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일 수밤
김동민2025-07-02조회 61추천 7
2025년 7월 2일 수밤
찬송: 195장, 196장
본문: 민수기 3장 14절 ~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15절에 나오는 종족과 다른 종족의 한자를 가지고 저는 지난 주일까지만해도 찾아보지 못했는데 김선행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영어로 알아보고 하니까 거의 다 같이 쓰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몇 종류가 있는데 영어 설명이 다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그래서 단정지을 수 없는데 15절의 종자가 오타일 가능성이 높다. 전부 다 다른 글자인데 한 자가 그런데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까 한 자 다를 것으로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오타일 가능성이 있는데 단정하는 걸 조심해야합니다. 의미를 보면 15절의 종은 씨종자인데 제일 큰 범위로 잡을 수 있고 그 다음에 마루 종 자로 쓴 것은 잡을 수 있고 더 좁게 잡으면 가족이고 그러면 무리는 아닙니다만은 오타라고 그럴 것은 아닐 것이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하는 게 좋고. 제일 큰 범위이고 밑에 범위이고 가족이고 가족이란 부부로 출발해서 이룬 게 가족이고 종족은 근분 같은데 그게 큰 범위가 되고 종 자는 종류 종자니까 그리 되는 겁니다. 참고로 그리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설교 준비하다보니까 한 자가 달라서 모르게 된 것이고 읽다보면 눈에 뜨이거든요. 살펴도 보고 물어도 보고 같이 함께 온전해져가는 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하고 전화통화를 한참 했는데 다른 쪽에서 공회로 온지 오래된 분이고 공회가 너무 좋고 은혜가 되어서 그런데 백목사님 교리는 완전이 아닙니까. 참 무서운 말이지요. 완전한 것처럼 착각을 한거지요. 백목사님은 완전잡니까. 흠이 많은 분이죠 사람입니다. 설교록은 완벽한가요. 수백군데 제가 교정을 보는데요. 수도 없이 나옵니다. 백 목사님 설교하시다가 틀리고 하는 거 제가 다 고치거든요. 제가 임의로 다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거인데 말할 거 없고 백 목사님 교리도 완전한 게 아닙니다. 완전한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리 과학은 완전인줄 아는데 착각입니다. 과학은 진리라고 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현재까지 가장 정확하다는 겁니다.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는 겁니다. 지구는 둥글지요. 또 지동설이 과거 중세시대까지는 천동설이었지요. 이단으로 죽여버립니다.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면 저는 어느 것이 맞는건지 헷갈리는데요. 전부 다 돌리는 겁니다. 사가 떨어지는 만류인력인겁니까. 가장 정확한 겁니다. 우주에서 발견되면 또 달라질지 모르는 겁니다. 물질의 물리 말할 거 없고 성경진리는 삼위일체는 완전인가요. 삼위일체 교리는 완전입니까. 완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세 분인데 어떻게 그게 완전입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더 정확하게 정확하는 게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앞으로 성경 다 깨달아지면 모릅니다. 더 앞으로 깨달아지면 모르는 겁니다. 현재까지 가장 정확하다 가장. 살펴봐야하고 내가 깨달은 것이 가장 옳다.
칼빈이라는 분은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칼빈 제자들이 문제가 많은거지요. 그 제자들이 발전시켜 나가야하는데 500년 전 깨달음에서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게 있는지 모릅니다. 신학은 안해서 모르지만, 백 목사님께서 칼빈 주의를 비판하신 이유가 그겁니다. 더 발전시켜 나가야하지 그걸 붙들고 그게 맞는 것이냐 그 말이지요. 고인물은 발전이 없습니다. 84년도 공과에 홍포입은 부자는 불택자입니다. 88년인가 89년에 와서 잘 모르겠다 하니까 목사님이 공과로 있잖습니까 바꾸면 됩니까. 그때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다. 더 깊이 생각해보니까 깨달아지더라. 할 말이 있습니까. 마지막에도 자라가는 분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총공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풍 목사님 홈페이지도 그렇고 잘못된 것도 하고 노래를 부르시지요. 입에 발린 소리로 듣습니다. 미국 보내실 때 목사님께서 그 목적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과 틀린 건지 알아봐라, 살펴봐라. 그래서 그걸 살펴 온 거지요.
그러니까 성경 말씀 그대로 나가면 참 좋은데 그래서 성경을 읽으시다가 이상하고 전부 다 안 맞으면은 정통이라는 건 중요합니다. 정통은 전통은 이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메여서 전부가 되면 곤란한 겁니다. 이단 견제의 위주를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가지고 그러면 이단입니다. 우리 공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흠과 전이 많고 모든 생활 전부 그런 걸 보고 안 맞고 이상하면 함께 다 같이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공회 홈페이지는 누구든지 쓸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 자기를 내놓고 바른 중심으로 나가면 거리낄게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밀이 많은 사람은 불행입니다. 목회가 되면 말 못할 비밀을 많이 알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집집마다 사연 없는 가정 없고 사람 없고 별별 게 다 있습니다. 그런 걸 들을 때 담아놓고 기도하고 상담하고 그러지만은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실수했겠지만 비밀 지켜주십시오 저는 제 기억으로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이 그건 안됩니다.
말의 무게라는 것은 달라지게 되는 거지요. 비밀 지키란 말이고 알겠습니까 저한테 말하는 걸 주저하면 말아버립니다. 제가 들어서 그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왜 드려야합니까. 남의 비밀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아라. 너의 종이 너를 저주하는 걸 듣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캐는 사람을 쉽게 이해를 못합니다. 왜 남의 개인사를 알려고하지. 안 좋은 겁니다. 본인이 주저하면 막아버립니다. 성경 읽어가시면서 기본적으로 참 중요한 겁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신뢰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그걸 안되는거지요. 참 여러 가지 있습니다. 레위인을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집회 내용 전체를 둘로 잡았습니다. 제사장까지는 못 나갔고 하나님 백성이라 했고 레위라고 했고 다섯가지라고 했지요. 잊지 말자, 지켜내자, 애착 끊자, 자라가자, 바쳐살자. 그리고 레위인에 대해서 했습니다. 살려놓자 신앙 양심, 두 번째 소망이다 양심이. 그런데 레위인과 양심을 연결 시키는데 레위인이 양심이다 이러면 곤란할 수 있고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해놓으신 그들의 열 두 지파와의 구별입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레위인의 신분, 다 연결되지만 위치, 역할, 자격도 있지만은 이건 뺐고. 하나님과 레위인의 관계, 이스라엘 백성과 레위인의 관계. 신분과 위치와 역할을 살펴보면 우리를 다 대입을 시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상대하시듯이 우리를 상대하시는 것이고 레위인에 신분 정체성이 있듯이 그런 것이고 위치가 있듯이 그런 것이고 레위인들이 사명이 있듯이 우리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양심은 그러면, 인격 속에 들어있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은 양심이라는 요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요소는 성경 기록, 다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사람 속에는 그 역할을 연결시켜놓으면 그 역할 이런 걸로 연결시켜놓으면 레위인적인 것으로 연결시켜놓을 수 있는 겁니다. 구별과 관계와 위치와 역할, 그러면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살려놓자 신앙 양심 인격으로 바꾸면 뭐가되지요. 구약으로 말하면 레위인이 되는 것이고 나 자신 인격이 되는 겁니다.
사상전, 영토 전쟁은 미개할 때고 사상전이 무서운겁니다. 레위인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그 신분과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신분 내어놨는데 위치와 역할을 보면은 레위인들이 있는 그 위치가 어딥니까. 중앙인데 애매합니다. 어떤 중앙이냐 열 두 지파 전체 중앙입니다. 최중앙은 아닌 거지요. 성막이 중앙에 있습니다. 가장 중앙에 누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 가운데 레위인입니다. 그 위치는 중간 위치고 역할을 보면은 하나님을 직접 상대합니다. 가족별로 직접 상대하고 그 중에 제사가 있습니다. 그게 레위인 역할인데 그 제사는 전부 레위인들이 집도하지만 이스라엘 전체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속함받으려면 레위인은 찾아야합니다. 그 전부를 대신하는 거지요. 열 두 지파 전부의 레위인을 짊어지는 게 아닌데 그걸 짚도록 하는 겁니다. 어린 양이 짐승이 죄를 짊어지는 게 되는 데 제사 제도가 되는 것이고 그게 전부 레위인인데 레위인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하는 것이지만 실제 하는 게 레위인이기 때문에 담당한다고는 못해도 속죄하는 역할을 하는겁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인데 다른 말로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기억하라. 그래서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레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 가운데 레위는 열 두 지파 중에 뽑아가지고 그 레위인을 통해서 사함받고 하나님 은혜를 다 받는 거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고 레위인이 바로 되면 전부 다 바로 되고 레위인이 탈선되면 전부 다 탈선되는 겁니다. 전부가 다 레위인에게 달려있는 거지요. 신약 쪽으로 와서 구약도 중간에 와서는 선지자가 그랬는데 같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제사장들, 이분이 잘못되면 나라가 잘못된 겁니다. 제사가 바로 되면 나라가 바로되고 그 반대면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바로 들여야, 생활과 가정이 바로 되느니라. 제사가 바로되어야 그런 것이고 예배가 바로 되어야 바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나는 믿는 사람은 어디있던지 그 믿는 사람이 있는 거기서 하나님과 그 주변 사이에 있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복을 받아야 정상이 되는 겁니다. 요셉이 그랬듯이, 다니엘이 그랬듯이.
다니엘이 그랬고 그게 잘못되면 다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이스라엘의 소망이고 잘 믿는 학생이 있으면 그 가정의 소망입니다. 같이 믿는 사람이더라도 레위 믿는 소망이고 아내가 잘 믿으면 아내가 소망이고. 교회도 그렇고 레위인의 위치가 그런 겁니다. 이 레위인 인격적으로 말하면 그런 것이고 양심이 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심만큼은 손대면 안되는거다. 사람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사람이 뭐는 손대면 안되겠습니까. 아무리 괴롭고 슬프고 막막해도 자기 목숨은 손대는 것이 아니지요. 그게 양심이라는 것은 아닌데 그런 겁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이건 안되는 겁니다. 아무리 목사가 먹었고 그래도 교회 안 다닐 거야 그 말이 나오면 안되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가 등대 역할을 포기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날 중에도 주일은 손대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개인 신앙에 따라 다르지만은 그렇게 말합니다. 주일은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게 주일입니다. 주일 지키고 다 지키는 사람은 교만한 말이 되어 조심스러운데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치고 수십년 계시면서 주일날 어디 갔다든지 이런 건 많이 없을겁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쁘게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건데 예배당 안에 나라가 들어오고 정치 사상이 들어오고 침묵이 들어오고 그러면 안되는 거지요. 같은 원리로 양심이지만은 붙들리면 안되는 것이고 양심 자체, 양자는 좋은 양자이지요. 오로지 옳고 바른 것만 찾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그대로 두는 겁니다. 그래서 명예나 그런 것에 휘둘리면 안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으로 말하면 가장 옳은 게 진리니까. 그게 양심이다. 그게 신앙 양심입니다. 이걸 살려놔야하는 것이고 믿는 사람 전체의 소망이 되는 것이지요. 양심이 뭐라고요, 소망입니다. 양심을 살려놔야하고 그래야합니다.
믿는 사람이 내가 소망입니다. 개인 과정에서 그 사람에게서 하는 겁니다. 남을 구원하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내가 되고 나를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은 없는 겁니다. 나 구원되지 않고 이용물만 되고 그런 겁니다. 내가 가보다도 너부터 바로 되어라. 내가 되지 않고 목사가 그래서 가장 어렵다는 게 어려운 걸 많이 겪는데 어렵고 어렵고 어려워도 너부터 바로 들어. 어려운 게 없었고 제가 바로 되면 쉬운 게 없었고. 이게 아마 진리일 겁니다. 양심은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가 그렇고 레위인이 그런 것이고 믿는 사람이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95장, 196장
본문: 민수기 3장 14절 ~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15절에 나오는 종족과 다른 종족의 한자를 가지고 저는 지난 주일까지만해도 찾아보지 못했는데 김선행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영어로 알아보고 하니까 거의 다 같이 쓰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몇 종류가 있는데 영어 설명이 다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그래서 단정지을 수 없는데 15절의 종자가 오타일 가능성이 높다. 전부 다 다른 글자인데 한 자가 그런데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까 한 자 다를 것으로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오타일 가능성이 있는데 단정하는 걸 조심해야합니다. 의미를 보면 15절의 종은 씨종자인데 제일 큰 범위로 잡을 수 있고 그 다음에 마루 종 자로 쓴 것은 잡을 수 있고 더 좁게 잡으면 가족이고 그러면 무리는 아닙니다만은 오타라고 그럴 것은 아닐 것이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하는 게 좋고. 제일 큰 범위이고 밑에 범위이고 가족이고 가족이란 부부로 출발해서 이룬 게 가족이고 종족은 근분 같은데 그게 큰 범위가 되고 종 자는 종류 종자니까 그리 되는 겁니다. 참고로 그리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설교 준비하다보니까 한 자가 달라서 모르게 된 것이고 읽다보면 눈에 뜨이거든요. 살펴도 보고 물어도 보고 같이 함께 온전해져가는 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하고 전화통화를 한참 했는데 다른 쪽에서 공회로 온지 오래된 분이고 공회가 너무 좋고 은혜가 되어서 그런데 백목사님 교리는 완전이 아닙니까. 참 무서운 말이지요. 완전한 것처럼 착각을 한거지요. 백목사님은 완전잡니까. 흠이 많은 분이죠 사람입니다. 설교록은 완벽한가요. 수백군데 제가 교정을 보는데요. 수도 없이 나옵니다. 백 목사님 설교하시다가 틀리고 하는 거 제가 다 고치거든요. 제가 임의로 다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거인데 말할 거 없고 백 목사님 교리도 완전한 게 아닙니다. 완전한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리 과학은 완전인줄 아는데 착각입니다. 과학은 진리라고 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현재까지 가장 정확하다는 겁니다.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는 겁니다. 지구는 둥글지요. 또 지동설이 과거 중세시대까지는 천동설이었지요. 이단으로 죽여버립니다.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면 저는 어느 것이 맞는건지 헷갈리는데요. 전부 다 돌리는 겁니다. 사가 떨어지는 만류인력인겁니까. 가장 정확한 겁니다. 우주에서 발견되면 또 달라질지 모르는 겁니다. 물질의 물리 말할 거 없고 성경진리는 삼위일체는 완전인가요. 삼위일체 교리는 완전입니까. 완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고 세 분인데 어떻게 그게 완전입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더 정확하게 정확하는 게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앞으로 성경 다 깨달아지면 모릅니다. 더 앞으로 깨달아지면 모르는 겁니다. 현재까지 가장 정확하다 가장. 살펴봐야하고 내가 깨달은 것이 가장 옳다.
칼빈이라는 분은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칼빈 제자들이 문제가 많은거지요. 그 제자들이 발전시켜 나가야하는데 500년 전 깨달음에서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게 있는지 모릅니다. 신학은 안해서 모르지만, 백 목사님께서 칼빈 주의를 비판하신 이유가 그겁니다. 더 발전시켜 나가야하지 그걸 붙들고 그게 맞는 것이냐 그 말이지요. 고인물은 발전이 없습니다. 84년도 공과에 홍포입은 부자는 불택자입니다. 88년인가 89년에 와서 잘 모르겠다 하니까 목사님이 공과로 있잖습니까 바꾸면 됩니까. 그때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다. 더 깊이 생각해보니까 깨달아지더라. 할 말이 있습니까. 마지막에도 자라가는 분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자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총공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풍 목사님 홈페이지도 그렇고 잘못된 것도 하고 노래를 부르시지요. 입에 발린 소리로 듣습니다. 미국 보내실 때 목사님께서 그 목적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과 틀린 건지 알아봐라, 살펴봐라. 그래서 그걸 살펴 온 거지요.
그러니까 성경 말씀 그대로 나가면 참 좋은데 그래서 성경을 읽으시다가 이상하고 전부 다 안 맞으면은 정통이라는 건 중요합니다. 정통은 전통은 이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메여서 전부가 되면 곤란한 겁니다. 이단 견제의 위주를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가지고 그러면 이단입니다. 우리 공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흠과 전이 많고 모든 생활 전부 그런 걸 보고 안 맞고 이상하면 함께 다 같이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공회 홈페이지는 누구든지 쓸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 자기를 내놓고 바른 중심으로 나가면 거리낄게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밀이 많은 사람은 불행입니다. 목회가 되면 말 못할 비밀을 많이 알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집집마다 사연 없는 가정 없고 사람 없고 별별 게 다 있습니다. 그런 걸 들을 때 담아놓고 기도하고 상담하고 그러지만은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실수했겠지만 비밀 지켜주십시오 저는 제 기억으로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이 그건 안됩니다.
말의 무게라는 것은 달라지게 되는 거지요. 비밀 지키란 말이고 알겠습니까 저한테 말하는 걸 주저하면 말아버립니다. 제가 들어서 그분이 저에게 말하기를 왜 드려야합니까. 남의 비밀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아라. 너의 종이 너를 저주하는 걸 듣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캐는 사람을 쉽게 이해를 못합니다. 왜 남의 개인사를 알려고하지. 안 좋은 겁니다. 본인이 주저하면 막아버립니다. 성경 읽어가시면서 기본적으로 참 중요한 겁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신뢰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그걸 안되는거지요. 참 여러 가지 있습니다. 레위인을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집회 내용 전체를 둘로 잡았습니다. 제사장까지는 못 나갔고 하나님 백성이라 했고 레위라고 했고 다섯가지라고 했지요. 잊지 말자, 지켜내자, 애착 끊자, 자라가자, 바쳐살자. 그리고 레위인에 대해서 했습니다. 살려놓자 신앙 양심, 두 번째 소망이다 양심이. 그런데 레위인과 양심을 연결 시키는데 레위인이 양심이다 이러면 곤란할 수 있고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해놓으신 그들의 열 두 지파와의 구별입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레위인의 신분, 다 연결되지만 위치, 역할, 자격도 있지만은 이건 뺐고. 하나님과 레위인의 관계, 이스라엘 백성과 레위인의 관계. 신분과 위치와 역할을 살펴보면 우리를 다 대입을 시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상대하시듯이 우리를 상대하시는 것이고 레위인에 신분 정체성이 있듯이 그런 것이고 위치가 있듯이 그런 것이고 레위인들이 사명이 있듯이 우리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양심은 그러면, 인격 속에 들어있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은 양심이라는 요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요소는 성경 기록, 다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사람 속에는 그 역할을 연결시켜놓으면 그 역할 이런 걸로 연결시켜놓으면 레위인적인 것으로 연결시켜놓을 수 있는 겁니다. 구별과 관계와 위치와 역할, 그러면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살려놓자 신앙 양심 인격으로 바꾸면 뭐가되지요. 구약으로 말하면 레위인이 되는 것이고 나 자신 인격이 되는 겁니다.
사상전, 영토 전쟁은 미개할 때고 사상전이 무서운겁니다. 레위인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그 신분과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신분 내어놨는데 위치와 역할을 보면은 레위인들이 있는 그 위치가 어딥니까. 중앙인데 애매합니다. 어떤 중앙이냐 열 두 지파 전체 중앙입니다. 최중앙은 아닌 거지요. 성막이 중앙에 있습니다. 가장 중앙에 누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 가운데 레위인입니다. 그 위치는 중간 위치고 역할을 보면은 하나님을 직접 상대합니다. 가족별로 직접 상대하고 그 중에 제사가 있습니다. 그게 레위인 역할인데 그 제사는 전부 레위인들이 집도하지만 이스라엘 전체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속함받으려면 레위인은 찾아야합니다. 그 전부를 대신하는 거지요. 열 두 지파 전부의 레위인을 짊어지는 게 아닌데 그걸 짚도록 하는 겁니다. 어린 양이 짐승이 죄를 짊어지는 게 되는 데 제사 제도가 되는 것이고 그게 전부 레위인인데 레위인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하는 것이지만 실제 하는 게 레위인이기 때문에 담당한다고는 못해도 속죄하는 역할을 하는겁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인데 다른 말로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기억하라. 그래서 제사장 선지자 왕입니다. 레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 가운데 레위는 열 두 지파 중에 뽑아가지고 그 레위인을 통해서 사함받고 하나님 은혜를 다 받는 거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고 레위인이 바로 되면 전부 다 바로 되고 레위인이 탈선되면 전부 다 탈선되는 겁니다. 전부가 다 레위인에게 달려있는 거지요. 신약 쪽으로 와서 구약도 중간에 와서는 선지자가 그랬는데 같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제사장들, 이분이 잘못되면 나라가 잘못된 겁니다. 제사가 바로 되면 나라가 바로되고 그 반대면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바로 들여야, 생활과 가정이 바로 되느니라. 제사가 바로되어야 그런 것이고 예배가 바로 되어야 바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나는 믿는 사람은 어디있던지 그 믿는 사람이 있는 거기서 하나님과 그 주변 사이에 있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복을 받아야 정상이 되는 겁니다. 요셉이 그랬듯이, 다니엘이 그랬듯이.
다니엘이 그랬고 그게 잘못되면 다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이스라엘의 소망이고 잘 믿는 학생이 있으면 그 가정의 소망입니다. 같이 믿는 사람이더라도 레위 믿는 소망이고 아내가 잘 믿으면 아내가 소망이고. 교회도 그렇고 레위인의 위치가 그런 겁니다. 이 레위인 인격적으로 말하면 그런 것이고 양심이 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심만큼은 손대면 안되는거다. 사람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사람이 뭐는 손대면 안되겠습니까. 아무리 괴롭고 슬프고 막막해도 자기 목숨은 손대는 것이 아니지요. 그게 양심이라는 것은 아닌데 그런 겁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이건 안되는 겁니다. 아무리 목사가 먹었고 그래도 교회 안 다닐 거야 그 말이 나오면 안되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가 등대 역할을 포기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날 중에도 주일은 손대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개인 신앙에 따라 다르지만은 그렇게 말합니다. 주일은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게 주일입니다. 주일 지키고 다 지키는 사람은 교만한 말이 되어 조심스러운데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치고 수십년 계시면서 주일날 어디 갔다든지 이런 건 많이 없을겁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쁘게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건데 예배당 안에 나라가 들어오고 정치 사상이 들어오고 침묵이 들어오고 그러면 안되는 거지요. 같은 원리로 양심이지만은 붙들리면 안되는 것이고 양심 자체, 양자는 좋은 양자이지요. 오로지 옳고 바른 것만 찾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그대로 두는 겁니다. 그래서 명예나 그런 것에 휘둘리면 안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으로 말하면 가장 옳은 게 진리니까. 그게 양심이다. 그게 신앙 양심입니다. 이걸 살려놔야하는 것이고 믿는 사람 전체의 소망이 되는 것이지요. 양심이 뭐라고요, 소망입니다. 양심을 살려놔야하고 그래야합니다.
믿는 사람이 내가 소망입니다. 개인 과정에서 그 사람에게서 하는 겁니다. 남을 구원하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내가 되고 나를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은 없는 겁니다. 나 구원되지 않고 이용물만 되고 그런 겁니다. 내가 가보다도 너부터 바로 되어라. 내가 되지 않고 목사가 그래서 가장 어렵다는 게 어려운 걸 많이 겪는데 어렵고 어렵고 어려워도 너부터 바로 들어. 어려운 게 없었고 제가 바로 되면 쉬운 게 없었고. 이게 아마 진리일 겁니다. 양심은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가 그렇고 레위인이 그런 것이고 믿는 사람이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