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9일 금밤
김동민2025-05-09조회 73추천 8
2025년 5월 9일 금밤
찬송: 14장, 168장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번 집회 말씀을 전체적으로 마지막까지 네 글자씩 몇 가지로 배웠습니까. 아홉 가지. 같이 해봅니다. 잊지 말자. 여기 옆에 되지 말자 포함이 됩니다. 지켜내자. 세 번째 애착끊자. 네 번째 자라가자. 다섯 번째. 받쳐 살자. 이 다섯 가지는 하나님 백성임을 말씀하신 것이고 네 가지, 살려 놓자, 소망이다, 깨끗하게, 포기말자. 이 네 가지는 신앙 양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생각은 한 번에 한 번씩 한 주에 하나씩 공과로 작성을 하고 제목도 그렇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중적으로 배운 말씀을 하시면서, 성경 본문을 하시겠습니다. 잊지말자, 되지 말자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특별히 8절부터 아브라함과 이삭과 사라와 야곱이 나옵니다. 믿음의 계통, 야곱. 아브라함이 8졀부터 보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 장래는 미래입니다. 현재는 미래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실 땅. 어디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 인도를 따라가면 어떻게 될지 상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인도 따라서 가는 겁니다. 복이 될지 어려울지 경제가 넉넉할지 곤란할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복된 건 틀림 없는데 어떤 과정이 되지 말지는 알 수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나가면 예수 믿고 복받읍시다. 천국갑시다. 하늘의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늘인데 사후 세계지요. 그러나 그 죽음 넘어 세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실제라는 그 표시판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말씀을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어린 신앙들에게 하는 것이고 영원한 복이고 무궁 세계 큰 복이기 때문에 그 복을 목표하니까 그 과정에는 고진감래라 그러지요. 뭐든지 고생 없이는 성공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과정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최종적이고 영원이지 복은 복이지만은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는 겁니다. 갈 바를 알지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이방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땅이 아닌 약속하신 땅에 우거했습니다. 붙어산다는 겁니다. 나그네로 살았다 자기가 주인이 아니고 주인이 살고 있고 요즘은 전세 달세 그렇게 말하는데 주인은 본집에 살고 옆에 방 하나 빌려서 살았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고 그 옆에 한 군데에 얻어가지고 붙어 살았습니다. 외방이 있는 것같이 가나안을 유업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땅에 갔는데 유업으로 받아야하는데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세상 살 때는 그리 살았고 이삭도 야곱도 그리 살았습니다.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으로 한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약속, 네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우거해서 살았지 주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부였습니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 때 장막이라는 뜻이 집을 짓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천막 펴놓고 살았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천막인지 장막인지 나그네로 살았고 장막집에 살았던 그런지는 생각 좀 해 봐야합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 때 어쨌든 장막에 거하였으니 평생을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몽골인들 그래서 텐트 천막은 몽골쪽 텐트, 그거 아주 유명합니다. 굴뚝을 세울수 있는 것도 다 되어 있으니까 재벌이니까 벽돌로 잘 지어놓고 살았다고 해도 그럴 수 있습니다. 평생 텐트 천막에 살았다고 해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의 자세는 세상에서 모두가 장막 생활로 살았지 자기 나라로 생각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장막에 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입니다. 그 가나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야곱 평생에 그 땅은 안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리 살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말씀하셨는데 왜 안주셨을까. 다윗이 안된다 하니까 성전을 짓지 않았지만 구조 모습을 다 보고 갔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를 다윗에게 다 주셨습니다. 세밀한 그런 거까지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성전의 모습은 다윗에게 알고 갔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성전을 사모한 겁니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하고, 다른 사람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고 죽었는데 모세는 가는 땅 전부를 다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동영상 드론으로 찍어서라면 모르겠는데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모르겠으나 다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안 들어갔어도 다 알고 본 사람입니다.
이런 건 현대 세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삼층천, 낙원에 갔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이들의 깨달음은 부활의 깨달음이 나오는 것처럼 이 땅 말고 지으실 영원한 성이 있다. 그렇게 믿고 간 겁니다. 이게 10절입니다. 터가 있는 성을 받았습니다. 이 성 이름이 뭘까요. 각주를 보면 압니다. 거기 보면 계시록 21장 22절에 보면 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걸 깨달아 안 거지요. 이삭도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나오고 이 사람들은 다 이삭과 야곱과 믿음을 따라가 죽었다. 약속의 말씀은 믿음을 붙들고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야곱에게는 안 주셨으니까 영원한 성을 받았고 내 자손에게 주신다 하신 그 말은 안 믿었느냐, 믿고 간 겁니다.
받지 못하였으되, 약속을 가나안 땅과 별같지만 이 조상들은 어떻게 했다고요, 받지 못했습니다. 자손들 아브라함의 자손은 몇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 하나입니다. 이스라엘도 있고 다른 아들들도 있습니다만은 약속의 자손은 이삭입니다. 그냥 평소 주시길 바라고 하는데 안 주시고 하나만 주시면 그게 이삭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는 쌍둥이 둘을 주셨습니다. 야곱에 가서는 열 둘을 주셨지요.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거짓이 없다 그러니 우리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천만인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잡족까지 합해서 대략 200만명 잡습니다. 천 만인의 두령들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의미를 찾아봐야겠고.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 하셨는데 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수한데. 육의 자손들은 그만큼 안될 거고 비유적인 많이 주시겠다는 것도 있을 수 있겠는데 택자들 전부가 아브라함 자손이라면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리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수하게 많습니다. 믿음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무수하게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주었으며 멀리보고 반드시된다. 이게 100년이 될지 200년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믿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외국인으로 살았다. 나그네로 살았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외국인으로 이삭도 야곱도, 보이는 표면적으로는 주지 않았으니까 이들은 외국인들입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고 가나안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걸 말함이라. 아브라함의 고향이 어디지요.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데야 아람나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아브라함부터 생긴것이고 그 위로는 아람 족속입니다. 아람 나라의 대장 이름 누구지요. 나아만 대장이 아람 나라 사람, 세상인데 이들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이 세상 외국이다 우리는 하늘의 백성이다. 이 세상 외국인이고 나그네다. 잊지 않고 산 겁니다. 이걸 잊지 않고 산 겁니다. 요셉도 17살에 애굽에 살아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가나안은 요셉에게 사랑받았는데 애굽에서는 고생 좀 했으나 총리되고 그때부터 80년 동안 영광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단 한 순간도 애굽나라를 고향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400년 뒤에 유언이 이어져서 가져갑니다. 믿음의 종들이라 산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그리되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애굽에 있어도 가나안에 돌아가면 됩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어디있는 것이라고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168장에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원래 우리의 고향 본향입니다. 집회 말씀 첫 번째 제목에서 잊지 말자. 하나님의 백성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잊지 말자는 그 말은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자칫하면 잊어버리는 겁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 70명이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바로에게 요셉이 가족들 소개했고 바로가 애굽나라 좋은 땅을 일단 살도록 그렇게 줬습니다.
여기서나 약간 옆으로 교회 일을 맡은 분들을 보면 외부인을 접촉하게 되거든요. 외부인들하고 계약을 한다든지 그런 것입니다. 교회 일은 한 번이고 그러니까 일을 맡은 사람이 교회 일을 알뜰하게 챙길려 그러면 무리하게 부탁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손에 안 보고 그럴려면 바깥 사람들에게 할 수 있습니다. 바깥 사람들도 그러하기 때문에 충족시키려면 보일 수 있습니다. 교회일은 내 일이니까 그런지 모르겠으나 손해를 볼 지라도 손해 안 볼려는 그런 사람이 있고 자기가 거래하는 그들에게 미안하게 되고 그리되더라도 교회는 안 보게 되겠다는 사람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건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제가 목회하면서 이 두 종류 있고난 것을 보는 겁니다. 우리 교회 뿐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셉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겠습니까. 자기 가족들인데 교회입니다. 애굽은 거래처입니다. 그런데 가족들 내 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손들이고 교회입니다. 바로에게 말해서 형제들에게 애굽땅이 좋습니다. 목축한다 그러시고 요셉이 애굽 나라의 좋은 땅을 자기 부모와 형제들에게 받도록 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이 그러면서 바로가 볼 때 속 보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읽을 때 한 번 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손해보이냐, 어쨌든 가서 받았고 400여년 사는 동안에 고생 땅을 받았지만은 하사한 것이고 얻은 것이지요. 요셉이 있으니까 그랬지만은 400년을 살다 보니까 살았으니 세월 속에 점점 변해져가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조상들이 떠나고 그런 만큼 가까워졌고 출애굽이 임박했을 때 바닥이었습니다. 이게 예나 직음이나 원리가 그런데 바로가 이스라엘을 학대하게 된 것은 시대적으로 그럴 때가 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 실제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 받을 만큼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면 그 누구도 밟지 못합니다. 민족 말살까지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힌 것은 믿음이 없었다 그 뜻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니까 들어주신 것이고. 그러니가 조상들 요셉도 그렇고 가나안을 그토록 소원했는데 모세가 요셉 유언을 기억할만큼 그런 것이잖습니까. 조상들이 유언했을 것이고 이어져서 모세는 어릴 때 엄마 품에 잠깐 있다가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서 애굽나라의 문물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도 그 말이 말들이 천 마디 만 마디해도 흘러가는 말이 있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요게벳이 간절히 기도하고 그런 거 보면 참 보통 신앙이 아닌 거지요. 잠깐 젖 먹이는 기간 동안에 평생의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온 백성 전부 다가 애굽이 자기 나라 아닌 거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굽에 들어붙어서 갈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굽나라는 남의 나라고 나그네인데 그 사실을 어떻게 했다고요. 애굽 나라에 살다보니까 그 나라는 남의 나라다. 나그네다. 고향을 돌아가야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말자는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거죠. 남의 나라라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하고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각이 인식이고 그 다음 현재 실제 생활에서 실제 그런지 안 그런지 알려면 이 세상과 그때 보면 아는 것이지요. 땅의 사람은 땅에 취하는 것이고 오늘 밤에는 간단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인식을 하고 실제 살아가도록 그래서 돌아갈 본향 생각하고 준비하며 생각하는 게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4장, 168장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번 집회 말씀을 전체적으로 마지막까지 네 글자씩 몇 가지로 배웠습니까. 아홉 가지. 같이 해봅니다. 잊지 말자. 여기 옆에 되지 말자 포함이 됩니다. 지켜내자. 세 번째 애착끊자. 네 번째 자라가자. 다섯 번째. 받쳐 살자. 이 다섯 가지는 하나님 백성임을 말씀하신 것이고 네 가지, 살려 놓자, 소망이다, 깨끗하게, 포기말자. 이 네 가지는 신앙 양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생각은 한 번에 한 번씩 한 주에 하나씩 공과로 작성을 하고 제목도 그렇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중적으로 배운 말씀을 하시면서, 성경 본문을 하시겠습니다. 잊지말자, 되지 말자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특별히 8절부터 아브라함과 이삭과 사라와 야곱이 나옵니다. 믿음의 계통, 야곱. 아브라함이 8졀부터 보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 장래는 미래입니다. 현재는 미래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실 땅. 어디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 인도를 따라가면 어떻게 될지 상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인도 따라서 가는 겁니다. 복이 될지 어려울지 경제가 넉넉할지 곤란할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복된 건 틀림 없는데 어떤 과정이 되지 말지는 알 수 없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나가면 예수 믿고 복받읍시다. 천국갑시다. 하늘의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늘인데 사후 세계지요. 그러나 그 죽음 넘어 세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실제라는 그 표시판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말씀을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어린 신앙들에게 하는 것이고 영원한 복이고 무궁 세계 큰 복이기 때문에 그 복을 목표하니까 그 과정에는 고진감래라 그러지요. 뭐든지 고생 없이는 성공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과정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최종적이고 영원이지 복은 복이지만은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는 겁니다. 갈 바를 알지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이방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땅이 아닌 약속하신 땅에 우거했습니다. 붙어산다는 겁니다. 나그네로 살았다 자기가 주인이 아니고 주인이 살고 있고 요즘은 전세 달세 그렇게 말하는데 주인은 본집에 살고 옆에 방 하나 빌려서 살았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살고 있고 그 옆에 한 군데에 얻어가지고 붙어 살았습니다. 외방이 있는 것같이 가나안을 유업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땅에 갔는데 유업으로 받아야하는데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세상 살 때는 그리 살았고 이삭도 야곱도 그리 살았습니다.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으로 한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약속, 네 자손에게 유업으로 주겠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우거해서 살았지 주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부였습니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 때 장막이라는 뜻이 집을 짓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천막 펴놓고 살았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천막인지 장막인지 나그네로 살았고 장막집에 살았던 그런지는 생각 좀 해 봐야합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 때 어쨌든 장막에 거하였으니 평생을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몽골인들 그래서 텐트 천막은 몽골쪽 텐트, 그거 아주 유명합니다. 굴뚝을 세울수 있는 것도 다 되어 있으니까 재벌이니까 벽돌로 잘 지어놓고 살았다고 해도 그럴 수 있습니다. 평생 텐트 천막에 살았다고 해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의 자세는 세상에서 모두가 장막 생활로 살았지 자기 나라로 생각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장막에 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입니다. 그 가나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야곱 평생에 그 땅은 안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리 살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말씀하셨는데 왜 안주셨을까. 다윗이 안된다 하니까 성전을 짓지 않았지만 구조 모습을 다 보고 갔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를 다윗에게 다 주셨습니다. 세밀한 그런 거까지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성전의 모습은 다윗에게 알고 갔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성전을 사모한 겁니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하고, 다른 사람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고 죽었는데 모세는 가는 땅 전부를 다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동영상 드론으로 찍어서라면 모르겠는데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모르겠으나 다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안 들어갔어도 다 알고 본 사람입니다.
이런 건 현대 세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삼층천, 낙원에 갔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이들의 깨달음은 부활의 깨달음이 나오는 것처럼 이 땅 말고 지으실 영원한 성이 있다. 그렇게 믿고 간 겁니다. 이게 10절입니다. 터가 있는 성을 받았습니다. 이 성 이름이 뭘까요. 각주를 보면 압니다. 거기 보면 계시록 21장 22절에 보면 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걸 깨달아 안 거지요. 이삭도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나오고 이 사람들은 다 이삭과 야곱과 믿음을 따라가 죽었다. 약속의 말씀은 믿음을 붙들고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야곱에게는 안 주셨으니까 영원한 성을 받았고 내 자손에게 주신다 하신 그 말은 안 믿었느냐, 믿고 간 겁니다.
받지 못하였으되, 약속을 가나안 땅과 별같지만 이 조상들은 어떻게 했다고요, 받지 못했습니다. 자손들 아브라함의 자손은 몇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 하나입니다. 이스라엘도 있고 다른 아들들도 있습니다만은 약속의 자손은 이삭입니다. 그냥 평소 주시길 바라고 하는데 안 주시고 하나만 주시면 그게 이삭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는 쌍둥이 둘을 주셨습니다. 야곱에 가서는 열 둘을 주셨지요.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거짓이 없다 그러니 우리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천만인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잡족까지 합해서 대략 200만명 잡습니다. 천 만인의 두령들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의미를 찾아봐야겠고.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 하셨는데 별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수한데. 육의 자손들은 그만큼 안될 거고 비유적인 많이 주시겠다는 것도 있을 수 있겠는데 택자들 전부가 아브라함 자손이라면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리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수하게 많습니다. 믿음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무수하게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주었으며 멀리보고 반드시된다. 이게 100년이 될지 200년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믿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외국인으로 살았다. 나그네로 살았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외국인으로 이삭도 야곱도, 보이는 표면적으로는 주지 않았으니까 이들은 외국인들입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고 가나안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걸 말함이라. 아브라함의 고향이 어디지요.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데야 아람나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아브라함부터 생긴것이고 그 위로는 아람 족속입니다. 아람 나라의 대장 이름 누구지요. 나아만 대장이 아람 나라 사람, 세상인데 이들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이 세상 외국이다 우리는 하늘의 백성이다. 이 세상 외국인이고 나그네다. 잊지 않고 산 겁니다. 이걸 잊지 않고 산 겁니다. 요셉도 17살에 애굽에 살아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가나안은 요셉에게 사랑받았는데 애굽에서는 고생 좀 했으나 총리되고 그때부터 80년 동안 영광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단 한 순간도 애굽나라를 고향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400년 뒤에 유언이 이어져서 가져갑니다. 믿음의 종들이라 산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그리되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애굽에 있어도 가나안에 돌아가면 됩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어디있는 것이라고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168장에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원래 우리의 고향 본향입니다. 집회 말씀 첫 번째 제목에서 잊지 말자. 하나님의 백성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잊지 말자는 그 말은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자칫하면 잊어버리는 겁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 70명이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바로에게 요셉이 가족들 소개했고 바로가 애굽나라 좋은 땅을 일단 살도록 그렇게 줬습니다.
여기서나 약간 옆으로 교회 일을 맡은 분들을 보면 외부인을 접촉하게 되거든요. 외부인들하고 계약을 한다든지 그런 것입니다. 교회 일은 한 번이고 그러니까 일을 맡은 사람이 교회 일을 알뜰하게 챙길려 그러면 무리하게 부탁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손에 안 보고 그럴려면 바깥 사람들에게 할 수 있습니다. 바깥 사람들도 그러하기 때문에 충족시키려면 보일 수 있습니다. 교회일은 내 일이니까 그런지 모르겠으나 손해를 볼 지라도 손해 안 볼려는 그런 사람이 있고 자기가 거래하는 그들에게 미안하게 되고 그리되더라도 교회는 안 보게 되겠다는 사람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건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제가 목회하면서 이 두 종류 있고난 것을 보는 겁니다. 우리 교회 뿐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셉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겠습니까. 자기 가족들인데 교회입니다. 애굽은 거래처입니다. 그런데 가족들 내 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손들이고 교회입니다. 바로에게 말해서 형제들에게 애굽땅이 좋습니다. 목축한다 그러시고 요셉이 애굽 나라의 좋은 땅을 자기 부모와 형제들에게 받도록 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이 그러면서 바로가 볼 때 속 보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읽을 때 한 번 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손해보이냐, 어쨌든 가서 받았고 400여년 사는 동안에 고생 땅을 받았지만은 하사한 것이고 얻은 것이지요. 요셉이 있으니까 그랬지만은 400년을 살다 보니까 살았으니 세월 속에 점점 변해져가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조상들이 떠나고 그런 만큼 가까워졌고 출애굽이 임박했을 때 바닥이었습니다. 이게 예나 직음이나 원리가 그런데 바로가 이스라엘을 학대하게 된 것은 시대적으로 그럴 때가 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 실제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 받을 만큼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면 그 누구도 밟지 못합니다. 민족 말살까지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힌 것은 믿음이 없었다 그 뜻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니까 들어주신 것이고. 그러니가 조상들 요셉도 그렇고 가나안을 그토록 소원했는데 모세가 요셉 유언을 기억할만큼 그런 것이잖습니까. 조상들이 유언했을 것이고 이어져서 모세는 어릴 때 엄마 품에 잠깐 있다가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서 애굽나라의 문물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도 그 말이 말들이 천 마디 만 마디해도 흘러가는 말이 있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요게벳이 간절히 기도하고 그런 거 보면 참 보통 신앙이 아닌 거지요. 잠깐 젖 먹이는 기간 동안에 평생의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온 백성 전부 다가 애굽이 자기 나라 아닌 거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굽에 들어붙어서 갈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굽나라는 남의 나라고 나그네인데 그 사실을 어떻게 했다고요. 애굽 나라에 살다보니까 그 나라는 남의 나라다. 나그네다. 고향을 돌아가야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말자는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거죠. 남의 나라라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하고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각이 인식이고 그 다음 현재 실제 생활에서 실제 그런지 안 그런지 알려면 이 세상과 그때 보면 아는 것이지요. 땅의 사람은 땅에 취하는 것이고 오늘 밤에는 간단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인식을 하고 실제 살아가도록 그래서 돌아갈 본향 생각하고 준비하며 생각하는 게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