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금밤
김동민2025-12-19조회 15추천 2
2025년 12월 19일 금밤
찬송: 164장
본문: 시편 62편 5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우리 형편은 고요할 때고 신앙 자유일 때고 그런 때고 건강도 다 고만고만합니다. 참 행복하고 좋을 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일을 지키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고쳐나가는데에 해서 환란으로 바꾸지 않도록 이렇게 고요한 때가 계속 되면 마귀는 사람 속에 묘한 걸 넣어줍니다. 그런 걸 사람에게 넣어줘서 사람을 쓰러트리는 게 마귀의 수법입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현재 계신 자유의 신앙 얼마든지 신앙생활에 힘쓰는 취지의 말씀을 생각해보게 된 겁니다. 환란 때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렇게 나가는 우리 신앙이 되는 겁니다. 새벽에 봤을 때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같다는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적용 시켜 가르쳐준 비유입니다. 도로나는 쪽에 축대가 있는데 쌓아놓는데 보면 약하다고, 튼튼하게 하더만, 혹시라도 흔들려서 무너질까 싶어서, 담이라는 건 구별과 경계가 담입니다. 경계보다도 보호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게 흔들린다. 또 울타리는 흔들립니다.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되느냐, 이건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서 담이 무너졌고 울타리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굴욕이 일어났고 아버지 목에 칼을 겨누고 그런 상황 되니까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마귀는 그걸 못하게 하는 겁니다. 마치 개 두 마리가 싸우면 다른 개들 다 옆에 보고 있다가 다른 개들은 보고 있다가 누구를 뜯어뭅니까. 약한 놈. 사람은 약한 사람을 뜯어먹으면 개떼같은 사람이 됩니다. 동정하고 그래야지 나쁜 짓입니다 그거,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고통 당하고 환란 당하고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일어서면 좋겠다. 이걸 가지고 동적해야하지 그런 마음 가지면 이 사람에게 내리던 뇌가 자기한테 올지 모릅니다.
3절 4절이 그런 의미라서 말씀을 드렸고 대저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저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체로라는 말을 합니다. 백 개 중에서 7~80개, 이런 걸 대체로 대략적으로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계에서 대저라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고 완전이지 대저라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데 저로 좇아난다. 절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은 절대인데 우리들이 하나님께 소망가진 우리들이 흔들리기 때문에 절대적인 소망이 오지못하기 때문에 대저라고 하신 겁니다. 참고로 기억을 하시고, 6절 끝에 보니까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요동치 아니하니로다. 요동한다는 것은 흔들린다는 겁니다. 튼튼한 땅은 세상이라는 것은 안전하고 튼튼한게 땅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겁니다.
비행기 배 이런 것보다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안전하다고 하지요. 땅을 딛고 있는 안전한 건데 이걸 땅이 흔들릴 때가 있는데 지진이 올 때가 그렇습니다. 역사 속에 아무리 튼튼해도 뒤집어지고 갈라지고 난리가 나는 거지요. 여기 요동한다는 말은 흔들린다는 겁니다. 바람대로 흔들리고 흔들리는 겁니다. 요동한다, 요동치 아니한다. 요동치 아니한다는 것의 반대는 요동한다는 거고 요동한다는 것은 흔들린다. 두려워 떠는 겁니다. 마음이 떨리고 몸이 떨리고 머리털이 쭈볏 올라오고 그렇게 됩니다. 적용하면은 믿는 사람 하나님만 바라보면,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께 구원이고 하나님만 산성이시므로 이게 반대가 되어서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고 구원으로 삼지 않고 산성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요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주변 환경에 휘둘리고 피동된다는 겁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비에 흔들리고 추위에 흔들리고 요동하는 겁니다. 요동하는 겁니다. 신앙적으로 그러면 우리에게 적용하는 바람, 요동 시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고 환란입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사고가 났던지 몸에 병이 생기면 병 때문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약해지고 근심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염려가 됩니다. 꼬박고박 월급이 들어오던 직장에서 해고되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이게 되면 사람은 평안함이 없어지고 평안함이 없어지면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불안한 것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짜증이 나오고 그런 게 생겨집니다.
이런 게 흔들리는 겁니다. 평안하던 가정에 애를 먹이면 흔들립니다. 평안이 흔들리고 고요함이 흔들리게 되는 겁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죄악 세상이고 온갖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므로 위험천만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살아가지만은 환란 풍파 주실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환란 주시든 각오하고 있어야하는데, 욥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봤는데 한 순간에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서 양떼 다 뺏기고 소떼 빼앗이고 아들 딸 다 죽어버리고 병이 다 들어버리고 화산 폭발과 홍수와 오만 게 다 몰아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욥의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랬고 욥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별별 원인 때문에 바람이 불어서 요동되기 쉽습니다. 건강문제 사람 관계 문제 원치 않던 사고 문제 직장 문제 온갖 거 때문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거기에 영향받고 피동되어서 평안하지 못하고 흔들린답니다. 근심되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원망하고 낙심 낙망하고, 어둠에 속한 것이고 흔들리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온갖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들어도 비가 오고 화산이 폭발해도 요동치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살아가는 그 생활, 말하자면 주님을 지키는 게 요동치 않습니다. 말씀 순종하는 생활이 요동치 않습니다. 신앙 생활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생활도 요동치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는 겁니다. 살아가던 온갖 것이 있을 수 있는데 앞에 세 가지가 있지요.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았습니다. 반석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있으시니까 반석이 있고 구원이 있고 산성이 있어도.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반석, 기초라는 것이고 터라는 겁니다. 그 위에서 건설하고 그 위에서 뛰노는 겁니다. 반석이 기초가 튼튼해야 안심하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근본 배경 기초가 튼튼해, 모든 생활에 반석으로 삼았습니다. 자존자 완전자 절대자 사랑하시는 그 분을 반석으로 삼아서 믿으니까 의지하고 바라보니까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알고 계시니까 사랑하시니까 그분에게 달렸으니까.
그분이 주시는 것에 요동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분을 구원으로 삼습니다. 건져주시는 거지요. 구원자가 없으면 참 세상에 태어났는데 아이가 부모가 없으면 쉽지 않을 겁니다. 물에 빠졌는데 구원해줄 사람이 없으면 빠져 죽는 겁니다. 허덕거리고 쪼들려 있는데 자력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안되는 거지요. 병이 없는데 고칠 방법이 없다면 그냥 가는 거지요.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도 사람이 된 것은 무지합니다. 너무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돕는 누군가가 있어야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래서 세상에 요즘 과학이 발전 되니까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이 못된 말을 합니다. 종교의 유통기한, 못된 말을 하고 온갖 말 다하고 그러는데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주신 영, 하나님을 찾는 게 영입니다. 죽어있어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은 못 찾아도 인간은 인간 이상의 존재를 찾는 겁니다.
저것들이 뒤에 가서 종교를 가져봐야 헛된 헛말인지 알게 되겠죠. 종교라는 것은 이상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불신자들도 뒷골의 여우도 있다는 거고 그런 말은 재벌은 나를 정할 때 점을 치고 사람을 뽑을 때 점쟁이를 가지고 사람을 뽑는다. 다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런데 피조물은 자기 반석으로 삼고 구원자로 살아도 참 반석과 구원자가 안되는데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자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데요. 보여야지요.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십니까. 어떤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십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봤습니다. 내 구원자이십니다. 산성이라는 것은 어려울 때 자기를 지켜주는 게 산성입니다. 하나님이 내 반석이시고 그분이 내 구원자이시고 산성이신데 이걸 다윗이 말로만 들은 게 아니고 바라본 겁니다. 불치병 걸려서 유명한 박사 의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 갔는데 다른 병원도 그러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버글버글 합니다.
사람 여기에 다 모일만큼 다 모입니다. 유명한 의사가 있어서 의사 박사에게 갔습니다. 소문 듣고 왔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진찰해보고 진단하면서 안되겠으면 안된다고 하고 된다고 하면 뭘 써줍니까. 진찰해두고 뭘 씁니까. 처방전을 써줍니다. 수술을 해야해요. 배를 째야해요, 팔을 째야해요, 싫습니다. 끔찍합니다.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하십시오. 바라보는 게 아닌 겁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뭐가 전제되어있습니까. 순종이 전제되어있습니다. 순종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자기 최면이고 주관이 되는 겁니다. 안되는 겁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십자가가 따라가는 게 순종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많은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뭐하는 사람은 적습니까. 순종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했습니다. 찬송가 73장 첫 가사가 뭐던가요. 무슨 명령 내리던지 아멘하겠습니다. 그래야하는 겁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먹으라면 먹고 아무리 입에 맛고 좋은 것이라도 그거 먹으면 해롭습니다. 그러면 끊겠습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자꾸 보면 해롭습니다. 의사가 시키는대로 합니다. 살기 위해서 병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그분의 구원을 구원이라는 것은 성경에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은 두 종류입니다. 기본 구원과 건설구원입니다. 기본 구원은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7절은 영광이 따라갑니다. 그게 기본 건져놓는 거고 그 사람을 잘 인도해서 잘 가르쳐서 이끌어서 점점 가면 갈수록 복 받은 사람이 있을수록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리로 말하면 건설 구원.
그래서 나의 구원과 영광이 7절에 구원이 있다는 것은 나를 길러가시고 만들어가시는 분이 그분에게 있다. 갈수록 알게 되고 나쁜 거 고쳐서 좋아지게 되고 점점 복된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겁니다. 깨끗해지고 온전해지고 더 풍부해지고 풍성해지고 설교록에 가르켜서 거꿀림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용두사미, 용두사미 알지요. 처음에는 조그만했는데 점점 커지는 게 거꿀림입니다. 영광이 그분에게 있따. 마지막 결과가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섭리가 따라가는 겁니다. 아름다운 섭리, 아름다운 섭리라는 말은 원수까지도 패전자까지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게 아름다운 영광이고 이 세상에는 없는 겁니다. 그 아름다운 영광은 십자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의 반석이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하는 그게 전부 하나님이 반석이고 피난처가 되는 그분에게 있다고 하는 겁니다.
5절부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믿고 믿을라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합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이것이 그러한가 각자 자기가 하나님을 찾고 그분 앞에 역사를 순종함으로 해야 되는 거지 이게 아니면 될 수가 없는 것이고 이게 없으면 그것이 아직까지 마디없는 신앙이라서 어떻게 될 건지 모릅니다. 그분에게 소망이 있고 산성입니다. 영광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힘의 반석도 그분이고 피난처도 그분입니다. 신앙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64장
본문: 시편 62편 5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우리 형편은 고요할 때고 신앙 자유일 때고 그런 때고 건강도 다 고만고만합니다. 참 행복하고 좋을 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일을 지키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고쳐나가는데에 해서 환란으로 바꾸지 않도록 이렇게 고요한 때가 계속 되면 마귀는 사람 속에 묘한 걸 넣어줍니다. 그런 걸 사람에게 넣어줘서 사람을 쓰러트리는 게 마귀의 수법입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현재 계신 자유의 신앙 얼마든지 신앙생활에 힘쓰는 취지의 말씀을 생각해보게 된 겁니다. 환란 때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렇게 나가는 우리 신앙이 되는 겁니다. 새벽에 봤을 때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같다는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적용 시켜 가르쳐준 비유입니다. 도로나는 쪽에 축대가 있는데 쌓아놓는데 보면 약하다고, 튼튼하게 하더만, 혹시라도 흔들려서 무너질까 싶어서, 담이라는 건 구별과 경계가 담입니다. 경계보다도 보호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게 흔들린다. 또 울타리는 흔들립니다.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되느냐, 이건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서 담이 무너졌고 울타리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굴욕이 일어났고 아버지 목에 칼을 겨누고 그런 상황 되니까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마귀는 그걸 못하게 하는 겁니다. 마치 개 두 마리가 싸우면 다른 개들 다 옆에 보고 있다가 다른 개들은 보고 있다가 누구를 뜯어뭅니까. 약한 놈. 사람은 약한 사람을 뜯어먹으면 개떼같은 사람이 됩니다. 동정하고 그래야지 나쁜 짓입니다 그거,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고통 당하고 환란 당하고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일어서면 좋겠다. 이걸 가지고 동적해야하지 그런 마음 가지면 이 사람에게 내리던 뇌가 자기한테 올지 모릅니다.
3절 4절이 그런 의미라서 말씀을 드렸고 대저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저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체로라는 말을 합니다. 백 개 중에서 7~80개, 이런 걸 대체로 대략적으로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계에서 대저라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고 완전이지 대저라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데 저로 좇아난다. 절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은 절대인데 우리들이 하나님께 소망가진 우리들이 흔들리기 때문에 절대적인 소망이 오지못하기 때문에 대저라고 하신 겁니다. 참고로 기억을 하시고, 6절 끝에 보니까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요동치 아니하니로다. 요동한다는 것은 흔들린다는 겁니다. 튼튼한 땅은 세상이라는 것은 안전하고 튼튼한게 땅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겁니다.
비행기 배 이런 것보다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안전하다고 하지요. 땅을 딛고 있는 안전한 건데 이걸 땅이 흔들릴 때가 있는데 지진이 올 때가 그렇습니다. 역사 속에 아무리 튼튼해도 뒤집어지고 갈라지고 난리가 나는 거지요. 여기 요동한다는 말은 흔들린다는 겁니다. 바람대로 흔들리고 흔들리는 겁니다. 요동한다, 요동치 아니한다. 요동치 아니한다는 것의 반대는 요동한다는 거고 요동한다는 것은 흔들린다. 두려워 떠는 겁니다. 마음이 떨리고 몸이 떨리고 머리털이 쭈볏 올라오고 그렇게 됩니다. 적용하면은 믿는 사람 하나님만 바라보면,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께 구원이고 하나님만 산성이시므로 이게 반대가 되어서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고 구원으로 삼지 않고 산성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요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주변 환경에 휘둘리고 피동된다는 겁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비에 흔들리고 추위에 흔들리고 요동하는 겁니다. 요동하는 겁니다. 신앙적으로 그러면 우리에게 적용하는 바람, 요동 시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고 환란입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사고가 났던지 몸에 병이 생기면 병 때문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약해지고 근심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염려가 됩니다. 꼬박고박 월급이 들어오던 직장에서 해고되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이게 되면 사람은 평안함이 없어지고 평안함이 없어지면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불안한 것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짜증이 나오고 그런 게 생겨집니다.
이런 게 흔들리는 겁니다. 평안하던 가정에 애를 먹이면 흔들립니다. 평안이 흔들리고 고요함이 흔들리게 되는 겁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죄악 세상이고 온갖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므로 위험천만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살아가지만은 환란 풍파 주실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환란 주시든 각오하고 있어야하는데, 욥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봤는데 한 순간에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서 양떼 다 뺏기고 소떼 빼앗이고 아들 딸 다 죽어버리고 병이 다 들어버리고 화산 폭발과 홍수와 오만 게 다 몰아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욥의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랬고 욥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별별 원인 때문에 바람이 불어서 요동되기 쉽습니다. 건강문제 사람 관계 문제 원치 않던 사고 문제 직장 문제 온갖 거 때문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거기에 영향받고 피동되어서 평안하지 못하고 흔들린답니다. 근심되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원망하고 낙심 낙망하고, 어둠에 속한 것이고 흔들리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온갖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들어도 비가 오고 화산이 폭발해도 요동치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살아가는 그 생활, 말하자면 주님을 지키는 게 요동치 않습니다. 말씀 순종하는 생활이 요동치 않습니다. 신앙 생활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생활도 요동치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는 겁니다. 살아가던 온갖 것이 있을 수 있는데 앞에 세 가지가 있지요.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았습니다. 반석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있으시니까 반석이 있고 구원이 있고 산성이 있어도.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반석, 기초라는 것이고 터라는 겁니다. 그 위에서 건설하고 그 위에서 뛰노는 겁니다. 반석이 기초가 튼튼해야 안심하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근본 배경 기초가 튼튼해, 모든 생활에 반석으로 삼았습니다. 자존자 완전자 절대자 사랑하시는 그 분을 반석으로 삼아서 믿으니까 의지하고 바라보니까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알고 계시니까 사랑하시니까 그분에게 달렸으니까.
그분이 주시는 것에 요동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분을 구원으로 삼습니다. 건져주시는 거지요. 구원자가 없으면 참 세상에 태어났는데 아이가 부모가 없으면 쉽지 않을 겁니다. 물에 빠졌는데 구원해줄 사람이 없으면 빠져 죽는 겁니다. 허덕거리고 쪼들려 있는데 자력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안되는 거지요. 병이 없는데 고칠 방법이 없다면 그냥 가는 거지요.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도 사람이 된 것은 무지합니다. 너무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돕는 누군가가 있어야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래서 세상에 요즘 과학이 발전 되니까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이 못된 말을 합니다. 종교의 유통기한, 못된 말을 하고 온갖 말 다하고 그러는데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주신 영, 하나님을 찾는 게 영입니다. 죽어있어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은 못 찾아도 인간은 인간 이상의 존재를 찾는 겁니다.
저것들이 뒤에 가서 종교를 가져봐야 헛된 헛말인지 알게 되겠죠. 종교라는 것은 이상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불신자들도 뒷골의 여우도 있다는 거고 그런 말은 재벌은 나를 정할 때 점을 치고 사람을 뽑을 때 점쟁이를 가지고 사람을 뽑는다. 다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런데 피조물은 자기 반석으로 삼고 구원자로 살아도 참 반석과 구원자가 안되는데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자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데요. 보여야지요.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십니까. 어떤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십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봤습니다. 내 구원자이십니다. 산성이라는 것은 어려울 때 자기를 지켜주는 게 산성입니다. 하나님이 내 반석이시고 그분이 내 구원자이시고 산성이신데 이걸 다윗이 말로만 들은 게 아니고 바라본 겁니다. 불치병 걸려서 유명한 박사 의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 갔는데 다른 병원도 그러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버글버글 합니다.
사람 여기에 다 모일만큼 다 모입니다. 유명한 의사가 있어서 의사 박사에게 갔습니다. 소문 듣고 왔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진찰해보고 진단하면서 안되겠으면 안된다고 하고 된다고 하면 뭘 써줍니까. 진찰해두고 뭘 씁니까. 처방전을 써줍니다. 수술을 해야해요. 배를 째야해요, 팔을 째야해요, 싫습니다. 끔찍합니다.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하십시오. 바라보는 게 아닌 겁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뭐가 전제되어있습니까. 순종이 전제되어있습니다. 순종없는 믿음이기 때문에 자기 최면이고 주관이 되는 겁니다. 안되는 겁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십자가가 따라가는 게 순종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많은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뭐하는 사람은 적습니까. 순종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했습니다. 찬송가 73장 첫 가사가 뭐던가요. 무슨 명령 내리던지 아멘하겠습니다. 그래야하는 겁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먹으라면 먹고 아무리 입에 맛고 좋은 것이라도 그거 먹으면 해롭습니다. 그러면 끊겠습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자꾸 보면 해롭습니다. 의사가 시키는대로 합니다. 살기 위해서 병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그분의 구원을 구원이라는 것은 성경에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은 두 종류입니다. 기본 구원과 건설구원입니다. 기본 구원은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7절은 영광이 따라갑니다. 그게 기본 건져놓는 거고 그 사람을 잘 인도해서 잘 가르쳐서 이끌어서 점점 가면 갈수록 복 받은 사람이 있을수록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리로 말하면 건설 구원.
그래서 나의 구원과 영광이 7절에 구원이 있다는 것은 나를 길러가시고 만들어가시는 분이 그분에게 있다. 갈수록 알게 되고 나쁜 거 고쳐서 좋아지게 되고 점점 복된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 겁니다. 깨끗해지고 온전해지고 더 풍부해지고 풍성해지고 설교록에 가르켜서 거꿀림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용두사미, 용두사미 알지요. 처음에는 조그만했는데 점점 커지는 게 거꿀림입니다. 영광이 그분에게 있따. 마지막 결과가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섭리가 따라가는 겁니다. 아름다운 섭리, 아름다운 섭리라는 말은 원수까지도 패전자까지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게 아름다운 영광이고 이 세상에는 없는 겁니다. 그 아름다운 영광은 십자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의 반석이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하는 그게 전부 하나님이 반석이고 피난처가 되는 그분에게 있다고 하는 겁니다.
5절부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믿고 믿을라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합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이것이 그러한가 각자 자기가 하나님을 찾고 그분 앞에 역사를 순종함으로 해야 되는 거지 이게 아니면 될 수가 없는 것이고 이게 없으면 그것이 아직까지 마디없는 신앙이라서 어떻게 될 건지 모릅니다. 그분에게 소망이 있고 산성입니다. 영광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힘의 반석도 그분이고 피난처도 그분입니다. 신앙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