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금밤
김동민2026-04-10조회 5추천 2
2026년 4월 10일 금밤
찬송: 19장, 195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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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약의 모든 율법을 가지고 율법이 육백몇가지인가 그런데 바울을 갖다대도 전부 실행을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마지막 끝에 오셨고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이고 신약의 첫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구약에 말라기가 끝인데 구약의 마지막이면서 신약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구약시대는 율법을 실행을 했고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율법을 폐했다고 했습니다.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온전케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으나 율법대로 지키지 않으셨고 유월절을 지키셨지만 구약의 형식으로 지키지 않으셨고 오순절 장막절 행하지 않았다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에 속한 율법은 모든 말씀을 다 지켰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되는 게 깨닫고 내가 가진 의, 의라는 것은 구약으로 말하면 의로 된 것이고 흠이없다. 율법의 주의자들은 율법대로 준행을 해야 천국가고 구원받는다는 게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깨닫고 나니까 율법이 아닌 것을 깨달아서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6절에는 율법의 흠이 없는 자라고 했는데 이건 소개고,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하나님께로써 나온 의라. 의를 두 개를 가지고 있지요. 두 가지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의가 있고 믿음의 의가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로 다 가진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가 무엇인가, 율법의 의를 오늘에 적용시키면 기본구원 건설구원으로 구별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천국 가는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고. 바울도 사울 때 바리새파로써 율법을 다 준행을 했고 그런데 주님 만나고 바로 듣고 보니까 구원 받는 것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난 의라고 고백을 합니다. 과거에는 율법으로 받았는데 틀렸고 지금은 옳다. 둘 다 우리가 알고나서 보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의는 우리가 배운 걸 말하면 무슨 구원이지요. 기본구원입니다. 이건 믿음으로 되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약 성경 다 율법입니다. 신약은 다 하나님 계명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까 율법에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행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래야 구원이 됩니다. 그게 바로 건설구원이 되는 겁니다. 바울은 기본구원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이걸 깨닫기 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서 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은 행함으로 아닌 걸 깨닫고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믿음으로 봤는데 그러면 율법은 필요없느냐, 다 행해야한다. 성경에 용어적으로 기본구원 건설구원이 있는 게 아니지만 바울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삼위일체가 있냐. 성경에 안 나옵니다. 정통 기독교 교파는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오래 전에 깨달은 것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데, 이단들이 삼위일체 성경에 나오냐, 성경을 찾아보면 삼위일체라는 글자는 안 나오는데 성경에 찾아보면 하나님은 세 분이고 하나님은 한 분이고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적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걸 알기 쉽도록 이름을 붙인 게 삼위일체입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은 성경에 명백하게 있습니다. 섞여있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겁니다. 6천년 세월이 흘렀으니까 백영희 목사님을 통해서 밝혀놓은 것이고 참 알기 쉽게 되어진 겁니다. 바울의 의는 두 가지 의입니다. 기본 구원을 깨닫기 전에는 건설구원에 의만 가졌습니다.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건설구원 아무리 행해도 건설 구원은 없습니다. 땅이 없는데 터가 없는데 집을 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기본 구원이란 건설구원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입니다. 의를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율법 주의자. 그런데 성경 전체 알고보면 은혜주의가 있고 복음주의가 있습니다. 은혜 위에 건설해나가야한다. 두 가지가 맞아야 바로 되는 겁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걸 깨달았기 때문에 갈라디아서에서 보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충성으로 안되고 하나님의 은혜라야 깨닫는 것은 바로된 사람이고 충성할수록 멀어지는 사람은 잘못 깨닫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알아갈수록 모든 피조물은 알아갈수록 아는 것은 많고 줄어드는 게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알아갈수록 아는 것은 많고 모르는 건 적어지는 게 피조물입니다.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집니다. 아는 게 천 가지가 될 때 만 가지를 몰랐는데 만가지를 알고 나면 백만가지가 됩니다. 그게 하나님입니다. 완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이라도 그 깊이를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사람은 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별 사람일까.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틀립니다. 율법주의였던 바울이 은혜주의로 깨닫고 나니까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밝혀놨습니다. 이름만 안 붙였을 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두고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을 가르치고 에베소서는 교회를 가르치고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기록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것은 보태서 마치 사람이 사람을 위로해주는,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고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 좋은 성적을 위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때 위한다는 것은 얻어 가지기 위해서 그리 되고자 그런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 얻는다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물질은 형체를 가졌고 주고 받는 걸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지요. 여수라고 합니다. 여수거래, 주고받는 거래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팔절 끝에 보니까 얻는다는 말은 주님이 가지고 계신 그것을 바울이 받는 건데, 첫 번째 의를 말씀하셨고 그리스도가 뭐냐, 그리스도가 무엇인가요. 늘 그리스도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뜻이 뭐라고 했던가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원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뭐냐, 구약 성경에 찾아보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세 가지 직분을 세울 때 기름을 붓더라. 첫째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왕이 될 때 기름을 붓더라. 제사장 선지자 왕직이더라. 그런데 바울이 그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위하려면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스도의 원형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이름이 그리스도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라고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름이란 다른 말로 뭐라고 하지요. 이름이란 다른 말로 직책이 달라지지요.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아내에게는 여보입니다. 조카가 삼촌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이라고 합니다. 왜 우리 아버지가 삼촌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사장님도 되고 관계와 역할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지는 겁니다. 첫째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무슨 뜻이라고요 유일신 계약입니다. 이런 거 모르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여호와다 나는 말씀이다. 우리들과 관련된 이름인데 나는 그리스도다. 말씀으로 하면 나타낸다.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성령입니까.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구원하시려고 하신 그 이름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 가지 직분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세 가지 직분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신데 그 본체 자체가 하나님 자체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 분은 그래서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바울이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가 되려고 한다. 그러면 바울이 얻으려고 하는 그리스도, 우리가 되어야하는 그리스도는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내가 그리스도가 되느냐.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고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하면 되는데 이걸 어떻게하느냐, 무엇으로 하느냐, 제사장 노릇을 선지자 노릇을 왕 노릇을 뭐라고 하느냐. 내 마음과 몸으로 합니다. 마음의 생각, 의지, 지혜, 작용이 움직이고 내 눈이 발이 걷고 귀가 듣고 입이 말하고, 내 마음과 몸이 그리스도 제사장, 내 마음과 몸이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붙이는 걸 내 마음과 몸이 합니다. 내 심신이 이렇게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마음과 몸이 하는 만큼 이렇게 사람을 연결시켜주기 위해서 마음으로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친구를 주일학생을 내 주변 사람을 인도할까.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 그게 제사장 생각입니다. 또 찾아가서 심방을 가서, 교회로 인도하게 되는 그 발걸음이 가서 말하는 게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이 됩니다.
우리 학생들 필기하고 나면 동생들 검사하고 가르치지요. 그러면 내가 한 필기가 있고 동생이 필기한 거 보고 이거 잘했네 잘못적었네 가르치면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건 뭘로 하지요. 마음으로 하고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입으로 합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게 왕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내 마음과 몸으로 하는 겁니다. 사람 몸은 머리와 몸 이목구비 수족이 있습니다. 발이 하고 귀가 하고 입이 하고 간장은 위장은 폐는 심장은 그게 같이 움직여줘야 내 입이 음식을 먹고 심방을 가고 그래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행할 때 그 움직임에 따라서 발이 걸어갈 때 그럴 때 내 속의 위장도 간장도 췌장도 대장도 소장도 구원이 같이 되는 겁니다. 연결되어있으니까. 죄를 지을 때는 그런 거 원치않게 따라가는 겁니다. 내 속에는 간은 가기 싫은 심장은 믿는 사람이 죄짓고 돌아다니면 심장이 뛰고 싶겠습니까 멈추고 싶겠습니까. 그럴 때 심장의 기능이 죽어버리는 겁니다.
부활하면 신령한 몸이 되기 때문에 상관이 없겠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뭘하지요, 생선을 구워드리니까 생선을 드셨습니다. 이도 있고 소화기관도 있고 다 있겠네요. 부활할 때 무슨 몸으로 부활합니까. 세상 떠날 때 모습으로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다 늙어서 부활하겠네. 장애인들은 장애인으로 부활하겠네. 그런데 부활한 몸은 그 전부 다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게 전혀 해당이 없습니다. 마음같은 몸인데, 바울이 소원하는 바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어가느냐. 기능이다 그랬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그 말은 그리스도화된 제사장화되고 선지자화되고 그게 줄여서 천국에 보내는 나라가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합니다.
제사장 자기를 바쳐서 연결시켜주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특히 제사장직을 뭐라고 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사람을 중매쟁이라고 합니다. 중매쟁이를 세례 요한은 중매쟁이었는데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그런 관계인데 이걸 다른 말로 중보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보자. 빠져나올찌라도, 나를 바쳐서 희생해서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바쳐드려서 연결시켜주는 그게 제사장이다. 선지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 읽고 말씀 잘 듣고 그리고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한 명이라도 가르칠만한 초등학교 4학년 5학년되면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요. 조를 잘 짜서, 배우면서 가르치는 그게 방법입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하면 밑에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과외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중학교 가장 잘 가르칩니다. 길게 가르치지 말고 그 말씀을 가르칠 때 설교록 고정보는 거, 제목 잡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제목을 말하면 몰라도 나는 오늘 말씀 이걸 깨달았습니다. 그걸 동생들에게 가르치면 되는 겁니다. 말이 많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설교는 어쩔 수 없는데 복습할 때는 간단하게 줄여서 가르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남는 건 한 가지입니다. 제가 40분 설교를 하는데 세 가지입니다. 의, 바울이 가진 의입니다. 두 번째는요. 그리스도, 제사장 선지자 왕, 의를 말씀드렸고 그리스도를 설명했고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제로 우리가 내 심신의 몸을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만큼 아는대로 전해준만큼 그 사람이 그렇게 살게 해준만큼 마음, 요소들 이게 기능화 되어서 나라는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시켜준 이걸 안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할까. 사람을 사랑해볼까 이런 거 가지고 걱정하고 애도타고 근심걱정도 하고 가진만큼 제사장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 잘될까. 그만큼 선지아 왕의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 실제로 따라서 마음과 몸이 움직여서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심신은 그만큼 발달하고 도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성화 구원, 기능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9장, 195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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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약의 모든 율법을 가지고 율법이 육백몇가지인가 그런데 바울을 갖다대도 전부 실행을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마지막 끝에 오셨고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이고 신약의 첫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구약에 말라기가 끝인데 구약의 마지막이면서 신약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구약시대는 율법을 실행을 했고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율법을 폐했다고 했습니다.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온전케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으나 율법대로 지키지 않으셨고 유월절을 지키셨지만 구약의 형식으로 지키지 않으셨고 오순절 장막절 행하지 않았다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에 속한 율법은 모든 말씀을 다 지켰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되는 게 깨닫고 내가 가진 의, 의라는 것은 구약으로 말하면 의로 된 것이고 흠이없다. 율법의 주의자들은 율법대로 준행을 해야 천국가고 구원받는다는 게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깨닫고 나니까 율법이 아닌 것을 깨달아서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6절에는 율법의 흠이 없는 자라고 했는데 이건 소개고,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하나님께로써 나온 의라. 의를 두 개를 가지고 있지요. 두 가지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의가 있고 믿음의 의가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로 다 가진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가 무엇인가, 율법의 의를 오늘에 적용시키면 기본구원 건설구원으로 구별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천국 가는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고. 바울도 사울 때 바리새파로써 율법을 다 준행을 했고 그런데 주님 만나고 바로 듣고 보니까 구원 받는 것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난 의라고 고백을 합니다. 과거에는 율법으로 받았는데 틀렸고 지금은 옳다. 둘 다 우리가 알고나서 보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의는 우리가 배운 걸 말하면 무슨 구원이지요. 기본구원입니다. 이건 믿음으로 되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약 성경 다 율법입니다. 신약은 다 하나님 계명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까 율법에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행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래야 구원이 됩니다. 그게 바로 건설구원이 되는 겁니다. 바울은 기본구원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이걸 깨닫기 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서 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은 행함으로 아닌 걸 깨닫고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믿음으로 봤는데 그러면 율법은 필요없느냐, 다 행해야한다. 성경에 용어적으로 기본구원 건설구원이 있는 게 아니지만 바울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삼위일체가 있냐. 성경에 안 나옵니다. 정통 기독교 교파는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오래 전에 깨달은 것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데, 이단들이 삼위일체 성경에 나오냐, 성경을 찾아보면 삼위일체라는 글자는 안 나오는데 성경에 찾아보면 하나님은 세 분이고 하나님은 한 분이고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적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걸 알기 쉽도록 이름을 붙인 게 삼위일체입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은 성경에 명백하게 있습니다. 섞여있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겁니다. 6천년 세월이 흘렀으니까 백영희 목사님을 통해서 밝혀놓은 것이고 참 알기 쉽게 되어진 겁니다. 바울의 의는 두 가지 의입니다. 기본 구원을 깨닫기 전에는 건설구원에 의만 가졌습니다.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건설구원 아무리 행해도 건설 구원은 없습니다. 땅이 없는데 터가 없는데 집을 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기본 구원이란 건설구원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입니다. 의를 가지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율법 주의자. 그런데 성경 전체 알고보면 은혜주의가 있고 복음주의가 있습니다. 은혜 위에 건설해나가야한다. 두 가지가 맞아야 바로 되는 겁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걸 깨달았기 때문에 갈라디아서에서 보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충성으로 안되고 하나님의 은혜라야 깨닫는 것은 바로된 사람이고 충성할수록 멀어지는 사람은 잘못 깨닫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알아갈수록 모든 피조물은 알아갈수록 아는 것은 많고 줄어드는 게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알아갈수록 아는 것은 많고 모르는 건 적어지는 게 피조물입니다.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집니다. 아는 게 천 가지가 될 때 만 가지를 몰랐는데 만가지를 알고 나면 백만가지가 됩니다. 그게 하나님입니다. 완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이라도 그 깊이를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사람은 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별 사람일까.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틀립니다. 율법주의였던 바울이 은혜주의로 깨닫고 나니까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밝혀놨습니다. 이름만 안 붙였을 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두고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복음을 가르치고 에베소서는 교회를 가르치고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기록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것은 보태서 마치 사람이 사람을 위로해주는,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고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 좋은 성적을 위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때 위한다는 것은 얻어 가지기 위해서 그리 되고자 그런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 얻는다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물질은 형체를 가졌고 주고 받는 걸 한문 글자로 뭐라고 하지요. 여수라고 합니다. 여수거래, 주고받는 거래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팔절 끝에 보니까 얻는다는 말은 주님이 가지고 계신 그것을 바울이 받는 건데, 첫 번째 의를 말씀하셨고 그리스도가 뭐냐, 그리스도가 무엇인가요. 늘 그리스도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뜻이 뭐라고 했던가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원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뭐냐, 구약 성경에 찾아보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세 가지 직분을 세울 때 기름을 붓더라. 첫째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붓고 왕이 될 때 기름을 붓더라. 제사장 선지자 왕직이더라. 그런데 바울이 그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얻으려면 위하려면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스도의 원형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이름이 그리스도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라고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름이란 다른 말로 뭐라고 하지요. 이름이란 다른 말로 직책이 달라지지요.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아내에게는 여보입니다. 조카가 삼촌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이라고 합니다. 왜 우리 아버지가 삼촌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사장님도 되고 관계와 역할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지는 겁니다. 첫째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무슨 뜻이라고요 유일신 계약입니다. 이런 거 모르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여호와다 나는 말씀이다. 우리들과 관련된 이름인데 나는 그리스도다. 말씀으로 하면 나타낸다. 성부입니까 성자입니까 성령입니까.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구원하시려고 하신 그 이름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 가지 직분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세 가지 직분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신데 그 본체 자체가 하나님 자체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 분은 그래서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바울이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가 되려고 한다. 그러면 바울이 얻으려고 하는 그리스도, 우리가 되어야하는 그리스도는 무엇이냐, 어떻게 해야 내가 그리스도가 되느냐.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고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하면 되는데 이걸 어떻게하느냐, 무엇으로 하느냐, 제사장 노릇을 선지자 노릇을 왕 노릇을 뭐라고 하느냐. 내 마음과 몸으로 합니다. 마음의 생각, 의지, 지혜, 작용이 움직이고 내 눈이 발이 걷고 귀가 듣고 입이 말하고, 내 마음과 몸이 그리스도 제사장, 내 마음과 몸이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붙이는 걸 내 마음과 몸이 합니다. 내 심신이 이렇게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마음과 몸이 하는 만큼 이렇게 사람을 연결시켜주기 위해서 마음으로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친구를 주일학생을 내 주변 사람을 인도할까. 생각하고 기도하는 마음, 그게 제사장 생각입니다. 또 찾아가서 심방을 가서, 교회로 인도하게 되는 그 발걸음이 가서 말하는 게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이 됩니다.
우리 학생들 필기하고 나면 동생들 검사하고 가르치지요. 그러면 내가 한 필기가 있고 동생이 필기한 거 보고 이거 잘했네 잘못적었네 가르치면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건 뭘로 하지요. 마음으로 하고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입으로 합니다. 그게 선지자입니다. 그게 왕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내 마음과 몸으로 하는 겁니다. 사람 몸은 머리와 몸 이목구비 수족이 있습니다. 발이 하고 귀가 하고 입이 하고 간장은 위장은 폐는 심장은 그게 같이 움직여줘야 내 입이 음식을 먹고 심방을 가고 그래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행할 때 그 움직임에 따라서 발이 걸어갈 때 그럴 때 내 속의 위장도 간장도 췌장도 대장도 소장도 구원이 같이 되는 겁니다. 연결되어있으니까. 죄를 지을 때는 그런 거 원치않게 따라가는 겁니다. 내 속에는 간은 가기 싫은 심장은 믿는 사람이 죄짓고 돌아다니면 심장이 뛰고 싶겠습니까 멈추고 싶겠습니까. 그럴 때 심장의 기능이 죽어버리는 겁니다.
부활하면 신령한 몸이 되기 때문에 상관이 없겠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뭘하지요, 생선을 구워드리니까 생선을 드셨습니다. 이도 있고 소화기관도 있고 다 있겠네요. 부활할 때 무슨 몸으로 부활합니까. 세상 떠날 때 모습으로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다 늙어서 부활하겠네. 장애인들은 장애인으로 부활하겠네. 그런데 부활한 몸은 그 전부 다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게 전혀 해당이 없습니다. 마음같은 몸인데, 바울이 소원하는 바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어가느냐. 기능이다 그랬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그 말은 그리스도화된 제사장화되고 선지자화되고 그게 줄여서 천국에 보내는 나라가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합니다.
제사장 자기를 바쳐서 연결시켜주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특히 제사장직을 뭐라고 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사람을 중매쟁이라고 합니다. 중매쟁이를 세례 요한은 중매쟁이었는데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그런 관계인데 이걸 다른 말로 중보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보자. 빠져나올찌라도, 나를 바쳐서 희생해서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바쳐드려서 연결시켜주는 그게 제사장이다. 선지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 읽고 말씀 잘 듣고 그리고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한 명이라도 가르칠만한 초등학교 4학년 5학년되면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요. 조를 잘 짜서, 배우면서 가르치는 그게 방법입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하면 밑에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과외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중학교 가장 잘 가르칩니다. 길게 가르치지 말고 그 말씀을 가르칠 때 설교록 고정보는 거, 제목 잡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제목을 말하면 몰라도 나는 오늘 말씀 이걸 깨달았습니다. 그걸 동생들에게 가르치면 되는 겁니다. 말이 많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설교는 어쩔 수 없는데 복습할 때는 간단하게 줄여서 가르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남는 건 한 가지입니다. 제가 40분 설교를 하는데 세 가지입니다. 의, 바울이 가진 의입니다. 두 번째는요. 그리스도, 제사장 선지자 왕, 의를 말씀드렸고 그리스도를 설명했고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제로 우리가 내 심신의 몸을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만큼 아는대로 전해준만큼 그 사람이 그렇게 살게 해준만큼 마음, 요소들 이게 기능화 되어서 나라는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시켜준 이걸 안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할까. 사람을 사랑해볼까 이런 거 가지고 걱정하고 애도타고 근심걱정도 하고 가진만큼 제사장이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 잘될까. 그만큼 선지아 왕의 마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 실제로 따라서 마음과 몸이 움직여서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심신은 그만큼 발달하고 도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성화 구원, 기능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