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10-13조회 116추천 19
2024년 10월 13일 주일 오후
찬송: 19장, 131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4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열 다섯 가지입니다. 열 다섯 가지가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자세가 있고 금할 것이 있고 행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많은 교리가 들어있습니다. 교리는 성경 깨달음을 교리라고합니다. 뼈대와 같은 것이라서 중요하고 성경을 근거하고 생활에 받침이 되어야하고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거나 변하지 않아야하고 전체 성경에 맞아야 인정이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세 분인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잘못 깨달으면 신앙생활은 엉망이 되는데 아버지 하나님 사람 되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어거스틴입니까. 삼위일체라고 하셨습니다. 자리를 말합니다.
위는 자리 위 자입니다. 한 사람이 세 역할을 한다 그런 뜻이 되는데 은밀하게 말하면 틀린 게 됩니다. 세 분인데 하나인데 하나인데 세 분입니다. 세 분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을 백 퍼센트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은 현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요약한 게 삼위일체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겁니다. 건설구원의 원리를 기본구원으로 악용해서 천 년 세월을 떼 먹어서 칼빈이 보고 믿음으로 얻는 건데,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닌데 이걸 깨달아 칼빈이 전적 은혜다. 그렇게 되는 것이 기본 구원의 깨달음입니다. 기본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500년 지나고 나서 성경에 기본 구원만 있는 게 아니고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노력해야하는 건 뭐냐, 백 목사님께서 믿음에 대해서 기본 구원이다. 행함으로 하는 것은 건설 구원이다. 그랬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까 암흑 속에 행하던 사람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처럼 이게 천국에 있는 기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는지 모릅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칼빈의 기본 구원, 백 목사님의 건설 구원 교리. 우리 교인들은 예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한 사람 해야 할지 예사로 생각하지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또 생각해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는 다 할 수 있으나 작용이 다른 단어들이 하는 것과 다르게 달라서 사랑이 가장 특별한 특수한 표현이고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장 특별한 걸로 맺어지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진짜 사랑은 굉장히 귀한 것이고 그것보다 귀한 게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도 귀한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마지막 종점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이 전부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의 사랑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다른거지요. 불교는 인간선 아래 있습니다. 인간을 초월하고 세상 밖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이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고 이 세상에 노래 부르는 사람과 모든 이종교나 그런 사랑과 같은 차원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겁니다.
이 세상과 이종교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닌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게 사랑이지요. 요즘은 사상을 잘못 가진 사람이 인권을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아동들을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정권을 잡으려고 돈벌이하는데 다수의 우민들은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이란하고 이스라엘 전쟁 보니까 하마스 말고 그 핵심이 전부 다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보 단체에 미혹받은 사라들입니다. 이스라엘 군부의 2인자 대통령보다 높은 종교지도자 그 밑의 사람이 첩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도 어떤 사람이 핵심에 첩자가 들어왔을지 모릅니다. 사랑이 가장 특수하기 때문에 진짜는 귀하고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가치있기 때문에 가짜가 많은 건데 진짜가 되면은 절단이 나게 되는 마귀가 가짜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만드는 게 가짜입니다.
가짜 사랑을 배제하고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지 모르는 겁니다. 가짜 사랑을 오해하고 착각하는 여기서 교회가 엉망이 되고 가정이 엉망이 되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 왔느냐. 잡초는 들꽃은 딱히 심지 않아도 날아다니면서 퍼집니다. 우리 주차장에 민들레는 안 심었습니다. 잡초는 심었는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온 겁니다. 마음의 작용인데 근본이 있는거지요. 아마 부산에 수돗물이 있지요. 수원지. 부산에도 저기 있다고 합니다. 그 수원지에서 물을 여과해서 가져오듯이 뭐든지 근본이 있는 겁니다. 사랑은 어디서 왔는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형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냐 사랑 하나님이냐. 글자 하나 다른데 차원이 다릅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냐 사랑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거하고 다르지요.
하나님은 사랑 밖에 할 줄 모르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 뭐든지 요즘은 더욱 더 중도를 좋아합니다. 시대 전체가 옛날에는 갈라놨는데 요즘에는 적당히 중도로 타협을 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전부 베트남 공산주의 국가인데 자본주의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 보면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겁니다. 이걸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일반적으로 강하게 외치는 걸 싫어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설교해서 표를 얻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그렇게 어떤 사람이 볼 때는 그 사람이 좋아할지 모릅니다. 세상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을 사랑을 닮은 걸로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속성으로 있고 사람 속에는 사랑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겁니다.
어떤 사람도 사랑이라는 속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 사랑의 특수성, 사랑의 근본, 그리고 사랑인데 사랑이 두 종류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할찌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데 사랑이 없다면 그 없다면 그 어떤 사랑을 말하느냐이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혈육으로 사랑함으로 사랑인데 말이 안되는 거지요. 내 몸을 불사르게 할지라도 그 사랑은 인간 사랑일 수도 있고 하나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랑의 속성이 있는데 진짜 사람의 속성을 살짝 변질 시킨 것이 에덴 동산의 마귀입니다. 하나님 사람은 진짜 사랑인데 이 진짜 사랑을 가짜 사랑으로 바꿔치기 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이 두 가지가 생겨서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목적지까지 길이 하나면 가면 됩니다. 길이 갈라졌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뽑기해서 하면 됩니까. 어느 길이 진짜인지 찾을 때까지 안 가는 겁니다. 찾아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몇 개죠. 그 다음은요. 오직 한 길입니다. 그래서 가기 전에는 살펴봐야 합니다. 한 길로 가는 게 얼마나 깨닫는지 모릅니다. 가짜 사랑 취급해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가짜가 너무 고묘해서 99퍼센트가 다 넘어가 버립니다.
자기라는 자기도 내 속에 참 자기가 있는데 그 참 자기를 못을 박아서 진짜 자기는 박아버리고 가짜 자기를 진짜 자기처럼 내놓습니다 가짜 자기를 자기 아닌 자기라고 합니다. 내가 아닌데 왜 나입니까. 그게 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 다 넘어가버리는 거죠. 이걸 구분하는 게 로마서 사도 바울입니다.
또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하고 싶으도 지능이 모자라서 안되는 겁니다. 왜 물에 허우적 빠져가는 사람을 왜 못 살리죠. 사랑이 약해서요. 왜 못 살립니까.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살리고 싶은데 못 살리는 거죠. 남의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고 고통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 사랑은 다 조건부입니다. 어떤 인간 사랑도 조건적이 아닌 적 없습니다. 인간 사랑이라고 합니다. 인간 사랑은 전부 다 사람의 수명이 짧고 사랑이 크고 뜨거울수록 괴롭힙니다. 눈물이 인간 사랑의 결말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뜨거운만큼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모든 게 다 있는 겁니다. 수명이 짧고 사랑하기 때문에 무지한 사람이고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 분이 전지 전능입니다. 일방적으로 무조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는 게 여기에 있습니다.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무슨 도자요. 말씀 도, 길 도, 이룰 성, 사람 인 몸 신입니다. 말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었다. 이게 사랑입니다. 뭐하러 오셨습니까. 왜 사랑을 하고 오셨습니까. 우리 죄를 왜 해야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없애버려야합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문가인데 죄를 아는 분이 하나님이고 지옥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고 마귀를 만든 분이 하나님인데 지공과 지성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전능자다. 알아서 하십시오. 별 볼 일 없네 하나님도. 그래서 힘을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쓰지 아무렇게나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노아 홍수 때 멸망시킨 것도 원인이 다 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한다,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앞 날을 대비하는 겁니다. 원인을 찾아봐야합니다. 불신자가 권력가 됐다고 사람들 박해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가 칼을 가지지 않았느니라. 그래서 믿는 사람은 세상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신 게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속성을 보면 변질되었을 지라도 변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타적인 곳입니다. 이타는 이기는 것이 있는 것이고 이타적이고 희생이 있는데 조건적이지만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버립니다. 하나님 사랑은 전지전능자입니다. 영생으로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면 죄를 멸하고 의를 만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뭐냐 자기 좋아하는 자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소원 이걸 찾는 겁니다. 하나님 가까이 모시고 건설하는 걸 대속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 노래 아시지요. 그 사랑 노래를 지은 분이 이 사랑의 뜻을 알고 지었을까. 아마 모르시지 않았을까. 사랑은 열 다섯가지가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건 자세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사랑의 자세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 오래 참는 것, 세월 지각 있는거지요. 온유라는 것은 조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 가지를 하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다섯 가지를 해야한다. 이 열 다섯 가지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 나타내는 열 다섯가지는 열매라고 말할 수 있고 한편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데 필수조건입니다. 없는 사람은 하나라도 빠졌으면 열 다섯가지인데 이 열 다섯가지가 그의 모든 언행심사와 생활과 관계에서 들어있으면 그 속에 사람이 딱 있을 수 있고 하나라도 빠지면 사랑은 전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랑을 전해준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 사활의 대속을 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죄를 안 짓게 한다는 겁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활의 대속을 내가 가진 것대로 살고 내게 다섯가지 모습을 보고 알 수있고 열 다섯가지 생활이 될 때 있다는 것이지요. 부부 사랑은 이성사랑입니다. 마지막에는 끝납니다. 그 속에 그 사랑을 하나님 사랑으로 바꿔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내에게 죄는 짓지 맙시다. 위치는 그런데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오래 참아야합니다.
두 번째는 조급하지 않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회도 보고 참고 여유를 가지고 조급하지 않게, 아주 어린 사람에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시기라는 것은 비슷한 경쟁 상대가 있어야하는데 이런 시기를 가지면 사랑은 없는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없애줘야하는데 시기 투기가 있으면 못없애줍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겁니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주변을 잘 살펴서 하는 겁니다. 성내지 아니하며 근본적으로 있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도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인간 사랑의 도가 맞는가 구별해야합니다. 사랑은 늘 다섯가지 열매로 나타납니다. 자기로 돌아보십시다.
찬송: 19장, 131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4절 ~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열 다섯 가지입니다. 열 다섯 가지가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자세가 있고 금할 것이 있고 행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많은 교리가 들어있습니다. 교리는 성경 깨달음을 교리라고합니다. 뼈대와 같은 것이라서 중요하고 성경을 근거하고 생활에 받침이 되어야하고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거나 변하지 않아야하고 전체 성경에 맞아야 인정이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세 분인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잘못 깨달으면 신앙생활은 엉망이 되는데 아버지 하나님 사람 되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어거스틴입니까. 삼위일체라고 하셨습니다. 자리를 말합니다.
위는 자리 위 자입니다. 한 사람이 세 역할을 한다 그런 뜻이 되는데 은밀하게 말하면 틀린 게 됩니다. 세 분인데 하나인데 하나인데 세 분입니다. 세 분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을 백 퍼센트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은 현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요약한 게 삼위일체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겁니다. 건설구원의 원리를 기본구원으로 악용해서 천 년 세월을 떼 먹어서 칼빈이 보고 믿음으로 얻는 건데,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닌데 이걸 깨달아 칼빈이 전적 은혜다. 그렇게 되는 것이 기본 구원의 깨달음입니다. 기본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500년 지나고 나서 성경에 기본 구원만 있는 게 아니고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노력해야하는 건 뭐냐, 백 목사님께서 믿음에 대해서 기본 구원이다. 행함으로 하는 것은 건설 구원이다. 그랬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까 암흑 속에 행하던 사람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처럼 이게 천국에 있는 기능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는지 모릅니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칼빈의 기본 구원, 백 목사님의 건설 구원 교리. 우리 교인들은 예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한 사람 해야 할지 예사로 생각하지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또 생각해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는 다 할 수 있으나 작용이 다른 단어들이 하는 것과 다르게 달라서 사랑이 가장 특별한 특수한 표현이고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장 특별한 걸로 맺어지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진짜 사랑은 굉장히 귀한 것이고 그것보다 귀한 게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도 귀한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마지막 종점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이 전부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의 사랑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다른거지요. 불교는 인간선 아래 있습니다. 인간을 초월하고 세상 밖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이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고 이 세상에 노래 부르는 사람과 모든 이종교나 그런 사랑과 같은 차원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겁니다.
이 세상과 이종교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닌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게 사랑이지요. 요즘은 사상을 잘못 가진 사람이 인권을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아동들을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정권을 잡으려고 돈벌이하는데 다수의 우민들은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이란하고 이스라엘 전쟁 보니까 하마스 말고 그 핵심이 전부 다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보 단체에 미혹받은 사라들입니다. 이스라엘 군부의 2인자 대통령보다 높은 종교지도자 그 밑의 사람이 첩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도 어떤 사람이 핵심에 첩자가 들어왔을지 모릅니다. 사랑이 가장 특수하기 때문에 진짜는 귀하고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가치있기 때문에 가짜가 많은 건데 진짜가 되면은 절단이 나게 되는 마귀가 가짜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만드는 게 가짜입니다.
가짜 사랑을 배제하고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지 모르는 겁니다. 가짜 사랑을 오해하고 착각하는 여기서 교회가 엉망이 되고 가정이 엉망이 되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 왔느냐. 잡초는 들꽃은 딱히 심지 않아도 날아다니면서 퍼집니다. 우리 주차장에 민들레는 안 심었습니다. 잡초는 심었는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온 겁니다. 마음의 작용인데 근본이 있는거지요. 아마 부산에 수돗물이 있지요. 수원지. 부산에도 저기 있다고 합니다. 그 수원지에서 물을 여과해서 가져오듯이 뭐든지 근본이 있는 겁니다. 사랑은 어디서 왔는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형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냐 사랑 하나님이냐. 글자 하나 다른데 차원이 다릅니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냐 사랑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거하고 다르지요.
하나님은 사랑 밖에 할 줄 모르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 뭐든지 요즘은 더욱 더 중도를 좋아합니다. 시대 전체가 옛날에는 갈라놨는데 요즘에는 적당히 중도로 타협을 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전부 베트남 공산주의 국가인데 자본주의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 보면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겁니다. 이걸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일반적으로 강하게 외치는 걸 싫어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설교해서 표를 얻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그렇게 어떤 사람이 볼 때는 그 사람이 좋아할지 모릅니다. 세상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을 사랑을 닮은 걸로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속성으로 있고 사람 속에는 사랑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겁니다.
어떤 사람도 사랑이라는 속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 사랑의 특수성, 사랑의 근본, 그리고 사랑인데 사랑이 두 종류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할찌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데 사랑이 없다면 그 없다면 그 어떤 사랑을 말하느냐이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혈육으로 사랑함으로 사랑인데 말이 안되는 거지요. 내 몸을 불사르게 할지라도 그 사랑은 인간 사랑일 수도 있고 하나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랑의 속성이 있는데 진짜 사람의 속성을 살짝 변질 시킨 것이 에덴 동산의 마귀입니다. 하나님 사람은 진짜 사랑인데 이 진짜 사랑을 가짜 사랑으로 바꿔치기 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이 두 가지가 생겨서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목적지까지 길이 하나면 가면 됩니다. 길이 갈라졌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뽑기해서 하면 됩니까. 어느 길이 진짜인지 찾을 때까지 안 가는 겁니다. 찾아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몇 개죠. 그 다음은요. 오직 한 길입니다. 그래서 가기 전에는 살펴봐야 합니다. 한 길로 가는 게 얼마나 깨닫는지 모릅니다. 가짜 사랑 취급해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가짜가 너무 고묘해서 99퍼센트가 다 넘어가 버립니다.
자기라는 자기도 내 속에 참 자기가 있는데 그 참 자기를 못을 박아서 진짜 자기는 박아버리고 가짜 자기를 진짜 자기처럼 내놓습니다 가짜 자기를 자기 아닌 자기라고 합니다. 내가 아닌데 왜 나입니까. 그게 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 다 넘어가버리는 거죠. 이걸 구분하는 게 로마서 사도 바울입니다.
또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하고 싶으도 지능이 모자라서 안되는 겁니다. 왜 물에 허우적 빠져가는 사람을 왜 못 살리죠. 사랑이 약해서요. 왜 못 살립니까.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살리고 싶은데 못 살리는 거죠. 남의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고 고통을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 사랑은 다 조건부입니다. 어떤 인간 사랑도 조건적이 아닌 적 없습니다. 인간 사랑이라고 합니다. 인간 사랑은 전부 다 사람의 수명이 짧고 사랑이 크고 뜨거울수록 괴롭힙니다. 눈물이 인간 사랑의 결말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뜨거운만큼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모든 게 다 있는 겁니다. 수명이 짧고 사랑하기 때문에 무지한 사람이고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 분이 전지 전능입니다. 일방적으로 무조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는 게 여기에 있습니다.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무슨 도자요. 말씀 도, 길 도, 이룰 성, 사람 인 몸 신입니다. 말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었다. 이게 사랑입니다. 뭐하러 오셨습니까. 왜 사랑을 하고 오셨습니까. 우리 죄를 왜 해야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없애버려야합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문가인데 죄를 아는 분이 하나님이고 지옥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고 마귀를 만든 분이 하나님인데 지공과 지성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전능자다. 알아서 하십시오. 별 볼 일 없네 하나님도. 그래서 힘을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쓰지 아무렇게나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노아 홍수 때 멸망시킨 것도 원인이 다 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한다,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앞 날을 대비하는 겁니다. 원인을 찾아봐야합니다. 불신자가 권력가 됐다고 사람들 박해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가 칼을 가지지 않았느니라. 그래서 믿는 사람은 세상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은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신 게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속성을 보면 변질되었을 지라도 변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타적인 곳입니다. 이타는 이기는 것이 있는 것이고 이타적이고 희생이 있는데 조건적이지만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버립니다. 하나님 사랑은 전지전능자입니다. 영생으로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면 죄를 멸하고 의를 만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뭐냐 자기 좋아하는 자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소원 이걸 찾는 겁니다. 하나님 가까이 모시고 건설하는 걸 대속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 노래 아시지요. 그 사랑 노래를 지은 분이 이 사랑의 뜻을 알고 지었을까. 아마 모르시지 않았을까. 사랑은 열 다섯가지가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건 자세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사랑의 자세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 오래 참는 것, 세월 지각 있는거지요. 온유라는 것은 조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 가지를 하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다섯 가지를 해야한다. 이 열 다섯 가지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 나타내는 열 다섯가지는 열매라고 말할 수 있고 한편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데 필수조건입니다. 없는 사람은 하나라도 빠졌으면 열 다섯가지인데 이 열 다섯가지가 그의 모든 언행심사와 생활과 관계에서 들어있으면 그 속에 사람이 딱 있을 수 있고 하나라도 빠지면 사랑은 전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랑을 전해준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 사활의 대속을 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죄를 안 짓게 한다는 겁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활의 대속을 내가 가진 것대로 살고 내게 다섯가지 모습을 보고 알 수있고 열 다섯가지 생활이 될 때 있다는 것이지요. 부부 사랑은 이성사랑입니다. 마지막에는 끝납니다. 그 속에 그 사랑을 하나님 사랑으로 바꿔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내에게 죄는 짓지 맙시다. 위치는 그런데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오래 참아야합니다.
두 번째는 조급하지 않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회도 보고 참고 여유를 가지고 조급하지 않게, 아주 어린 사람에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시기라는 것은 비슷한 경쟁 상대가 있어야하는데 이런 시기를 가지면 사랑은 없는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없애줘야하는데 시기 투기가 있으면 못없애줍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겁니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주변을 잘 살펴서 하는 겁니다. 성내지 아니하며 근본적으로 있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도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인간 사랑의 도가 맞는가 구별해야합니다. 사랑은 늘 다섯가지 열매로 나타납니다. 자기로 돌아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