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 수밤
김동민2025-12-24조회 31추천 2
2025년 12월 24일 수밤
찬송: 25장
본문: 요한복음 1장 4절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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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제목이 빛으로 오신 주님인데 예수님하면 좋겠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언제부터 계셨는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원 전 말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시초는 영원 전이라서 알 수가 없습니다. 영원 전 목적 정하신 게 태초고, 말씀 하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시점이 영원 전으로 사람되어오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셨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대략 2000년 즈음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들입니다. 불교의 시작은 삼천몇백년이다 불교가 먼저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말입니다. 실제 그 분이 계시는 것은 목적이 그때고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오신 주님은 어떤 분이셨던가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 하나님이셨고 그분이 무슨 일 하셨는가. 영계와 우주를 다 지으신 분이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주님이고 예쑤님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말씀만 듣고 오셨을 때 꼭 같은 사람으로 적고 영과 마음과 몸을 가진 참사람으로, 세 사람 참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 진짜 사람 그런 뜻입니다. 만드는 사람으로 오신 겁니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가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히 목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목수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시했고 사람이라서 예사로 취급했고 사람이므로 정죄하고 못박아 죽였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박혔고 죽으신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신 것이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며 참사람이고 이 두분이 한 분이 된다 신인양성일위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를 때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라는 걸 기억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실 때 어떻게 오셨는가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모든 활동이며 성장하며 온전해져가는 것이 생명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된 것이고 그 생명이 다시 보니까 사람들의 빛이다. 생명으로 오셨고 빛으로 오신 겁니다. 빛이라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빛이다. 사람들의 빛이다. 주님 안에 있었는데 사람들의 빛이다. 빛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지요. 캄캄한 암흑 중에 빛이 비추었다. 희망 소망이지요. 범죄함을 인해서 암흑에 죄약 속에 빠진 것인데 구원의 소망으로 오셨다, 사람들의 빛이다 구원의 소망이다 길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오셨다. 밝히러 오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빛으로 오셨으니까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빛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보면 하나님을 압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셨고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다는 말은 구원 소망을 보여주려 오셨다. 사람들에게 빛을 주신 겁니다. 빛을 주러 오셨고 살게하러 오신겁니다. 빛이신 주님이 빛으로 세상에 살았습니다. 주님이 사신 생애 전부 다가 빛으로 사신겁니다. 밝음으로 사셨다는 뜻이고 사람들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길이고 내가 곧 길이고 주님이 진리고 생명이다. 빛이니까 그런 겁니다. 빛이니까 생명입니다. 주님이 빛이니까. 빛은 길이고 빛은 진리고 빛은 생명입니다. 주님 사신 것도 빛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보이며 들어가며 생명으로 들어가는 생애가 되고 무엇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겁니다. 그분의 생애를 보면 옳은 것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겁니다. 하신 생애는 살아 생전 하실 생애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자면 그분의 사죄라고 하면 곤란하겠으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죄 없는 자로 사셨고 불의를 짊어지시면서 의로 사셨습니다. 주님이 사신 생애고 빛의 생애입니다. 그 생애로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화친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빛입니다.
이걸 주셨기 때문에 말씀이 진리고 성경이 진리인데 말씀이 빛이고 진리가 빛이고 영감이 빛인데 사죄 칭의 화친이 빛이다. 이걸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 대속의 공로로 힘 있고 근거하여, 이 세상에 살 때에 사죄 받은 사람으로 산다. 죄 안짓고 사는 생활은 곧 빛으로 사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빛의 반대는 어두움이고 어두움은 죄짓는 생활입니다. 암흑의 생활 숨는 생활입니다. 어둠은 가리는 것이고 피하는 것이고 도망치는 겁니다. 언행을 하고 마음에 그런 말을 하는 평안하지를 못합니다. 드러내지를 못합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가립니까 펴놓습니까. 부끄러운 행동은 어둠입니다. 도덕의 윤리의 자기 양심의 말씀의 걸리는 그런 행동, 주일날 휴대폰을 가지고 몰래 드라마를 봤습니다. 아빠 몰래 엄마 몰래, 떡 보니까 들켰습니다. 어떻게 하지요. 덮습니다. 어두움입니다. 그게 어두운 겁니다.
부모님 몰래 선생님 몰래 그런 것은 다 어두움이 되는 겁니다.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게 죄가 되는 것이고 어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을수록 밝은 사람이 됩니다. 펴놓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할 만큼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까지 그게 사람 앞에 만물 앞에 없다. 떳떳한 겁니다. 하나님 앞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책할 게 없다고 그랬습니다. 자기 언행 심사 생애를 밝게 사는 사람입니다. 떳떳하게 하는 사람, 숨길 게 많았으면 어둠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 가면 세상에서 그렇고 하나님 앞에 가면 말씀을 가지고 보자, 너의 모든 생애를 다 펴보자. 내가 너의 평생 생애를 다 적어놨는데 보여줄게, 낯이 뜨거워서 죄송스러워서, 주님 좀 덮어주옵소서 그럴겁니다.
마음 속에 저 아이들이 글을 모를건데 저 아이들이 저렇게 외울 동안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드렸을까. 전부 다 빛입니다. 전부 다 가르칠 그런 빛의 생활입니다. 제가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웠습니다. 저 어린 아이가 저렇게 잘 외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와 엄마가 들였을까. 저게 바로 빛이고 그걸 의라고 합니다. 그게 건설 구원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일거양득이라는 말처럼 그거 하는 동안은 죄는 안 짓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그런 거 하라고 오신 겁니다. 빛으로 사시고 그렇게 살아서 그런 사람이 되려고 오셨고 전부 우리 대신 다 짊어지시고 사신 겁니다. 빛이란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말의 각도고 방향이고 지난 번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 거기서는 가장 핵심은 지금 시대가 너무 좋은 시대입니다. 평안한 시대입니다. 다른 것 말고 이런 가운데에서 특별한 것이 없을지라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는 겁니다. 빛의 생활이라는 것은 어두운 것을 하지 말아야겠다. 어두움에서 벗어나야겠다, 무지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래서 밝은 빛으로 살려면 구원의 도리를 알아야합니다. 성경도 알아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아야 빛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두운 생활, 그리운 생활 두고라도 다른 사람에게 펼쳐보이는 생활 다 없애고 어디든지 보이지 않는 거까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이 하지 않는, 백 목사님의 젊은 생애는 그분은 그분의 방문은 항상 열려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로 다 공개된 상태인데, 교인들 이구동성으로 그분이 누워있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잠들면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앉아서 잠깐 주무시는 게 전부라, 일반인은 못 따라가는 거지요.
그 분은 거리낌이 없는 거지요, 모든 교인들 다 봐도 빛으로만 사니까, 그래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사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거다. 이게 구원이고 생명이고 가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으로 살아서 빛으로 되라, 성탄을 하면서 우리도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찬송: 25장
본문: 요한복음 1장 4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제목이 빛으로 오신 주님인데 예수님하면 좋겠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언제부터 계셨는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원 전 말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시초는 영원 전이라서 알 수가 없습니다. 영원 전 목적 정하신 게 태초고, 말씀 하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시점이 영원 전으로 사람되어오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셨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대략 2000년 즈음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들입니다. 불교의 시작은 삼천몇백년이다 불교가 먼저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말입니다. 실제 그 분이 계시는 것은 목적이 그때고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오신 주님은 어떤 분이셨던가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 하나님이셨고 그분이 무슨 일 하셨는가. 영계와 우주를 다 지으신 분이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주님이고 예쑤님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말씀만 듣고 오셨을 때 꼭 같은 사람으로 적고 영과 마음과 몸을 가진 참사람으로, 세 사람 참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 진짜 사람 그런 뜻입니다. 만드는 사람으로 오신 겁니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가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히 목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목수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시했고 사람이라서 예사로 취급했고 사람이므로 정죄하고 못박아 죽였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박혔고 죽으신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신 것이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며 참사람이고 이 두분이 한 분이 된다 신인양성일위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를 때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라는 걸 기억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실 때 어떻게 오셨는가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모든 활동이며 성장하며 온전해져가는 것이 생명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된 것이고 그 생명이 다시 보니까 사람들의 빛이다. 생명으로 오셨고 빛으로 오신 겁니다. 빛이라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빛이다. 사람들의 빛이다. 주님 안에 있었는데 사람들의 빛이다. 빛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지요. 캄캄한 암흑 중에 빛이 비추었다. 희망 소망이지요. 범죄함을 인해서 암흑에 죄약 속에 빠진 것인데 구원의 소망으로 오셨다, 사람들의 빛이다 구원의 소망이다 길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오셨다. 밝히러 오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빛으로 오셨으니까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빛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보면 하나님을 압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셨고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다는 말은 구원 소망을 보여주려 오셨다. 사람들에게 빛을 주신 겁니다. 빛을 주러 오셨고 살게하러 오신겁니다. 빛이신 주님이 빛으로 세상에 살았습니다. 주님이 사신 생애 전부 다가 빛으로 사신겁니다. 밝음으로 사셨다는 뜻이고 사람들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길이고 내가 곧 길이고 주님이 진리고 생명이다. 빛이니까 그런 겁니다. 빛이니까 생명입니다. 주님이 빛이니까. 빛은 길이고 빛은 진리고 빛은 생명입니다. 주님 사신 것도 빛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보이며 들어가며 생명으로 들어가는 생애가 되고 무엇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겁니다. 그분의 생애를 보면 옳은 것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겁니다. 하신 생애는 살아 생전 하실 생애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자면 그분의 사죄라고 하면 곤란하겠으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죄 없는 자로 사셨고 불의를 짊어지시면서 의로 사셨습니다. 주님이 사신 생애고 빛의 생애입니다. 그 생애로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화친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빛입니다.
이걸 주셨기 때문에 말씀이 진리고 성경이 진리인데 말씀이 빛이고 진리가 빛이고 영감이 빛인데 사죄 칭의 화친이 빛이다. 이걸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 대속의 공로로 힘 있고 근거하여, 이 세상에 살 때에 사죄 받은 사람으로 산다. 죄 안짓고 사는 생활은 곧 빛으로 사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빛의 반대는 어두움이고 어두움은 죄짓는 생활입니다. 암흑의 생활 숨는 생활입니다. 어둠은 가리는 것이고 피하는 것이고 도망치는 겁니다. 언행을 하고 마음에 그런 말을 하는 평안하지를 못합니다. 드러내지를 못합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가립니까 펴놓습니까. 부끄러운 행동은 어둠입니다. 도덕의 윤리의 자기 양심의 말씀의 걸리는 그런 행동, 주일날 휴대폰을 가지고 몰래 드라마를 봤습니다. 아빠 몰래 엄마 몰래, 떡 보니까 들켰습니다. 어떻게 하지요. 덮습니다. 어두움입니다. 그게 어두운 겁니다.
부모님 몰래 선생님 몰래 그런 것은 다 어두움이 되는 겁니다.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게 죄가 되는 것이고 어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을수록 밝은 사람이 됩니다. 펴놓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할 만큼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까지 그게 사람 앞에 만물 앞에 없다. 떳떳한 겁니다. 하나님 앞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책할 게 없다고 그랬습니다. 자기 언행 심사 생애를 밝게 사는 사람입니다. 떳떳하게 하는 사람, 숨길 게 많았으면 어둠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 가면 세상에서 그렇고 하나님 앞에 가면 말씀을 가지고 보자, 너의 모든 생애를 다 펴보자. 내가 너의 평생 생애를 다 적어놨는데 보여줄게, 낯이 뜨거워서 죄송스러워서, 주님 좀 덮어주옵소서 그럴겁니다.
마음 속에 저 아이들이 글을 모를건데 저 아이들이 저렇게 외울 동안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드렸을까. 전부 다 빛입니다. 전부 다 가르칠 그런 빛의 생활입니다. 제가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웠습니다. 저 어린 아이가 저렇게 잘 외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와 엄마가 들였을까. 저게 바로 빛이고 그걸 의라고 합니다. 그게 건설 구원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일거양득이라는 말처럼 그거 하는 동안은 죄는 안 짓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그런 거 하라고 오신 겁니다. 빛으로 사시고 그렇게 살아서 그런 사람이 되려고 오셨고 전부 우리 대신 다 짊어지시고 사신 겁니다. 빛이란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말의 각도고 방향이고 지난 번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 거기서는 가장 핵심은 지금 시대가 너무 좋은 시대입니다. 평안한 시대입니다. 다른 것 말고 이런 가운데에서 특별한 것이 없을지라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는 겁니다. 빛의 생활이라는 것은 어두운 것을 하지 말아야겠다. 어두움에서 벗어나야겠다, 무지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래서 밝은 빛으로 살려면 구원의 도리를 알아야합니다. 성경도 알아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아야 빛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두운 생활, 그리운 생활 두고라도 다른 사람에게 펼쳐보이는 생활 다 없애고 어디든지 보이지 않는 거까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이 하지 않는, 백 목사님의 젊은 생애는 그분은 그분의 방문은 항상 열려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로 다 공개된 상태인데, 교인들 이구동성으로 그분이 누워있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잠들면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앉아서 잠깐 주무시는 게 전부라, 일반인은 못 따라가는 거지요.
그 분은 거리낌이 없는 거지요, 모든 교인들 다 봐도 빛으로만 사니까, 그래서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사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거다. 이게 구원이고 생명이고 가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으로 살아서 빛으로 되라, 성탄을 하면서 우리도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