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0-26조회 18추천 2
2025년 10월 26일 주일 오후
찬송; 90장, 91장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4절
전투의 목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을 마음과 함께 갑니다. 영과 끊어진 마음은 옛사람이 됩니다. 마음이 영에게 붙들려야하고 마음이 영을 따라서 움직여야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우리 신앙의 생활의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전하니까 말씀 자체는 하나님 말씀이니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말씀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니까 듣는 사람들이 듣고 자기를 복종시키면 복이 되는데 확성기 나팔 마이크만 되지 자기는 버림받는 것이 됩니다. 역사에 선지자들이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고, 오늘의 목사입니다. 목사들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저 같은 사람들도 그런 부분이 많지 않을까. 주님의 사랑하는 신부는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몸이 된 것이 목적입니다. 노력해야합니다.
절제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절제, 믿음의 복이 있고 지식이 있고 절제의 인내가 있고 행동이 있고 여덟 가지를 다 구비하고 서로 좋아서 잘 되어야 되게 되는데 절제를 생각하는 겁니다. 각각 자기의 부분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는 겁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팔다리 다 중요합니다. 손가락 끝에 감염이 되거나 세균이 들어가면 온 몸이 아픕니다. 다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현재 우리교회 필요한 것중 하나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절제 될 수 있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말씀이니까 돌아보고 고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생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운동장에서 비유를 하신겁니다. 비유란 실상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이야기한 것이 비유입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할려면 공간이 필요하겠지요. 마라톤 같은 것은 운동이라고 합니다. 운동장에 선을 다 그어놓고 달려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100미터 세계 신기록이 몇 초인가요 9초입니까. 그 사람 이름이 볼트라는 사람이 있었죠.
100미터를 빨리 달리는 건데 신앙생활을 운동장, 여러 사람이 자기 길을 그렇게 빨라 달려가는 겁니다. 먼저 도착하면 1등이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겁니다. 트랙이라는 그게 자기 길입니다. 거기서 서서 빨리 달려가는 게 신앙 생활인데 달리기로 비유하니까 특징을 보니까 다섯 가지, 쉬지 않고 달려가야한다. 100미터 달리기 해서 멈칫하게 되는 겁니다. 몇 초를 하니까, 토끼와 거북이 경주는 마라톤이니까 토끼가 한숨 자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북이가 이기더라고. 쉬었다가 하면 끝나는 겁니다. 달리기가 쉬지 않고 가야하듯이 이 세상에 휴식이 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잠깐 하다가 휴식은 취하게 되어있는데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마귀는 거기서도 따라다닙니다. 영물입니다. 신령의 존재입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감옥에도 마귀는 기어들어옵니다.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옵니다. 몸은 휴식인데 끝임없는 마귀는 오는 겁니다. 달리기가 쉬지 않고 가야하듯이 믿는 사람은 쉬지 않고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신앙은 쉬지 않는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작은 거 하나도 정신 전력으로 다해야 신앙생활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켜도 예배를 드려도 심방 전도를 해도 연보를 해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혼신을 다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 마지막 종착역까지 가야하는 것이고, 한 사람에게는 진 사람입니다. 운동장에서 다른 일을 한 사람들이 달려갈지라도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 이겨야 이겨낸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들고가면 안되는 겁니다. 달려야하는 것은 전부 다 두고 가는 겁니다. 100미터 달리기 필요한 게 있습니까. 모르겠으나 아주 가벼운 그런 것도 있고 하게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은 부모도 없는 것이고 일가 친척도 가고 처자식 좋게하고 성경에 처자식 좋게 하려다가 실패한 사람이 롯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이 아니고 염세주의가 아니고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면 반대되는 것을 다 버릴 수 밖에 없고 예외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정을 등한시 하는 사람은 과연 그렇겠다 싶은데 그건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게 동감을 합니다. 가정을 챙기는 사람인데 어렵겠다 어려운겁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은 첫째 주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이지요. 성경 읽는 것, 기도하는 것도 신앙 생활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신앙생활하는 겁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 말씀 기도 찬송 드리는 것은 껍데기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쉬지 않고 가는 것이고 우리는 새벽기도를 몇 년 동안 다녀야합니까.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평생 기다려야합니다. 주일은 언제까지 지켜야합니까. 새벽기도는 일 년에 며칠 나가며 몇 살되면 졸업할 수 있습니까. 기도는 성경은 그런 생활들이 마지 못해서 억지로 못하는 것이지요. 주일 지키는 게 있고 그 한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귀하다. 기도시간에 즐겁습니까. 연보하는 사람들 연보가 즐거워야합니다. 십일조는 즐거워야합니다.
예배 생활이 즐거워야하는데 즐겁습니까. 여기는 설교자 책임이 많지요. 예배 시간이 즐거우면 즐거워야하는데 또 듣는 사람 지치고 마는 겁니다. 다섯 가지 기본적인 생활에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생활에 하나님 뜻을 찾고 그 전체로 말하면 이게 전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에서 경제 생활에서 인간 관계에서 전부 다 연관이 되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어느 하나에도 붙들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가는 길입니다. 25절 보니까 이기겠다 달리기에 나선 사람은 이기기 위해서 나온 겁니다. 물론 연습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만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것이고 직장가는 건 돈 벌러 가는 곳입니다. 이기기 위해서, 그런데 다 이기기 위해 다투는데 이기는 생활을 합니다. 선한 싸움이고 전투입니다. 이기는 생활에 지는 생활, 그래서 달리 상대가 있듯이 승패가 있듯이 신앙 생활은 상태가 있듯이 이기려고 하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건강한 사람이 누구지요. 주님은 의원입니다. 스스로 건강한 사람, 주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고 불택자, 불신자들이지요. 패배한 것들은 지옥에 보내고 성공한 사람들만 천국가는 겁니다. 전부 다 긁어 지옥으로 가는 것인데 진 사람, 성공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이니까 주님 죄인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실패 요소는 다 지옥 보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시험이 없으면 0점을 맞을거야 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상 중에서 없겠지요. 올라가는 사람은 있겠지만 올라갈려고 보다가 나아지려고 이기려고 한 게 세상 모든 노력들입니다. 외국은 실패를 너그럽게 봐준다. 실패 되어도 계속 도전을 하니까 그렇지 10번 100번 실패하면 괜찮겠습니까. 패전을 위해서 승리를 만들어가는 그게 실수 용납하는 것이지 회사 다 말아먹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 실수하는 것은 젊을 때 실패함으로 실패를 줄여가는 이거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 그게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실패 안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몰라서 빈약해서 그러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전진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지요. 발전적인 죄인은 안하시는 겁니다. 퇴보한 의인은 용서치 않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잘못지키면 실패입니다. 예배시간을 다 지키던 사람이 빼먹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치는 최고입니까 최소입니까. 최고가 가장 높지만 실제로는 최소로 해서 5분은 기도하다, 여기 제가 권위가 없어서 말 못하지만 성경 하루에 한 장도 안 읽는 사람 있냐고 하면 마음 속으로 꽤나 계실걸요. 문제가 많은 겁니다 심각하게. 하루에 기도 1분도 안한다. 식사기도 하겠죠. 안하는 사람도 있을거지요. 눈만 감았다 뜨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지각을 하고 늦어지고 빠지고 이게 점점 실패가 늘어나게 되고 일반화가 되고 점점 나중에 내성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갑자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서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이런 신앙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뭐냐 다섯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조절하는건데 통제하는 겁니다. 절제는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절제란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모든 것이다 그 정도의 각각 위치와 분량이 다 있는 겁니다.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습니다. 세 번 한다 그러지요. 다섯 번 합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루 세 번 삼 분 안에, 삼 분 동안. 그러니까 어쨌다던가요. 9번을 하는 겁니다. 그거 나쁜 겁니까 좋은 겁니까. 좋은 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신앙생활 바로 하면 성자 성녀가 되는 겁니다. 치우치게 되는 거지요. 하루 여덟 시간 가는 겁니다. 놀고 치우치는 문제가 되는 것이겠는데, 잠자는 시간이 3시간 4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계속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 만큼의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겁니다. 그걸 균형을 맞추는 게 절제입니다.
일상적인 그런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하루에 잠 몇 시간 자야합니까. 6시간 7시간 정도, 뭐든지 이런 말을 하자면 여덟 시간 자고 휴식도 취하고 이런 생활 일상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생활이 있고 그 생활이 평균적으로 계속 이어져서 가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절제라는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장난 심하게 치면 다친다. 선을 넘으면 그렇습니다. 말이 점점 심해지면 그렇게 됩니다. 네가 잘못했잖아, 어쩌라고. 그렇게 나가면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게 절제입니다. 선을 지키는 겁니다. 선을 지키는 게 절제이지요.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정상이 유지되게 하는 겁니다. 선을 지키는 겁니다. 절제를 어떻게 해야하냐 균형이 넘어진다는 것은 치우친다는 뜻입니다.
재미에 기울어지던지 돈에 기울어지던지 평평하게 되어야하는데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절제가 없으면 생활에 절제가 없으면 균형이 무너져버립니다. 두 번째 절제가 없으면 선이 점점 뒤로 물러갑니다. 마지노선 그게 죽을 각오를 하게 되는 겁니다. 뭐든지 정해진 선이 있습니다. 절제가 없으면 점점 무너집니다. 그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기형인데 모습이 생각이 건강이 활동이 경제가 결정적으로 신앙생활 예배 생활이 절제가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사람은 다 이런 걸 대동소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절제가 없어가지고.
절제가 없으면 갈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절제가 없어져버리면 안됩니다. 공부 죄 아니니까 열심히, 돈벌이 죄 아니니까 열심히. 그러다가 기울어져버리면 안됩니다. 공부 열심히하는데 주일은 성경은 가정은 가족 관계는 다 공부만 합니다. 그래서 절제라는 것은 하는 것이고, 갈수록 점점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독처럼 되어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절제가 없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균형이 없어져버립니다. 비정상의 기형적인 모습이 됩니다. 갈수록 심해집니다. 마지막에 중독처럼 되는 것이 그 모습입니다. 그 절제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절제란 통제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굉장히 치열하게 싸워도 됩니다. 객관적인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에 가버립니다. 백목사님 안 계신 지금에 그렇게 급하게 전화받을 거 없다. 지금 세상에서 뭐든지 객관의 것이 필요한데 자기 것이 필요하고 봤더니 그렇게해서라도 절제를 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문제인데 그래서 절제와 함께 됩니다.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돌아보는 겁니다. 자기 자신도 돌아보고 생활도 돌아보고 자기 스스로 돌아보고 인식도 돌아보고.
지금 절제가 필요한지 알아야합니다. 다섯 번째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여러 가지를 보고 절제한다고 했으니까. 구별해봐야합니다. 이래서 무슨 순위가 있습니다. 무엇이 순위가 있냐. 무엇이 앞에 가야하느냐. 주일을 빼놓고 할 일이 있느냐 무슨 순위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되느냐. 앞에 말씀을 드렸죠. 잠자는 것 시간이 불규칙하게 계속 되면은 절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계속 되면은 못잘 수도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런 게 잘못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있어서 표시나게 하는 게 예배시간입니다. 여기에 생활이 한 두 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뭐든지 다 필요한 겁니다. 양도 절제 운동도 절제 전부다 그렇게 해서 절제하나니. 이 세상 사람들은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신앙 생활은 다섯 가지를 생각합시다. 이렇게 다섯가지 쉬지 않고 있는 힘 다해서 달려가는 이게 우리 생활입니다. 이렇게 해야 이길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절제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모든 신앙 생활에 절제하기로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0장, 91장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4절
전투의 목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을 마음과 함께 갑니다. 영과 끊어진 마음은 옛사람이 됩니다. 마음이 영에게 붙들려야하고 마음이 영을 따라서 움직여야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우리 신앙의 생활의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전하니까 말씀 자체는 하나님 말씀이니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말씀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니까 듣는 사람들이 듣고 자기를 복종시키면 복이 되는데 확성기 나팔 마이크만 되지 자기는 버림받는 것이 됩니다. 역사에 선지자들이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고, 오늘의 목사입니다. 목사들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저 같은 사람들도 그런 부분이 많지 않을까. 주님의 사랑하는 신부는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몸이 된 것이 목적입니다. 노력해야합니다.
절제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절제, 믿음의 복이 있고 지식이 있고 절제의 인내가 있고 행동이 있고 여덟 가지를 다 구비하고 서로 좋아서 잘 되어야 되게 되는데 절제를 생각하는 겁니다. 각각 자기의 부분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는 겁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팔다리 다 중요합니다. 손가락 끝에 감염이 되거나 세균이 들어가면 온 몸이 아픕니다. 다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현재 우리교회 필요한 것중 하나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절제 될 수 있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말씀이니까 돌아보고 고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생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운동장에서 비유를 하신겁니다. 비유란 실상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이야기한 것이 비유입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할려면 공간이 필요하겠지요. 마라톤 같은 것은 운동이라고 합니다. 운동장에 선을 다 그어놓고 달려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100미터 세계 신기록이 몇 초인가요 9초입니까. 그 사람 이름이 볼트라는 사람이 있었죠.
100미터를 빨리 달리는 건데 신앙생활을 운동장, 여러 사람이 자기 길을 그렇게 빨라 달려가는 겁니다. 먼저 도착하면 1등이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겁니다. 트랙이라는 그게 자기 길입니다. 거기서 서서 빨리 달려가는 게 신앙 생활인데 달리기로 비유하니까 특징을 보니까 다섯 가지, 쉬지 않고 달려가야한다. 100미터 달리기 해서 멈칫하게 되는 겁니다. 몇 초를 하니까, 토끼와 거북이 경주는 마라톤이니까 토끼가 한숨 자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북이가 이기더라고. 쉬었다가 하면 끝나는 겁니다. 달리기가 쉬지 않고 가야하듯이 이 세상에 휴식이 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잠깐 하다가 휴식은 취하게 되어있는데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마귀는 거기서도 따라다닙니다. 영물입니다. 신령의 존재입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감옥에도 마귀는 기어들어옵니다.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옵니다. 몸은 휴식인데 끝임없는 마귀는 오는 겁니다. 달리기가 쉬지 않고 가야하듯이 믿는 사람은 쉬지 않고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신앙은 쉬지 않는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작은 거 하나도 정신 전력으로 다해야 신앙생활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켜도 예배를 드려도 심방 전도를 해도 연보를 해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혼신을 다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 마지막 종착역까지 가야하는 것이고, 한 사람에게는 진 사람입니다. 운동장에서 다른 일을 한 사람들이 달려갈지라도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 이겨야 이겨낸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들고가면 안되는 겁니다. 달려야하는 것은 전부 다 두고 가는 겁니다. 100미터 달리기 필요한 게 있습니까. 모르겠으나 아주 가벼운 그런 것도 있고 하게 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은 부모도 없는 것이고 일가 친척도 가고 처자식 좋게하고 성경에 처자식 좋게 하려다가 실패한 사람이 롯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이 아니고 염세주의가 아니고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면 반대되는 것을 다 버릴 수 밖에 없고 예외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정을 등한시 하는 사람은 과연 그렇겠다 싶은데 그건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게 동감을 합니다. 가정을 챙기는 사람인데 어렵겠다 어려운겁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신앙 생활은 첫째 주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이지요. 성경 읽는 것, 기도하는 것도 신앙 생활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신앙생활하는 겁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 말씀 기도 찬송 드리는 것은 껍데기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쉬지 않고 가는 것이고 우리는 새벽기도를 몇 년 동안 다녀야합니까.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평생 기다려야합니다. 주일은 언제까지 지켜야합니까. 새벽기도는 일 년에 며칠 나가며 몇 살되면 졸업할 수 있습니까. 기도는 성경은 그런 생활들이 마지 못해서 억지로 못하는 것이지요. 주일 지키는 게 있고 그 한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귀하다. 기도시간에 즐겁습니까. 연보하는 사람들 연보가 즐거워야합니다. 십일조는 즐거워야합니다.
예배 생활이 즐거워야하는데 즐겁습니까. 여기는 설교자 책임이 많지요. 예배 시간이 즐거우면 즐거워야하는데 또 듣는 사람 지치고 마는 겁니다. 다섯 가지 기본적인 생활에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생활에 하나님 뜻을 찾고 그 전체로 말하면 이게 전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에서 경제 생활에서 인간 관계에서 전부 다 연관이 되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어느 하나에도 붙들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가는 길입니다. 25절 보니까 이기겠다 달리기에 나선 사람은 이기기 위해서 나온 겁니다. 물론 연습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만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것이고 직장가는 건 돈 벌러 가는 곳입니다. 이기기 위해서, 그런데 다 이기기 위해 다투는데 이기는 생활을 합니다. 선한 싸움이고 전투입니다. 이기는 생활에 지는 생활, 그래서 달리 상대가 있듯이 승패가 있듯이 신앙 생활은 상태가 있듯이 이기려고 하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건강한 사람이 누구지요. 주님은 의원입니다. 스스로 건강한 사람, 주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고 불택자, 불신자들이지요. 패배한 것들은 지옥에 보내고 성공한 사람들만 천국가는 겁니다. 전부 다 긁어 지옥으로 가는 것인데 진 사람, 성공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이니까 주님 죄인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실패 요소는 다 지옥 보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시험이 없으면 0점을 맞을거야 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상 중에서 없겠지요. 올라가는 사람은 있겠지만 올라갈려고 보다가 나아지려고 이기려고 한 게 세상 모든 노력들입니다. 외국은 실패를 너그럽게 봐준다. 실패 되어도 계속 도전을 하니까 그렇지 10번 100번 실패하면 괜찮겠습니까. 패전을 위해서 승리를 만들어가는 그게 실수 용납하는 것이지 회사 다 말아먹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 실수하는 것은 젊을 때 실패함으로 실패를 줄여가는 이거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 그게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실패 안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몰라서 빈약해서 그러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전진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지요. 발전적인 죄인은 안하시는 겁니다. 퇴보한 의인은 용서치 않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잘못지키면 실패입니다. 예배시간을 다 지키던 사람이 빼먹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치는 최고입니까 최소입니까. 최고가 가장 높지만 실제로는 최소로 해서 5분은 기도하다, 여기 제가 권위가 없어서 말 못하지만 성경 하루에 한 장도 안 읽는 사람 있냐고 하면 마음 속으로 꽤나 계실걸요. 문제가 많은 겁니다 심각하게. 하루에 기도 1분도 안한다. 식사기도 하겠죠. 안하는 사람도 있을거지요. 눈만 감았다 뜨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지각을 하고 늦어지고 빠지고 이게 점점 실패가 늘어나게 되고 일반화가 되고 점점 나중에 내성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갑자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서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이런 신앙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뭐냐 다섯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조절하는건데 통제하는 겁니다. 절제는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절제란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모든 것이다 그 정도의 각각 위치와 분량이 다 있는 겁니다.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습니다. 세 번 한다 그러지요. 다섯 번 합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루 세 번 삼 분 안에, 삼 분 동안. 그러니까 어쨌다던가요. 9번을 하는 겁니다. 그거 나쁜 겁니까 좋은 겁니까. 좋은 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신앙생활 바로 하면 성자 성녀가 되는 겁니다. 치우치게 되는 거지요. 하루 여덟 시간 가는 겁니다. 놀고 치우치는 문제가 되는 것이겠는데, 잠자는 시간이 3시간 4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계속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 만큼의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겁니다. 그걸 균형을 맞추는 게 절제입니다.
일상적인 그런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하루에 잠 몇 시간 자야합니까. 6시간 7시간 정도, 뭐든지 이런 말을 하자면 여덟 시간 자고 휴식도 취하고 이런 생활 일상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생활이 있고 그 생활이 평균적으로 계속 이어져서 가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절제라는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장난 심하게 치면 다친다. 선을 넘으면 그렇습니다. 말이 점점 심해지면 그렇게 됩니다. 네가 잘못했잖아, 어쩌라고. 그렇게 나가면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게 절제입니다. 선을 지키는 겁니다. 선을 지키는 게 절제이지요.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정상이 유지되게 하는 겁니다. 선을 지키는 겁니다. 절제를 어떻게 해야하냐 균형이 넘어진다는 것은 치우친다는 뜻입니다.
재미에 기울어지던지 돈에 기울어지던지 평평하게 되어야하는데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절제가 없으면 생활에 절제가 없으면 균형이 무너져버립니다. 두 번째 절제가 없으면 선이 점점 뒤로 물러갑니다. 마지노선 그게 죽을 각오를 하게 되는 겁니다. 뭐든지 정해진 선이 있습니다. 절제가 없으면 점점 무너집니다. 그러다가 없어져버립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기형인데 모습이 생각이 건강이 활동이 경제가 결정적으로 신앙생활 예배 생활이 절제가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사람은 다 이런 걸 대동소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절제가 없어가지고.
절제가 없으면 갈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절제가 없어져버리면 안됩니다. 공부 죄 아니니까 열심히, 돈벌이 죄 아니니까 열심히. 그러다가 기울어져버리면 안됩니다. 공부 열심히하는데 주일은 성경은 가정은 가족 관계는 다 공부만 합니다. 그래서 절제라는 것은 하는 것이고, 갈수록 점점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독처럼 되어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절제가 없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균형이 없어져버립니다. 비정상의 기형적인 모습이 됩니다. 갈수록 심해집니다. 마지막에 중독처럼 되는 것이 그 모습입니다. 그 절제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절제란 통제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굉장히 치열하게 싸워도 됩니다. 객관적인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에 가버립니다. 백목사님 안 계신 지금에 그렇게 급하게 전화받을 거 없다. 지금 세상에서 뭐든지 객관의 것이 필요한데 자기 것이 필요하고 봤더니 그렇게해서라도 절제를 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문제인데 그래서 절제와 함께 됩니다.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돌아보는 겁니다. 자기 자신도 돌아보고 생활도 돌아보고 자기 스스로 돌아보고 인식도 돌아보고.
지금 절제가 필요한지 알아야합니다. 다섯 번째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여러 가지를 보고 절제한다고 했으니까. 구별해봐야합니다. 이래서 무슨 순위가 있습니다. 무엇이 순위가 있냐. 무엇이 앞에 가야하느냐. 주일을 빼놓고 할 일이 있느냐 무슨 순위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되느냐. 앞에 말씀을 드렸죠. 잠자는 것 시간이 불규칙하게 계속 되면은 절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계속 되면은 못잘 수도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런 게 잘못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있어서 표시나게 하는 게 예배시간입니다. 여기에 생활이 한 두 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뭐든지 다 필요한 겁니다. 양도 절제 운동도 절제 전부다 그렇게 해서 절제하나니. 이 세상 사람들은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신앙 생활은 다섯 가지를 생각합시다. 이렇게 다섯가지 쉬지 않고 있는 힘 다해서 달려가는 이게 우리 생활입니다. 이렇게 해야 이길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절제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모든 신앙 생활에 절제하기로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