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04-06조회 112추천 10
2025년 4월 6일 주일 오전
본문: 로마서 8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과거에 아무리 열심하고 잘 살아도 현재 못 살면 헛일입니다. 모든 생활 전부 현재에 집중됩니다. 현재에 거기서 우리의 전부가 다 들어있습니다. 영원한 것들이 다 현재에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 현재에 현실에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에 적응 되는 게 사람입니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 가면 말투가 서울 말투로 바뀝니다. 그런데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여전히 말투가 경상도 말투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져서 소돔 고모라로 갔지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와서 정말 다 있어서 유일한 신앙의 동질입니다. 마지막에 소돔 고모라로 가버립니다. 환경에 피동돼서 날마다 죄짓고 하는 걸 보고 들이니까 상했더라. 상해버렸습니다. 좋은 환경에 살다 보면 좋은 환경에 젖어들게 됩니다. 부유하게 살다보면 젖어듭니다. 그래서 눈이 높다는 말은 예사가 아닙니다. 환경이 살다 보니까 그렇게 눈이 높아지는 겁니다. 좋은 환경이 비싼 물건을 접하다보면 싸구려는 안 봅니다.
직장이 물이고 학업이 물이고 건강이 물이고 사업이 물이고 가정이 물이고 그게 물입니다. 그 물을 먹어야하는데 그것에게 머리를 숙여버렸습니다. 그거 중심의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머지 300명은 물을 먹어도 당당하게, 군대에서 첫 번째 훈련이 안 죽는 훈련입니다. 안 다치는 훈련, 상식이지요 군인이 보초없는 부대는 밥입니다. 어떤 세상에도 어떤 환경에도 무릎 꿇지말고 절하지 말고 그리고 그것의 것이 되지 말고 그러면 끝이 납니다. 믿는 사람은 이랬든 저랬든 보기에는 좀 그래도 그랬는데 뜻이 있는가보다.
무릎 꿇지 말고 그것의 사람이 되지 말고 자기 마음을 정복하고 다스려서 그렇게 하는데 오늘 말씀은 지난 주는 현재를 생각해봤고 그 전은 과거를 생각해봤고 이번은 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한다고요, 소망이라는 말은 바랄 소자 바랄 망자입니다. 미래에 속한 겁니다. 현재에 앞날을 더 나은 더 좋은 앞날을 바라보는 걸 가르켜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소망의 구원이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어릴 때 젊은 날은 바라보고, 미래를 마라보는 걸 소망이라. 소망이란 기독교의 소몽이란 이 세상 소망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후 세계를 말합니다. 그때를 말하는 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과 꿈이라는 게 비슷한 것이 있을 수가 있는데 헛된 걸 말합니다. 소위 말하면 꿈을 말할 때 헛된 꿈입니다. 확률이 적은 그런 건 되는 게 아닌 거죠. 성경에는 제비 뽑기가 나오는 겁니다. 사도들이 예수님 팔아먹고 죽은 사람이 누구죠, 가롯 유다. 직분이 뭡니까. 사도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불렀습니다.
복권, 수십만, 수백만의 일, 그런 걸 하겠다고 노리고 있으면 그걸 가르켜 허황된 꿈이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아이돌의 꿈들 그거 헛된 꿈들. 헛된 꿈은 사람이 가질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가르켜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자기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세상 상식으로 죽음 너머 이 세상 상식으로 죽음너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사후 세계를 소망하고 그런 분들에게는 살아생전에 죽음 너머를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그게 셋째 하늘이라고 합니다. 삼층천이라고 합니다. 그 셋째 하늘은 믿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신령한 세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사후세계를 이런 세계가 있다고 보여주시는 거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 60만명 중에서 들어간 사람이 몇 명이죠 두 명이죠. 모세는 못 들어갔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필요에 따라서 보여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입신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의 한국의 앞날이 중립국처럼 될거다. 저 어릴 때 한국은 철저한 반공 국가였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가 전쟁 끝난지 얼마 안되어서입니다. 반공 멸공이라는 말이 세뇌가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때 백 목사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말씀을 다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립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 소망의 구원입니다. 소망의 구원으로 얻었으되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 소망이 아닙니다.
말씀 잘 지키면 좋은 직장은 주시겠다 사업을 성공시키겠다. 이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젖먹이 소망입니다. 이 세상 소망은 안 믿는 사람도 많이 받습니다. 경제 행복 세상 소망은 믿는 사람의 진짜 소망이 아닙니다. 이 소망은 언제 소망이라고요. 사후 세계. 죽음 너머의 세계. 죽음 너머 세계가 우리 소망입니다. 가봤습니까. 그런데 가본 사람도 있고 안 가본 사람도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가는 것은 믿음이란 믿어지는 게 믿음입니다. 믿어야 믿어지고 안 믿어야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 믿는 사람은 믿음일까 믿어지네 하니까 되네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 겁니다. 우리 소망은 이 세상 소망이 아닙니다. 알 수 있는가 믿어지는가, 성경이 믿어지는 방법은 믿음. 믿으면 믿어지고 안 믿으면 안 믿어집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큰 복 있는 사람이고 안 믿어지면 안타깝지만 행복하게 잘 살아도 불행하다 불쌍하다. 보이는 소망이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보이는 소망, 돈, 직장, 여행하는 거, 연애, 권력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서도 못 느낍니다. 문제가 많은 겁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치고 향락에 미치고 공부에 미치고 가정에 미치고 다 미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걸 말하는데 미친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말씀 본문을 생각해봤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속한겁니다. 우리 미래는 둘이 있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보지 않았는데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가 있습니다. 올지 안올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절대성이고 그런 겁니다. 그게 바로 늙음이고 죽음입니다. 심판입니다. 무궁 세계입니다. 우리 소망은 불확실한 미래 이 세상 미래는 절대성은 불가피한 그때 소망이 우리 소망 그게 우리 소망입니다.
오후에 생각해보시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 로마서 8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과거에 아무리 열심하고 잘 살아도 현재 못 살면 헛일입니다. 모든 생활 전부 현재에 집중됩니다. 현재에 거기서 우리의 전부가 다 들어있습니다. 영원한 것들이 다 현재에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 현재에 현실에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에 적응 되는 게 사람입니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 가면 말투가 서울 말투로 바뀝니다. 그런데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여전히 말투가 경상도 말투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져서 소돔 고모라로 갔지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와서 정말 다 있어서 유일한 신앙의 동질입니다. 마지막에 소돔 고모라로 가버립니다. 환경에 피동돼서 날마다 죄짓고 하는 걸 보고 들이니까 상했더라. 상해버렸습니다. 좋은 환경에 살다 보면 좋은 환경에 젖어들게 됩니다. 부유하게 살다보면 젖어듭니다. 그래서 눈이 높다는 말은 예사가 아닙니다. 환경이 살다 보니까 그렇게 눈이 높아지는 겁니다. 좋은 환경이 비싼 물건을 접하다보면 싸구려는 안 봅니다.
직장이 물이고 학업이 물이고 건강이 물이고 사업이 물이고 가정이 물이고 그게 물입니다. 그 물을 먹어야하는데 그것에게 머리를 숙여버렸습니다. 그거 중심의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머지 300명은 물을 먹어도 당당하게, 군대에서 첫 번째 훈련이 안 죽는 훈련입니다. 안 다치는 훈련, 상식이지요 군인이 보초없는 부대는 밥입니다. 어떤 세상에도 어떤 환경에도 무릎 꿇지말고 절하지 말고 그리고 그것의 것이 되지 말고 그러면 끝이 납니다. 믿는 사람은 이랬든 저랬든 보기에는 좀 그래도 그랬는데 뜻이 있는가보다.
무릎 꿇지 말고 그것의 사람이 되지 말고 자기 마음을 정복하고 다스려서 그렇게 하는데 오늘 말씀은 지난 주는 현재를 생각해봤고 그 전은 과거를 생각해봤고 이번은 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한다고요, 소망이라는 말은 바랄 소자 바랄 망자입니다. 미래에 속한 겁니다. 현재에 앞날을 더 나은 더 좋은 앞날을 바라보는 걸 가르켜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소망의 구원이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어릴 때 젊은 날은 바라보고, 미래를 마라보는 걸 소망이라. 소망이란 기독교의 소몽이란 이 세상 소망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후 세계를 말합니다. 그때를 말하는 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소망과 꿈이라는 게 비슷한 것이 있을 수가 있는데 헛된 걸 말합니다. 소위 말하면 꿈을 말할 때 헛된 꿈입니다. 확률이 적은 그런 건 되는 게 아닌 거죠. 성경에는 제비 뽑기가 나오는 겁니다. 사도들이 예수님 팔아먹고 죽은 사람이 누구죠, 가롯 유다. 직분이 뭡니까. 사도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불렀습니다.
복권, 수십만, 수백만의 일, 그런 걸 하겠다고 노리고 있으면 그걸 가르켜 허황된 꿈이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아이돌의 꿈들 그거 헛된 꿈들. 헛된 꿈은 사람이 가질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가르켜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자기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세상 상식으로 죽음 너머 이 세상 상식으로 죽음너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사후 세계를 소망하고 그런 분들에게는 살아생전에 죽음 너머를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그게 셋째 하늘이라고 합니다. 삼층천이라고 합니다. 그 셋째 하늘은 믿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신령한 세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사후세계를 이런 세계가 있다고 보여주시는 거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 60만명 중에서 들어간 사람이 몇 명이죠 두 명이죠. 모세는 못 들어갔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필요에 따라서 보여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입신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의 한국의 앞날이 중립국처럼 될거다. 저 어릴 때 한국은 철저한 반공 국가였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가 전쟁 끝난지 얼마 안되어서입니다. 반공 멸공이라는 말이 세뇌가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때 백 목사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말씀을 다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립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 소망의 구원입니다. 소망의 구원으로 얻었으되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 소망이 아닙니다.
말씀 잘 지키면 좋은 직장은 주시겠다 사업을 성공시키겠다. 이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젖먹이 소망입니다. 이 세상 소망은 안 믿는 사람도 많이 받습니다. 경제 행복 세상 소망은 믿는 사람의 진짜 소망이 아닙니다. 이 소망은 언제 소망이라고요. 사후 세계. 죽음 너머의 세계. 죽음 너머 세계가 우리 소망입니다. 가봤습니까. 그런데 가본 사람도 있고 안 가본 사람도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가는 것은 믿음이란 믿어지는 게 믿음입니다. 믿어야 믿어지고 안 믿어야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 믿는 사람은 믿음일까 믿어지네 하니까 되네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지는 겁니다. 우리 소망은 이 세상 소망이 아닙니다. 알 수 있는가 믿어지는가, 성경이 믿어지는 방법은 믿음. 믿으면 믿어지고 안 믿으면 안 믿어집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큰 복 있는 사람이고 안 믿어지면 안타깝지만 행복하게 잘 살아도 불행하다 불쌍하다. 보이는 소망이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보이는 소망, 돈, 직장, 여행하는 거, 연애, 권력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서도 못 느낍니다. 문제가 많은 겁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치고 향락에 미치고 공부에 미치고 가정에 미치고 다 미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걸 말하는데 미친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말씀 본문을 생각해봤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속한겁니다. 우리 미래는 둘이 있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보지 않았는데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가 있습니다. 올지 안올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절대성이고 그런 겁니다. 그게 바로 늙음이고 죽음입니다. 심판입니다. 무궁 세계입니다. 우리 소망은 불확실한 미래 이 세상 미래는 절대성은 불가피한 그때 소망이 우리 소망 그게 우리 소망입니다.
오후에 생각해보시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