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2-11조회 249추천 32
2024년 2월 11일 주일 오후
찬송: 90장, 120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주님 따라가는 길의 세 가지를 기억해봤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대상은 세부적으로 보면 굉장히 많은데 하나를 바라 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서울대를 목표로 하면 어떤 걸 하든 그 방향은 서울대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기울여놓고 학원 유치원 영어도 시키는데 오로지 서울대, 의대를 보내야겠다 하나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는 겁니다. 어떤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하면 한 몸인데 머리도 있고 머리에 눈이 두 개 있고 많은 게 있고 팔 다리가 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귀도 보는 것도 많은 것을 조심해야하는 것처럼, 하나로 다 보여집니다. 그 역사가 뭐냐,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같이 살아야 사람이 됩니다.
요즘은 사람다운 사람이 없고 남자같은 남자, 여자같은 여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다운 사람은 만드는 것이 역사의 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고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전부가 다 기울어지는 겁니다. 이재용 회장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하나 밖에 없죠. 그 아들을 만들기 위해서 50억을 사업하라고 했는데 다 털어먹었습니다. 해봤지 사업이 쉬운 게 아니지. 우리나라 최고의 회장님이라도 아들이 젊을 때 일류대학을 다녀보고 아버지의 사업이 우습게 보이는 겁니다. 그게 젊은 사람의 강점이며 약점입니다. 젊을 때는 연세많은 장로님들 우습게 봤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강점이 넘치는 겁니다. 50억가지고 사업 우습게 보이지. 해봐라. 그러니까 다 털어먹고 나서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 털어먹고 나니 정신을 차리고, 사람이라는 것은 실패를 해봐야한다는 것이지요. 실패 안해본 사람은 회사에서 안 뽑는답니다. 쓸데없는 실패가 아니고 안 낸 것, 실패 많이한 사람은 뭐가 많은 겁니까 넘어지는 법을 아는 겁니다. 백 목사님은 돈을 빌려줄 때 용도를 물어보고 마지막에 빌려줄 때 이러면 됩니다 하고 안 빌려준답니다. 실패하는 걸 말하고 안되는 걸 모두 파악해서 다해서 빌려줘도 되는 사람에게 빌려준답니다.
사랑 속에는 무엇이 같이 들어갑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무엇이 같이 들어가있습니까. 능력이 같이 들어갑니다. 50억은 능력입니다. 아버지가 능력이 있으니 50억 까먹어도 괜찮아 마음껏 한 번 해봐. 그런데 저같은 사람이 50억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모든 걸 다 가진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존 사랑으로 완전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옵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만 믿으면 전지전능이 따라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초인간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아도 영계와 우주를 다스릴 능력을 길러나가야하는데 왜 못 받느냐.
야보고 요한은 주님을 따라다녀보니 죽은 사람도 살리지요 파도도 잠잠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이분이 하나님이다 싶어서 그분 백을 믿고 큰 소리쳤는데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왜입니까 목적이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을 참 사람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가지고 그분의 능력이 함께하는데 저를 드러내려고 권위를 나타내려고 저를 세우려고 이러면 하나님께서 안 주시는 거지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전부 우리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는 베드로 바울 백목사님처럼 못하는 겁니까. 우리들이 그리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신 자존심 정 욕심 이 세상 것. 이런 거 때문에 내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귀를 허비하고 그래 놓으니까 하나님 사이가 막혀버린 것이지요.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사람 몸에 병이 나면은 사진을 찍어보지 않습니까. 사진에 나오면 전부 답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다 나올 거 같지만 모릅니다 다. 또 몸이 그래도 복잡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르는 건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천하를 다 잡아도 공통인데 소통이 되고 바로만 되면 좋은 건데 무엇이 막혔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면밀하게 따져야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가 막혀있기 때문에 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자기 중심이고 사랑이 없는 것인데 한도 없이 많은 겁니다. 정이나 온갖 걸 다 찾아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명상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 말씀이라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그것을 말씀이란 판독을 하는 거지요. 무엇이 막고 있는가. 사람마다 다 다르고 많은 것이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앙 생활들이 희노애락의 작용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다 안될찌라도. 그래서 계속 되도록 노력하는 게 사람입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에 기억할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이 길은 무슨 길이라고 했습니까. 인생길이고 주님의 길은 무슨 길일까요. 대속의 길입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리고, 갈릴리로 가시든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시든 어디에 들어가시든 그게 전부 길을 가시는 겁니다. 길을 가실 때 인생길입니다. 이때는 길이겠죠.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이다. 참 가상한 말인데 한편으로는 철이 없는 말입니다. 몰라서, 야고보 요한이 그랬습니까 아버지 우편에 하나는 주님이 오실 때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걸 무슨 수로 마시니까 너희가 나 따라 마시겠지 순교할 거니까. 그래도 그것은 아버지가 마실 것이니까. 주님이 가상히 보시고 나를 따라오려느냐. 주님을 믿다보면 알고보면 좋은 겁니다. 주님처럼 되어야겠다. 백 목사님이 목회를 보고 우습게 보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인데 우리 아버지처럼은 못하겠고 못하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처음부터 목사님이었습니까. 선생, 집사, 조사였겠지요. 교리라 바뀐 게 있습니다. 84년도 공과에 홍포 입은 부자가 지옥갔다고 했는데 왜 성경에서 교리가 바뀝니까. 몰랐다. 틀린 겁니까. 알아야할 걸 모르면 문제지만 다 깨닫고 나서 보니까 바뀝니다. 이게 옳다. 옳은 걸 찾아가는 거지요. 우리가 소망은 주님처럼 되는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진합태산입니다. 뭔지 하나둘 해서 태산입니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습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의 소망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 돌아서면 소망이 있는 겁니다. 가다가 열 번 하다가 열 번하면 되고 이 사람은 좋은 소망가진겁니다. 서울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서울은 부산을 기점으로 북쪽으로 있습니다. 북쪽인데 가면 되는데 북쪽에서도 길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찾아야합니다. 달리면 되는 게 아닙니다. 앞만보고 속도내어 달리면 음주운전이라고 합니다. 아주 나쁜 겁니다. 곱게 말이 안 나옵니다. 왜 남을 죽입니까.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는 게 좋은데 따라가려면 좋은 걸 알아야합니다. 공중의 새도 있다. 썩은 걸 좋아하고 참새는 가치가 적은 겁니다. 수 많은 피조물 중에서 여우도 저를 위할 줄 알고 챙길 줄 안다. 그러면 여우가 그렇고 새가 그러면 곤충은 어떻습니까. 개미한테 가서 배워라. 개미는 저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천하 모든 존재는 저를 챙길 줄 알고 다독거릴 줄 압니다. 모든 존재를 해다가 자기를 챙길줄 안다. 예비할 줄 알고 마련할 줄 안다. 여우도 집이있다. 썩은 것을 찾아먹는 썩은 세상 속에 사는 전부도 그것도 저를 챙기고 위할 줄 안다. 그런데 인자는 주님의 스스로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자라는 것은 사람의 아들인데 그만큼 낮아지신 걸 말합니다. 오셨지만 낮아지셨고 그러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 없을까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주님인데 그런 것은 누구 것인가. 주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개미도 집을 마련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졌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주님이 전부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 주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주님인데 하나님 아버지가 주님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님은 낮아지셨습니다. 음부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내려갈 곳이 없는 곳까지 갔는데 아버지 보좌 옆에까지 갔습니다. 지식과 재능이 하나도 없는데 전지전능을 가져버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이 원리의 결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백목사님의 것은 없습니다. 서부교회 신앙 있는 사람들의 재산 없는 사람들은 그게 다 백목사님 재산입니다.
바울의 교회의 교인의 재산이 바울의 교회의 것입니다. 바울은 천사처럼 됐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것이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한 없이 내려갔는데 올라갔습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고 다 비우고 나타낼 때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 주인입니다. 가족도 전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 다음 뭡니까. 너의 모든 것이 내 것이니까 하라는 대로 하겠구나.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산 제물로 자기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게 나의 길입니다. 알겠느냐. 여우도 굴이 있다 새도 집이 있다. 세 살짜리 꿀밤을 때려봐라 맞고만 있는가. 얼마나 저를 챙기는가. 7살, 중학생, 어른은 더 그러겠지요.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십자가 못을 박아도 박혔습니다. 마지막에 돌아가신 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좇으라 그러십니다. 많은 사람이 있고 많은 사람의 신앙 차이가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나를 따라온다고 하니까 조건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나로 먼저가서 내 부친을 장성하게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장례는 마지막 도리고 마지막 사은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은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 뜻을 전하게 하라.
믿는 사람에게 먼저라는 것은 순서적으로 먼저니까 앞뒤가 되는데 그게 아니고 원동과 피동의 문제가 되는겁니다. 주님 대속을 두고,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순서가 있습니다. 나눠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서는 맞지 않습니다. 원동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따라가는 먼저가 나오면 그게 주격이 되어버립니다. 그러지 말아라고 합니다. 어떤 것도 그것을 앞세우지 말고 주체적으로 두지 말아라. 그게 근본이고 원동이고 목적 목표고 원인이고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해야하지. 능동이다 목적이다 이것을 위해서 모든 게 되어야한다. 이것을 위해서 장례도 치르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지고 이걸 위해서 하면 다 되는 것이고 이걸 빼놓고 하면 말 한마디도 하지 말아라. 죽은 자가 하는 거다. 교리적으로 하면 불택자라는 뜻이고 미중생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는 죽은 생활만 합니다. 그래서 부친 장래냐,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 장사하게 하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면 그때부터 그거만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중생된 사람은 삽니다. 산 생활만 합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라. 장례식은 전도 아닙니까. 장례식도 전파하는 겁니다. 그런데 원동이 되고 주체가 되고 목적이 되면 공자의 효도가 됩니다. 대속의 역사를 두고 가는 것은 신앙은 아닌 겁니다. 효라는 건 중요한데 신앙과 연결시켜보고. 이해가 되시는지요. 지식이 중요하나 현실 생활에 이어지지 못하면 복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세 번째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내가 주를 쫓겠나이다만은 가족 작별을 허락케 하소서. 그것은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입니다. 가족을 책임지는데 먼저 가서 주님보다 앞세우지 말아라. 부친 장례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 나라를 향해 출발하느냐. 뒤를 돌아보는 것 아니다. 앞으로만 가는 거다. 서면은 안되는 거다. 가족이 있는데요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는 새끼가 있는 젖이 나는 암소였습니다. 울면서 갔습니다. 이게 천국가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되는 길이다. 후퇴가 없는 길이다. 중간이 없는 길이다.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다. 알고가느야 말씀하시는 겁니다. 가족이면은 암소에게 젖먹이는 새끼는 가족 중에서 가장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작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는 걸 두고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목회 출발한 정 조사님 가족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바친겁니다. 하나님 앞에 한 가족을 바친 것도, 그분들 가족들에게 경제 어려움이 없으면 공회에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큰 부자는 아닐지라도 어떤 경우도 짐을 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서,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이런 길입니다.
하늘나라만 바로보고 주님만 바라보고 멈추지 않는 것. 이게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 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이 시대도 그런 종이 있으면 나타납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나는 뒤집어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의 것이 된다 복된 길입니다. 부친 장래 해야하느냐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되라, 산 생활만 해라.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0장, 120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주님 따라가는 길의 세 가지를 기억해봤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대상은 세부적으로 보면 굉장히 많은데 하나를 바라 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서울대를 목표로 하면 어떤 걸 하든 그 방향은 서울대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기울여놓고 학원 유치원 영어도 시키는데 오로지 서울대, 의대를 보내야겠다 하나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는 겁니다. 어떤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하면 한 몸인데 머리도 있고 머리에 눈이 두 개 있고 많은 게 있고 팔 다리가 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귀도 보는 것도 많은 것을 조심해야하는 것처럼, 하나로 다 보여집니다. 그 역사가 뭐냐,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같이 살아야 사람이 됩니다.
요즘은 사람다운 사람이 없고 남자같은 남자, 여자같은 여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다운 사람은 만드는 것이 역사의 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고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전부가 다 기울어지는 겁니다. 이재용 회장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하나 밖에 없죠. 그 아들을 만들기 위해서 50억을 사업하라고 했는데 다 털어먹었습니다. 해봤지 사업이 쉬운 게 아니지. 우리나라 최고의 회장님이라도 아들이 젊을 때 일류대학을 다녀보고 아버지의 사업이 우습게 보이는 겁니다. 그게 젊은 사람의 강점이며 약점입니다. 젊을 때는 연세많은 장로님들 우습게 봤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강점이 넘치는 겁니다. 50억가지고 사업 우습게 보이지. 해봐라. 그러니까 다 털어먹고 나서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 털어먹고 나니 정신을 차리고, 사람이라는 것은 실패를 해봐야한다는 것이지요. 실패 안해본 사람은 회사에서 안 뽑는답니다. 쓸데없는 실패가 아니고 안 낸 것, 실패 많이한 사람은 뭐가 많은 겁니까 넘어지는 법을 아는 겁니다. 백 목사님은 돈을 빌려줄 때 용도를 물어보고 마지막에 빌려줄 때 이러면 됩니다 하고 안 빌려준답니다. 실패하는 걸 말하고 안되는 걸 모두 파악해서 다해서 빌려줘도 되는 사람에게 빌려준답니다.
사랑 속에는 무엇이 같이 들어갑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무엇이 같이 들어가있습니까. 능력이 같이 들어갑니다. 50억은 능력입니다. 아버지가 능력이 있으니 50억 까먹어도 괜찮아 마음껏 한 번 해봐. 그런데 저같은 사람이 50억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모든 걸 다 가진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존 사랑으로 완전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옵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만 믿으면 전지전능이 따라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초인간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아도 영계와 우주를 다스릴 능력을 길러나가야하는데 왜 못 받느냐.
야보고 요한은 주님을 따라다녀보니 죽은 사람도 살리지요 파도도 잠잠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이분이 하나님이다 싶어서 그분 백을 믿고 큰 소리쳤는데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왜입니까 목적이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을 참 사람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가지고 그분의 능력이 함께하는데 저를 드러내려고 권위를 나타내려고 저를 세우려고 이러면 하나님께서 안 주시는 거지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전부 우리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는 베드로 바울 백목사님처럼 못하는 겁니까. 우리들이 그리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신 자존심 정 욕심 이 세상 것. 이런 거 때문에 내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귀를 허비하고 그래 놓으니까 하나님 사이가 막혀버린 것이지요.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사람 몸에 병이 나면은 사진을 찍어보지 않습니까. 사진에 나오면 전부 답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다 나올 거 같지만 모릅니다 다. 또 몸이 그래도 복잡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르는 건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천하를 다 잡아도 공통인데 소통이 되고 바로만 되면 좋은 건데 무엇이 막혔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면밀하게 따져야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가 막혀있기 때문에 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자기 중심이고 사랑이 없는 것인데 한도 없이 많은 겁니다. 정이나 온갖 걸 다 찾아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명상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 말씀이라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그것을 말씀이란 판독을 하는 거지요. 무엇이 막고 있는가. 사람마다 다 다르고 많은 것이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신앙 생활이고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앙 생활들이 희노애락의 작용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다 안될찌라도. 그래서 계속 되도록 노력하는 게 사람입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에 기억할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이 길은 무슨 길이라고 했습니까. 인생길이고 주님의 길은 무슨 길일까요. 대속의 길입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리고, 갈릴리로 가시든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시든 어디에 들어가시든 그게 전부 길을 가시는 겁니다. 길을 가실 때 인생길입니다. 이때는 길이겠죠.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이다. 참 가상한 말인데 한편으로는 철이 없는 말입니다. 몰라서, 야고보 요한이 그랬습니까 아버지 우편에 하나는 주님이 오실 때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그걸 무슨 수로 마시니까 너희가 나 따라 마시겠지 순교할 거니까. 그래도 그것은 아버지가 마실 것이니까. 주님이 가상히 보시고 나를 따라오려느냐. 주님을 믿다보면 알고보면 좋은 겁니다. 주님처럼 되어야겠다. 백 목사님이 목회를 보고 우습게 보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인데 우리 아버지처럼은 못하겠고 못하겠습니다. 백 목사님은 처음부터 목사님이었습니까. 선생, 집사, 조사였겠지요. 교리라 바뀐 게 있습니다. 84년도 공과에 홍포 입은 부자가 지옥갔다고 했는데 왜 성경에서 교리가 바뀝니까. 몰랐다. 틀린 겁니까. 알아야할 걸 모르면 문제지만 다 깨닫고 나서 보니까 바뀝니다. 이게 옳다. 옳은 걸 찾아가는 거지요. 우리가 소망은 주님처럼 되는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진합태산입니다. 뭔지 하나둘 해서 태산입니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습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의 소망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 돌아서면 소망이 있는 겁니다. 가다가 열 번 하다가 열 번하면 되고 이 사람은 좋은 소망가진겁니다. 서울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서울은 부산을 기점으로 북쪽으로 있습니다. 북쪽인데 가면 되는데 북쪽에서도 길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찾아야합니다. 달리면 되는 게 아닙니다. 앞만보고 속도내어 달리면 음주운전이라고 합니다. 아주 나쁜 겁니다. 곱게 말이 안 나옵니다. 왜 남을 죽입니까. 그래서 주님을 따라가는 게 좋은데 따라가려면 좋은 걸 알아야합니다. 공중의 새도 있다. 썩은 걸 좋아하고 참새는 가치가 적은 겁니다. 수 많은 피조물 중에서 여우도 저를 위할 줄 알고 챙길 줄 안다. 그러면 여우가 그렇고 새가 그러면 곤충은 어떻습니까. 개미한테 가서 배워라. 개미는 저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천하 모든 존재는 저를 챙길 줄 알고 다독거릴 줄 압니다. 모든 존재를 해다가 자기를 챙길줄 안다. 예비할 줄 알고 마련할 줄 안다. 여우도 집이있다. 썩은 것을 찾아먹는 썩은 세상 속에 사는 전부도 그것도 저를 챙기고 위할 줄 안다. 그런데 인자는 주님의 스스로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자라는 것은 사람의 아들인데 그만큼 낮아지신 걸 말합니다. 오셨지만 낮아지셨고 그러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 없을까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주님인데 그런 것은 누구 것인가. 주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개미도 집을 마련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졌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주님이 전부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 주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주님인데 하나님 아버지가 주님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님은 낮아지셨습니다. 음부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내려갈 곳이 없는 곳까지 갔는데 아버지 보좌 옆에까지 갔습니다. 지식과 재능이 하나도 없는데 전지전능을 가져버렸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이 원리의 결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백목사님의 것은 없습니다. 서부교회 신앙 있는 사람들의 재산 없는 사람들은 그게 다 백목사님 재산입니다.
바울의 교회의 교인의 재산이 바울의 교회의 것입니다. 바울은 천사처럼 됐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것이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한 없이 내려갔는데 올라갔습니다. 자기를 다 부인하고 다 비우고 나타낼 때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 주인입니다. 가족도 전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 다음 뭡니까. 너의 모든 것이 내 것이니까 하라는 대로 하겠구나.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산 제물로 자기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게 나의 길입니다. 알겠느냐. 여우도 굴이 있다 새도 집이 있다. 세 살짜리 꿀밤을 때려봐라 맞고만 있는가. 얼마나 저를 챙기는가. 7살, 중학생, 어른은 더 그러겠지요.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십자가 못을 박아도 박혔습니다. 마지막에 돌아가신 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좇으라 그러십니다. 많은 사람이 있고 많은 사람의 신앙 차이가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나를 따라온다고 하니까 조건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나로 먼저가서 내 부친을 장성하게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장례는 마지막 도리고 마지막 사은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은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 뜻을 전하게 하라.
믿는 사람에게 먼저라는 것은 순서적으로 먼저니까 앞뒤가 되는데 그게 아니고 원동과 피동의 문제가 되는겁니다. 주님 대속을 두고,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순서가 있습니다. 나눠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서는 맞지 않습니다. 원동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따라가는 먼저가 나오면 그게 주격이 되어버립니다. 그러지 말아라고 합니다. 어떤 것도 그것을 앞세우지 말고 주체적으로 두지 말아라. 그게 근본이고 원동이고 목적 목표고 원인이고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해야하지. 능동이다 목적이다 이것을 위해서 모든 게 되어야한다. 이것을 위해서 장례도 치르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지고 이걸 위해서 하면 다 되는 것이고 이걸 빼놓고 하면 말 한마디도 하지 말아라. 죽은 자가 하는 거다. 교리적으로 하면 불택자라는 뜻이고 미중생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는 죽은 생활만 합니다. 그래서 부친 장래냐,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 장사하게 하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면 그때부터 그거만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중생된 사람은 삽니다. 산 생활만 합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라. 장례식은 전도 아닙니까. 장례식도 전파하는 겁니다. 그런데 원동이 되고 주체가 되고 목적이 되면 공자의 효도가 됩니다. 대속의 역사를 두고 가는 것은 신앙은 아닌 겁니다. 효라는 건 중요한데 신앙과 연결시켜보고. 이해가 되시는지요. 지식이 중요하나 현실 생활에 이어지지 못하면 복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세 번째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내가 주를 쫓겠나이다만은 가족 작별을 허락케 하소서. 그것은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가족을 돌보지 못하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입니다. 가족을 책임지는데 먼저 가서 주님보다 앞세우지 말아라. 부친 장례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하늘 나라를 향해 출발하느냐. 뒤를 돌아보는 것 아니다. 앞으로만 가는 거다. 서면은 안되는 거다. 가족이 있는데요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는 새끼가 있는 젖이 나는 암소였습니다. 울면서 갔습니다. 이게 천국가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되는 길이다. 후퇴가 없는 길이다. 중간이 없는 길이다.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다. 알고가느야 말씀하시는 겁니다. 가족이면은 암소에게 젖먹이는 새끼는 가족 중에서 가장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작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는 걸 두고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목회 출발한 정 조사님 가족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바친겁니다. 하나님 앞에 한 가족을 바친 것도, 그분들 가족들에게 경제 어려움이 없으면 공회에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큰 부자는 아닐지라도 어떤 경우도 짐을 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서,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이런 길입니다.
하늘나라만 바로보고 주님만 바라보고 멈추지 않는 것. 이게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 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이 시대도 그런 종이 있으면 나타납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나는 뒤집어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의 것이 된다 복된 길입니다. 부친 장래 해야하느냐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되라, 산 생활만 해라.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