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3-12-31조회 303추천 32
2023년 12월 31일 주일 오전
찬송: 171장, 51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2절 ~ 59절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은 세월을 산 분들은 느끼는 겁니다. 살같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활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총알처럼 빠른 세월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또 세월을 가르켜서 유수같다고 합니다. 어떤 것도 다 멈출 수 있는데 세월말은 천하장사도 세월은 세우지 못합니다. 세월은 흘러갈 뿐입니다. 흘러갈 뿐이고 생각이 없고 그냥 흘러가는데 멈추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합니다. 조금만 살아보면 안 먹고 싶어합니다. 젊은 상태로 유지하길 원합니다. 요즘 그런 일이 들렸는데 돈이 많으니까 젊은 사람의 피를 사서 피갈이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젊어질까 그래도 세월은 가는 것이고 사람의 육체는 늙어지고 낡아지고 부패되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과항력이라는 것 앞에는 순리 따라서 순응해 가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사울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가항력 앞에서 맞서면 자기만 깨지는 겁니다. 그런 것을 어지럽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세월은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 늙어지며 낡아지며 그럴 수 밖에 없는 거구나. 그걸 깨닫고 어떻게 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잘 살아볼까를 연구하는 게 지혜롭지. 이걸 거슬려서 하는 것은 참 어리석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병이 옵니다. 의사 처방을 해서 유지하면 본인도 괴롭고 어느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의학의 방법을 포기하고 당당하게 갈 날을 기다리는게 종들입니다. 그걸 본받고 따라갈 필요가 있는겁니다. 전도서 7장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30명 정도가 나와서 발표했습니다. 30명 전부 다 잘 외워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그 전도서 7장의 첫 선구가 뭐였습니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이력을 말하고 발자취를 말합니다. 흔적입니다. 오늘 2023년 12월 31일이 주일이 됐습니다. 작년은 1월 1일이 주일이었을 겁니다. 내년이 되는데 주일이 됩니다. 마지막날 주일을 하면서 옛날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이 되고 점점 날이 갈수록 그 흔적 언행심사 남이 보던 안 보든 나는 아니까. 나의 발자취를 몰라도 나는 압니다. 가장 당당하고 그러는 게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겁니다. 다른 사람 속이면 자기를 먼저 속이는 게 되는 것이고. 중심을 보고 뜻을 보고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 앞에 돌아가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잘못 살아도 평생 행한 일 돌아보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돌아가서 바꾸지를 못합니다. 이걸 하나님이 아십니다.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회개를 해라.
회개란 것은 지난 시간에 붙들려서 탄식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잘 발효시키니까 거름이 되는데 새롭게 땅에서 돋아나고 살아난 양식이 됩니다. 앞날에 살아가는데 거름을 삼으면 회개가 되는 겁니다. 지난 날 잘못된 게 거름을 삼아서 회개가 됩니다.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점점 아름다운 이름으로 되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천 년 만 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때 되면 가야합니다. 미련을 쌓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게 지혜롭습니다. 가야될 하늘을 소망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 31일이라서 과거에는 형식의 예배를 드렸는데 요즘은 강하지 못하고 있어서 못드리는데 오늘 밤에 예배는 못 드려도 보일러를 따뜻하게 지하에 할 거니까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읽으시고 돌아보시고 각오도 하시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찬식을 준비하는 말씀입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교회는 이상하게 그분도 정통 칼빈주의를 부르짖는 신학자고 박사인데 벌써 30년 가까이 성찬식을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만있다는 말은 썩고 죽었다는 뜻이 됩니다. 총공회라는 간판 단 대형 교회에서 성창식을 안한다. 비정상인겁니다. 뭔가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하는데 아무 역사 없으면 무더기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정과 교인들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탄과 성찬은 반대적인 면이 있습니다. 성탄은 태어나신 날이고 성찬은 죽으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찬식 기간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본문에 52절부터 59절까지 봉독했는데 이어집니다. 22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으냐,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인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베푸시니까 왕을 삼으려고 해서 도망가시고 제자들은 보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밤에 풍랑을 만나서 죽게된 걸 보시고 바다 위를 건너서 오셨습니다. 오병이어를 행하던 그 유대인들이 보니까 안보입니다. 그래서 건너와 보니 그곳에 계십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그러니까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중간에서 배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나를 찾아왔느냐. 내가 베푼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것이 아니고. 표적. 표적이란 속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떡에 대한 말도 나왔고 만나라는 말도 나오고 내가 바로 떡이다. 양식,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떡을 말씀하시고 하늘을 말씀하십니다. 두 가지 면을 말씀하는데 이해가 불가능한 겁니다. 내가 떡이라고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고 그럽니다.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볼 때 사람입니다. 머리털이 있고 귀가 두 개 있고 숨을 쉬고 있고 사람입니다. 주님이 떡이다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유대인들과 함께 사는 동네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이해가 안되는거죠. 당신은 요셉과 마리아 아들 아닌가요. 세상에서 났는데 호적이 있는데 예수님은 호적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호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을 할 때 예수님도 호적을 하려고 가셨습니다. 이해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 이해를 못할까.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끼리 사람 사람끼리 대화할 때 한 쪽이 말하는데 못알아들으면 말 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각도가 다른겁니다. 말하자면 한국말 할 때 한국 사람이 못 알아듣는거지요. 자녀에게 말하면 자녀에게 그런 말을 못합니다. 말의 각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시각이 다른 겁니다. 수박을 설명합니다. 수박이란, 파란색이고 줄이 끄여져있고 둥글고 타원형도 있고 씨가 있고 먹으면 달콤하고 시원하고 이게 수박입니다. 하는데 호박을 생각하고 듣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은 수박인데 호박을 생각하면 아닌겁니다. 머리 속에 호박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문제가 되는 거지요. 이런 과일이 있습니다. 주먹만하고 사과, 이렇게 설명하면 밀감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과를 설명하는데 밀감을 두고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이걸 각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설명하는데 이 세상 각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알맹이를 설명하는데 껍데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못알아들으면 내가 엉뚱하게 듣고 있는가 돌아보셔야합니다. 왜 말을 못알아듣느냐. 우물 안의 개구리입니다. 자신의 관념과 생각이 있습니다. 거기서 들으면 들려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하늘에서 하다니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떡도 말씀할 때도 떡이라 그러니까 바보도 아니고 정신나간 사람도 아니고 능력을 행하는 분이고 이걸 봐서 우리가 모르는 게 있나 보다. 하고 좀 생각하고 따져보면 되는데 자기들아는 게 전부인 줄 알고 부인해버립니다. 그래서 과거 전통의 유전의 법 들리면은 심각해집니다. 두 가지 법 때문에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이의 상대 말을 알아들으려면 두 가지를 해야합니다.
자기 주관을 빼 버리고 객관을 들어봐야합니다. 그리고 말의 각도를 맞춰봐야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이 중요한 겁니다. 원리를 기억하면서 생각해봅니다. 계속 떡을 말씀하고 당신의 몸을 떡이라고 하니까 내 떡을 먹어라, 주님의 떡인데 그 떡을 먹으라 하니까 뭘 먹으라는 말이 되겠습니까. 내 몸이 떡어라. 주님을 먹으라는 말이 되지요. 6장, 52절이 있습니다. 이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툽니다. 제 살을 이야기해줘서 먹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께서 내 몸은 떡이고 내 살이 떡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살을 먹지않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실감으로 들어야겠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이 생명은 기본구원의 생명이 아니고 건설 구원의 생명 말합니다. 영생이란 생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유지되는 게 영생이라고 그러는데 생명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살과 피를 먹으면 그렇게 됐고 부활입니다. 부활은 기능적인 부활을 말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지옥입니다. 영원한 사망입니다. 세 번째. 그 주님 살과 피를 참된 양식 참된 음료입니다. 하나 뿐이라, 섞임없다. 진짜다 그 말입니다. 참 사람 양식이라 그 말입니다. 56절, 그 사람이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 겉은 나인데 속은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57절은 나를 보면서 아버지를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원동되어 산다 그 뜻입니다. 뭐가 없습니까. 생명이 없습니다. 두 번째 기능적인 부활을 하게 됐습니다. 세 번째,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됩니다. 주님이 원동력이 됩니다. 주님이 사는 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피라는 것은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가. 그 육체를 뜯어먹으라는 말이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의미가 있겠습니다. 주님의 몸과 필요한 것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피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달라도 피라는 붉은 것은 같습니다. 꼭 같은 사람입니다. 이게 주님의 당신의 몸을 가르켜서 떡이라 말씀하시고 음료라 말씀하시는데 먹고 마시라하신 그게 생명도 없고 영생이 있고 다섯가지 말씀해주신 것은 뭘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몸, 사람의 몸은 피를 말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그 사람, 인체의 사람, 마음이 있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육체라는 거지요. 그 사람의 몸. 요즘은 외모지상주의가 돼서 키가 커야하고 몸이 날씬하면 좋아하는데 허리에 병이 생깁니다. 날씬하고 얼굴이 아주 작게 생긴 걸 좋아하는데 육체라는 것은 다 흙이고 별것도 아닙니다.
껍데기 페인트칠을 남자라하는 인간들이 못나갔고 그러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제일 껍데기 외모, 실력, 이것도 시각입니다. 이런 각도를 말을 하면 못알아듣습니다. 인격 가진 사람. 육체. 그게 몸입니다. 몸, 살 그 몸은 뭐하는 겁니까. 죽은 사람은 상관할 거 없고 이 세상을 잘 살던 못 살던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생애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살과 피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그런 기력의 시작이라지요. 주님의 몸이 있는데,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위대한 장군이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은 그 사람의 몸과 피를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애국의 마음이 생겨집니다. 그렇게 연결시켜 보는 겁니다. 그의 몸과 피는 무엇인가, 구국의 영운인 그를 생각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내가 떡이다. 내가 양식이라 그 말입니다. 생명가진 그의 필수 없으면 안되는 조건입니다. 먹어라, 내가 바로 양식이니까 나를 먹어라, 그게 바로 생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주님의 몸 떡 살을 먹으라는 것은 주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몸이라는 것은 어떤 생애였으냐 주님의 생애, 그것은 대속의 생애였고 그 생애와 죽으심이고 그 주님의 몸에 고난을 생각하고 죽으심에 동기가 있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대속의 생애와 죽으심의 동기는 사랑이고, 희생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맺어진 결과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전체적으로 말하면 몸이라고 표현했고 그 안에 들어가보면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있으니까 통틀어서 보면 몸이라 그러셨고 양식이라고 그랬고 이걸 먹으라 하신 겁니다. 그러면 먹는 다는 것은 어떻게 먹는 것인가. 먹는 것은 돌이 먹습니까 모래가 먹습니까. 개미가 먹습니까. 먹는다는 말은 생명이다 그 말입니다.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무생물은 먹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은 뭐든지 먹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에 따라 먹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사람인데 젖먹이는 젖을 먹습니다. 자라면 이유식 먹고 밥먹습니다. 음식이란 양식이란 존재에 따라 다릅니다. 강아지한테 사람먹는 음식은 죄가 됩니다. 시대가 변해도 정상은 정상이라야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지. 아무리 시간이 변해도 바뀔 수는 없는 겁니다.
오후에 또 살펴봅니다. 성경 읽고 말씀 듣고 그러면 알도록 노력합시다.
찬송: 171장, 51장
본문: 요한복음 6장 52절 ~ 59절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은 세월을 산 분들은 느끼는 겁니다. 살같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활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총알처럼 빠른 세월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또 세월을 가르켜서 유수같다고 합니다. 어떤 것도 다 멈출 수 있는데 세월말은 천하장사도 세월은 세우지 못합니다. 세월은 흘러갈 뿐입니다. 흘러갈 뿐이고 생각이 없고 그냥 흘러가는데 멈추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합니다. 조금만 살아보면 안 먹고 싶어합니다. 젊은 상태로 유지하길 원합니다. 요즘 그런 일이 들렸는데 돈이 많으니까 젊은 사람의 피를 사서 피갈이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젊어질까 그래도 세월은 가는 것이고 사람의 육체는 늙어지고 낡아지고 부패되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과항력이라는 것 앞에는 순리 따라서 순응해 가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사울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가항력 앞에서 맞서면 자기만 깨지는 겁니다. 그런 것을 어지럽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세월은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 늙어지며 낡아지며 그럴 수 밖에 없는 거구나. 그걸 깨닫고 어떻게 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잘 살아볼까를 연구하는 게 지혜롭지. 이걸 거슬려서 하는 것은 참 어리석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병이 옵니다. 의사 처방을 해서 유지하면 본인도 괴롭고 어느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의학의 방법을 포기하고 당당하게 갈 날을 기다리는게 종들입니다. 그걸 본받고 따라갈 필요가 있는겁니다. 전도서 7장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30명 정도가 나와서 발표했습니다. 30명 전부 다 잘 외워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그 전도서 7장의 첫 선구가 뭐였습니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이력을 말하고 발자취를 말합니다. 흔적입니다. 오늘 2023년 12월 31일이 주일이 됐습니다. 작년은 1월 1일이 주일이었을 겁니다. 내년이 되는데 주일이 됩니다. 마지막날 주일을 하면서 옛날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이 되고 점점 날이 갈수록 그 흔적 언행심사 남이 보던 안 보든 나는 아니까. 나의 발자취를 몰라도 나는 압니다. 가장 당당하고 그러는 게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겁니다. 다른 사람 속이면 자기를 먼저 속이는 게 되는 것이고. 중심을 보고 뜻을 보고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 앞에 돌아가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잘못 살아도 평생 행한 일 돌아보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돌아가서 바꾸지를 못합니다. 이걸 하나님이 아십니다.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회개를 해라.
회개란 것은 지난 시간에 붙들려서 탄식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잘 발효시키니까 거름이 되는데 새롭게 땅에서 돋아나고 살아난 양식이 됩니다. 앞날에 살아가는데 거름을 삼으면 회개가 되는 겁니다. 지난 날 잘못된 게 거름을 삼아서 회개가 됩니다.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점점 아름다운 이름으로 되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천 년 만 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때 되면 가야합니다. 미련을 쌓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게 지혜롭습니다. 가야될 하늘을 소망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 31일이라서 과거에는 형식의 예배를 드렸는데 요즘은 강하지 못하고 있어서 못드리는데 오늘 밤에 예배는 못 드려도 보일러를 따뜻하게 지하에 할 거니까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읽으시고 돌아보시고 각오도 하시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찬식을 준비하는 말씀입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교회는 이상하게 그분도 정통 칼빈주의를 부르짖는 신학자고 박사인데 벌써 30년 가까이 성찬식을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만있다는 말은 썩고 죽었다는 뜻이 됩니다. 총공회라는 간판 단 대형 교회에서 성창식을 안한다. 비정상인겁니다. 뭔가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하는데 아무 역사 없으면 무더기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정과 교인들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탄과 성찬은 반대적인 면이 있습니다. 성탄은 태어나신 날이고 성찬은 죽으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찬식 기간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본문에 52절부터 59절까지 봉독했는데 이어집니다. 22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으냐,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인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적의 역사를 베푸시니까 왕을 삼으려고 해서 도망가시고 제자들은 보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밤에 풍랑을 만나서 죽게된 걸 보시고 바다 위를 건너서 오셨습니다. 오병이어를 행하던 그 유대인들이 보니까 안보입니다. 그래서 건너와 보니 그곳에 계십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그러니까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중간에서 배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나를 찾아왔느냐. 내가 베푼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것이 아니고. 표적. 표적이란 속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떡에 대한 말도 나왔고 만나라는 말도 나오고 내가 바로 떡이다. 양식,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떡을 말씀하시고 하늘을 말씀하십니다. 두 가지 면을 말씀하는데 이해가 불가능한 겁니다. 내가 떡이라고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고 그럽니다. 예수님을 눈 앞에서 볼 때 사람입니다. 머리털이 있고 귀가 두 개 있고 숨을 쉬고 있고 사람입니다. 주님이 떡이다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유대인들과 함께 사는 동네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이해가 안되는거죠. 당신은 요셉과 마리아 아들 아닌가요. 세상에서 났는데 호적이 있는데 예수님은 호적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호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을 할 때 예수님도 호적을 하려고 가셨습니다. 이해를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 이해를 못할까.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끼리 사람 사람끼리 대화할 때 한 쪽이 말하는데 못알아들으면 말 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각도가 다른겁니다. 말하자면 한국말 할 때 한국 사람이 못 알아듣는거지요. 자녀에게 말하면 자녀에게 그런 말을 못합니다. 말의 각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시각이 다른 겁니다. 수박을 설명합니다. 수박이란, 파란색이고 줄이 끄여져있고 둥글고 타원형도 있고 씨가 있고 먹으면 달콤하고 시원하고 이게 수박입니다. 하는데 호박을 생각하고 듣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은 수박인데 호박을 생각하면 아닌겁니다. 머리 속에 호박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문제가 되는 거지요. 이런 과일이 있습니다. 주먹만하고 사과, 이렇게 설명하면 밀감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과를 설명하는데 밀감을 두고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이걸 각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설명하는데 이 세상 각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알맹이를 설명하는데 껍데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못알아들으면 내가 엉뚱하게 듣고 있는가 돌아보셔야합니다. 왜 말을 못알아듣느냐. 우물 안의 개구리입니다. 자신의 관념과 생각이 있습니다. 거기서 들으면 들려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하늘에서 하다니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떡도 말씀할 때도 떡이라 그러니까 바보도 아니고 정신나간 사람도 아니고 능력을 행하는 분이고 이걸 봐서 우리가 모르는 게 있나 보다. 하고 좀 생각하고 따져보면 되는데 자기들아는 게 전부인 줄 알고 부인해버립니다. 그래서 과거 전통의 유전의 법 들리면은 심각해집니다. 두 가지 법 때문에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이의 상대 말을 알아들으려면 두 가지를 해야합니다.
자기 주관을 빼 버리고 객관을 들어봐야합니다. 그리고 말의 각도를 맞춰봐야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이 중요한 겁니다. 원리를 기억하면서 생각해봅니다. 계속 떡을 말씀하고 당신의 몸을 떡이라고 하니까 내 떡을 먹어라, 주님의 떡인데 그 떡을 먹으라 하니까 뭘 먹으라는 말이 되겠습니까. 내 몸이 떡어라. 주님을 먹으라는 말이 되지요. 6장, 52절이 있습니다. 이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툽니다. 제 살을 이야기해줘서 먹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께서 내 몸은 떡이고 내 살이 떡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살을 먹지않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실감으로 들어야겠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이 생명은 기본구원의 생명이 아니고 건설 구원의 생명 말합니다. 영생이란 생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유지되는 게 영생이라고 그러는데 생명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살과 피를 먹으면 그렇게 됐고 부활입니다. 부활은 기능적인 부활을 말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지옥입니다. 영원한 사망입니다. 세 번째. 그 주님 살과 피를 참된 양식 참된 음료입니다. 하나 뿐이라, 섞임없다. 진짜다 그 말입니다. 참 사람 양식이라 그 말입니다. 56절, 그 사람이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 겉은 나인데 속은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57절은 나를 보면서 아버지를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원동되어 산다 그 뜻입니다. 뭐가 없습니까. 생명이 없습니다. 두 번째 기능적인 부활을 하게 됐습니다. 세 번째,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됩니다. 주님이 원동력이 됩니다. 주님이 사는 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피라는 것은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가. 그 육체를 뜯어먹으라는 말이 아닐겁니다. 그렇다면 의미가 있겠습니다. 주님의 몸과 필요한 것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피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달라도 피라는 붉은 것은 같습니다. 꼭 같은 사람입니다. 이게 주님의 당신의 몸을 가르켜서 떡이라 말씀하시고 음료라 말씀하시는데 먹고 마시라하신 그게 생명도 없고 영생이 있고 다섯가지 말씀해주신 것은 뭘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몸, 사람의 몸은 피를 말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그 사람, 인체의 사람, 마음이 있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육체라는 거지요. 그 사람의 몸. 요즘은 외모지상주의가 돼서 키가 커야하고 몸이 날씬하면 좋아하는데 허리에 병이 생깁니다. 날씬하고 얼굴이 아주 작게 생긴 걸 좋아하는데 육체라는 것은 다 흙이고 별것도 아닙니다.
껍데기 페인트칠을 남자라하는 인간들이 못나갔고 그러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제일 껍데기 외모, 실력, 이것도 시각입니다. 이런 각도를 말을 하면 못알아듣습니다. 인격 가진 사람. 육체. 그게 몸입니다. 몸, 살 그 몸은 뭐하는 겁니까. 죽은 사람은 상관할 거 없고 이 세상을 잘 살던 못 살던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생애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살과 피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그런 기력의 시작이라지요. 주님의 몸이 있는데,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위대한 장군이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은 그 사람의 몸과 피를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애국의 마음이 생겨집니다. 그렇게 연결시켜 보는 겁니다. 그의 몸과 피는 무엇인가, 구국의 영운인 그를 생각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내가 떡이다. 내가 양식이라 그 말입니다. 생명가진 그의 필수 없으면 안되는 조건입니다. 먹어라, 내가 바로 양식이니까 나를 먹어라, 그게 바로 생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주님의 몸 떡 살을 먹으라는 것은 주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몸이라는 것은 어떤 생애였으냐 주님의 생애, 그것은 대속의 생애였고 그 생애와 죽으심이고 그 주님의 몸에 고난을 생각하고 죽으심에 동기가 있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대속의 생애와 죽으심의 동기는 사랑이고, 희생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맺어진 결과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전체적으로 말하면 몸이라고 표현했고 그 안에 들어가보면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있으니까 통틀어서 보면 몸이라 그러셨고 양식이라고 그랬고 이걸 먹으라 하신 겁니다. 그러면 먹는 다는 것은 어떻게 먹는 것인가. 먹는 것은 돌이 먹습니까 모래가 먹습니까. 개미가 먹습니까. 먹는다는 말은 생명이다 그 말입니다.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무생물은 먹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은 뭐든지 먹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에 따라 먹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사람인데 젖먹이는 젖을 먹습니다. 자라면 이유식 먹고 밥먹습니다. 음식이란 양식이란 존재에 따라 다릅니다. 강아지한테 사람먹는 음식은 죄가 됩니다. 시대가 변해도 정상은 정상이라야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지. 아무리 시간이 변해도 바뀔 수는 없는 겁니다.
오후에 또 살펴봅니다. 성경 읽고 말씀 듣고 그러면 알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