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9-21조회 20
2025년 9월 21일 주일 오후
찬송: 102장
본문: 로마서 12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을 합니다. 지구 스스로 도는데 자전입니다. 스스로 도는데 무슨 스스로 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리시니까 돌리시겠지요. 하나님으로 인해서 움직이십니다. 참 이해가 쉽지 않으나 이 세상이란 하나님이 전부 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은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고 세상도 있고 오만게 다 있고 하나님이 없으시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신앙이란 그분을 인해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걸 알아야합니다. 로마서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교리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존자라고 그분이 주권자고 그분이 마지막에 다 정리할 것이고 감사찬송이 있을 것이니까 형제들아 그분하고 연결이 되어집니다. 형제라는 말은 아버지가 한 아버지 밑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 형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이고 우리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신앙말씀을 공부하면 그렇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은 우리가 형제라. 우리 다 형제입니다. 먼저 되고 나중된 형제. 바울과 형제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형제들아 내가 형의 입장에서 먼저된 입장에서 먼저 부름을 받았고 이름의 제자를 받았든 그러면 인간관계로 말하면 바울은 목자고 교회는 양떼인데 바울이 보니까 형제입니다. 먼저 안 내가 실행해본 내가 그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된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선배는 후배를 바로 하는 책임이 있는 겁니다. 사울은 그걸 잊었고 까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관계든 시기하는 사람은 삼각관계를 말합니다. 내 안에 다 쳐다보면 그럴 때 쳐다볼 수 있고 그런건데 남에게 쳐다봐 하나님은 주님 안 쳐다보고 하나님은 뭐하신다고요 시기한다고 하셨습니다. 동생이 언니보다 공부도 더 잘해서 시기합니다. 못난 겁니다. 아버지는 왕들은 조선시대 왕들은 그런 게 있었습니다. 아들을 죽인 왕도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위면 아들인데, 여기 내가 그런 걸 다 초월한 겁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사랑의 심정입니다. 요즘은 말 들어보면 부모들도 희안한 부모들이 다 있습니다. 장가 뭐하러가 시집 뭐하러가 일을 해서 먹여살려야지. 자식이 어찌되든 잘 되어야하지. 요즘 그런 게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런 것은 기본적인 정도 없는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잘 되어야하는데 탈선되면 안되는데 복음주면 좋겠는데 죄를 짓고 있는데 하나님이 복음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자녀된 사람들 사람은. 요즘은 사람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로마교인들의 마음으로 권한다, 애타게 권하는 겁니다. 주일을 잘 지켜라 말씀을 좀 잘 들어라 힘좀 써봐라 아들딸들을 고생시키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 잘 되라고 복 받으라고 애타는 심정으로 그러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고 있습니다.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놀아라, 게임해라, 휴대폰하고 놀아라 그런 건 권하지 않고도 쉽습니다. 그 일이 하기가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것입니까. 근면성실하면 참 좋은데 자기가 하면 참 좋은데 부모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좋을거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제자들이 후배들이 목사가 말하면 교인들이 말씀듣고 새벽기도를 나오셔야죠, 제가 그런 심정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그러면 좋은 겁니다. 아무리 해도 하거나 말거나, 그러면 오전에 뭐라고 그랬던가요. 아버지는 원래 그런 말 하는 거고 목사는 목사니까 설교하는거고 나는 사정있으니까 그리하는 거고 그런 걸 강팍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뒤에서 몽둥이로 두드려서 흙이 단단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포크레인으로 퍼버립니다.
너희들 고난 보니 자유성이 있으니까 고민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잘못 삐뚤어진 탈선으로 나가는 것은 잘못되는 겁니다. 자유에는 무엇이 따라갑니까. 책임이 따라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자유로 악을 행하는데에 쓰지 말고 자유성을 인정하려는데 듣지 않으면 무서운 책임이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그냥 흘려가지 않는 분입니다. 너희를 권하는데 뭘 권하냐, 몸이란 무엇을 말한다고 했습니까. 육신 육체라 그럴 때는 몸과 마음은 뗄 수가 없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나누어지면 몸이 떠나면 마음이 떠난 몸을 가르켜서 시신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살아있어야 몸이 살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항상 같이 있습니다. 너희 심신의 요소를 몸을 산제사로 살아있는 팔을 잘라서 산제사로 그러지 않겠지요. 무엇을 산제사로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희 심신의 요소를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는데 심신의 무엇을요, 같이하십시다 활동 작용 심신의 활동 움직임을 귀로 듣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또보고 또봅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모든 심신은 늘 뭘한다고요, 사람의 심신은 늘 활동을 합니다. 맞습니까. 활동 작용을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하느냐,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가고 싶으면 가는거지 살아있는 겁니다. 제가 주인되어서 마구 뛰어다니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요소를 살아움직이는 것을 산제사로 잡아라. 죽어라 그 뜻입니다. 너 보고 싶은 것은 죽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모든 그의 면에 있어서 언행심사 사리판단 비판과 평가 결정과 처리 모든 면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어디가야한다고요, 하나님을 향해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향하고 손양원 목사님 설교 중에 어떤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데 이런 걸 섬기니까 눈도 귀도 입도 없대요 그러니까 하나님도 사람이 아니니까 눈이 있습니까 입이 있습니까 그렇게 묻더랍니다.
우상들은 사람이 만든거니까 없지 그런데 하나님은 만드신 분이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이 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을 못하시네요, 아론에게 이르시되 우리 말로 말하면요 아론에게 말씀하시되, 말씀하려면 입이 있어야하지요. 사람의 입을 만드신 하나님이 입이 있겠습니까. 귀가 없습니까 눈이 없습니까. 몽골 사람들보다 천 배 만 배가 더 밝은 분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서 말을 잘할 때 많이하고 잘한다고 조심할 것, 사람들이 들을 때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말 잘하는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말을 잘하는 거 같은데 말을 굉장히 조심해야합니다. 책임감있고 넓게 보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안합니다. 책임감이 없고 있는대로 쏟아내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긴 드렸습니다. 누가요, 나 좋은대로 하면 되지 청년들이 좋아야 예배가 장로 아들 딸들이 갔다놓지 북도 장구도 갖다놓지 제 기억에 서부교회 주일 학교 때 여름 성경학교 때 제가 직접 북을 쳤습니다. 그때는 8000명 10000명이 오니까 집중시키려고 그러는데 좋은 건 아닌겁니다. 죄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없던 북을 가져다놓고 처음에는 작은 거 갖다놨다가 뭐 또 갖다놨다가 그런데 발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라 하겠지만 인간 중심으로 맞추면 탈선이 되는 겁니다. 누구 눈초리를 보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렇게 예배는 드리는 겁니다. 제사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드리는 겁니다. 예배는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구별된 산제사입니다. 너희들의 영적 예배니라. 오전에 이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제사는 그 제사에 아는 거지만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 어떻게 이어졌는가. 자주 말씀드렸지요. 제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아담이 선악과 먹은 이후부터 시작한 겁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에덴 동산 먹고 난 다음에 제사를 지냈나. 제사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사의 표시로 범죄한 아담에게 무엇을 만들어 입혔다고요, 가죽옷. 가죽옷이라면 짐승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양가죽을 얻으려면 양을 잡아야하고 소가죽을 얻으러면 잡아야합니다. 양이든 소든 그렇겠지요. 그 말은 너는 죄지어서 죽었다. 죽은거다. 너를 위해서 대신 죽었다. 그 짐승은 짐승 잡아 죽인다고 죽을 사람이 산 다면 천 마리 만 마리 잡아도 되지요. 구약에도 부자가 있었을거니까. 그런데 그 짐승을 잡았다는 게 아니고 예표 상징 누구를요. 사람이 죄지어 사람이 죽었으니까 누가 죽어야합니까. 누군가 죽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아담에게 주신 가죽옷입니다. 너는 죽었다 너를 살리려면 죽여야한다. 이걸 가르쳐서 알리신 게 짐승 가죽입니다. 이게 첫제사가 되는 겁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이 안되어있는데 아들딸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아담이 몇 년을 살았지요. 930세, 930년을 살았으면 오래토록 아이를 낳거든요.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것은 가인 아벨 셋만 기록했는데 가인과 아벨은 그 신앙이 행적이 극과 극입니다. 그 극과 극인 가인과 아벨이 아담의 아들입니다. 아담의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같은 요소가 있어서 죄를 지었고 아벨같은 기록이 있어서 회개하지 않았을까. 아담이 회개를 안했겠습니까. 그리고 제사를 가르쳐서 가인 아벨이 제사를 알고 드린 겁니다. 그런데 가인은 탈선되어서 자기 중심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생활 결과를 순생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잡아바치는 생활은 순생 생활이고 열매가 순교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평소에 순생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게 아벨의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에녹이 나옵니다. 에녹은 성경에 제사를 지냈습니까 안 지냈습니까. 아담은 가죽옷입니다. 아벨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할려면 죄가 없어야합니다. 뜻대로 바쳐야합니다. 그래서 평생은 산제사 생활을 한 것이고 그게 전제가 되어서 동행을 했고 하나님께서 300년 후에 에녹을 그러니까 에녹이 300년 동안 동행이 365년 동안 살다가 승천했습니다. 이게 에녹의 제사 생활입니다.
노아는 홍수 전의 노아는 제사 생활 바로 함으로 받았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몇 가지로 해놨습니까. 이 세상의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서울대하고 반서울대하고 그렇게 서울대학생은 나누다더군요. 홍수 끝나고 그 중에서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겁니다. 정결하게 제사 드린 그분들게 언약을 합니다.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리라. 회개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 되겠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짐승으로 회개를 했고 노아 다음에 믿음이 계통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평소 아브라함 제사 생활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제사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삭을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독자, 보배라는 것도 있고 자기 아들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란 자기 미래가 되는 것이지요. 그 제사로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주님 오시고 끝나서 폐해져서 신약에는 그 형식이 뭘로 바뀝니까. 예배로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제사가 이어져왔습니다. 제사라는 것은 짐승을 잡아서 바칩니다. 형식인데 제사는 하나님의 식사라고 배웠지요. 만족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가장 기초적으로 원론적으로 먹어야 큽니다. 먹지 못하면 만족을 못합니다.
나를 잡아 산제사로 드리는 게 산 제사인데 기본적으로 기본적인 제사는 주님이 잡아서 드리므로 하셨고 현실을 살아가며 통해서 잡은 것이냐, 활동의 요소를 잡고 잡고 잡는 생활이 되며 그걸 가르켜서 성화 구원이라고 하고 기능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 받아서 하나님을 받아서 닮아가는 것이 되니 그게 다른 존재들에게 주는 자로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란 일차적으로 드림으로 구원받고 제사생활 통해서 주는 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산제사로 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희 요소요소를 하나님 앞에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게 이어져내려오는지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리는 것입니다.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동시에 내가 받아야 사는 사람이 주는 대로 자라가는 게 제사다. 바로 이 제사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산 제사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2장
본문: 로마서 12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을 합니다. 지구 스스로 도는데 자전입니다. 스스로 도는데 무슨 스스로 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돌리시니까 돌리시겠지요. 하나님으로 인해서 움직이십니다. 참 이해가 쉽지 않으나 이 세상이란 하나님이 전부 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은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고 세상도 있고 오만게 다 있고 하나님이 없으시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신앙이란 그분을 인해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걸 알아야합니다. 로마서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교리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존자라고 그분이 주권자고 그분이 마지막에 다 정리할 것이고 감사찬송이 있을 것이니까 형제들아 그분하고 연결이 되어집니다. 형제라는 말은 아버지가 한 아버지 밑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 형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이고 우리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신앙말씀을 공부하면 그렇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같은 분은 우리가 형제라. 우리 다 형제입니다. 먼저 되고 나중된 형제. 바울과 형제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형제들아 내가 형의 입장에서 먼저된 입장에서 먼저 부름을 받았고 이름의 제자를 받았든 그러면 인간관계로 말하면 바울은 목자고 교회는 양떼인데 바울이 보니까 형제입니다. 먼저 안 내가 실행해본 내가 그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된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선배는 후배를 바로 하는 책임이 있는 겁니다. 사울은 그걸 잊었고 까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관계든 시기하는 사람은 삼각관계를 말합니다. 내 안에 다 쳐다보면 그럴 때 쳐다볼 수 있고 그런건데 남에게 쳐다봐 하나님은 주님 안 쳐다보고 하나님은 뭐하신다고요 시기한다고 하셨습니다. 동생이 언니보다 공부도 더 잘해서 시기합니다. 못난 겁니다. 아버지는 왕들은 조선시대 왕들은 그런 게 있었습니다. 아들을 죽인 왕도 있었습니다.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위면 아들인데, 여기 내가 그런 걸 다 초월한 겁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사랑의 심정입니다. 요즘은 말 들어보면 부모들도 희안한 부모들이 다 있습니다. 장가 뭐하러가 시집 뭐하러가 일을 해서 먹여살려야지. 자식이 어찌되든 잘 되어야하지. 요즘 그런 게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런 것은 기본적인 정도 없는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잘 되어야하는데 탈선되면 안되는데 복음주면 좋겠는데 죄를 짓고 있는데 하나님이 복음줄 수 없으니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자녀된 사람들 사람은. 요즘은 사람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로마교인들의 마음으로 권한다, 애타게 권하는 겁니다. 주일을 잘 지켜라 말씀을 좀 잘 들어라 힘좀 써봐라 아들딸들을 고생시키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 잘 되라고 복 받으라고 애타는 심정으로 그러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고 있습니다.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놀아라, 게임해라, 휴대폰하고 놀아라 그런 건 권하지 않고도 쉽습니다. 그 일이 하기가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려운 것입니까. 근면성실하면 참 좋은데 자기가 하면 참 좋은데 부모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좋을거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제자들이 후배들이 목사가 말하면 교인들이 말씀듣고 새벽기도를 나오셔야죠, 제가 그런 심정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그러면 좋은 겁니다. 아무리 해도 하거나 말거나, 그러면 오전에 뭐라고 그랬던가요. 아버지는 원래 그런 말 하는 거고 목사는 목사니까 설교하는거고 나는 사정있으니까 그리하는 거고 그런 걸 강팍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뒤에서 몽둥이로 두드려서 흙이 단단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포크레인으로 퍼버립니다.
너희들 고난 보니 자유성이 있으니까 고민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잘못 삐뚤어진 탈선으로 나가는 것은 잘못되는 겁니다. 자유에는 무엇이 따라갑니까. 책임이 따라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자유로 악을 행하는데에 쓰지 말고 자유성을 인정하려는데 듣지 않으면 무서운 책임이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그냥 흘려가지 않는 분입니다. 너희를 권하는데 뭘 권하냐, 몸이란 무엇을 말한다고 했습니까. 육신 육체라 그럴 때는 몸과 마음은 뗄 수가 없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나누어지면 몸이 떠나면 마음이 떠난 몸을 가르켜서 시신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살아있어야 몸이 살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항상 같이 있습니다. 너희 심신의 요소를 몸을 산제사로 살아있는 팔을 잘라서 산제사로 그러지 않겠지요. 무엇을 산제사로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희 심신의 요소를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는데 심신의 무엇을요, 같이하십시다 활동 작용 심신의 활동 움직임을 귀로 듣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또보고 또봅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모든 심신은 늘 뭘한다고요, 사람의 심신은 늘 활동을 합니다. 맞습니까. 활동 작용을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하느냐,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가고 싶으면 가는거지 살아있는 겁니다. 제가 주인되어서 마구 뛰어다니는 겁니다. 심신의 활동 요소를 살아움직이는 것을 산제사로 잡아라. 죽어라 그 뜻입니다. 너 보고 싶은 것은 죽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모든 그의 면에 있어서 언행심사 사리판단 비판과 평가 결정과 처리 모든 면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어디가야한다고요, 하나님을 향해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향하고 손양원 목사님 설교 중에 어떤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데 이런 걸 섬기니까 눈도 귀도 입도 없대요 그러니까 하나님도 사람이 아니니까 눈이 있습니까 입이 있습니까 그렇게 묻더랍니다.
우상들은 사람이 만든거니까 없지 그런데 하나님은 만드신 분이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이 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을 못하시네요, 아론에게 이르시되 우리 말로 말하면요 아론에게 말씀하시되, 말씀하려면 입이 있어야하지요. 사람의 입을 만드신 하나님이 입이 있겠습니까. 귀가 없습니까 눈이 없습니까. 몽골 사람들보다 천 배 만 배가 더 밝은 분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서 말을 잘할 때 많이하고 잘한다고 조심할 것, 사람들이 들을 때 어찌되는지 아십니까. 말 잘하는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말을 잘하는 거 같은데 말을 굉장히 조심해야합니다. 책임감있고 넓게 보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안합니다. 책임감이 없고 있는대로 쏟아내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긴 드렸습니다. 누가요, 나 좋은대로 하면 되지 청년들이 좋아야 예배가 장로 아들 딸들이 갔다놓지 북도 장구도 갖다놓지 제 기억에 서부교회 주일 학교 때 여름 성경학교 때 제가 직접 북을 쳤습니다. 그때는 8000명 10000명이 오니까 집중시키려고 그러는데 좋은 건 아닌겁니다. 죄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없던 북을 가져다놓고 처음에는 작은 거 갖다놨다가 뭐 또 갖다놨다가 그런데 발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라 하겠지만 인간 중심으로 맞추면 탈선이 되는 겁니다. 누구 눈초리를 보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렇게 예배는 드리는 겁니다. 제사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드리는 겁니다. 예배는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구별된 산제사입니다. 너희들의 영적 예배니라. 오전에 이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제사는 그 제사에 아는 거지만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 어떻게 이어졌는가. 자주 말씀드렸지요. 제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아담이 선악과 먹은 이후부터 시작한 겁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에덴 동산 먹고 난 다음에 제사를 지냈나. 제사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사의 표시로 범죄한 아담에게 무엇을 만들어 입혔다고요, 가죽옷. 가죽옷이라면 짐승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양가죽을 얻으려면 양을 잡아야하고 소가죽을 얻으러면 잡아야합니다. 양이든 소든 그렇겠지요. 그 말은 너는 죄지어서 죽었다. 죽은거다. 너를 위해서 대신 죽었다. 그 짐승은 짐승 잡아 죽인다고 죽을 사람이 산 다면 천 마리 만 마리 잡아도 되지요. 구약에도 부자가 있었을거니까. 그런데 그 짐승을 잡았다는 게 아니고 예표 상징 누구를요. 사람이 죄지어 사람이 죽었으니까 누가 죽어야합니까. 누군가 죽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아담에게 주신 가죽옷입니다. 너는 죽었다 너를 살리려면 죽여야한다. 이걸 가르쳐서 알리신 게 짐승 가죽입니다. 이게 첫제사가 되는 겁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이 안되어있는데 아들딸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아담이 몇 년을 살았지요. 930세, 930년을 살았으면 오래토록 아이를 낳거든요.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것은 가인 아벨 셋만 기록했는데 가인과 아벨은 그 신앙이 행적이 극과 극입니다. 그 극과 극인 가인과 아벨이 아담의 아들입니다. 아담의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같은 요소가 있어서 죄를 지었고 아벨같은 기록이 있어서 회개하지 않았을까. 아담이 회개를 안했겠습니까. 그리고 제사를 가르쳐서 가인 아벨이 제사를 알고 드린 겁니다. 그런데 가인은 탈선되어서 자기 중심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생활 결과를 순생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잡아바치는 생활은 순생 생활이고 열매가 순교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평소에 순생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게 아벨의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에녹이 나옵니다. 에녹은 성경에 제사를 지냈습니까 안 지냈습니까. 아담은 가죽옷입니다. 아벨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할려면 죄가 없어야합니다. 뜻대로 바쳐야합니다. 그래서 평생은 산제사 생활을 한 것이고 그게 전제가 되어서 동행을 했고 하나님께서 300년 후에 에녹을 그러니까 에녹이 300년 동안 동행이 365년 동안 살다가 승천했습니다. 이게 에녹의 제사 생활입니다.
노아는 홍수 전의 노아는 제사 생활 바로 함으로 받았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몇 가지로 해놨습니까. 이 세상의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서울대하고 반서울대하고 그렇게 서울대학생은 나누다더군요. 홍수 끝나고 그 중에서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겁니다. 정결하게 제사 드린 그분들게 언약을 합니다.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리라. 회개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죄를 안 지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 되겠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짐승으로 회개를 했고 노아 다음에 믿음이 계통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평소 아브라함 제사 생활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제사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삭을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독자, 보배라는 것도 있고 자기 아들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란 자기 미래가 되는 것이지요. 그 제사로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주님 오시고 끝나서 폐해져서 신약에는 그 형식이 뭘로 바뀝니까. 예배로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제사가 이어져왔습니다. 제사라는 것은 짐승을 잡아서 바칩니다. 형식인데 제사는 하나님의 식사라고 배웠지요. 만족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가장 기초적으로 원론적으로 먹어야 큽니다. 먹지 못하면 만족을 못합니다.
나를 잡아 산제사로 드리는 게 산 제사인데 기본적으로 기본적인 제사는 주님이 잡아서 드리므로 하셨고 현실을 살아가며 통해서 잡은 것이냐, 활동의 요소를 잡고 잡고 잡는 생활이 되며 그걸 가르켜서 성화 구원이라고 하고 기능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 받아서 하나님을 받아서 닮아가는 것이 되니 그게 다른 존재들에게 주는 자로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란 일차적으로 드림으로 구원받고 제사생활 통해서 주는 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산제사로 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희 요소요소를 하나님 앞에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게 이어져내려오는지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리는 것입니다. 드리는 형식을 통해서 동시에 내가 받아야 사는 사람이 주는 대로 자라가는 게 제사다. 바로 이 제사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산 제사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