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8일 금밤
김동민2025-07-18조회 34추천 7
2025년 7월 18일 금밤
찬송: 94장, 103장
본문: 로마서 1장 18절 ~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돌아본다는 말은 소망을 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하는 것은 가치를 그리 두기 때문에 소망하는 겁니다. 귀하다고 같이 귀하다고 알기 때문에 소망으로 삼고 관심을 가지고 주력하는 것을 돌아본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그리 알고 그래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돌아보는 것인데 우리가 소망하는 바, 가치로 여기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보이고 땅도 집도 자동차도 바다도 보이고 산천초목 다 보이는 것들이고 그 자연 속에 주인공되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고 보이는 외모가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외모 보이는 것보다는 마음의 우리의 돌아보는 게 되어야겠고 마음보다는 영이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으로 볼 수 있겠지. 보이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중요합니다 필요합니다. 필수불가결의 요소입니다. 생기지 않고 자라지 않습니다. 목표 목적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멩입니다. 사람의 목표라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거기 실력이 들었고 그 속에는 인격이 들었고 신앙이 들어가야하는데 신앙이 들어갈려면 인격도 있어야합니다. 사람 됨됨이가 바로 되지 않는 속에 그리 됩니다.
존재, 존재라는 말은 뭔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존재는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보이는 역사가 있고 보이지 않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결과를 가지고 영원토록 이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활동이라는 그 속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사람의 희로애락 이게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양면으로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돌아보는 것 우리가 목표하고 소망하는 바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속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역사도 보이지 않는 역사를 찾아들어가야합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잡고, 보이는 세계를 통해서 보이는 모든 승패와 희로애락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들어가야 바로 되는 것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 거기 붙들려버리고 피동들게 금송아지 만든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금송아지는 푸니까 세 가지,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 이 세 가지가 금송아지의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손으로 만든 가짜 하나님.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느냐,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눈에 보이던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까 기록이 되어있지요. 우리를 인도하여낼 신을 만들어내라. 애굽 땅에서 인도해낸 사람은 누군지 모르니라. 모세인데 모세가 무슨 수로 그들을 인도해냅니까. 모세가 무슨 힘으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며 가르며 이적 하나 하나 무슨 일이 있어서 하나님과 끊어지면 모가지 끊긴 닭이라고 합니다. 제멋대로 뛰고 굴리고 그리 되는데 끊어진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이 면을 알기 때문에 모는 것을 다 빼앗겨도 하나님은 붙들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하나님 놓지 않으려고. 다 빼앗겨도 하나님 끊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만 됐습니다. 그분은 하나님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다 그랬습니다. 다 빼앗겨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되고 그분이 함께하시면 되는 거다. 사람이 하나님 붙들면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에 버리시는 거지요.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버림을 받아봤습니다. 마지막까지 받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떠나실까 싶어서 목숨걸고 회개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붙들렸고 위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지 않고 모세의 그 이면의 하나님 모세가 섬기며 두려워하며 그런 하나님을 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이 원리는 그때와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아야합니다. 만나야합니다. 보이는 모세 이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마지막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뭐 만들었지요. 금송아지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이 금송아지입니다. 왜 만들었다고요, 보이던 모세가 안 보이니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았던 분입니다.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을 시공초월하신 분이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될 건데 보이는 하나님 만들어버린겁니다. 지나간 역사를 비판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정제한 것도 쉽습니다. 우리 모두 보이는 사람과 존재의 영향받고 좌우되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존재나 나타나는 역사나 그건 모두 피조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제가 이렇게 종을 땡 치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종소리가 왜 났습니까. 종을 치니까 누가 칩니까 제가 종을 쳤지요. 제가 종을 친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입니까. 종소리가 어디서나죠. 강단의 종을 쳤구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을 차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께 갖다붙이는 것이 저를 위해서 하겠다 하면 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했습니다. 담을 넘어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였고 발걸음 움직였고 예정입니다 주권입니다. 그러면 악입니다. 그런데 그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악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일지라도 악용과 선용은 하나는 지옥이고 하나는 천국입니다. 제가 종을 쳤습니다. 그러면 겉보기에 피상적으로 제가 종을 쳤는데 하나님께서 종을 치게 하신 겁니다. 이걸 봐야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종친 게 보이는 것이고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무슨 차이지요. 하나는 시각이고 하나는 청각입니다. 보이는 것은 들리는 것은 만져지는 것은 모두 피조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되었던가, 그 모든 존재를 있게 만드신 하나님 그 분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숙제를 생각해봤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세상과 세계는 다른 말입니다. 세계 그 계 자가 경계할 때 계 자입니다. 구별도 해야하고.
모든 세계가 물질계, 영계 천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우리가 아나니,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라사대 가로되를 한자로 말하면 왈입니다.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시기에 빛이 있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천지를 지었는데 어떻게 짓습니까. 빛이 있으라시매 빛이 있었고 성대를 움직여서 히브리어로 헬라어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렇게 찾아 들어가는 것을 가르켜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들어가는 겁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거 형식적인 거 가시적인 거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리 되는 게 많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그때하고 다른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어디다 대고,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우렁차게, 천둥치는 소리처럼 어느 나라 말로, 영어로, 중국어로, 히브리어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말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 표현을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거지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글자는 보이는 겁니다. 성경은,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집회 때 성경 책은 원본도 물질입니다. 경은 물질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말씀, 글자는 보이니까 글자 속에 담겨진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서는 무엇이 되는 거라고요, 말씀 속에는 이치가 담긴 겁니다. 구원의 도리가 운리를 물질에 가져다대면 과학이라고 합니다. 물리. 그 과학을 숫자에 가져대면 수학이 되고 언어에 가져다대면 어학이 되겠지요. 말씀으로 지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치로 지었다는 겁니다. 이치로 지을 때 말씀으로 성대로 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까 기록이 되어있으나 하나님이 성경에 되어있어서 아닌 걸로 되어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걸로 찾아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치로 지었다. 원리가 다 들어가있습니다. 모래알이 생기게 형성된 원리가 있습니다. 원리 없는,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알이 수천억개가 넘을건데, 그 수천억이 넘는 모래 하나하나가 전부 다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밤에 쏟아진 비가 엄청합니다. 그 시간에 그런 속도로 그런 크기로 그런 물 질량으로 떨어지는 그 정도가 이치가 있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입니다. 이렇게 찾아보는 걸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오늘 밤말씀 갑니다. 로마서는 교리서인데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진노가 나타나면 꾸준히 나오던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겁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진리가 인간에게 막히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행실이 있고 행동이 있습니다. 불의는 제멋대로하는 걸 불의라고 합니다. 자아주장, 자아주장을 불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불이 제멋대로 사는 모든 불의는 그게 전부 진리를 막는 그런 행동이 됩니다. 알았던지 몰랐던지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에 나오느냐, 경건치 않음에 있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거기에 나타나는데 어디서 나타나느냐,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 사람이 막을 수 없고 대처할 수 없는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니까 지금 저 이번에는 보니까 서쪽에서 많이 쏟아지는데 충청도쪽에 비가 엄청 많이 쏟아져서 난리이고 광주도 난리고 부산도 많이 쏟아진답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대한민국도 세계적인데 이런 나라에서 원초적인 기본적인 원시적이 비가 쏟아지는데도 대책이 없는 거지요. 하늘에서 쏟아지니까.
무슨 수로 막습니까. 얼마 전에는 가물어서 문제였는데 우리에게는 참 좋습니다. 집회준비해야하니까. 안되었지만은 천벌, 어떤 사람에게 온다고요 하나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그 사람들에 왜 이 천벌이 나타나느냐, 알려진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 제중심 제위주 거기에 천벌이 쏟아지는데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보입니다. 알고 그짓한다 그 소리입니다. 모르고 그렇게하면 적게하시는데 알고 그러면 천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19절입니다. 이게 뭐지요. 일을 대명사입니다. 일이 뭡니까. 무엇을 가르켜 그리 말했습니까. 하나님을 알만한 거 그걸 보이셨느니라, 그리고 20절에 창세로부터 하나님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자존성은 두고 영원불변성 단일성, 보이지 않는 것들, 영원하신 능력과 전능의 능력이 알게 되나니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려야하는 것인가 우리 어둡고 미련한 사람들에게 알리시려고 하나님을 보이는 것에게 담아놨으니 그게 뭐냐 그 만드신 만물, 그래서 알게 됩니다. 개미를 보면 개미 속에 있고 풀을 보면 풀 속에 있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그렇게 되어있고. 사도행전에 보면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전하니까 바울과 실라인가 그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리면서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 지으시고 비를 내리시고 사람 속에 양심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당신 자신을 율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알리셨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양심쓰면 신이라는 것을 하나님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 율법이 되나니 양심이 증거가 되어 율법에 새긴 것을 나타냅니다. 생각해보면 성경에 기록한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결론은 그겁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인데 보이는 우리에게 당신을 알려놓으셨습니다. 보이는 역사로, 그래서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지 않는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고 보이는 대에서 들리는 데에서 자기 주변에서 찾으면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율법이 네가 말하기를 이 율법이 어디로 가서 바다건너 가져오지 말아라. 네 입안에 있고 네 손목에 있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만 보게 되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거에 치우치면은 보이지 않는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화 이건 대마귀입니다. 십자가 목걸이도 하는 거 아닙니다. 그것도 용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마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94장, 103장
본문: 로마서 1장 18절 ~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돌아본다는 말은 소망을 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하는 것은 가치를 그리 두기 때문에 소망하는 겁니다. 귀하다고 같이 귀하다고 알기 때문에 소망으로 삼고 관심을 가지고 주력하는 것을 돌아본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그리 알고 그래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돌아보는 것인데 우리가 소망하는 바, 가치로 여기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보이고 땅도 집도 자동차도 바다도 보이고 산천초목 다 보이는 것들이고 그 자연 속에 주인공되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고 보이는 외모가 있고 마음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외모 보이는 것보다는 마음의 우리의 돌아보는 게 되어야겠고 마음보다는 영이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으로 볼 수 있겠지. 보이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중요합니다 필요합니다. 필수불가결의 요소입니다. 생기지 않고 자라지 않습니다. 목표 목적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멩입니다. 사람의 목표라는 것은 껍데기입니다. 거기 실력이 들었고 그 속에는 인격이 들었고 신앙이 들어가야하는데 신앙이 들어갈려면 인격도 있어야합니다. 사람 됨됨이가 바로 되지 않는 속에 그리 됩니다.
존재, 존재라는 말은 뭔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존재는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보이는 역사가 있고 보이지 않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결과를 가지고 영원토록 이어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활동이라는 그 속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사람의 희로애락 이게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양면으로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돌아보는 것 우리가 목표하고 소망하는 바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속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역사도 보이지 않는 역사를 찾아들어가야합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잡고, 보이는 세계를 통해서 보이는 모든 승패와 희로애락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들어가야 바로 되는 것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 거기 붙들려버리고 피동들게 금송아지 만든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금송아지는 푸니까 세 가지,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 이 세 가지가 금송아지의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손으로 만든 가짜 하나님.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느냐,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눈에 보이던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까 기록이 되어있지요. 우리를 인도하여낼 신을 만들어내라. 애굽 땅에서 인도해낸 사람은 누군지 모르니라. 모세인데 모세가 무슨 수로 그들을 인도해냅니까. 모세가 무슨 힘으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며 가르며 이적 하나 하나 무슨 일이 있어서 하나님과 끊어지면 모가지 끊긴 닭이라고 합니다. 제멋대로 뛰고 굴리고 그리 되는데 끊어진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이 면을 알기 때문에 모는 것을 다 빼앗겨도 하나님은 붙들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하나님 놓지 않으려고. 다 빼앗겨도 하나님 끊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만 됐습니다. 그분은 하나님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다 그랬습니다. 다 빼앗겨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되고 그분이 함께하시면 되는 거다. 사람이 하나님 붙들면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에 버리시는 거지요.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버림을 받아봤습니다. 마지막까지 받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떠나실까 싶어서 목숨걸고 회개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붙들렸고 위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지 않고 모세의 그 이면의 하나님 모세가 섬기며 두려워하며 그런 하나님을 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이 원리는 그때와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아야합니다. 만나야합니다. 보이는 모세 이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마지막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뭐 만들었지요. 금송아지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이 금송아지입니다. 왜 만들었다고요, 보이던 모세가 안 보이니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았던 분입니다.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을 시공초월하신 분이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될 건데 보이는 하나님 만들어버린겁니다. 지나간 역사를 비판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정제한 것도 쉽습니다. 우리 모두 보이는 사람과 존재의 영향받고 좌우되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존재나 나타나는 역사나 그건 모두 피조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제가 이렇게 종을 땡 치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종소리가 왜 났습니까. 종을 치니까 누가 칩니까 제가 종을 쳤지요. 제가 종을 친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입니까. 종소리가 어디서나죠. 강단의 종을 쳤구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을 차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께 갖다붙이는 것이 저를 위해서 하겠다 하면 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했습니다. 담을 넘어서 도둑질을 했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였고 발걸음 움직였고 예정입니다 주권입니다. 그러면 악입니다. 그런데 그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악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일지라도 악용과 선용은 하나는 지옥이고 하나는 천국입니다. 제가 종을 쳤습니다. 그러면 겉보기에 피상적으로 제가 종을 쳤는데 하나님께서 종을 치게 하신 겁니다. 이걸 봐야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종친 게 보이는 것이고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무슨 차이지요. 하나는 시각이고 하나는 청각입니다. 보이는 것은 들리는 것은 만져지는 것은 모두 피조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되었던가, 그 모든 존재를 있게 만드신 하나님 그 분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숙제를 생각해봤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세상과 세계는 다른 말입니다. 세계 그 계 자가 경계할 때 계 자입니다. 구별도 해야하고.
모든 세계가 물질계, 영계 천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우리가 아나니,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라사대 가로되를 한자로 말하면 왈입니다.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시기에 빛이 있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천지를 지었는데 어떻게 짓습니까. 빛이 있으라시매 빛이 있었고 성대를 움직여서 히브리어로 헬라어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렇게 찾아 들어가는 것을 가르켜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들어가는 겁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거 형식적인 거 가시적인 거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리 되는 게 많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그때하고 다른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어디다 대고,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우렁차게, 천둥치는 소리처럼 어느 나라 말로, 영어로, 중국어로, 히브리어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말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 표현을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거지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글자는 보이는 겁니다. 성경은,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집회 때 성경 책은 원본도 물질입니다. 경은 물질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말씀, 글자는 보이니까 글자 속에 담겨진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서는 무엇이 되는 거라고요, 말씀 속에는 이치가 담긴 겁니다. 구원의 도리가 운리를 물질에 가져다대면 과학이라고 합니다. 물리. 그 과학을 숫자에 가져대면 수학이 되고 언어에 가져다대면 어학이 되겠지요. 말씀으로 지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이치로 지었다는 겁니다. 이치로 지을 때 말씀으로 성대로 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까 기록이 되어있으나 하나님이 성경에 되어있어서 아닌 걸로 되어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걸로 찾아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치로 지었다. 원리가 다 들어가있습니다. 모래알이 생기게 형성된 원리가 있습니다. 원리 없는,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알이 수천억개가 넘을건데, 그 수천억이 넘는 모래 하나하나가 전부 다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밤에 쏟아진 비가 엄청합니다. 그 시간에 그런 속도로 그런 크기로 그런 물 질량으로 떨어지는 그 정도가 이치가 있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이고 주권입니다. 이렇게 찾아보는 걸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오늘 밤말씀 갑니다. 로마서는 교리서인데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진노가 나타나면 꾸준히 나오던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겁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진리가 인간에게 막히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행실이 있고 행동이 있습니다. 불의는 제멋대로하는 걸 불의라고 합니다. 자아주장, 자아주장을 불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불이 제멋대로 사는 모든 불의는 그게 전부 진리를 막는 그런 행동이 됩니다. 알았던지 몰랐던지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에 나오느냐, 경건치 않음에 있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거기에 나타나는데 어디서 나타나느냐,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 사람이 막을 수 없고 대처할 수 없는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니까 지금 저 이번에는 보니까 서쪽에서 많이 쏟아지는데 충청도쪽에 비가 엄청 많이 쏟아져서 난리이고 광주도 난리고 부산도 많이 쏟아진답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대한민국도 세계적인데 이런 나라에서 원초적인 기본적인 원시적이 비가 쏟아지는데도 대책이 없는 거지요. 하늘에서 쏟아지니까.
무슨 수로 막습니까. 얼마 전에는 가물어서 문제였는데 우리에게는 참 좋습니다. 집회준비해야하니까. 안되었지만은 천벌, 어떤 사람에게 온다고요 하나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그 사람들에 왜 이 천벌이 나타나느냐, 알려진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 제중심 제위주 거기에 천벌이 쏟아지는데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보입니다. 알고 그짓한다 그 소리입니다. 모르고 그렇게하면 적게하시는데 알고 그러면 천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19절입니다. 이게 뭐지요. 일을 대명사입니다. 일이 뭡니까. 무엇을 가르켜 그리 말했습니까. 하나님을 알만한 거 그걸 보이셨느니라, 그리고 20절에 창세로부터 하나님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자존성은 두고 영원불변성 단일성, 보이지 않는 것들, 영원하신 능력과 전능의 능력이 알게 되나니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려야하는 것인가 우리 어둡고 미련한 사람들에게 알리시려고 하나님을 보이는 것에게 담아놨으니 그게 뭐냐 그 만드신 만물, 그래서 알게 됩니다. 개미를 보면 개미 속에 있고 풀을 보면 풀 속에 있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그렇게 되어있고. 사도행전에 보면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전하니까 바울과 실라인가 그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리면서 우리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 지으시고 비를 내리시고 사람 속에 양심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당신 자신을 율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알리셨다고 합니다. 불신자들도 양심쓰면 신이라는 것을 하나님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 율법이 되나니 양심이 증거가 되어 율법에 새긴 것을 나타냅니다. 생각해보면 성경에 기록한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결론은 그겁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인데 보이는 우리에게 당신을 알려놓으셨습니다. 보이는 역사로, 그래서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지 않는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고 보이는 대에서 들리는 데에서 자기 주변에서 찾으면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율법이 네가 말하기를 이 율법이 어디로 가서 바다건너 가져오지 말아라. 네 입안에 있고 네 손목에 있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만 보게 되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거에 치우치면은 보이지 않는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화 이건 대마귀입니다. 십자가 목걸이도 하는 거 아닙니다. 그것도 용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마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