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5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6-03-16조회 14추천 1
2026년 3월 15일 주일 오전
찬송: 61장, 165장
본문: 에스겔 33장 1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 말씀 잠깐 복습을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각을 해서 우리 구원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적 은혜를 받는 구원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 인간의 인지, 인간의 소원 의지,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까 소원도 못합니다. 의지도 없습니다. 노력도 없습니다. 이런 것과 무관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걸 기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본구원을 바탕으로 인해 길러가시는 행위 구원이 있습니다. 성화 구원,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지식이 들어가고 지식을 이성이 같이 평가를 하고 자기 자유 의지가 판단을 하고 심신이 따라서 가르켜서 건설 구원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본구원도 하나님의 은혜고 건설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궁극적인 은혜, 그 은혜를 말하면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입니다. 건설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건설 구원도 궁극적 은혜고 은혜가 하나님의 예졍과 주권으로 나타납니다. 건설의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인간의 영역과 무관합니다. 인간의 지식이 연구가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인데 하나님의 궁극적 은혜와 예정과 섭리에 따라사 때가 되면 중생을 합니다. 죽었던 영이 중생을 합니다. 중생을 하면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배시간 통해서 듣고 자기의 주관적인 지성이 성경 읽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중생까지는 하나님의 역사고 기본구원입니다. 중생된 사람이 자기 사람의 지성으로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드리고, 이성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말씀을 벗어난 생활을 두고 같이 평가를 하는 겁니다. 자유 의지와 결정해서 판단합니다. 어느 것이 가치있다고 판단하고 자유 의지에 판단에 따라서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건설구원 행위 구원 성화구원이 되고, 그러면 실패가 되고 사망이 되게 되는 겁니다. 기본 구원 건설 구원. 건설 구원을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구원은 두 가지라고 했지요.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 갈 사람으로 건짐받는 게 기본 구원이고 천국 가는 사람이 천국에 실력과 인격과 활동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건설 구원,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구원의 소망은 천국, 천국의 인격, 실력 활동무대라고 했는데 구원의 소망, 하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지난 주간에 거기까지 못 나갔는데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가 뭐냐, 영적 예배는 자기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을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자기를 하나님의 자기의 주인이 되어서 나는 살았으나 나는 죽은 자로 죽었으니까 없는 자로, 그런데 살아있는자로, 그러면 내 속에 나의 심신의 활동의 원동이 하나님이 주격 되어 움직이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그걸 산 제사를 드리면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자기를 제사로 드릴 뿐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에 붙이는 게 제사장이고 중보자가 되는 겁니다. 연결시켜주는 게 소망이고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이걸 성화라고 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 같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의 목표고 소망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말씀하시기를, 산돌이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호가 산돌입니다. 산돌은 돌입니다. 살아있는 도입니다. 주축돌 디딤돌 기초돌을 말합니다. 교회 기초가 되었습니다. 살아있는데 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추춧돌이 된다.
이게 우리 구원입니다. 신령한 제사장이 되는 천국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 산 돌입니다. 자라가는 과정이 어떻냐,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므로, 생명에 속한 것이고 자라가는 것이다, 자라가려면 조건이 몇 가지가 필요한가요. 세 가지입니다. 세월이 필요합니다. 자라가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열 살 된 아이는 몇 살 살았습니까. 10년, 아담은, 아담은 몇 살에 아담이 태어났습니까. 몇 살 짜리로 만드셨을까요. 아담은 930년을 살았는데 아담은 어머니가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습니다. 부정모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게 성경이고 그래서 전지 전능지라고 하고 그걸 섬기고 경외하는 겁니다. 아담이 30살로 100살로 만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성경 볼 때 어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30살이 되려면 몇 년이 되어야합니까. 30년, 갓난아이가 서른 살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까. 사람은 자라가는 겁니다. 환경이 잘못되면 갑니다. 그런데 세월과 환경은 사람이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합니다.
저는 한 500년 살고 싶습니다. 그러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네 생각이고 100년만 살아라, 70년은 살까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가는 것이고 므두셀라에게는 969년 살아라, 에녹은 300년만 살아라, 어떤 사람은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도 보기에는 사람이 조성하는 거 같으나 사람 마음대로 못합니다. 우리 할 일은 양식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 다섯 가지를 버려라, 오늘 기도에 나왔지요. 갓난아이처럼 되어라. 어른인데 어떻게 갓난아이가 됩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다가 돈이 좀 생기면 그렇게 표를 낸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 겁니다. 얼마전까지 그렇게 표를 내서 강도 많이 당하고, 그런 사람을 졸부라고 합니다.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표가 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표가 납니다. 칼을 들고 있으면 뭐라도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게 사람입니다. 돈이 있는데 표 안내기는 어렵습니다. 지식을 표 안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른입니다. 세월을 많이 살았다는 것이고,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학교 가서 글을 배우지 않아도 사람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지성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이라는 것은 형성이 되고 자라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걸 가르켜서 자아, 주관이라고 합니다. 다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하나님의 주신 분량이 달라서 다르게 깊게 생각을 많이하고, 본대로 접한대로 그렇게 많이 합니다. 생각하면 그걸로 고치는 걸 생각이 고쳐서 그렇게 만들어냅니다. 신앙으로 좋게 들어가면 뭐라고 합니까, 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아기는 안 보이는데 아기, 어른인데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갓난아이처럼 되어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엄마를 사모하고 그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기는 지식도 이성 비판도 계산도 이익타산도 손해계산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라는 거지요. 그래서 갓난아이처럼 되어서 순전하고 섞임없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라, 소망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본능적인 사모가 있다고 했지요. 시편에 말씀하시고 믿는 사람이 말씀을 사모하시는 것은 노력을 만들어진 본능입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원죄성은 제해버리고 말씀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그런 걸 연습해켜서 본능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은, 노력하고 연습하다가 넘어졌을 때, 일어서면 되는데 두 번 넘어졌습니다. 조금 더 힘이 듭니다. 세 번 넘어졌습니다. 슬슬 힘이 빠집니다, 나는 안될 거 같아. 나는 의지가 약해서, 끈기가 없어서, 마귀 생각입니다. 자기 약한 걸 아니까 일흔 번, 칠십을 일흔 번, 일흔 번씩 일곱 번, 490번, 하루에 490번 넘어져도 일어서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490번 넘어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정도는 없을겁니다. 그래도 회개해도 된다. 그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33장 1절부터 보면, 파수꾼에 대해서 요즘 말로 말하면 경비 보초입니다. 전부 다 편안하게 쉬고 자는데 밤에 나가서 둘이 적이 오는 거 싶어서 경비병이 바로 파수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내가 너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파수꾼으로 보내셨는데 오늘 우리는, 우리 파수꾼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을 파수꾼으로 보내셨는데 그 범위가 어찌 되느냐, 자기를 기준해서, 내가 먼저 알고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관련된, 책임이 있습니다 나이는 연령은 상관없습니다. 내가 먼저 깨달아 알고 먼저 알았으면 그 사람은 주변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먼저 된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파수꾼이다 이 말이지요. 나이가 많으면 형은 동생에게 파수꾼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파수꾼입니다. 반사 선생님은 주일 학생들에게 파수꾼입니다. 구역장 집사님은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파수꾼입니다.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내 마음 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욕심의 파수꾼이고 지성과 이성은 감성의 파수꾼이다, 현재를 사는 요소도 파수꾼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알고 먼저 깨닫고 느낀 다음 사람들에게 파수꾼입니다. 뭐하는 사람이냐, 파수꾼은 잘 모를 거 같고, 보초가 할 첫째 군대는 잘 모르겠지만 보초병이 하는 게 뭐지요. 첫째가 뭡니까. 깨어있는 것이겠죠. 보초가 자면 죽는 겁니다. 파수꾼은, 깨어있어도 머리 속에 멍때리고 엉뚱한데 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정확하게 적을 보고 알아야합니다. 세 번째는 적이 보이면 나팔을 불어야합니다. 우리는 다 파수꾼인데 감당하려면 깨어 살아야합니다. 무슨 말인가, 세상으로 살지 말고 욕심으로 살지 말고 감정으로 살지말고 말씀으로 신앙으로 사는 생활이 계속 되어야합니다. 신앙에 잠을 자면, 잠을 잔다는 말을 심하게 하면 술취한다고 합니다. 술취하지 말아라, 이 세상 술도 포함됩니다. 술은 안 먹습니다. 술 안 먹는데 휴대폰에 게임이 재미있어서 그것만 보고 있습니다. 게임의 술에 취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걸 말합니다.
무엇이 적이냐, 피아구별, 이런 걸 잘 해야합니다.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 못하면 구별 못합니다. 적군을 아군으로 오인해서 많이 죽습니다. 내 자존심을 꺾어, 무참하게 핀잔을 줘, 그게 옛사람 자기인데 원수인데 그게 자기가 되어버리니까 자기 아닌 자긴데 원수인 자긴데 그놈에게 속아서 구별 못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대로 말을 해야합니다. 행동으로 해야합니다. 파수꾼은 세 가지입니다. 적군과 아군은 구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가짜 신이 우상입니다. 없는 신을 만들었고 그걸 착각을 해서 최면에 걸려서 정말로 있는 줄 아는 그게 우상입니다. 그 우상 섬기는 죄가 큰 죄였는데 말씀을 거역하고, 진노를 받아서 망해서, 엉망이 된 그때가 에스겔 때인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끝까지 붙드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엉망이 될 거 같습니다. 낙심을 하고 앉았습니다. 하나님께 에스겔을 데려다가 골짜기에 데려가시는데 사람의 뼈들이 해골이지요, 죽어가지고 썩어서 없어지고 뼈가 버글버글합니다.
인자 이 뼈들이 살겠느냐 물어보십니다. 주여, 당신이 하시지 않습니까. 이 뼈들에게 대해서 대언해라. 뼈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살아나라 하니까 그 뼈들에게 힘줄이 생기고 근육이 생기고 가죽이 붙습니다. 환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봤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대언해라, 하니까 힘줄이 생겨지고 해골에 힘줄이 생겨지고 가죽이 생긱 생기가 없어서 죽어있습니다. 생기야, 와서 이 죽은 자들에 대언하니까 일어납니다. 극히 큰 군대라. 그래서 말씀하시길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다. 말하자면 죄를 지어서 짓고 또 지어서 바짝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말이 나와서 그렇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살려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그러면서 살아나고 나면 너희가 여호와인줄 알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살리시는 분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사망이 없고 절망이 없습니다. 인간을 버리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만 역사하시고 구원만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고 구원하시는 분이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참 어리석지요, 누가복음에 보면 탕자가 떠났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으면 기어코 그래서 호기심이라는 것은 원죄입니다. 한번 나도 나가보면 어떨까 그래서 여성들 일탈 탈선 아주 못된 말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그분은 변치 않는 여호와입니다.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낳은 자식을 잊어버리겠느냐, 깜빡할지라도, 아이 낳은 여자가 자기 낳은 아기를 목숨 바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탈진해 버립니다. 내가 너를 눈동자처럼 아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쪽사랑이었습니다. 쪽사랑은, 짝사랑, 일방적인 사람이고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을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아무리 말해도 쫄딱 망해버렸는데 10절도 그렇고 37절도 그렇습니다. 다 죽어서 시체가 됐고 그 시체가 썩어서 해골만 남았는데 그래도 살아라고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향하는 애타는 심정.
책임진다는 겁니다,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것에 대해서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하나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영존이고 영생입니다. 영존과 영생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존이란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고 영생은 영원히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끊없이,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말을 삶을 두고 약속을 한다, 어떤 걸 하니까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피조물 중심이지요, 원동, 원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활동을 하는데,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공부하고 손익계산 따지고 비판평가하고 그러는데 왜 하느냐, 무엇 때문에 하느냐, 무엇을 말미암아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왜 하나님만 위해서 노래를 부릅니까. 그분이 완전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전부 다 있고 모든 유라는 것은, 존재하는 겁니다. 크든 작든 넓든 좁든 무생물이든 공간이든 유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분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데, 그분과 연결되면 그 사람은 다 가졌습니다. 영계 우주가 다 자기겁니다. 교리적으로 그렇습니다. 연결되면 다 내것입니다. 그냥 10년 틀어놔도 끊어지거나, 수원지가 마르지 않는 이상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전부가 다 내것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지옥이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 그런 곳입니다.
지금은 짐승들까지 사랑하는 그런 좋은 사랑이지요, 그런데 그 속에 들어가니까 외로운 사람들이 짐승 가지고 사는 거 좋은 겁니다. 그런데 장가 안가고 부모님 내팽겨치고 아이 안 낳고 그거 문제입니다. 모든 활동은 악입니다. 그런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인도, 나는 악인에 죽는 것은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살리는 분이니까,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을 원한다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켜라, 폭탄이 떨어지는데 나와라, 그래서 나와라 빠져죽는 함정이다 나와라, 죄를 가지고 있으면 죄를 짓고 있으면 벗어나면 됩니다. 이걸 회개라고 합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걸 회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 파수꾼입니다. 이스라엘의 형편이 우리의 형편이 아닌지,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수십번을 그랬을지라도 일어나라는 겁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어서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넘어져 있지말고 일어서라,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그렇습니다. 돌아켜라, 왜 죽고자 하는 그 말이지요, 회개고 회개하면 되는 겁니다. 회개하면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렇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애타는 심정을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61장, 165장
본문: 에스겔 33장 1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주 말씀 잠깐 복습을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각을 해서 우리 구원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적 은혜를 받는 구원이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 인간의 인지, 인간의 소원 의지,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까 소원도 못합니다. 의지도 없습니다. 노력도 없습니다. 이런 것과 무관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걸 기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본구원을 바탕으로 인해 길러가시는 행위 구원이 있습니다. 성화 구원,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지식이 들어가고 지식을 이성이 같이 평가를 하고 자기 자유 의지가 판단을 하고 심신이 따라서 가르켜서 건설 구원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본구원도 하나님의 은혜고 건설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궁극적인 은혜, 그 은혜를 말하면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입니다. 건설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건설 구원도 궁극적 은혜고 은혜가 하나님의 예졍과 주권으로 나타납니다. 건설의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인간의 영역과 무관합니다. 인간의 지식이 연구가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인데 하나님의 궁극적 은혜와 예정과 섭리에 따라사 때가 되면 중생을 합니다. 죽었던 영이 중생을 합니다. 중생을 하면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배시간 통해서 듣고 자기의 주관적인 지성이 성경 읽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중생까지는 하나님의 역사고 기본구원입니다. 중생된 사람이 자기 사람의 지성으로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드리고, 이성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말씀을 벗어난 생활을 두고 같이 평가를 하는 겁니다. 자유 의지와 결정해서 판단합니다. 어느 것이 가치있다고 판단하고 자유 의지에 판단에 따라서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건설구원 행위 구원 성화구원이 되고, 그러면 실패가 되고 사망이 되게 되는 겁니다. 기본 구원 건설 구원. 건설 구원을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구원은 두 가지라고 했지요.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 갈 사람으로 건짐받는 게 기본 구원이고 천국 가는 사람이 천국에 실력과 인격과 활동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건설 구원,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구원의 소망은 천국, 천국의 인격, 실력 활동무대라고 했는데 구원의 소망, 하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지난 주간에 거기까지 못 나갔는데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가 뭐냐, 영적 예배는 자기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을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자기를 하나님의 자기의 주인이 되어서 나는 살았으나 나는 죽은 자로 죽었으니까 없는 자로, 그런데 살아있는자로, 그러면 내 속에 나의 심신의 활동의 원동이 하나님이 주격 되어 움직이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그걸 산 제사를 드리면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자기를 제사로 드릴 뿐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에 붙이는 게 제사장이고 중보자가 되는 겁니다. 연결시켜주는 게 소망이고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이걸 성화라고 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 같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의 목표고 소망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말씀하시기를, 산돌이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호가 산돌입니다. 산돌은 돌입니다. 살아있는 도입니다. 주축돌 디딤돌 기초돌을 말합니다. 교회 기초가 되었습니다. 살아있는데 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추춧돌이 된다.
이게 우리 구원입니다. 신령한 제사장이 되는 천국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 산 돌입니다. 자라가는 과정이 어떻냐,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므로, 생명에 속한 것이고 자라가는 것이다, 자라가려면 조건이 몇 가지가 필요한가요. 세 가지입니다. 세월이 필요합니다. 자라가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열 살 된 아이는 몇 살 살았습니까. 10년, 아담은, 아담은 몇 살에 아담이 태어났습니까. 몇 살 짜리로 만드셨을까요. 아담은 930년을 살았는데 아담은 어머니가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습니다. 부정모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게 성경이고 그래서 전지 전능지라고 하고 그걸 섬기고 경외하는 겁니다. 아담이 30살로 100살로 만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성경 볼 때 어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30살이 되려면 몇 년이 되어야합니까. 30년, 갓난아이가 서른 살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까. 사람은 자라가는 겁니다. 환경이 잘못되면 갑니다. 그런데 세월과 환경은 사람이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합니다.
저는 한 500년 살고 싶습니다. 그러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네 생각이고 100년만 살아라, 70년은 살까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가는 것이고 므두셀라에게는 969년 살아라, 에녹은 300년만 살아라, 어떤 사람은 더 빨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도 보기에는 사람이 조성하는 거 같으나 사람 마음대로 못합니다. 우리 할 일은 양식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 다섯 가지를 버려라, 오늘 기도에 나왔지요. 갓난아이처럼 되어라. 어른인데 어떻게 갓난아이가 됩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다가 돈이 좀 생기면 그렇게 표를 낸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 겁니다. 얼마전까지 그렇게 표를 내서 강도 많이 당하고, 그런 사람을 졸부라고 합니다.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표가 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표가 납니다. 칼을 들고 있으면 뭐라도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게 사람입니다. 돈이 있는데 표 안내기는 어렵습니다. 지식을 표 안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른입니다. 세월을 많이 살았다는 것이고,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학교 가서 글을 배우지 않아도 사람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지성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이라는 것은 형성이 되고 자라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걸 가르켜서 자아, 주관이라고 합니다. 다 정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하나님의 주신 분량이 달라서 다르게 깊게 생각을 많이하고, 본대로 접한대로 그렇게 많이 합니다. 생각하면 그걸로 고치는 걸 생각이 고쳐서 그렇게 만들어냅니다. 신앙으로 좋게 들어가면 뭐라고 합니까, 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아기는 안 보이는데 아기, 어른인데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갓난아이처럼 되어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엄마를 사모하고 그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기는 지식도 이성 비판도 계산도 이익타산도 손해계산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라는 거지요. 그래서 갓난아이처럼 되어서 순전하고 섞임없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라, 소망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본능적인 사모가 있다고 했지요. 시편에 말씀하시고 믿는 사람이 말씀을 사모하시는 것은 노력을 만들어진 본능입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원죄성은 제해버리고 말씀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그런 걸 연습해켜서 본능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은, 노력하고 연습하다가 넘어졌을 때, 일어서면 되는데 두 번 넘어졌습니다. 조금 더 힘이 듭니다. 세 번 넘어졌습니다. 슬슬 힘이 빠집니다, 나는 안될 거 같아. 나는 의지가 약해서, 끈기가 없어서, 마귀 생각입니다. 자기 약한 걸 아니까 일흔 번, 칠십을 일흔 번, 일흔 번씩 일곱 번, 490번, 하루에 490번 넘어져도 일어서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490번 넘어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정도는 없을겁니다. 그래도 회개해도 된다. 그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33장 1절부터 보면, 파수꾼에 대해서 요즘 말로 말하면 경비 보초입니다. 전부 다 편안하게 쉬고 자는데 밤에 나가서 둘이 적이 오는 거 싶어서 경비병이 바로 파수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내가 너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파수꾼으로 보내셨는데 오늘 우리는, 우리 파수꾼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을 파수꾼으로 보내셨는데 그 범위가 어찌 되느냐, 자기를 기준해서, 내가 먼저 알고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관련된, 책임이 있습니다 나이는 연령은 상관없습니다. 내가 먼저 깨달아 알고 먼저 알았으면 그 사람은 주변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먼저 된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파수꾼이다 이 말이지요. 나이가 많으면 형은 동생에게 파수꾼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파수꾼입니다. 반사 선생님은 주일 학생들에게 파수꾼입니다. 구역장 집사님은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파수꾼입니다.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내 마음 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욕심의 파수꾼이고 지성과 이성은 감성의 파수꾼이다, 현재를 사는 요소도 파수꾼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알고 먼저 깨닫고 느낀 다음 사람들에게 파수꾼입니다. 뭐하는 사람이냐, 파수꾼은 잘 모를 거 같고, 보초가 할 첫째 군대는 잘 모르겠지만 보초병이 하는 게 뭐지요. 첫째가 뭡니까. 깨어있는 것이겠죠. 보초가 자면 죽는 겁니다. 파수꾼은, 깨어있어도 머리 속에 멍때리고 엉뚱한데 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정확하게 적을 보고 알아야합니다. 세 번째는 적이 보이면 나팔을 불어야합니다. 우리는 다 파수꾼인데 감당하려면 깨어 살아야합니다. 무슨 말인가, 세상으로 살지 말고 욕심으로 살지 말고 감정으로 살지말고 말씀으로 신앙으로 사는 생활이 계속 되어야합니다. 신앙에 잠을 자면, 잠을 잔다는 말을 심하게 하면 술취한다고 합니다. 술취하지 말아라, 이 세상 술도 포함됩니다. 술은 안 먹습니다. 술 안 먹는데 휴대폰에 게임이 재미있어서 그것만 보고 있습니다. 게임의 술에 취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걸 말합니다.
무엇이 적이냐, 피아구별, 이런 걸 잘 해야합니다.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 못하면 구별 못합니다. 적군을 아군으로 오인해서 많이 죽습니다. 내 자존심을 꺾어, 무참하게 핀잔을 줘, 그게 옛사람 자기인데 원수인데 그게 자기가 되어버리니까 자기 아닌 자긴데 원수인 자긴데 그놈에게 속아서 구별 못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대로 말을 해야합니다. 행동으로 해야합니다. 파수꾼은 세 가지입니다. 적군과 아군은 구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가짜 신이 우상입니다. 없는 신을 만들었고 그걸 착각을 해서 최면에 걸려서 정말로 있는 줄 아는 그게 우상입니다. 그 우상 섬기는 죄가 큰 죄였는데 말씀을 거역하고, 진노를 받아서 망해서, 엉망이 된 그때가 에스겔 때인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끝까지 붙드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엉망이 될 거 같습니다. 낙심을 하고 앉았습니다. 하나님께 에스겔을 데려다가 골짜기에 데려가시는데 사람의 뼈들이 해골이지요, 죽어가지고 썩어서 없어지고 뼈가 버글버글합니다.
인자 이 뼈들이 살겠느냐 물어보십니다. 주여, 당신이 하시지 않습니까. 이 뼈들에게 대해서 대언해라. 뼈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살아나라 하니까 그 뼈들에게 힘줄이 생기고 근육이 생기고 가죽이 붙습니다. 환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봤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대언해라, 하니까 힘줄이 생겨지고 해골에 힘줄이 생겨지고 가죽이 생긱 생기가 없어서 죽어있습니다. 생기야, 와서 이 죽은 자들에 대언하니까 일어납니다. 극히 큰 군대라. 그래서 말씀하시길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다. 말하자면 죄를 지어서 짓고 또 지어서 바짝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말이 나와서 그렇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살려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그러면서 살아나고 나면 너희가 여호와인줄 알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은 살리시는 분입니다.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살리시는 분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사망이 없고 절망이 없습니다. 인간을 버리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만 역사하시고 구원만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고 구원하시는 분이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참 어리석지요, 누가복음에 보면 탕자가 떠났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으면 기어코 그래서 호기심이라는 것은 원죄입니다. 한번 나도 나가보면 어떨까 그래서 여성들 일탈 탈선 아주 못된 말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그분은 변치 않는 여호와입니다.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낳은 자식을 잊어버리겠느냐, 깜빡할지라도, 아이 낳은 여자가 자기 낳은 아기를 목숨 바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탈진해 버립니다. 내가 너를 눈동자처럼 아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쪽사랑이었습니다. 쪽사랑은, 짝사랑, 일방적인 사람이고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을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그러지 말아라, 아무리 말해도 쫄딱 망해버렸는데 10절도 그렇고 37절도 그렇습니다. 다 죽어서 시체가 됐고 그 시체가 썩어서 해골만 남았는데 그래도 살아라고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향하는 애타는 심정.
책임진다는 겁니다,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것에 대해서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하나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영존이고 영생입니다. 영존과 영생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존이란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고 영생은 영원히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끊없이,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말을 삶을 두고 약속을 한다, 어떤 걸 하니까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피조물 중심이지요, 원동, 원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활동을 하는데,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공부하고 손익계산 따지고 비판평가하고 그러는데 왜 하느냐, 무엇 때문에 하느냐, 무엇을 말미암아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왜 하나님만 위해서 노래를 부릅니까. 그분이 완전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전부 다 있고 모든 유라는 것은, 존재하는 겁니다. 크든 작든 넓든 좁든 무생물이든 공간이든 유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분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데, 그분과 연결되면 그 사람은 다 가졌습니다. 영계 우주가 다 자기겁니다. 교리적으로 그렇습니다. 연결되면 다 내것입니다. 그냥 10년 틀어놔도 끊어지거나, 수원지가 마르지 않는 이상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전부가 다 내것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지옥이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 그런 곳입니다.
지금은 짐승들까지 사랑하는 그런 좋은 사랑이지요, 그런데 그 속에 들어가니까 외로운 사람들이 짐승 가지고 사는 거 좋은 겁니다. 그런데 장가 안가고 부모님 내팽겨치고 아이 안 낳고 그거 문제입니다. 모든 활동은 악입니다. 그런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인도, 나는 악인에 죽는 것은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살리는 분이니까,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을 원한다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켜라, 폭탄이 떨어지는데 나와라, 그래서 나와라 빠져죽는 함정이다 나와라, 죄를 가지고 있으면 죄를 짓고 있으면 벗어나면 됩니다. 이걸 회개라고 합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걸 회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 파수꾼입니다. 이스라엘의 형편이 우리의 형편이 아닌지,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수십번을 그랬을지라도 일어나라는 겁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어서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넘어져 있지말고 일어서라,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그렇습니다. 돌아켜라, 왜 죽고자 하는 그 말이지요, 회개고 회개하면 되는 겁니다. 회개하면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렇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애타는 심정을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