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6-04-05조회 18추천 2
2026년 4월 5일 주일 오전
찬송: 4장, 54장
본문: 빌립보서 3장 10절 -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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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은 아시는대로 부활절 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 아는 상식으로 주일은 주일이고 앞에 무엇을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다들 붙이기 때문에 우리도 붙일 수는 있습니다. 세상이 오래 흘렀고 모든 게 변화가 되어지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교회도 세상을 따라서 변화가 많이 되어졌습니다. 좋게 바뀌면 좋은데 나쁘게 바뀌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랬든 저랬든 우리의 길을 가면 됩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합니다. 사후 세계를 말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종교들도 다른 종교들을 말합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해서 이종교들도 내세를 지향합니다. 죽음 너머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일반 이종교들은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제 모르고 짐작으로 추측으로 하는 것이고 기독교는 성경을 근거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보이지 않는 사람 속에서 일반 불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영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영이 중생이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영을 통해서 역사를 해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표현이고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완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이종교들은 내세를 소망하지만은 사람이 만든 사람의 종교입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명상 사람의 연구 사람이 파고드는 그런 역사를 통한 경험과 상상 이런 것들을 가지고 아마도 죽음 너머에 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이종교인데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생각하고 사람이 짐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게 있습니다.
이종교를 설명합니다. 다른 종교, 종교를 설명합니다. 종교까지 가지 못하는 인간의 생각 연구 고뇌를 생각이라고 합니다. 사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행복되게 복되기 하겠다 구원을 하겠다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연구한 겁니다. 자 우리 어려운 생각 해봅시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왔습니다. 종교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앉아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왜 사람이 늙을까 왜 병이 들까 왜 죽을까 죽고 난 다음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걸 생각하고 연구하고 파고 들어가는 걸 가르켜서 철학이라고 합니다. 비슷하게 사상이라고 하고. 이게 하나의 체계가 잡히면 종교라 그럽니다. 거기까지 못가면 미신이라고 합니다. 미신이 자리 잡으면 종교가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 이름을 말하면 다 알텐데 중학교 학생이 인생을 연구를 했습니다. 인생이 뭐냐 인간이 뭐냐 종교가 뭐냐,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교회에서 배운 말씀과 연결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이고 청년이고 어느정도 되면 인생이 뭐냐, 주신 분량이 있으니까 이럴 때 돌아봐야합니다. 다시 질문 드립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사람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디로 갑니까. 왜 늙습니까. 왜 죽습니까.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갑니까. 예배 시간에 배운 상식이 있습니다. 알고 있어야합니다. 이종교라는 것은 전부 다 사람이 만든 겁니다.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무슨교 이슬람교 같은 것은 기독교에서 파생되고 흉내내었지만 꼭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잘 믿어봐야 마지막에 산이고 물이고 돌은 돌이고 그게 결론입니다. 기본적인 원리고 상식입니다. 그래서 불교든 유교들 양심으로 들어가면 가장 정직한 겁니다. 사람은 더 이상 모르겠다. 인간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연구로 사람의 명상으로 사람의 고뇌로 사람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사람 이상의 존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받느냐,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 중에 누가 받지요. 사람의 영이 받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어있으면 하나님 역사가 그에게 임하지 못합니다. 이걸 죽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 택하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일차적으로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냅니다.
마음은 어디 있습니까. 마음 있는 건 다 아시지요. 마음은 몸 안에 있습니다. 몸 안에 어디있습니까. 내 몸, 내 안의 어디가 있습니까. 심장 안에 콩팥 안에 폐 안에 뇌 안에 마음이란 몸 안에 있는데 어디 있다고 특정하지 못합니다. 신비한 물질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겁니다. 소리는 어떻게 소리가 납니까. 이건 종에서 나는 소리라서 이것은 잡아냅니다. 재생도 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질인데 어디있느냐, 안에 있는 건 압니다. 생각 욕심 감정 다 있습니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내가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까, 영은 어디냐, 모든 사람이 다 부인합니다. 성경 전문가 신학자들도 영은 어렵다고 합니다. 지식 있잖습니까 마음에 욕심 자 있고 희로애락이 있으니까 알겠는데 영이라는 것은 이런 것도 초월한 겁니다. 그래서 영은 좀 서론이 길어지는데 사람이 태어날 때 사람은 부정모혈로 태어납니다. 아버지의 요소와 어머니의 장소가 달라집니다. 부정 모혈은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구라고 했던가요.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없이 태어난 부정모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담,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아담과 하와의 모든 자손입니다. 부정 모혈의 출생은 몸과 마음까지 있습니다. 영이란, 조상들의 자손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영은 아담 계통이 아닙니다.
아니라고까지는 곤란할 수 있으나 아담의 혈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십니다. 잉태될 때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고 영이 주격입니다. 영이 살아있어서 영이 살아날 때 영을 통해서 마음에 역사하시고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게 기독교 신앙의 출발입니다. 사람이 연구하는 겁니다. 따지고 들어가서 생각해낸 것이 모든 이종교고 기독교는 사람이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영에게 알려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세를 이종교들이 말하지만 모릅니다. 그들 내세는 없습니다. 추측 추론입니다. 기독교는 내세를 지향하는데 실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도가 기독교입니다. 내세에 있을 일입니다. 죽은 다음에 있을 일이 기독교입니다. 목사님들이 마음 먹으면 돈을 많이 빼먹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 속에 종교성이 있습니다. 영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교회를 가는데 목사들이 바로 가르치면 연결시켜주는데 탈선하고 삐뚤어지면 그걸 이용해서 연보 많이 하게 하고 다 빼먹습니다. 그런 목사들 굉장히 많고 저도 그런지 교인들이 살펴 보셔야합니다.
그러나 내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돈 많이 벌고 편리한 환경 만들어서 잘 먹고 잘 살면 좋기는 좋은데 백날 그래봐야 안 죽는 사람들 없습니다. 과학자 의학자들이 불로불사하게 할려고 연구하는데 안될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죽음 넘어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고 죽음 넘어에서 보는 것이 있고 기독교 신앙이고 가장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며 기본입니다. 기본을 말씀드렸던가요. 기초라는 뜻입니다. 언제 배우느냐, 기초는 가장 처음에 배웁니다. 공부 기초 언제 배웁니까. 초등학교 때 배웁니다. 기초, 기초는 어릴 때 가장 기본이고 가장 상식인데 가장 터가 되고 가장 중요한게 기본이고 기초입니다. 건설도 기초가 안 되어있으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느정도까지 가다가 맙니다. 운동도 기초된 사람과 안된 사람은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신앙의 기초 기본은 부활의 도다. 이게 가장 기본입니다. 오늘 지금 부활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이 있는데 심신도 영도 다 죽었습니다. 영은 단일성의 존재라 단번에 죽고 사람의 심신은 복합체 종합체라서 사람이 평생이 사는 것은 태어나는 것은 동시에 죽으러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영은 단번에 죽고 심신은 걸렸습니다. 다시 살리는 걸 가르쳐서 중생이라고 합니다. 영이 다시 사는 것은 중생 죽었던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뭐라고 그럽니까. 부활이라고 합니다. 같이 죽기는 죽었고 죽은 데서 살아나는데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건 부활이라고 합니다. 다시 살아난 중생과 부활은 죽었다 살아나면 영생합니다.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도 중생되면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죽지 않은 것은 중생된 영은 다시 범죄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도 부활의 몸은 죽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나오고. 성경에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이 대표적으로 누구죠. 나사로입니다. 죽어서 나흘이 지나서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니까 죽은 사람이 듣고 살아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사로가 영생했습니까 또 죽었습니까. 그길로 영생했습니까 또 죽었습니까. 또 죽었습니다. 표시만 해준겁니다.
과부의 아들도 죽어서 상여, 상여라고 요즘은 없죠 간단하니까 꽃가마처럼 만들어서 갑니다. 부활이 있다는 걸 보여주신 겁니다. 그런데 부활은 영 중생도 중생으로 다시는 병들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마음 같은 몸으로, 이런 몸으로 부활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기다려지고, 부정적으로 들으면 말이 되냐, 말이 됩니까. 다시는 늙지 않는답니다. 병들지도 않는답니다. 죽지도 않는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겁니다. 우주를 백만바퀴 도는 겁니다. 이런 몸으로 부활한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걸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걸 믿으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믿기 때문에 더 가치있는게 어딨냐.
부활이란 전체가 있습니다. 부활은 죽어야 사는 겁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 한 알의 밀이 씨앗에 빠져서 살아나지 못하면 죽습니다. 거기서 새 생명이 나는 게 살아나는 겁니다. 달걀이 깨지면 병아리가 나옵니다. 달걀은 없어집니다. 매미가 매미 되려면 유충은 없어져야합니다. 죽어야 사는 게 부활입니다. 이 부활을 말씀합니다. 부활은 성경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자라가는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기업을 하는 게 부활입니다. 부활은 유한한 자본은 승격시켜주시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라는 일은 하는데 그 유한한 자본을 승격 시켜주신 것을 가르켜서 부활이라고 합니다.
찬송가 167장에 보면 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 천국에 다시 설 때 이런 가사가 나오는데 그 찬송을 하시면서 백목사님이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등따시고 베불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을 영원토록 하는 날인데 일을 하긴 하는데 돈 벌기 위해서 마지못해서 하면 일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 일이, 자기가 좋아서, 결혼할 때 결혼했습니다.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사랑스럽습니다. 아버지도 사랑스럽습니다. 어떻게 복되기 길러볼까. 자녀가 어려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먹여주고 입혀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알아주고 그래서 그 부모의 수고 사랑의 노력으로 인해서 자녀가 조금씩 자라면 그 자라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고 좋습니다.
세 살 될 때까지 부모를 기쁘게 한 값은 평생을 그 아이에게 바치게 하는 값이 된다. 아이가 세 살 될 때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듯이 부모가 그 아이에게 헌신할 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고 기대인 것이죠. 헌신 수고 노력 희생은 억지가 아닙니다.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스러워서 더 좋게 더 귀하게 더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쏟아붓습니다. 아이가 학교 다니다가 일등을 했습니다. 학교 대표로 대회 나가야합니다. 대회 나가라면 대학교 대표인데 비용이 100만원이랍니다. 아까운 사람이 있습니까. 일류 고등학교를 간답니다. 천만원 아깝습니까. 우리 아들이 서울대 의대 합격했습니다. 등록금이 몇천만원이랍니다. 돈 좀 빌려서 우리 아들이 서울대 의대 합격했는데, 서로 빌려줄 것이고 납부하면 자랑할 것이고 돈이 안 아깝습니다. 좋아서 하는 겁니다. 원하고 그런 성격에 충성하다가 유한하기 때문에 세상 지나면 세월 지나면 늙어야하고 죽어야합니다. 그 죽음을 영원토록 사랑해라. 너의 가진 거 재물 노력 영원토록 쏟아부어봐라. 이해가 되시는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그 부활의 권능과 세 번째 그 고난을 사도 바울이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요. 부활의 권능을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한다, 그리스도가 부활했습니다. 부활을 소망한다, 세 번째 부활이 있기까지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이 바울이 어떤 사람이냐, 3장 5절입니다. 내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원칙적으로 받았다는 겁니다. 남자인들은 태어나면 할례를 받는 게 법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한 베냐민 지파다. 똑똑하고 독한 사람들입니다. 600명이 돌을 던지면 다 맞추는 명사수들이 다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도 정체성입니다. 신앙 계통으로 중심이 있다는 겁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벌 배경 다 가진 사람입니다. 아주 유력한 청년이었습니다. 잘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 듣고 돌아섰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길이 이 길이 아니구나. 그걸 알고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었구나. 돌아서 회개하고 난 다음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전부 다 했고 얻기 위해서는 배설물로 여겨버렸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를 소망한 겁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 그걸 알려는 겁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죽은 자 가운데에서 하는 겁니다. 세 가지 소망의 죽으심이 되었습니다. 죽음 가운데에서 부활의 결론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바울의 소망의 중심은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있고 그 그리스도에 부활이 있는데 부활이란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부활을 소망하는데 죽음이 있으니까 죽음과 죽음까지 과정을 알아야겠습니다. 이걸 알려하는 겁니다. 여기 동참에서 같이 하기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과 그 전의 과정, 죽음과 그 전의 모든 고난의 세계입니다. 그리스도란, 첫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입니다. 기름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직분을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행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네 번
찬송: 4장, 54장
본문: 빌립보서 3장 10절 -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오늘 주일은 아시는대로 부활절 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 아는 상식으로 주일은 주일이고 앞에 무엇을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다들 붙이기 때문에 우리도 붙일 수는 있습니다. 세상이 오래 흘렀고 모든 게 변화가 되어지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교회도 세상을 따라서 변화가 많이 되어졌습니다. 좋게 바뀌면 좋은데 나쁘게 바뀌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랬든 저랬든 우리의 길을 가면 됩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합니다. 사후 세계를 말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종교들도 다른 종교들을 말합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해서 이종교들도 내세를 지향합니다. 죽음 너머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일반 이종교들은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제 모르고 짐작으로 추측으로 하는 것이고 기독교는 성경을 근거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보이지 않는 사람 속에서 일반 불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영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영이 중생이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영을 통해서 역사를 해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표현이고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완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이종교들은 내세를 소망하지만은 사람이 만든 사람의 종교입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명상 사람의 연구 사람이 파고드는 그런 역사를 통한 경험과 상상 이런 것들을 가지고 아마도 죽음 너머에 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이종교인데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생각하고 사람이 짐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게 있습니다.
이종교를 설명합니다. 다른 종교, 종교를 설명합니다. 종교까지 가지 못하는 인간의 생각 연구 고뇌를 생각이라고 합니다. 사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행복되게 복되기 하겠다 구원을 하겠다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연구한 겁니다. 자 우리 어려운 생각 해봅시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왔습니다. 종교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앉아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왜 사람이 늙을까 왜 병이 들까 왜 죽을까 죽고 난 다음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걸 생각하고 연구하고 파고 들어가는 걸 가르켜서 철학이라고 합니다. 비슷하게 사상이라고 하고. 이게 하나의 체계가 잡히면 종교라 그럽니다. 거기까지 못가면 미신이라고 합니다. 미신이 자리 잡으면 종교가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 이름을 말하면 다 알텐데 중학교 학생이 인생을 연구를 했습니다. 인생이 뭐냐 인간이 뭐냐 종교가 뭐냐,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교회에서 배운 말씀과 연결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이고 청년이고 어느정도 되면 인생이 뭐냐, 주신 분량이 있으니까 이럴 때 돌아봐야합니다. 다시 질문 드립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사람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디로 갑니까. 왜 늙습니까. 왜 죽습니까.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갑니까. 예배 시간에 배운 상식이 있습니다. 알고 있어야합니다. 이종교라는 것은 전부 다 사람이 만든 겁니다.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무슨교 이슬람교 같은 것은 기독교에서 파생되고 흉내내었지만 꼭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잘 믿어봐야 마지막에 산이고 물이고 돌은 돌이고 그게 결론입니다. 기본적인 원리고 상식입니다. 그래서 불교든 유교들 양심으로 들어가면 가장 정직한 겁니다. 사람은 더 이상 모르겠다. 인간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연구로 사람의 명상으로 사람의 고뇌로 사람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사람 이상의 존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받느냐,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 중에 누가 받지요. 사람의 영이 받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어있으면 하나님 역사가 그에게 임하지 못합니다. 이걸 죽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 택하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일차적으로 사람의 죽은 영을 살려냅니다.
마음은 어디 있습니까. 마음 있는 건 다 아시지요. 마음은 몸 안에 있습니다. 몸 안에 어디있습니까. 내 몸, 내 안의 어디가 있습니까. 심장 안에 콩팥 안에 폐 안에 뇌 안에 마음이란 몸 안에 있는데 어디 있다고 특정하지 못합니다. 신비한 물질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겁니다. 소리는 어떻게 소리가 납니까. 이건 종에서 나는 소리라서 이것은 잡아냅니다. 재생도 시킵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질인데 어디있느냐, 안에 있는 건 압니다. 생각 욕심 감정 다 있습니다. 그 마음은 알겠는데 내가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까, 영은 어디냐, 모든 사람이 다 부인합니다. 성경 전문가 신학자들도 영은 어렵다고 합니다. 지식 있잖습니까 마음에 욕심 자 있고 희로애락이 있으니까 알겠는데 영이라는 것은 이런 것도 초월한 겁니다. 그래서 영은 좀 서론이 길어지는데 사람이 태어날 때 사람은 부정모혈로 태어납니다. 아버지의 요소와 어머니의 장소가 달라집니다. 부정 모혈은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구라고 했던가요.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없이 태어난 부정모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담,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아담과 하와의 모든 자손입니다. 부정 모혈의 출생은 몸과 마음까지 있습니다. 영이란, 조상들의 자손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영은 아담 계통이 아닙니다.
아니라고까지는 곤란할 수 있으나 아담의 혈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십니다. 잉태될 때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고 영이 주격입니다. 영이 살아있어서 영이 살아날 때 영을 통해서 마음에 역사하시고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게 기독교 신앙의 출발입니다. 사람이 연구하는 겁니다. 따지고 들어가서 생각해낸 것이 모든 이종교고 기독교는 사람이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영에게 알려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세를 이종교들이 말하지만 모릅니다. 그들 내세는 없습니다. 추측 추론입니다. 기독교는 내세를 지향하는데 실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도가 기독교입니다. 내세에 있을 일입니다. 죽은 다음에 있을 일이 기독교입니다. 목사님들이 마음 먹으면 돈을 많이 빼먹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 속에 종교성이 있습니다. 영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교회를 가는데 목사들이 바로 가르치면 연결시켜주는데 탈선하고 삐뚤어지면 그걸 이용해서 연보 많이 하게 하고 다 빼먹습니다. 그런 목사들 굉장히 많고 저도 그런지 교인들이 살펴 보셔야합니다.
그러나 내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돈 많이 벌고 편리한 환경 만들어서 잘 먹고 잘 살면 좋기는 좋은데 백날 그래봐야 안 죽는 사람들 없습니다. 과학자 의학자들이 불로불사하게 할려고 연구하는데 안될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죽음 넘어를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고 죽음 넘어에서 보는 것이 있고 기독교 신앙이고 가장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며 기본입니다. 기본을 말씀드렸던가요. 기초라는 뜻입니다. 언제 배우느냐, 기초는 가장 처음에 배웁니다. 공부 기초 언제 배웁니까. 초등학교 때 배웁니다. 기초, 기초는 어릴 때 가장 기본이고 가장 상식인데 가장 터가 되고 가장 중요한게 기본이고 기초입니다. 건설도 기초가 안 되어있으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느정도까지 가다가 맙니다. 운동도 기초된 사람과 안된 사람은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신앙의 기초 기본은 부활의 도다. 이게 가장 기본입니다. 오늘 지금 부활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이 있는데 심신도 영도 다 죽었습니다. 영은 단일성의 존재라 단번에 죽고 사람의 심신은 복합체 종합체라서 사람이 평생이 사는 것은 태어나는 것은 동시에 죽으러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영은 단번에 죽고 심신은 걸렸습니다. 다시 살리는 걸 가르쳐서 중생이라고 합니다. 영이 다시 사는 것은 중생 죽었던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뭐라고 그럽니까. 부활이라고 합니다. 같이 죽기는 죽었고 죽은 데서 살아나는데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건 부활이라고 합니다. 다시 살아난 중생과 부활은 죽었다 살아나면 영생합니다.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도 중생되면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죽지 않은 것은 중생된 영은 다시 범죄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도 부활의 몸은 죽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나오고. 성경에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이 대표적으로 누구죠. 나사로입니다. 죽어서 나흘이 지나서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니까 죽은 사람이 듣고 살아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사로가 영생했습니까 또 죽었습니까. 그길로 영생했습니까 또 죽었습니까. 또 죽었습니다. 표시만 해준겁니다.
과부의 아들도 죽어서 상여, 상여라고 요즘은 없죠 간단하니까 꽃가마처럼 만들어서 갑니다. 부활이 있다는 걸 보여주신 겁니다. 그런데 부활은 영 중생도 중생으로 다시는 병들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마음 같은 몸으로, 이런 몸으로 부활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기다려지고, 부정적으로 들으면 말이 되냐, 말이 됩니까. 다시는 늙지 않는답니다. 병들지도 않는답니다. 죽지도 않는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겁니다. 우주를 백만바퀴 도는 겁니다. 이런 몸으로 부활한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걸 믿는 걸 가르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걸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걸 믿으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믿기 때문에 더 가치있는게 어딨냐.
부활이란 전체가 있습니다. 부활은 죽어야 사는 겁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 한 알의 밀이 씨앗에 빠져서 살아나지 못하면 죽습니다. 거기서 새 생명이 나는 게 살아나는 겁니다. 달걀이 깨지면 병아리가 나옵니다. 달걀은 없어집니다. 매미가 매미 되려면 유충은 없어져야합니다. 죽어야 사는 게 부활입니다. 이 부활을 말씀합니다. 부활은 성경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자라가는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기업을 하는 게 부활입니다. 부활은 유한한 자본은 승격시켜주시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라는 일은 하는데 그 유한한 자본을 승격 시켜주신 것을 가르켜서 부활이라고 합니다.
찬송가 167장에 보면 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 천국에 다시 설 때 이런 가사가 나오는데 그 찬송을 하시면서 백목사님이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등따시고 베불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일을 영원토록 하는 날인데 일을 하긴 하는데 돈 벌기 위해서 마지못해서 하면 일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 일이, 자기가 좋아서, 결혼할 때 결혼했습니다.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사랑스럽습니다. 아버지도 사랑스럽습니다. 어떻게 복되기 길러볼까. 자녀가 어려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먹여주고 입혀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알아주고 그래서 그 부모의 수고 사랑의 노력으로 인해서 자녀가 조금씩 자라면 그 자라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고 좋습니다.
세 살 될 때까지 부모를 기쁘게 한 값은 평생을 그 아이에게 바치게 하는 값이 된다. 아이가 세 살 될 때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듯이 부모가 그 아이에게 헌신할 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고 기대인 것이죠. 헌신 수고 노력 희생은 억지가 아닙니다.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스러워서 더 좋게 더 귀하게 더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쏟아붓습니다. 아이가 학교 다니다가 일등을 했습니다. 학교 대표로 대회 나가야합니다. 대회 나가라면 대학교 대표인데 비용이 100만원이랍니다. 아까운 사람이 있습니까. 일류 고등학교를 간답니다. 천만원 아깝습니까. 우리 아들이 서울대 의대 합격했습니다. 등록금이 몇천만원이랍니다. 돈 좀 빌려서 우리 아들이 서울대 의대 합격했는데, 서로 빌려줄 것이고 납부하면 자랑할 것이고 돈이 안 아깝습니다. 좋아서 하는 겁니다. 원하고 그런 성격에 충성하다가 유한하기 때문에 세상 지나면 세월 지나면 늙어야하고 죽어야합니다. 그 죽음을 영원토록 사랑해라. 너의 가진 거 재물 노력 영원토록 쏟아부어봐라. 이해가 되시는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그 부활의 권능과 세 번째 그 고난을 사도 바울이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요. 부활의 권능을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한다, 그리스도가 부활했습니다. 부활을 소망한다, 세 번째 부활이 있기까지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이 바울이 어떤 사람이냐, 3장 5절입니다. 내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원칙적으로 받았다는 겁니다. 남자인들은 태어나면 할례를 받는 게 법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한 베냐민 지파다. 똑똑하고 독한 사람들입니다. 600명이 돌을 던지면 다 맞추는 명사수들이 다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도 정체성입니다. 신앙 계통으로 중심이 있다는 겁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벌 배경 다 가진 사람입니다. 아주 유력한 청년이었습니다. 잘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 듣고 돌아섰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길이 이 길이 아니구나. 그걸 알고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었구나. 돌아서 회개하고 난 다음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전부 다 했고 얻기 위해서는 배설물로 여겨버렸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를 소망한 겁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 그걸 알려는 겁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죽은 자 가운데에서 하는 겁니다. 세 가지 소망의 죽으심이 되었습니다. 죽음 가운데에서 부활의 결론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바울의 소망의 중심은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있고 그 그리스도에 부활이 있는데 부활이란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부활을 소망하는데 죽음이 있으니까 죽음과 죽음까지 과정을 알아야겠습니다. 이걸 알려하는 겁니다. 여기 동참에서 같이 하기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과 그 전의 과정, 죽음과 그 전의 모든 고난의 세계입니다. 그리스도란, 첫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입니다. 기름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직분을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행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네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