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1-14조회 464추천 52
2024년 1월 14일 주일 오후
찬송: 195장, 196장
본문: 전도서 7장 11절 ~ 18장
11절 12절은 지혜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 14절은 하나님의 역사, 15절부터는 지나치지 말아라고 하십니다.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다. 지혜와 유업과 아름답다는 걸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속성이란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이란 사활의 대속이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활의 대속은 사활의 작용이고 역사입니다. 속성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사랑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랑이 만든 결과물이 사활의 대속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속성은 사람이나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랑의 속성 가졌는데 사활의 대속을 만들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도성인신하셨고 사람으로 부활하심으로 사활의 대속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은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누구한테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반론하셔야합니다. 사람의 속성입니다. 사활의 대속입니다. 아버지가 두 딸을 하나는 던져서 살리고 하나는 안고 뛰어내렸는데 아이는 살았고 아버지는 머리를 부딪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자체가 사랑인데 사랑의 역사고 사랑의 작용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사람에게 있는 속성 중 하나입니다.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계산하고 연구하고 따지는 속성이 지혜성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이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고 강도가 다른 것처럼 지혜의 속성도 속성은 같으나 사람마다 다 다른 것입니다. 알고자 하는 것이 다 다른겁니다. 지혜란 말씀하신 건 그런 면이 있고 속성인데 작용이 사람따라 지혜를 가져야할 것이고 지식과 연결된 지혜기 때문에 잘 활용하는 만큼 지혜를 있게된다고 합니다.
지혜는 어떤 걸 지혜라고 하느냐, 미래를 아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는 것은 지식이고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다. 이 시간 후로 1분 후는 현재입니까 미래입니까. 한 달 후는요. 미래입니다. 1년 후는요 미래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아는 게 지혜입니까. 언제까지 알아야 지혜까 되는 겁니까. 그래서 미래를 알 수 있는 지혜는 영원까지 연결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영원을 안다. 시간을 알고 계산한다 모르는 거지요. 사람이 알던 모르든 영원까지를 계산하고 알아야하는데 이걸 알고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는 존재가 있고 작용이 있는 겁니다. 세월만 흘러가는 건 작용이 있는 것이고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았다. 60년 세월을 살았다. 사람이라는 사람이 발자취를 남긴 게 그런겁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겁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시간은 의미가 있는거지 존재와 동떨어진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요. 존재가 있고 활동 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영원한 사후세계부터 펼쳐질 것이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천군천사 있는 존재들과 하늘에서 할 일을 영원토록 할 겁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알아가고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고 모든 존재 역사를 하고 그걸 통해서 영광 돌리고 찬미가 되어지고 그런 걸 할겁니다. 이런 걸 지헤라고 합니다. 영원이라는 그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영원이 있다는 거, 영원이라는 시간 세월 속에 있는 걸 아는데 그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 지식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지식의 바탕에 대해서 영원을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계산하고 펼쳐진 모든 것을 지식의 말씀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계산해 살펴봐야합니다. 지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는 것이다. 한도 끝도 없는 것이고, 6000년 세월 속에 수 많은 사람과 존재의 작용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인간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무지할 때는 뭐라도 하는데 세밀해지고 깨달아갈수록 나눠지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분과가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하나가 전문만 하지 과의 종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분화가 되는 겁니다. 존재 종류도 많고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존재 하나하나 너무 많은 겁니다.
개미 한 마리를 연구해보지요. 그게 우주에서 몇 퍼센트 정도 되겠습니까. 0.1프로 되겠습니까 0.0001프로가 되겠습니까. 우주 전체 존재를 통틀어 종류 하나만 따져도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개미하나를 연구하려면 논문, 책 몇 권을 쓸 것입니다. 옛날에 개미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개미 안에 집도 짓고 서열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거 하나도 지식입니다. 모래알 하나만 연구해보지요 알마나 힘든지. 그게 전부 과학입니다. 거제도를 가면 거가대교가 있고 해저 터널이 있습니다. 40미터입니다. 100년 전만해도 꿈도 못꿀겁니다. 우리나라에 수심 40미터까지. 그렇게 길을 만들어놓고 현수교라고 합니까. 줄의 힘을 가지고 다리 지탱하는 걸 그렇게 부를겁니다. 줄 하나하나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탱하는 만큼 그 무거운 다리를 버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보니까 말레이시아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걸 지었는데 삼성에서 지었다지요. 땅 속에서 시맨트를 쐈는데 500미터까지 올라가면 감이 안 잡힙니다. 100미터를 걸어가보시지요. 얼마나 먼지. 500미터면 상당히 먼 것인데 시멘트를 쏘아서 올린답니다. 얼마나 센지. 철만큼 단단합니다. 그게 전부 물질을 분석해서 만들어서 그렇게 내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겁니다. 하나하나가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지식입니다. 그걸 인간이 무슨 수로 다 아는 겁니까. 모르는거죠.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에 정도만 필요한 것이지 그 지식에 파묻혀 죽고 맙니다. 많이 공부하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수 많은 존재와 역사가 있습니다. 유업같이 아름답다. 조상들에게 윗대 어른들에게 물려받는 걸 상속을 유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려받을 상속 재산이 무엇일까. 우리는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그게 유업인데 자체로 말하면 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 닮은 사람으로 은혜가 많을 것이고 전해주는 게 될 것이고 그 역사를 통해서 나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자라게 되고 감사하고 나로 말미암아 하게 되고 기업이 됩니다. 하늘나라와 그 역사가 유업같이 아름답다. 그러면 무엇이 아름답다는 말이 됩니까. 유업과 지혜가 아름답다고 하지요. 아름답다는 말은 형용사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보기 좋다는 말이지요. 어떤 게 아름다울까 사람의 외모도 아름다운 게 있습니다. 사람의 외모 아름다운 걸 저는 그렇게 봅니다.
인물 이쁜 사람을 보니까 약간만 얼굴 각도를 돌리면 흉측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물인 것은 조금만 해도 흉측하게 됩니다. 현재가 서로 우애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건 동사에 대한 아름다움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생각이 아름다운 겁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그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 아닌가요. 아름답습니다. 우리 부모님 건강을 챙겨드려야겠다. 살펴드려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챙겨야겠다 보호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챙겨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은 존재도 그렇고 그 자체에 있어야할 것이 제 역할을 바로 감당해야할 때 하는 것이지요.
지혜가 아름답다 유업이 아름답다 지혜가 유업처럼 아름답다 그 말은 아름다울 것입니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아름다운 것입니까. 지혜 자체가 아름다운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지헤는 아름다운 겁니다. 그게 유업같이 아름답다했으니까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지혜다 그 말이지요. 믿는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갖추는 것이 지혜고 그런 뜻이지요. 지혜는 그런 뜻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기본적으로 성경에 보면 햇빛을 보는 걸 도태되었을 때 낙태된자라고 합니다. 낙태된 자는 햇빛을 못 봅니다.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말입니다. 햇빛을 본다는 말은 살아있다는 말이지요. 속에 들어가면 햇빛이란 하나님의 빛이고 본다 그랬으니까 바라보는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고 살아야합니다. 택자라야하고 중생된 자야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야합니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그러면 조금 더 보탬이 된다. 이게 유익인데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데 택함받고 중생된 것이 연결된 것이고 지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필수조건이다 라는 것이지요.
지혜와 돈과 지식을 보호하는 것이 됩니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보호하지 안되는 겁니다. 힘이 있어야 능력이 있어야 가지고 있어야 보호할만한 실력이 있어야 보호되는 겁니다. 비교를 해놨습니다. 돈과 지헤를 비교해놓고 둘 다 비교한다고 하니까 돈은 범사에 다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있는 것이고 기독교는 유물주의가 아닙니다. 돈만능주의 유물주의라고 하고 그걸 공산주의라고 합니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입니다. 그래서 생산을 최고로 칩니다. 능력없는 사람은 다 쫓아내버립니다. 나쁜 공산주의자들은 능력없는 아이는 못 태어나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물주의는 무신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내 피와 땀을 줘야 도둑질입니다. 내 피를 주고 땀을 주는 게 돈이기 때문에, 돈은 아껴써라.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서 얼마 안되는 돈 쓴 걸 보니까 연합국 장군이 승리의 비결을 물으니까 물자 때문에 이겼습니다. 물품 조달 못하면 전쟁 못하는 겁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 비틀하다가 누가 쏴줬습니까. 누가 엄청난 물량을 가져다 주었지요. 아시겠죠. 북한에서 포탄하고 어마어마한 무기를 줬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뒤집어졌죠. 미국과 유럽 쪽에는 계산 다 하지요. 휘청휘청하는 거지요. 물자 조달이 엄천 근데, 그래서 돈이라는 것은 힘이 엄청 센 것입니다. 지식이 더 아름답다. 지식이란 과거와 현재를 아는 건데 미래를 아는 바탕이라는 뜻이지요. 인간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살피면 보이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란 역사는 사람사는 세상이고 현재까지 되어있으면 미래에도 문제 없을 것이고 안 믿는 세상일수록 미래를 짐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을 만든 지식입니다. 또 주권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모든 걸 내다보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를 만들기 때문에 돈도 능력있는 게 보호하는게 되고 지식이 더 아름답다 지식에 바탕된 지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 지혜는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보조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속에 앞날을 계산하는 그 속에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받을 수 있는 조건과 역할이 다 구비되어있어서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을 연결시켜주고 그러는 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다. 보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 뭘 봐야합니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봐라. 뭘 해야합니까. 대통령은 뭘 해야합니까. 대통령이 바뀌니까 어제 대만에 총통 선거 있었죠. 한 쪽은 친미파고 한 쪽은 친중파인데 한 쪽이 되면 지금처럼 될 것이고 친중파가 되면 흔들하게 되는데 친미파가 총통이 되어서 한 시름 놓은 사람이 될 겁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정권은 친중파였고 지금도 친미파입니다. 한 사람이 미국나라를 안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바뀌어버리면 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대통령의 사상을 알면 펼쳐진 위를 보면 일본과 5년 동안에 원수처럼 지내다가 한일 관계가 좋아지게 되는거지요. 그게 대통령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라. 내게 펼쳐진 일 보면 됩니다. 뭘 봐야합니까. 뭘 보면 됩니까. 내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 되는데 뭘 봐야합니까. 오전에 말씀을 드렸지요. 이 세상이나 우주적이나 국가적이 지방적이나 집안적이나 개인적이나 어떤 일이든지 이 세상에 일어나고 펼쳐지는 일은 모든 일 전부는 주권 섭리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사람이 어떻게해서 인위적이고 인공적이고 변경이지만은 하나님의 역사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이 하지 않는 일은 무엇인가. 단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봐라. 하나님이 굳게하신 것을 누가 굳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굽은 일 하지 않는 분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윤 대통령이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 말 듣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말은 그리하더라도 국민을 설득시키도록 만들어나가야지요. 그 생각 그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수는 틀릴 가능성이 많은 것이 다수입니다. 민주주의 중심이 마지막에 타락입니다. 독재가들이 정신만 바로 차리면 나라 다 발전합니다. 세계 역사가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독재자가 발전했고 싱가폴도 그렇습니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나님은 곧게만 하시는데 문제는 사람이 볼 때 그게 아닌겁니다. 하나님을 곧게하시는데 내가 보니까 굽었습니다. 내 생각입니다. 곧게하셨는데 인류가 볼 때 굽었으면 인류가 틀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봐라, 굳게 하겠느냐 인간의 관점입니다. 사람이 할 일은 14절입니다. 형통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곤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게만 하십니다. 사랑으로만 주십니다. 내가 보니까 힘들다 괴롭다 안 맞다 자기 주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통을 주셨느냐 의가 있는 가 보다. 감사하고 형통을 받도록 노력을 해라. 기뻐하면서 기뻐하지 말고 감사하고 형통 주신 걸 보니까 회개를 했는가보다. 하나님 볼 때 기뻐야해야보다. 조심을 해라. 기뻐해라. 반대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봐라, 인간관계 틀어집니다. 이유없는 일은 없으니까 생각해봐라. 뭘 생각합니까. 행정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역사기 때문에.
욥이 동방의 의읜인데 악에서 떠난 자였는데 욥이 알 수 없는 극심한 곤경을 주실 때 욥은 원인을 몰랐습니다. 자기의 의로운 정도가 너무 컸기 때문에. 아무리 돌아봐도 잘못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욥의 흠입니다. 내가 행한 잘못보다 고난이 너무 크다. 이렇게 고난을 받도록 죄를 짓지 않았다. 하나님이 심한 거 아니냐 하니까 어떤 사람이 되어있습니까. 하나님보다 의로운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나보다 의롭네 하면 내가 교만한 사람이었구나 하니까 곤경 다 돌이켜두셨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을 주고도 나오지 않으니까. 왜 이렇게 되어지는가. 형통을 주셨느냐 기뻐라. 곤고를 만났느냐 생각해봐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고 왜 그러셨을까. 이 두가지를 함께 주시면서 그 장래 일을 알지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왜 장래 일을 모르게 하셨을까요.
그 누구도 장래를 알 때 복되게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장래 일 알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유리하게 쓰게 되어있습니다. 천하 그 누구도. 사도 바울까지요.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아는 건 아는 것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크게 두 번째는 하나님 역사고 13절 14절, 15절부터 18절까지는 공부했는데 해보겠습니다. 헛된 날이라는 것은 자기 쓰기 나름입니다. 모든 주신 날이 솔로몬이 말하기를 헛되다 그랬는데 고린도후서인데 헛되지 않은 줄 앓이라. 어떻게 하는 지 알아서 무조건 헛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봤는가. 형통도 되고 곤고도 됩니다. 의를 했는데 멸망하는 사람이 있고 악행해서 장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 맞고 안 맞습니다. 그렇다면 의를 행했는데 망하고 죄를 지었는데 잘못하면 바로된 게 아니지요. 그리고 이걸 보면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면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지도 말아라.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고 우매자도 되지 말아라 라고 합니다. 의를 행했는데 망하는 게 뭐냐. 지나쳤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지나친 의인이 뭐이며 악인이 뭐냐, 자기 분량을 넘어서는 걸 말합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을 넘어섰는데 이걸 넘어가서 하는 게 자나친 의가 됩니다. 3살 짜리 아이가 어머니를 주겠다고 설거지가 가능한게 모르겠습니다만 세탁기를 하면 위험한거죠. 아버지를 도와드리겠다고 쌀 한 포대를 쥐면 힘듭니다. 역량이라는 게 있습니다. 3살 짜리는 3살 짜리 답게. 어머니 말씀 잘 들으면 되고 그게 의의 전부입니다. 그에게 성경 하루에 한 장 읽어라 그리하면 어머니가 지나친 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건 허영이고 허욕이지 명예욕입니다. 패망된다 그 말입니다.
먼저와서 많이 먹었다는 말은 주님 대속에 취한 건데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사랑에 취해서 우리 재산은 전 제산이 3천만원짜리가 전부인데 나도 주를 위해서 다 바쳐야지 3천만원 전부 연보합니다. 어떤 사람은 빛내서 연보합니다. 그게 지나친 의고 허영과 허욕입니다. 자기 분수를 넘어서지 말아라.
반대로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아라. 한 달에 500만원 버는 사람이 주일 연보를 천 원하면 악인입니다. 한 달에 500만원 버는 사람은 만 원 해도 될겁니다. 아까워서 축소를 시켜서 그러면 악이 됩니다. 그건 기한 전에 죽어버립니다. 축소 지켜서 마땅히 안되기 때문에 기능이 다 죽어버립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지나치지 말아야합니다.
이 모든 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습니다.
정리합니다. 유업같이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굳게 보이지만 곧게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통하면 감사하고 기뻐하고 곤고하면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나치지 말 것입니다. 주신 범위 분량을 넘어서면 허영을 조심해야합니다.
주신 분량을 축소해서 악하게 게으른 종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 벗어나야합니다.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95장, 196장
본문: 전도서 7장 11절 ~ 18장
11절 12절은 지혜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 14절은 하나님의 역사, 15절부터는 지나치지 말아라고 하십니다.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다. 지혜와 유업과 아름답다는 걸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속성이란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이란 사활의 대속이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활의 대속은 사활의 작용이고 역사입니다. 속성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사랑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랑이 만든 결과물이 사활의 대속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속성은 사람이나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랑의 속성 가졌는데 사활의 대속을 만들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도성인신하셨고 사람으로 부활하심으로 사활의 대속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은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누구한테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반론하셔야합니다. 사람의 속성입니다. 사활의 대속입니다. 아버지가 두 딸을 하나는 던져서 살리고 하나는 안고 뛰어내렸는데 아이는 살았고 아버지는 머리를 부딪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자체가 사랑인데 사랑의 역사고 사랑의 작용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사람에게 있는 속성 중 하나입니다.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계산하고 연구하고 따지는 속성이 지혜성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이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고 강도가 다른 것처럼 지혜의 속성도 속성은 같으나 사람마다 다 다른 것입니다. 알고자 하는 것이 다 다른겁니다. 지혜란 말씀하신 건 그런 면이 있고 속성인데 작용이 사람따라 지혜를 가져야할 것이고 지식과 연결된 지혜기 때문에 잘 활용하는 만큼 지혜를 있게된다고 합니다.
지혜는 어떤 걸 지혜라고 하느냐, 미래를 아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는 것은 지식이고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다. 이 시간 후로 1분 후는 현재입니까 미래입니까. 한 달 후는요. 미래입니다. 1년 후는요 미래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아는 게 지혜입니까. 언제까지 알아야 지혜까 되는 겁니까. 그래서 미래를 알 수 있는 지혜는 영원까지 연결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영원을 안다. 시간을 알고 계산한다 모르는 거지요. 사람이 알던 모르든 영원까지를 계산하고 알아야하는데 이걸 알고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는 존재가 있고 작용이 있는 겁니다. 세월만 흘러가는 건 작용이 있는 것이고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았다. 60년 세월을 살았다. 사람이라는 사람이 발자취를 남긴 게 그런겁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겁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시간은 의미가 있는거지 존재와 동떨어진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요. 존재가 있고 활동 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영원한 사후세계부터 펼쳐질 것이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천군천사 있는 존재들과 하늘에서 할 일을 영원토록 할 겁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알아가고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고 모든 존재 역사를 하고 그걸 통해서 영광 돌리고 찬미가 되어지고 그런 걸 할겁니다. 이런 걸 지헤라고 합니다. 영원이라는 그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영원이 있다는 거, 영원이라는 시간 세월 속에 있는 걸 아는데 그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 지식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지식의 바탕에 대해서 영원을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계산하고 펼쳐진 모든 것을 지식의 말씀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계산해 살펴봐야합니다. 지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는 것이다. 한도 끝도 없는 것이고, 6000년 세월 속에 수 많은 사람과 존재의 작용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인간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무지할 때는 뭐라도 하는데 세밀해지고 깨달아갈수록 나눠지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분과가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하나가 전문만 하지 과의 종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분화가 되는 겁니다. 존재 종류도 많고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존재 하나하나 너무 많은 겁니다.
개미 한 마리를 연구해보지요. 그게 우주에서 몇 퍼센트 정도 되겠습니까. 0.1프로 되겠습니까 0.0001프로가 되겠습니까. 우주 전체 존재를 통틀어 종류 하나만 따져도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개미하나를 연구하려면 논문, 책 몇 권을 쓸 것입니다. 옛날에 개미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개미 안에 집도 짓고 서열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거 하나도 지식입니다. 모래알 하나만 연구해보지요 알마나 힘든지. 그게 전부 과학입니다. 거제도를 가면 거가대교가 있고 해저 터널이 있습니다. 40미터입니다. 100년 전만해도 꿈도 못꿀겁니다. 우리나라에 수심 40미터까지. 그렇게 길을 만들어놓고 현수교라고 합니까. 줄의 힘을 가지고 다리 지탱하는 걸 그렇게 부를겁니다. 줄 하나하나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탱하는 만큼 그 무거운 다리를 버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보니까 말레이시아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걸 지었는데 삼성에서 지었다지요. 땅 속에서 시맨트를 쐈는데 500미터까지 올라가면 감이 안 잡힙니다. 100미터를 걸어가보시지요. 얼마나 먼지. 500미터면 상당히 먼 것인데 시멘트를 쏘아서 올린답니다. 얼마나 센지. 철만큼 단단합니다. 그게 전부 물질을 분석해서 만들어서 그렇게 내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겁니다. 하나하나가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지식입니다. 그걸 인간이 무슨 수로 다 아는 겁니까. 모르는거죠.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데에 정도만 필요한 것이지 그 지식에 파묻혀 죽고 맙니다. 많이 공부하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수 많은 존재와 역사가 있습니다. 유업같이 아름답다. 조상들에게 윗대 어른들에게 물려받는 걸 상속을 유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려받을 상속 재산이 무엇일까. 우리는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그게 유업인데 자체로 말하면 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 닮은 사람으로 은혜가 많을 것이고 전해주는 게 될 것이고 그 역사를 통해서 나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자라게 되고 감사하고 나로 말미암아 하게 되고 기업이 됩니다. 하늘나라와 그 역사가 유업같이 아름답다. 그러면 무엇이 아름답다는 말이 됩니까. 유업과 지혜가 아름답다고 하지요. 아름답다는 말은 형용사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보기 좋다는 말이지요. 어떤 게 아름다울까 사람의 외모도 아름다운 게 있습니다. 사람의 외모 아름다운 걸 저는 그렇게 봅니다.
인물 이쁜 사람을 보니까 약간만 얼굴 각도를 돌리면 흉측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물인 것은 조금만 해도 흉측하게 됩니다. 현재가 서로 우애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건 동사에 대한 아름다움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생각이 아름다운 겁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그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 아닌가요. 아름답습니다. 우리 부모님 건강을 챙겨드려야겠다. 살펴드려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챙겨야겠다 보호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챙겨야겠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은 존재도 그렇고 그 자체에 있어야할 것이 제 역할을 바로 감당해야할 때 하는 것이지요.
지혜가 아름답다 유업이 아름답다 지혜가 유업처럼 아름답다 그 말은 아름다울 것입니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아름다운 것입니까. 지혜 자체가 아름다운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지헤는 아름다운 겁니다. 그게 유업같이 아름답다했으니까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지혜다 그 말이지요. 믿는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갖추는 것이 지혜고 그런 뜻이지요. 지혜는 그런 뜻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기본적으로 성경에 보면 햇빛을 보는 걸 도태되었을 때 낙태된자라고 합니다. 낙태된 자는 햇빛을 못 봅니다.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말입니다. 햇빛을 본다는 말은 살아있다는 말이지요. 속에 들어가면 햇빛이란 하나님의 빛이고 본다 그랬으니까 바라보는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고 살아야합니다. 택자라야하고 중생된 자야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야합니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그러면 조금 더 보탬이 된다. 이게 유익인데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가는데 택함받고 중생된 것이 연결된 것이고 지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필수조건이다 라는 것이지요.
지혜와 돈과 지식을 보호하는 것이 됩니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보호하지 안되는 겁니다. 힘이 있어야 능력이 있어야 가지고 있어야 보호할만한 실력이 있어야 보호되는 겁니다. 비교를 해놨습니다. 돈과 지헤를 비교해놓고 둘 다 비교한다고 하니까 돈은 범사에 다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있는 것이고 기독교는 유물주의가 아닙니다. 돈만능주의 유물주의라고 하고 그걸 공산주의라고 합니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입니다. 그래서 생산을 최고로 칩니다. 능력없는 사람은 다 쫓아내버립니다. 나쁜 공산주의자들은 능력없는 아이는 못 태어나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물주의는 무신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내 피와 땀을 줘야 도둑질입니다. 내 피를 주고 땀을 주는 게 돈이기 때문에, 돈은 아껴써라.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서 얼마 안되는 돈 쓴 걸 보니까 연합국 장군이 승리의 비결을 물으니까 물자 때문에 이겼습니다. 물품 조달 못하면 전쟁 못하는 겁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 비틀하다가 누가 쏴줬습니까. 누가 엄청난 물량을 가져다 주었지요. 아시겠죠. 북한에서 포탄하고 어마어마한 무기를 줬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뒤집어졌죠. 미국과 유럽 쪽에는 계산 다 하지요. 휘청휘청하는 거지요. 물자 조달이 엄천 근데, 그래서 돈이라는 것은 힘이 엄청 센 것입니다. 지식이 더 아름답다. 지식이란 과거와 현재를 아는 건데 미래를 아는 바탕이라는 뜻이지요. 인간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살피면 보이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란 역사는 사람사는 세상이고 현재까지 되어있으면 미래에도 문제 없을 것이고 안 믿는 세상일수록 미래를 짐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을 만든 지식입니다. 또 주권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모든 걸 내다보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를 만들기 때문에 돈도 능력있는 게 보호하는게 되고 지식이 더 아름답다 지식에 바탕된 지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 지혜는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보조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속에 앞날을 계산하는 그 속에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받을 수 있는 조건과 역할이 다 구비되어있어서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을 연결시켜주고 그러는 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다. 보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 뭘 봐야합니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봐라. 뭘 해야합니까. 대통령은 뭘 해야합니까. 대통령이 바뀌니까 어제 대만에 총통 선거 있었죠. 한 쪽은 친미파고 한 쪽은 친중파인데 한 쪽이 되면 지금처럼 될 것이고 친중파가 되면 흔들하게 되는데 친미파가 총통이 되어서 한 시름 놓은 사람이 될 겁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정권은 친중파였고 지금도 친미파입니다. 한 사람이 미국나라를 안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바뀌어버리면 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대통령의 사상을 알면 펼쳐진 위를 보면 일본과 5년 동안에 원수처럼 지내다가 한일 관계가 좋아지게 되는거지요. 그게 대통령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라. 내게 펼쳐진 일 보면 됩니다. 뭘 봐야합니까. 뭘 보면 됩니까. 내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 되는데 뭘 봐야합니까. 오전에 말씀을 드렸지요. 이 세상이나 우주적이나 국가적이 지방적이나 집안적이나 개인적이나 어떤 일이든지 이 세상에 일어나고 펼쳐지는 일은 모든 일 전부는 주권 섭리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사람이 어떻게해서 인위적이고 인공적이고 변경이지만은 하나님의 역사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이 하지 않는 일은 무엇인가. 단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봐라. 하나님이 굳게하신 것을 누가 굳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굽은 일 하지 않는 분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윤 대통령이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 말 듣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말은 그리하더라도 국민을 설득시키도록 만들어나가야지요. 그 생각 그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수는 틀릴 가능성이 많은 것이 다수입니다. 민주주의 중심이 마지막에 타락입니다. 독재가들이 정신만 바로 차리면 나라 다 발전합니다. 세계 역사가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독재자가 발전했고 싱가폴도 그렇습니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나님은 곧게만 하시는데 문제는 사람이 볼 때 그게 아닌겁니다. 하나님을 곧게하시는데 내가 보니까 굽었습니다. 내 생각입니다. 곧게하셨는데 인류가 볼 때 굽었으면 인류가 틀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봐라, 굳게 하겠느냐 인간의 관점입니다. 사람이 할 일은 14절입니다. 형통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곤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게만 하십니다. 사랑으로만 주십니다. 내가 보니까 힘들다 괴롭다 안 맞다 자기 주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통을 주셨느냐 의가 있는 가 보다. 감사하고 형통을 받도록 노력을 해라. 기뻐하면서 기뻐하지 말고 감사하고 형통 주신 걸 보니까 회개를 했는가보다. 하나님 볼 때 기뻐야해야보다. 조심을 해라. 기뻐해라. 반대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봐라, 인간관계 틀어집니다. 이유없는 일은 없으니까 생각해봐라. 뭘 생각합니까. 행정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역사기 때문에.
욥이 동방의 의읜인데 악에서 떠난 자였는데 욥이 알 수 없는 극심한 곤경을 주실 때 욥은 원인을 몰랐습니다. 자기의 의로운 정도가 너무 컸기 때문에. 아무리 돌아봐도 잘못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욥의 흠입니다. 내가 행한 잘못보다 고난이 너무 크다. 이렇게 고난을 받도록 죄를 짓지 않았다. 하나님이 심한 거 아니냐 하니까 어떤 사람이 되어있습니까. 하나님보다 의로운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나보다 의롭네 하면 내가 교만한 사람이었구나 하니까 곤경 다 돌이켜두셨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을 주고도 나오지 않으니까. 왜 이렇게 되어지는가. 형통을 주셨느냐 기뻐라. 곤고를 만났느냐 생각해봐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고 왜 그러셨을까. 이 두가지를 함께 주시면서 그 장래 일을 알지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왜 장래 일을 모르게 하셨을까요.
그 누구도 장래를 알 때 복되게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장래 일 알면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유리하게 쓰게 되어있습니다. 천하 그 누구도. 사도 바울까지요.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아는 건 아는 것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크게 두 번째는 하나님 역사고 13절 14절, 15절부터 18절까지는 공부했는데 해보겠습니다. 헛된 날이라는 것은 자기 쓰기 나름입니다. 모든 주신 날이 솔로몬이 말하기를 헛되다 그랬는데 고린도후서인데 헛되지 않은 줄 앓이라. 어떻게 하는 지 알아서 무조건 헛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봤는가. 형통도 되고 곤고도 됩니다. 의를 했는데 멸망하는 사람이 있고 악행해서 장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 맞고 안 맞습니다. 그렇다면 의를 행했는데 망하고 죄를 지었는데 잘못하면 바로된 게 아니지요. 그리고 이걸 보면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면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지도 말아라.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고 우매자도 되지 말아라 라고 합니다. 의를 행했는데 망하는 게 뭐냐. 지나쳤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지나친 의인이 뭐이며 악인이 뭐냐, 자기 분량을 넘어서는 걸 말합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을 넘어섰는데 이걸 넘어가서 하는 게 자나친 의가 됩니다. 3살 짜리 아이가 어머니를 주겠다고 설거지가 가능한게 모르겠습니다만 세탁기를 하면 위험한거죠. 아버지를 도와드리겠다고 쌀 한 포대를 쥐면 힘듭니다. 역량이라는 게 있습니다. 3살 짜리는 3살 짜리 답게. 어머니 말씀 잘 들으면 되고 그게 의의 전부입니다. 그에게 성경 하루에 한 장 읽어라 그리하면 어머니가 지나친 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건 허영이고 허욕이지 명예욕입니다. 패망된다 그 말입니다.
먼저와서 많이 먹었다는 말은 주님 대속에 취한 건데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사랑에 취해서 우리 재산은 전 제산이 3천만원짜리가 전부인데 나도 주를 위해서 다 바쳐야지 3천만원 전부 연보합니다. 어떤 사람은 빛내서 연보합니다. 그게 지나친 의고 허영과 허욕입니다. 자기 분수를 넘어서지 말아라.
반대로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아라. 한 달에 500만원 버는 사람이 주일 연보를 천 원하면 악인입니다. 한 달에 500만원 버는 사람은 만 원 해도 될겁니다. 아까워서 축소를 시켜서 그러면 악이 됩니다. 그건 기한 전에 죽어버립니다. 축소 지켜서 마땅히 안되기 때문에 기능이 다 죽어버립니다. 그걸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지나치지 말아야합니다.
이 모든 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습니다.
정리합니다. 유업같이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굳게 보이지만 곧게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통하면 감사하고 기뻐하고 곤고하면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나치지 말 것입니다. 주신 범위 분량을 넘어서면 허영을 조심해야합니다.
주신 분량을 축소해서 악하게 게으른 종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 벗어나야합니다.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