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12-31조회 299추천 48
2023년 12월 31일 주일 오후
찬송: 46장, 96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2절 ~ 5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경에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은 거의 없는데 요한복음에 강조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꼭 같은 사람인데 듣는 사람이 경중에 맞춰지기 때문에 맞추신 겁니다. 표적을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표적이라고 합니다.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 하늘의 능력을 가르치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섯 오, 떡 병, 두 이, 물고기 어. 오병이어로 떡 다섯 개 물고기 하나로 몇천명이 먹었습니다. 한 아이의 먹을 도시락입니다. 이걸 내놓으니까 주님이 쓰셔서 여러 도리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 아이가 먹을 도시락을 주니까 오천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를 독립하고도 남겠다고 해서 왕을 삼으려 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 속에 도리를 담아 주셨는데 떡만 먹고 배불러서 떡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하늘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말한 것은 세상이 되길 바란겁니다.
주님은 하늘을 가르치려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깨달으려했는데 이걸 보지 않고 떡만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믿음생활 잘하면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 롯도 복음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표적을 보고 순종하니까 보는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잡았는데 롯은 세상 복을 주시니까 믿음을 받지 않고 복을 잡았습니다. 교회 역사에 보면 예수 잘 믿어서 복 받은 사람은 굉장히 많습니다. 부자들, 권력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믿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열어놓으면 하나님을 찾도록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고 관에다가 뭐 넣고 싶습니까 하니까 성경책 하나면 족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향했느냐 이 세상을 살았느냐.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믿었다하는 거 보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겠나보다 하고 복음 전도는 될 수 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해라. 전부다 사람의 아들 아닙니까. 도성인신하신 곳이고 낮아지심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해야 하나님 일을 하오리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하나님의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일이니다. 믿는 것이 일입니다. 어렴풋이 진작이 갑니다.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신 표적이 뭡니까.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먹은 것처럼 만나로 먹었습니다. 오병이어를 먹어놓고도 이럽니다. 까마귀 고기라는 말이 있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잊어버린답니다. 잊지 않아야할 사실을 잊어버리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합니다. 오병이어를 먹고도 그럽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린 양식으로 떡을 먹었는데 무슨 떡을 줍니까 하니까 진실로 진실로, 또 나옵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내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내려 세상에서 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가 이어지게 되는겁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하나님한테 사람되어 왔다. 내가 바로 떡이다. 그건 내가 너희들의 양식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부모를 아는데 하늘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고 떡이라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거지요.
사람이라는 것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두 가지. 주님 말씀을 유대인들이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가 뭐냐, 하나는 말의 각도가 안 맞으니까. 방향이 서로 안 맞는겁니다. 사과를 말하는데 밀감을 생각하면 안되지요. 핀트가 안 맞는 겁니다. 말하는 사람은 알맹이를 말하는데 껍데기를 말하면 안되지요. 그런 게 주관이라고 그럽니다. 주관에 갖혀서, 세상에 그런 말이 있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다는 사람이 있죠. 어떤 사람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 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걸 주관이라고 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래도 안 보이고 안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가 몸이 아픕니다.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러면 다른 말 안 들려도, 자기 아이에 대한 희귀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립니다. 그런 걸 주관이라고 그러고 핀트라고 그럽니다. 시야를 넓히는 방법, 말의 핀트를 생각해보는겁니다. 자기를 부리는 겁니다. 곧 자기 속의 뭉쳐진 자기를 깨뜨리는 게 어떤지 뭐라고 비유해놨습니까. 돌이라고 해놨습니다. 자기라해서, 기존 지식, 말씀 들어가기 전에 지식, 자기 주관, 이게 뭉쳐서 그러기 때문에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아서 자기대로 주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말씀을 들어도 안들립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겁니다.
한 자리에, 서부교회는 오전 오후 예배 다 참석합니다. 그대로 보는데 말씀을 잘 알아듣는 사람들은 대게 박사들, 그 당시 대학 졸업한 사람들.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다 알아듣습니다. 암송을 다 잘했는데 전체를 보니까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 외우고 나이가 먹을수록 틀립니다. 전체를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릴 때 말씀을 가르쳐야합니다. 어린 아이들 마음은 백지와 같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못알아들었고 다 그랬는데 방향이 다르면 생각해야하는데 머리 속에 다른 걸 해 놓으면 안되죠. 오전 예배 있는데 괴로운 분도 계실겁니다. 말씀대로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성경이 그걸 말하는데. 아마도 제가 하는 말과 못알아듣는 그 분의 생애가 있겠지요. 안 들어왔으니까 그런 거지요.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모르면 무슨 말일까. 들어야 생각을 하지요. 모르면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식이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희로애락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다 없앱니다. 안 보고 안 듣고 다 버리고 그래서 불교는 마지막에 종착점이 사람이 돌이 되는 겁니다. 돌은 아무 생각이 없고 고통이 없거든요. 그래서 도 닦는 건 벽을 쳐다보고 자기 속의 자기 다 버리고 무아지경이지요. 자기 없으니까 고통도 기쁨도 아무것도 없겠지요.
기독교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면 그 방향을 하늘로 향해야 들립니다. 인간을 향하는 그 방향을 비로소 말씀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렇게 알아듣지 못하니까 주님은 알아듣거나 알아듣지못하거나 말을 갑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주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못얻습니다. 이건 건설구원의 생명입니다. 건설구원이 뭡니까. 기본 구원은 무엇입니까. 기본구원은 무엇입니까. 각도가 어렵지요. 나의 소원과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받은 구원입니다. 그 기본 구원 안에 생명이 들었고 영생이 들었습니다.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기본구원 받은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마셔야 합니다. 이미 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먹고 마시지 않아도 생명 가졌다고 하는 걸 기본구원인데 그렇지 않으면 건설 구원의 생명입니다. 그건 영생과 이어지는 것이고 활동에 의해서 좌우되는겁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연결이 없다. 그 말입니다. 연결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면, 생명 끊어진 것을 시체, 송장이라 이르지요. 끊어진 상태를 연결하지 않으면 없는겁니다. 다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가졌다 그랬으니까 해석을 해봐야겠는데,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건설구원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가졌다는 의미는 완성되었다는 이름인데 일단 현재를 가졌다면 가지고 있는 겁니다. 먹고 마시면 출발이 되고 있다. 성경해석도 있습니다. 영생을 가졌고 생명을 하나님의 영생이라고 합니다. 연결된 만큼 영원히 사는 거니까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립니다. 부활이라 그랬는데 생명의 부활인데 기본적인 부활이 아니고 기능적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인 부활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능적인 부활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하고 마셔야한다는 겁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사람인데 제가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설교한다면 그분 속에 주님이 계신겁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찬란하고 구경하다보니까 그러면 주님 없고 나 혼자 사는 것이 되는 거겠지요. 주님의 뭔가를 먹고 마시면 나도 그리 됩니다.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주님 안에 계시고 살아계신 아버지께로 인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사는 사람. 죽지 못해 사는 사람. 주님은 아버지 때문에 삽니다. 그처럼 우리도 원동이 되어서 삽니다. 근본이 되어진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내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것이고 주로 인하여 산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앞에서 이건 기본적으로 생명을 가졌을 때 가능한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생명력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고차원적인 인격으로 해야합니다. 먹고 마시는게 중요한거죠. 살이 무엇이며 피는 무엇인가. 우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말로 말하면 사람이라는 거지요. 육체라는 것은 보이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가변적인 사람의 모습. 이게 사람의 육체입니다. 마음은 안보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보입니까. 몸은 보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서 몸이라 그럽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들, 잘 듣는 사람들, 그 사람. 사람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그게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 육체라 살과 피다.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세상을 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사람은 세상을 삽니다. 두발로 먹고 입으로 먹고, 전부 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걸 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몸도 있습니다. 죽은 몸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인생길을 걸어갈, 그 사람을 몸이라, 살이라 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뜻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하면 이 세상 인간과 비유하니까... 공공장소에 성탄 장식을 하는게 복음이 되겠느냐. 장식하고 4월에 절이 등을 갖다 놓으니까 예수하고 부처하고 똑같네 이렇게 치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순신을 말하고 누구를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주님과 비교할 수 없는데 내 살과 피를 먹어라, 주님의 이력을 먹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력을 어떻게 먹습니까. 주님의 살과 피는 이력입니다. 대속의 생애고 인성의 부활이고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살과 피를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사활의 대속 공로입니다. 사활의 대속 공로는 뭘로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의 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살 찢고 피 흘려 만들었습니다. 몸이 없으면 사활의 대속 공로는 없는 겁니다. 우리와 꼭 같은 사람에게 되신 주님이 찢어서 주신 게 공로입니다. 같은 살과 피를 가져도 어떤 사람의 살과 피는 많은 사람의 이력이 있습니다. 살과 피를 먹어라. 해와 같이 빚니라. 주남선 목사님 전기입니다. 그게 양식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먹는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도성인신입니다. 그 동기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 그랬습니까. 이 모든 역사에서는 사랑이 있는데, 그게 어떤 사랑이라고요, 자존의 사랑, 순전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희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서 발음되어서 맺어진 결과가 있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서 된 것이고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주님의 이름이고 그게 주님의 몸과 피, 살입니다. 그럼 이걸 먹는데 먹는 방법은 세 가지죠. 첫 번째, 지식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말씀 안 듣고 졸면 밥을 안 먹는게 되지요. 생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약해지고 마지막에 죽는 겁니다. 그게 유지가 되고 자라고 번식이 됩니다. 안 먹으면 반대가 됩니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저는 어릴 때 몸이 이렇게 됐냐하면 영양실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풍목사님 사택의 전부 키가 작죠. 안 먹으면 약해지고 쪼그라듭니다. 지금도 아이들 안 먹이면 쪼그라듭니다. 그러다가 안 먹으면 죽는 겁니다. 그게 양식입니다. 유럽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고 동남아도 가서 봐라, 보고 듣고 느껴서 양식을 삼아서 견물을 넓혀라, 길러나가라는 거지요. 시대가 잘못되어서 함부로 책을 잘못 읽으면 안되는 겁니다.
아는 게 첫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해보는겁니다. 말씀도 생각하는게 씹어먹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려면 곰국 설교를 해라고 합니다. 곰국은 먹기가 어렵습니까 편하고 좋습니까. 곰국은 비위 약한 사람 잘 못먹습니다. 시원하게 사이다 설교는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설교는 곰국 설교를 해라. 이게 생각하는 것이고 파고 들어가는 것이고 명상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게 느낌도 있고 죄송함도 있고 소망도 생겨지고 죄송했다가. 그게 생각이고 먹는겁니다. 주님 가신 그곳에 동참을 하는 겁니다. 주와 같은 사람을 하시고 사랑이란 아버지가 집에 불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아이 둘 안고 뛰어내렸는데 아이 두 명 살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떤 젊은 청년은 부모를 살리고 죽었죠. 그래서 여인은 약한데 어머니는 왜 강합니까. 모성애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랑 좀 가져봐야겠다. 나도 좀 사랑을 해봐야겠다. 주님이 그러실 때 나도 그래야겠다. 말씀도 가르치고 기도도 하고 동참할 때 비로소 양식이 되는 겁니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면 신앙이 안 자라겠습니다.
공자의 도덕을 먹으면 공자같은 사람이 되고 석가모니는 석가모니처럼 될거고, 애국자를 먹으면 애국자처럼 되고 주님을 양식삼아 먹으면 주님을 먹게 되겠지요. 이게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말씀으로 이 한 주간을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46장, 96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2절 ~ 5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경에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은 거의 없는데 요한복음에 강조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꼭 같은 사람인데 듣는 사람이 경중에 맞춰지기 때문에 맞추신 겁니다. 표적을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표적이라고 합니다.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 하늘의 능력을 가르치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섯 오, 떡 병, 두 이, 물고기 어. 오병이어로 떡 다섯 개 물고기 하나로 몇천명이 먹었습니다. 한 아이의 먹을 도시락입니다. 이걸 내놓으니까 주님이 쓰셔서 여러 도리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 아이가 먹을 도시락을 주니까 오천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를 독립하고도 남겠다고 해서 왕을 삼으려 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 속에 도리를 담아 주셨는데 떡만 먹고 배불러서 떡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하늘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말한 것은 세상이 되길 바란겁니다.
주님은 하늘을 가르치려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깨달으려했는데 이걸 보지 않고 떡만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믿음생활 잘하면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 롯도 복음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표적을 보고 순종하니까 보는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잡았는데 롯은 세상 복을 주시니까 믿음을 받지 않고 복을 잡았습니다. 교회 역사에 보면 예수 잘 믿어서 복 받은 사람은 굉장히 많습니다. 부자들, 권력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믿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열어놓으면 하나님을 찾도록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고 관에다가 뭐 넣고 싶습니까 하니까 성경책 하나면 족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향했느냐 이 세상을 살았느냐.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믿었다하는 거 보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겠나보다 하고 복음 전도는 될 수 있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해라. 전부다 사람의 아들 아닙니까. 도성인신하신 곳이고 낮아지심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해야 하나님 일을 하오리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하나님의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일이니다. 믿는 것이 일입니다. 어렴풋이 진작이 갑니다.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신 표적이 뭡니까.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먹은 것처럼 만나로 먹었습니다. 오병이어를 먹어놓고도 이럽니다. 까마귀 고기라는 말이 있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잊어버린답니다. 잊지 않아야할 사실을 잊어버리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합니다. 오병이어를 먹고도 그럽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린 양식으로 떡을 먹었는데 무슨 떡을 줍니까 하니까 진실로 진실로, 또 나옵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내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내려 세상에서 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가 이어지게 되는겁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하나님한테 사람되어 왔다. 내가 바로 떡이다. 그건 내가 너희들의 양식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부모를 아는데 하늘에서 왔다고 하니 그러고 떡이라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거지요.
사람이라는 것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두 가지. 주님 말씀을 유대인들이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가 뭐냐, 하나는 말의 각도가 안 맞으니까. 방향이 서로 안 맞는겁니다. 사과를 말하는데 밀감을 생각하면 안되지요. 핀트가 안 맞는 겁니다. 말하는 사람은 알맹이를 말하는데 껍데기를 말하면 안되지요. 그런 게 주관이라고 그럽니다. 주관에 갖혀서, 세상에 그런 말이 있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다는 사람이 있죠. 어떤 사람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 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걸 주관이라고 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래도 안 보이고 안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가 몸이 아픕니다.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러면 다른 말 안 들려도, 자기 아이에 대한 희귀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립니다. 그런 걸 주관이라고 그러고 핀트라고 그럽니다. 시야를 넓히는 방법, 말의 핀트를 생각해보는겁니다. 자기를 부리는 겁니다. 곧 자기 속의 뭉쳐진 자기를 깨뜨리는 게 어떤지 뭐라고 비유해놨습니까. 돌이라고 해놨습니다. 자기라해서, 기존 지식, 말씀 들어가기 전에 지식, 자기 주관, 이게 뭉쳐서 그러기 때문에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아서 자기대로 주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말씀을 들어도 안들립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겁니다.
한 자리에, 서부교회는 오전 오후 예배 다 참석합니다. 그대로 보는데 말씀을 잘 알아듣는 사람들은 대게 박사들, 그 당시 대학 졸업한 사람들.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다 알아듣습니다. 암송을 다 잘했는데 전체를 보니까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 외우고 나이가 먹을수록 틀립니다. 전체를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릴 때 말씀을 가르쳐야합니다. 어린 아이들 마음은 백지와 같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못알아들었고 다 그랬는데 방향이 다르면 생각해야하는데 머리 속에 다른 걸 해 놓으면 안되죠. 오전 예배 있는데 괴로운 분도 계실겁니다. 말씀대로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성경이 그걸 말하는데. 아마도 제가 하는 말과 못알아듣는 그 분의 생애가 있겠지요. 안 들어왔으니까 그런 거지요.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모르면 무슨 말일까. 들어야 생각을 하지요. 모르면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식이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희로애락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다 없앱니다. 안 보고 안 듣고 다 버리고 그래서 불교는 마지막에 종착점이 사람이 돌이 되는 겁니다. 돌은 아무 생각이 없고 고통이 없거든요. 그래서 도 닦는 건 벽을 쳐다보고 자기 속의 자기 다 버리고 무아지경이지요. 자기 없으니까 고통도 기쁨도 아무것도 없겠지요.
기독교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면 그 방향을 하늘로 향해야 들립니다. 인간을 향하는 그 방향을 비로소 말씀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렇게 알아듣지 못하니까 주님은 알아듣거나 알아듣지못하거나 말을 갑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주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못얻습니다. 이건 건설구원의 생명입니다. 건설구원이 뭡니까. 기본 구원은 무엇입니까. 기본구원은 무엇입니까. 각도가 어렵지요. 나의 소원과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받은 구원입니다. 그 기본 구원 안에 생명이 들었고 영생이 들었습니다.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기본구원 받은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마셔야 합니다. 이미 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먹고 마시지 않아도 생명 가졌다고 하는 걸 기본구원인데 그렇지 않으면 건설 구원의 생명입니다. 그건 영생과 이어지는 것이고 활동에 의해서 좌우되는겁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연결이 없다. 그 말입니다. 연결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면, 생명 끊어진 것을 시체, 송장이라 이르지요. 끊어진 상태를 연결하지 않으면 없는겁니다. 다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가졌다 그랬으니까 해석을 해봐야겠는데,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건설구원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가졌다는 의미는 완성되었다는 이름인데 일단 현재를 가졌다면 가지고 있는 겁니다. 먹고 마시면 출발이 되고 있다. 성경해석도 있습니다. 영생을 가졌고 생명을 하나님의 영생이라고 합니다. 연결된 만큼 영원히 사는 거니까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립니다. 부활이라 그랬는데 생명의 부활인데 기본적인 부활이 아니고 기능적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기본적인 부활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능적인 부활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하고 마셔야한다는 겁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사람인데 제가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설교한다면 그분 속에 주님이 계신겁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찬란하고 구경하다보니까 그러면 주님 없고 나 혼자 사는 것이 되는 거겠지요. 주님의 뭔가를 먹고 마시면 나도 그리 됩니다.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주님 안에 계시고 살아계신 아버지께로 인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사는 사람. 죽지 못해 사는 사람. 주님은 아버지 때문에 삽니다. 그처럼 우리도 원동이 되어서 삽니다. 근본이 되어진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내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것이고 주로 인하여 산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앞에서 이건 기본적으로 생명을 가졌을 때 가능한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생명력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고차원적인 인격으로 해야합니다. 먹고 마시는게 중요한거죠. 살이 무엇이며 피는 무엇인가. 우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 말로 말하면 사람이라는 거지요. 육체라는 것은 보이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가변적인 사람의 모습. 이게 사람의 육체입니다. 마음은 안보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보입니까. 몸은 보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서 몸이라 그럽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들, 잘 듣는 사람들, 그 사람. 사람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그게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 육체라 살과 피다.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세상을 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사람은 세상을 삽니다. 두발로 먹고 입으로 먹고, 전부 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걸 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몸도 있습니다. 죽은 몸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인생길을 걸어갈, 그 사람을 몸이라, 살이라 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뜻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하면 이 세상 인간과 비유하니까... 공공장소에 성탄 장식을 하는게 복음이 되겠느냐. 장식하고 4월에 절이 등을 갖다 놓으니까 예수하고 부처하고 똑같네 이렇게 치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순신을 말하고 누구를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주님과 비교할 수 없는데 내 살과 피를 먹어라, 주님의 이력을 먹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력을 어떻게 먹습니까. 주님의 살과 피는 이력입니다. 대속의 생애고 인성의 부활이고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살과 피를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사활의 대속 공로입니다. 사활의 대속 공로는 뭘로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의 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살 찢고 피 흘려 만들었습니다. 몸이 없으면 사활의 대속 공로는 없는 겁니다. 우리와 꼭 같은 사람에게 되신 주님이 찢어서 주신 게 공로입니다. 같은 살과 피를 가져도 어떤 사람의 살과 피는 많은 사람의 이력이 있습니다. 살과 피를 먹어라. 해와 같이 빚니라. 주남선 목사님 전기입니다. 그게 양식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먹는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도성인신입니다. 그 동기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라 그랬습니까. 이 모든 역사에서는 사랑이 있는데, 그게 어떤 사랑이라고요, 자존의 사랑, 순전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희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서 발음되어서 맺어진 결과가 있습니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서 된 것이고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주님의 이름이고 그게 주님의 몸과 피, 살입니다. 그럼 이걸 먹는데 먹는 방법은 세 가지죠. 첫 번째, 지식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말씀 안 듣고 졸면 밥을 안 먹는게 되지요. 생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약해지고 마지막에 죽는 겁니다. 그게 유지가 되고 자라고 번식이 됩니다. 안 먹으면 반대가 됩니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저는 어릴 때 몸이 이렇게 됐냐하면 영양실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풍목사님 사택의 전부 키가 작죠. 안 먹으면 약해지고 쪼그라듭니다. 지금도 아이들 안 먹이면 쪼그라듭니다. 그러다가 안 먹으면 죽는 겁니다. 그게 양식입니다. 유럽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고 동남아도 가서 봐라, 보고 듣고 느껴서 양식을 삼아서 견물을 넓혀라, 길러나가라는 거지요. 시대가 잘못되어서 함부로 책을 잘못 읽으면 안되는 겁니다.
아는 게 첫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해보는겁니다. 말씀도 생각하는게 씹어먹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려면 곰국 설교를 해라고 합니다. 곰국은 먹기가 어렵습니까 편하고 좋습니까. 곰국은 비위 약한 사람 잘 못먹습니다. 시원하게 사이다 설교는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설교는 곰국 설교를 해라. 이게 생각하는 것이고 파고 들어가는 것이고 명상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게 느낌도 있고 죄송함도 있고 소망도 생겨지고 죄송했다가. 그게 생각이고 먹는겁니다. 주님 가신 그곳에 동참을 하는 겁니다. 주와 같은 사람을 하시고 사랑이란 아버지가 집에 불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아이 둘 안고 뛰어내렸는데 아이 두 명 살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떤 젊은 청년은 부모를 살리고 죽었죠. 그래서 여인은 약한데 어머니는 왜 강합니까. 모성애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랑 좀 가져봐야겠다. 나도 좀 사랑을 해봐야겠다. 주님이 그러실 때 나도 그래야겠다. 말씀도 가르치고 기도도 하고 동참할 때 비로소 양식이 되는 겁니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면 신앙이 안 자라겠습니다.
공자의 도덕을 먹으면 공자같은 사람이 되고 석가모니는 석가모니처럼 될거고, 애국자를 먹으면 애국자처럼 되고 주님을 양식삼아 먹으면 주님을 먹게 되겠지요. 이게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말씀으로 이 한 주간을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