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3일 금밤
김동민2025-05-23조회 78추천 8
2025년 5월 23일 금밤
찬송: 189장, 58장
본문: 사도행전 7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잊지말자, 포함되는 세상에 되지 말자, 지켜내자 이 복음을, 애착을 끊자, 자라가자, 받쳐살자. 이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져야 될 자세. 자라갈 소망 이런 걸 말씀하셨고 그 뒤에 나머지 레위인이 양심이 레위인이다. 집회 교재에 보면 그런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깨달음을 받아서 그렇게 증거를 하신 겁니다. 말하자면. 설교가 구구절절로 맞으면 바른 깨달음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것이 되는 건데 성경에 안 맞으면 안되는 건데 신앙 양심으로 레위인입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교역자처럼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지라도 설교를 하다 보면은 평소에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치, 논리지요. 말씀의 도리를 생각을 하고 도리를 전하면서 전하려고 준비하면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성경 해석하면서 말씀과 실제 신앙 생활과 연관 시켜서 적용 되어지는 그런 우리가 아직 어려서 성경 자체를 가지고 다 모르지만 배운 말씀 신풍 목사님께 배운 거라든지 성경을 연결시켜보면서 성경 말씀을 적용을 해봐야 자기 복음이 되고 설교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읽기만 읽어나가면 워낙 좋으니까 되지만은 자기 복음 자기 설교는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읽어서 하는 게 필요하나. 읽으면서도 내용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모습과 현재 생활과 대조해서 회계도 하고 소망도 가지고 각오 결심도 하고 기도도하고 작용을 하면서 복음이 되게 되는 것이고, 그 설교가 얼마만큼 해야할 생활 위치가 되겠느냐 성령이 역사해서 듣는 사람들을 역사시키게 되는데 오직 성령에게 임하시면, 진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무인격입니다. 진리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정해주셨고 정해주신 진리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사람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고 말씀이란 것은 사람을 통해서 전달하게 되는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어느정도의 말씀과 자신과 일치가 되느냐, 자신이 정하는 그 말씀을 믿으며 어느 정도 그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으며 살았으며 그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졌느냐 그만큼 되어진만큼 성령이 진리 속에 내재해서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쓰시는 거에 따라서 다르지만 전도를 많이해도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한 것도 큽니다. 믿는 사람도 말씀의 사람을 말했습니다. 성령에 의하면 되지 않는 것을 말하고 그렇게 되어야 참된 설교가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크게 공부하는 것은 열 한 가지 제목 중에서 다섯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제목들이고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게 잊지 말자, 큰 제목입니다. 자기가 누군지 자기 신분, 자기 자신, 자아라는 거, 사람이 자기 위치를 안다는 거 지킨다는 거 중요하고 귀한겁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인식적으로 알고 실제로 생활적으로 아는 것 그것을 겸손하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 그러는 겁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겸손이 아닙니다.
학생이 학생임을 아는 것, 자녀가 자녀인 줄 아는 것. 학생은 탈선을 못하는 겁니다. 공부가 주업이 되는 것이고 배우는 자세가 되는 것이고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고 몸가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걸 학교에서 안 가르칩니다. 제대로, 인권이나 말하고 되도 않는 그런 걸 말하고 있지 철 없는 아이들한테. 자기 위치, 나이도 입장도 형편도 알고 경제가 가난한 사람이면 가난한 줄울 알아야 조심합니다. 우리 가족 한 달 수입이 얼마지,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서 100만원 밖에 못 번다. 그게 겸손이고 경제를 아는 것이고 옳은 것이고 바른겁니다. 300만원 버는 사람처럼 생활하면 큰일나지요. 몸이 약한 사람은 몸이 약한 줄 알고 아껴쓰는 줄 아는 것이고 자기 몸으로 하는 겁니다. 그 좋은 머리로 복음을 쓰는 것이고 부모는 부모 위치를 알아야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들 딸 등골을 빼먹고 있습니다. 아들 딸이 벌어온 돈 가지고 놀고먹고 그게 뭡니까. 부모의 위치를 망각하니까 그런 일이 되는 겁니다.
자기 배운 것도 하고 입장도 하고 모든 거 다 살펴서 그리 되겠지요. 그게 자기 자신을 아는 겁니다. 자기, 내가 누구냐. 자기 정체서 자기 자신의 자아 이걸 아는 것이고 막연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무엇인가를 풀어 설명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백성이라고 그랬으니까 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의 임금 왕은 하나님이다. 나의 통치자 지배자는 하나님이다. 나는 그분에게 지배받고 통치 받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말씀의 통치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지 않고 말씀에 메이지 않고 말씀에 영향받고 피동되고 살지 않고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리 잘 믿어도 이름 뿐이고 실제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는 믿는 사람에게 그대로 합니다. 얼마든지 예배보고 다녀라. 그런데 그 중에 진짜베기 말씀을 변질시켜서 그래서 성경을 없애버리다가 천주교 때는 1000년 동안 성경을 못 믿게 했다고 하지요. 그거 가지고 믿는 사람들 까막눈 가지고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든지 읽어라 그러는데 변질시켜냐갑니다. 요즘 나오는 개혀개정이라는 건 성경이라고 하기 곤란합니다. 앞으로 성경이 다 없어져버리고 그러면 그것만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물질 성경도 개혁개정으로 바꿔버리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만 어려워지지요. 희석을 시키지요. 주일을 어떻게 해야 진짜냐 예배를 어떻게 봐야하냐 이건 쏙 빼버립니다. 100날 주일날 와봐야 헛일입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하고 말씀을 믿어야하고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성경 말씀 알려면 첫째가 뭡니까. 첫째가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성경 안 읽고 성경을 압니까. 세상 사람이 되었다가도 돌이켜야하는 겁니다. 사람이 완전히 세상에 찌들어서 뼈속까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면 말씀듣고 그걸 보니까 하늘나라 백성인데 새벽 재독에 무엇까지는 살려놔야한다고요, 신앙 양심만은 살려놔야합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나라로 알고 그 나라를 소망하고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세상이 되지 말자 살다 보니까 현실을 살다 보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보면 적응 되어서 환경의 사람이 되는 게 사람인데 그리 안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힘을 쓰고 애를 쓰는 거지요.
지켜내자 이 복음을, 복음은 예수 구원 예수 천당 이게 복음입니다. 예수 구원 예수 천당 이게 복음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만 있고 그런 겁니다. 지금은 다 아니까 더 자라서 기쁨을 가지고 사람이 자라가다보면 한글 배웠다고 다 아는 겁니까. 받침도 들어가야하고, 이 글자 두 글자 모이니까 아하고 버하고 지가 만나니까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것만 알면 되는 겁니까. 아버지를 알아야하지요. 글자 단어 뜻 문장 그리되는 거지요. 점점 알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을 다 알라 그러면 한도 없는 겁니다. 지금은 물리학의 시대지요. 그런 쪽을 공부해야 취업도 쉽고 요즘은 좀 뜸합니까. 문송합니다 그런 말이 있었죠. 문과는 다 죽었다 그랬는데 이과 자연계 쪽은 이용하는 것이고 문과는 주인입니다. 사람이고, 그래서 이게 훨씬 더 깊고 오묘하고 더 그런겁니다. 이과는 물질계통입니다. 이용하는 것이고 인간에 대한 공부, 문과 공부가 되지 않은 이과 세상이 되면 망하는 겁니다. 지금 세상이 탈선한 이유가 그겁니다. 불교도 유교도 몇 천년 전에 나온겁니다. 인문학은 바닥이니까 근처도 못합니다. 물질만 붙들고 앉았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되어져있습니다.
지켜내자 이 복음을 예수 천당 1학년입니다. 기본 구원입니다. 믿은 다음에 믿고 난 다음 어떻게 믿어야하지 그게 건설 구원인겁니다. 믿기는 믿는데 주일 지키고 예배보고 성경 읽고 주일은 예배당은 예배만 보면 되냐 자꾸 더 들어가서 자라가야하는 겁니다. 자라가다 보니까 지금 시대 지킬 그거는 기본이고 그 다음 들어가서 믿는 사람이 바로 믿게 되느냐 이걸 원론적으로 몇 가지로 정리했던가요. 첫째 성경대로 배우고 두 번째 성경대로 살고 세 번째 성경대로 전하고 알맹이는 성경입니다. 누가 지켜야하는가. 어떻게 지켜야하는가. 성경을 배우고 원본이 있으니까 바로 배우고. 그리고 배운 그대로 전하면 이 복음은 지켜지는 겁니다.
하나 더 추가 이미 아는 것인데 그래서 구약 교회가 있었고 광야 교회라는 대표적인 교회가 있었고 광야 교회 이후에는 국가적인 그런 역사적으로 한 도시 전체 제네바 도시 전체가 기독교 교회가 된 칼빈의 목회. 거기서 제네바 전부가 인구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다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법입니다. 제네바시는 술집도 아예 없었죠. 다윗 때는 이스라엘 전부 다 교회입니다. 광야 교회는 모세의 200만명 목회, 그리 되었다가 쇠퇴했고 이루어지면서 나라 전부 다가 교회입니다. 하나님 성전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다윗은 가장 크게 한 목회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월 속에 점점 살다 보니까 1등 목회작 떠나고 하니까 그 큰 교회가 바벨론에 망해버렸습니다.
큰 역사로. 생명이 이어져서 신약교회 시작됐고 열 두 사도가 복음을 전했고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고 유럽으로 가고 영국가고 미국가서 전파되고. 초창기 있었고 복음의 쇠퇴기, 한국 교회는 숫자도 교회도 들어듭니다. 수퍼마컷보다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시뻘건 십자가 저게 뭐냐 하고 입을 벌린다고 하지요. 세계 어느 도시 가도 교회 이렇게 많은 곳이 없다고. 교회 개척이 안됩니다. 현상유지도 어렵습니다. 코로나 못된 정부에서 탄압했고 치명상을 입어서 우리 주변 교회들도 엄청 줄었다고 합니다. 그 심판은 앞으로 받을 심판이 있을 것이고.
교회가 정치화되고 그리되는데 교회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교회의 중심을 가르켜서 등대고 촛대입니다. 등대라는 말은 찬송가 160장입니까,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구원은 여기있다. 인생의 참 행복은 여기있다. 이게 소금이고 빛인데 구원이라는 것은 사후 세계 영생의 구원입니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시대에 우리는 지켜내자는 겁니다. 이 복음을 전할 때는 선교와 전도를 배웠지요. 전도는 무엇이 전도라고 했습니까. 예수 구원 예수 천국이 전도다. 도를 전하는 거, 선교는 뭘 넘어서 해야하는 건가요. 언어 불통 문화 불통 풍습 불통 이걸 좁게하면 1대1이 되는 것이고. 가정도 되는 것이고 사회도 되는 건데 초월하고 참된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다 바치고 가족 희생하고 우리 나라도 선교사들의 대를 이은 희생으로 복음이 전파된겁니다. 수 많은 종들에 하나님의 알맹이로 하고 교회를 세우셔야하는데 그 위해 종들이 있었고 헌신과 희생 땅과 피로 이뤄져 오신 것이 현대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매도 수없이 맞고 바다에 파선하고 수도 없이 많은 희생을 하면서 곳곳에 복음을 전한 것이 사도 바울이고 헌신과 희생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지키는 것도 같은 겁니다. 이 복음을 지키려면 불통을 지켜야합니다. 이 시대 불통이 지금은 참된 복음과 성경대로 참 복음과 이 세상과 이 교계 교회는 교계인데 믿기는 믿는데 믿으라고 전하면 불통입니다. 주일이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로 들어가면 주일 지키는 게 불통입니다. 생활 속에 들어가면 결혼도 불통입니다. 요즘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20대 남녀 청년들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런 건 좋은 겁니다. 성경이 가르치니까 불통입니다. 자녀관 교육관 성공관 행복관 경제관은 무엇이지요, 입을 것이 있는 즉 이 세상은 일반 교계는 성공해야합니다. 이걸 넘어서서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대로 전하는게 이 복음 지켜내는 것이고 불통을 넘어서야하니까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수고가 들어가야하고 헌신이 들어가야하고 희생이 들어가는 겁니다. 천국 복음 지켜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나의 자존심 나의 좋아하는 별별 욕심 이걸 희생하지 아니하고 이걸 지켜내는 거, 십자가지지 않고 성경대로 산다, 전한다 안되는 겁니다. 전투는 전쟁하면 죽는 거 필연입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복음을 지켜내려면 싸워야합니다. 전투의 희생은 필연입니다. 이 세상과 나 자신, 가족까지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참된 종들은 가족들까지 희생하고 종들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정체성이고 할 일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89장, 58장
본문: 사도행전 7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잊지말자, 포함되는 세상에 되지 말자, 지켜내자 이 복음을, 애착을 끊자, 자라가자, 받쳐살자. 이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져야 될 자세. 자라갈 소망 이런 걸 말씀하셨고 그 뒤에 나머지 레위인이 양심이 레위인이다. 집회 교재에 보면 그런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깨달음을 받아서 그렇게 증거를 하신 겁니다. 말하자면. 설교가 구구절절로 맞으면 바른 깨달음이 되는 것이고 새로운 것이 되는 건데 성경에 안 맞으면 안되는 건데 신앙 양심으로 레위인입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교역자처럼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지라도 설교를 하다 보면은 평소에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치, 논리지요. 말씀의 도리를 생각을 하고 도리를 전하면서 전하려고 준비하면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성경 해석하면서 말씀과 실제 신앙 생활과 연관 시켜서 적용 되어지는 그런 우리가 아직 어려서 성경 자체를 가지고 다 모르지만 배운 말씀 신풍 목사님께 배운 거라든지 성경을 연결시켜보면서 성경 말씀을 적용을 해봐야 자기 복음이 되고 설교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읽기만 읽어나가면 워낙 좋으니까 되지만은 자기 복음 자기 설교는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읽어서 하는 게 필요하나. 읽으면서도 내용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모습과 현재 생활과 대조해서 회계도 하고 소망도 가지고 각오 결심도 하고 기도도하고 작용을 하면서 복음이 되게 되는 것이고, 그 설교가 얼마만큼 해야할 생활 위치가 되겠느냐 성령이 역사해서 듣는 사람들을 역사시키게 되는데 오직 성령에게 임하시면, 진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무인격입니다. 진리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정해주셨고 정해주신 진리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사람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고 말씀이란 것은 사람을 통해서 전달하게 되는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어느정도의 말씀과 자신과 일치가 되느냐, 자신이 정하는 그 말씀을 믿으며 어느 정도 그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으며 살았으며 그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졌느냐 그만큼 되어진만큼 성령이 진리 속에 내재해서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쓰시는 거에 따라서 다르지만 전도를 많이해도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한 것도 큽니다. 믿는 사람도 말씀의 사람을 말했습니다. 성령에 의하면 되지 않는 것을 말하고 그렇게 되어야 참된 설교가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크게 공부하는 것은 열 한 가지 제목 중에서 다섯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제목들이고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게 잊지 말자, 큰 제목입니다. 자기가 누군지 자기 신분, 자기 자신, 자아라는 거, 사람이 자기 위치를 안다는 거 지킨다는 거 중요하고 귀한겁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인식적으로 알고 실제로 생활적으로 아는 것 그것을 겸손하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 그러는 겁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겸손이 아닙니다.
학생이 학생임을 아는 것, 자녀가 자녀인 줄 아는 것. 학생은 탈선을 못하는 겁니다. 공부가 주업이 되는 것이고 배우는 자세가 되는 것이고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고 몸가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걸 학교에서 안 가르칩니다. 제대로, 인권이나 말하고 되도 않는 그런 걸 말하고 있지 철 없는 아이들한테. 자기 위치, 나이도 입장도 형편도 알고 경제가 가난한 사람이면 가난한 줄울 알아야 조심합니다. 우리 가족 한 달 수입이 얼마지, 우리는 형편이 어려워서 100만원 밖에 못 번다. 그게 겸손이고 경제를 아는 것이고 옳은 것이고 바른겁니다. 300만원 버는 사람처럼 생활하면 큰일나지요. 몸이 약한 사람은 몸이 약한 줄 알고 아껴쓰는 줄 아는 것이고 자기 몸으로 하는 겁니다. 그 좋은 머리로 복음을 쓰는 것이고 부모는 부모 위치를 알아야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들 딸 등골을 빼먹고 있습니다. 아들 딸이 벌어온 돈 가지고 놀고먹고 그게 뭡니까. 부모의 위치를 망각하니까 그런 일이 되는 겁니다.
자기 배운 것도 하고 입장도 하고 모든 거 다 살펴서 그리 되겠지요. 그게 자기 자신을 아는 겁니다. 자기, 내가 누구냐. 자기 정체서 자기 자신의 자아 이걸 아는 것이고 막연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무엇인가를 풀어 설명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백성이라고 그랬으니까 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의 임금 왕은 하나님이다. 나의 통치자 지배자는 하나님이다. 나는 그분에게 지배받고 통치 받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말씀의 통치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지 않고 말씀에 메이지 않고 말씀에 영향받고 피동되고 살지 않고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리 잘 믿어도 이름 뿐이고 실제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는 믿는 사람에게 그대로 합니다. 얼마든지 예배보고 다녀라. 그런데 그 중에 진짜베기 말씀을 변질시켜서 그래서 성경을 없애버리다가 천주교 때는 1000년 동안 성경을 못 믿게 했다고 하지요. 그거 가지고 믿는 사람들 까막눈 가지고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든지 읽어라 그러는데 변질시켜냐갑니다. 요즘 나오는 개혀개정이라는 건 성경이라고 하기 곤란합니다. 앞으로 성경이 다 없어져버리고 그러면 그것만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물질 성경도 개혁개정으로 바꿔버리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만 어려워지지요. 희석을 시키지요. 주일을 어떻게 해야 진짜냐 예배를 어떻게 봐야하냐 이건 쏙 빼버립니다. 100날 주일날 와봐야 헛일입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하고 말씀을 믿어야하고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성경 말씀 알려면 첫째가 뭡니까. 첫째가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성경 안 읽고 성경을 압니까. 세상 사람이 되었다가도 돌이켜야하는 겁니다. 사람이 완전히 세상에 찌들어서 뼈속까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면 말씀듣고 그걸 보니까 하늘나라 백성인데 새벽 재독에 무엇까지는 살려놔야한다고요, 신앙 양심만은 살려놔야합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나라로 알고 그 나라를 소망하고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세상이 되지 말자 살다 보니까 현실을 살다 보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보면 적응 되어서 환경의 사람이 되는 게 사람인데 그리 안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힘을 쓰고 애를 쓰는 거지요.
지켜내자 이 복음을, 복음은 예수 구원 예수 천당 이게 복음입니다. 예수 구원 예수 천당 이게 복음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만 있고 그런 겁니다. 지금은 다 아니까 더 자라서 기쁨을 가지고 사람이 자라가다보면 한글 배웠다고 다 아는 겁니까. 받침도 들어가야하고, 이 글자 두 글자 모이니까 아하고 버하고 지가 만나니까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것만 알면 되는 겁니까. 아버지를 알아야하지요. 글자 단어 뜻 문장 그리되는 거지요. 점점 알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을 다 알라 그러면 한도 없는 겁니다. 지금은 물리학의 시대지요. 그런 쪽을 공부해야 취업도 쉽고 요즘은 좀 뜸합니까. 문송합니다 그런 말이 있었죠. 문과는 다 죽었다 그랬는데 이과 자연계 쪽은 이용하는 것이고 문과는 주인입니다. 사람이고, 그래서 이게 훨씬 더 깊고 오묘하고 더 그런겁니다. 이과는 물질계통입니다. 이용하는 것이고 인간에 대한 공부, 문과 공부가 되지 않은 이과 세상이 되면 망하는 겁니다. 지금 세상이 탈선한 이유가 그겁니다. 불교도 유교도 몇 천년 전에 나온겁니다. 인문학은 바닥이니까 근처도 못합니다. 물질만 붙들고 앉았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되어져있습니다.
지켜내자 이 복음을 예수 천당 1학년입니다. 기본 구원입니다. 믿은 다음에 믿고 난 다음 어떻게 믿어야하지 그게 건설 구원인겁니다. 믿기는 믿는데 주일 지키고 예배보고 성경 읽고 주일은 예배당은 예배만 보면 되냐 자꾸 더 들어가서 자라가야하는 겁니다. 자라가다 보니까 지금 시대 지킬 그거는 기본이고 그 다음 들어가서 믿는 사람이 바로 믿게 되느냐 이걸 원론적으로 몇 가지로 정리했던가요. 첫째 성경대로 배우고 두 번째 성경대로 살고 세 번째 성경대로 전하고 알맹이는 성경입니다. 누가 지켜야하는가. 어떻게 지켜야하는가. 성경을 배우고 원본이 있으니까 바로 배우고. 그리고 배운 그대로 전하면 이 복음은 지켜지는 겁니다.
하나 더 추가 이미 아는 것인데 그래서 구약 교회가 있었고 광야 교회라는 대표적인 교회가 있었고 광야 교회 이후에는 국가적인 그런 역사적으로 한 도시 전체 제네바 도시 전체가 기독교 교회가 된 칼빈의 목회. 거기서 제네바 전부가 인구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다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법입니다. 제네바시는 술집도 아예 없었죠. 다윗 때는 이스라엘 전부 다 교회입니다. 광야 교회는 모세의 200만명 목회, 그리 되었다가 쇠퇴했고 이루어지면서 나라 전부 다가 교회입니다. 하나님 성전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다윗은 가장 크게 한 목회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월 속에 점점 살다 보니까 1등 목회작 떠나고 하니까 그 큰 교회가 바벨론에 망해버렸습니다.
큰 역사로. 생명이 이어져서 신약교회 시작됐고 열 두 사도가 복음을 전했고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고 유럽으로 가고 영국가고 미국가서 전파되고. 초창기 있었고 복음의 쇠퇴기, 한국 교회는 숫자도 교회도 들어듭니다. 수퍼마컷보다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시뻘건 십자가 저게 뭐냐 하고 입을 벌린다고 하지요. 세계 어느 도시 가도 교회 이렇게 많은 곳이 없다고. 교회 개척이 안됩니다. 현상유지도 어렵습니다. 코로나 못된 정부에서 탄압했고 치명상을 입어서 우리 주변 교회들도 엄청 줄었다고 합니다. 그 심판은 앞으로 받을 심판이 있을 것이고.
교회가 정치화되고 그리되는데 교회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교회의 중심을 가르켜서 등대고 촛대입니다. 등대라는 말은 찬송가 160장입니까,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구원은 여기있다. 인생의 참 행복은 여기있다. 이게 소금이고 빛인데 구원이라는 것은 사후 세계 영생의 구원입니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시대에 우리는 지켜내자는 겁니다. 이 복음을 전할 때는 선교와 전도를 배웠지요. 전도는 무엇이 전도라고 했습니까. 예수 구원 예수 천국이 전도다. 도를 전하는 거, 선교는 뭘 넘어서 해야하는 건가요. 언어 불통 문화 불통 풍습 불통 이걸 좁게하면 1대1이 되는 것이고. 가정도 되는 것이고 사회도 되는 건데 초월하고 참된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다 바치고 가족 희생하고 우리 나라도 선교사들의 대를 이은 희생으로 복음이 전파된겁니다. 수 많은 종들에 하나님의 알맹이로 하고 교회를 세우셔야하는데 그 위해 종들이 있었고 헌신과 희생 땅과 피로 이뤄져 오신 것이 현대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매도 수없이 맞고 바다에 파선하고 수도 없이 많은 희생을 하면서 곳곳에 복음을 전한 것이 사도 바울이고 헌신과 희생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지키는 것도 같은 겁니다. 이 복음을 지키려면 불통을 지켜야합니다. 이 시대 불통이 지금은 참된 복음과 성경대로 참 복음과 이 세상과 이 교계 교회는 교계인데 믿기는 믿는데 믿으라고 전하면 불통입니다. 주일이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로 들어가면 주일 지키는 게 불통입니다. 생활 속에 들어가면 결혼도 불통입니다. 요즘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20대 남녀 청년들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런 건 좋은 겁니다. 성경이 가르치니까 불통입니다. 자녀관 교육관 성공관 행복관 경제관은 무엇이지요, 입을 것이 있는 즉 이 세상은 일반 교계는 성공해야합니다. 이걸 넘어서서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대로 전하는게 이 복음 지켜내는 것이고 불통을 넘어서야하니까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수고가 들어가야하고 헌신이 들어가야하고 희생이 들어가는 겁니다. 천국 복음 지켜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나의 자존심 나의 좋아하는 별별 욕심 이걸 희생하지 아니하고 이걸 지켜내는 거, 십자가지지 않고 성경대로 산다, 전한다 안되는 겁니다. 전투는 전쟁하면 죽는 거 필연입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복음을 지켜내려면 싸워야합니다. 전투의 희생은 필연입니다. 이 세상과 나 자신, 가족까지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참된 종들은 가족들까지 희생하고 종들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정체성이고 할 일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