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7일 금밤
김동민2026-02-28조회 11추천 1
2026년 2월 27일 금밤
찬송: 154장
본문: 시편 112편 5절 –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말씀은 실상이라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은 물질계라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서 시간의 졔약도 받고 공간의 제약도 받습니다. 하고 난 그 다음의 결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의 제안 공간의 제안,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고 사람이 물질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고 시간을 만드시고 공간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고 말씀도 시공을 초월합니다. 말씀대로 된다는 말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표현입니다. 말씀이 실상입니다. 말씀이 바로 그 실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 자체가 바로 복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거 자체가 복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심판은 현실 심판입니다. 말은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움직임도 행동이고 마음의 작용도 행동입니다. 안 보일 뿐이지, 말을 하면은 그 한 번한 그 말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말 자체가 자신의 그 순간 말이 바로 결정이 되어버린 겁니다. 마음을 가졌으면 가진 마음 그 자체가 결정이 되어버린 겁니다. 말을 내뱉고 나면 주워담을 수 없다고 하고, 물을 쏟으면 담을 수 없듯이 말만 그런게 아니고 마음을 먹었다가 바꿨다가 사람을 미워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에 미워했던 그 마음을 새로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영원히 지옥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 그 순간, 그 순간은 영원한 천국이고 영생입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심판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심판입니다.
한 시간으로 나누면 3600분으로 나누는데 그걸 한 시간으로 하는 겁니다. 1초 없으면 1분도 없고 한 시간도 없는 겁니다. 시간도 물질도 그렇고 지체도 그렇고 개인이 있어야 전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개인입니까 전체입니까. 교회할 때 회 자가 모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 개인 교회는 개인 교회도 여러 요소가 모이는 게 개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지체도 사람 몸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하나 없습니다. 발톱하나 손톱 하나 까지도, 몇 천 명이 모여도 한 분 한 분 소중한 사람입니다. 고아원의 원장, 포로 수용소 소장 같은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합니다. 그래서 개체와 전체 관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체와 전체, 이런 것들이 말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하나 중요한 것이고 이것처럼 그러니까 하나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없습니다. 일 초 일 초가 없으면 하루가 없고 한달도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 순간이 모여서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먼지들이 쌓여서 태산을 이룬다, 진합태산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면 그러면 너의 과거 생활은 저로 말하면 67년을 그렇게 살았냐, 욥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욥은 침을 삼키는 것도 조심했습니다. 눈동자 돌리는 것도 조심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평생 살면 성자가 될텐데 살다 풀어졌다가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 자체가 복입니다.
어떤 자기 손해 자기 희생, 자기 불편 이런 게 있을지라도 옳고 가야할 길을 굽히지 않고 바꾸지 않는 것을 가르켜 정직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도 정직하지만 인간적이고, 자기대로 옳은 거, 굽히지 않고 가는 걸 정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언행심사 생활에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그분 때문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CCTV를 비춰놓고 그 앞에서 사람이 살아나가면 스스로 자기 부끄러운 짓을 못합니다. 어린 아이가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민망한 것은 못합니다. 강아지가 쳐다봐도 민망해서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관찰하십니다. 보고 계시는데 안 보이니까 그분의 눈이 안보이고 안면이 안 보이니까, 우리 다 그렇게 살고 있지요. 의식하면 되겠습니까. 성자되고 성녀되고, 그런 사람 됩니다.
빛을 가지고 환하게 보는 사람이 되고 아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탕이 어진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됩니다. 5절입니다. 은혜를 베풀며 꼬이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면 정직한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복을 많이 받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라는 것은 혜택을 주는 겁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ㄴ느 그런 것을 베풀어줄 때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하면 은혜를 베풀려면 뭔가 다른 사람에게 주려면 내가 먼저 있어야합니다.
내게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데 이 세상 기준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요. 돈이 많든지 많이 배웠던지, 건강하던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줄 수 있고 베풀 수 있는데 은혜를 베풀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준다, 이것도 되겠고 그렇게만 이 말씀을 하면 제물을 못 줍니다. 권세가 없는 사람은 못 줍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죽일 수 있는데 은혜를 베푸는 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배운 것도 없고 건강도 없고 줄 게 없어서 은혜 베풀 수 없다고 하면 누구를 그 사람 앞에 내세웁니까. 나아만 집의 여종은, 종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여종입니다. 종, 권력, 힘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나아만 집의 여종은 나아만 대장군에게 평생을 두고 값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선지자에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인의 병을 고칠겁니다. 그 한마디입니다. 주모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주모의 말을 남편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왕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주모도 여종, 열 다섯 정도 되는 중간반 누구 있지요. 열 다섯 살 즈음 되는 그 또래되는 여종입니다 식모보다도 더한 종입니다. 계집아이 말을 그 높은 안방 주인 말이 그걸 듣습니까. 대장군의 가장 치명적인 문둥병을 두고 말하는데, 온 나라에 문둥병 고친 건 없는데, 고쳐줄겁니다 말하면 맞아죽습니다 잘못하면, 종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여주모가 그걸 들은 것은 평소에 생활이 그 자기 주인에게 신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급하면 지푸라기도 잡습니다. 중도 급하면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말한 저 아이는 불로 말하지 않는데, 나이는 어려도 신중한 아이인데,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고 아이도 알고 말하니까 왕도 다 들은 겁니다. 결과적으로 고쳤습니다.
나아만 대장의 병을 하나님이, 엘리사가, 그 여종이 없었으면 못 고치는 겁니다. 돈도 권세도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아만 대장군의 평생 은혜를 갚은 겁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된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안된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하라고 그러면 복입니다. 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은 안하는 것이 화를 면하는 길입니다. 자기 생각에 안될 거 같아서 안하면 복을 던져버리는 것이고 너무 하고 싶어서 해야할 거 같아서 하면 화를 불러들이는 게 되는 겁니다. 말씀은 가감도 없고 그런 겁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도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까. 그런데 아랍나라 큰 장군에게 그렇게 베풀었습니다.
제대로의 신앙을 가진 아이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성자가 큰 은혜를 말하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어린 아이를 보고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돈, 힘, 가진 게 없고 무식하고 못나서, 다른 사람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어려서, 늙어서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이게 은혜를 베풀고 은혜는 전부 누구든지 자기 위치해서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일차적으로 돌아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 외에 나와 직접 간접으로 범위 되는대로 연관된 사람들 자기와 연관된 사람을 돌아보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자기를 생각하고 큰일났구나, 그 사람하고 어려운 일 생겼는데 누구는 어떻게 되지 그 사람하고 사람이 다릅니다.
좋은 게 있으면 가져야겠다. 하고 필요한 사람 누굴까 하는 사람하고 다릅니다. 자기가 피하지만은 위급한 사람 챙겨서 사람이 다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은혜 베푸는 자세입니다.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타라고 하지요. 타를 생각하는 게 깔려 있는 겁니다. 깔려 있는 겁니다. 이게 없는 사람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챙기고 돌아다니면 나 외에 다른 사람, 내 자녀들도 챙기지만은 다른 자녀도 챙기고, 내가 다른 사람을 챙기고 주변을 챙기면 나는 누가 챙겨줍니까. 하나님이 챙겨줍니다. 손해되는 게 없다는 말이죠, 은혜를 베풀며 동정한다, 잘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챙겨주니까, 사람이게 베풀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챙겨줍니다. 그리고 그걸 공의로 하리로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자기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챙겨보는데 그걸 공의로 한다. 은혜라 그러면 주는 것인데 은혜는 세상적인 공으로 주는 게 아닙니다. 값을 받고 주긴 주지만은 구원이 중심입니다. 구원 중심적인 은혜까 아닌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목적하고 뭔가를 베푸는 겁니다. 그렇하면 잘 되는데 공의로 한다. 공평할 때 평자가 평평할 평 자입니다. 푹 꺼진 것은 메우고 언덕을 깎아서 평평하게 됩니다. 솟아오른 것으로 됩니다. 약한 사람은 돕습니다. 열 개 가진 사람하고 한 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네 개를 빼앗아서 한 개 가진 사람에게 비슷하게 되지요. 세상에 경제적으로 그런 것을 공산주의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공의라는 것은 사람끼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라야 공의
찬송: 154장
본문: 시편 112편 5절 –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말씀은 실상이라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은 물질계라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서 시간의 졔약도 받고 공간의 제약도 받습니다. 하고 난 그 다음의 결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의 제안 공간의 제안,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고 사람이 물질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고 시간을 만드시고 공간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고 말씀도 시공을 초월합니다. 말씀대로 된다는 말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표현입니다. 말씀이 실상입니다. 말씀이 바로 그 실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 자체가 바로 복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거 자체가 복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심판은 현실 심판입니다. 말은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움직임도 행동이고 마음의 작용도 행동입니다. 안 보일 뿐이지, 말을 하면은 그 한 번한 그 말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말 자체가 자신의 그 순간 말이 바로 결정이 되어버린 겁니다. 마음을 가졌으면 가진 마음 그 자체가 결정이 되어버린 겁니다. 말을 내뱉고 나면 주워담을 수 없다고 하고, 물을 쏟으면 담을 수 없듯이 말만 그런게 아니고 마음을 먹었다가 바꿨다가 사람을 미워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에 미워했던 그 마음을 새로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영원히 지옥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 그 순간, 그 순간은 영원한 천국이고 영생입니다. 그런 걸 가르켜서 심판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심판입니다.
한 시간으로 나누면 3600분으로 나누는데 그걸 한 시간으로 하는 겁니다. 1초 없으면 1분도 없고 한 시간도 없는 겁니다. 시간도 물질도 그렇고 지체도 그렇고 개인이 있어야 전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개인입니까 전체입니까. 교회할 때 회 자가 모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 개인 교회는 개인 교회도 여러 요소가 모이는 게 개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지체도 사람 몸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하나 없습니다. 발톱하나 손톱 하나 까지도, 몇 천 명이 모여도 한 분 한 분 소중한 사람입니다. 고아원의 원장, 포로 수용소 소장 같은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합니다. 그래서 개체와 전체 관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체와 전체, 이런 것들이 말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하나 중요한 것이고 이것처럼 그러니까 하나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없습니다. 일 초 일 초가 없으면 하루가 없고 한달도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 순간이 모여서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먼지들이 쌓여서 태산을 이룬다, 진합태산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면 그러면 너의 과거 생활은 저로 말하면 67년을 그렇게 살았냐, 욥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욥은 침을 삼키는 것도 조심했습니다. 눈동자 돌리는 것도 조심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평생 살면 성자가 될텐데 살다 풀어졌다가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 자체가 복입니다.
어떤 자기 손해 자기 희생, 자기 불편 이런 게 있을지라도 옳고 가야할 길을 굽히지 않고 바꾸지 않는 것을 가르켜 정직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도 정직하지만 인간적이고, 자기대로 옳은 거, 굽히지 않고 가는 걸 정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언행심사 생활에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그분 때문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CCTV를 비춰놓고 그 앞에서 사람이 살아나가면 스스로 자기 부끄러운 짓을 못합니다. 어린 아이가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민망한 것은 못합니다. 강아지가 쳐다봐도 민망해서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관찰하십니다. 보고 계시는데 안 보이니까 그분의 눈이 안보이고 안면이 안 보이니까, 우리 다 그렇게 살고 있지요. 의식하면 되겠습니까. 성자되고 성녀되고, 그런 사람 됩니다.
빛을 가지고 환하게 보는 사람이 되고 아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탕이 어진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됩니다. 5절입니다. 은혜를 베풀며 꼬이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면 정직한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복을 많이 받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라는 것은 혜택을 주는 겁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ㄴ느 그런 것을 베풀어줄 때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하면 은혜를 베풀려면 뭔가 다른 사람에게 주려면 내가 먼저 있어야합니다.
내게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데 이 세상 기준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요. 돈이 많든지 많이 배웠던지, 건강하던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줄 수 있고 베풀 수 있는데 은혜를 베풀며 그런 사람이 되어야 준다, 이것도 되겠고 그렇게만 이 말씀을 하면 제물을 못 줍니다. 권세가 없는 사람은 못 줍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죽일 수 있는데 은혜를 베푸는 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배운 것도 없고 건강도 없고 줄 게 없어서 은혜 베풀 수 없다고 하면 누구를 그 사람 앞에 내세웁니까. 나아만 집의 여종은, 종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여종입니다. 종, 권력, 힘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 나아만 집의 여종은 나아만 대장군에게 평생을 두고 값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선지자에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인의 병을 고칠겁니다. 그 한마디입니다. 주모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주모의 말을 남편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왕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주모도 여종, 열 다섯 정도 되는 중간반 누구 있지요. 열 다섯 살 즈음 되는 그 또래되는 여종입니다 식모보다도 더한 종입니다. 계집아이 말을 그 높은 안방 주인 말이 그걸 듣습니까. 대장군의 가장 치명적인 문둥병을 두고 말하는데, 온 나라에 문둥병 고친 건 없는데, 고쳐줄겁니다 말하면 맞아죽습니다 잘못하면, 종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여주모가 그걸 들은 것은 평소에 생활이 그 자기 주인에게 신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급하면 지푸라기도 잡습니다. 중도 급하면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말한 저 아이는 불로 말하지 않는데, 나이는 어려도 신중한 아이인데,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고 아이도 알고 말하니까 왕도 다 들은 겁니다. 결과적으로 고쳤습니다.
나아만 대장의 병을 하나님이, 엘리사가, 그 여종이 없었으면 못 고치는 겁니다. 돈도 권세도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아만 대장군의 평생 은혜를 갚은 겁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된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안된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하라고 그러면 복입니다. 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은 안하는 것이 화를 면하는 길입니다. 자기 생각에 안될 거 같아서 안하면 복을 던져버리는 것이고 너무 하고 싶어서 해야할 거 같아서 하면 화를 불러들이는 게 되는 겁니다. 말씀은 가감도 없고 그런 겁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도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까. 그런데 아랍나라 큰 장군에게 그렇게 베풀었습니다.
제대로의 신앙을 가진 아이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성자가 큰 은혜를 말하지도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어린 아이를 보고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돈, 힘, 가진 게 없고 무식하고 못나서, 다른 사람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어려서, 늙어서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이게 은혜를 베풀고 은혜는 전부 누구든지 자기 위치해서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일차적으로 돌아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 외에 나와 직접 간접으로 범위 되는대로 연관된 사람들 자기와 연관된 사람을 돌아보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자기를 생각하고 큰일났구나, 그 사람하고 어려운 일 생겼는데 누구는 어떻게 되지 그 사람하고 사람이 다릅니다.
좋은 게 있으면 가져야겠다. 하고 필요한 사람 누굴까 하는 사람하고 다릅니다. 자기가 피하지만은 위급한 사람 챙겨서 사람이 다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은혜 베푸는 자세입니다.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타라고 하지요. 타를 생각하는 게 깔려 있는 겁니다. 깔려 있는 겁니다. 이게 없는 사람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챙기고 돌아다니면 나 외에 다른 사람, 내 자녀들도 챙기지만은 다른 자녀도 챙기고, 내가 다른 사람을 챙기고 주변을 챙기면 나는 누가 챙겨줍니까. 하나님이 챙겨줍니다. 손해되는 게 없다는 말이죠, 은혜를 베풀며 동정한다, 잘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챙겨주니까, 사람이게 베풀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챙겨줍니다. 그리고 그걸 공의로 하리로다.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자기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챙겨보는데 그걸 공의로 한다. 은혜라 그러면 주는 것인데 은혜는 세상적인 공으로 주는 게 아닙니다. 값을 받고 주긴 주지만은 구원이 중심입니다. 구원 중심적인 은혜까 아닌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목적하고 뭔가를 베푸는 겁니다. 그렇하면 잘 되는데 공의로 한다. 공평할 때 평자가 평평할 평 자입니다. 푹 꺼진 것은 메우고 언덕을 깎아서 평평하게 됩니다. 솟아오른 것으로 됩니다. 약한 사람은 돕습니다. 열 개 가진 사람하고 한 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네 개를 빼앗아서 한 개 가진 사람에게 비슷하게 되지요. 세상에 경제적으로 그런 것을 공산주의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공의라는 것은 사람끼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라야 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