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2-11조회 304추천 46
2024년 2월 11일 주일 오전
찬송: 171장, 176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명절이 끼어있는 주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제가 설날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오래 돼서 전통으로 이어오지만은 명절을 명절로 세상에서 지내지 않고 연휴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명절도 다 변하게 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지킬 때 주일만 중요한 날입니다. 다른 날은 참고로 지나는 때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모든 걸 금하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고 자세를 돌아보고 말씀의 사람으로 하는 것이 주일을 바로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가는게 주일을 지키는 목적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직장에서 손해를 봐도 학업을 손해봐도 욕을 얻어먹어도, 때로는 주일 때문에 직장을 잃어도 목숨을 잃어도 주일은 지키는 게 성경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온 세상이 변했고 세상이 너무 좋은 세상이라서 힘들어합니다만은 아무리 좋은 세상도 세월 속에 떠나가야하고 두고 떠나가야하는 게 세상입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고 끝이 없이 영원토록 이어지는 세상입니다. 내세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많은 손해를 봐도 내세의 영광이 되어지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설날이나 추석이나 생일이나 전체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일이 있으면 자기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구원에 유익되도록 이용하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설날이나 추석, 국경일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잘 활용을 하면 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다가 심신을 풀고 이용하지만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찾아뵙지 못한 어른들 찾아 뵙고 본을 보이고, 생활로 믿는 사람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쓰지 않으면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명절을 명절로 지내고 그러면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게 전부인데 다 지나가는 것인데 다 헛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늘이란 우주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고 신령한 세계를 말합니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불신자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모르지만은 내세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 미신을 믿고 이종교를 믿고 죽은 다음을 바라보고 있는 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그런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전부는 지난 것이니까
오늘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를 마련하는 겁니다. 젊을 때 땀흘려 일하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겁니다. 오늘의 끝이면 먹고 마시자 이게 전부인데 내일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이 넘어가면 내일이 뜨는 줄 알기 때문에 일하면서 내일을 기다리면서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고 미래를 대비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 장래가 영원입니다. 이 세대에 부한 자들에게 명령을 해라. 현세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해라.
예레미야 9장에 보니까 지혜를 가졌느냐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기를 가졌느냐 자랑하지 말아라 부유를 가졌느냐 자랑하지 말아라. 그 모든 전부 다를 지나가는 거 가지고 옳은 세계, 준비하는 게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 모든 걸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본문은 앞에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왜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느냐. 주님의 역사는 상관이 없는데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잘난 사람들 다 어디로 모입니까. 서울로 모입니다. 서울 인구가 천만명이고 2천만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말에 아들이 나면 한양으로 모이고 딸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세계로 미국으로 모입니다. 주님 때는 예루살렘이 중심지입니다. 올라가시기로 결심하시고 사람을 보내서 길을 예비하랬는데 사람들이 주님 가시는 그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서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사마리아인이 이방인입니다. 이때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상극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입니다. 택함받은 백성들. 선민의식이 있어서 로마인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울이 로마인이라 밝히니까 겁을 먹었지요. 지금은 미국 사람 건드리면 미국을 건드리는 겁니다.
함부로 못 건드립니다. 로마의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택한 백성들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으로 안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올라가기 위해서 봤는데 사마리아인의 촌으로 가니까 거부를 해버립니다. 54절에 봅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거부하는 걸 보고 길을 막아, 벌레같은 것들이. 그래서 주님 명령만 떨어지면 멸해버릴 수 있는데 그래서 하늘에서 불을 명하여 멸하기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면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데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의 심정이 다른거지요. 구원하러 오신겁니다. 또 꾸짖는 것도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야고보 요한은 우리 선생님 가는 길 막으니까 멸해야겠다 하시는데 주님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동기 목적이 사랑이기 때문에 악이 없고 선으로만 가득찼기 때문에 다 쓰셔서 역사 다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알맹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게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꾸짖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 빌립 바울 주님처럼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나느냐. 악이 없을 때 그리고 악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얼마나 자기 중심이 없고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있느냐. 사랑의 강도가 뜨거우냐. 여기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이거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학교의 성적이 왜 나눠집니까. 1등 2등 3등 4등, 왜 서울대 연고대로 나뉩니까. 서열이 정해집니까. 돈 많은 부자가 있습니까. 금수저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그래 봐야 다이아몬드 수저라도 본인이 잘못하면 다 털어먹습니다. 부자가 3대 안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것은 있기 때문에 이어집니다. 왜 그런 서열이 정해지느냐. 선생님이 임의로 정합니까. 왜 실력차이가 납니까. 본인이 실력 마련하니 그런 것이겠지요. 계속 하니 그러고 저절로 되는 건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변화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느냐. 주님을 따라가는 중에 악과 독이 있기 때문에 도덕 윤리적인 관점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진리는 없고 옳은 것은 없고 전부 이 세상 물질이고 향락이고 자기 중심이고 이런 것으로 가득 찼고 내 가족이 전부고 사람을 살려서 참 사람 만들어서 빈약하니까 그런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원리가 같습니다. 꼭 같은 원리입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비가 안 담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쏟아져도 받을 그릇이 안되면 안됩니다.
57절, 길을 가실 때 길이라는 것은 길은 무슨 길이냐 인생 길입니다. 주님의 길입니다. 길이란 자동차 다닌 도로 길이란 단어로 가르치는 것은 주님이 걸어가시는 길 생애 이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의 생애가 있습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내 생각 내 주관 내 판단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산에 가시는 분은 산에 가고 바다가면 바다가고. 예루살렘가면 따라가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무엇을 하시던 주님처럼 되길 원합니다. 무엇을 하시던지 주님을 따라가서 주님을 배워서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좋은 소망입니다. 공 차는 거 보니까 축구선수 되고 싶고 야구선수 되고 싶고 그러하는 것처럼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의 영향에 피동되니까 그게 좋은 건데 그게 또 안되는 건데 훌륭하신 어른되면 저런 분이 되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리 보이면 그렇게 되면 좋겠다. 찬양대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되면 좋겠는사람. 우리 교회 30대 새댁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럽습니다. 이 시대에 아이 셋 넷 다섯있으면 대단한 거 아닌가요. 자기가 볼 때 저런 분 되면 좋겠다. 좋은겁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참 좋습니다. 바로 가르치고 옳게 가르치고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구주와 같이 됨이로다. 그게 정상이고 이게 소망이 있어야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어야지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어야지 부자가 되어야지 그런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은 최종적을 주님처럼 되는 것이 소망이 되어야합니다. 주님따라서 배워서 그렇게 되어야겠다. 단일 소망이라고 합니다. 취업해서 마지막에 신앙생활 잘해서 주님처럼 되기 위해서 직장도 주님처럼 되기 위해서 나도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 그래야겠다. 소망 위해서 단일 소망이라고 합니다.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이게 우리 소망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도 주님 따라가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좋은 소망이다. 함축됐다. 줄였습니다. 오늘 깨닫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다. 주님같이 되는데 여우도 굴이 있고 낮아지셨다. 나를 따라오고 싶으냐 나처럼 되고 싶으냐 수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 밑에는 짐승이 많다. 그런데 여우는 여우지만 썩은 걸 좋아한답니다. 여우는 모아놓는답니다. 썩혀먹기도 한답니다. 그 여우도 저 먹을 건 알뜰히 챙겨먹습니다. 여우가 집을 마련하는 방법을 보니까 오소리인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오물을 뿌려버리고 산답니다. 알을 낳아서 다른 새 둥지에 가져다놓으니 제 새끼인줄 알고 보니까 다른 놈이고 제 새끼는 빼앗기고 그런 것처럼. 그런 놈입니다. 여우가. 여우도 저 먹을 거는 챙기고 알뜰히 챙긴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다. 공중의 새도 집이 있다. 하찮은 새 한 마리도 제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고 전부다다. 인자는 하나님인데 내 것은 없다고 합니다. 푸념입니까 하소연입니까. 너 자신 너를 위한 것이 없어야합니다. 너의 의견 너의 판단. 다 내놓을 수 있겠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전부다 나 먹을 거 전부 마련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자녀 챙겨야하고 그게 사람 사는 생활이고 모두 다인데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챙기고 노력하고 주인이 되고 그런 게 있는 게 사람이고 짐승도 그렇고 새도 그런데 나는, 주님은 왜 주님을 말씀합니까. 알고 오라 그 말입니다. 나는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내 건 없다. 주님은 전부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바꿀 것. 주님의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아버지 모든 전부를 다 써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것을 비우고 보니까 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이 부자되는 길입니다. 1 더하기 괄호 마지막 1입니다. 답이 0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더하기 괄호는 하나님입니다. 거기 뭐가 있어야합니까. 없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빼버립니다. 저는 없습니다. 죽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는 거 하십시오. 그러냐 그러면 내가 하지. 자기 다 부인하고 아버지만 나타내는 겁니다.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굴이 있고 집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 다 가지는 겁니다. 지난 양성원 때 수영하는 법을 말씀하시면서 물에 들어가면 안 가라앉는답니다. 힘을 주고 발버둥 하니까 지쳐가지고 둥둥 뜬답니다. 몇 시간일수록 안 나온답니다. 힘이 들어가니까 빠집니다. 주사 맞을 때 간호사들이 힘 빼라고 하지요. 같은 원리입니다. 나를 빼버리면 됩니다. 마치 내가 다 뺏기는 거 같거든요. 따라만 가면 되는데 그분의 사랑을 믿지 못해서 혼동시켜서 그래서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나를 따라오려는냐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내놨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이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59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깨닫고 주를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스스로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알고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기 하옵소서. 내가 주님을 오라하니까 가겠는데 장례를 치르게는데 그 다음에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전파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난리가 나게 하는 겁니다. 부친 효도라는 것은 사은입니다. 가장 큰 사은이고 마지막 사은 최종의 사은입니다. 성경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가는데 장례를 따라가야합니다 하니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 장사하게 해라.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에 전파하라고 합니다. 혜택을 받은 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은의 생활은 당연히 하는 겁니다. 그 중 가장 큰 사은이 부모님 장례하게 하는 겁니다. 죽은자들, 사은 중에서 큰 사은이 뭐냐, 부모님 사은이 있는데 대속의 사은이 가장 큰 사은이니 그것보다 먼저할 건 없다. 그러면 부모장례는 안해도 되는 것인가. 사은 가지고 부모 장례를 하라.
크게 두 가지입니다. 신앙의 걸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걸음입니다. 그 능력은 악이 없고 사랑이 가득 찰 때입니다. 두 번째 주님 따라가는 걸음에는 전부 다 내놔라, 너를 위한 것 없애야한다.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진리를 잡고 뒤로 돌아보지 말아라.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크게 두 가지고 주님 따라가는 법 세 가지입니다. 큰 소망이고 단일 소망입니다. 모든 걸 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71장, 176장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
명절이 끼어있는 주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제가 설날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오래 돼서 전통으로 이어오지만은 명절을 명절로 세상에서 지내지 않고 연휴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명절도 다 변하게 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지킬 때 주일만 중요한 날입니다. 다른 날은 참고로 지나는 때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모든 걸 금하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고 자세를 돌아보고 말씀의 사람으로 하는 것이 주일을 바로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가는게 주일을 지키는 목적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직장에서 손해를 봐도 학업을 손해봐도 욕을 얻어먹어도, 때로는 주일 때문에 직장을 잃어도 목숨을 잃어도 주일은 지키는 게 성경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온 세상이 변했고 세상이 너무 좋은 세상이라서 힘들어합니다만은 아무리 좋은 세상도 세월 속에 떠나가야하고 두고 떠나가야하는 게 세상입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고 끝이 없이 영원토록 이어지는 세상입니다. 내세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많은 손해를 봐도 내세의 영광이 되어지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설날이나 추석이나 생일이나 전체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일이 있으면 자기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구원에 유익되도록 이용하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설날이나 추석, 국경일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잘 활용을 하면 됩니다. 안 믿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다가 심신을 풀고 이용하지만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찾아뵙지 못한 어른들 찾아 뵙고 본을 보이고, 생활로 믿는 사람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쓰지 않으면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명절을 명절로 지내고 그러면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게 전부인데 다 지나가는 것인데 다 헛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늘이란 우주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고 신령한 세계를 말합니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불신자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모르지만은 내세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 미신을 믿고 이종교를 믿고 죽은 다음을 바라보고 있는 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그런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전부는 지난 것이니까
오늘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를 마련하는 겁니다. 젊을 때 땀흘려 일하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겁니다. 오늘의 끝이면 먹고 마시자 이게 전부인데 내일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이 넘어가면 내일이 뜨는 줄 알기 때문에 일하면서 내일을 기다리면서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고 미래를 대비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 장래가 영원입니다. 이 세대에 부한 자들에게 명령을 해라. 현세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해라.
예레미야 9장에 보니까 지혜를 가졌느냐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기를 가졌느냐 자랑하지 말아라 부유를 가졌느냐 자랑하지 말아라. 그 모든 전부 다를 지나가는 거 가지고 옳은 세계, 준비하는 게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 모든 걸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본문은 앞에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왜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느냐. 주님의 역사는 상관이 없는데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잘난 사람들 다 어디로 모입니까. 서울로 모입니다. 서울 인구가 천만명이고 2천만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말에 아들이 나면 한양으로 모이고 딸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세계로 미국으로 모입니다. 주님 때는 예루살렘이 중심지입니다. 올라가시기로 결심하시고 사람을 보내서 길을 예비하랬는데 사람들이 주님 가시는 그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서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사마리아인이 이방인입니다. 이때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상극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입니다. 택함받은 백성들. 선민의식이 있어서 로마인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울이 로마인이라 밝히니까 겁을 먹었지요. 지금은 미국 사람 건드리면 미국을 건드리는 겁니다.
함부로 못 건드립니다. 로마의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택한 백성들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으로 안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올라가기 위해서 봤는데 사마리아인의 촌으로 가니까 거부를 해버립니다. 54절에 봅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거부하는 걸 보고 길을 막아, 벌레같은 것들이. 그래서 주님 명령만 떨어지면 멸해버릴 수 있는데 그래서 하늘에서 불을 명하여 멸하기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면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데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의 심정이 다른거지요. 구원하러 오신겁니다. 또 꾸짖는 것도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야고보 요한은 우리 선생님 가는 길 막으니까 멸해야겠다 하시는데 주님은 사랑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동기 목적이 사랑이기 때문에 악이 없고 선으로만 가득찼기 때문에 다 쓰셔서 역사 다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알맹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게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꾸짖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 빌립 바울 주님처럼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나느냐. 악이 없을 때 그리고 악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얼마나 자기 중심이 없고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있느냐. 사랑의 강도가 뜨거우냐. 여기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이거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학교의 성적이 왜 나눠집니까. 1등 2등 3등 4등, 왜 서울대 연고대로 나뉩니까. 서열이 정해집니까. 돈 많은 부자가 있습니까. 금수저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그래 봐야 다이아몬드 수저라도 본인이 잘못하면 다 털어먹습니다. 부자가 3대 안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것은 있기 때문에 이어집니다. 왜 그런 서열이 정해지느냐. 선생님이 임의로 정합니까. 왜 실력차이가 납니까. 본인이 실력 마련하니 그런 것이겠지요. 계속 하니 그러고 저절로 되는 건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변화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느냐. 주님을 따라가는 중에 악과 독이 있기 때문에 도덕 윤리적인 관점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진리는 없고 옳은 것은 없고 전부 이 세상 물질이고 향락이고 자기 중심이고 이런 것으로 가득 찼고 내 가족이 전부고 사람을 살려서 참 사람 만들어서 빈약하니까 그런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원리가 같습니다. 꼭 같은 원리입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비가 안 담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쏟아져도 받을 그릇이 안되면 안됩니다.
57절, 길을 가실 때 길이라는 것은 길은 무슨 길이냐 인생 길입니다. 주님의 길입니다. 길이란 자동차 다닌 도로 길이란 단어로 가르치는 것은 주님이 걸어가시는 길 생애 이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의 생애가 있습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내 생각 내 주관 내 판단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산에 가시는 분은 산에 가고 바다가면 바다가고. 예루살렘가면 따라가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무엇을 하시던 주님처럼 되길 원합니다. 무엇을 하시던지 주님을 따라가서 주님을 배워서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좋은 소망입니다. 공 차는 거 보니까 축구선수 되고 싶고 야구선수 되고 싶고 그러하는 것처럼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의 영향에 피동되니까 그게 좋은 건데 그게 또 안되는 건데 훌륭하신 어른되면 저런 분이 되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리 보이면 그렇게 되면 좋겠다. 찬양대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되면 좋겠는사람. 우리 교회 30대 새댁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럽습니다. 이 시대에 아이 셋 넷 다섯있으면 대단한 거 아닌가요. 자기가 볼 때 저런 분 되면 좋겠다. 좋은겁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참 좋습니다. 바로 가르치고 옳게 가르치고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구주와 같이 됨이로다. 그게 정상이고 이게 소망이 있어야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어야지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어야지 부자가 되어야지 그런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은 최종적을 주님처럼 되는 것이 소망이 되어야합니다. 주님따라서 배워서 그렇게 되어야겠다. 단일 소망이라고 합니다. 취업해서 마지막에 신앙생활 잘해서 주님처럼 되기 위해서 직장도 주님처럼 되기 위해서 나도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 그래야겠다. 소망 위해서 단일 소망이라고 합니다.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이게 우리 소망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도 주님 따라가서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좋은 소망이다. 함축됐다. 줄였습니다. 오늘 깨닫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다. 주님같이 되는데 여우도 굴이 있고 낮아지셨다. 나를 따라오고 싶으냐 나처럼 되고 싶으냐 수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 밑에는 짐승이 많다. 그런데 여우는 여우지만 썩은 걸 좋아한답니다. 여우는 모아놓는답니다. 썩혀먹기도 한답니다. 그 여우도 저 먹을 건 알뜰히 챙겨먹습니다. 여우가 집을 마련하는 방법을 보니까 오소리인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오물을 뿌려버리고 산답니다. 알을 낳아서 다른 새 둥지에 가져다놓으니 제 새끼인줄 알고 보니까 다른 놈이고 제 새끼는 빼앗기고 그런 것처럼. 그런 놈입니다. 여우가. 여우도 저 먹을 거는 챙기고 알뜰히 챙긴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다. 공중의 새도 집이 있다. 하찮은 새 한 마리도 제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고 전부다다. 인자는 하나님인데 내 것은 없다고 합니다. 푸념입니까 하소연입니까. 너 자신 너를 위한 것이 없어야합니다. 너의 의견 너의 판단. 다 내놓을 수 있겠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전부다 나 먹을 거 전부 마련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자녀 챙겨야하고 그게 사람 사는 생활이고 모두 다인데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챙기고 노력하고 주인이 되고 그런 게 있는 게 사람이고 짐승도 그렇고 새도 그런데 나는, 주님은 왜 주님을 말씀합니까. 알고 오라 그 말입니다. 나는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내 건 없다. 주님은 전부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바꿀 것. 주님의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아버지 모든 전부를 다 써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것을 비우고 보니까 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이 부자되는 길입니다. 1 더하기 괄호 마지막 1입니다. 답이 0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더하기 괄호는 하나님입니다. 거기 뭐가 있어야합니까. 없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빼버립니다. 저는 없습니다. 죽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는 거 하십시오. 그러냐 그러면 내가 하지. 자기 다 부인하고 아버지만 나타내는 겁니다.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굴이 있고 집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 다 가지는 겁니다. 지난 양성원 때 수영하는 법을 말씀하시면서 물에 들어가면 안 가라앉는답니다. 힘을 주고 발버둥 하니까 지쳐가지고 둥둥 뜬답니다. 몇 시간일수록 안 나온답니다. 힘이 들어가니까 빠집니다. 주사 맞을 때 간호사들이 힘 빼라고 하지요. 같은 원리입니다. 나를 빼버리면 됩니다. 마치 내가 다 뺏기는 거 같거든요. 따라만 가면 되는데 그분의 사랑을 믿지 못해서 혼동시켜서 그래서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나를 따라오려는냐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내놨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이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59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깨닫고 주를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스스로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알고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기 하옵소서. 내가 주님을 오라하니까 가겠는데 장례를 치르게는데 그 다음에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전파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난리가 나게 하는 겁니다. 부친 효도라는 것은 사은입니다. 가장 큰 사은이고 마지막 사은 최종의 사은입니다. 성경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가는데 장례를 따라가야합니다 하니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 장사하게 해라.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에 전파하라고 합니다. 혜택을 받은 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은의 생활은 당연히 하는 겁니다. 그 중 가장 큰 사은이 부모님 장례하게 하는 겁니다. 죽은자들, 사은 중에서 큰 사은이 뭐냐, 부모님 사은이 있는데 대속의 사은이 가장 큰 사은이니 그것보다 먼저할 건 없다. 그러면 부모장례는 안해도 되는 것인가. 사은 가지고 부모 장례를 하라.
크게 두 가지입니다. 신앙의 걸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걸음입니다. 그 능력은 악이 없고 사랑이 가득 찰 때입니다. 두 번째 주님 따라가는 걸음에는 전부 다 내놔라, 너를 위한 것 없애야한다.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진리를 잡고 뒤로 돌아보지 말아라.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크게 두 가지고 주님 따라가는 법 세 가지입니다. 큰 소망이고 단일 소망입니다. 모든 걸 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