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3-11-12조회 269추천 29
2023년 11월 12일 주일 오전
찬송: 92장, 87장
본문: 열왕기상 8장 22절 ~ 24절
성전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해야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7년을 거처서 완성하고 언약궤를 지성소의 그롭 안에 위채해서 완성했을 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고 하나님 영광이 충만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모든 게 다 순서와 절차와 규격이 인정하는 표로 구름이 가득찼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성전은 아버지 다윗이 준비했고 내가 지도했고 백성들의 수고로 지었지만 내면을 보니까 하나님의 예정이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모습 말고 내면에 들어가니 하나님의 예정이고 성취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생일이 되면 생일선물을 달라고 하는데 원래는 어머니에게 드려야한다고 가르치는 게 맞습니다. 원래 생일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다 하고 부모님께 사례하는 게 의미라 할 수 있는데 거꾸로 돼서 아이들만 좋게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죽을 고생을 하셔서 낳으셨고 그렇게 오늘의 여러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생일이 되면 선물 누구한테 드립니까. 모두들 이런 건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합니다. 길러보면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겁니다.
솔로몬이 몇 년에 걸려서 성전을 지었습니까. 7년입니다. 7년 동안 매일 15만명 이상이 동원되었으니까 많은 희생이 따랐을겁니다. 그 시대의 그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그 시대적인 건축물을 지으려면 사람들이 안 다치고 안 죽을 수는 없습니다. 설계도를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감독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전부 하나님의 예정이었고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는 사람의 인식은 세상을 보는 인식, 그 인식은 그리 되어져야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도 있고 수고도 있고 그런 드러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과 많은 존재가 있지만은 오늘의 현상세계가 부딪혀와서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온갖 인간의 원죄적인 것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걸 우리가 하나의 말로 말고 실제 현실을 만날 때 그것을 항상 기뻐하라, 감사하라. 이렇게 우리를 단속하고 만들어가도록 해야합니다. 예외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정과 성취를 이유로 충만하고 인간적인 기쁨이 아니고 말씀으로 가득차고 충성으로 가득찬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솔로몬을 상대를 해야하는가. 성전을 예배당을 대하는 자세는 껍데기입니다. 이번에 예배의 껍데기 예배를 생각해봤습니다. 의복은 껍데기인데 옷을 입음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게 사람입니다. 츄리닝복을 입고다니면 아무렇게나 합니다. 그런데 양복을 입는 사람은 깔끔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올 때는 깨끗하게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 껍데기를 바로 가질 때 마음자세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은 껍데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자세입니다. 내가 내 속에 보신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봐야합니다.
22절, 솔로몬이 왕입니다. 왕이란 억누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표자입니다. 대표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책임자고 모든 사람을 표시하는 게 대표자입니다. 우리나라 대표가 다른 나라하고 을사늑약이라고 합니까. 그때 우리 시민들이 찍지 않았습니다. 을사오적이라는 사람들이 찍었습니다. 백성들이 왜 들어오냐 너희가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너희나라 대표가 그랬다. 별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라는 것은 잘 뽑아야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사람을 찍어야 누구를 찍어야 백성들을 생각하느냐, 지금 술 한잔 얻어먹은 것도 아닌데 저희 지방 사람만 찍어줍니다. 그러면 나중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겁니다.
단체의 대표는 뽑는 거지만 부모님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뽑은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내 부모님은 어떻게 무식하고 못생기고 그런 것이 부모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겁니다. 그 외의 이 세상에서 무슨 대표는 사람들이 다 뽑기 때문에 그 손으로 만든 겁니다. 솔로몬은 나라의 대표입니다. 전부 백성이 다 하는 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을 마중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보고 솔로몬이 백성들을 보는데 함께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어디있습니까. 여호와의 단 앞에 있습니다. 짐승을 잡는 곳인데 재단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합니다. 혼자든 개인이든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주님의 대속을 힙 입어야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가면 죽어버립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하나님의 계약을 의지해서 여호와의 단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에 마중해서 함께하는 겁니다. 솔로몬이 함께하는데 이 백성신분이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설교는 제가 합니다. 모두 동참하는 겁니다. 나 혼자 하나님을 대해도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내 전부를 다해야합니다. 전부 다를 다 해서 하나님과 함께해야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이 전부 다 함께.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뜻인데 지향한다는 말도 있고 목표로 삼는다는 뜻도 있고 의지한다, 바라본다 그런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니면 안되겠습니다. 아버지만 바라보나이다. 그리고 삼천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셨고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우리들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 삼으시고 계약으로 삼으시고 계약의 하나님이 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를 귀하게 하나님이 되신 게 이스라엘 관계입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그러지 하나님 백성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돈도 있고 좋은 머리도 있고 힘도 있고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전부 삼는 게 바른 자세입니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언약을 지키시고 마음 안에 많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중심을 보시고 인격에 얼마를 드리나 싶습니다. 온 마음으로 주의 종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오로지 종으로 행동해서 계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한 눈 팔지 않고 두 마음 품지 아니하고 믿고 바라보면 그 종들에게 있으면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이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성전을 대하는 자세인데 첫 번째가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라는 말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고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택하셨고 성전을 완성한 것이 이렇게 되나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앞에두고 오늘날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날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버리고 언약대로 산 것처럼 솔로몬도 밑의 자식들은 모두 그렇게 하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너처럼 살기만 하면 다윗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중심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보지않고 사람의 중심을 보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에서 나오는 행동행위 관계를 보시는 분입니다. 동기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지 상놈이냐 양반이냐 고졸이냐 대졸이냐 인물이 잘생겼냐 키가 크냐 돈이 많냐 이런 걸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어야하고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계약을 지키기만하면 다윗의 자리에 앉혀주겠다 그 말입니다. 그리 되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사오니 다윗을 위하여 하신 말씀을 지켜주옵소서 그러하게 살게 해주옵소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나도 다윗처럼 살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말입니다. 성전에 대해서 주권을 위한 말입니다. 성전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 주권을 기억합니다.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데 캄캄한 곳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있으신데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하늘에 계시는 분입니다. 27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늘도 하나님을 용납지 못하는데 사람이 지은 곳에 어떻게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상대할 수 없는 분입니다. 높은 분입니다. 거룩한 분입니다. 우리가 가까이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지은 것이 있는데 은혜가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별일이 다 있지만 왕은 왕국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고 그 높은 분이 천한 백성들 사이에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양반들은 상놈들과 말 섞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천재들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을 속으로 하대합니다. 그래서 한번씩 말씀드리면 일류대를 졸업하고 인식자체가 틀립니다. 깔고봅니다. 자기한테 달려들어도 상대를 안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런데 어떤 동물은 특별하다나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땅에 계시나, 그 건축물을 지어놨습니다 호와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에 오겠습니까. 오실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같은 천한 사람을 상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거기 거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걸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릅니다. 무엇이 아쉬워서,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목적을 정해서 이런 말하자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하는 이유가 뭐지요. 무엇이기 때문에,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속성의 필연적인 발동입니다. 그걸 막연하게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은혜를 배워서 아는 만큼 그 은혜를 깨달은 만큼 터가 돼서 영원토록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런 분이 오셨기 때문에 감사하면서 부르짖음과 기도로 상대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상대하는 자세입니다.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자세는 기도로 우리를 찾는 겁니다. 그분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들으시옵소서 29절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있으리라하신 곳, 소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성전을 두고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이전에 계시겠다. 들어주겠다. 사람들이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다 맡기면 판결해주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크게 정리하면 성전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입니다. 성전에 대한 약속입니다. 기억하고 성전을 위한 역사. 그리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돌아보고 약속을 믿고 가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모든 게 성전이고 하나님이 계시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찬송: 92장, 87장
본문: 열왕기상 8장 22절 ~ 24절
성전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해야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7년을 거처서 완성하고 언약궤를 지성소의 그롭 안에 위채해서 완성했을 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고 하나님 영광이 충만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모든 게 다 순서와 절차와 규격이 인정하는 표로 구름이 가득찼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성전은 아버지 다윗이 준비했고 내가 지도했고 백성들의 수고로 지었지만 내면을 보니까 하나님의 예정이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피상적인 모습 말고 내면에 들어가니 하나님의 예정이고 성취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생일이 되면 생일선물을 달라고 하는데 원래는 어머니에게 드려야한다고 가르치는 게 맞습니다. 원래 생일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다 하고 부모님께 사례하는 게 의미라 할 수 있는데 거꾸로 돼서 아이들만 좋게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죽을 고생을 하셔서 낳으셨고 그렇게 오늘의 여러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생일이 되면 선물 누구한테 드립니까. 모두들 이런 건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합니다. 길러보면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겁니다.
솔로몬이 몇 년에 걸려서 성전을 지었습니까. 7년입니다. 7년 동안 매일 15만명 이상이 동원되었으니까 많은 희생이 따랐을겁니다. 그 시대의 그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그 시대적인 건축물을 지으려면 사람들이 안 다치고 안 죽을 수는 없습니다. 설계도를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감독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전부 하나님의 예정이었고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는 사람의 인식은 세상을 보는 인식, 그 인식은 그리 되어져야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도 있고 수고도 있고 그런 드러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과 많은 존재가 있지만은 오늘의 현상세계가 부딪혀와서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온갖 인간의 원죄적인 것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걸 우리가 하나의 말로 말고 실제 현실을 만날 때 그것을 항상 기뻐하라, 감사하라. 이렇게 우리를 단속하고 만들어가도록 해야합니다. 예외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정과 성취를 이유로 충만하고 인간적인 기쁨이 아니고 말씀으로 가득차고 충성으로 가득찬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솔로몬을 상대를 해야하는가. 성전을 예배당을 대하는 자세는 껍데기입니다. 이번에 예배의 껍데기 예배를 생각해봤습니다. 의복은 껍데기인데 옷을 입음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게 사람입니다. 츄리닝복을 입고다니면 아무렇게나 합니다. 그런데 양복을 입는 사람은 깔끔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올 때는 깨끗하게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 껍데기를 바로 가질 때 마음자세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은 껍데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자세입니다. 내가 내 속에 보신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봐야합니다.
22절, 솔로몬이 왕입니다. 왕이란 억누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표자입니다. 대표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책임자고 모든 사람을 표시하는 게 대표자입니다. 우리나라 대표가 다른 나라하고 을사늑약이라고 합니까. 그때 우리 시민들이 찍지 않았습니다. 을사오적이라는 사람들이 찍었습니다. 백성들이 왜 들어오냐 너희가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너희나라 대표가 그랬다. 별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라는 것은 잘 뽑아야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사람을 찍어야 누구를 찍어야 백성들을 생각하느냐, 지금 술 한잔 얻어먹은 것도 아닌데 저희 지방 사람만 찍어줍니다. 그러면 나중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겁니다.
단체의 대표는 뽑는 거지만 부모님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뽑은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내 부모님은 어떻게 무식하고 못생기고 그런 것이 부모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겁니다. 그 외의 이 세상에서 무슨 대표는 사람들이 다 뽑기 때문에 그 손으로 만든 겁니다. 솔로몬은 나라의 대표입니다. 전부 백성이 다 하는 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을 마중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보고 솔로몬이 백성들을 보는데 함께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어디있습니까. 여호와의 단 앞에 있습니다. 짐승을 잡는 곳인데 재단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합니다. 혼자든 개인이든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주님의 대속을 힙 입어야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가면 죽어버립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하나님의 계약을 의지해서 여호와의 단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에 마중해서 함께하는 겁니다. 솔로몬이 함께하는데 이 백성신분이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설교는 제가 합니다. 모두 동참하는 겁니다. 나 혼자 하나님을 대해도 하나님을 상대할 때는 내 전부를 다해야합니다. 전부 다를 다 해서 하나님과 함께해야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이 전부 다 함께.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소망한다는 뜻인데 지향한다는 말도 있고 목표로 삼는다는 뜻도 있고 의지한다, 바라본다 그런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니면 안되겠습니다. 아버지만 바라보나이다. 그리고 삼천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셨고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우리들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 삼으시고 계약으로 삼으시고 계약의 하나님이 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를 귀하게 하나님이 되신 게 이스라엘 관계입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그러지 하나님 백성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돈도 있고 좋은 머리도 있고 힘도 있고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전부 삼는 게 바른 자세입니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언약을 지키시고 마음 안에 많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중심을 보시고 인격에 얼마를 드리나 싶습니다. 온 마음으로 주의 종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오로지 종으로 행동해서 계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한 눈 팔지 않고 두 마음 품지 아니하고 믿고 바라보면 그 종들에게 있으면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이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성전을 대하는 자세인데 첫 번째가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라는 말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고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택하셨고 성전을 완성한 것이 이렇게 되나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앞에두고 오늘날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날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버리고 언약대로 산 것처럼 솔로몬도 밑의 자식들은 모두 그렇게 하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너처럼 살기만 하면 다윗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중심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보지않고 사람의 중심을 보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중심에서 나오는 행동행위 관계를 보시는 분입니다. 동기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지 상놈이냐 양반이냐 고졸이냐 대졸이냐 인물이 잘생겼냐 키가 크냐 돈이 많냐 이런 걸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어야하고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계약을 지키기만하면 다윗의 자리에 앉혀주겠다 그 말입니다. 그리 되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사오니 다윗을 위하여 하신 말씀을 지켜주옵소서 그러하게 살게 해주옵소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나도 다윗처럼 살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말입니다. 성전에 대해서 주권을 위한 말입니다. 성전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 주권을 기억합니다.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데 캄캄한 곳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있으신데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하늘에 계시는 분입니다. 27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늘도 하나님을 용납지 못하는데 사람이 지은 곳에 어떻게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상대할 수 없는 분입니다. 높은 분입니다. 거룩한 분입니다. 우리가 가까이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지은 것이 있는데 은혜가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별일이 다 있지만 왕은 왕국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고 그 높은 분이 천한 백성들 사이에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양반들은 상놈들과 말 섞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천재들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을 속으로 하대합니다. 그래서 한번씩 말씀드리면 일류대를 졸업하고 인식자체가 틀립니다. 깔고봅니다. 자기한테 달려들어도 상대를 안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런데 어떤 동물은 특별하다나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땅에 계시나, 그 건축물을 지어놨습니다 호와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에 오겠습니까. 오실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같은 천한 사람을 상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거기 거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걸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릅니다. 무엇이 아쉬워서,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목적을 정해서 이런 말하자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하는 이유가 뭐지요. 무엇이기 때문에,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속성의 필연적인 발동입니다. 그걸 막연하게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은혜를 배워서 아는 만큼 그 은혜를 깨달은 만큼 터가 돼서 영원토록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런 분이 오셨기 때문에 감사하면서 부르짖음과 기도로 상대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상대하는 자세입니다.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자세는 기도로 우리를 찾는 겁니다. 그분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들으시옵소서 29절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있으리라하신 곳, 소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성전을 두고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이전에 계시겠다. 들어주겠다. 사람들이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다 맡기면 판결해주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크게 정리하면 성전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입니다. 성전에 대한 약속입니다. 기억하고 성전을 위한 역사. 그리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돌아보고 약속을 믿고 가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모든 게 성전이고 하나님이 계시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