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주전(마4:1-11)
전투교회2014-08-11조회 272추천 33
본문: 마태복음 4장 1절-11절(요약/2014.08.10.주일)
제목: 전투 교회
1. 예수님의 시험
1)시험 받으시는 예수님-본문
- 성령에게 이끌리어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 광야로 가심
2)예수님의 시험
①시험의 성격: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
②시험의 이유:
- 마귀의 존재(천사의 타락, 인간 세계 침입)
- 첫째 아담의 패전(하와->아담->마귀의 종->구출의 역사)
- 예수님의 도전(도성인신->대속의 모든 역사)
- 본문의 의문점과 설명(예수님이 마귀에게 피동?->도전자의 입장)
③시험의 대상: 마귀(죄, 사망= 세상)
④시험의 범위: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무제한의 전투
2. 예수님의 승리
1)시험의 시작과 최종 승리
- 본문의 시험은 공생활 출발의 첫 시험
- 실제의 시험은 출생 전부터 시작, 계속
- 사생활에서도 마귀 시험은 계속(성경의 함축성)
- 본문의 시험 승리는 공생활의 첫 승리
- 최종의 승리는 십자가에 죽으심(다 이루었다)
2)시험 승리의 결과
①완전하고 영원한 승리
②마귀 사탄에게서 우리를 구출
③마귀 사탄의 왕 노릇 제한
④마귀 (사탄, 죄, 사망)을 종으로 삼아
⑤하나님의 공심판 완전 면제
3. 우리의 전투(시험)
1)전투의 자격: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승리
2)전투의 범위: 공심판이 면제된 제한적 전투
3)전투의 성격:
- 우리를 연습시키시는 주님의 역사
- 마귀는 전투에 이용되는 심부름꾼일 뿐
- 피할 길까지 내 주신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
4)신앙은 전투
- 신앙은 곧 전투, 교회는 전투 교회
- 기독자의 평생은 전투 생활
-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교회, 자라가는 신앙
4. 전투의 배경과 내용
1)시험 안내자는 성령
2)시험 장소는 현실(광야, 현실은 광야)
3)시험 목적은 전투를 통한 실력 성장
4)시험 문제는 하나님의 계약 준수
5)시험 배경은 성령님
6)시험 승리의 방법은 말씀
7)시험 최후의 배후는 주님
5. 결론
1)신앙은 전투 신앙
2)현실은 전투 현실
3)현실은 전투 승리 축복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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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지나간 주일 월요일부터 목요일 새벽까지 공회적으로 집회장소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참석하신 분도 있고 또 8월 휴가철이지마는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참석지 못한 그런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좋기는 공회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하는 이런 집회는 여름에는 휴가철 맞춰서 하니까 요즘은 어지간한 학교나 회사나 어떤 직장도 1년에 몇 일 휴가는 다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법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집회 참석은 그리 어렵지를 아니한 일입니다. 가능하면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고, 올해 하지 못하신 분들은 내년을 소망하고 미리부터 기도하고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인생이라는 것은 길든 짧든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흔적이고 지나가면 세월 속에 사람은 누구나 다 늙어져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늙음의 끝은 마지막 죽음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고 그 죽음 너머에는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안믿는 사람이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아도 사람이 죽었다가 또 다른 것으로 태어나고 불교에서 말하는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역시 안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며 인식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인생은 늙고 세월은 가고, 늙으면 반드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너머에는 인생의 모든 부활이 있고 심판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 세상 살아 생전 어떻게 한 평생을 살고 갔느냐를 하나님께서 행동록에 낱낱이 다 기록해 두셨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으로 심판해서 영원한 보응을 하신다는 것이 성경이고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말씀을 믿어야 비로소 믿는 사람이 되는겁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세월 속에 낡아지고 쇠해지고 마지막에는 없어질, 두고 갈 세상. 우리 나라 제일 큰 그룹, 제일 1등 부자가 되는 재벌 회장이 지금 병석에 누워서 말하자면 뇌사 상태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재산이 몇 십 조가 되는지 모르겠지마는 그 많은 재산 가져본들 본인이 병석에 누워 있으니까 자기 인생과 그 재산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그 많은 재산에 대해서 말 한 마디 못 하고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고 그 수많은 재산 가지고 아파트를 사면 수 백 채를 사고 수 천 채도 안 살 수 있겟습니까? 그만큼 많은 돈 못 할 것이 없는 엄청난 돈을 가졌는데 자기 한 몸 병석에 누운 것을 치료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세상이고 그게 인생이고 그것이 돈의 한계고 물질의 한게라는 겁니다. 너나할 것 없이 다 그러합니다. 마지막에 인생은 다 떠나는 것이고 떠나면 세상 모든 것은 두고 갈 것들입니다. 악착같이 세상에 그런 말이 있던가요?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합니까? 수단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불철주야 악착같이 직장 사업생활 해서 마음 자존심 상하는 일 당하고 속 썩여가면서 고생해가면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아서 양육을 하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는 점점 늙어져가는데 그래 놓으면 노후가 편안하면 수월하고 자식들 잘 길러두면 수월한데 그래봐야 마지막 끝에는 늙어서 쪼글쪼글하고 힘이 다 빠져나가서 죽는 것이 인생의 종말입니다. 누구나 예외가 없는데 사람이 머리를 가지고 멀리보면 안믿는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것은 앞날을 대비해서 현재보다 어려운 때를 대비해서 미리 미래를 내다보고 보험을 드는데 예수믿는 사람들은 물질보험은 안 들 지라도 신앙보험을 들어 놔도 손해볼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신앙의 보험은 돈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것이 인생의 다시 없는 든든한 보험이 되겠는데, 이걸 안 하니까 참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여러 가지 바쁘고 복잡한 일들이 있겠지마는 신앙생활에 중점을 두고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사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면 복이 있겠습니다. 이 말씀은 집회 기간동안 받은 말씀인데 참석 못하신 분들도 많고 참석해도 말씀이 깊고 넓고 어려워서 다 알기 어려워서 한 번 더 시간 되는데로 계속해서 복습을 한 번 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본문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본문 내용은 전체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그 시험을 마귀를 물리쳐 이기신 그런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눕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거, 하나는 그 시험을 이긴거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이 몇 가지라고요? 하나는 뭡니까?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것, 그 시험을 물리쳐 이기신 것 시험이라는 것은 부드럽게 말한 것이고 강하게 말하면 전투라 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의 시험 예수님의 전투. 본문에 보니까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세 가지로 나오지요. 첫째 성령에게 이끌리어 둘째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셋째 광야로 가셨습니다. 요래 구별해서 기억을 하십시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데 예수님을 이끌고 간, 이끌고 마귀에게로 데려가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두 번째 예수님이 시험을 치르는 전투 대상은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세 번째 장소는 광야입니다. 광야로 가사. 이렇게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러가는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지마는 근본 하나님이시고 또 예수님은 죄로 지은 일이 없고 예수님은 아무런 사리사욕이 없는 분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뭣때문입니까?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라. 모든 사람이 시험 받는 이유는 성경에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을 입고 오셨지마는 주님은 욕심이 없는 분입니다. 시험 받으실 만한 사리사욕이 전혀 없는 분인데 예수님은 시험을 받고 계십니다. 왜 시험을 받으시는가? 예수님의 시험의 성격은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 예수님 시험은 어떤 시험이라구요?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대신하는 시험이라 말입니다. 이런 시험을 왜 받아야 되느냐? 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시험을 받아야 되느냐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이 물질계 우주가 있고 영계가 있습니다. 영계는 하늘나라인데, 물질계 우주는 하나님께서 지어 놓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걸 다 지어놓고, 물질계 우주를 전부 다 사람에게 맡겼고, 그 사람의 첫째가 아담 하와였습니다. 그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고.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지었는데 우주를 지었고 그 우주 전부를 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주셔서 주인으로 통치자로 맡겨 놨습니다. 영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고, 그 영계에는 천군천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인 천사 중에 높은 천사 하나가 하나님을 시기하고 제가 하나님이 되려는 못된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하나님에게 쫓겨나서 타락해서 바깥 어두운데 쫓겨났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이라고 배웠습니까? 영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 밝은 빛의 나라인데 천사 중에서 높은 천사 하나가 하나님을 시기하여 제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쫓겨나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는데 그 바깥 어두운데가 한 말로 말하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는 곳입니다. 쫓겨난 그 천사 이름이 마귀사탄인데 그 마귀사탄이 내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 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세계에 들어와서 자기 세력을 넓히려고 자기 부하를 만드려고 인간세계에 들어 왔습니다.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배암을 입고 여인 하와를 만났습니다. 미혹해가지고 하와를 살살 꼬와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거역했던 것 처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만든 것이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한 겁니다. 그래서 하와가 어리석은 여인이 좁은 여인이 그래서 여인들은 늘 잊지 말고 기억하실 것이 선악과를 아담보다 먼저 따먹은게 여자다 여인이다. 여인이면 여반이면 나는 여자다. 나는 선악과 먼저 따먹은, 그래서 아담을 미혹한 하와같은 요소가 나에게 있다. 그래서 여인들은 항상 모든 면에 좁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좁고 모든 시야가 좁고 범외가 좁고 범위가 좁고 속이 좁고 그게 여인의 특성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는 성경에 보면 여인은 교회에서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라. 조용하게 있으라 했는데 남자가 머리가 되고 그 아래에서 가르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 교회든지 한 교단이든지 그 교회나 교파에 최고 머리가 여인되면 성경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가 생겨집니다. 그런 일은 교회 역사에 많이 있습니다. 참고로 상식으로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인간세계에 에덴동산에 들어와서 뱀을 먼저 입고 뱀을 통해서 좁은 여인, 허영과 허욕이 많은 여인, 미혹에 약한 여인, 여인들입니다. 여반들은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남반들은 무엇이 잘났는가? 남반들도 문제가 있는데 특히 여반들은 미혹을 잘 받고 좁고 허영과 허욕이 많은 것이 일반적으로 여인들입니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그러합니다. 그래서 여인의 특성을 너무 잘 아는 마귀가 뱀을 입고 여인 하와에게 와서 살살 꼬아가지고 하와의 심리를 이용을 해서 허영심을 부추겨서 허욕을 부추겨서 네가 선악과 따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 하나님 된다 그러니까 그 허영과 허욕에 들떠가지고 선악과를 딱 보니까 정말 뱀의 마귀 말처럼 저거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보여졌고 그래서 선악과를 똑 따 먹었습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되는데 여인의 또 한 약점이 뭐라고요? 여인은 좁고 허영과 허욕이 많고 미혹을 잘 받고 동시에 또 미혹을 잘 합니다. 여인은 유혹을 잘하는 특성이 있지요. 그래서 그 여인 하와가 아담을 불러서 살살 꼬아가지고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하와의 가장 큰 죄는 선악과 따 먹은 죄도 큰 죄지마는 아담을 미혹하여 선악과 따 먹게 한 죄고, 아담의 가장 큰 죄는 여인에게 미혹받아 선악과 따 먹은 죄가 큰 죕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어겼고, 이런 성경적인 내용이 나오면 재미가 없지요.
부산에 큰 교회가 있답니다. 교회를 갖다가 수 만평을 지어 놓고 수십만평 지어놓고 매주마다 몇 천 명이 모인답니다. 모이는데 우리 교인중에 한 분이 가보니까 거기 설교 내용을 들어 보니까 개그 콘서트라던가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 웃겨서 배꼽잡게 만드는 그 프로그램하고 거의 비슷하더라. 예배 모습이. 설교 내용이. 그게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 혹은 두 번째 큰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 곳에는 아무리 가봐야 유익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데 지금드리는 이런 말씀은 사이다를 안만 먹어도 먹을 수록 몸에 해롭습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뭘 먹으라고 하던가요? 곰국을 먹어야 속이 든든해지고 힘을 쓰는데 젊은 사람들 건강 생각지 아니하고 입에 맞는 것만 먹는 사람들은 곰을 주면 느끼해서 잘 못먹습니다. 사이다 콜라는 잘 먹고. 설교도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고 감정을 충족시키고 하는 그런 사이다 설교를 많이 들으면 신앙이 죽어버립니다. 곰 설교를 들어야 됩니다. 곰 설교. 지금 설교는 곰 설교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쫓겨나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가지고 인간세계 들어와서 하와를 미혹하고 아담을 미혹해서 범죄케 하고 말하자면 이 타락한 천사 마귀 사탄이 인간 세계에 들어와서 이 세상에 주인이 된 대표되는 아담과 하와를 물리쳐서 이겨버린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 되는 것이니까 선악과 따먹고 범죄한 하나님의 계약을 어긴 그 때 부터 인간은 전부 마귀 사탄의 종이 된 겁니다. 마귀가 인간에게 싸움을 걸어서 아담이 졌는데 그 아담은 전 인류의 시조면서 대표기 때문에 아담의 패전은 아담의 허리에 있던 부정모혈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 전부의 패전이고 그래서 아담이 패전함으로 마귀의 종이 되어졌고 이 세상은 마귀에게 뺏겼고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마귀의 것이 되어졌고 모든 세상은 마귀가 장악한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둠속에 빠지고 마귀의 것된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분이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 세상에 오시기는 오셨으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되 내 백성을 구하러 왔으니까 내 백성을 내놔라 마귀한테 가서 네가 물리쳐 이긴 아담과 그 자손들은 원래 내 백성이니까 내놔라 그러면 마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 웃기지 마십시오. 내가 싸워가지고 이긴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싸워서 이긴 내 백성들이고 내 전리품들입니다. 내 백성입니다. 내 종들입니다. 내가 왜 내줍니까? 이것을 데려가시려면 나한테 도전해서 나를 이기십시오. 그러면 내가 줄 수 밖에 없겠지요. 마귀가 그게 마귀의 말이고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 내막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의 범절이 철두철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순서를 어기는 분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아무렇게나 뒤집어서 역리로 하시는 분이 아니고 철두철미한 진리의 하나님이고 순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무례를 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모든 백성을 마귀에게 뺏겼고 당신이 지으신 온 세상을 마귀에게 빼앗겼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니까 마귀를 한 주먹에 깨뜨려버리고 빼앗아 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지마는 그리하면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당신이 세우신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리하실 수 없고 부득이하게 인간이 패전하여 빼앗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셔서 마귀에게 도전장을 낸겁니다. 나하고 싸우자. 네가 내 백성 아담하고 싸워 이겼으니까 내가 다시 싸워보겠다. 하나님이 나한테 왜 도전장을 냅니까? 나는 사람과 싸웠는데. 그러면 내가 사람이 되지. 그래서 사람이 되신겁니다. 사람이 되되 사람이 꼭 같은 사람입니까? 아담도 사람이고 아담의 자손 전부 다는 내가 다 이긴건데 그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다고요? 아담의 자손으로 나면 도전자격이 없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자손이 아닌, 아담의 자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법칙으로 사람이 되어 오셨는데 이런 말을 세상에서 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말인데 이걸 믿으면 신앙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고 이걸 안믿으면 예수를 안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와 꼭 같은 영과 마음과 몸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꼭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같은. 그런데 사람으로 오실 때 그 방법이 전 인류의 6천년 역사에 단 한 번도 없는 부정모혈의 법칙으로 나지를 아니하고 처녀의 몸을 빌어 입되 빌리되 그 종자는 첫째 아담의 종자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자로 났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만들었지요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없는 가운데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나게는 못하셨을것인가? 흙을 빚어가지고 아담을 만드시고 그러면 하와는 아담이 낳았습니까? 하와는 부정모혈로 났습니까? 이영근 선생 하와는 뭘로 났습니까? 손성균 선생님 하와는 뭘로 났습니까? 아담의 갈빗대를 빼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사람의 갈빗대를 빼서 사람을 만들어? 가능합니까? 인간 피조물은 불가능하지요. 없는 가운데도 만들어내신 하나님이 재료 있는 갈빗대로 사람을 만드는데 - 사람 속에 있는 요소 세포 하나 빼가지고 길러서 사람 만들지요 갈빗대 하나 못만들겠습니까 얼마든지 만들고 남지요. 이래 만드신 하나님인데 아담의 종자 아니고 딴 종자로 사람되게 못하실 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의 종자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놓으니까 마귀가 할 말이 없습니다. 자 나는 사람이다 사람인데 아담의 자손아닙니까? 나를 살펴봐라. 나는 둘째 아담이다. 나는 아담의 요소는 억억만문의 일도 없다. 성령으로 나서 하나님께서 전혀 새로운 종자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새로운 대표가 났으니까 나하고 한 번 싸워보자. 그러니 마귀가 예수님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겁니다.
이런거 전부다 세밀하게 성경에 기록이 안되어 있어도 내용을 들어가보면 있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패전한 아담의 요소 아닌 그래서 아담의 패전 과정과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으로 나가지고 마귀에게 도전장을 내서 마귀와 더불어 전투를 하게 됬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마귀한테 도전장을 내니까 마귀가 이제는 도전장을 안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레슬링이나 권투나 유도나 운동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을 따서 가지고 있는데 나는 세계 챔피언입니다. 하고 도전 아무도 안받아 줍니다. 하면 어느정도 쌓여서 나이가 많아서 은퇴합니다 그러면 아 그 사람은 세계 챔피언인데 나이가 많아서 이제 은퇴했다. 그러면 챔피언으로 은퇴를 하지마는 그게 아니고 싸울 나이도 있고 법이 그래 되어 있는데 안싸우면 그 챔피언 벨트는 뺏깁니다. 법적으로. 도전하면 도전 받아주는게 세상 자연계시입니다. 마귀가 첫째 아담을 이겨도 둘째 아담이 와서 도전장을 낼 때는 마귀는 법적으로 받아 줘야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 도전을 받았고 예수님 도전 하셨고 그런데 예수님이 도전하신 것은 순전히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서 마귀에게 도전했다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도전자고 마귀는 챔피언 입장이고 승자고. 그러니까 챔피언이 되면 도전자가 도전하면 권리가 있는것이 나한테 도전하려면 날짜는 내가 정한다. 장소도 내가 정한다. 그게 선자의 권리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로 와라. 물론 세상은 법칙이 있으니까 그 범위안에서 싸우지마는. 그러면 도전자는 따라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도전자고 마귀는 승자이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한테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은 거기 대해서 싸움을 하는 것이니까 대응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니까 거기서 대응을 했고 또 산으로 데려가니까 따라갔고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니까 가신겁니다. 요게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도전해서 마귀의 응전에 다시 응전하는 그런것이 된다 그리 볼 수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도전해서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데 싸우는 무기가 둘이 있는데 그게 뭐이냐 하면 하나는 죄고 하나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마귀라 그럴 때 마귀는 죄와 사망과 하나 연결되어 있고 죄 마귀 사망 요 셋을 합해서 우리 입장에서 뭐라한다 그러던가요? 마귀하고 죄하고 사망하고 통틀어서 한 말로 오늘 우리에게 부딪힐 때 뭐라 합니까? 같이한 번 해보실까요 세상. 세상.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하고 싸우는데 마귀하고 싸우는 것은 곧 죄하고 싸우는 것이고 권세되는 사망하고 싸우는 것이고 이 싸움이 예수님의 전투다 그 말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에 예배당에 교회에 가면 거짓말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효도 잘하고 이런거 하면은 잘 알아 듣겠는데 전투가 어떠하고 싸움이 어떻고 이해를 못하실지 모르는데 저도 어린 신앙에서 이런 말씀 들을 때는 유치한 것이 아닌가 신앙에 무슨 전투가 있고 도전이 있고 승리가 있고 패전이 있고 그런게 있는가 그래 싱각을 했는데 실제 들어가보면, 또 다시 한 번 해보시겠습니다.
신앙은! 전투! 전투교회!
교회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평생을 전투하는 곳이고 신앙은 평생 전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내용이, 그 싸움의 질이 이 세상과 달라서 그렇하지 기본적으로 신앙이라는 것은 전투로 싸움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마귀에게 패전한 우리를 구출해내시기 위해서 우리대신해서 사람이 되셔서 마귀한태 교전해서 마귀하고 더불어 싸웠는데 마귀와의 싸움은 곧 죄와 사망과 세상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의 범위 강도가 얼마정도인가?
이것은 끝이 없는 무제한적인 전투입니다. 세상의 야만스럽게 싸우는 그런 싸움중에 하나가 기권하던지 기절하던지 싸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 마귀의 싸움은 첫째 아담과 마귀의 싸움도 무제한의 전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젔습니다. 무제한의 전투이기때문에 인간이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전투도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싸우는 제한이 없는 끝까지 싸우는 것이 고 영원한 싸움인데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치고 이겼습니다.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시험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간단히 설명을 드린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깐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 광야로 가사' 세가지 시험을 받았는데 이것은 다음에 하고 예수님 시험의 내용을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시험을 왜 받았느냐? 우리 때문에. 예수님의 시험의 그 성격은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입니다. 당신 자신은 욕심도 없고 패전도 없기 때문에 시험할이유도 전투할이유도 없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것이고 우리를 대신하신 것은 내막은 우리들이 마귀한태 우리 대표대는 첫째 아담이 마귀와의 전투에서 패전해서 저버렸기때문에 우리는 전부 마귀의 종이 되어있었고 온세상을 마귀에게 빼았긴 상태였기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대신 사람되어오셔가지고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물리처서 이겼다 그 말이고
그런데 그 전투는 하나님공심판에서 전투하는 제한이 없는 무제한적인 끝없는 영원한 전투를 이겨버렸다
크게 두번째 예수님이 마귀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이겨서 마귀를 물리첬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가지 시험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말씀으로 물리쳐 이겼습니다. 그런데 요 본문에 기록된 시험은 예수님의 시험의 전부가 아니고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승리는 예수님 승리에 최종승리가 아닙니다. 요 세가지 시험 자체는 완벽하고 완전한 승리지만은 그러나 요시험으로 예수님 시험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 시험은 주님 십자가 못박혀서 마지막에 못이 박혀서 몸에 물과 피가 다흐르고 호흡이 정지 되어 가면서 다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고 운명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신 그때 비로소 시험도 끝이 났고 그때까지 예수님이 다 마귀를 물리쳐 이겼기 때문에 그때가서 비로소 최종 승리가 되어진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한 마귀에 시험은 전투는 예수님이 낳기 전부터가 아니고 인간이 타락한후 하나님이 예언하셨을 그때부터 그 예언이 내려올때부터 그 시험 전투는 계속되어젔는데 예수님이 직접은 아니지만은. 말하자면은 구주 메시야가 앞으로 메시야로 오실 그 예언이 계속이어지는데 그 예언들이 선지자들이 전해내려오는데 선지자들을 전부 박해, 죽인것이 마귀 역사고 또 예수님을 잉태했을 그때도 마귀가 예수님 낳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낳고 나자마자 죽이려고 방해했고 또 성경에 기록안되있지만은 사생활때도 끈임없는 마귀의 시험 전투는 있었고 예수님은 단 한번도 패전하지 아니하고 다 물리쳐 이겼고 본문에 기록된것은 공식적으로 들어난 우리가 성경용어로 공생활.
공생활이라는말은 공인: 만인앞에 들어난 사람이라는 뜻이고 , 공생활이란 말은 개인적인 생활이 아니고 전체적인 공식적으로 들어난 생활, 말하자면 드러나게 실질적인 본격적인 대속역사의 시작이라 그 뜻입니다.
그래서 공생활 시작되고 난 다음에 첫번째 시험이 마태복은 4장의 시험이고 이 시험은 예수님의 생애를 두고 산 시험의 전부가 아니고 비로소 첫번째 시험이고 따라서 이승리는 첫승리지 이승리가 전부는 아니고 최종승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3번은 이기고 그 다음 순간에 단한번만 저버리면 마태복음 4장 승리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효력도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이승리자체는 완전완벽하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승리가 계속되고 그래서 마지막에 십자가상에서 다이루었다고 운명하시기까지 해서 그 때 완전한 승리가 완벽한 최종승리가 되어젔을때 이모든 것이 우리에게 승리의 우리전투의 근거로 예수님 승리 한나 전부 다 우리전투의 바탕이 되게 되고 근거가 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것들도 하나하나 가지고 있어야 옷을입으면 요즘 옷도 희안하게 만들어서 전부다 몸을 드러내는게 예사지만은 참 수치를 모르니깐 문제죠. 어쩨든 많이 들어내는 것을 자량하는 것이 야만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몸은 드러나야되는 것도 있고 드러나면 부끄러운 것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몸을 드러내면 부끄럽다고 가르쳐야하고 특히 여자아이들 세네살때부터 옷을 별로 입혀 나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니까 커도 드러난 옷을 입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데 어러서부터 옷을 재대로 입혀 놓으면 커서도 옷을 한부로 입지 않는 사람이 될수있습니다. 그러니깐 자꾸 가르쳐야 합니다.
어디까지? 아! 드러나는거!
드러나는 그 생활, 말하자면 예수님의 많은 시험과 승리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그것이 예수님승리가 되어진것입니다. 그래서 승리 하나하나가 이런 전투 하나하나 전부다가 계속 되어젔고 이 전투의 승리들이 모여서 최종승리가 되어젔고 최종승리가 마지막에 다이루었다고 운명했을 그때에 비로소 마태복음 4장에 우리에게 현실전투에 물질시험과 명예, 영광 이런시험에 터가 되어진것이지 만약에 한번이라도 패전했다면 마태복음 4장 승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
그말하려했내요 옷을 입으면 자꾸 드러나는게 좋지 않은데 드러나면 수치 스럽습니다. 집을 지으면 뼈대가, 기둥이 있는데 양심 불량한 사람이 철근을 빼먹으면 기둥이 약해집니다. 철근이 말하자면 100톤이 들어가야 되는데 10톤을 빼먹어버리면 그만큼 약할것입니다. 빠저나갔으니깐 또 드러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상하게 되고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러난다는 말은 이런 말씀들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승리가 최종승리가 아니고 그것은 승리한 부분적인것이고 이런것들도 구별해 알아야 되는 것이 이런것을 모르면 신앙생활해 나가다가 자기 생각 못하게 옆에서 찔려 들어오면 그때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흔들리게 된다 그말입니다. 구별해서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전체 승리를 말합니다. 이 승리도 승리했고 예수님승리는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다이루었다고 최종승리를 다 이루었습니다. 그 이루신 그기까지 이루신 완전승리.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마태복음 4장 승리도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승리자체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처 승리하심으로 마귀에게 종되었던 우리를 예수님은 구출해서 예수님의 것이 됬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받는 심판은 하나님의 공심판은 공심판 앞에서 마귀와 싸워 마귀를 물리처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공심판을 받지 아니하나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대신에 당신 전부를 걸고 우리대신 싸워 마귀를 물리처 이기고 우리를 당신이 빼서와서 당신의 것을 삼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다음에 심판을 받을때 하나님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 다받았고 우리가 받는 심판은 무슨 심판 이라고합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받습니다.
그말은 다시말하면 예수님이 심판주가 되시는 그심판 우리가 받는다 그 말입니다. 당신이 우리 대신에 전부를 걸고 우리를 구원햇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을 그리스도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세번째는 마귀 사탄의 죄 사망에 우리에 대한 왕노릇을 당연한 것이지만은 왕노릇을 못하게 재한을 시켜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혜가 없는 모든 사람은 전부 어떤 잘난 사람, 힘세산사람, 부자라도, 그사람은 전부 마귀 죄 사망의 종입니다. 그래서 결코 그들은 자유하지 못하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대신 전투로 승리가 우리승리 된 우리들은 이젠 마귀가 우리 호통을 처도 내가 마귀를 물리치면 마귀는 내속에 강제로 들어오지 못하고 내가 죄를 물리치면 죄도 강재 못하고 사망도 우리에게 일시적이지 강재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 네번째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죄와 사망을 당신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심부름 꾼입니다. 그래서 지금 죄마귀사망은 전부 자주권이 잇는것이 아니고 전부 예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마귀는 마귀 사탄이지만은 악역을 맡은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마귀다. 죄도 사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 완전히 면제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그래서 요점만 간단하게 요점만 말씀드리면 그래서 우리들은 한번 패전해서 하나님의 법은 한번 패전하면 영원한 사망이지만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사람되셔가지고 우리를 대신한 전투에서 승리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또 다시 마귀 싸울수 있는 자격을 우리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로 인해서 우리는 마귀죄 사망으로 더불어 전투할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됬는데 그 전투의 범위는 첫아담이 패전한 전투와 달라서 첫아담의 패전한 전투는 무한한 전투였는데 그 무한한 전투는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 하나님 율법을 가지고 되는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결고 이길수 없는데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 전투를 마귀와 해서 완전히 이겼기 때문에 우리의 두번째 전투는 공심판 앞에서 무제한 적인 전투가 아니고 이제는 제한적인 전투.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서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연습시키고 길러가시기 위한 우리의 신앙전투의 모든 성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연습시키는 역사고 마귀는 우리 미혹하고 협박하는 마귀 죄 사망 전부 예수님의 심부름꾼이고 또 완벽하게 다이겨서 피할길을 내신 이런 시험 전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만나는 모든 현실의 어려움들 환란들 시험들이 전투인데 이것은 우리들이 기도하고 힘만 쓰면 어떤 시험 어떤 전투든지 못이길 시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문제는 왜 못이기느냐, 못이기는 것은 내가 믿지 않기 때문이고 다하지 않기 때문에 못이기는 것이지 성경으로 볼때 모든것이 다 근거되어있고 구비되어있고 배경까지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만나지는 모든 현실에서 현실의 종류 형태 강도를 막론하고 어떤 시험 어떤 전투 어떤 어렵고 힘드는 것일지라도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말슴따라 내게 있는 힘 전부만 다하면 모든 시험은 능히 이길수 있도록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갖추어저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요것을 오늘 결론적으로 기억하고 그러기 때문에 신앙은 전투고 교회는 전투교회입니다.
같이 해보겠습니다.
신앙은 전투! 교회는 전투 교회! 기독자의 평생은 전투생활!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교회!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신앙!
요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같이 기억합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믿음없으면 알지도 못하고 이길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만 나가면 가지못할길 없고 능치 못할것이 없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인것을 기억하시고 여러가지 성경적인 배경 교리적인 배경 바탕을 같이 기억합시다.
제목: 전투 교회
1. 예수님의 시험
1)시험 받으시는 예수님-본문
- 성령에게 이끌리어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 광야로 가심
2)예수님의 시험
①시험의 성격: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
②시험의 이유:
- 마귀의 존재(천사의 타락, 인간 세계 침입)
- 첫째 아담의 패전(하와->아담->마귀의 종->구출의 역사)
- 예수님의 도전(도성인신->대속의 모든 역사)
- 본문의 의문점과 설명(예수님이 마귀에게 피동?->도전자의 입장)
③시험의 대상: 마귀(죄, 사망= 세상)
④시험의 범위: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무제한의 전투
2. 예수님의 승리
1)시험의 시작과 최종 승리
- 본문의 시험은 공생활 출발의 첫 시험
- 실제의 시험은 출생 전부터 시작, 계속
- 사생활에서도 마귀 시험은 계속(성경의 함축성)
- 본문의 시험 승리는 공생활의 첫 승리
- 최종의 승리는 십자가에 죽으심(다 이루었다)
2)시험 승리의 결과
①완전하고 영원한 승리
②마귀 사탄에게서 우리를 구출
③마귀 사탄의 왕 노릇 제한
④마귀 (사탄, 죄, 사망)을 종으로 삼아
⑤하나님의 공심판 완전 면제
3. 우리의 전투(시험)
1)전투의 자격: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승리
2)전투의 범위: 공심판이 면제된 제한적 전투
3)전투의 성격:
- 우리를 연습시키시는 주님의 역사
- 마귀는 전투에 이용되는 심부름꾼일 뿐
- 피할 길까지 내 주신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
4)신앙은 전투
- 신앙은 곧 전투, 교회는 전투 교회
- 기독자의 평생은 전투 생활
-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교회, 자라가는 신앙
4. 전투의 배경과 내용
1)시험 안내자는 성령
2)시험 장소는 현실(광야, 현실은 광야)
3)시험 목적은 전투를 통한 실력 성장
4)시험 문제는 하나님의 계약 준수
5)시험 배경은 성령님
6)시험 승리의 방법은 말씀
7)시험 최후의 배후는 주님
5. 결론
1)신앙은 전투 신앙
2)현실은 전투 현실
3)현실은 전투 승리 축복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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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지나간 주일 월요일부터 목요일 새벽까지 공회적으로 집회장소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참석하신 분도 있고 또 8월 휴가철이지마는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참석지 못한 그런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좋기는 공회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하는 이런 집회는 여름에는 휴가철 맞춰서 하니까 요즘은 어지간한 학교나 회사나 어떤 직장도 1년에 몇 일 휴가는 다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법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집회 참석은 그리 어렵지를 아니한 일입니다. 가능하면 참석할 수 있으면 좋겠고, 올해 하지 못하신 분들은 내년을 소망하고 미리부터 기도하고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인생이라는 것은 길든 짧든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흔적이고 지나가면 세월 속에 사람은 누구나 다 늙어져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늙음의 끝은 마지막 죽음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고 그 죽음 너머에는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안믿는 사람이고, 죽음으로 끝나지 않아도 사람이 죽었다가 또 다른 것으로 태어나고 불교에서 말하는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역시 안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며 인식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인생은 늙고 세월은 가고, 늙으면 반드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너머에는 인생의 모든 부활이 있고 심판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 세상 살아 생전 어떻게 한 평생을 살고 갔느냐를 하나님께서 행동록에 낱낱이 다 기록해 두셨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으로 심판해서 영원한 보응을 하신다는 것이 성경이고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말씀을 믿어야 비로소 믿는 사람이 되는겁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세월 속에 낡아지고 쇠해지고 마지막에는 없어질, 두고 갈 세상. 우리 나라 제일 큰 그룹, 제일 1등 부자가 되는 재벌 회장이 지금 병석에 누워서 말하자면 뇌사 상태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재산이 몇 십 조가 되는지 모르겠지마는 그 많은 재산 가져본들 본인이 병석에 누워 있으니까 자기 인생과 그 재산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그 많은 재산에 대해서 말 한 마디 못 하고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고 그 수많은 재산 가지고 아파트를 사면 수 백 채를 사고 수 천 채도 안 살 수 있겟습니까? 그만큼 많은 돈 못 할 것이 없는 엄청난 돈을 가졌는데 자기 한 몸 병석에 누운 것을 치료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세상이고 그게 인생이고 그것이 돈의 한계고 물질의 한게라는 겁니다. 너나할 것 없이 다 그러합니다. 마지막에 인생은 다 떠나는 것이고 떠나면 세상 모든 것은 두고 갈 것들입니다. 악착같이 세상에 그런 말이 있던가요?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합니까? 수단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불철주야 악착같이 직장 사업생활 해서 마음 자존심 상하는 일 당하고 속 썩여가면서 고생해가면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아서 양육을 하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는 점점 늙어져가는데 그래 놓으면 노후가 편안하면 수월하고 자식들 잘 길러두면 수월한데 그래봐야 마지막 끝에는 늙어서 쪼글쪼글하고 힘이 다 빠져나가서 죽는 것이 인생의 종말입니다. 누구나 예외가 없는데 사람이 머리를 가지고 멀리보면 안믿는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것은 앞날을 대비해서 현재보다 어려운 때를 대비해서 미리 미래를 내다보고 보험을 드는데 예수믿는 사람들은 물질보험은 안 들 지라도 신앙보험을 들어 놔도 손해볼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신앙의 보험은 돈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것이 인생의 다시 없는 든든한 보험이 되겠는데, 이걸 안 하니까 참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여러 가지 바쁘고 복잡한 일들이 있겠지마는 신앙생활에 중점을 두고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사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면 복이 있겠습니다. 이 말씀은 집회 기간동안 받은 말씀인데 참석 못하신 분들도 많고 참석해도 말씀이 깊고 넓고 어려워서 다 알기 어려워서 한 번 더 시간 되는데로 계속해서 복습을 한 번 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본문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본문 내용은 전체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그 시험을 마귀를 물리쳐 이기신 그런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눕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거, 하나는 그 시험을 이긴거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이 몇 가지라고요? 하나는 뭡니까?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것, 그 시험을 물리쳐 이기신 것 시험이라는 것은 부드럽게 말한 것이고 강하게 말하면 전투라 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의 시험 예수님의 전투. 본문에 보니까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세 가지로 나오지요. 첫째 성령에게 이끌리어 둘째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셋째 광야로 가셨습니다. 요래 구별해서 기억을 하십시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데 예수님을 이끌고 간, 이끌고 마귀에게로 데려가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두 번째 예수님이 시험을 치르는 전투 대상은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세 번째 장소는 광야입니다. 광야로 가사. 이렇게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러가는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지마는 근본 하나님이시고 또 예수님은 죄로 지은 일이 없고 예수님은 아무런 사리사욕이 없는 분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뭣때문입니까?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라. 모든 사람이 시험 받는 이유는 성경에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을 입고 오셨지마는 주님은 욕심이 없는 분입니다. 시험 받으실 만한 사리사욕이 전혀 없는 분인데 예수님은 시험을 받고 계십니다. 왜 시험을 받으시는가? 예수님의 시험의 성격은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 예수님 시험은 어떤 시험이라구요?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대신하는 시험이라 말입니다. 이런 시험을 왜 받아야 되느냐? 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시험을 받아야 되느냐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이 물질계 우주가 있고 영계가 있습니다. 영계는 하늘나라인데, 물질계 우주는 하나님께서 지어 놓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걸 다 지어놓고, 물질계 우주를 전부 다 사람에게 맡겼고, 그 사람의 첫째가 아담 하와였습니다. 그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고.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지었는데 우주를 지었고 그 우주 전부를 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주셔서 주인으로 통치자로 맡겨 놨습니다. 영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고, 그 영계에는 천군천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인 천사 중에 높은 천사 하나가 하나님을 시기하고 제가 하나님이 되려는 못된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하나님에게 쫓겨나서 타락해서 바깥 어두운데 쫓겨났는데 그 말은 무슨 뜻이라고 배웠습니까? 영계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 밝은 빛의 나라인데 천사 중에서 높은 천사 하나가 하나님을 시기하여 제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쫓겨나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는데 그 바깥 어두운데가 한 말로 말하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는 곳입니다. 쫓겨난 그 천사 이름이 마귀사탄인데 그 마귀사탄이 내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 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세계에 들어와서 자기 세력을 넓히려고 자기 부하를 만드려고 인간세계에 들어 왔습니다.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배암을 입고 여인 하와를 만났습니다. 미혹해가지고 하와를 살살 꼬와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거역했던 것 처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만든 것이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한 겁니다. 그래서 하와가 어리석은 여인이 좁은 여인이 그래서 여인들은 늘 잊지 말고 기억하실 것이 선악과를 아담보다 먼저 따먹은게 여자다 여인이다. 여인이면 여반이면 나는 여자다. 나는 선악과 먼저 따먹은, 그래서 아담을 미혹한 하와같은 요소가 나에게 있다. 그래서 여인들은 항상 모든 면에 좁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좁고 모든 시야가 좁고 범외가 좁고 범위가 좁고 속이 좁고 그게 여인의 특성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는 성경에 보면 여인은 교회에서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라. 조용하게 있으라 했는데 남자가 머리가 되고 그 아래에서 가르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 교회든지 한 교단이든지 그 교회나 교파에 최고 머리가 여인되면 성경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가 생겨집니다. 그런 일은 교회 역사에 많이 있습니다. 참고로 상식으로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인간세계에 에덴동산에 들어와서 뱀을 먼저 입고 뱀을 통해서 좁은 여인, 허영과 허욕이 많은 여인, 미혹에 약한 여인, 여인들입니다. 여반들은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남반들은 무엇이 잘났는가? 남반들도 문제가 있는데 특히 여반들은 미혹을 잘 받고 좁고 허영과 허욕이 많은 것이 일반적으로 여인들입니다. 대체적으로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그러합니다. 그래서 여인의 특성을 너무 잘 아는 마귀가 뱀을 입고 여인 하와에게 와서 살살 꼬아가지고 하와의 심리를 이용을 해서 허영심을 부추겨서 허욕을 부추겨서 네가 선악과 따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 하나님 된다 그러니까 그 허영과 허욕에 들떠가지고 선악과를 딱 보니까 정말 뱀의 마귀 말처럼 저거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보여졌고 그래서 선악과를 똑 따 먹었습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되는데 여인의 또 한 약점이 뭐라고요? 여인은 좁고 허영과 허욕이 많고 미혹을 잘 받고 동시에 또 미혹을 잘 합니다. 여인은 유혹을 잘하는 특성이 있지요. 그래서 그 여인 하와가 아담을 불러서 살살 꼬아가지고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의 하와의 가장 큰 죄는 선악과 따 먹은 죄도 큰 죄지마는 아담을 미혹하여 선악과 따 먹게 한 죄고, 아담의 가장 큰 죄는 여인에게 미혹받아 선악과 따 먹은 죄가 큰 죕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어겼고, 이런 성경적인 내용이 나오면 재미가 없지요.
부산에 큰 교회가 있답니다. 교회를 갖다가 수 만평을 지어 놓고 수십만평 지어놓고 매주마다 몇 천 명이 모인답니다. 모이는데 우리 교인중에 한 분이 가보니까 거기 설교 내용을 들어 보니까 개그 콘서트라던가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 웃겨서 배꼽잡게 만드는 그 프로그램하고 거의 비슷하더라. 예배 모습이. 설교 내용이. 그게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 혹은 두 번째 큰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 곳에는 아무리 가봐야 유익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데 지금드리는 이런 말씀은 사이다를 안만 먹어도 먹을 수록 몸에 해롭습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뭘 먹으라고 하던가요? 곰국을 먹어야 속이 든든해지고 힘을 쓰는데 젊은 사람들 건강 생각지 아니하고 입에 맞는 것만 먹는 사람들은 곰을 주면 느끼해서 잘 못먹습니다. 사이다 콜라는 잘 먹고. 설교도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고 감정을 충족시키고 하는 그런 사이다 설교를 많이 들으면 신앙이 죽어버립니다. 곰 설교를 들어야 됩니다. 곰 설교. 지금 설교는 곰 설교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쫓겨나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가지고 인간세계 들어와서 하와를 미혹하고 아담을 미혹해서 범죄케 하고 말하자면 이 타락한 천사 마귀 사탄이 인간 세계에 들어와서 이 세상에 주인이 된 대표되는 아담과 하와를 물리쳐서 이겨버린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 되는 것이니까 선악과 따먹고 범죄한 하나님의 계약을 어긴 그 때 부터 인간은 전부 마귀 사탄의 종이 된 겁니다. 마귀가 인간에게 싸움을 걸어서 아담이 졌는데 그 아담은 전 인류의 시조면서 대표기 때문에 아담의 패전은 아담의 허리에 있던 부정모혈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 전부의 패전이고 그래서 아담이 패전함으로 마귀의 종이 되어졌고 이 세상은 마귀에게 뺏겼고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마귀의 것이 되어졌고 모든 세상은 마귀가 장악한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둠속에 빠지고 마귀의 것된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분이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 세상에 오시기는 오셨으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되 내 백성을 구하러 왔으니까 내 백성을 내놔라 마귀한테 가서 네가 물리쳐 이긴 아담과 그 자손들은 원래 내 백성이니까 내놔라 그러면 마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 웃기지 마십시오. 내가 싸워가지고 이긴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싸워서 이긴 내 백성들이고 내 전리품들입니다. 내 백성입니다. 내 종들입니다. 내가 왜 내줍니까? 이것을 데려가시려면 나한테 도전해서 나를 이기십시오. 그러면 내가 줄 수 밖에 없겠지요. 마귀가 그게 마귀의 말이고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 내막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의 범절이 철두철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순서를 어기는 분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아무렇게나 뒤집어서 역리로 하시는 분이 아니고 철두철미한 진리의 하나님이고 순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무례를 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모든 백성을 마귀에게 뺏겼고 당신이 지으신 온 세상을 마귀에게 빼앗겼으나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니까 마귀를 한 주먹에 깨뜨려버리고 빼앗아 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지마는 그리하면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당신이 세우신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리하실 수 없고 부득이하게 인간이 패전하여 빼앗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셔서 마귀에게 도전장을 낸겁니다. 나하고 싸우자. 네가 내 백성 아담하고 싸워 이겼으니까 내가 다시 싸워보겠다. 하나님이 나한테 왜 도전장을 냅니까? 나는 사람과 싸웠는데. 그러면 내가 사람이 되지. 그래서 사람이 되신겁니다. 사람이 되되 사람이 꼭 같은 사람입니까? 아담도 사람이고 아담의 자손 전부 다는 내가 다 이긴건데 그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다고요? 아담의 자손으로 나면 도전자격이 없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자손이 아닌, 아담의 자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운 법칙으로 사람이 되어 오셨는데 이런 말을 세상에서 하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말인데 이걸 믿으면 신앙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고 이걸 안믿으면 예수를 안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와 꼭 같은 영과 마음과 몸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꼭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같은. 그런데 사람으로 오실 때 그 방법이 전 인류의 6천년 역사에 단 한 번도 없는 부정모혈의 법칙으로 나지를 아니하고 처녀의 몸을 빌어 입되 빌리되 그 종자는 첫째 아담의 종자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자로 났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만들었지요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없는 가운데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나게는 못하셨을것인가? 흙을 빚어가지고 아담을 만드시고 그러면 하와는 아담이 낳았습니까? 하와는 부정모혈로 났습니까? 이영근 선생 하와는 뭘로 났습니까? 손성균 선생님 하와는 뭘로 났습니까? 아담의 갈빗대를 빼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사람의 갈빗대를 빼서 사람을 만들어? 가능합니까? 인간 피조물은 불가능하지요. 없는 가운데도 만들어내신 하나님이 재료 있는 갈빗대로 사람을 만드는데 - 사람 속에 있는 요소 세포 하나 빼가지고 길러서 사람 만들지요 갈빗대 하나 못만들겠습니까 얼마든지 만들고 남지요. 이래 만드신 하나님인데 아담의 종자 아니고 딴 종자로 사람되게 못하실 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의 종자가 아닌 전혀 새로운 종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놓으니까 마귀가 할 말이 없습니다. 자 나는 사람이다 사람인데 아담의 자손아닙니까? 나를 살펴봐라. 나는 둘째 아담이다. 나는 아담의 요소는 억억만문의 일도 없다. 성령으로 나서 하나님께서 전혀 새로운 종자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새로운 대표가 났으니까 나하고 한 번 싸워보자. 그러니 마귀가 예수님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겁니다.
이런거 전부다 세밀하게 성경에 기록이 안되어 있어도 내용을 들어가보면 있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패전한 아담의 요소 아닌 그래서 아담의 패전 과정과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으로 나가지고 마귀에게 도전장을 내서 마귀와 더불어 전투를 하게 됬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마귀한테 도전장을 내니까 마귀가 이제는 도전장을 안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레슬링이나 권투나 유도나 운동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을 따서 가지고 있는데 나는 세계 챔피언입니다. 하고 도전 아무도 안받아 줍니다. 하면 어느정도 쌓여서 나이가 많아서 은퇴합니다 그러면 아 그 사람은 세계 챔피언인데 나이가 많아서 이제 은퇴했다. 그러면 챔피언으로 은퇴를 하지마는 그게 아니고 싸울 나이도 있고 법이 그래 되어 있는데 안싸우면 그 챔피언 벨트는 뺏깁니다. 법적으로. 도전하면 도전 받아주는게 세상 자연계시입니다. 마귀가 첫째 아담을 이겨도 둘째 아담이 와서 도전장을 낼 때는 마귀는 법적으로 받아 줘야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 도전을 받았고 예수님 도전 하셨고 그런데 예수님이 도전하신 것은 순전히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서 마귀에게 도전했다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도전자고 마귀는 챔피언 입장이고 승자고. 그러니까 챔피언이 되면 도전자가 도전하면 권리가 있는것이 나한테 도전하려면 날짜는 내가 정한다. 장소도 내가 정한다. 그게 선자의 권리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로 와라. 물론 세상은 법칙이 있으니까 그 범위안에서 싸우지마는. 그러면 도전자는 따라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도전자고 마귀는 승자이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한테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은 거기 대해서 싸움을 하는 것이니까 대응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니까 거기서 대응을 했고 또 산으로 데려가니까 따라갔고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니까 가신겁니다. 요게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도전해서 마귀의 응전에 다시 응전하는 그런것이 된다 그리 볼 수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한테 도전해서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데 싸우는 무기가 둘이 있는데 그게 뭐이냐 하면 하나는 죄고 하나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마귀라 그럴 때 마귀는 죄와 사망과 하나 연결되어 있고 죄 마귀 사망 요 셋을 합해서 우리 입장에서 뭐라한다 그러던가요? 마귀하고 죄하고 사망하고 통틀어서 한 말로 오늘 우리에게 부딪힐 때 뭐라 합니까? 같이한 번 해보실까요 세상. 세상.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하고 싸우는데 마귀하고 싸우는 것은 곧 죄하고 싸우는 것이고 권세되는 사망하고 싸우는 것이고 이 싸움이 예수님의 전투다 그 말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에 예배당에 교회에 가면 거짓말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효도 잘하고 이런거 하면은 잘 알아 듣겠는데 전투가 어떠하고 싸움이 어떻고 이해를 못하실지 모르는데 저도 어린 신앙에서 이런 말씀 들을 때는 유치한 것이 아닌가 신앙에 무슨 전투가 있고 도전이 있고 승리가 있고 패전이 있고 그런게 있는가 그래 싱각을 했는데 실제 들어가보면, 또 다시 한 번 해보시겠습니다.
신앙은! 전투! 전투교회!
교회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평생을 전투하는 곳이고 신앙은 평생 전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내용이, 그 싸움의 질이 이 세상과 달라서 그렇하지 기본적으로 신앙이라는 것은 전투로 싸움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마귀에게 패전한 우리를 구출해내시기 위해서 우리대신해서 사람이 되셔서 마귀한태 교전해서 마귀하고 더불어 싸웠는데 마귀와의 싸움은 곧 죄와 사망과 세상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의 범위 강도가 얼마정도인가?
이것은 끝이 없는 무제한적인 전투입니다. 세상의 야만스럽게 싸우는 그런 싸움중에 하나가 기권하던지 기절하던지 싸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 마귀의 싸움은 첫째 아담과 마귀의 싸움도 무제한의 전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젔습니다. 무제한의 전투이기때문에 인간이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전투도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싸우는 제한이 없는 끝까지 싸우는 것이 고 영원한 싸움인데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치고 이겼습니다.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시험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간단히 설명을 드린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깐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 광야로 가사' 세가지 시험을 받았는데 이것은 다음에 하고 예수님 시험의 내용을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시험을 왜 받았느냐? 우리 때문에. 예수님의 시험의 그 성격은 우리를 대속하시는 시험입니다. 당신 자신은 욕심도 없고 패전도 없기 때문에 시험할이유도 전투할이유도 없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것이고 우리를 대신하신 것은 내막은 우리들이 마귀한태 우리 대표대는 첫째 아담이 마귀와의 전투에서 패전해서 저버렸기때문에 우리는 전부 마귀의 종이 되어있었고 온세상을 마귀에게 빼았긴 상태였기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대신 사람되어오셔가지고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물리처서 이겼다 그 말이고
그런데 그 전투는 하나님공심판에서 전투하는 제한이 없는 무제한적인 끝없는 영원한 전투를 이겨버렸다
크게 두번째 예수님이 마귀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이겨서 마귀를 물리첬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가지 시험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말씀으로 물리쳐 이겼습니다. 그런데 요 본문에 기록된 시험은 예수님의 시험의 전부가 아니고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승리는 예수님 승리에 최종승리가 아닙니다. 요 세가지 시험 자체는 완벽하고 완전한 승리지만은 그러나 요시험으로 예수님 시험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 시험은 주님 십자가 못박혀서 마지막에 못이 박혀서 몸에 물과 피가 다흐르고 호흡이 정지 되어 가면서 다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고 운명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신 그때 비로소 시험도 끝이 났고 그때까지 예수님이 다 마귀를 물리쳐 이겼기 때문에 그때가서 비로소 최종 승리가 되어진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한 마귀에 시험은 전투는 예수님이 낳기 전부터가 아니고 인간이 타락한후 하나님이 예언하셨을 그때부터 그 예언이 내려올때부터 그 시험 전투는 계속되어젔는데 예수님이 직접은 아니지만은. 말하자면은 구주 메시야가 앞으로 메시야로 오실 그 예언이 계속이어지는데 그 예언들이 선지자들이 전해내려오는데 선지자들을 전부 박해, 죽인것이 마귀 역사고 또 예수님을 잉태했을 그때도 마귀가 예수님 낳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낳고 나자마자 죽이려고 방해했고 또 성경에 기록안되있지만은 사생활때도 끈임없는 마귀의 시험 전투는 있었고 예수님은 단 한번도 패전하지 아니하고 다 물리쳐 이겼고 본문에 기록된것은 공식적으로 들어난 우리가 성경용어로 공생활.
공생활이라는말은 공인: 만인앞에 들어난 사람이라는 뜻이고 , 공생활이란 말은 개인적인 생활이 아니고 전체적인 공식적으로 들어난 생활, 말하자면 드러나게 실질적인 본격적인 대속역사의 시작이라 그 뜻입니다.
그래서 공생활 시작되고 난 다음에 첫번째 시험이 마태복은 4장의 시험이고 이 시험은 예수님의 생애를 두고 산 시험의 전부가 아니고 비로소 첫번째 시험이고 따라서 이승리는 첫승리지 이승리가 전부는 아니고 최종승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3번은 이기고 그 다음 순간에 단한번만 저버리면 마태복음 4장 승리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효력도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이승리자체는 완전완벽하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승리가 계속되고 그래서 마지막에 십자가상에서 다이루었다고 운명하시기까지 해서 그 때 완전한 승리가 완벽한 최종승리가 되어젔을때 이모든 것이 우리에게 승리의 우리전투의 근거로 예수님 승리 한나 전부 다 우리전투의 바탕이 되게 되고 근거가 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것들도 하나하나 가지고 있어야 옷을입으면 요즘 옷도 희안하게 만들어서 전부다 몸을 드러내는게 예사지만은 참 수치를 모르니깐 문제죠. 어쩨든 많이 들어내는 것을 자량하는 것이 야만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몸은 드러나야되는 것도 있고 드러나면 부끄러운 것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몸을 드러내면 부끄럽다고 가르쳐야하고 특히 여자아이들 세네살때부터 옷을 별로 입혀 나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니까 커도 드러난 옷을 입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데 어러서부터 옷을 재대로 입혀 놓으면 커서도 옷을 한부로 입지 않는 사람이 될수있습니다. 그러니깐 자꾸 가르쳐야 합니다.
어디까지? 아! 드러나는거!
드러나는 그 생활, 말하자면 예수님의 많은 시험과 승리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그것이 예수님승리가 되어진것입니다. 그래서 승리 하나하나가 이런 전투 하나하나 전부다가 계속 되어젔고 이 전투의 승리들이 모여서 최종승리가 되어젔고 최종승리가 마지막에 다이루었다고 운명했을 그때에 비로소 마태복음 4장에 우리에게 현실전투에 물질시험과 명예, 영광 이런시험에 터가 되어진것이지 만약에 한번이라도 패전했다면 마태복음 4장 승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
그말하려했내요 옷을 입으면 자꾸 드러나는게 좋지 않은데 드러나면 수치 스럽습니다. 집을 지으면 뼈대가, 기둥이 있는데 양심 불량한 사람이 철근을 빼먹으면 기둥이 약해집니다. 철근이 말하자면 100톤이 들어가야 되는데 10톤을 빼먹어버리면 그만큼 약할것입니다. 빠저나갔으니깐 또 드러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상하게 되고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러난다는 말은 이런 말씀들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승리가 최종승리가 아니고 그것은 승리한 부분적인것이고 이런것들도 구별해 알아야 되는 것이 이런것을 모르면 신앙생활해 나가다가 자기 생각 못하게 옆에서 찔려 들어오면 그때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흔들리게 된다 그말입니다. 구별해서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전체 승리를 말합니다. 이 승리도 승리했고 예수님승리는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다이루었다고 최종승리를 다 이루었습니다. 그 이루신 그기까지 이루신 완전승리.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마태복음 4장 승리도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승리자체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처 승리하심으로 마귀에게 종되었던 우리를 예수님은 구출해서 예수님의 것이 됬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받는 심판은 하나님의 공심판은 공심판 앞에서 마귀와 싸워 마귀를 물리처 이겼기 때문에 우리는 공심판을 받지 아니하나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대신에 당신 전부를 걸고 우리대신 싸워 마귀를 물리처 이기고 우리를 당신이 빼서와서 당신의 것을 삼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다음에 심판을 받을때 하나님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 다받았고 우리가 받는 심판은 무슨 심판 이라고합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받습니다.
그말은 다시말하면 예수님이 심판주가 되시는 그심판 우리가 받는다 그 말입니다. 당신이 우리 대신에 전부를 걸고 우리를 구원햇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을 그리스도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세번째는 마귀 사탄의 죄 사망에 우리에 대한 왕노릇을 당연한 것이지만은 왕노릇을 못하게 재한을 시켜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혜가 없는 모든 사람은 전부 어떤 잘난 사람, 힘세산사람, 부자라도, 그사람은 전부 마귀 죄 사망의 종입니다. 그래서 결코 그들은 자유하지 못하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대신 전투로 승리가 우리승리 된 우리들은 이젠 마귀가 우리 호통을 처도 내가 마귀를 물리치면 마귀는 내속에 강제로 들어오지 못하고 내가 죄를 물리치면 죄도 강재 못하고 사망도 우리에게 일시적이지 강재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 네번째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죄와 사망을 당신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심부름 꾼입니다. 그래서 지금 죄마귀사망은 전부 자주권이 잇는것이 아니고 전부 예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마귀는 마귀 사탄이지만은 악역을 맡은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마귀다. 죄도 사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 완전히 면제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그래서 요점만 간단하게 요점만 말씀드리면 그래서 우리들은 한번 패전해서 하나님의 법은 한번 패전하면 영원한 사망이지만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사람되셔가지고 우리를 대신한 전투에서 승리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또 다시 마귀 싸울수 있는 자격을 우리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로 인해서 우리는 마귀죄 사망으로 더불어 전투할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됬는데 그 전투의 범위는 첫아담이 패전한 전투와 달라서 첫아담의 패전한 전투는 무한한 전투였는데 그 무한한 전투는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 하나님 율법을 가지고 되는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결고 이길수 없는데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 전투를 마귀와 해서 완전히 이겼기 때문에 우리의 두번째 전투는 공심판 앞에서 무제한 적인 전투가 아니고 이제는 제한적인 전투.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서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연습시키고 길러가시기 위한 우리의 신앙전투의 모든 성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연습시키는 역사고 마귀는 우리 미혹하고 협박하는 마귀 죄 사망 전부 예수님의 심부름꾼이고 또 완벽하게 다이겨서 피할길을 내신 이런 시험 전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만나는 모든 현실의 어려움들 환란들 시험들이 전투인데 이것은 우리들이 기도하고 힘만 쓰면 어떤 시험 어떤 전투든지 못이길 시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문제는 왜 못이기느냐, 못이기는 것은 내가 믿지 않기 때문이고 다하지 않기 때문에 못이기는 것이지 성경으로 볼때 모든것이 다 근거되어있고 구비되어있고 배경까지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만나지는 모든 현실에서 현실의 종류 형태 강도를 막론하고 어떤 시험 어떤 전투 어떤 어렵고 힘드는 것일지라도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말슴따라 내게 있는 힘 전부만 다하면 모든 시험은 능히 이길수 있도록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갖추어저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요것을 오늘 결론적으로 기억하고 그러기 때문에 신앙은 전투고 교회는 전투교회입니다.
같이 해보겠습니다.
신앙은 전투! 교회는 전투 교회! 기독자의 평생은 전투생활!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교회! 전투의 승리로 자라가는 신앙!
요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같이 기억합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믿음없으면 알지도 못하고 이길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만 나가면 가지못할길 없고 능치 못할것이 없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인것을 기억하시고 여러가지 성경적인 배경 교리적인 배경 바탕을 같이 기억합시다.