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6-03-01조회 28추천 2
2026년 3월 1일 주일 오전
찬송: 12장, 87장
본문: 시편 73편 12절 –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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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 간 시판 112편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음을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믿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성경이 말씀한대로 바로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알고보니까 높고 두려우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지극하여 하나님의 전부를 다 쏟아서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사랑이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고 모시고 싶고 섬기고 싶고 그 하나님이 너무 높고 크셔서 함부로 접할 수 없는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을 상대하는 걸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심신의 모든 활동이 되는 말과 행동 마음의 생각 모든 사리 판단 취사의 선택, 비판과 평가 이런 거까지 하기는 내가 하는데 내가 말하고 내가 움직이고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살아가는 그 원동 동력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움직여가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이 그분의 나를 사랑하시는 그 뜨거운 사랑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내 심신의 생활을 주장하는 그게 생활이고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어떤 경우에도 옳고 바른 것을 굽히지 않는 백절불굴의 정직한 사람이 되고 주변 사람을 베푸는 시은의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게 참 귀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의로움을 통해서 노력하는, 이런 참 자체적인 복을 받는 이런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시은의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자녀가 많아지고 자손이 많아집니다. 자손들이 다 잘 됩니다. 재물도 많아서 복을 받습니다. 그 주변에는 사람 복도 많이 받습니다. 인복이라고 합니다. 장례식을 가보면, 요즘은 자녀가 별로 없고 자손이 없으니까 장례식이 썰렁합니다. 어떤 장례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어제도 우리 공회 집사님 가정 장례식이 있어서 찾아뵈었는데 사람이 참 많고 자손이 많아서 너무 좋고 참 부러웠습니다. 그 어른들이 신앙생활을 두고 충성으로 잘 하시니까 다 건강하고 외모도 참 좋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생활로 받은 복의 모습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합니다. 결과를 보면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겁니다. 현재에 이런 말씀을 가지고 지식으로 가지고 지나갈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서 복을 받은 그분도 많은데 자기자신을 살펴봐야합니다. 내가 정직한 사람이냐, 내가 시은의 사람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준행하는 사람이냐, 내가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냐,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말씀은 이렇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그렇게 복을 받았는데 자기를 보면은 이 말씀대로 약속하신 복이 있으면 그렇게 산 것이 되니까 더 조심하면서 계속하면 되겠고 말씀은 이런데 가감도 없고 그런 건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복을 받았는데 나는 받은 복이 없다고 하면 신앙을 돌아봐야하는 겁니다.
복 중에는 좀 깊이 살펴봐야 할 복이 있습니다. 복처럼 보이는데 좋은 것처럼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복이 아닌 가짜 복이 있습니다. 복 중에는 복처럼 생겼는데 가짜 복이 있습니다. 그 가짜 복은 건강으로 말하면 암 덩어리, 시한폭탄입니다. 복 중에는 복이 복인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임시 복도 있습니다. 세월 지나니까 없어져버립니다. 그것을 잘못 오용하니까 그 복 때문에 화가 오기도 합니다. 또 진짜 참복이 있습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진짜 복이 있습니다 제가 복의 종류를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까. 복 처럼 생긴 가짜 복이 있습니다. 암 덩어리 같은 좋은 것은 보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두 번째는 복은 복인데 그 복이 임시 복입니다. 잠깐 복으로 있다가 지나가버립니다. 세월 지나고 세상 떠나면 없어지는 복입니다. 지나치게 남용하면 진짜 복을 못 받게 만들어버립니다.
세 번째는 진짜 복입니다. 천국가도 변하지 않는 진짜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 시편을 지은 사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73편을 지은 사람, 성경 저자입니다. 이름이 뭡니까. 아삽이라는 사람입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요즘 말로 말하면 음악가인데, 찬양지휘자입니다. 다윗이 등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게 한 그 찬양 지도자 아삽인데 자손들도 대대로 많은 복을 받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 살아가는데, 자연스럽게 순리적으로 그렇게 펼쳐지면 저게 왜 저러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말이 안되는 그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하는데 1등을 해버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평소에 먹고 노는데 돈은 펑펑 쓰고 다닙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요.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1등을 했다, 그렇게 공부 잘하거나 머리 좋은 사람도 아닌 거 같은데 뭐가 좀 의아하고 이해가 안되는거지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악인이라는 말은 자기 중심의 사람인데, 자기 중심의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하나님과 왕과 주인은 같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주인은 말 그대로 주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주인입니다. 어떤 물건이 주인이면 어떻게 하든지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면 마음대로 다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니까 마음대로 합니다. 다른 차원인게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 뿐이고 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든 다른 사람이든 주인이라는 말을 쓸 때는 하나님을 의식해야합니다. 참 주인은 하나님 뿐이다.
죽었는데 또 죽었습니다. 죽은 겁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가을 나무입니다. 완전히 죽어버린 겁니다.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는, 그래 그 사람이 젊을 때 강팍부리면 두고보자,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 머리가 하얗게 되고 기력이 빠져나갑니다. 뼈 마디가 쑤십니다. 그럴 때를 가르켜 늙을 때라고 합니다. 젊을 때 하나님께서 세월을 기다립니다. 정말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은 두고 보자 쌓아두고 흰머리 생기고 골다골증을 보고 저주를 내려버립니다. 그러면 대책이 없습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때라도 회개하면 다행인데 그때가지도 강팍 부리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 봤는데 너무 그렇게 악하게 사니까 눈이 확 뜨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은 권선징악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은 권선징악입니다. 도움을 받는 겁니다. 조심스럽게 잘 살면 사는 것이고 함부로 살면 안되는 것이고 악하게 살면 망하는 게 순리고 자연이고 기본인데, 이 아삽이라는 사람 앞에 여러 사람 중에 악인인데 이 사람 모습을 보니까 전혀 반대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악인인데 평안합니다. 악인이면 고통스럽고 그래야하는데 평안하고 재물은 부자입니다. 일은 더 잘됩니다. 건강해서 살이 쪄서 눈이 번들번들합니다. 몸관리도 잘해서 건강합니다. 소득은 한 달에 500만원 벌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데 1000만원 법니다. 악인인데, 몸은 건강하지요, 소득은 많지요.
겁나는 게 없으니까 절절맵니다. 그러니까 권세도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은 자손의 복이 아닌, 악인인데도 자녀도 많습니다. 기가 막히는 거지요. 하나님을 아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은 늘 자기 행동을 조심하고 욥이라는 의인은 침 한 번 삼키는 것도 겁이 나서 못하고 욕심도 감정도, 욥이라는 사람은 일곱인데, 그 형제들이 각각 생일이 되면 초대하면 생일잔치합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사람 숫자대로 번제를 드리고 씻습니다. 욥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말 한 마디도 보는 것 하나도, 물 마시는 것도 조심합니다. 어떤 분들 그렇게 묻습니다, 건설구원 이뤄가는데 잠자는 것도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집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을 자다가 졸았습니다.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무의식 중에 가려운 것을 긁으면 천국입니까 구원입니까. 건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는 전지자입니다. 1초라도 놓치면 완전자가 아닙니다. 천하모든 사람에 눈 한 번 깜빡이는 것까지도, 그래서 완전자 전지전능자고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믿고 섬깁니다.
무의식 중에 하는 것도 천국 지옥으로 나눠집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욥처럼 그렇게 아침마다 징책을 받으며 마음이 괴롭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그분이 다 관찰하고 계시는데 그분이 듣고 계시는데, 나는 안 보여도 나 모르는 것도 그분이 알고 계시는데 그분은 안 계시는 곳이 없는데, 조심스럽고, 겁이 나서 살지를 못하는 겁니다. 종일 괴롭게 삽니다. 저 죄인은 보니까 조심이 없고 제멋대로사는데,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짓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것 다 가고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그래도 복은 더 많이 받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하냐
악인은 제멋대로 살아도 그런데 의롭게 사는데도 복을 커녕 먹고사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봐 중생된 영이 있고 앓고 있는 겁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봐 그랬더라면 주의 아들들에 시대, 이 세상을 사는 한 평생을 살아가는 세상은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의 실력을 만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이 세상 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실력을 만들어가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을 나도 그렇게 살 뻔했다. 내가 어떻게하면 이를 알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계시는데 왜 저 악인은 저렇게 살아도 좋고 나는 겨우겨우 사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을 붙들고 이런 면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걸 기도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 보면은 빗자루로 쓸어낸다고 합니다.
동전을 잃어버렸는데 먼지에 파묻혀서 안보입니다. 쓸어내니까 보입니다. 이해가 안 될될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살아계시는 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분 말씀은 가감도 없고 거짓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니까 연구하는 겁니다. 이게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니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어디에 들어갔습니가.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몸이 들어갔다는 게 아니고 인생을 두고 생각을 하고 멀리까지 생각을 하고 인간 지식이 아니고 사람의 지식을 넘어서서 하나님 말씀 그런 게 있습니다. 세 다섯 살 아이들이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 범위입니다. 그럴 때는 어른들의 말씀가지고 생각하면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는 사람이라는 것은 객관 부모라는 객관에 대해서 태어납니다. 자기 자신, 나는 나인데 스스로 생기지 않았고 하나님이 보내셨고 부모를 통해서 났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아닌 타 객관에 의해서 났습니다. 형성되는 건 내가 되는데 나로 형성되고 자라가는 것도 객관에 의해서 자라가는 겁니다. 교만하지 못하고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천재도 잘난 사람도 부모라는 객관으로 나는 겁니다. 환경에 살아서 자아가 형성되고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천하 없는 독불장군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라는 게 있고 내가 아는 지식과 내가 아는 지식의 양과 깊이와 높이 범위가 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요. 과거 대우 그룹의 김호중 대장이 세계는 넓고 사람은 많다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게 전부냐고 그러면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합니다. 정중지와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우주라는 것도 있습니다. 지구에 살면 지구가 넓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부산에서 압록강까지 가려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동쪽 끝에 해서 한국에는 안보입니다. 지구는 큽니다. 그런데 그 지구는 우주라는 공간에 보면 먼지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이 있고 그 전부를 위해 다 지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넓어지고 커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봐야하는 겁니다. 눈 앞에 펼처지는 그런 상황을 보고 고민을 깊이 했는데 생각하고 생각했는데 자기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봤습니다. 분명히 말씀 순종해서 복이되고 그러는데 왜 반대사람이 펼쳐질까를 어디 들어갔다고요,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은 열여주셨다는 겁니다.
19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깨달았습니다. 늙으면 죽는데, 저렇게 던져주시는 것은, 평안하지요 죽을 때도 고통이 없습니다. 자손도 다 복을 받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성소 들어가서 깨달으니까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평생을 저렇게 회개하지 못하게 던져놨구나. 죽고 또 죽어 가을 나무로 던져놨습니다. 벤츠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마지막은 낭떠러지입니다. 그런데 그 벤츠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마지막 어떻게 되지요, 파멸입니다. 비유하자면 그런 겁니다. 그 사람 앞에 브레이크를 안 갈었습니다. 그렇게 편생을 부끄럽게 하고 몹쓸사람을 만들어놓고 졸지에 19절,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나이다. 결국이 그렇게 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악인인데도 재물 많고 평안하고 자손 많은 것이 전부 다 가짜 복이었습니다. 복이 아닌 가짜 복 이런 것이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고, 이런 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잘못사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어기는데도 잘 풀리면 겁이나야합니다. 두려워야합니다. 분명히 매가 징계가 와야하는데 왜 이러지, 희망있습니다. 무섭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큰 매를 때리려고 기다리는 겁니다. 말씀이 읽혀지고 들려지고 즐거워집니다. 이게 큰 복입니다. 들려지고 읽으니까 읽혀집니다. 응용을 하면 예배 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새벽기도 갈려고 일어나집니다. 성경 읽으니까 알아지고 믿어집니다. 큰 복이 됩니다. 더하면 즐거워집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이 재미있어집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집회가서 주일학생들이 양성원 참석하면 공회 목사님께서 과거에는 5시간을 안 쉬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 때문에 2-3시간 하고 좀 쉽니다. 강의하시는데 한 번 쉽니다. 강의인데 주일 학생들은 거기 가면 가고 싶어서 난리입니다. 가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양성원 간다고 하면 집회 간다면 좋아하고, 이건 하나님 은혜입니다. 그게 은혜고 복입니다. 말씀의 즐거움 복, 이 말씀이 믿어집니다. 권위성이 믿어집니다. 하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즐겁습니다. 실행을 합니다. 그 실행 생활을 계속을 합니다. 이게 복입니다. 이렇게 살아나가면 복을 받습니다. 자손의 복을 받습니다. 자녀 손주도 많아집니다. 우리 공회는 손주가 20명 넘는 가정이 더러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참 복입니다. 말씀대로 실행해 나가고 이어나가니까 하나님께서 자존에게 복도 주시고 권세복도 주시고 지혜복도 주시고 이 복은 세상 복입니다. 이런 복을 믿는 사람은 주신 분량이 다르니까 때문에 자기 정도되는 복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잘 살아나가니까 성적이 올라가더라, 자기 정도대로입니다 그런데 자기로서는 겪어봐야합니다. 목석이 아닙니다. 이방 종교하고 다릅니다. 희로애락을 가지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고 믿으면서 실행해나가면 그 실행을 하루 하고 말고 계속해 나가면 일주일을 살면 느낌이 옵니다. 한 달을 바로 살면 표가 납니다.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압니다. 한 번 살아보시지요. 그렇게까지 하지 못해도 어느정도 경험을 하는 겁니다. 자기 속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석 달에 살면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살면 어지간하면 모든 사람 다 뛰어날 만큼 복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이름 가지고 이 세상 여러 면의 복을 받아보지 못한 것은 그렇게 안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틀림없는 겁니다.
이게 그래서 무슨 복이라고요, 임시 복이라고 합니다. 있다가 없어집니다. 남은 하나 복은 진짜 복입니다. 오후에 합니다. 첫째 정말 큰 복은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고 말씀대로 실행을 하고 계속해서 다섯가지를 함으로 받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니까 이루어지는구나, 세상 복 이루어주시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되시는데 사후세계 천국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지옥도 있다, 이 임시복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임시복을 받아보고 말씀에 이것을 보고 하늘의 복으로 바꾸는 겁니다. 자기를 바꿉니다. 악한 자기를 선한 자기로 바꿉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은 꺾는 겁니다. 물질만 좋아하는 사람이 참을 좋아합니다. 이게 진짜 복입니다. 두 번째는 사는 목적을 바꿉니다. 잘 살아서 영원토록 귀한 그런 내가 되어야겠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멀리까지 종말을 계산하면서 조심스럽게 삽니다. 그런 사람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하는 사람으로 바꿉니다. 세 번째는 사는 방법을 바꿉니다. 사람 노릇, 종 노릇 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는 사람이 됩니다.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녹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게 영원한 복입니다. 자기를 바꿉니다. 사는 목적을 바꿉니다. 사는 방편을 바꿉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이루어지는 진짜 복입니다. 세 가지 복, 악인인데 받는 가짜 복, 말씀 순종해서 받는 임시 복, 세 번째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게 영원토록 이어지는 복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으로 바꾸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장, 87장
본문: 시편 73편 12절 – 1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난 두 주 간 시판 112편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음을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믿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성경이 말씀한대로 바로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알고보니까 높고 두려우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지극하여 하나님의 전부를 다 쏟아서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사랑이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고 모시고 싶고 섬기고 싶고 그 하나님이 너무 높고 크셔서 함부로 접할 수 없는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을 상대하는 걸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심신의 모든 활동이 되는 말과 행동 마음의 생각 모든 사리 판단 취사의 선택, 비판과 평가 이런 거까지 하기는 내가 하는데 내가 말하고 내가 움직이고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살아가는 그 원동 동력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움직여가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이 그분의 나를 사랑하시는 그 뜨거운 사랑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내 심신의 생활을 주장하는 그게 생활이고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어떤 경우에도 옳고 바른 것을 굽히지 않는 백절불굴의 정직한 사람이 되고 주변 사람을 베푸는 시은의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게 참 귀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의로움을 통해서 노력하는, 이런 참 자체적인 복을 받는 이런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시은의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자녀가 많아지고 자손이 많아집니다. 자손들이 다 잘 됩니다. 재물도 많아서 복을 받습니다. 그 주변에는 사람 복도 많이 받습니다. 인복이라고 합니다. 장례식을 가보면, 요즘은 자녀가 별로 없고 자손이 없으니까 장례식이 썰렁합니다. 어떤 장례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어제도 우리 공회 집사님 가정 장례식이 있어서 찾아뵈었는데 사람이 참 많고 자손이 많아서 너무 좋고 참 부러웠습니다. 그 어른들이 신앙생활을 두고 충성으로 잘 하시니까 다 건강하고 외모도 참 좋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생활로 받은 복의 모습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합니다. 결과를 보면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겁니다. 현재에 이런 말씀을 가지고 지식으로 가지고 지나갈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서 복을 받은 그분도 많은데 자기자신을 살펴봐야합니다. 내가 정직한 사람이냐, 내가 시은의 사람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준행하는 사람이냐, 내가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냐,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말씀은 이렇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그렇게 복을 받았는데 자기를 보면은 이 말씀대로 약속하신 복이 있으면 그렇게 산 것이 되니까 더 조심하면서 계속하면 되겠고 말씀은 이런데 가감도 없고 그런 건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복을 받았는데 나는 받은 복이 없다고 하면 신앙을 돌아봐야하는 겁니다.
복 중에는 좀 깊이 살펴봐야 할 복이 있습니다. 복처럼 보이는데 좋은 것처럼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복이 아닌 가짜 복이 있습니다. 복 중에는 복처럼 생겼는데 가짜 복이 있습니다. 그 가짜 복은 건강으로 말하면 암 덩어리, 시한폭탄입니다. 복 중에는 복이 복인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임시 복도 있습니다. 세월 지나니까 없어져버립니다. 그것을 잘못 오용하니까 그 복 때문에 화가 오기도 합니다. 또 진짜 참복이 있습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진짜 복이 있습니다 제가 복의 종류를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까. 복 처럼 생긴 가짜 복이 있습니다. 암 덩어리 같은 좋은 것은 보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두 번째는 복은 복인데 그 복이 임시 복입니다. 잠깐 복으로 있다가 지나가버립니다. 세월 지나고 세상 떠나면 없어지는 복입니다. 지나치게 남용하면 진짜 복을 못 받게 만들어버립니다.
세 번째는 진짜 복입니다. 천국가도 변하지 않는 진짜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 시편을 지은 사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73편을 지은 사람, 성경 저자입니다. 이름이 뭡니까. 아삽이라는 사람입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요즘 말로 말하면 음악가인데, 찬양지휘자입니다. 다윗이 등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게 한 그 찬양 지도자 아삽인데 자손들도 대대로 많은 복을 받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 살아가는데, 자연스럽게 순리적으로 그렇게 펼쳐지면 저게 왜 저러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말이 안되는 그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하는데 1등을 해버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평소에 먹고 노는데 돈은 펑펑 쓰고 다닙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요.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1등을 했다, 그렇게 공부 잘하거나 머리 좋은 사람도 아닌 거 같은데 뭐가 좀 의아하고 이해가 안되는거지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악인이라는 말은 자기 중심의 사람인데, 자기 중심의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하나님과 왕과 주인은 같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주인은 말 그대로 주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주인입니다. 어떤 물건이 주인이면 어떻게 하든지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면 마음대로 다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니까 마음대로 합니다. 다른 차원인게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 뿐이고 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든 다른 사람이든 주인이라는 말을 쓸 때는 하나님을 의식해야합니다. 참 주인은 하나님 뿐이다.
죽었는데 또 죽었습니다. 죽은 겁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가을 나무입니다. 완전히 죽어버린 겁니다.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는, 그래 그 사람이 젊을 때 강팍부리면 두고보자,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 머리가 하얗게 되고 기력이 빠져나갑니다. 뼈 마디가 쑤십니다. 그럴 때를 가르켜 늙을 때라고 합니다. 젊을 때 하나님께서 세월을 기다립니다. 정말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은 두고 보자 쌓아두고 흰머리 생기고 골다골증을 보고 저주를 내려버립니다. 그러면 대책이 없습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때라도 회개하면 다행인데 그때가지도 강팍 부리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 봤는데 너무 그렇게 악하게 사니까 눈이 확 뜨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은 권선징악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은 권선징악입니다. 도움을 받는 겁니다. 조심스럽게 잘 살면 사는 것이고 함부로 살면 안되는 것이고 악하게 살면 망하는 게 순리고 자연이고 기본인데, 이 아삽이라는 사람 앞에 여러 사람 중에 악인인데 이 사람 모습을 보니까 전혀 반대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악인인데 평안합니다. 악인이면 고통스럽고 그래야하는데 평안하고 재물은 부자입니다. 일은 더 잘됩니다. 건강해서 살이 쪄서 눈이 번들번들합니다. 몸관리도 잘해서 건강합니다. 소득은 한 달에 500만원 벌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데 1000만원 법니다. 악인인데, 몸은 건강하지요, 소득은 많지요.
겁나는 게 없으니까 절절맵니다. 그러니까 권세도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은 자손의 복이 아닌, 악인인데도 자녀도 많습니다. 기가 막히는 거지요. 하나님을 아는 이 아삽이라는 사람은 늘 자기 행동을 조심하고 욥이라는 의인은 침 한 번 삼키는 것도 겁이 나서 못하고 욕심도 감정도, 욥이라는 사람은 일곱인데, 그 형제들이 각각 생일이 되면 초대하면 생일잔치합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사람 숫자대로 번제를 드리고 씻습니다. 욥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말 한 마디도 보는 것 하나도, 물 마시는 것도 조심합니다. 어떤 분들 그렇게 묻습니다, 건설구원 이뤄가는데 잠자는 것도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집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을 자다가 졸았습니다.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무의식 중에 가려운 것을 긁으면 천국입니까 구원입니까. 건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눈초리는 전지자입니다. 1초라도 놓치면 완전자가 아닙니다. 천하모든 사람에 눈 한 번 깜빡이는 것까지도, 그래서 완전자 전지전능자고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믿고 섬깁니다.
무의식 중에 하는 것도 천국 지옥으로 나눠집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욥처럼 그렇게 아침마다 징책을 받으며 마음이 괴롭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그분이 다 관찰하고 계시는데 그분이 듣고 계시는데, 나는 안 보여도 나 모르는 것도 그분이 알고 계시는데 그분은 안 계시는 곳이 없는데, 조심스럽고, 겁이 나서 살지를 못하는 겁니다. 종일 괴롭게 삽니다. 저 죄인은 보니까 조심이 없고 제멋대로사는데,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짓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것 다 가고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그래도 복은 더 많이 받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하냐
악인은 제멋대로 살아도 그런데 의롭게 사는데도 복을 커녕 먹고사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봐 중생된 영이 있고 앓고 있는 겁니다. 나도 저렇게 살아봐 그랬더라면 주의 아들들에 시대, 이 세상을 사는 한 평생을 살아가는 세상은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의 실력을 만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이 세상 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실력을 만들어가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을 나도 그렇게 살 뻔했다. 내가 어떻게하면 이를 알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계시는데 왜 저 악인은 저렇게 살아도 좋고 나는 겨우겨우 사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을 붙들고 이런 면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걸 기도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 보면은 빗자루로 쓸어낸다고 합니다.
동전을 잃어버렸는데 먼지에 파묻혀서 안보입니다. 쓸어내니까 보입니다. 이해가 안 될될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살아계시는 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분 말씀은 가감도 없고 거짓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니까 연구하는 겁니다. 이게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니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어디에 들어갔습니가.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몸이 들어갔다는 게 아니고 인생을 두고 생각을 하고 멀리까지 생각을 하고 인간 지식이 아니고 사람의 지식을 넘어서서 하나님 말씀 그런 게 있습니다. 세 다섯 살 아이들이 아무리 생각해봐야 그 범위입니다. 그럴 때는 어른들의 말씀가지고 생각하면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는 사람이라는 것은 객관 부모라는 객관에 대해서 태어납니다. 자기 자신, 나는 나인데 스스로 생기지 않았고 하나님이 보내셨고 부모를 통해서 났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아닌 타 객관에 의해서 났습니다. 형성되는 건 내가 되는데 나로 형성되고 자라가는 것도 객관에 의해서 자라가는 겁니다. 교만하지 못하고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천재도 잘난 사람도 부모라는 객관으로 나는 겁니다. 환경에 살아서 자아가 형성되고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천하 없는 독불장군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라는 게 있고 내가 아는 지식과 내가 아는 지식의 양과 깊이와 높이 범위가 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요. 과거 대우 그룹의 김호중 대장이 세계는 넓고 사람은 많다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게 전부냐고 그러면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합니다. 정중지와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우주라는 것도 있습니다. 지구에 살면 지구가 넓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부산에서 압록강까지 가려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동쪽 끝에 해서 한국에는 안보입니다. 지구는 큽니다. 그런데 그 지구는 우주라는 공간에 보면 먼지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이 있고 그 전부를 위해 다 지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넓어지고 커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봐야하는 겁니다. 눈 앞에 펼처지는 그런 상황을 보고 고민을 깊이 했는데 생각하고 생각했는데 자기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봤습니다. 분명히 말씀 순종해서 복이되고 그러는데 왜 반대사람이 펼쳐질까를 어디 들어갔다고요,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은 열여주셨다는 겁니다.
19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깨달았습니다. 늙으면 죽는데, 저렇게 던져주시는 것은, 평안하지요 죽을 때도 고통이 없습니다. 자손도 다 복을 받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성소 들어가서 깨달으니까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평생을 저렇게 회개하지 못하게 던져놨구나. 죽고 또 죽어 가을 나무로 던져놨습니다. 벤츠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마지막은 낭떠러지입니다. 그런데 그 벤츠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마지막 어떻게 되지요, 파멸입니다. 비유하자면 그런 겁니다. 그 사람 앞에 브레이크를 안 갈었습니다. 그렇게 편생을 부끄럽게 하고 몹쓸사람을 만들어놓고 졸지에 19절,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나이다. 결국이 그렇게 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악인인데도 재물 많고 평안하고 자손 많은 것이 전부 다 가짜 복이었습니다. 복이 아닌 가짜 복 이런 것이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고, 이런 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잘못사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어기는데도 잘 풀리면 겁이나야합니다. 두려워야합니다. 분명히 매가 징계가 와야하는데 왜 이러지, 희망있습니다. 무섭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큰 매를 때리려고 기다리는 겁니다. 말씀이 읽혀지고 들려지고 즐거워집니다. 이게 큰 복입니다. 들려지고 읽으니까 읽혀집니다. 응용을 하면 예배 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새벽기도 갈려고 일어나집니다. 성경 읽으니까 알아지고 믿어집니다. 큰 복이 됩니다. 더하면 즐거워집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이 재미있어집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집회가서 주일학생들이 양성원 참석하면 공회 목사님께서 과거에는 5시간을 안 쉬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 때문에 2-3시간 하고 좀 쉽니다. 강의하시는데 한 번 쉽니다. 강의인데 주일 학생들은 거기 가면 가고 싶어서 난리입니다. 가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양성원 간다고 하면 집회 간다면 좋아하고, 이건 하나님 은혜입니다. 그게 은혜고 복입니다. 말씀의 즐거움 복, 이 말씀이 믿어집니다. 권위성이 믿어집니다. 하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즐겁습니다. 실행을 합니다. 그 실행 생활을 계속을 합니다. 이게 복입니다. 이렇게 살아나가면 복을 받습니다. 자손의 복을 받습니다. 자녀 손주도 많아집니다. 우리 공회는 손주가 20명 넘는 가정이 더러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참 복입니다. 말씀대로 실행해 나가고 이어나가니까 하나님께서 자존에게 복도 주시고 권세복도 주시고 지혜복도 주시고 이 복은 세상 복입니다. 이런 복을 믿는 사람은 주신 분량이 다르니까 때문에 자기 정도되는 복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잘 살아나가니까 성적이 올라가더라, 자기 정도대로입니다 그런데 자기로서는 겪어봐야합니다. 목석이 아닙니다. 이방 종교하고 다릅니다. 희로애락을 가지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고 믿으면서 실행해나가면 그 실행을 하루 하고 말고 계속해 나가면 일주일을 살면 느낌이 옵니다. 한 달을 바로 살면 표가 납니다.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압니다. 한 번 살아보시지요. 그렇게까지 하지 못해도 어느정도 경험을 하는 겁니다. 자기 속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석 달에 살면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살면 어지간하면 모든 사람 다 뛰어날 만큼 복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이름 가지고 이 세상 여러 면의 복을 받아보지 못한 것은 그렇게 안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틀림없는 겁니다.
이게 그래서 무슨 복이라고요, 임시 복이라고 합니다. 있다가 없어집니다. 남은 하나 복은 진짜 복입니다. 오후에 합니다. 첫째 정말 큰 복은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고 말씀대로 실행을 하고 계속해서 다섯가지를 함으로 받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니까 이루어지는구나, 세상 복 이루어주시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되시는데 사후세계 천국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지옥도 있다, 이 임시복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임시복을 받아보고 말씀에 이것을 보고 하늘의 복으로 바꾸는 겁니다. 자기를 바꿉니다. 악한 자기를 선한 자기로 바꿉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은 꺾는 겁니다. 물질만 좋아하는 사람이 참을 좋아합니다. 이게 진짜 복입니다. 두 번째는 사는 목적을 바꿉니다. 잘 살아서 영원토록 귀한 그런 내가 되어야겠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멀리까지 종말을 계산하면서 조심스럽게 삽니다. 그런 사람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하는 사람으로 바꿉니다. 세 번째는 사는 방법을 바꿉니다. 사람 노릇, 종 노릇 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는 사람이 됩니다.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녹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게 영원한 복입니다. 자기를 바꿉니다. 사는 목적을 바꿉니다. 사는 방편을 바꿉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이루어지는 진짜 복입니다. 세 가지 복, 악인인데 받는 가짜 복, 말씀 순종해서 받는 임시 복, 세 번째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게 영원토록 이어지는 복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으로 바꾸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