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11-09조회 23추천 1
2025년 11월 9일 주일 오전
찬송:122장, 99장
본문: 시편 128편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입니다. 경외란 무슨 뜻이냐, 두 가지로 말씀드렸죠. 높이는 걸 경외라고 합니다. 금을 금으로 대하지 않고 돌처럼 취급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이가 귀하다고 너므 그러면 집안이 망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대로 내가 아는대로 성경을 연구해서 그러면 행한대로 된다는 뜻이 됩니다. 모르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우리들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존재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존재의 꼭대기 들어가면 하나님이 나오게 됩니다. 그분이 완전자고 그분이 절대자입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까지 하는 거 보면 심판주가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마치 아버지가 두렵지만은 인자하니까 두려워하면서 높이는 겁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경외라고 합니다. 경외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영향받고 피동되고 넘어서 그분의 말씀 복종을 하게 되는 게 경외입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라고 합니다. 왜 말씀을 도라고 했습니까. 도가 무슨 도 자입니까. 길 도 자입니다. 걸어가는 길이라는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생애를 도라고 합니다. 그 걸어가는 인생에 나그네의 길을 구원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그 도에 행하지 않고 열차가 철로를 달리다가 철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탈선, 선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사람이 인도에서 벗어나서 차도로 가면 탈선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못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습니다. 탈선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 도에 행하는자, 그게 이름입니다. 탈선입니다. 탈선하는 걸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자동차가 도로에서 벗어나도 살선입니다.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도 탈선입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의 길에서 넘어가면 탈선입니다. 한 글자로 죄라고 합니다.
그거 그대로 행하는 사람, 믿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 길이 있고 직장인은 직장인의 길이 있습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의 길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벗어나면 죄값은 사망입니다. 이 말씀으로 가면 행하는자, 성경 믿는 사람 앉아계시고 성경을 믿는 사람이면 중생된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늙은이든 아이든 높은 사람이든 아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서민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노래를 부르지만은 원래는 아람 사람이고 택해서 그러헥 되었고 믿음의 조상으로 잘 사니까, 이름을 다른 말로 하면 이력이라고 합니다. 흔적을 말합니다. 롯, 아브라함 따라 성공했다가 물질 따라 자기 중심으로 실패한 사람. 다윗 만왕의 왕, 이름 속에 이력이 있습니다. 이름이란 짓기는 부모님이 지어줍니다.
이름은 부모님이 최고의 뜻을 담아서 짓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면 그 이름이 빛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더럽게하고 그러면 그 이름이 더러워지는 겁니다. 아름답게 살면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많고 잘 사면 그렇게 되고 잘못살면 안 좋은 이름이 되는 겁니다. 못된 거 교만한 거 이렇게 되는 겁니다. 누가만듭니까,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아서 70 80이 넘어가면 그렇게 됩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공회 집사님인데, 서울대 법학 박사였습니다. 2차 시험 준비한다고 공부하는데 앉아서 있는데 안 일어나서 보니까 심장이 멎었더랍니다. 충격 받는 거지요. 70 80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도를 믿는가. 세 살 짜리 아이도, 종도 신분에 귀천이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 전부 다가 포함됩니다. 그로 인하는 자 나다. 복이 있도다. 복은 이 세상 복이 있습니다. 세상 복은 복의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눈도 밝고 어떤 복을 다 해도 유통기간이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변합니다. 하늘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 복은 제한이 없어서 영원토록 뻗어나갑니다.
세상 복은 그래서 안되지만 배아픈 사람이 생기는데 이 복은 그런 거 없습니다. 어떤 복이 있느냐, 내가 이것도 오후 예배에 생각해보겠습니다. 내 손이 수고한대로, 행하는 걸 말합니다. 내 손 대로 내가 뭐든지 행한대로 노력한대로 힘써서 뭔가를 한 대로 땀 흘린대로 내가 수고한대로 허비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게 자연계시입니다. 자연 계시를 지키고 순리로 살아갑니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데 거기 다가 하나님의 복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거는 하늘의 복이 더하지는 건 뭘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노력한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복이 되는 겁니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겁니다. 내가 행한 그대로 내가 되어진다.
행동하는대로 사람이 됩니다. 살아가는대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도에 행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는 곳에 그런 사람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영종이란 왕의 종자라는 뜻입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왕이란 아무리 못나도 왕은 왕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그걸 거지사이에 키워나가면 거지가 됩니다. 거지 아들을 궁궐에 가다가 왕의 죄목이 됩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행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요. 2절 끝에 내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너 자신이 복이 된다.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 자체가 복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너가 복된 사람이 되고 형통하다. 돈을 따라다니면 도망을 쳐버립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따라다니면 도망을 쳐버립니다. 돈이 좋아서 따라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모으고 돈이 따라닐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저절로 모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돈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어놓고 안 모입니다.
아름답게 꽃이 피었습니다. 뭐가 쫓아오지요. 나비는 저절로 모이는 겁니다. 꽃 속에 달콤한 꿀이 있습니다. 벌이 모이는 겁니다. 똥이 있습니다 똥파리가 모이는 겁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돈이 모이고 도망치는 사람이 되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사람이 도망칩니다. 그런데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모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원리는 같습니다. 교인이 모일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저절로 모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멀어지면 아무리 전도가 잘해져도 안됩니다. 고신에서 백 목사님 쫓아냈습니다. 가장 서부교회가 큰 교회다. 왜 서부교회는 되는데 여러분 목회는 왜 안되냐, 사람이 먼저 되어라 이 말이지요.
공부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내가 복되고 형통하다 여호와를 복되며 그러면 그 사람 자체가 복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체가 복입니다. 아브라함 자체가 복입니다. 늘 축복하면 복이 오고 다윗도 그렇습니다. 내 안에는, 내 집, 내실. 내실이라는 말은 안방이라는 말인데 남편은 남편이고 그러기 때문에 아내가 시대가 변하니까 그럴 수 있지만 밖으로 활동하는 건 그렇게 좋은 게 아닙니다. 안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가르켜서 내실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내당, 그 안에 있는 아내는 포도나무 같다. 그런데 그 아내가 어떤 사람이냐, 다른 사람인데 나와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나와 하나가 된 사람이 아내입니다. 다른 사람인데 내가 된 사람이 아내입니다.
1차 외부적으로 자기 아내를 말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해석하면은 남인데 두 인격체인데 나와 하나되고 아내입니다. 여기 내 집 내실인데 내 안에 있는 내 속에 그런 건데 내가 외부를 접해서 보고 듣고 접촉함으로 만들어진 자기 속에 자기, 그것이다. 다른 사람인데 내가 된 것처럼 아내가 된 것처럼 만들어진 요소, 마음의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을 내실에 있는 내 아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것은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열 두 아들은 축복하면서 무성한 가지가 축복을 해줍니다.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내 안에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아서 많은 아이 같았고 너 속에 있는 것을 접하므로 너의 모든 요소들이 결실한 포도나무같다.
그게 뭘까 포도지요 포도주의 원료입니다. 그 복중에 하나가 그렇게 살아나가면 그 속에 내 속에 만들어지는 전부 다가 전부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에 둘린 자식입니다. 밥상 상 자입니다. 부부 둘만 먹지 않고 혼자 먹지 않고 큰 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 전부 다 둘러 앉아서 먹습니다. 어린 감나무와 같다. 그런데 자식이란 열매입니다. 이거는 그런 열매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말하면 상에 둘린 자식일 수 있고 힘써서 말하면 충성한 집사님들 상에 둘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상에 둘린 자식입니다. 어떻게 살았냐에 따라 다릅니다. 올리브유라고 합니다. 무성하게 하는 것이 감나무입니다.
그렇게 모든 인생이 맺어지도록 그런 결실을 소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 말입니다. 이후 4절은 오후에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인데 어떤 복을 받는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122장, 99장
본문: 시편 128편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입니다. 경외란 무슨 뜻이냐, 두 가지로 말씀드렸죠. 높이는 걸 경외라고 합니다. 금을 금으로 대하지 않고 돌처럼 취급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이가 귀하다고 너므 그러면 집안이 망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대로 내가 아는대로 성경을 연구해서 그러면 행한대로 된다는 뜻이 됩니다. 모르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우리들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존재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존재의 꼭대기 들어가면 하나님이 나오게 됩니다. 그분이 완전자고 그분이 절대자입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까지 하는 거 보면 심판주가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마치 아버지가 두렵지만은 인자하니까 두려워하면서 높이는 겁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경외라고 합니다. 경외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영향받고 피동되고 넘어서 그분의 말씀 복종을 하게 되는 게 경외입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라고 합니다. 왜 말씀을 도라고 했습니까. 도가 무슨 도 자입니까. 길 도 자입니다. 걸어가는 길이라는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생애를 도라고 합니다. 그 걸어가는 인생에 나그네의 길을 구원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그 도에 행하지 않고 열차가 철로를 달리다가 철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탈선, 선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사람이 인도에서 벗어나서 차도로 가면 탈선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못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습니다. 탈선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 도에 행하는자, 그게 이름입니다. 탈선입니다. 탈선하는 걸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자동차가 도로에서 벗어나도 살선입니다.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도 탈선입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의 길에서 넘어가면 탈선입니다. 한 글자로 죄라고 합니다.
그거 그대로 행하는 사람, 믿는 사람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 길이 있고 직장인은 직장인의 길이 있습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의 길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벗어나면 죄값은 사망입니다. 이 말씀으로 가면 행하는자, 성경 믿는 사람 앉아계시고 성경을 믿는 사람이면 중생된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늙은이든 아이든 높은 사람이든 아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서민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노래를 부르지만은 원래는 아람 사람이고 택해서 그러헥 되었고 믿음의 조상으로 잘 사니까, 이름을 다른 말로 하면 이력이라고 합니다. 흔적을 말합니다. 롯, 아브라함 따라 성공했다가 물질 따라 자기 중심으로 실패한 사람. 다윗 만왕의 왕, 이름 속에 이력이 있습니다. 이름이란 짓기는 부모님이 지어줍니다.
이름은 부모님이 최고의 뜻을 담아서 짓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면 그 이름이 빛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더럽게하고 그러면 그 이름이 더러워지는 겁니다. 아름답게 살면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많고 잘 사면 그렇게 되고 잘못살면 안 좋은 이름이 되는 겁니다. 못된 거 교만한 거 이렇게 되는 겁니다. 누가만듭니까,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아서 70 80이 넘어가면 그렇게 됩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공회 집사님인데, 서울대 법학 박사였습니다. 2차 시험 준비한다고 공부하는데 앉아서 있는데 안 일어나서 보니까 심장이 멎었더랍니다. 충격 받는 거지요. 70 80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도를 믿는가. 세 살 짜리 아이도, 종도 신분에 귀천이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 전부 다가 포함됩니다. 그로 인하는 자 나다. 복이 있도다. 복은 이 세상 복이 있습니다. 세상 복은 복의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눈도 밝고 어떤 복을 다 해도 유통기간이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변합니다. 하늘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이 복은 제한이 없어서 영원토록 뻗어나갑니다.
세상 복은 그래서 안되지만 배아픈 사람이 생기는데 이 복은 그런 거 없습니다. 어떤 복이 있느냐, 내가 이것도 오후 예배에 생각해보겠습니다. 내 손이 수고한대로, 행하는 걸 말합니다. 내 손 대로 내가 뭐든지 행한대로 노력한대로 힘써서 뭔가를 한 대로 땀 흘린대로 내가 수고한대로 허비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게 자연계시입니다. 자연 계시를 지키고 순리로 살아갑니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데 거기 다가 하나님의 복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거는 하늘의 복이 더하지는 건 뭘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노력한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복이 되는 겁니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겁니다. 내가 행한 그대로 내가 되어진다.
행동하는대로 사람이 됩니다. 살아가는대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도에 행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는 곳에 그런 사람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영종이란 왕의 종자라는 뜻입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왕이란 아무리 못나도 왕은 왕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그걸 거지사이에 키워나가면 거지가 됩니다. 거지 아들을 궁궐에 가다가 왕의 죄목이 됩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행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요. 2절 끝에 내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너 자신이 복이 된다.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 자체가 복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너가 복된 사람이 되고 형통하다. 돈을 따라다니면 도망을 쳐버립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따라다니면 도망을 쳐버립니다. 돈이 좋아서 따라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모으고 돈이 따라닐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저절로 모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돈을 쫓아내는 사람이 되어놓고 안 모입니다.
아름답게 꽃이 피었습니다. 뭐가 쫓아오지요. 나비는 저절로 모이는 겁니다. 꽃 속에 달콤한 꿀이 있습니다. 벌이 모이는 겁니다. 똥이 있습니다 똥파리가 모이는 겁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돈이 모이고 도망치는 사람이 되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사람이 도망칩니다. 그런데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모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원리는 같습니다. 교인이 모일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저절로 모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멀어지면 아무리 전도가 잘해져도 안됩니다. 고신에서 백 목사님 쫓아냈습니다. 가장 서부교회가 큰 교회다. 왜 서부교회는 되는데 여러분 목회는 왜 안되냐, 사람이 먼저 되어라 이 말이지요.
공부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내가 복되고 형통하다 여호와를 복되며 그러면 그 사람 자체가 복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체가 복입니다. 아브라함 자체가 복입니다. 늘 축복하면 복이 오고 다윗도 그렇습니다. 내 안에는, 내 집, 내실. 내실이라는 말은 안방이라는 말인데 남편은 남편이고 그러기 때문에 아내가 시대가 변하니까 그럴 수 있지만 밖으로 활동하는 건 그렇게 좋은 게 아닙니다. 안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가르켜서 내실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내당, 그 안에 있는 아내는 포도나무 같다. 그런데 그 아내가 어떤 사람이냐, 다른 사람인데 나와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나와 하나가 된 사람이 아내입니다. 다른 사람인데 내가 된 사람이 아내입니다.
1차 외부적으로 자기 아내를 말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해석하면은 남인데 두 인격체인데 나와 하나되고 아내입니다. 여기 내 집 내실인데 내 안에 있는 내 속에 그런 건데 내가 외부를 접해서 보고 듣고 접촉함으로 만들어진 자기 속에 자기, 그것이다. 다른 사람인데 내가 된 것처럼 아내가 된 것처럼 만들어진 요소, 마음의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을 내실에 있는 내 아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것은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열 두 아들은 축복하면서 무성한 가지가 축복을 해줍니다.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내 안에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아서 많은 아이 같았고 너 속에 있는 것을 접하므로 너의 모든 요소들이 결실한 포도나무같다.
그게 뭘까 포도지요 포도주의 원료입니다. 그 복중에 하나가 그렇게 살아나가면 그 속에 내 속에 만들어지는 전부 다가 전부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에 둘린 자식입니다. 밥상 상 자입니다. 부부 둘만 먹지 않고 혼자 먹지 않고 큰 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 전부 다 둘러 앉아서 먹습니다. 어린 감나무와 같다. 그런데 자식이란 열매입니다. 이거는 그런 열매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말하면 상에 둘린 자식일 수 있고 힘써서 말하면 충성한 집사님들 상에 둘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상에 둘린 자식입니다. 어떻게 살았냐에 따라 다릅니다. 올리브유라고 합니다. 무성하게 하는 것이 감나무입니다.
그렇게 모든 인생이 맺어지도록 그런 결실을 소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 말입니다. 이후 4절은 오후에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인데 어떤 복을 받는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