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밤
김동민2026-04-08조회 8추천 2
2026년 4월 8일 수밤
찬송: 16장
본문: 빌립보서 3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각도로 계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계명인데, 명령을 강조할 때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대표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열 가지 계명으로 붙였고 다른 말씀들도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관련된 것들 이런 것들은 계명이 직접적이고 하라, 하지 말라 이런 말씀들이 있는데 신약의 보급과 관련된 말씀들은 하라는 말씀이 있고 해야한다 하라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만 자기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깨닫고 느끼고 소망하는 왕을 주신겁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깨달음을 기록했지만은 성경의 기록이 성령의 기록이고 사도 바울이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의 표본이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의 표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바울에게 소원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소원을 자기의 소원으로 삼아서 기록해주신 것은 성령의 소원이고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강조하신 것은 자유성을 주셨지만 간주하신 것이고 복음에 관련된 말씀들은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하라 말라 말씀도 많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에게 맡겨놓으십니다. 어기면 명령도 벌이 있는데 강제로 시키지는 못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부활의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신앙 생활이 다 그렇습니다. 신앙 생활이 중심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자유성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자유성이란 주권성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주권성을 상실해버리면 노예가 되는 겁니다. 종이 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길러가시는 것은 자유성으로 길러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형상이 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공부하실 때 자기가 주권성을 가지고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주도학습이라고 그러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그래야 공부가 되는 것이고 그래야 그 사람은 사람입니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은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3학년 즈음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4학년부터 억지로 하면 때려치라는 말은 못해도 안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기술 배우고 농사나 짓고 장사나 배우고 그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 시켜 놓으면 죄짓고 나쁜 짓하니까 시키지만 중학생이 되어도 알아서 하지 않고 억지로 하면 일찌감치 마음 속으로는 달리 잡는 게 서로가 유익합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직장 다니는 것도 억지로 다니면 어차피 다니는데 월급받기 위해서 그러면 불행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왕 다니는 거 월급 받는 거고 해야하는 거 같으면 자기 일로 좋아서 그렇게 만들어가면 좋은 겁니다. 자기도 좋고 사장님도 좋고 그런 겁니다. 집안일도 아이들이 뭘 해도 주인이 되어서 알아서 하도록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하고 길러야합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 되어서도 종밖에 안되고 남 밑에 기는 사람 밖에 안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과도 연관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은 말할 거 없고 모든 건 자기가 알아서 그런다는 그 말은 내것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좋아하거나 만들기를 좋아하거나 그런 거는 제가 좋아하니까 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 노는 걸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타락이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를 시켜놓고 본능을 다스리면서 건설적인 거 생산적인 거 유익된 거 이런 방향으로 자기가 주권자 되어서 뭘 하도록 가르치고 길러가는 게 참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은 내가 하는 겁니다. 집회도 내가 가고 내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알고나서 그래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모든 말씀은 다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붙인 것도 있고 안 붙인 것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키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계명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지키면 최고더라. 바울의 그 말을 담아놓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소망은 곧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도라고 그랬지요. 십계명 공부할 때 모든 계명 말씀은 도다, 구원의 길 도의 길 참사람 되는 길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진리입니다. 진리란, 참된 이치라는 뜻이고 진리는 절대성 필연성을 가졌습니다. 절대성, 필연성, 무엇이 그걸 가졌다고요. 진리, 절대성이란 반드시 그렇게 된다 틀림없다고 합니다. 또 계명은 계약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이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한번하고 말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야하는데 사람이랑 가다가 넘어지고 끊임없이 계속 됩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서 우리의 갈길을 가는 겁니다.
지난 주에 부활에 대해서 했지만 부활의 권능 속에 중심은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그리스도가 뭔지를 많이 설명드렸는데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소망 첫째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 그리스도가 무엇이냐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유일신, 오직 한 분, 하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에서 님 자를 빼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한 분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천주교는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하늘님을 줄인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게 기본적인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기본입니다. 여호와는 무슨 뜻입니까. 약속 계약입니다. 쌍방 약속을 했다 이게 여호와입니다. 약속 계약입니다.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말씀은 가르친다는 겁니다. 알린다는 겁니다. 말의 경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필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은 뭐하는 하나님이라고요,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르칠 때 뭘로 가르칩니까.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 여호와, 그리스도.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사람되어 오신 분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이름을 그리스도 예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위에서는 내려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들이 예수를 근거해서 하는 겁니다. 예수가 그럴 때는 하나님과 사람이 가치 있는 겁니다. 교리적 여섯 글자로 뭐라고 그러지요.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걸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이분이 예수님, 겉모습은 사람이고 신성이 있는데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가지고 어려워서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럴 때는 또 필요하는데 원어, 헬라어 히브리언가 모르겠습니다. 원어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다라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기름 부은 받은 직책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제사장 세울 때, 선지자 세울 때, 왕을 세울 때 왕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란 세 가지 직분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거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는 일차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제사장 선지자 하나님 왕직을 가지고 변하신 하나님, 그게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이름, 그리스도와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제사장이란, 제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란 제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제사장이라, 제사가 무엇인가, 제사는 무엇이지요. 제사는 범죄한 인생에게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은 인생을 유일한 길이 제사입니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끊어졌듯이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끊어진 전설을 연결시키면 전기가 통합니다. 호스가 끊어졌는데 연결시키면 물이 나옵니다.
군사시설, 다리 전쟁 중에 폭격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암만 파괴해도 선만 연결되어있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파괴입니다. 연결시키면 파괴하는 겁니다. 범죄함으로 끊어져서 사망한 인생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주시는 유일한 제도, 방법으로 주신 것이 제사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는 반드시 죽은 자를 살리는 거니까 값이 필요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이니까 죽은 자를 살리려면 하나님의 말을 어긴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대신 죽는 하나님이 죽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인성을 잃고 영원한 죽음에 건져주신 게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거기는 그리스도와 사람된 주님이 같이 제물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제물되는 제물의 구약시대의 모든 양, 염소, 송아지, 소, 비둘기 피를 흘린 제사들이 제물입니다. 죄값을 치르고 죄를 면하고 연결 결합시켜주는 것이 뭐라고요. 그게 뭐라고요. 그게 제사입니다. 그 제사를 책임진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제물 속에 그 제물의 일차 제물은 누구를 표시합니까. 구약의 제사의 모든 제물은 순서는 바뀔 수 있는데 예수님. 그 속에는 나, 예수님이고 나, 그리고 제사 지내는 사람은 책임이 자기, 그래서 자기를 잡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자기를 잡아서 연결시켜주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자기가 제물이 되어서 사람을 하나님하고 연결시켜주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을 연결시키려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지요. 연결시켜 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전도를 해야겠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읍시다 전도합시다. 그런데 전도하면 요즘은 더 멀리갑니다. 전도할 때는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발로 걸어다니고 입으로 말을 하고 시간을 들이는 게 자기를 바치는 거지요. 전도하면 전도가 재미있습니까 힘듭니까. 전도 모두 해보셨습니까. 전도지 들고 예수님 믿고 천국가십시다. 대문 벨 누르고 들어가서 예수님 믿고 천국 가십시다. 요즘은 그렇게 못하지요. 여기 아마 그거 안해 본 분 많으시지요. 그러면 민망하고 부끄럽고 낯뜨겁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교회합니까.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전도하고, 가족 중에 학교 친구 중에, 직장에 안 믿는 사람 있으면 그들을 믿게 만들고 하나님하고 연결시켜줘야겠는데 말 안해도 주일을 지킵니다. 술을 안 먹습니다. 밥 먹을 때 기도합니다. 예수쟁이네 교회다니네. 내가 주일날 지키지요. 술담배 안하지요. 기도하지요. 틈나면 성경 보지요. 말 안해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모든 걸 내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이 다 알게되니까 제사장이 되려면 죽어야합니다. 힘든 일 있으면 다 안하는 일이 있고 안할려고 그러면 표는 안 나고 남는 거 없는데 하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내가 나서서 그 일을 하는 거지요. 내가 하는 그 이유는요. 유익도 없고 돈벌이도 안되고 그렇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물이라고 그럽니다. 보면 다 압니다. 보면 다 알게되어있습니다. 말 없이, 하고 난 다음에 표도 안되고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영광도 되겠고 알아도 되겠고 서로 하겠는데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 둘 쌓이니까 집안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떡도 맛있고 빵도 맛있는데 맛있는 음식이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쳐다보고 눈치보는 학생도 있고 내가 먼저 먹고 많이 먹어야지.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먼저 생각하지 않고 돌아봅니다. 나눠먹어야하는데, 부모님 드려야하는데.
오형제 오남매가, 서로 맛있는 걸 많이 먹으려고 하면 그 오형재는 제사장하고 한참 먼 것입니다. 사형제가 맛있는 걸 먹는데 그게 장남이든 차남이든 빠져서 손이 천천히갑니다. 다른 형제 많이 먹도록 양보합니다. 그게 제사장입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란 손해보고 하나님께 붙이는 게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은 큰 거부터 합니까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합니까. 서로 먼저 먹으려고 하지 않는, 음식을 양보하는. 그걸 부모님들이 보고 매를 때려서라도 혼자 다 먹으려고 하면 고쳐야합니다. 돼지는 돼지마구라고 합니다. 부어주면 돼지는 몇 마리 키우거든요, 서로 먹으려고 집어넣습니다. 그게 돼지입니다. 맛있는 거 먹으려고 서로 싸우면 그게 돼지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못 먹어도 빠져나오면 그 사람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엉망이 되어져있습니다. 양말도 책도 흩어져있는데 바빠서 그런지 어머니 아버지는 정신없고 아무도 안 치우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렇게 살면 그게 예사가 됩니다.
어릴 때 젖먹이 바글바글할 때는 어쩔 수 없지요. 시켜서, 정리를 해 나가야합니다. 그래야 아이 교육이 됩니다. 쥐어던져놓으면 익어지면 그게 이렇게 사는가보다. 정상이 아니구나.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살아야하지요. 아무도 안 치우는데 누군가 표내지 않고 옷도 걸어놓고 책꽂이 꽂아놓고 정리를 해나가면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놀 시간 안 놀고 다했으니까. 제사장은 그런 곳에서부터 하는 겁니다. 지난 번에 주일 지나고 지하실 엉망 되어있는 걸 적어놨더니 여기 삼형제가 했는가, 그거 삼형제가 제사장이 된 겁니다. 그런 걸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여반들이 치우친 신앙 받아서 전도만하고 돌아다니고 봉사만 하고 다닙니다. 집에 가보니 집은 엉망이고 쓰레기장이고 남편 밥도 안해주고 예배당만 좇아다니면 그거 치우쳐서 안되는 겁니다. 아내를 보살피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보이는데에서부터 내가 낮아지고 내가 고생하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다른 사람은 하나님께 붙여주는 게 제사장입니다. 소를 잡아서 양을 잡아서 그게 구약시대고, 강단에 서서 그게 목사들도 외식하는 자입니다. 요즘은 제가 덜하는 편인데 화장실 청소도 많이했고 안 되어있으면 휴지도 줍고 합니다. 주차장 쓰는 건 예사로 씁니다. 그런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니까 제사장이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낮아지고 희생하고 연결시켜주는 가장 핵심은 뭐냐, 주님 대속을 가지고 해야합니다. 피 없는 희생과 손해는 도덕 윤리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주님 피를 근거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붙이는 게 제사장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직입니다. 그렇게 하시다가 죽으셨고 그런 거지요.
자기가 먼저 전하려면 먼저 알아야합니다. 적어도 아는 그대로 실행을 하고 회개라도 하고 소원이라도 가지면서 전하는 말씀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고 전하는 것과 전하기만 하는 복음은 다릅니다. 교인들이 다 압니다. 설교자가 하나님과 가까워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죄인이 되어가지고 참 설교할 것이 아니게 되는데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하면 듣습니다. 말씀 들어가고, 그런 껍데기고 대충 살다가 전하면 교인들은 하나도 안 듣습니다. 들어봐야 안들어갑니다. 왕은 무엇과 무엇이 같다고 합니까. 하나님하고 왕하고, 주인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진짜 왕은 하나님 뿐이고 진짜 주인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닌 자가 주인인 척하면 역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닌 인간이 왕노릇하면 그렇게 되는 건데 큰죄가 되는 겁니다. 왕은 주권자입니다. 복종을 하되 내 주관을 가지고 내 자유의지로 복종하는, 이런 복종이 되어야 진짜 복종이 되는 겁니다.
강제로 복종하면 종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왕이란 복종하게 하는 동시에 그 복종이 자기가 하는 겁니다. 그래야 왕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로 은혜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되게 됩니다. 제사장직을 감당해서 만드면 그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만드는 게 복음 운동이다. 그래서 강하게 표현하면 새끼 그리스도, 작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주님은 맏아들 우리는 그 다음 아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신앙생활, 그리스도들이 이룬 나라가 하늘 나라다. 반대로 그리스도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화된 인격들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우리 소망은 영원하다고 되어있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6장
본문: 빌립보서 3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각도로 계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계명인데, 명령을 강조할 때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대표적인 계명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말씀 중에서 열 가지 계명으로 붙였고 다른 말씀들도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관련된 것들 이런 것들은 계명이 직접적이고 하라, 하지 말라 이런 말씀들이 있는데 신약의 보급과 관련된 말씀들은 하라는 말씀이 있고 해야한다 하라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만 자기의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깨닫고 느끼고 소망하는 왕을 주신겁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깨달음을 기록했지만은 성경의 기록이 성령의 기록이고 사도 바울이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의 표본이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의 표본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바울에게 소원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소원을 자기의 소원으로 삼아서 기록해주신 것은 성령의 소원이고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강조하신 것은 자유성을 주셨지만 간주하신 것이고 복음에 관련된 말씀들은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하라 말라 말씀도 많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에게 맡겨놓으십니다. 어기면 명령도 벌이 있는데 강제로 시키지는 못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부활의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신앙 생활이 다 그렇습니다. 신앙 생활이 중심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자유성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자유성이란 주권성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주권성을 상실해버리면 노예가 되는 겁니다. 종이 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길러가시는 것은 자유성으로 길러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형상이 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공부하실 때 자기가 주권성을 가지고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주도학습이라고 그러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그래야 공부가 되는 것이고 그래야 그 사람은 사람입니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은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3학년 즈음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4학년부터 억지로 하면 때려치라는 말은 못해도 안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기술 배우고 농사나 짓고 장사나 배우고 그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 시켜 놓으면 죄짓고 나쁜 짓하니까 시키지만 중학생이 되어도 알아서 하지 않고 억지로 하면 일찌감치 마음 속으로는 달리 잡는 게 서로가 유익합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직장 다니는 것도 억지로 다니면 어차피 다니는데 월급받기 위해서 그러면 불행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왕 다니는 거 월급 받는 거고 해야하는 거 같으면 자기 일로 좋아서 그렇게 만들어가면 좋은 겁니다. 자기도 좋고 사장님도 좋고 그런 겁니다. 집안일도 아이들이 뭘 해도 주인이 되어서 알아서 하도록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하고 길러야합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 되어서도 종밖에 안되고 남 밑에 기는 사람 밖에 안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과도 연관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은 말할 거 없고 모든 건 자기가 알아서 그런다는 그 말은 내것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좋아하거나 만들기를 좋아하거나 그런 거는 제가 좋아하니까 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것 노는 걸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타락이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를 시켜놓고 본능을 다스리면서 건설적인 거 생산적인 거 유익된 거 이런 방향으로 자기가 주권자 되어서 뭘 하도록 가르치고 길러가는 게 참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은 내가 하는 겁니다. 집회도 내가 가고 내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알고나서 그래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모든 말씀은 다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붙인 것도 있고 안 붙인 것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키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계명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지키면 최고더라. 바울의 그 말을 담아놓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소망은 곧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도라고 그랬지요. 십계명 공부할 때 모든 계명 말씀은 도다, 구원의 길 도의 길 참사람 되는 길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진리입니다. 진리란, 참된 이치라는 뜻이고 진리는 절대성 필연성을 가졌습니다. 절대성, 필연성, 무엇이 그걸 가졌다고요. 진리, 절대성이란 반드시 그렇게 된다 틀림없다고 합니다. 또 계명은 계약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이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한번하고 말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야하는데 사람이랑 가다가 넘어지고 끊임없이 계속 됩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서 우리의 갈길을 가는 겁니다.
지난 주에 부활에 대해서 했지만 부활의 권능 속에 중심은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그리스도가 뭔지를 많이 설명드렸는데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소망 첫째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 그리스도가 무엇이냐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유일신, 오직 한 분, 하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에서 님 자를 빼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한 분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천주교는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하늘님을 줄인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게 기본적인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기본입니다. 여호와는 무슨 뜻입니까. 약속 계약입니다. 쌍방 약속을 했다 이게 여호와입니다. 약속 계약입니다.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말씀은 가르친다는 겁니다. 알린다는 겁니다. 말의 경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필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은 뭐하는 하나님이라고요,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르칠 때 뭘로 가르칩니까.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 여호와, 그리스도.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사람되어 오신 분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이름을 그리스도 예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위에서는 내려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들이 예수를 근거해서 하는 겁니다. 예수가 그럴 때는 하나님과 사람이 가치 있는 겁니다. 교리적 여섯 글자로 뭐라고 그러지요.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걸 신인양성일위입니다. 이분이 예수님, 겉모습은 사람이고 신성이 있는데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가지고 어려워서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럴 때는 또 필요하는데 원어, 헬라어 히브리언가 모르겠습니다. 원어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다라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기름 부은 받은 직책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제사장 세울 때, 선지자 세울 때, 왕을 세울 때 왕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란 세 가지 직분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거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는 일차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제사장 선지자 하나님 왕직을 가지고 변하신 하나님, 그게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이름, 그리스도와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제사장이란, 제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란 제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제사장이라, 제사가 무엇인가, 제사는 무엇이지요. 제사는 범죄한 인생에게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은 인생을 유일한 길이 제사입니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끊어졌듯이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끊어진 전설을 연결시키면 전기가 통합니다. 호스가 끊어졌는데 연결시키면 물이 나옵니다.
군사시설, 다리 전쟁 중에 폭격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암만 파괴해도 선만 연결되어있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파괴입니다. 연결시키면 파괴하는 겁니다. 범죄함으로 끊어져서 사망한 인생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주시는 유일한 제도, 방법으로 주신 것이 제사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는 반드시 죽은 자를 살리는 거니까 값이 필요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이니까 죽은 자를 살리려면 하나님의 말을 어긴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대신 죽는 하나님이 죽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인성을 잃고 영원한 죽음에 건져주신 게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거기는 그리스도와 사람된 주님이 같이 제물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제물되는 제물의 구약시대의 모든 양, 염소, 송아지, 소, 비둘기 피를 흘린 제사들이 제물입니다. 죄값을 치르고 죄를 면하고 연결 결합시켜주는 것이 뭐라고요. 그게 뭐라고요. 그게 제사입니다. 그 제사를 책임진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제물 속에 그 제물의 일차 제물은 누구를 표시합니까. 구약의 제사의 모든 제물은 순서는 바뀔 수 있는데 예수님. 그 속에는 나, 예수님이고 나, 그리고 제사 지내는 사람은 책임이 자기, 그래서 자기를 잡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자기를 잡아서 연결시켜주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자기가 제물이 되어서 사람을 하나님하고 연결시켜주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을 연결시키려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지요. 연결시켜 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전도를 해야겠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읍시다 전도합시다. 그런데 전도하면 요즘은 더 멀리갑니다. 전도할 때는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발로 걸어다니고 입으로 말을 하고 시간을 들이는 게 자기를 바치는 거지요. 전도하면 전도가 재미있습니까 힘듭니까. 전도 모두 해보셨습니까. 전도지 들고 예수님 믿고 천국가십시다. 대문 벨 누르고 들어가서 예수님 믿고 천국 가십시다. 요즘은 그렇게 못하지요. 여기 아마 그거 안해 본 분 많으시지요. 그러면 민망하고 부끄럽고 낯뜨겁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교회합니까.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전도하고, 가족 중에 학교 친구 중에, 직장에 안 믿는 사람 있으면 그들을 믿게 만들고 하나님하고 연결시켜줘야겠는데 말 안해도 주일을 지킵니다. 술을 안 먹습니다. 밥 먹을 때 기도합니다. 예수쟁이네 교회다니네. 내가 주일날 지키지요. 술담배 안하지요. 기도하지요. 틈나면 성경 보지요. 말 안해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모든 걸 내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이 다 알게되니까 제사장이 되려면 죽어야합니다. 힘든 일 있으면 다 안하는 일이 있고 안할려고 그러면 표는 안 나고 남는 거 없는데 하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내가 나서서 그 일을 하는 거지요. 내가 하는 그 이유는요. 유익도 없고 돈벌이도 안되고 그렇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물이라고 그럽니다. 보면 다 압니다. 보면 다 알게되어있습니다. 말 없이, 하고 난 다음에 표도 안되고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영광도 되겠고 알아도 되겠고 서로 하겠는데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 둘 쌓이니까 집안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떡도 맛있고 빵도 맛있는데 맛있는 음식이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쳐다보고 눈치보는 학생도 있고 내가 먼저 먹고 많이 먹어야지.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먼저 생각하지 않고 돌아봅니다. 나눠먹어야하는데, 부모님 드려야하는데.
오형제 오남매가, 서로 맛있는 걸 많이 먹으려고 하면 그 오형재는 제사장하고 한참 먼 것입니다. 사형제가 맛있는 걸 먹는데 그게 장남이든 차남이든 빠져서 손이 천천히갑니다. 다른 형제 많이 먹도록 양보합니다. 그게 제사장입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란 손해보고 하나님께 붙이는 게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은 큰 거부터 합니까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합니까. 서로 먼저 먹으려고 하지 않는, 음식을 양보하는. 그걸 부모님들이 보고 매를 때려서라도 혼자 다 먹으려고 하면 고쳐야합니다. 돼지는 돼지마구라고 합니다. 부어주면 돼지는 몇 마리 키우거든요, 서로 먹으려고 집어넣습니다. 그게 돼지입니다. 맛있는 거 먹으려고 서로 싸우면 그게 돼지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못 먹어도 빠져나오면 그 사람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엉망이 되어져있습니다. 양말도 책도 흩어져있는데 바빠서 그런지 어머니 아버지는 정신없고 아무도 안 치우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렇게 살면 그게 예사가 됩니다.
어릴 때 젖먹이 바글바글할 때는 어쩔 수 없지요. 시켜서, 정리를 해 나가야합니다. 그래야 아이 교육이 됩니다. 쥐어던져놓으면 익어지면 그게 이렇게 사는가보다. 정상이 아니구나.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살아야하지요. 아무도 안 치우는데 누군가 표내지 않고 옷도 걸어놓고 책꽂이 꽂아놓고 정리를 해나가면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놀 시간 안 놀고 다했으니까. 제사장은 그런 곳에서부터 하는 겁니다. 지난 번에 주일 지나고 지하실 엉망 되어있는 걸 적어놨더니 여기 삼형제가 했는가, 그거 삼형제가 제사장이 된 겁니다. 그런 걸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여반들이 치우친 신앙 받아서 전도만하고 돌아다니고 봉사만 하고 다닙니다. 집에 가보니 집은 엉망이고 쓰레기장이고 남편 밥도 안해주고 예배당만 좇아다니면 그거 치우쳐서 안되는 겁니다. 아내를 보살피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보이는데에서부터 내가 낮아지고 내가 고생하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다른 사람은 하나님께 붙여주는 게 제사장입니다. 소를 잡아서 양을 잡아서 그게 구약시대고, 강단에 서서 그게 목사들도 외식하는 자입니다. 요즘은 제가 덜하는 편인데 화장실 청소도 많이했고 안 되어있으면 휴지도 줍고 합니다. 주차장 쓰는 건 예사로 씁니다. 그런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니까 제사장이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낮아지고 희생하고 연결시켜주는 가장 핵심은 뭐냐, 주님 대속을 가지고 해야합니다. 피 없는 희생과 손해는 도덕 윤리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주님 피를 근거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붙이는 게 제사장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직입니다. 그렇게 하시다가 죽으셨고 그런 거지요.
자기가 먼저 전하려면 먼저 알아야합니다. 적어도 아는 그대로 실행을 하고 회개라도 하고 소원이라도 가지면서 전하는 말씀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고 전하는 것과 전하기만 하는 복음은 다릅니다. 교인들이 다 압니다. 설교자가 하나님과 가까워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죄인이 되어가지고 참 설교할 것이 아니게 되는데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하면 듣습니다. 말씀 들어가고, 그런 껍데기고 대충 살다가 전하면 교인들은 하나도 안 듣습니다. 들어봐야 안들어갑니다. 왕은 무엇과 무엇이 같다고 합니까. 하나님하고 왕하고, 주인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진짜 왕은 하나님 뿐이고 진짜 주인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닌 자가 주인인 척하면 역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닌 인간이 왕노릇하면 그렇게 되는 건데 큰죄가 되는 겁니다. 왕은 주권자입니다. 복종을 하되 내 주관을 가지고 내 자유의지로 복종하는, 이런 복종이 되어야 진짜 복종이 되는 겁니다.
강제로 복종하면 종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왕이란 복종하게 하는 동시에 그 복종이 자기가 하는 겁니다. 그래야 왕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로 은혜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되게 됩니다. 제사장직을 감당해서 만드면 그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만드는 게 복음 운동이다. 그래서 강하게 표현하면 새끼 그리스도, 작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주님은 맏아들 우리는 그 다음 아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신앙생활, 그리스도들이 이룬 나라가 하늘 나라다. 반대로 그리스도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화된 인격들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우리 소망은 영원하다고 되어있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