿음
이치영2014-12-05조회 244추천 36
1. 믿음의 능력
믿음은 순종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간단하게 말하면, 먹어 보면 맛을 안다는 말이고, 가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 보면 안다는 말입니다.
사과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사과의 정확한 맛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과는 달다, 시다, 달콤 새콤하다.' 말을 하지만 자기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먹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은 새콤 달콤한 사과 맛을 바로 알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셨습니다.
실상이란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고,
증거라는 말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실상을 이루는 것은 이 세상적인 것도 있지만 '구원'에 대한 것을 말씀합니다.
기독교의 소망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믿음은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며
동시에 믿음은 이 세상에서 준비하는 천국의 모든 것을 실제로 이루어 가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믿음은 바라는 세상 것들을 실상으로 이루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도 하고 성적이 올라가기도 하며
믿음으로 살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하고 취직이 되기도 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루는 세상적인 모든 것을 하나의 표시판이요 표적이기 때문에
이런 표적들은 믿음이 어릴 때 보여 주시고, 믿음이 장성하고 나면 믿음의 실상이 대개는 신령한 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도, 인간의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믿음은 볼 수 있게 한다는 말입니다.
본다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안다는 말이고 인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은 다 추측이며 추론이고 짐작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인간의 영도, 인간의 사후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음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믿지 않고 부인하거나 아니면 추측과 추론으로 짐작만 할 뿐입니다.
자기들 눈으로 보지 않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볼 수 없는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믿는 사람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는데, 눈으로 보지는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계신 것과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기 때문에 지옥 갈까 두렵고 천국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이는 순전히 믿음의 역사이며, 이 믿음은 택한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을 기본 믿음이라 하고
기본 믿음을 기초로 하여 믿음 생활을 계속해 가는 가운데 자라가는 믿음을 건설 믿음이라 합니다.
이 건설 믿음에 따라서 믿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이 건설 믿음을 중점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믿고 그대로 살면 말씀에 약속하신 소망들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고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볼 수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들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두려우심을 믿고 모든 언행심사와 생활을 조심해서 말씀대로 살아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지 점점 깨달아지고 느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형제 구원을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져 보면 내가 주님 같은 사랑의 사람이 실상으로 이루어지고
주님이 날 위해 지신 십자가 사랑과 희생이 어떤 것인가를 또렷하게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물질이나 자기 위신이나 무엇을 손해 봐 보면
여러 배 백배로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실상과 알아지는 것은 사람의 논리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과학과 신비가 함께 가는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함께 역사하는 것이라는 말도 되겠습니다.
말씀대로 실제로 사는 믿음, 이 믿음은 다른 말로 말하면 겨자씨 믿음이라고 하며
믿음의 능력은 바로 겨자씨 믿음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역시 전부 하나님의 은혜 역사입니다.
2. 아벨의 믿음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감 없이, 양보 없이 그대로 믿은 믿음'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쳐 제사드림으로 되는 대속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릴 때
가인은 농업을 했으므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 삼아 제사드렸고,
아벨은 목축을 했으므로 양의 새끼를 제물로 삼아 제사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치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직업 선택에서 구원 역사와 거리가 먼 농업을 택했고
아벨은 직업 선택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에 소망을 두고 제에 유리한 목축을 선택했습니다.
가인은 구원에 대한 소망보다 의식주와 세상이 소망이었고
아벨은 의식주보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전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아벨이 형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이 구원의 길을 양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감 없이, 그리고 양보 없이 그대로 믿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가치를 히 12:24에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아벨의 피와 비교하셨으니 그만큼 아벨의 믿음은 크고 중요하며 가치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믿음은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 갖도록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이것은 비밀이라 믿음으로 걸어가 본 자만 안다고 하셨는데
>이 믿음이 어떤 능력이 있기에
>소망을 실상으로 보지못하는 것을 보게하는지 깨닫고 싶습니다.
>
>두번째로 아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 알고싶습니다.
>
믿음은 순종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간단하게 말하면, 먹어 보면 맛을 안다는 말이고, 가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 보면 안다는 말입니다.
사과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사과의 정확한 맛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과는 달다, 시다, 달콤 새콤하다.' 말을 하지만 자기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먹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은 새콤 달콤한 사과 맛을 바로 알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셨습니다.
실상이란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고,
증거라는 말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실상을 이루는 것은 이 세상적인 것도 있지만 '구원'에 대한 것을 말씀합니다.
기독교의 소망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믿음은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며
동시에 믿음은 이 세상에서 준비하는 천국의 모든 것을 실제로 이루어 가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믿음은 바라는 세상 것들을 실상으로 이루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도 하고 성적이 올라가기도 하며
믿음으로 살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하고 취직이 되기도 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루는 세상적인 모든 것을 하나의 표시판이요 표적이기 때문에
이런 표적들은 믿음이 어릴 때 보여 주시고, 믿음이 장성하고 나면 믿음의 실상이 대개는 신령한 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도, 인간의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믿음은 볼 수 있게 한다는 말입니다.
본다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안다는 말이고 인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은 다 추측이며 추론이고 짐작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인간의 영도, 인간의 사후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음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믿지 않고 부인하거나 아니면 추측과 추론으로 짐작만 할 뿐입니다.
자기들 눈으로 보지 않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볼 수 없는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믿는 사람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는데, 눈으로 보지는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계신 것과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기 때문에 지옥 갈까 두렵고 천국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이는 순전히 믿음의 역사이며, 이 믿음은 택한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을 기본 믿음이라 하고
기본 믿음을 기초로 하여 믿음 생활을 계속해 가는 가운데 자라가는 믿음을 건설 믿음이라 합니다.
이 건설 믿음에 따라서 믿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은 이 건설 믿음을 중점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믿고 그대로 살면 말씀에 약속하신 소망들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고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볼 수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들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두려우심을 믿고 모든 언행심사와 생활을 조심해서 말씀대로 살아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지 점점 깨달아지고 느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형제 구원을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져 보면 내가 주님 같은 사랑의 사람이 실상으로 이루어지고
주님이 날 위해 지신 십자가 사랑과 희생이 어떤 것인가를 또렷하게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물질이나 자기 위신이나 무엇을 손해 봐 보면
여러 배 백배로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실상과 알아지는 것은 사람의 논리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과학과 신비가 함께 가는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함께 역사하는 것이라는 말도 되겠습니다.
말씀대로 실제로 사는 믿음, 이 믿음은 다른 말로 말하면 겨자씨 믿음이라고 하며
믿음의 능력은 바로 겨자씨 믿음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역시 전부 하나님의 은혜 역사입니다.
2. 아벨의 믿음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감 없이, 양보 없이 그대로 믿은 믿음'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쳐 제사드림으로 되는 대속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릴 때
가인은 농업을 했으므로 땅의 소산으로 제물 삼아 제사드렸고,
아벨은 목축을 했으므로 양의 새끼를 제물로 삼아 제사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치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직업 선택에서 구원 역사와 거리가 먼 농업을 택했고
아벨은 직업 선택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에 소망을 두고 제에 유리한 목축을 선택했습니다.
가인은 구원에 대한 소망보다 의식주와 세상이 소망이었고
아벨은 의식주보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전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아벨이 형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이 구원의 길을 양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감 없이, 그리고 양보 없이 그대로 믿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가치를 히 12:24에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아벨의 피와 비교하셨으니 그만큼 아벨의 믿음은 크고 중요하며 가치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믿음은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 갖도록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이것은 비밀이라 믿음으로 걸어가 본 자만 안다고 하셨는데
>이 믿음이 어떤 능력이 있기에
>소망을 실상으로 보지못하는 것을 보게하는지 깨닫고 싶습니다.
>
>두번째로 아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 알고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