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2-16조회 84추천 9
2025년 2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86장, 87장
본문: 신명기 10장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랑이 대상이 둘이죠.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사람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부를 달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진충의 신앙생활. 본문에서 이스라엘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름은 백성 전부 다입니다. 백성 전부다인데 내면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단수로 기억되어있습니다. 너희가 아니라 너라고 꼭 집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수로 그러셨으니까 뭘 하셨느냐. 모세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전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하고 나서 40년 즈음 된 시간입니다. 열 두 사람을 보냈는데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그들 다 죽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징계를 받아서 너희들이 사로잡히게 하겠다는 그 자손들만 그렇고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죽을 것이다. 다시 광야로 들어가서 38년 지났으니까 그랬을겁니다. 그래서 40년 세월을 회상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아 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세를 통해서 전부를 말씀하시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스라엘아, 단수로 불렀으니까 누구를 불렀느냐.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거죠.
전체도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물질로 된 모든 존재는 전부다 개체와 전체가 다 합해져있습니다. 복합처럼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다. 영은 물질이 아닙니다. 다른 무생물까지도 바위 돌멩이는 무생물입니다. 주먹만한 돌멩이를 깨면 가루가 되겠지요. 하나 하나 전부 다가 돌멩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을 할 수 있습니다. 원리를 감안해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개체는 전체를 이루고 있고 개체들의 모임이 전체다. 이론적으로 맞습니까. 논리적으로. 분해하지 못하는 물질이 있습니까. 다이아몬드가 단단한데 다이아몬드는 못 깹니까. 물도 분해된다고 합니다. 모든 존재는 개체들의 종합이 되어있고 하나님의 교회는 물질이 아니나 물질을 통해서 초월한 존재를 만들어 가는게 우리의 구원이다.
이스라엘은 전체를 하나로 불렀습니다. 들어있는 겁니다. 개체는 전체고 전체는 개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 나 외에 다른 존재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수형이라고 그럽니다. 뿌리는 안 보이니까 두고 둥치와 가지가 있습니다. 둥치에서 아무리 잘 하고 좋아도 그 둥치에서 가지를 잘라버리면 그 나무는 기둥 밖에 안 됩니다. 또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혼자서는 못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게 뇌와 심장입니다. 팔 다리 없어도 사람 삽니다. 살기는 사는 거지요. 사람살이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뇌가 없고 심장이 없으면 죽는 건데 팔 다리와 비교 못할 만큼 차이가 있는 건데 팔 다리 없는 사람의 몸과 활동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거지요. 손가락 중에서 손톱이 빠지면 그 손은 지장이 굉장히 많습니다. 손톱 하나 빠지는 게 뭔 대수입니까. 그게 사람의 몸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보이는 교회.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정의를 하나님을 진리로 사는 하나님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 우리들이 교회인데 이런 사람들 모임이 교회인데 보잘 거 없는 손톱 하나 같은 보이지 않는 그런 거 하나 빠지면 아무지장 없는 거 같은데 그래서 목회자가 천 명 교인인데 열 명 줄어버려도 표가 안납니다. 서부교회 한 번 갔는데 삼십 몇 년 만에 들어가봤습니다. 울더만요 보니까. 그 넓은 예배당이 텅텅 비어있고 과거 목사님 계실 때 7천 8천이었는데 지금은 300명이라고 합니다. 백목사님을 이을 사람은 없다고 보되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충성하면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들 마음 가지고 빠져버리면 언제 그럴 거 같습니다. 그게 교회라는 것이고 확대하면은 모든 물질은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은 이스라엘아 그러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당연한 이름 그들을 다시 부른 것은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아 죽으시고 통곡을 하고 부활하신 걸 보고 난 다음인데 다시 고기잡으러 간 겁니다. 옛날의 신앙으로. 심히 통곡을 하고 뜨거운 각오를 결심했을 건데 옛날로 돌아갑니다. 옛사람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러면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양떼를 챙기겠지만 살다보면 지금처럼 옛사람처럼 돌아가는데 약해서 어쩌다보니까 시험에 들어서 있을지라도 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은 그 뜻을 상기시켜주는 겁니다. 너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을 이기려고 달려들다가 죽었는데 살려준. 이스라엘아.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벌써 버렸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택한 백성입니다. 뜻으로 택한 백성입니다. 누구로 인해서 누구로 말미암아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의 뜻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자존의 뜻으로 정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기어코라도 끌어다가 천국에 끌어넣는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믿는 사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목적 투자하신 많은 기대와 소망 이런 거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우리들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한달동안 일했으니까 월급을 내놓으십시오. 좋은 성적이 나와야하는데 안 나오면 불만이 생기시겠지요. 하나님께서 할만하시니까 하는 것이고 그 외에는 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요구하신 요구에 동기목적이 있나. 부모님이 자녀 이야기하는 거처럼 참된 스승님이 자기 제자인 거 하는 거처럼 사랑입니다. 그 요구에 동기 목적이 들어가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13절입니까 내가 어느 날 내 행복을 위하여.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의 이유입니다. 행복이란 기쁨이 들었고 만족이 들었습니다. 만족 없는 행복도 없습니다. 감사 없는 행복 소망 없는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기쁨 감사 만족 소망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행복한겁니다. 이게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고 무한한 것입니다. 이게 참된 기쁨이고 이 행복을 위하여 이걸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날 너의 행복을 위하여 명하라.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 내게 양심 통해서 주신 모든 말씀. 믿는 사람이 생명을 알고 써서 1학년은 1학년 대로 2학년은 2학년 대로 밝혀주시기 때문에 자기가 진실로 참으면 알게 되어져있습니다. 몰라서 한 것은 부문입니다. 알게되어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이고 법칙입니다. 바로만 되어있으면 마음의 의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지는 마음에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중요한 것이지요. 마음 속에 너희 의지를 다하고 감정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따라가는 것. 너 자신의 인격 너 자신의 성품 그렇게 순종하라.
오늘 말씀의 핵심이 진충이라고 했습니다. 다할 진자. 진리의 진자는 같은 진 자인데 진충할 때는 다할 진 자입니다. 다 해서 충성하는 걸 진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려면 자기는 다 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진충이어야 가능하고 진실과 진충은 다릅니다. 진실은 아예 말하자면 알멩이 내면이고 방향이고 진충은 과정입니다. 방법이고 진실은 진충으로 하는 것이다. 진실을 진충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진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진실이 되는 것은 헛일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을 행한 그럴 때 우리 신앙이 바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 본인들이 전투하는 곳을 전장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는 현장입니다. 그런 현장들이 그걸 다른 말로 말하면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각자 자기 처소, 내 몸이 하는 것이 하는 겁니다. 마음에 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당은 여기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현실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현장입니다. 현장마다 다 환경이 다르지요.
학교 갈 때는 교과서 들고 가방 들고가고 수업할 때 쓰는 가방 메고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하겠다 안 맞는 거지요. 전투할려면 전투복으로, 현장마다 각각 다른 곳이고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준비 대처가 다 달라지게 되는 거지요. 달라지니까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고 보는 게 달라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학교가서 공부하는 자세 가정주부가 반찬 식사준비하는 자세 장사하는 자세 대화하는 자세 연구하는 자세 전부 다 상황마다 자세가 다른 겁니다. 그 전부다가 안 믿는 사람들은 목적한 바 그렇게 대처하고 계산하고 판단하고 처리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 전부다가 신앙에 굉장히 전부 다가 대처의 외부적인 모습은 안 믿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비슷할지라도 내면의 법칙 중심은 하나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내 몸의 현실은 신앙의 현장입니다. 신앙의 현장은 상황따라 장소따라서 상대하는 방법이 그 모습은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학교가면 안 믿는 사람들도 배우고 공부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회사 가면은 그렇습니다.
겉 모습은 같은데 내면의 중심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법칙에 따라서 공부도 법칙대로 말씀을 생각하면서 말씀에 집중합니다. 이건 때와 상황을 막론하고 집중합니다. 단 장소마다 다르겠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말씀 법칙이라는 것은 같습니다. 이게 빠져버리면 이게 진실입니다. 이게 1차적으로 강조한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 생활은 언행심사 사리판단 취사선택 희로애락 그런 것들이지요. 그 모든 것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법칙대로 해야합니다. 평가가 되고 판단이 되고 취사 선택이 되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탈선된 것이고 없는 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된 것만 진실입니다.
금은 금이라야 금입니다. 아무리 금 색이라도 아닌 것은 의미 없습니다. 금 한 돈에 30년 전에 3만 5천원인데 60만원이라고 합니다. 몰랐는데 1g얼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실로 만들면 길이가 3km나 됩니다. 금 1g으로 펴면은 아주 작은 소량의 금을 펴면 합니다. 그렇게 값이 비싸다는 겁니다. 어떤 물질이 그리 되겠습니까. 금은 금이라야 금입니다. 순금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중요해봐야 금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만 신앙입니다. 말씀대로 되지 못하면 그런 겁니다. 진실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현장에서 우리가 살아갈 것은 장소와 상황과 대상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다음 두 번째 자기의 전부를 다 다르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겁니다. 내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하고. 어느정도로 다 해보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있냐. 그렇게 자기 마음 정성 성품 뜻 총력을 다해서 찾아갔느냐. 그걸 위해서 전부 다 기다리느냐. 전부를 다 가르쳐서 악습을 꺾어봤느냐. 노력해봤느냐. 습성도 이기고 그런 건데 전부 다 못하면 안된 것이 우리 생활의 것입니다. 탄식이 나오지 않을까요. 갈수록 탄식이 많아집니다. 기도할 때 어느정도로 기울여서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젊었을 때 은혜 받고 그러면 정말 그러는데 지나고나서 철없는 기도인데 그게 첫사랑 처음사랑 기도입니다. 어느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해야하는지. 금식기도란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피곤한 것이고 기도해보셨습니까. 그렇게 몇 시간씩. 예배 마치고 기도하면 10시 되고 12시 되고 그러는데 그렇게 기도하는 분들이 다 성자 성녀들 위대한 분들입니다. 성경을 어느정도로 읽어보셨습니까.
그래서 진실은 진충으로 들을겁니다. 그 방향이 진실이 아니면 헛일이 됩니다. 힘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믿어야합니다. 그래서 각자 하는 현실 이것을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해야한고요. 반드시 말씀대로 되어야합니다. 법칙이고 도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대로 하되 진충으로 해야합니다.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 전부를 다해서 신앙의 보배가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마련되게 됩니다. 그 보배가 있는 사람들은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 사람이 더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86장, 87장
본문: 신명기 10장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랑이 대상이 둘이죠.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사람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부를 달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진충의 신앙생활. 본문에서 이스라엘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름은 백성 전부 다입니다. 백성 전부다인데 내면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단수로 기억되어있습니다. 너희가 아니라 너라고 꼭 집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수로 그러셨으니까 뭘 하셨느냐. 모세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전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하고 나서 40년 즈음 된 시간입니다. 열 두 사람을 보냈는데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그들 다 죽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징계를 받아서 너희들이 사로잡히게 하겠다는 그 자손들만 그렇고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죽을 것이다. 다시 광야로 들어가서 38년 지났으니까 그랬을겁니다. 그래서 40년 세월을 회상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아 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세를 통해서 전부를 말씀하시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스라엘아, 단수로 불렀으니까 누구를 불렀느냐.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거죠.
전체도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물질로 된 모든 존재는 전부다 개체와 전체가 다 합해져있습니다. 복합처럼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다. 영은 물질이 아닙니다. 다른 무생물까지도 바위 돌멩이는 무생물입니다. 주먹만한 돌멩이를 깨면 가루가 되겠지요. 하나 하나 전부 다가 돌멩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을 할 수 있습니다. 원리를 감안해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개체는 전체를 이루고 있고 개체들의 모임이 전체다. 이론적으로 맞습니까. 논리적으로. 분해하지 못하는 물질이 있습니까. 다이아몬드가 단단한데 다이아몬드는 못 깹니까. 물도 분해된다고 합니다. 모든 존재는 개체들의 종합이 되어있고 하나님의 교회는 물질이 아니나 물질을 통해서 초월한 존재를 만들어 가는게 우리의 구원이다.
이스라엘은 전체를 하나로 불렀습니다. 들어있는 겁니다. 개체는 전체고 전체는 개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 나 외에 다른 존재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수형이라고 그럽니다. 뿌리는 안 보이니까 두고 둥치와 가지가 있습니다. 둥치에서 아무리 잘 하고 좋아도 그 둥치에서 가지를 잘라버리면 그 나무는 기둥 밖에 안 됩니다. 또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혼자서는 못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게 뇌와 심장입니다. 팔 다리 없어도 사람 삽니다. 살기는 사는 거지요. 사람살이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뇌가 없고 심장이 없으면 죽는 건데 팔 다리와 비교 못할 만큼 차이가 있는 건데 팔 다리 없는 사람의 몸과 활동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거지요. 손가락 중에서 손톱이 빠지면 그 손은 지장이 굉장히 많습니다. 손톱 하나 빠지는 게 뭔 대수입니까. 그게 사람의 몸이고 이게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보이는 교회.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정의를 하나님을 진리로 사는 하나님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 우리들이 교회인데 이런 사람들 모임이 교회인데 보잘 거 없는 손톱 하나 같은 보이지 않는 그런 거 하나 빠지면 아무지장 없는 거 같은데 그래서 목회자가 천 명 교인인데 열 명 줄어버려도 표가 안납니다. 서부교회 한 번 갔는데 삼십 몇 년 만에 들어가봤습니다. 울더만요 보니까. 그 넓은 예배당이 텅텅 비어있고 과거 목사님 계실 때 7천 8천이었는데 지금은 300명이라고 합니다. 백목사님을 이을 사람은 없다고 보되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충성하면 그렇게까지 허무하게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들 마음 가지고 빠져버리면 언제 그럴 거 같습니다. 그게 교회라는 것이고 확대하면은 모든 물질은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은 이스라엘아 그러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당연한 이름 그들을 다시 부른 것은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아 죽으시고 통곡을 하고 부활하신 걸 보고 난 다음인데 다시 고기잡으러 간 겁니다. 옛날의 신앙으로. 심히 통곡을 하고 뜨거운 각오를 결심했을 건데 옛날로 돌아갑니다. 옛사람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러면서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양떼를 챙기겠지만 살다보면 지금처럼 옛사람처럼 돌아가는데 약해서 어쩌다보니까 시험에 들어서 있을지라도 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은 그 뜻을 상기시켜주는 겁니다. 너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을 이기려고 달려들다가 죽었는데 살려준. 이스라엘아.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벌써 버렸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택한 백성입니다. 뜻으로 택한 백성입니다. 누구로 인해서 누구로 말미암아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의 뜻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자존의 뜻으로 정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기어코라도 끌어다가 천국에 끌어넣는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믿는 사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목적 투자하신 많은 기대와 소망 이런 거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우리들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한달동안 일했으니까 월급을 내놓으십시오. 좋은 성적이 나와야하는데 안 나오면 불만이 생기시겠지요. 하나님께서 할만하시니까 하는 것이고 그 외에는 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요구하신 요구에 동기목적이 있나. 부모님이 자녀 이야기하는 거처럼 참된 스승님이 자기 제자인 거 하는 거처럼 사랑입니다. 그 요구에 동기 목적이 들어가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13절입니까 내가 어느 날 내 행복을 위하여.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의 이유입니다. 행복이란 기쁨이 들었고 만족이 들었습니다. 만족 없는 행복도 없습니다. 감사 없는 행복 소망 없는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기쁨 감사 만족 소망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행복한겁니다. 이게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고 무한한 것입니다. 이게 참된 기쁨이고 이 행복을 위하여 이걸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날 너의 행복을 위하여 명하라.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 내게 양심 통해서 주신 모든 말씀. 믿는 사람이 생명을 알고 써서 1학년은 1학년 대로 2학년은 2학년 대로 밝혀주시기 때문에 자기가 진실로 참으면 알게 되어져있습니다. 몰라서 한 것은 부문입니다. 알게되어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이고 법칙입니다. 바로만 되어있으면 마음의 의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지는 마음에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중요한 것이지요. 마음 속에 너희 의지를 다하고 감정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따라가는 것. 너 자신의 인격 너 자신의 성품 그렇게 순종하라.
오늘 말씀의 핵심이 진충이라고 했습니다. 다할 진자. 진리의 진자는 같은 진 자인데 진충할 때는 다할 진 자입니다. 다 해서 충성하는 걸 진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려면 자기는 다 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진충이어야 가능하고 진실과 진충은 다릅니다. 진실은 아예 말하자면 알멩이 내면이고 방향이고 진충은 과정입니다. 방법이고 진실은 진충으로 하는 것이다. 진실을 진충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진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진실이 되는 것은 헛일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을 행한 그럴 때 우리 신앙이 바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 본인들이 전투하는 곳을 전장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는 현장입니다. 그런 현장들이 그걸 다른 말로 말하면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각자 자기 처소, 내 몸이 하는 것이 하는 겁니다. 마음에 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당은 여기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현실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현장입니다. 현장마다 다 환경이 다르지요.
학교 갈 때는 교과서 들고 가방 들고가고 수업할 때 쓰는 가방 메고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하겠다 안 맞는 거지요. 전투할려면 전투복으로, 현장마다 각각 다른 곳이고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준비 대처가 다 달라지게 되는 거지요. 달라지니까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고 보는 게 달라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학교가서 공부하는 자세 가정주부가 반찬 식사준비하는 자세 장사하는 자세 대화하는 자세 연구하는 자세 전부 다 상황마다 자세가 다른 겁니다. 그 전부다가 안 믿는 사람들은 목적한 바 그렇게 대처하고 계산하고 판단하고 처리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 전부다가 신앙에 굉장히 전부 다가 대처의 외부적인 모습은 안 믿는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비슷할지라도 내면의 법칙 중심은 하나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내 몸의 현실은 신앙의 현장입니다. 신앙의 현장은 상황따라 장소따라서 상대하는 방법이 그 모습은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학교가면 안 믿는 사람들도 배우고 공부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회사 가면은 그렇습니다.
겉 모습은 같은데 내면의 중심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법칙에 따라서 공부도 법칙대로 말씀을 생각하면서 말씀에 집중합니다. 이건 때와 상황을 막론하고 집중합니다. 단 장소마다 다르겠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말씀 법칙이라는 것은 같습니다. 이게 빠져버리면 이게 진실입니다. 이게 1차적으로 강조한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 생활은 언행심사 사리판단 취사선택 희로애락 그런 것들이지요. 그 모든 것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법칙대로 해야합니다. 평가가 되고 판단이 되고 취사 선택이 되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탈선된 것이고 없는 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된 것만 진실입니다.
금은 금이라야 금입니다. 아무리 금 색이라도 아닌 것은 의미 없습니다. 금 한 돈에 30년 전에 3만 5천원인데 60만원이라고 합니다. 몰랐는데 1g얼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실로 만들면 길이가 3km나 됩니다. 금 1g으로 펴면은 아주 작은 소량의 금을 펴면 합니다. 그렇게 값이 비싸다는 겁니다. 어떤 물질이 그리 되겠습니까. 금은 금이라야 금입니다. 순금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중요해봐야 금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만 신앙입니다. 말씀대로 되지 못하면 그런 겁니다. 진실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현장에서 우리가 살아갈 것은 장소와 상황과 대상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다음 두 번째 자기의 전부를 다 다르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겁니다. 내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하고. 어느정도로 다 해보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있냐. 그렇게 자기 마음 정성 성품 뜻 총력을 다해서 찾아갔느냐. 그걸 위해서 전부 다 기다리느냐. 전부를 다 가르쳐서 악습을 꺾어봤느냐. 노력해봤느냐. 습성도 이기고 그런 건데 전부 다 못하면 안된 것이 우리 생활의 것입니다. 탄식이 나오지 않을까요. 갈수록 탄식이 많아집니다. 기도할 때 어느정도로 기울여서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젊었을 때 은혜 받고 그러면 정말 그러는데 지나고나서 철없는 기도인데 그게 첫사랑 처음사랑 기도입니다. 어느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해야하는지. 금식기도란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피곤한 것이고 기도해보셨습니까. 그렇게 몇 시간씩. 예배 마치고 기도하면 10시 되고 12시 되고 그러는데 그렇게 기도하는 분들이 다 성자 성녀들 위대한 분들입니다. 성경을 어느정도로 읽어보셨습니까.
그래서 진실은 진충으로 들을겁니다. 그 방향이 진실이 아니면 헛일이 됩니다. 힘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믿어야합니다. 그래서 각자 하는 현실 이것을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해야한고요. 반드시 말씀대로 되어야합니다. 법칙이고 도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대로 하되 진충으로 해야합니다.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 전부를 다해서 신앙의 보배가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마련되게 됩니다. 그 보배가 있는 사람들은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 사람이 더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