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수밤
김동민2026-01-21조회 18추천 2
2026년 1월 21일 수밤
찬송: 102장
본문: 출애굽기 12장 8절 - 1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유월절은 환란의 절기이고 재앙인데 먹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환란이고 재앙이고 구원의 절기인데 방편이라고 그럴까요, 환란에서 구원받고 재앙에서 구원받는 그 방편이 1차적으로는 들어가고 그 다음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든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존재의 자체, 존재의 환경, 거기 따라서 먹는 음식과 먹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든 생명 모든 것은 먹어야하는 겁니다. 안 먹어도 사는 생물은 없지요. 뭐든지 먹어야 삽니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지렁이가 사는 땅은 옥토가 됩니다. 그 땅은 식물이 굉장히 잘 자라는 뜻이 됩니다. 바퀴벌레는 또 음식같은 것을 먹습니다. 여우는 썩은 것만 골라먹는다고 합니다. 땅 속에 뿌리 박고 사는 식물은 뭐 먹습니까. 땅속에 있는 수분 먹고 박태리아 먹고 산소 먹고 햇빛 먹고, 입도 없는데. 나무는 뿌리로 먹습니다. 잎사귀로 받아먹습니다.
모기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습니다. 파리는 파리 먹는 게 있습니다. 생물은 존재마다 먹어야삽니다. 안 먹으면 못 삽니다. 그런데 존재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존재가 다른 겁니다. 땅 속에 있는 것을 나무가 먹어야할 것을 빨아먹습니다. 햇빛도 받아먹어야합니다. 안 먹으면 나무는 죽습니다. 물에 사는 물고기는 물도 먹고 생물 미생물도 먹어야합니다. 작은 건 작은 거 먹고 큰 고기는 큰 거 먹고, 초식 동물은 식물 먹고, 육식 동물은 육식을 하는 겁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도 벌레잡아먹습니다. 다 먹습니다. 짐승은 잎으로 먹고 네 발 달린 짐승은 엎드려서 입을 바닥에 박고 먹어야합니다. 새는 부릭로 쪼아먹습니다.
두루미하고 여우가 식사초대를 했다고 하지요. 두루미는 부리가 길거든요, 그래서 평평하면 먹기 어려운데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놓고 어디에다 음식을 차렸느냐, 쟁반 접시에 놓고 먹으라고 합니다. 못 먹지요. 그 다음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습니다. 호리병을 넣고 내놓습니다. 여우 주둥이가 들어갑니까. 둘 다 나쁜 짐승들이죠. 사람 사람이 그것도 이야기인데 교훈이 담긴합니다. 어쨌든 먹는 게 있는 겁니다. 나비는 나비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먹어야 삽니다. 이런 말을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는 고차원 같은데 상식입니다. 상식은 들어가보면 진리는 절대성을 가졌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겁니다. 상식은 자연이 풀리지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어렵습니까. 먹어야합니다. 쉽지요.
한 자 한 자 단어 단어 그걸 연결시켜서 보면은 이런 글자와 이런 단어와 문장을 연결시켜서 그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담아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실 때 가장 일반적인 평범한 그런 글자로 언어로 해놨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한국어입니다. 한국 사람이 영어, 불어 할려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도 쓸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1000년 2000년 전에 한글 고어 그거 잘 모릅니다. 한국 사람이 2-3000년 히브리어 헬라어를 읽으면 모르는 겁니다. 원어를 가지고 읽어서 성경 해석을 한다, 코미디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럴려면 평생 원어 공부해야하는 겁니다. 적어도 10년 넘게 해도 모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헬라어가 그 당시 그때 언어는 일반 사람들이 다 쓰는 평범한 언어입니다. 다 그렇게 되어있는 언어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학자들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보편성을 평범하다, 일반이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권위 세우려고 밥통 지키려고 원어를 캐니까 그거나 의사들이 영어 가지고 전문 용어 쓰는 그거나 판사가 전문 용어 쓰는 그거나 다를 게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읽으면 읽을수 있습니다. 누구나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을 모르느냐, 성경을 안 읽거든요. 안하거든요, 생각을 안하거든요. 학생들 공부하는 만큼 성경 공부합니까. 고등학교 학생들 수능 시험 공부하는 만큼 목사가 성경 연구할까요.
마음은 뭘 먹어야한다고 하는가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독서를 먹고 삽니다. 책을 읽는 겁니다. 읽을 독, 책 서. 책을 읽으면 지식이 생겨집니다. 그런데 이 맹점이면서.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관심이란 마음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안 보이고 안 들립니다. 아이들 게임, 만화책 같은 건 재밌고 해서 몰입을 합니다. 그런데 교과서라든지 교양서라든지 대충 씁니다. 머리 속에 안 남는 겁니다. 읽을 때 마음을 기울이고 이것이 과연 그런가,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읽어지고 새겨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누구신다, 예수라는 이름이 뜻이 뭡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예수님은 그런 분이구나, 하나님이구나. 사람 왜 사람 되어오셨을까.
하나님 백성의 죄를 위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의 근본과 사랑과 희생의 과정과 한도 없는데, 성경에서 차분하게 읽어나가는게 그게 어떻게 되지요. 하나 둘 예수님에 대해서 읽어나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지요. 알게 되는 것을 가르켜서 지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 지식이 생겨지는 것을 먹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양고기를 먹는 겁니다. 먹는 거, 성경에 기록된, 그런데 성경이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합니다. 마음을 다른 데 두고 못 앉아 있고 귀는 열어놨는데 모르고. 수십 명이 다 들리는데 그 사람은 안 들립니다. 왜 안들립니까. 마음이 다른 데 있으니까. 소리는 들었는데 그래서 질문하면 뭐라고요, 그런 겁니다.
몸과 피는 일차는, 성경 말씀을 읽던지 듣든지 그러는 겁니다. 아는 걸 가르켜서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는 이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따져보는 겁니다. 생각하는 겁니다. 파고 드는 겁니다. 연결시켜 보는 겁니다. 연구해보는 겁니다. 생각해 들어가면 단어 단어 문장 문장을 가지고 생각해 들어가면 단어 문장 속에는 의미가 들어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생각을 하면 이성에 따라서 감성이 나옵니다. 그게 세상 지식이고 인간 지식이면 단순히 인간의 감성 감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계속 생각하면, 주님 대속을 생각하면 그 말씀 속에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겁니다. 많은 작용이 일어납니다. 양고기, 몸과 피를 먹는 겁니다. 그리고 나면 그걸 가지고 살아갈 때 살아가는 겁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모르면 양고기는 못 먹습니다.
밤이란 환란이고 재난입니다. 연결시켜봅니다. 밤은 환란이다. 밤은 어둡다. 밤은 밤인데 밤은 전부 다 밤인데 환란인데 어떤 사람은 밤에 환하게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부 캄캄한 밤인데 등불을 켜는 사람은 밤이 상관없습니다. 예배당 밖은 춥고 캄캄한데 등불이 켜지니까 환합니다. 법을 모르면 법에 대해서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건강에 대해서 모르면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저는 길치입니다. 밤중 환란의 때고 어두운 때인데 빛이 없다는 거지요. 이거는 고차원의 빛이지요. 고차원의 빛은 옳은 것이 빛인데 구별하는 지식이 없다. 그러면 환란이 되는 겁니다. 유월절은 그 밤, 여호와의 밤에 일어났습니다. 밤이기 때문에 환란입니다. 애굽 사람 오늘 교독했지요, 감옥 죄수고 다 죽었습니다. 대환란 재앙입니다. 그런데 피를 바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걸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게 유월절 밤이라는 겁니다. 밤의 의미를 기억해야합니다.
밤이란 어돕고 빛이 없는 것, 옳은 것을 모른다는 뜻이고, 옳은 길을 갈 길이 없는 겁니다. 환란이 되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평생은 밤같은 유월절 기반이고 세 번째 장소, 현장, 현재라고 그랬습니다. 양의 피 안에 들어가서 양고기 먹었습니다. 그 밖에 나가면 양고기 먹고 안 먹고 상관없이 죽어버렸고, 안에 들어가서 양고기 먹었다. 현실에서 대속 공로를 입은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그게 먹는 장소였습니다. 함께 먹을 게 뭐냐, 무교병을 먹어라,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쓴나물을 말씀드렸습니다. 무교병은 화목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화목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가치가 되는 겁니다. 동질 동성이 점점 되어져가는 겁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결혼제도 내신 목적은 많아지게 하는 겁니다. 이게 이상한 거 같은데,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냈습니다. 몇 명을 보냈지요. 한 명, 요셉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뒤에 드러나서 칠십명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야곱에게 왜 보내셨을까요.
이스라엘 칠십명이 애굽에 가서 한 일이 자손의 번식입니다. 많아지게 하시려고 보내시는 겁니다. 칠십명을 보내서 아브라함 혼자 이삭 하나, 둘 주셨는데 하나는 탈선 야곱은 하나, 열 둘 주셨고 자손 번식으로 하는데 그들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자손 번식이 되어서 이백만명이 된겁니다. 바벨탑 쌓은 이후부터 다 갈라졌습니다. 부부가 둘인데 그 두 사람이 왜 사람들이 요즘은 인식이 바뀌어간다지요. 결혼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이것도 바람입니다. 그런데 한때 결혼 안하려 했느냐, 나 혼자 살기도 힘들고 귀찮다. 다르니까.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귀찮고 싫다는 거고 자기 중심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소위 아주 못된 말 나쁜 말, 결혼 안한다는 그거 자기 중심의 가장 나쁜 악입니다. 혼자 편하게 살겠다고. 왜 말씀하느냐 화목이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맞지요, 둘이 하나가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하나가 될려면 같아야합니다.
두 물질을 본드로 딱 붙일 때 설명서 보면 조건이 있습니다. 먼지 이물질을 깨끗이 닦아내십시오라고 합니다. 먼지가 없어야 딱 들어붙습니다. 그 사이에 이물질이 있으면 그 만큼 안 붙습니다. 화목이라는 것은 왜 불목이 생기냐, 이물질이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화목하려면 그 사이에 끼어들어가려는 요소를 다 빼버려야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였습니다. 그 사이에 귀신이 기어들어가서 하와 마음 속에 죄를 집어넣습니다. 자기 중심을 집어넣습니다. 아담 하와 사이도 그 사이가 벌어집니다. 아담의 생각과 하와의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사람 사람 사이가 왜 벌어지느냐, 벌어져서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들면 안되는데 크게 말하면 삼각 사이에 두 사람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 음녀가 들어가면 갈라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그게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무도 없는데, 하나가 안된다, 남편 생각과 아내 생각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게 있으니까. 이걸 맞춰나가야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고 같아져야 하나가 됩니다.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잘 지냈는데 무슨 말 하나 들어서 형제가 우애 좋게 지내던 친구 우정이 잘 지내고 있는데 금덩어리 하나 떨어져있습니다. 주웠습니다. 내 거야, 나눠야지. 들어가니까 벌어지는 겁니다. 감정이 들어가면 벌어지고 인정이 들어가면 벌어지고, 사람 사람 사이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사람 사람 사이를 분목을 만듭니다. 이걸 살펴서 사람을 집어넣을만한 것이냐, 하나님 다음에 사람입니다. 하나님 있고 진리 있고 사람입니다.
사람 잃고 취할 것은 하나님 진리 외에는 없습니다. 이걸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뭐가 들어가서 벌어졌나, 뭔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가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할 것이냐. 위신 체면 이럴 것이냐 생각해보면 답은 나올 겁니다. 양고기 무교병이란 그런 걸 말하는 겁니다. 무교병이란 사람과 불목하지 말아라, 많이 내놔야합니다.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려면 가랑이 찢어집니다. 천국 세상을 같이 가지는 법은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거 외에는 어지간한 거 다 내놔야합니다. 그러면 화목됩니다. 아니면 불목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네 번째 까지 생각해봤습니다. 쓴나물은 자기 십자가였습니다. 유월절 먹는 법 생각하면서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면서 자유 하시겠습니다.
찬송: 102장
본문: 출애굽기 12장 8절 - 1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유월절은 환란의 절기이고 재앙인데 먹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환란이고 재앙이고 구원의 절기인데 방편이라고 그럴까요, 환란에서 구원받고 재앙에서 구원받는 그 방편이 1차적으로는 들어가고 그 다음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든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존재의 자체, 존재의 환경, 거기 따라서 먹는 음식과 먹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든 생명 모든 것은 먹어야하는 겁니다. 안 먹어도 사는 생물은 없지요. 뭐든지 먹어야 삽니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지렁이가 사는 땅은 옥토가 됩니다. 그 땅은 식물이 굉장히 잘 자라는 뜻이 됩니다. 바퀴벌레는 또 음식같은 것을 먹습니다. 여우는 썩은 것만 골라먹는다고 합니다. 땅 속에 뿌리 박고 사는 식물은 뭐 먹습니까. 땅속에 있는 수분 먹고 박태리아 먹고 산소 먹고 햇빛 먹고, 입도 없는데. 나무는 뿌리로 먹습니다. 잎사귀로 받아먹습니다.
모기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습니다. 파리는 파리 먹는 게 있습니다. 생물은 존재마다 먹어야삽니다. 안 먹으면 못 삽니다. 그런데 존재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존재가 다른 겁니다. 땅 속에 있는 것을 나무가 먹어야할 것을 빨아먹습니다. 햇빛도 받아먹어야합니다. 안 먹으면 나무는 죽습니다. 물에 사는 물고기는 물도 먹고 생물 미생물도 먹어야합니다. 작은 건 작은 거 먹고 큰 고기는 큰 거 먹고, 초식 동물은 식물 먹고, 육식 동물은 육식을 하는 겁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도 벌레잡아먹습니다. 다 먹습니다. 짐승은 잎으로 먹고 네 발 달린 짐승은 엎드려서 입을 바닥에 박고 먹어야합니다. 새는 부릭로 쪼아먹습니다.
두루미하고 여우가 식사초대를 했다고 하지요. 두루미는 부리가 길거든요, 그래서 평평하면 먹기 어려운데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놓고 어디에다 음식을 차렸느냐, 쟁반 접시에 놓고 먹으라고 합니다. 못 먹지요. 그 다음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습니다. 호리병을 넣고 내놓습니다. 여우 주둥이가 들어갑니까. 둘 다 나쁜 짐승들이죠. 사람 사람이 그것도 이야기인데 교훈이 담긴합니다. 어쨌든 먹는 게 있는 겁니다. 나비는 나비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먹어야 삽니다. 이런 말을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는 고차원 같은데 상식입니다. 상식은 들어가보면 진리는 절대성을 가졌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겁니다. 상식은 자연이 풀리지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어렵습니까. 먹어야합니다. 쉽지요.
한 자 한 자 단어 단어 그걸 연결시켜서 보면은 이런 글자와 이런 단어와 문장을 연결시켜서 그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담아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실 때 가장 일반적인 평범한 그런 글자로 언어로 해놨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한국어입니다. 한국 사람이 영어, 불어 할려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도 쓸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1000년 2000년 전에 한글 고어 그거 잘 모릅니다. 한국 사람이 2-3000년 히브리어 헬라어를 읽으면 모르는 겁니다. 원어를 가지고 읽어서 성경 해석을 한다, 코미디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럴려면 평생 원어 공부해야하는 겁니다. 적어도 10년 넘게 해도 모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헬라어가 그 당시 그때 언어는 일반 사람들이 다 쓰는 평범한 언어입니다. 다 그렇게 되어있는 언어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학자들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보편성을 평범하다, 일반이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권위 세우려고 밥통 지키려고 원어를 캐니까 그거나 의사들이 영어 가지고 전문 용어 쓰는 그거나 판사가 전문 용어 쓰는 그거나 다를 게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읽으면 읽을수 있습니다. 누구나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을 모르느냐, 성경을 안 읽거든요. 안하거든요, 생각을 안하거든요. 학생들 공부하는 만큼 성경 공부합니까. 고등학교 학생들 수능 시험 공부하는 만큼 목사가 성경 연구할까요.
마음은 뭘 먹어야한다고 하는가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독서를 먹고 삽니다. 책을 읽는 겁니다. 읽을 독, 책 서. 책을 읽으면 지식이 생겨집니다. 그런데 이 맹점이면서.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관심이란 마음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안 보이고 안 들립니다. 아이들 게임, 만화책 같은 건 재밌고 해서 몰입을 합니다. 그런데 교과서라든지 교양서라든지 대충 씁니다. 머리 속에 안 남는 겁니다. 읽을 때 마음을 기울이고 이것이 과연 그런가,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읽어지고 새겨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누구신다, 예수라는 이름이 뜻이 뭡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예수님은 그런 분이구나, 하나님이구나. 사람 왜 사람 되어오셨을까.
하나님 백성의 죄를 위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의 근본과 사랑과 희생의 과정과 한도 없는데, 성경에서 차분하게 읽어나가는게 그게 어떻게 되지요. 하나 둘 예수님에 대해서 읽어나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지요. 알게 되는 것을 가르켜서 지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 지식이 생겨지는 것을 먹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양고기를 먹는 겁니다. 먹는 거, 성경에 기록된, 그런데 성경이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합니다. 마음을 다른 데 두고 못 앉아 있고 귀는 열어놨는데 모르고. 수십 명이 다 들리는데 그 사람은 안 들립니다. 왜 안들립니까. 마음이 다른 데 있으니까. 소리는 들었는데 그래서 질문하면 뭐라고요, 그런 겁니다.
몸과 피는 일차는, 성경 말씀을 읽던지 듣든지 그러는 겁니다. 아는 걸 가르켜서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는 이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따져보는 겁니다. 생각하는 겁니다. 파고 드는 겁니다. 연결시켜 보는 겁니다. 연구해보는 겁니다. 생각해 들어가면 단어 단어 문장 문장을 가지고 생각해 들어가면 단어 문장 속에는 의미가 들어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생각을 하면 이성에 따라서 감성이 나옵니다. 그게 세상 지식이고 인간 지식이면 단순히 인간의 감성 감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계속 생각하면, 주님 대속을 생각하면 그 말씀 속에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겁니다. 많은 작용이 일어납니다. 양고기, 몸과 피를 먹는 겁니다. 그리고 나면 그걸 가지고 살아갈 때 살아가는 겁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모르면 양고기는 못 먹습니다.
밤이란 환란이고 재난입니다. 연결시켜봅니다. 밤은 환란이다. 밤은 어둡다. 밤은 밤인데 밤은 전부 다 밤인데 환란인데 어떤 사람은 밤에 환하게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부 캄캄한 밤인데 등불을 켜는 사람은 밤이 상관없습니다. 예배당 밖은 춥고 캄캄한데 등불이 켜지니까 환합니다. 법을 모르면 법에 대해서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건강에 대해서 모르면 어두운 사람이 됩니다. 저는 길치입니다. 밤중 환란의 때고 어두운 때인데 빛이 없다는 거지요. 이거는 고차원의 빛이지요. 고차원의 빛은 옳은 것이 빛인데 구별하는 지식이 없다. 그러면 환란이 되는 겁니다. 유월절은 그 밤, 여호와의 밤에 일어났습니다. 밤이기 때문에 환란입니다. 애굽 사람 오늘 교독했지요, 감옥 죄수고 다 죽었습니다. 대환란 재앙입니다. 그런데 피를 바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걸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게 유월절 밤이라는 겁니다. 밤의 의미를 기억해야합니다.
밤이란 어돕고 빛이 없는 것, 옳은 것을 모른다는 뜻이고, 옳은 길을 갈 길이 없는 겁니다. 환란이 되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평생은 밤같은 유월절 기반이고 세 번째 장소, 현장, 현재라고 그랬습니다. 양의 피 안에 들어가서 양고기 먹었습니다. 그 밖에 나가면 양고기 먹고 안 먹고 상관없이 죽어버렸고, 안에 들어가서 양고기 먹었다. 현실에서 대속 공로를 입은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그게 먹는 장소였습니다. 함께 먹을 게 뭐냐, 무교병을 먹어라,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쓴나물을 말씀드렸습니다. 무교병은 화목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화목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가치가 되는 겁니다. 동질 동성이 점점 되어져가는 겁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결혼제도 내신 목적은 많아지게 하는 겁니다. 이게 이상한 거 같은데,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냈습니다. 몇 명을 보냈지요. 한 명, 요셉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뒤에 드러나서 칠십명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야곱에게 왜 보내셨을까요.
이스라엘 칠십명이 애굽에 가서 한 일이 자손의 번식입니다. 많아지게 하시려고 보내시는 겁니다. 칠십명을 보내서 아브라함 혼자 이삭 하나, 둘 주셨는데 하나는 탈선 야곱은 하나, 열 둘 주셨고 자손 번식으로 하는데 그들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자손 번식이 되어서 이백만명이 된겁니다. 바벨탑 쌓은 이후부터 다 갈라졌습니다. 부부가 둘인데 그 두 사람이 왜 사람들이 요즘은 인식이 바뀌어간다지요. 결혼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이것도 바람입니다. 그런데 한때 결혼 안하려 했느냐, 나 혼자 살기도 힘들고 귀찮다. 다르니까.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귀찮고 싫다는 거고 자기 중심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소위 아주 못된 말 나쁜 말, 결혼 안한다는 그거 자기 중심의 가장 나쁜 악입니다. 혼자 편하게 살겠다고. 왜 말씀하느냐 화목이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맞지요, 둘이 하나가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겁니다. 하나가 될려면 같아야합니다.
두 물질을 본드로 딱 붙일 때 설명서 보면 조건이 있습니다. 먼지 이물질을 깨끗이 닦아내십시오라고 합니다. 먼지가 없어야 딱 들어붙습니다. 그 사이에 이물질이 있으면 그 만큼 안 붙습니다. 화목이라는 것은 왜 불목이 생기냐, 이물질이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화목하려면 그 사이에 끼어들어가려는 요소를 다 빼버려야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였습니다. 그 사이에 귀신이 기어들어가서 하와 마음 속에 죄를 집어넣습니다. 자기 중심을 집어넣습니다. 아담 하와 사이도 그 사이가 벌어집니다. 아담의 생각과 하와의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사람 사람 사이가 왜 벌어지느냐, 벌어져서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들면 안되는데 크게 말하면 삼각 사이에 두 사람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 음녀가 들어가면 갈라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그게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무도 없는데, 하나가 안된다, 남편 생각과 아내 생각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게 있으니까. 이걸 맞춰나가야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고 같아져야 하나가 됩니다.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잘 지냈는데 무슨 말 하나 들어서 형제가 우애 좋게 지내던 친구 우정이 잘 지내고 있는데 금덩어리 하나 떨어져있습니다. 주웠습니다. 내 거야, 나눠야지. 들어가니까 벌어지는 겁니다. 감정이 들어가면 벌어지고 인정이 들어가면 벌어지고, 사람 사람 사이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사람 사람 사이를 분목을 만듭니다. 이걸 살펴서 사람을 집어넣을만한 것이냐, 하나님 다음에 사람입니다. 하나님 있고 진리 있고 사람입니다.
사람 잃고 취할 것은 하나님 진리 외에는 없습니다. 이걸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뭐가 들어가서 벌어졌나, 뭔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가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할 것이냐. 위신 체면 이럴 것이냐 생각해보면 답은 나올 겁니다. 양고기 무교병이란 그런 걸 말하는 겁니다. 무교병이란 사람과 불목하지 말아라, 많이 내놔야합니다.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려면 가랑이 찢어집니다. 천국 세상을 같이 가지는 법은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거 외에는 어지간한 거 다 내놔야합니다. 그러면 화목됩니다. 아니면 불목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네 번째 까지 생각해봤습니다. 쓴나물은 자기 십자가였습니다. 유월절 먹는 법 생각하면서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면서 자유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