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3일 금밤
김동민2026-01-23조회 10추천 2
2026년 1월 23일 금밤
찬송: 103장
본문: 출애굽기 12장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이 세상에 알리시려고 이 세상을 만드셨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살다보니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애굽 땅에서 유월절을 만드셨습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은 모두 유월절 세상입니다. 이 달로 너희에게 첫 달이 되게하고, 유월절이 있는 그 달을 출발로 삼아라, 믿는 사람의 세상의 모든 것의 중심은 신앙 중심으로 삼아라, 신앙의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게 하라는 겁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건 인식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어떻게 보느냐, 어디서 보느냐, 어떤 각도로 보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걸 인식이라 각도라고 합니다. 이건 참 중요합니다. 인식이 바로 되면 상황에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됩니다. 같은 상황에서 인식이 바로 되면 어려워도 해쳐나갈 수 있게 되어도 같은 어려운 상황이어도 인식이 잘못되면 굉장히 어렵게 되는 겁니다. 모든 믿는 사람의 기준은 잣대는 기준은 신앙 중심이다. 공부를 해도 학원을 다녀도 학교 선택을 해도 직장을 정해도 사업을 해도 사람을 사귀어도 무엇을 하던지 예수믿는 사람들으 기준은 신앙이다, 교회 생활이고 예배 생활이다. 이게 바로 되면 믿는 사람이고 이게 안되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점점 갈라집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질 때는 따로 사는 정도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있고 롯은 소돔 고모라에 갔고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완전히 달라졌고 자손들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총공회 위로 올라가면 고신에 있었습니다. 지금 고신과 공회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목사님 가시고 89년에 36년입니까, 지금은 대구 공회 우리하고 부산 공회 우리하고는 굉장히 다릅니다. 대구 공회 쪽과 우리 공회 쪽은 다른 교단이라고 할 만큼 달라져 있습니다. 기준이 인식이 잘못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어야 구원이 되냐, 그런 고민. 여기 대개는 아마 김기곤 집사님도 그런 고민 좀 하셨습니까. 정말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길이냐, 양을 선택하는 건 구주를 선택하는 겁니다. 길에 들어섰어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냐, 이걸 깊이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길에 들어섰으면 꼭 장로교야되느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는 안되냐, 여호와의 증인은 왜 안되냐. 장로교 교파가 2-30년 전에 600개 700개 그랬습니다. 그 많은 장로교 중에 뭐겠느냐, 공회여야겠느냐. 우리 공회 네 가지 표여가 있지요. 나는 독립으로. 혼자 간다 그 뜻입니다. 혼자 간다. 그 말은 누가 뭐라 그래도 휘둘리지 않도록 예수님만 구주다, 장로교가 옳다 그 중에서 우리 공회다. 자기로서는 확정하고 있어야합니다.
각 사람이 양을 취합니다. 독립 신앙입니다. 주님 대속은 전체 다 있으나 대속이 있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는 겁니다. 가족대로 식구를 위하여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 소속이 되어있습니다. 식구가 너무 적으면 인수를 따라해라. 하나님과 자기 관계지만은 주님 대속을 입고 전하는 데에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도울 수 있는 겁니다. 각 사람의 심령, 먹는 양, 먹을 수 있는 분량을 따라서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할 것은 다르다. 스스로를 비하해서 불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허영은 다 뽑아버리고, 몸도 약한 사람이,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로서는 최대한 하는 겁니다. 내가 시간과 두뇌와 형편 다해서 주님 대속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할려고 생각해보면, 내 분량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불충이 문제지 과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서영준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도 너무 충성하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건강 조심하시라, 신풍 목사님께 조심해라. 마지막 저에게는 충성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분량 따라서 계산하고 5절에 흠없고 수컷으로 합니다. 가장 좋은 겁니다. 자기로써는 주님 가신 길을 걸어갈 때 자기로써는 최상의 것을 바치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뭔가를 충성할 때 많은 분들이, 공무원 생활하다가 직장 생활 하다가 하다 보니 그때 퇴직하면 연금을 쌓이고 퇴직금도 있고 그때 목회 나오신 분들이 꽤나 많았었는데 그건 알맹이를 바치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바쳐놓고, 뒤에 가서 목회하겠다. 비교적으로 나을 수 있겠지만 생각할 바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모든 힘은 대속에서 나오고, 믿는 사람의 자기가 나타나는 것도 피 안에서 나오는 겁니다. 피 안에 들어가서 대속입은자로 산다. 죄 안 짓고 자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모시고 대속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피 안에 들어가니까 전부 다 들어가는데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밤에 고기를 구워먹습니다. 밤 중에. 밤 중은 환란이고, 환란과 밤중과 반대쪽은 대낮이고 빛입니다. 어두우면 환란이고 같은 환란을 당하고 있는데 온도가 너무 더워서 잠오기 딱 좋은 온도인데, 밤 중이라서 환란인데 환란 가운데 아무도 환란하지 않았습니다. 환란 속에서 재앙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빛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환란 만나도 그랬으니까 빛을 비추고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성경의 감동에 붙들리고 그 사람은 밤 중에서 빛 가운데 사는 것이고 그런 것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실제로 통과하고 나서 전해야하는데 참 쉽지 않겠습니다. 여덟 가지입니까 생각해봤지요. 일곱 가지, 양고기 어떻게 먹느냐, 사람의 평생은 다 먹는 평생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짐승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모든 생물은 평생을 통해서 먹어야 사는 겁니다. 안 먹고 사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생명가진 존재는 먹어야 삽니다. 육도 먹어야하고 신앙생활도 먹어야 사는 겁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내가 하늘로 내려온 것이다. 내 몸이 떡이고 먹어야한다. 유대인들은 그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능력 있으신 주님이 말씀하시면 뭐가 있나보다 생각하다보면 알게 되어있는데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의 대속 공로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먹는 것입니까. 더 밖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성경을 읽어야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말씀 들어야 양고기 먹는 게 됩니다.
읽고 들어도 어떻게 하면 모르게 됩니까. 같이 읽고 같이 들어도 어떻게 하면 모르게 된다고요. 산 자가 이것의 유심하리로다. 전도서입니까. 산자가 이것에 유심리로다. 이 유심하는 것은 유심칩이 아니고 마음을 거기 두라. 마음이 거기 있어야한다. 마음을 거기 두지 말아라는 겁니다. 읽을 때 들을 때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을 해야 알게 됩니다. 공부할 때도 전부 가르치는데, 앉아있어도 마음을 다른데 두면은 안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빠져나가는데도 자라가는 면이 있습니다만은 어느정도 자라면 마음을 두고 이것이 과연 그러하냐, 대속이 뭐냐 사죄가 뭐냐 도성인신이 뭐냐 그걸 생각하면서 연구해야 알아지게 되는 거고 지식이 남아있습니다. 그게 양고기를 먹는 1차입니다. 도성인신 이런 거 모르면 못먹습니다. 알아야 먹는 거지요. 참 안타깝고 죄송하지만 연세 많은 분들, 진실하게 몰라도 파고들면 알게되는데 마음에 안 두면 안되는 거지요. 주님 대속 피와 살을 먹는 생활은 못하는 겁니다.
그런 걸 모르는 학생들은 불효자식이 되는 거지요. 어머니 은혜를 생각하고 따져보지 않으니까 불효자식이 되는 거지요.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게 중국에서 아버지들 공장에서 현장에서 그 더운 여름에 추운 겨울에 위험한 곳에서 막노동하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 모습들 보니까 다 울어버린다고, 그걸 산교육이라고 합니다. 다른 거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일해서 나를 공부시키고 있구나, 농땡이를 칩니까 사람이면. 그런 걸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주님 대속을 알고 생각해보니까 온갖 작용이 다 나오는 겁니다.
무교병을 같이 먹어라, 사람 사람 사이에 뭔가 들어가면 화목은 깨져버립니다. 그래서 존재 순서로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 및에 모든 게 다 있는 겁니다. 주님은 양고기로 다 바쳤고 그 주님 은혜 생각하면서 나도 걸어가야지, 나도 고생 각오해야지 나도 십자가 지어야지. 쓴 나물은 고난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 십자가 고난이 있으니까 그 고난을 각오해라. 십자가는 고난이지요. 직장 십자가도 있고 사회 십자가도 있고 경제 십자가도 있고 별별 십자가도 다 있습니다. 자기 고난입니다. 내가 당할 내 고난, 자기에게는 고치기 위해서 습성을 고쳐야하는데 고난 없이 고칠 수가 없는 겁니다.
날로 먹지 말아라, 표면적으로 날로 먹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 주님 가신 그 길을 가겠다. 그건 날로 먹는 것이고 말하자면 수박을 속을 먹지 않고 수박 껍데기만 핥고, 포장지만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포장지를 뜯어서 살펴야하는데 귀찮고 힘드니까 가는 겁니다. 또 한편으로 보면은 크게 어떻겠냐면은 찬송가 28장은 가사 하나 하나에다가 곡조까지도 아주 감성적입니다. 주의 흘린 피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맞는 말인데 감성적인 표현이라서 조심해야하는 겁니다. 참 은혜롭고 좋은데 감성이 앞서있기 때문에 내일 일은 나 몰라요. 저는 공적 예배 시간에 한 번도 안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그 찬송 지은 작사자의 저서가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확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그분이 지은 찬송이 그거입니다. 감성적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감정적으로 하나님인데 낮아진 거 고통스럽게, 감성적으로 감정적으로 따라가는 게 날로 먹는 겁니다.
한국의 오늘 교회들이 모습이 되어서 속화되고 그래서 속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 껍데기만 보고 따라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아니하고 거저먹고 대충대충 날로 없는 건데, 날로 먹는 것은 껍데기만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양고기 자체를 그렇게 하는 것은 변질 시켜버리는 겁니다. 물에 삶는 것. 주님 대속을 꼭 주일만 지켜야하냐, 다른 것은 지키면 안되냐, 예배는 꼭 자기 궤에서만 예배를 드려야하느냐, 한번씩 다른 예배 드리면 안되냐, 예배는 찬송 기도 설교 구약에도 온갖 악기가 다 있던데 드럼 갖다놓으면 안되냐, 그게 삶아먹는 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주관적으로 현실에 맞게 이 세상 세계에 맞게 걸어가는 게 삶아 먹는 겁니다.
머리 정강이는 걸어가는 겁니다. 너도 주님 가신 그 걸음을 따라가고 내장 속에 있는 사람 속에 있는 온갖 마음의 온갖 작용들 욕심 감정 취미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불에 구워먹어라. 내면을 생각하면서 주님따라 가져라. 자세. 허리에는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지고 급히 먹어라. 네 가지 자세입니다. 쓴나물, 날로 먹지 말고 삶아먹지마라, 쓴나물이 뭐냐, 네가지 십자가 사람마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남편이 십자가가 안에 쥐고 남편으로 지실 십자가가 있고 직장에 가서 지실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피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대로 고쳐야할 거 뽑아야할 거 있는데 십자가를지지 않고 해결될 수는 없는 겁니다 걸음 걸음이니까 주님 가신 그 길을 생각하면 고난을 받아야지, 양고기는 주님이고 다시 말하면 현실을 살아갈 때 대속 입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생활에서 고난 없이 바꾸어지고 바로 정리되는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자체가 몸에 병이 났는데, 그 병명을 고치려면 주사를 먹든 약을 먹든 따라가야 고쳐집니다.
바로 잡으려면 풍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걸음을 걸어가려면 고난은 필수다. 이게 쓴나물입니다. 또 날로, 껍데기만 보고 주님 가신 길을 가지 말아라, 감성적으로 하지 말아라, 내면을 파고 들어라, 물에 삶아먹지 말아라, 섞지 마라, 말씀하신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03장
본문: 출애굽기 12장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이 세상에 알리시려고 이 세상을 만드셨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살다보니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애굽 땅에서 유월절을 만드셨습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은 모두 유월절 세상입니다. 이 달로 너희에게 첫 달이 되게하고, 유월절이 있는 그 달을 출발로 삼아라, 믿는 사람의 세상의 모든 것의 중심은 신앙 중심으로 삼아라, 신앙의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게 하라는 겁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건 인식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어떻게 보느냐, 어디서 보느냐, 어떤 각도로 보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걸 인식이라 각도라고 합니다. 이건 참 중요합니다. 인식이 바로 되면 상황에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됩니다. 같은 상황에서 인식이 바로 되면 어려워도 해쳐나갈 수 있게 되어도 같은 어려운 상황이어도 인식이 잘못되면 굉장히 어렵게 되는 겁니다. 모든 믿는 사람의 기준은 잣대는 기준은 신앙 중심이다. 공부를 해도 학원을 다녀도 학교 선택을 해도 직장을 정해도 사업을 해도 사람을 사귀어도 무엇을 하던지 예수믿는 사람들으 기준은 신앙이다, 교회 생활이고 예배 생활이다. 이게 바로 되면 믿는 사람이고 이게 안되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점점 갈라집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질 때는 따로 사는 정도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있고 롯은 소돔 고모라에 갔고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까 완전히 달라졌고 자손들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총공회 위로 올라가면 고신에 있었습니다. 지금 고신과 공회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목사님 가시고 89년에 36년입니까, 지금은 대구 공회 우리하고 부산 공회 우리하고는 굉장히 다릅니다. 대구 공회 쪽과 우리 공회 쪽은 다른 교단이라고 할 만큼 달라져 있습니다. 기준이 인식이 잘못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어야 구원이 되냐, 그런 고민. 여기 대개는 아마 김기곤 집사님도 그런 고민 좀 하셨습니까. 정말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길이냐, 양을 선택하는 건 구주를 선택하는 겁니다. 길에 들어섰어도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냐, 이걸 깊이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길에 들어섰으면 꼭 장로교야되느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는 안되냐, 여호와의 증인은 왜 안되냐. 장로교 교파가 2-30년 전에 600개 700개 그랬습니다. 그 많은 장로교 중에 뭐겠느냐, 공회여야겠느냐. 우리 공회 네 가지 표여가 있지요. 나는 독립으로. 혼자 간다 그 뜻입니다. 혼자 간다. 그 말은 누가 뭐라 그래도 휘둘리지 않도록 예수님만 구주다, 장로교가 옳다 그 중에서 우리 공회다. 자기로서는 확정하고 있어야합니다.
각 사람이 양을 취합니다. 독립 신앙입니다. 주님 대속은 전체 다 있으나 대속이 있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는 겁니다. 가족대로 식구를 위하여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 소속이 되어있습니다. 식구가 너무 적으면 인수를 따라해라. 하나님과 자기 관계지만은 주님 대속을 입고 전하는 데에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도울 수 있는 겁니다. 각 사람의 심령, 먹는 양, 먹을 수 있는 분량을 따라서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할 것은 다르다. 스스로를 비하해서 불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허영은 다 뽑아버리고, 몸도 약한 사람이,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로서는 최대한 하는 겁니다. 내가 시간과 두뇌와 형편 다해서 주님 대속을 연구하고 생각하고 할려고 생각해보면, 내 분량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겁니다. 불충이 문제지 과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서영준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도 너무 충성하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건강 조심하시라, 신풍 목사님께 조심해라. 마지막 저에게는 충성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분량 따라서 계산하고 5절에 흠없고 수컷으로 합니다. 가장 좋은 겁니다. 자기로써는 주님 가신 길을 걸어갈 때 자기로써는 최상의 것을 바치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뭔가를 충성할 때 많은 분들이, 공무원 생활하다가 직장 생활 하다가 하다 보니 그때 퇴직하면 연금을 쌓이고 퇴직금도 있고 그때 목회 나오신 분들이 꽤나 많았었는데 그건 알맹이를 바치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바쳐놓고, 뒤에 가서 목회하겠다. 비교적으로 나을 수 있겠지만 생각할 바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모든 힘은 대속에서 나오고, 믿는 사람의 자기가 나타나는 것도 피 안에서 나오는 겁니다. 피 안에 들어가서 대속입은자로 산다. 죄 안 짓고 자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모시고 대속으로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피 안에 들어가니까 전부 다 들어가는데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밤에 고기를 구워먹습니다. 밤 중에. 밤 중은 환란이고, 환란과 밤중과 반대쪽은 대낮이고 빛입니다. 어두우면 환란이고 같은 환란을 당하고 있는데 온도가 너무 더워서 잠오기 딱 좋은 온도인데, 밤 중이라서 환란인데 환란 가운데 아무도 환란하지 않았습니다. 환란 속에서 재앙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빛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환란 만나도 그랬으니까 빛을 비추고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성경의 감동에 붙들리고 그 사람은 밤 중에서 빛 가운데 사는 것이고 그런 것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실제로 통과하고 나서 전해야하는데 참 쉽지 않겠습니다. 여덟 가지입니까 생각해봤지요. 일곱 가지, 양고기 어떻게 먹느냐, 사람의 평생은 다 먹는 평생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짐승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모든 생물은 평생을 통해서 먹어야 사는 겁니다. 안 먹고 사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생명가진 존재는 먹어야 삽니다. 육도 먹어야하고 신앙생활도 먹어야 사는 겁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내가 하늘로 내려온 것이다. 내 몸이 떡이고 먹어야한다. 유대인들은 그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능력 있으신 주님이 말씀하시면 뭐가 있나보다 생각하다보면 알게 되어있는데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의 대속 공로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먹는 것입니까. 더 밖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성경을 읽어야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말씀 들어야 양고기 먹는 게 됩니다.
읽고 들어도 어떻게 하면 모르게 됩니까. 같이 읽고 같이 들어도 어떻게 하면 모르게 된다고요. 산 자가 이것의 유심하리로다. 전도서입니까. 산자가 이것에 유심리로다. 이 유심하는 것은 유심칩이 아니고 마음을 거기 두라. 마음이 거기 있어야한다. 마음을 거기 두지 말아라는 겁니다. 읽을 때 들을 때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을 해야 알게 됩니다. 공부할 때도 전부 가르치는데, 앉아있어도 마음을 다른데 두면은 안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빠져나가는데도 자라가는 면이 있습니다만은 어느정도 자라면 마음을 두고 이것이 과연 그러하냐, 대속이 뭐냐 사죄가 뭐냐 도성인신이 뭐냐 그걸 생각하면서 연구해야 알아지게 되는 거고 지식이 남아있습니다. 그게 양고기를 먹는 1차입니다. 도성인신 이런 거 모르면 못먹습니다. 알아야 먹는 거지요. 참 안타깝고 죄송하지만 연세 많은 분들, 진실하게 몰라도 파고들면 알게되는데 마음에 안 두면 안되는 거지요. 주님 대속 피와 살을 먹는 생활은 못하는 겁니다.
그런 걸 모르는 학생들은 불효자식이 되는 거지요. 어머니 은혜를 생각하고 따져보지 않으니까 불효자식이 되는 거지요.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게 중국에서 아버지들 공장에서 현장에서 그 더운 여름에 추운 겨울에 위험한 곳에서 막노동하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 모습들 보니까 다 울어버린다고, 그걸 산교육이라고 합니다. 다른 거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일해서 나를 공부시키고 있구나, 농땡이를 칩니까 사람이면. 그런 걸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주님 대속을 알고 생각해보니까 온갖 작용이 다 나오는 겁니다.
무교병을 같이 먹어라, 사람 사람 사이에 뭔가 들어가면 화목은 깨져버립니다. 그래서 존재 순서로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 및에 모든 게 다 있는 겁니다. 주님은 양고기로 다 바쳤고 그 주님 은혜 생각하면서 나도 걸어가야지, 나도 고생 각오해야지 나도 십자가 지어야지. 쓴 나물은 고난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 십자가 고난이 있으니까 그 고난을 각오해라. 십자가는 고난이지요. 직장 십자가도 있고 사회 십자가도 있고 경제 십자가도 있고 별별 십자가도 다 있습니다. 자기 고난입니다. 내가 당할 내 고난, 자기에게는 고치기 위해서 습성을 고쳐야하는데 고난 없이 고칠 수가 없는 겁니다.
날로 먹지 말아라, 표면적으로 날로 먹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 주님 가신 그 길을 가겠다. 그건 날로 먹는 것이고 말하자면 수박을 속을 먹지 않고 수박 껍데기만 핥고, 포장지만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포장지를 뜯어서 살펴야하는데 귀찮고 힘드니까 가는 겁니다. 또 한편으로 보면은 크게 어떻겠냐면은 찬송가 28장은 가사 하나 하나에다가 곡조까지도 아주 감성적입니다. 주의 흘린 피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맞는 말인데 감성적인 표현이라서 조심해야하는 겁니다. 참 은혜롭고 좋은데 감성이 앞서있기 때문에 내일 일은 나 몰라요. 저는 공적 예배 시간에 한 번도 안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그 찬송 지은 작사자의 저서가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확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그분이 지은 찬송이 그거입니다. 감성적입니다. 주님 가신 길은 감정적으로 하나님인데 낮아진 거 고통스럽게, 감성적으로 감정적으로 따라가는 게 날로 먹는 겁니다.
한국의 오늘 교회들이 모습이 되어서 속화되고 그래서 속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 껍데기만 보고 따라했기 때문에, 힘들이지 아니하고 거저먹고 대충대충 날로 없는 건데, 날로 먹는 것은 껍데기만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양고기 자체를 그렇게 하는 것은 변질 시켜버리는 겁니다. 물에 삶는 것. 주님 대속을 꼭 주일만 지켜야하냐, 다른 것은 지키면 안되냐, 예배는 꼭 자기 궤에서만 예배를 드려야하느냐, 한번씩 다른 예배 드리면 안되냐, 예배는 찬송 기도 설교 구약에도 온갖 악기가 다 있던데 드럼 갖다놓으면 안되냐, 그게 삶아먹는 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주관적으로 현실에 맞게 이 세상 세계에 맞게 걸어가는 게 삶아 먹는 겁니다.
머리 정강이는 걸어가는 겁니다. 너도 주님 가신 그 걸음을 따라가고 내장 속에 있는 사람 속에 있는 온갖 마음의 온갖 작용들 욕심 감정 취미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불에 구워먹어라. 내면을 생각하면서 주님따라 가져라. 자세. 허리에는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지고 급히 먹어라. 네 가지 자세입니다. 쓴나물, 날로 먹지 말고 삶아먹지마라, 쓴나물이 뭐냐, 네가지 십자가 사람마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남편이 십자가가 안에 쥐고 남편으로 지실 십자가가 있고 직장에 가서 지실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피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대로 고쳐야할 거 뽑아야할 거 있는데 십자가를지지 않고 해결될 수는 없는 겁니다 걸음 걸음이니까 주님 가신 그 길을 생각하면 고난을 받아야지, 양고기는 주님이고 다시 말하면 현실을 살아갈 때 대속 입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생활에서 고난 없이 바꾸어지고 바로 정리되는 수는 없는 겁니다. 그 자체가 몸에 병이 났는데, 그 병명을 고치려면 주사를 먹든 약을 먹든 따라가야 고쳐집니다.
바로 잡으려면 풍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걸음을 걸어가려면 고난은 필수다. 이게 쓴나물입니다. 또 날로, 껍데기만 보고 주님 가신 길을 가지 말아라, 감성적으로 하지 말아라, 내면을 파고 들어라, 물에 삶아먹지 말아라, 섞지 마라, 말씀하신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