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0-04-26조회 230추천 34
2020년 4월 26일 주일 오후
찬송 : 89장, 120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24절
엘리아 시대와 우리 시대를 생각해봤고, 그런 시대가 다시 닥칠 가능성이 없지 않기에 만약에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를 위해 대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을에 추석이 되면 한가위가 됩니다. 계절도 좋고, 경치도 좋고 오곡이 풍성하고 넉넉하고 참 좋은 그런 것을 지칭합니다.
오늘 같은 날 참 따뜻하고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봄날 같지만은 모든 날씨가 이렇게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년 매일매일 날씨가 봄날 같기만 하면, 여름에 뜨거운 햇빝에 곡식이 익어야하는데, 익지를 못합니다. 여름철만 있으면 모두 문제고, 사계절의 변화을 주신 이유도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늘만 있으면, 내일은 없으면 발전이 없고 향상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머리쓰고 엉덩이 의자에 붙이고 있고 읽고 쓰고 연구하는 것은 힘이듭니다. 공부하는 것은 앉아있는 거 같으나 매우 힘듭니다. 다니엘이 성경을 공부할 때 다리오 왕이 왕의 것을 먹일 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항상 오늘 같지 않다. 항상 오늘과 같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와서 잠만 자면 그 사람은 죽어야합니다. 잠은 무덤에서 실컷 자고 나는 오늘의 자기를 발전시켜야겠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성실한 하나님의 종은 잠을 별로 안 잡니다. 어쨌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런 일을 하시는데, 평소에도 열심히 합니다. 앞서 위대한 종들이 많습니다. 대동소이한 그 정도인데, 우리보다 위에 있는 신앙의 깨달음이 깊은 분들과 우리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백 목사님과 우리보다 뛰어난 그런 분들 성경 깨달음 깊이도 그러하고, 천국에서는 어린아이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앞서있다는 그런 말처럼, 지금 우리는 백 목사님보다 성경 깨달음이 더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두고 성경 해석적인 의미로 본다면, 신학대 졸업하고 그런 목사님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연구해서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총공회 목사님 교인들은 더더욱 압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하고 사무엘 중에서 누가 더 성경을 다 알 거 같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평생을 성경을 연구했고, 사무엘은 어렸으니 엘리 제사장이 더 잘 알텐데,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더욱 더 기뻐하셨습니다.
17살 때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다 배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6년 걸릴 것을 몇 달 하면 다 배울 겁니다. 중학교 과정을 3년 안해도 될겁니다.
부모님들이 학교 교육이 그냥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교 가서 사회를 배우고 인생을 배우는 것이 크겠다 라고 합니다.
그것처럼 백 목사님이 몇 십년 배워서 깨달은 것을 우리는 몇 년이면 알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이 가진 성경 지식을 우리는 대개 다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역사 이런 것은 되어졌는데, 우리는 그 분 만큼 성화가 되었고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행함의 차이입니다.
그분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고, 우리는 그냥 살다가 예사로 살다가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알기는 아는데 행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그 후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많은 차이가 납니다.
어떤 분은 자기 힘껏 충성하고 살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냥 그대로 삽니다.
그러면 거기서 시간이 지나서 성화의 차이, 하나님과의 관계 차이가 확 나버립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십니까 안하십니까, 안하시지요.
오늘 이전까지 어떻게 살았던지 오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읽고 들어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백 목사님의 말씀에 맥락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차이는 어디서 나느냐. 차이는 지식에서 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아닌 실행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누구든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넓고 튼튼한 그런 것이니까, 이것을 옮겨보면은 이 세상까지 다 계산해서 어떤 상황에도 변치않고 낡아지지 않는 그런 기초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바뀌지 않습니다.
보이는 예배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보이는 예배를 다 중단하고 실시간으로 했었다면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만약에 전염병 때문에 우리가 다 걸리더라도 다 같이 예배를 드려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말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믿는 사람은 교회는 인본주의로 나가면 교회가 아닙니다.
보배는 숨깁니까 드러냅니까? 드러내면 사람들이 다 뺏어 가버립니다. 강도가 누굽니까? 마귀입니다. 하나님, 진리, 천국의 구원. 이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행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은 여기 나와있는데, 뭐가 되느냐, 나의 것을 듣고 행하는 자는 여기서 행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고요할 때입니다. 편안하고 고요할 때 자기 모르는 생활을 하는 그 사람. 그 말씀듣고 실행하는 것을 음성으로 합니까. 시끄러울 때는 그 소리가 안들립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할 때는 다 들립니다.
그 방법과 비법이 뭐냐, 온 세상이 다 타락하고 그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 뭐냐, 그런 일이 없을 때 그렇게 살아간겁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못들었습니다. 들릴 때 무시해버렸으니까.
주실 때 안 받은 사람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필요할 때는 주십시오 하니까 안 줍니다. 왜 안 주냐 지난 시간 동안 다 던져버렸습니다.
그게 구렁이입니다. 오늘 해야하고 지금 해야합니다. 평소에 해야합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달라고 하면 안 들리고 안 주십니다.
그게 바로 말을 듣고 행하는겁니다.
그러면 비가 오고 참수나도 끄덕없는 겁니다. 사람들은 안 들립니다.
시험 때는 밤 중입니다. 시험치려면 답을 알아야하고, 그러면 평소에 시험 준비해야하는데, 시험지 받아놓고 공부하는 건 컨닝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희미한 음성을 듣는 비법을 공부한 겁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 89장, 120장
본문 : 마태복음 7장 24절
엘리아 시대와 우리 시대를 생각해봤고, 그런 시대가 다시 닥칠 가능성이 없지 않기에 만약에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를 위해 대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을에 추석이 되면 한가위가 됩니다. 계절도 좋고, 경치도 좋고 오곡이 풍성하고 넉넉하고 참 좋은 그런 것을 지칭합니다.
오늘 같은 날 참 따뜻하고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봄날 같지만은 모든 날씨가 이렇게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년 매일매일 날씨가 봄날 같기만 하면, 여름에 뜨거운 햇빝에 곡식이 익어야하는데, 익지를 못합니다. 여름철만 있으면 모두 문제고, 사계절의 변화을 주신 이유도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늘만 있으면, 내일은 없으면 발전이 없고 향상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머리쓰고 엉덩이 의자에 붙이고 있고 읽고 쓰고 연구하는 것은 힘이듭니다. 공부하는 것은 앉아있는 거 같으나 매우 힘듭니다. 다니엘이 성경을 공부할 때 다리오 왕이 왕의 것을 먹일 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항상 오늘 같지 않다. 항상 오늘과 같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와서 잠만 자면 그 사람은 죽어야합니다. 잠은 무덤에서 실컷 자고 나는 오늘의 자기를 발전시켜야겠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성실한 하나님의 종은 잠을 별로 안 잡니다. 어쨌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런 일을 하시는데, 평소에도 열심히 합니다. 앞서 위대한 종들이 많습니다. 대동소이한 그 정도인데, 우리보다 위에 있는 신앙의 깨달음이 깊은 분들과 우리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백 목사님과 우리보다 뛰어난 그런 분들 성경 깨달음 깊이도 그러하고, 천국에서는 어린아이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앞서있다는 그런 말처럼, 지금 우리는 백 목사님보다 성경 깨달음이 더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두고 성경 해석적인 의미로 본다면, 신학대 졸업하고 그런 목사님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연구해서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총공회 목사님 교인들은 더더욱 압니다.
그런데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하고 사무엘 중에서 누가 더 성경을 다 알 거 같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평생을 성경을 연구했고, 사무엘은 어렸으니 엘리 제사장이 더 잘 알텐데,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더욱 더 기뻐하셨습니다.
17살 때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다 배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6년 걸릴 것을 몇 달 하면 다 배울 겁니다. 중학교 과정을 3년 안해도 될겁니다.
부모님들이 학교 교육이 그냥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교 가서 사회를 배우고 인생을 배우는 것이 크겠다 라고 합니다.
그것처럼 백 목사님이 몇 십년 배워서 깨달은 것을 우리는 몇 년이면 알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이 가진 성경 지식을 우리는 대개 다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역사 이런 것은 되어졌는데, 우리는 그 분 만큼 성화가 되었고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행함의 차이입니다.
그분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고, 우리는 그냥 살다가 예사로 살다가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알기는 아는데 행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차이입니다. 그 후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많은 차이가 납니다.
어떤 분은 자기 힘껏 충성하고 살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냥 그대로 삽니다.
그러면 거기서 시간이 지나서 성화의 차이, 하나님과의 관계 차이가 확 나버립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십니까 안하십니까, 안하시지요.
오늘 이전까지 어떻게 살았던지 오늘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읽고 들어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백 목사님의 말씀에 맥락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차이는 어디서 나느냐. 차이는 지식에서 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아닌 실행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누구든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에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넓고 튼튼한 그런 것이니까, 이것을 옮겨보면은 이 세상까지 다 계산해서 어떤 상황에도 변치않고 낡아지지 않는 그런 기초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와도 바뀌지 않습니다.
보이는 예배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보이는 예배를 다 중단하고 실시간으로 했었다면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만약에 전염병 때문에 우리가 다 걸리더라도 다 같이 예배를 드려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말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믿는 사람은 교회는 인본주의로 나가면 교회가 아닙니다.
보배는 숨깁니까 드러냅니까? 드러내면 사람들이 다 뺏어 가버립니다. 강도가 누굽니까? 마귀입니다. 하나님, 진리, 천국의 구원. 이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행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은 여기 나와있는데, 뭐가 되느냐, 나의 것을 듣고 행하는 자는 여기서 행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고요할 때입니다. 편안하고 고요할 때 자기 모르는 생활을 하는 그 사람. 그 말씀듣고 실행하는 것을 음성으로 합니까. 시끄러울 때는 그 소리가 안들립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할 때는 다 들립니다.
그 방법과 비법이 뭐냐, 온 세상이 다 타락하고 그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 뭐냐, 그런 일이 없을 때 그렇게 살아간겁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못들었습니다. 들릴 때 무시해버렸으니까.
주실 때 안 받은 사람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필요할 때는 주십시오 하니까 안 줍니다. 왜 안 주냐 지난 시간 동안 다 던져버렸습니다.
그게 구렁이입니다. 오늘 해야하고 지금 해야합니다. 평소에 해야합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달라고 하면 안 들리고 안 주십니다.
그게 바로 말을 듣고 행하는겁니다.
그러면 비가 오고 참수나도 끄덕없는 겁니다. 사람들은 안 들립니다.
시험 때는 밤 중입니다. 시험치려면 답을 알아야하고, 그러면 평소에 시험 준비해야하는데, 시험지 받아놓고 공부하는 건 컨닝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희미한 음성을 듣는 비법을 공부한 겁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