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년 12월 21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12-21조회 28추천 1
2025년 12월 21일 주일 오전
찬송: 27장, 26장
본문: 요한복음 1장 1절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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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 오신 것은 성경에 따로 기록되어있지 않지만은 계명으로 지키라는 말은 없어서 주일처럼 그렇게 지키지는 않으나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 오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셨습니다. 다만 시기는 기록해놓지 않아서 알 수 없어서 성경학자들이 이때즈음이라고 짐작한 것이 성탄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그렇게 정하고 내려온 것은 되도록 없애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말세가 되어서 자기가 주인되고 자기가 왕이 되는 그런 시대, 그래서 모든 걸 전부 자기를 위해서 악용하는 시대가 되어서 성탄절까지도 전부 장사꾼들은 악용하고 유흥을 하는데 악용하고 별별 목적 가지고 성탄절 악용하는 거 가지고 그런데 영향받고 피동되지 않으려고 따로 모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도움 되는 것은 해서 나쁘지 않기 때문에 준비나 하고 찬양도 암송도 있고 점심을 같이하고 올해는 새벽송 까지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성탄절에 우리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탄절에 예배 드린다고 잘못된 것도 아닌 겁니다. 신앙 유익되면 하는 것이고 하도 죄를 지으니까 우리는 그날 예배를 안 드려버렸는데 지금은 성탄절 자체가 없어집니다. 본모습은 없어지고 삐뚤어져서 이렇게 나가면 우리도 조만간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하고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 올 때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셨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했고 마가복음에는 건너뛰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오실 그 당시 모습은 기록되어있지 않은데 어떤 분인지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탄으로 오신 성탄이라는 말은 주님이 오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어떻게 오셨는가. 일반적으로 주님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모습이 말씀입니다. 도성인신. 말씀이 하나님의 몸을 입고 오신건데, 하나님이 사람으로 내려왔으니까 낮아지셨고 모든 거 다 가진 하나님이 버리고 오셨으니까 가난해지셨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어졌으니까 천해지셨습니다. 낮아졌고 가난해졌고 천해졌는데 그 주님은 낮아지신 분이고 가난해지신 분이고 천해지신 분인데 다른 각도로 말하면 오신 주님은 빛으로 오셨고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람을 빛의 사람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잠깐 본문으로 물어보시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가장 근본을 말합니다. 제일 처음 시작을 태초라고 합니다.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맨 처음 시작이 두 종류 있는데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맨 처음 그때가 태초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원 전인데 자존하신 그때 목적을 정한 게 교리적으로 생각해보고 그걸 태초라고 합니다. 태초에 그때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러면 태초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그 다음 태초는 물질 세상을 지으실 그때,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 즈음. 그때를 태초라고 말합니다. 요한 복음 1장은 영원 전 태초고, 창세기 태초는 6천년 전 태초입니다. 요한1장 태초는 영원 전 언제인지 모릅니다. 6천년 전 즈음입니다. 태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나라 이건 영원 전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이란 말을 높이면 말씀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 말을 아버지가 말하기를 않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높임말입니다. 말씀은 계시는 겁니까 있는 겁니까. 하는 겁니다. 인격자가 없으면 말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을 아니고 인격자 사람으로 말하면 격위를 가진 존재입니다. 성경에 말씀도 둘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이치입니다 말입니다. 말의 높은 말이고, 계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 찬양대, 하나님의 말씀, 이거는 인격자입니까 무인격입니까.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거는 말의 높임말입니다. 본문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라는 이름 가진 하나님입니다. 이해가 되겼지요. 두 가지 구별했습니다. 하나는 태초, 태초는 둘이 있습니다. 영원 전 태초와 6천년 전 태초, 맨 처음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고 여기 계신 말씀은 제 2의 성자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과 함께 계셨으니까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한 분 입니까 두 분입니까. 한 분인가요, 그런데 함께라는 말을 쓰나요. 둘 이상이지요. 함께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는데 그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계시고 따로 있는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하나님을 어거스틴이라는 성자가 정의하기를 한 분인데 세 분이다. 세 분인데 한분이다. 뭐라고 그러지요.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이름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습니다. 뭐라고 하지요.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그때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거 이해 잘못하면 교리적으로 틀립니다. 알고 찬송해야합니다. 말씀 하나님의 육신이 되었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14절은 말씀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이 말하자면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오신 겁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 전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이름은 만물을 지었습니다. 무엇으로 지었습니까.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무엇으로 지었습니까.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분이 다 지었습니다. 그 안에 그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는데 생명이란, 활동 하는 게 생명이고 작용하는 게 생명이고 인격 가진 게 생명이고 성장하는 게 생명이고 자라가는 거, 번성하는 게 생명이지요. 점점 자라가고 점점 많아지는 게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이 생명은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겁니다. 그런데 기록하신 것은 생명의 근원을 말씀하고 연결을 말씀합니다. 생명과 끊어지면 사망이 되는 겁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 생명의 근원이 여기 있고 하나님의 근원이 여기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뭡니까.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무엇인가요. 한글 아시죠, 사람들의 빛입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이 바로 빛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빛이다. 그런데 빛이 어둠의 빛입니다. 어둠의 빛이면 어떻게 됩니까. 캄캄한 밤 캄캄한 곳에 우리 전등은 요즘 굉장히 밝지요. 전등을 딱 켜니까 어둠은 물러가고 환하게 빛이 됩니다. 빛이 가면 어둠은 사라지고 빛으로 채워지는 게 자연 현상입니다. 정상입니다 그게 어두운 빛에게 삼켜지고 어두운 빛으로 챙겨지는 겁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빛을 비추었는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면 이 빛은 물리 빛이 아니라는 거지요. 빛으로 세상 오셨는데 이 세상이 어두운 세상이라서 빛은 알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글자 적혀져 있습니까. 그 밑에 내려가볼까요. 혹 이기지 못하더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못 이깁니다. 이기지 못하더라 그렇게 해석된 곳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면을 들여다보니까 생명가지고 오셨고 그 생명을 다시 보니까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빛을 가지신 빛의 주님이 어두운 세상에 왔는데 어둡다 보니까 빛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더라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빛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창조하셨지요. 언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을 때, 천지를 창조할 때 가장 중요한 걸 먼저 지었습니다.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지었는데 가장 중요한 걸 가장 먼저 지었습니다. 빛을 지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물리의 빛은 태양의 빛은 빛입니다. 해는 언제 만드시느냐, 네 번째 만듭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됩니다. 첫째날부터,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다니는 역사인데 어떻게, 의문이 생기지요.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네 번째 날에 지으실 하루를 첫째 날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날부터 하루를 만드는 겁니다. 빛이 뭐지요. 물리를 가지고 이치를 생각해봅니다. 앞에는 빛이 들어오는데 끄면 캄캄해버립니다. 캄캄하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안 보이면 모릅니다. 불을 켜면 모든 것이 보입니다. 보이면 알게 됩니다. 빛이란 그런 겁니다. 바로 보게 하고 바로보면 바로 아는 겁니다. 이게 빛입니다. 바로 보게하고 알게하는 게 빛이다. 그러면 이걸 지은 겁니다.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빛이라는 개념, 그런 것을 옳은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 바로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은 형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첫날 빛이라는 개념은 형체를 가지지 않은 겁니다. 이걸 사람들이 알도록 만드신 겁니다. 보고 알게하는 겁니다.
사람이 모르면 안 뵈는 겁니다. 모르면 안 보이지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어두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지식은 곧 빛이 되는 겁니다. 알아야 보이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갈랫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목적지로 가지. 모르면 안보이는 겁니다. 알면 보이는 겁니다. 그게 빛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더 깊은 것은 더 올라가면 바로 봄으로 알게 되는 원리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느냐, 그게 빛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빛을 가진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모르면 빛이 없는 어두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일 단계로 역사로 알립니다. 빛입니다. 역사를 가르켜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감화감동, 그게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걸 가르켜서 진리라고 합니다. 그 진리가 빛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빛이고 진리가 빛인데 하나님이 계시고 역사가 있고 진리가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면 사람에 해당이 없는 겁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를 잘 드립니다. 필기를 합니다. 어디 있는 겁니까. 빛에 있는 겁니다. 앉아있는데 빛에 가있고 게임에 가있고 오락에 가있습니다. 어둠에 가는 겁니다. 부모님 말씀을 순종을 합니다. 옳은 걸 시키는데 싫어요. 그건 어두움입니다. 언니가 되어서 보살피고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하는데 고집 피우고 동생을 미워하고 쥐어박으면 빛입니까 어둠입니까. 어둠인겁니다. 말하자면 빛이라는 것은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이 빛이고 영감이 빛이고 진리가 빛인데 무엇이 빛이고 어두움이냐,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를 모르니까 어두움이 되는 겁니다. 왜 모르느냐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해서.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성경 공부하고 심방하고 이런 거 보다 텔레비전 켜서 보고 이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예배 드리는 빛보다 어두운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예배드리는 빛보다도 가족들하고 구경나가고 맛있는 음식먹는 어두움이 좋아서 어두움이 가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함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빛이고 어두움이라는 겁니다. 바로 보게하고 알게하는 게 빛입니다. 바로 보게 해야 물리에 대한 바른 이치가 됩니다. 사람을 바로 알아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쇠를 녹이면 저는 쇠를 놓여봤습니다. 녹아서 물이됩니다. 그러면 굴러다닙니다. 참 철이 없었죠. 장갑을 낀 손으로 깨알만한 그런 굴러가서 너무 보기 좋아서 탁 받았지요. 어떻게 되어렸겠습니까. 손이 새까맣게 타버렸지요.
모르는 것은 어둠입니다. 아는 것은 빛입니다. 일을 바로 모르면 바로 못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고소를 했습니다. 법원에 가야합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삽니다. 빛을 사는 겁니다. 그 차원으로, 말씀을 모르면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면 하나님 역사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 글자로 영감이라고 합니다. 영감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러면 지옥입니다. 오늘은 행사가 있어서 간단하게, 이런 게 빛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에덴 동산에서 빛을 주셨고 하나님 계셨기 때문에 인간이 아담 때부터 하와 때부터 빛이 좋은 세상이 특이한 게 없어서 재미가 없다보니까 호기심이 생기고 일탈을 꿈꿔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졌으니까 생명과 끊어졌고 빛과 끊어져버린겁니다. 아담과 하와는 빛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저는 몰랐던 걸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감겼던 눈이 떠버리고 무저갱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과 끊어져서 어둠 속에서 종착점 지옥입니다. 다시 빛으로 구원하셔서 빛으 사람 되게 하시려고 오신 게 성탄입니다. 그래서 오신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빛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빛을 가지고 빛을 주시러 오셨는데 오신 주일은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겁니다. 그래서 내가 곧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이 빛으로 비춰주셨습니다. 그 분 말씀 전부가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깨닫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빛으로 오셨고 빛을 가지고 오셨고 우리로 하여금 오신 주님을 보고 근거해서 주님의 빛을 삼아서 빛으로 살아가지고 빛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그게 성탄입니다. 도성인신기오, 빛처럼 오셔서 빛으로 오셔서 빛의 사람 되게 하시려고.
빛이신 주님을 모시고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기억하십시다. 오후에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27장, 26장
본문: 요한복음 1장 1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성탄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 오신 것은 성경에 따로 기록되어있지 않지만은 계명으로 지키라는 말은 없어서 주일처럼 그렇게 지키지는 않으나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 오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셨습니다. 다만 시기는 기록해놓지 않아서 알 수 없어서 성경학자들이 이때즈음이라고 짐작한 것이 성탄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그렇게 정하고 내려온 것은 되도록 없애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말세가 되어서 자기가 주인되고 자기가 왕이 되는 그런 시대, 그래서 모든 걸 전부 자기를 위해서 악용하는 시대가 되어서 성탄절까지도 전부 장사꾼들은 악용하고 유흥을 하는데 악용하고 별별 목적 가지고 성탄절 악용하는 거 가지고 그런데 영향받고 피동되지 않으려고 따로 모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도움 되는 것은 해서 나쁘지 않기 때문에 준비나 하고 찬양도 암송도 있고 점심을 같이하고 올해는 새벽송 까지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성탄절에 우리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탄절에 예배 드린다고 잘못된 것도 아닌 겁니다. 신앙 유익되면 하는 것이고 하도 죄를 지으니까 우리는 그날 예배를 안 드려버렸는데 지금은 성탄절 자체가 없어집니다. 본모습은 없어지고 삐뚤어져서 이렇게 나가면 우리도 조만간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하고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 올 때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셨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했고 마가복음에는 건너뛰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오실 그 당시 모습은 기록되어있지 않은데 어떤 분인지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탄으로 오신 성탄이라는 말은 주님이 오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어떻게 오셨는가. 일반적으로 주님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모습이 말씀입니다. 도성인신. 말씀이 하나님의 몸을 입고 오신건데, 하나님이 사람으로 내려왔으니까 낮아지셨고 모든 거 다 가진 하나님이 버리고 오셨으니까 가난해지셨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어졌으니까 천해지셨습니다. 낮아졌고 가난해졌고 천해졌는데 그 주님은 낮아지신 분이고 가난해지신 분이고 천해지신 분인데 다른 각도로 말하면 오신 주님은 빛으로 오셨고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람을 빛의 사람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잠깐 본문으로 물어보시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가장 근본을 말합니다. 제일 처음 시작을 태초라고 합니다.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맨 처음 시작이 두 종류 있는데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맨 처음 그때가 태초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원 전인데 자존하신 그때 목적을 정한 게 교리적으로 생각해보고 그걸 태초라고 합니다. 태초에 그때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러면 태초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 그 다음 태초는 물질 세상을 지으실 그때,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 즈음. 그때를 태초라고 말합니다. 요한 복음 1장은 영원 전 태초고, 창세기 태초는 6천년 전 태초입니다. 요한1장 태초는 영원 전 언제인지 모릅니다. 6천년 전 즈음입니다. 태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나라 이건 영원 전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씀이란 말을 높이면 말씀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 말을 아버지가 말하기를 않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높임말입니다. 말씀은 계시는 겁니까 있는 겁니까. 하는 겁니다. 인격자가 없으면 말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을 아니고 인격자 사람으로 말하면 격위를 가진 존재입니다. 성경에 말씀도 둘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이치입니다 말입니다. 말의 높은 말이고, 계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 찬양대, 하나님의 말씀, 이거는 인격자입니까 무인격입니까.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거는 말의 높임말입니다. 본문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이라는 이름 가진 하나님입니다. 이해가 되겼지요. 두 가지 구별했습니다. 하나는 태초, 태초는 둘이 있습니다. 영원 전 태초와 6천년 전 태초, 맨 처음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고 여기 계신 말씀은 제 2의 성자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과 함께 계셨으니까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한 분 입니까 두 분입니까. 한 분인가요, 그런데 함께라는 말을 쓰나요. 둘 이상이지요. 함께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는데 그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계시고 따로 있는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하나님을 어거스틴이라는 성자가 정의하기를 한 분인데 세 분이다. 세 분인데 한분이다. 뭐라고 그러지요.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이름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습니다. 뭐라고 하지요.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그때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거 이해 잘못하면 교리적으로 틀립니다. 알고 찬송해야합니다. 말씀 하나님의 육신이 되었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14절은 말씀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이 말하자면 성자 하나님이 사람되어오신 겁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 전부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이름은 만물을 지었습니다. 무엇으로 지었습니까.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무엇으로 지었습니까.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분이 다 지었습니다. 그 안에 그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는데 생명이란, 활동 하는 게 생명이고 작용하는 게 생명이고 인격 가진 게 생명이고 성장하는 게 생명이고 자라가는 거, 번성하는 게 생명이지요. 점점 자라가고 점점 많아지는 게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이 생명은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겁니다. 그런데 기록하신 것은 생명의 근원을 말씀하고 연결을 말씀합니다. 생명과 끊어지면 사망이 되는 겁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 생명의 근원이 여기 있고 하나님의 근원이 여기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뭡니까.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무엇인가요. 한글 아시죠, 사람들의 빛입니다. 말씀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이 바로 빛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빛이다. 그런데 빛이 어둠의 빛입니다. 어둠의 빛이면 어떻게 됩니까. 캄캄한 밤 캄캄한 곳에 우리 전등은 요즘 굉장히 밝지요. 전등을 딱 켜니까 어둠은 물러가고 환하게 빛이 됩니다. 빛이 가면 어둠은 사라지고 빛으로 채워지는 게 자연 현상입니다. 정상입니다 그게 어두운 빛에게 삼켜지고 어두운 빛으로 챙겨지는 겁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빛을 비추었는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러면 이 빛은 물리 빛이 아니라는 거지요. 빛으로 세상 오셨는데 이 세상이 어두운 세상이라서 빛은 알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글자 적혀져 있습니까. 그 밑에 내려가볼까요. 혹 이기지 못하더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못 이깁니다. 이기지 못하더라 그렇게 해석된 곳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면을 들여다보니까 생명가지고 오셨고 그 생명을 다시 보니까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빛을 가지신 빛의 주님이 어두운 세상에 왔는데 어둡다 보니까 빛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더라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빛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창조하셨지요. 언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을 때, 천지를 창조할 때 가장 중요한 걸 먼저 지었습니다.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지었는데 가장 중요한 걸 가장 먼저 지었습니다. 빛을 지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물리의 빛은 태양의 빛은 빛입니다. 해는 언제 만드시느냐, 네 번째 만듭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됩니다. 첫째날부터,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다니는 역사인데 어떻게, 의문이 생기지요.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네 번째 날에 지으실 하루를 첫째 날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날부터 하루를 만드는 겁니다. 빛이 뭐지요. 물리를 가지고 이치를 생각해봅니다. 앞에는 빛이 들어오는데 끄면 캄캄해버립니다. 캄캄하면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안 보이면 모릅니다. 불을 켜면 모든 것이 보입니다. 보이면 알게 됩니다. 빛이란 그런 겁니다. 바로 보게 하고 바로보면 바로 아는 겁니다. 이게 빛입니다. 바로 보게하고 알게하는 게 빛이다. 그러면 이걸 지은 겁니다.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빛이라는 개념, 그런 것을 옳은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 바로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은 형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첫날 빛이라는 개념은 형체를 가지지 않은 겁니다. 이걸 사람들이 알도록 만드신 겁니다. 보고 알게하는 겁니다.
사람이 모르면 안 뵈는 겁니다. 모르면 안 보이지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어두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지식은 곧 빛이 되는 겁니다. 알아야 보이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갈랫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목적지로 가지. 모르면 안보이는 겁니다. 알면 보이는 겁니다. 그게 빛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더 깊은 것은 더 올라가면 바로 봄으로 알게 되는 원리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느냐, 그게 빛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빛을 가진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모르면 빛이 없는 어두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일 단계로 역사로 알립니다. 빛입니다. 역사를 가르켜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감화감동, 그게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걸 가르켜서 진리라고 합니다. 그 진리가 빛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빛이고 진리가 빛인데 하나님이 계시고 역사가 있고 진리가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면 사람에 해당이 없는 겁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를 잘 드립니다. 필기를 합니다. 어디 있는 겁니까. 빛에 있는 겁니다. 앉아있는데 빛에 가있고 게임에 가있고 오락에 가있습니다. 어둠에 가는 겁니다. 부모님 말씀을 순종을 합니다. 옳은 걸 시키는데 싫어요. 그건 어두움입니다. 언니가 되어서 보살피고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하는데 고집 피우고 동생을 미워하고 쥐어박으면 빛입니까 어둠입니까. 어둠인겁니다. 말하자면 빛이라는 것은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이 빛이고 영감이 빛이고 진리가 빛인데 무엇이 빛이고 어두움이냐,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를 모르니까 어두움이 되는 겁니다. 왜 모르느냐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해서.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성경 공부하고 심방하고 이런 거 보다 텔레비전 켜서 보고 이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예배 드리는 빛보다 어두운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예배드리는 빛보다도 가족들하고 구경나가고 맛있는 음식먹는 어두움이 좋아서 어두움이 가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함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빛이고 어두움이라는 겁니다. 바로 보게하고 알게하는 게 빛입니다. 바로 보게 해야 물리에 대한 바른 이치가 됩니다. 사람을 바로 알아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쇠를 녹이면 저는 쇠를 놓여봤습니다. 녹아서 물이됩니다. 그러면 굴러다닙니다. 참 철이 없었죠. 장갑을 낀 손으로 깨알만한 그런 굴러가서 너무 보기 좋아서 탁 받았지요. 어떻게 되어렸겠습니까. 손이 새까맣게 타버렸지요.
모르는 것은 어둠입니다. 아는 것은 빛입니다. 일을 바로 모르면 바로 못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고소를 했습니다. 법원에 가야합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삽니다. 빛을 사는 겁니다. 그 차원으로, 말씀을 모르면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면 하나님 역사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 글자로 영감이라고 합니다. 영감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러면 지옥입니다. 오늘은 행사가 있어서 간단하게, 이런 게 빛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에덴 동산에서 빛을 주셨고 하나님 계셨기 때문에 인간이 아담 때부터 하와 때부터 빛이 좋은 세상이 특이한 게 없어서 재미가 없다보니까 호기심이 생기고 일탈을 꿈꿔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졌으니까 생명과 끊어졌고 빛과 끊어져버린겁니다. 아담과 하와는 빛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저는 몰랐던 걸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감겼던 눈이 떠버리고 무저갱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과 끊어져서 어둠 속에서 종착점 지옥입니다. 다시 빛으로 구원하셔서 빛으 사람 되게 하시려고 오신 게 성탄입니다. 그래서 오신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빛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빛을 가지고 빛을 주시러 오셨는데 오신 주일은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겁니다. 그래서 내가 곧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이 빛으로 비춰주셨습니다. 그 분 말씀 전부가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깨닫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빛으로 오셨고 빛을 가지고 오셨고 우리로 하여금 오신 주님을 보고 근거해서 주님의 빛을 삼아서 빛으로 살아가지고 빛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그게 성탄입니다. 도성인신기오, 빛처럼 오셔서 빛으로 오셔서 빛의 사람 되게 하시려고.
빛이신 주님을 모시고 빛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기억하십시다. 오후에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